
이런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던 나.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아마도 그냥 '있구나'하고 속으로 생각만 하고는 보러가지 않았을 영화. 그런 영화를 봤다. 함께 간 누군가의 추천으로. 이 영화는 오로지 대학로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 에서만 상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대학로에 갈 때마다 나다옆을 무심코 지나가게 되지만 그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개는 내가 잘 모르고 있는 예술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기에. 난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홍보도 안된 전혀 모르는 영화까지 찾아다니며 보는 편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홍보'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나라>도 사전에 홍보가 되었다면 이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텐데.
<어떤 나라>는 북한영화이다. 북한 사람이 제작, 감독한 영화는 아닌, 한 영국인 감독이 찍고 민간북한소녀가 배우(?)가 된 영화이다. 사실 그들은 배우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소녀일 뿐이다.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니며 북한의 최근의 실상을 그대로 잘 재현해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우리가 북한을 접하는 통로는 아직가지 제한되어 있다. 티비 뉴스 프로그램, 신문 혹은 책. 이 정도가 다다. 세계화 시대 라고 하며 모든 것이 다 공개되어있고 상호 소통하는 것 같지만 북한은 아직 폐쇄적이다. 북한으로의 접근은 지극히 소수에게만 제한되어있으며, 그들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당연히 우리가 접하는 북한에 대한 소식은 그들의 일상적인 부분이 아닌 정치, 경제적인 영역에 한정되어있게 된다. 가뭄이 들었네, 굶어죽었네, 반동이 일어났네, 탈북자가 늘고 있네,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네 어쩌네 하면서 북한에 대한 모든 시각은 정치, 경제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만이 전달되고 있다.

* 우리네 소녀와 다를 바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하고, 인형을 안고 잔다.

* 그날까지 열심히. 김일성을 위하여, 김정일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이를 악물고 연습한다.
이 영화는 작년에 찍은 것이다. 당연히 최근 북한의 따끈따끈한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영화는 매우 지루하다. 얼마나 지루한고 하니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인내를 배웠다. 졸고 또 졸고 꾸벅 꾸벅 털썩, 엉덩이 들썩 하면서 결국 끝까지 봤지만 러닝타임 93분의 길지 않은 이 영화는 너무나 지루했다. 티비에서 특집으로 보여줄만한 다큐였다.
두 소녀가 있다. 북학의 전체주의적 사고를 보여주는 집단매스게임. 그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6시간 동안 학교에 남아 매스게임 연습을 한다. 매일같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밥먹고 푹 쓰러지는 모습이 우리네 중학교 소녀들과 다를 바 없다. 가족들 함께 보여 티비도 보고 밥도 먹고 그 앞에서 재롱도 펼친다. 북한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영화에서 비춰진 북한 가정의 모습. 한 소녀는 북한 김일성대학의 교수로 있는 아버지를 두고 있어 생활이 다소 넉넉하다. 그래봐야 우리네 중산층에도 비할 바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북한에서 그들은 매우 풍족한 편이다. 딸 셋이 있고, 첫째는 군대에 들어갔고, 둘째는 공부밖에 모르고, 셋째는 매스게임 선수다. 김일성 생일을 맞이하여 두 달 전부터 집중 연습에 들어갔지만 행사 당일 김정일은 그곳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 아이들은 김정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연습했지만 외면당했다. 그래도 탓하지 않는다.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른 바쁜 일이 있으시므로. 다음 매스게임은 언제 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내일부터 당장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해질 때까지, 함께 하는 모두가 단 하나가 되어 움직일 때까지 그들은 고된 연습을 반복한다.

* 매스게임이 펼쳐지는 이곳.
집단매스게임. 북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북한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 공산주의적 사고방식을 기르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집단매스게임 훈련을 반복한다. 나 하나가 아닌 우리가 하나가 되는 그때를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88올림픽 때 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집단 매스게임. 그래 고된 연습을 통해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멋있다. 하지만 전체주의적이다. 개인은 상실된다. 오로지 전체만이 그곳에 남아있다. 학생시절 교련시간을 통해서 발맞추던 그때, 군대에서 한 목소리가 되어 군가를 부르고 발을 맞추던 그때, 난 내 안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이런 xx. 군에서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라고 한 마디 했을 때 난 그들로부터 집단 포화를 받았다. 미친 거 아냐? 라는 발언과 그 밖의 욕설들.
전쟁이 끝나고 북한의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그네들이나 우리들이나 모두 같은 모습을 보였다. 단지 북한은 대외적인 일인독재였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일인독재였을 뿐. 박정희를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우리들의 나라에서는 큰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스게임을 선보였다. 화려한 부채춤으로 시작되는 그 현란한 광경. 자유민주주의라면서?? 근데 왜 집단주의를 강조하는거지? 허참 이상하다. 개인주의를 더 중요시해야하는거 아냐? 적어도 사회나 국가를 비롯한 단체보다는 개인을 더 중요시 해야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거 아닌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북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말은 자유민주주의요, 내용은 전체주의.
월드컵이 열리고 수많은 붉은 악마들이 시청과 광화문에 집결하고, 관중석에서는 파도치기가 한창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커다란 인간메세지가 보이고 모두가 열광한다. 내 가슴도 복받쳐오른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이건 아닌데... ' 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