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소설을 마무리짓는 이 줄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을 마무리짓는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하는 대사만큼이나 그간의 이 집안의 고통을 깔끔하게 끝내준다. 마무리 한마디에서 느끼는 그 쾌감.

   소설 <장마>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책에서 볼 수 없었지만 요즘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국어책에 수록되어 있는 모양이다. 내게는 윤홍길이라는 작가도 생소하고, <장마>라는 소설도 생소하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근현대소설들이야 널렸지만 그 상황을 이용하여 가슴 속에 뭉클한 뭔가를 전해주는 소설들은 많지 않다. 물론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읽기 마련이지만.

   사실 작가는 <장마>라는 소설을 통해서 가족 내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해소를 다루려고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가족의 문제에 더 관심이 간다. 가족내에서의 극단과 극단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갈등. 이것이 해소되어가는 과정.

   소설 속 화자인 동만이는 집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른다. 낯선 아저씨가 다가와 " 너 이거 먹고 싶지?" 라고 유혹하지만, 동만이는 낯선아저씨의 손길을 한번, 두번 뿌리친다. 그때마다 아저씨의 손에 잡혀있던 맛있게 생긴 쪼꼬렛은 땅으로 떨어져 아저씨의 발에 짖이겨지고, 흙으로 범벅된다. 하나, 둘 떨어진다. 마지막 셋. 동만이는 끝내 유혹을 이겨내지못하고 삼촌의 소재지를 알려준다. 덕분에 아버지와 삼촌은 호되게 당하고 돌아오고, 할머니는 쪼꼬렛 하나에 삼촌과 아버지를 팔아넘겼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쪼꼬렛 하나로 나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폐를 끼쳤고, 그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할머니는 무섭다. 두렵다. 그리고 싫다.

   세차게 퍼붓던 어느날, 이러한 장마 통 속에 누가 빗길을 거닐까 싶다만 동네구장이 찾아와 뭘 건네고 간다. 전.사.통.지.서. 끝내 죽었구나. 죽었구나. 세찬 빗줄기 소리에 울음소리는 파묻힌다. 어느날 구렁이가 나타나고, 제사를 지내 돌려보내고,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화해한다. 그리고 지루한 장마는 끝이났다.

   장마는 실감나는 방언으로 뒤덮혀 읽기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평소 말하던 그것과는 한참 다른 어휘들이 등장하고 말투도 생소해서 꼼꼼히 읽자면 금방금방 읽어내려가기는 어렵지만 그 방언의 맛이 참 구수하다. 고놈의 사투리가 지리하게 퍼붓는 빗줄기와 어우러져 소설을 맛깔나게 한다.

   소설이 아닌 이 책 <장마>속에는 '장마'이외에도 윤홍길의 다른 소설들이 섞여있다. 처음에는 윤홍길도 몰랐고, 장마도 몰랐기에 다 이어져있는 소설인지 알았는데, 읽다보니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져서 뒤늦게야 눈치를 챘다. 이런 멍한.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어지는 양(羊) 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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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8-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장마 최고의 소설 중 하나죠. 언젠가 윤흥길의 '아홉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를 지하철에서 읽다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다가 울다가.. 윤흥길의 문장에는 그런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

마늘빵 2005-08-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왜 그런 감동이 안오죠. 그래서 별을 낮췄어요. 네개 할까하다가. 감동이 없어서. 메말랐나봐요. 아님 읽는 상황이 적절하지 못했거나.

코마개 2005-08-17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장마. 이게 무슨 소설이었지 고민하다 님의 줄거리 보고 알았습니다.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거든요. 애들 가르치면서 읽는 통에 문학적 매력은 고사하고 쓸데 없는 것들만 잔뜩 기억 납니다. 역시 국어책은 잼있는 소설을 잼없게 하는 재주가 있어...

마늘빵 2005-08-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강쥐님 국어샘이세욤?? 저도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단 말은 어디서 주워들어서 알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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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정말 괴로워 한마당 이야기 숲 5
실비 소스 지음, 심재중 옮김 / 한마당 / 2003년 6월
품절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면 항상 고함을 지르신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두 편으로 갈린 아이들은 누가 더 시끄럽고 크게 소리를 내는지 시합을 했으니까." -29쪽

선생님한테 과자를 뺏긴 프랑시스가 투덜거린다.
"과자도 없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무슨 일을 하냐? 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 그냥 휘파람이나 불어야지."
그렇지만 그것도 허풍이다. 책가방 속에 쑤셔 넣은 초콜릿 빵 하나가 아직 남아있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선생님이 화 난 얼굴로 프랑시스를 쳐다본다.선생님이 화를 내실 땐 정말 멋져보인다니까! -107쪽

장장이 내게 말했다.
"프랑시스, 중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 사뮈엘이 그러는데, 중학교에서는 모두 '과자'를 빤대."
"뭘 빤다고?"
"과자말이야, 과자! 너 그거 알아?"
"그럼 알지, 알사탕 과자, 땅콩 과자, 등드. 그런데 과자를 빨아먹지 뱉어서 먹는 사람도 있냐?"
"그런 과자 말고, 피우는 과자"
"피우는 과자?"
"그래. 임마. 어린애들 말고는 다 그렇게 말해. 너 피워본 적 있어?"-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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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8-1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위의 글 보니, 중학교 있을 때 제 모습이로구만요^^;; 지금은 소리 지르려고 하면 알아서 애들이 귀막고 조용해지죠.

마늘빵 2005-08-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어캐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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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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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하고 누이동생이 서두를 떼며 손으로 탁자를 쳤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혹시 알아차리리 못하셨대도 저는 알아차렸어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내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그냥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도록 애써봐야 한다는 것만 말하겠어요.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해봤어요. 그 누구도 우리를 눈곱만큼이라도 비난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 -69쪽

" "죽었다고?" 하며 잠자 부인은, 모든 것을 직접 살펴볼 수도 있고, 또 살펴보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건만, 물으면서 가정부를 쳐다보았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요" 하며 가정부는 증거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빗자루로 옆으로 좀더 멀리 밀어붙였다. 잠자 부인은 빗자루를 못 내밀게 하려는 듯이 움직였으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자아" 하고 잠자씨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겠다." 그가 성호를 그었고 세 여자가 그를 따라 그렇게 했다."-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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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절판


"그러던 두 분 사이에 얼추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저 사건 - 내가 낯모르는 사람의 꼬임에 빠져 과자를 얻어먹은 일로 할머니의 분노를 사면서부터였다. 할머니의 말을 옮기자면, 나는 짐승만도 못한, 과자 한 조각에 제 삼촌을 팔아먹은, 천하에 무지막지한 사람백정이었다. 외할머니가 유일한 내편이 되어 궁지에 몰린 외손자를 감싸고 역성드는 바람에 할머니는 그때 단단히 비위가 상했던 것이다."-23쪽

"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 싹 끄실러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24쪽

"나갈란다! 그러잖아도 드럽고 챙피시러서 나갈란다! 차라리 길가티서 굶어죽는 게 낫지 이런 집서는 더 있으라도 안 있을란다! 이런 뿔갱이집..."
외할머니의 격한 음성이 갑자기 뚝 멎었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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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재덕이 - 마음을 여는 동화 2
이금이 지음, 성병희 그림 / 푸른책들 / 2002년 10월
절판


"나는 내뻗는 재덕이를 욱질러 물가에 끌어 앉히곤 세수를 시켜주었습니다. 때가 끼어 엉겨붙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머리도 감겨 주었습니다. 엄마가 날 씻길 때처럼 철썩철썩 때려가면서.
재덕이를 씻기는 동안 나는 점점 내가 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삐쩍 마른 재덕이는 실제로도 나보다 덩치가 작습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재덕이는 바보니까, 나보다 한살 많더라도 동생처럼 여겨야지, 그리고 앞으론 때리지 말아야지 하는,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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