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이란 잘 쓰였든가 못 쓰였든가다. 그게 전부다."-37쪽

"우리가 책 좀벌레들처럼 종이를 갉아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독서를 하면 배가 부릅니다."
"독서처럼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일을 하면 음식을 소화할 때와 같은 평범한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겁니다."-74쪽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뱃속에 채워 넣으면서도 조금도 살이 안찌는 이런 홀쭉한 타입들을 나는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어제만 해도 이자는 두꺼운 바로크소설을 세권이나 읽었습니다. 세권요. 그런데도 보십시오! 뱀장어처럼 호리호리합니다! 만약 내가 그랬다가는 나중에 몇 주 동안 다이어트 독서를 해야 할 겁니다."-75쪽

"주석들이란 서가 맨 아래에 있는 책들과 같습니다. 몸을 굽혀서 봐야하므로 아무도 그것을 즐겨 읽지 않습니다."
"세번째 문장을 쓰고 난 후에는 언제나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당신이 쓴 문장들 가운데 강남콩을 집어 올리려고 애쓰는 코끼리의 긴코를 상기시키는 문장이 있으면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91-92쪽

"독서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절약하는 지적인 방법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뭔가 품위를 쥐어짜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돈도!"-94쪽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깨집니다. 그러면 도롱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96쪽

"(문학은) 순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쇠로 책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로 글자를 새긴다 해도 언젠가는 이 지구와 함께 태양에 부딪치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없는 법이다. 예술에는 전혀 없다. 한 작가가 죽은 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희미한 램프처럼 서서히 꺼져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가다."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네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네 안에서 얼마나 환하게 오름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253쪽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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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117쪽

"상관없다! 중요한건 책이야! 사자! 사자! 나는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고 서가에서 책들을 마구 끄집어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물론, 가격이나 책의 상태를 볼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하찮은 책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비싼 초판본이건 값싼 덤핑 책들이건 나한테는 제기랄, 상관없었다. 그 책들이 내게 흥미 있는 분야든 아니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책들을 갖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갈증이 나를 사로잡아 오직 한 가지만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사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었다."-206쪽

"정말이지, 대체 누가 이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사들였단 말인가? 설마 내가?
나는 책더미 속을 마구 헤치면서 제목을 하나씩 읽어갈수록 더 정신이 났고 더 절망적이 되었다. 나는 재미있는 책이나 가치있는 책이라고는 한 권도 사지 못하고, 그저 종이 쓰레기들과 싸구려 책들만 쓸어 모은 것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전부 기껏해야 모닥불 속에나 던져질 만한 책들을 사는 데 지출한 것이다."-208쪽

"정말 어렵군요! 이해가 안돼요."
"이것을 이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골고가 말했다.
"그 이해 안될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니까요."
"그건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말했다.
"책이란 읽기 위해 써야 한다고 봅니다."
"글쎄요!"
(골고와 나의 대화)-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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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가 구경하고 왔더니 마이리뷰가 무려 49개나 되네요. 리뷰 평도 다들 좋구요. 잘 읽구 갑니다.^^

마늘빵 2005-08-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게 그 서평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책일 겁니다. 알라딘을 얼마전 시끄럽게 했던.
 

  그 화제의 영화를 나도 드뎌 봤다. <박수칠 때 떠나라>.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관객의 평이 엇갈리는 이 영화. 일전에 밴드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단 한명을 빼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영화를 보고 안좋은 평가를 내렸던 것. 그만큼 한 사람의 관객의 힘은 영화의 흥행과 직결된다. 영화 개봉 이전의 사전 홍보효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리 홍보가 덜 됐다 하더라도 일단 먼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그  힘은 실로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은 비단 영화 뿐 아니라 책이나 음악 등의 모든 문화장르의 흥행에 이러한 작동기제가 작용한다.

  나를 포함 세명이서 이 영화를 관람. 함께 본 한 명은 그다지 확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평. 그냥 그랬다 정도. 나는 오 재밌다 라는 반응. 역시 같은 영화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자리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이 다르다.



* 6자 회담(?)하는 뽕팔이들. 얘네들도 잠깐이지만 아주 재밌었다. 흐흐

  처음에 범죄추리극 정도로 비춰지던 이 영화가 영화 중반즈음해서 이상하게 바뀐다. 갑자기 공포물이 되어버린 것. 머냐? 하지만 재밌다. '장르의 극적인 전환' 이라고 까지는 못하지만 장난스럽게 살짝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이 귀엽다. 그러더니 어어 더 이상해진다. 과학적인 증거물에 의존해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무당을 데려와서 굿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진짜로 귀신이 들렸고 카메라를 담당하던 생방송 감독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칼을 쑤신 범인을 지목하고, 이어서 나타나는 진범.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다. 누구일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무당에 의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 오 깬다. 그래도 재밌다.



* 박정아. 난 처음에 그녀인줄 몰랐다. 꽤 연기를 잘 하던걸? 그리 많이 나온건 아니지만. 이쁘다. ^^

  장진 감독이 최근 그가 직접 감독을 한 건 아니지만 참여했던 <웰컴 투 동막골>과 감독으로 나선 <박수칠 때 떠나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내놓은 박찬욱은 한편 뒤로 물러섰다. 오 이런. 실로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보여준 만큼의 등장인물들의 허무하고 웃긴 대화방식이 고스란히 여기에도 전해진다. 같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장진 영화의 최고봉은 <아는 여자>라고 하지만 난 그 영화를 보고 싶어했음에도 아직 못봤으므로 제외하고. 일단 <킬러들의 수다>에서의 그 재미난 대화방식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장르의 전환, 반전의 반전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장진 영화의 핵심은 그만의 화법에 있다. 실컷 씨부리다가 순간 멈추고 존재말로 바꿔주는 센스. 내뱉어지는 대사 속에 숨어있는 특유의 억양(?). 아 뭐라 참 설명하기 뭣한 그만의 화법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일단 보는 수 밖에 도리 없다.  



* 떴다 신하균. 불쌍해보이면서도 때론 사악해보이는 그만의 표정. 거짓말을 진실같이, 진실을 거짓말같이 하는 그의 대사법.

  장진도 장진이지만 신하균. 그도 <웰컴 투 동막골> 과 <박수칠 때 떠나라>. 1,2위를 다투는 이 영화로 입이 찢어졌을 듯 하다. 신하균은 뭔가 당하는 역할이 알맞다. 된통 당하고 찌그러지고 다시 카메라로 얼굴을 들어대는 그 표정. 그건 그가 아니면 안된다. 또한 아주 흥행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혈의 누>에 이어 얼굴을 내밀은 차승원의 연기도 볼만하다. <혈의 누>에서도 수사관이었는데 여기서도 현대판 수사관 검찰이다. <혈의 누>의 그의 배역은 썩 어울려보이진 않았지만 <박수>에서는 좋았다. 장진, 신하균, 차승원. 아주 대박 터졌구나.

  마지막으로 음악을 살펴보자면 영화의 음악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장면 장면의 분위기에 효과를 배가 시키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음악감독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일단 잘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장진 영화의 담당 음악감독이라는 점은 알 듯 하다. <킬러들의 수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등을 그가 맡았으니. 장진의 영화 절반 가량은 그의 손에서 음악이 완성됐다.

   아직 안본 이들에게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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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8-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매했어요. 보고 와서 얘기 다시 하자구요. ^^

마늘빵 2005-08-2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넹. 재밌을거에요.

책속에 책 2005-08-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나서 무척 헷갈려했던 작품이에요..예를 들면 마지막에 신하균은 왜 웃었을까..등등 차승원의 연기는 꽤 좋았는데..신하균은 외려 비중이 작았단 느낌도 들고..원가 매듭하나가 덜 풀리고 끝난 느낌였어요..저는 ^^

마늘빵 2005-08-2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하균은 훼이크가 아니었나... ㅋㅋ

로즈마리 2005-08-2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막골하고 금자씨 본 다음이라서 그런지 그 중 가장 별루였어요..--;;
막판에 심령영화 된것두..그렇고..언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두 그렇구..
웃고싶어도 이거 진지해야 하나? 진지해도 이거 웃어야 하나?
그게 좀 엉성하게 되었네요...장진감독식 유머를 좋아하는데 그런 유머는
동막골에서 더 발휘된 듯 하네요.
동막골하고 금자씨는 재밌었는데...

마늘빵 2005-08-2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세 영화 다 괜찮았어요. 금자씨만 너무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지 이전작들에 비해 조금 실망했었구욤. 장진식의 유머 참 재밌습니다. 전 그냥 힘 빼고 봐서 그런가. 많이 웃었어요.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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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동물농장>으로 오웰에 감탄했고, <1984년>으로 그의 진가를 알았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로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느꼈고, <코끼리를 쏘다>로 그가 이제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그의 남은 책들 <제국은 없다> 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오웰이 좋아져서 그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싶었지만 이자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난 같은 값이면 그의 남은 재미없어 보이는 저서들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다른 작가를 물색하련다.

  대체적으로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나의 그것에 비하면. 별 네 개 혹은 별 다섯 개 정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다. 건성건성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개반을 줄 수 있다면 난 그리 했을 것이나 네 개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순전히 나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안에 담긴 조지 오웰의 여러 단편들 중의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오웰이 지은 제목이 아닌 우리네 편집자들이 오웰의 단편을 엮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만의 제목인 것이다. 엄밀히 오웰의 책은 아니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의 잡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일 뿐.

   이 책에는 오웰이 살아온  삶과 밀착된 세심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글들이 담겨있다. 크게 제 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제2부 문학과 정치, 제 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제 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제 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의 5가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5개에서 7개 가량의 단문들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버마에서 경찰생활을 할 당시에 도망쳐 난장판을 만들었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가 관찰한 버마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놓고 있다.

  한 사물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꽤나 깊이있게 전개된다. 다음은 첫번째 단문 '교수형'의 일부분이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P26)

  사형을 언도받은 한 죄수가 죽기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쓴 것이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낮 사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머리는 이미 죽을 걸 알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여전히 계속 살기 위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쓰며 몸부림치고 있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과학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후 계속되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비용' 까지는 그럭저럭 좋다.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지루하다. 물론 소재는 다르지만. 복수, 공원, 두꺼비, 스포츠, 서점, 영국요리, 차, 담배 등등 그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일상 속의 사소한 소재로부터 생각은 넓게 번져나간다.

  어쩌면 그의 이 단문들은 <동물농장> 과 <1984년>이라는 저서의 흥행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 책의 흥행으로 작가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지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이 책을 펴내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충분히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깊이있는 사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만큼의 관찰과 사색을 하는 이들은 꽤나 널려있다. 오로지 조지오웰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글을 썼는가 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었다. 굳이 오웰이 아니어도 된다면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웰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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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8-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만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늘빵 2005-08-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흠... 그럼 읽은 김에 마저 나머지 두 개도 읽어볼까.

하이드 2005-08-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쁘죠.

마늘빵 2005-08-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이뻐요. ㅋㅋ 종이도 저 이런종이 좋아해요. 갱지같은 재활용지. 왜냐면 땀이 잘 닦이거든요. 요즘은 수술 후 괜찮지만 예전엔 땀 투성이라 미끈한 책을 쥐면 땀방울이 책표지에 맺히곤 했는데 이런 책 껍데기는 땀을 흡수해주거덩요.

이상익 2019-04-3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모르겠지만, 나라는.. 자기 방어적 표현이 많은 리뷰입니다. 주장을 확실히 할거면 그리 하시길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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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26쪽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89쪽

"복수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그리고 힘이 없기 때문에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인 것이다. 무력감이 사라지면 그런 욕망 또한 없어지게 된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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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데요.^^

이리스 2005-08-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힘을 얻게 되면 복수의 욕망이 사라질런지.. 그건 개인차가 심하게 있을듯 합니다. ^^

마늘빵 2005-08-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오웰이 그런 야기를 하더라구요, 괴벨이나 히틀러를 감옥에 잡아넣고 나면 그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미 사라지고 우리앞에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깨부숴야 더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5-08-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마치 더이상 초라할 수 없이 초라해진 후세인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인가요? 저는 못돼먹어서 그런지 히틀러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으면 아예 더 작게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버릴것 같아요.나약한 눈빛을 보이면 가증스러워하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