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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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의 <광장>.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접한 것은 만 26년 - 나도 이제 나이 먹는다. 만으로 계산할걱다 - 내 인생의 처음이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사실 이 책은 중학교 국어시간에도 우리나라의 근대소설사를 배우면서 얼핏 흘려 지나가는 책이고, 아마도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광장>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처음 접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기일 것이다. 수능지문에도 자주 나오는 그 부분. 이 소설의 말미에 있다. 어디를 택할 것인가 질문을 받는 이명준은 끝끝내 '중립국'이라고 단호하게 읊는다.

 왜 이런 소설을 이제서야 봤단 말인가.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이 소설을 접했구나. 나의 관심사는 내내 바다 건너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에게 가 있었고 -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 대해 아냐? 그건 아니다. 쥐뿔 모른다 - 우리네 그들에게는 시선이 머물지 못했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면서 나는 황석영을 떠올렸고, 김훈을 떠올렸고, 탁석산을 떠올렸다.

 먼저 황석영과 김훈을 떠올린 것에 대해 말해보자면, 사실 황석영을 읽으면서 최인훈을 떠올리는 것이 순서상 옳을 것이나 나의 경험에 의존하면, 황석영을 접한 뒤에 최인훈을 접했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최인훈이 먼저라고 할지라도, 내가 최인훈을 통해 황석영을 떠올린 것은 정당하다. 최인훈의 문체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길다. 문장은 짧되, 내용은 길다. 그러나 그 내용의 긺이 장황하지 않고 문장과 같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도는 매우 자연스럽다. 애써 수식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흔적은 전혀 없고, 그야말로 붓 가는대로 쓴 것 같다는 인상이다. 이전에 나는 이런 느낌을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다. 그리고 김훈을 통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다음으로 내가 소장 철학자 탁석산을 떠올린 것은, 그가 처음 내놓은 책 <한국의 정체성>에서 그가 각 장에서 최인훈의 <회색인>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최인훈은 그저 내게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있는 시험을 위한 소설가 정도로만 인식되어있었고, 나는 탁석산을 통해 최인훈에 한발 다가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탁석산으로 인해 최인훈에 관심을 갖었고, <회색인>을 읽었으며, 지금에 와서 <광장>을 접한 것이다.

 황석영과 김훈을 떠올린 점이나, 탁석산을 떠올린 점이나, <광장>을 읽은 다른 독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나만의 특수한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을 떠올리건, 누구를 떠올리건 간에 그것은 독자마다 다 다르고, 그 다름에는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정답은 모두 다 이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이 책 <광장/구운몽>은 최인훈의 '광장' 과 '구운몽' 두 가지 소설을 한 책에서 다루고 있고, 나는 먼저 광장을 읽었다. 하지만 감상문을 쓰는데 있어서 <광장>과 <구운몽>을 붙여놓을 수는 없는지라 일단 <광장>에 대한 나의 독서후기를 작성한다.

**

  캘커타로 향하는 배안에 이명준이란 사내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포로석방으로 풀려놨고, 중립국을 택했고, 이 배를 타고 중립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의 원대로.

  북으로 도망간 아버지 때문에 경찰서에서 취조받고 고문당하고 매맞던 시절이 있었다. 6.25 전쟁이 터지고 북한의 고문관으로 남한에 내려와 은인의 아들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태식이를 똑같이 대했던 적이 있었다.  남한에서 윤애란 여자를 사랑했고, 북한에서 은혜란 여자를 사랑했다. 윤애는 태식이의 아내가 되었고, 은혜는 소련에 발레리나로 행사참여했다가 전쟁 이후 낙동강 유역에 간호사로 자원근무왔다 전사했다. 이명준은 포로가 되었고, 풀려놨으며, 북한과 남한의 설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국"을 외쳤다. 중립국.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 어느 것이 시대순으로 먼저인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광장>과 <회색인>은 분명 같은 선상에 있다. 어느 한쪽으로 나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못하는 회색인과 역시 어느 한쪽을 택하지 못하고 중간지대에 위치한 중립국을 주장하는 이명준의 그것은 서로 맞닿아있다. 그것은 또한 최인훈의 그것이기도 하다.

 최인훈의 <광장>에는 여러 광장이 나온다. 경제적 광장, 정치적 광장, 문화적 광장. 그는 자기 자신이 나팔수가 되어 '밀실'에 갇혀있는 군중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팔수가 될 수 없다. 희망을 꿈꾸고, 이상을 꿈꾸지만, 그 자신이 밀실에 갇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행동의 부재?

이명준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그가 원하는 광장을 찾지 못한다. 광장을 찾지 못했으니 자신이 도달할 광장이 없으며, 군중들을 밀실에서 끌어낼 광장 또한 없다. 그는 그때마다 자신만의 광장으로 찾아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 윤애와 은혜를 만났다. 이명준은 잃어버린 광장 대신에 나만의 광장, 즉 밀실 속에서 자신의 여자와 함께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도피처를 찾았다. 밖에서 지고 안으로 들어와 쉴 곳을 찾았다. 밀실 속으로,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 그는 숨어버렸다. 그런 그가 어떻게 군중을 광장으로 이끄는 나팔수가 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남한과 북한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 자유가 있지만, 열정이 없는 남한. 열정이 있지만 자유가 없는 북한. 그 어느 쪽도 내가 몸 담을 곳은 아니다.

중립국. 중립국. 중립국. 중립국... 그는 끊임없이 중립국을 희망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원했던 것 또한 중립국은 아니었나보다.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마지막 도피를 시도한다.

 **

 한글임이 분명하지만 내게는 생소한 한국어 낱말들이 몇몇 등장하고, 그 생소함에 쾌락을 맛보기도 하며, 섬세하고 기가막힌 비유와 묘사에 감탄하기도 하며, 단걸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이 같은 소설이 또 있을까 싶게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을 만났다. 두고두고 음미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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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7-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책을 사볼 생각이 팍팍 드는군요! 사게되면 땡스투 누를께요. ^^

마늘빵 2005-07-0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옙!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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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 최근 나의 독서습관을 사로잡고 있는 이 사람.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 에 이어 접하게 된 보통씨의 세번째 이야기. 본래 이 책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2002년에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별로 팔리지 않았나보다. 왜일까. 일단 제목이 좀 거시기 하네. 누군지 모르는 드 보통의 이름이 걸려있고 이것이 수식하는 단어가 '삶의 철학산책' 이 딱딱한 제목에 누가 현혹되겠으며 어느 누구의 눈길을 끌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이다만 일단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팔리고 읽힐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번에 새로 편집되어 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야 좀 팔리지 않는가. 좀 팔리는 정도가 아니지. 이 정도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이 책을 학교를 오가는 길에 들고 다니며 간간히 읽었는데, 학교에 도착해 책상위에 올려놓으면 옆에 있던 선생님이 그러신다.

"선생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슬픔이죠. 이건 다른 책이에요."

이 선생님과 같은 질문을 내게 던진 사람이 몇 있다. 모두들 한결같이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 - 젊은 베르테르는 슬프다라는 - 과는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기에 놀란 눈을 하고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의심하며 내게 확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한 의문은 누구에게나 신선하다.

 나는 사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때문에 관심이 가기는 하다만 언제쯤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올지는 모르겠다. 단지 괴테와 그의 친구의 경험담이 묻어있는 슬픈 사랑이야기라는 정도 밖에는 모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라는 몽테뉴의 문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라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6가지 위안을 주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는 그가 아테네에서 외톨이- 심하게 말하면 왕따 - 였음을 일러주며 인기 없어도 괜찮다 라고 위안을 주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놈도 있었다 라고 위안을 주고, 세네카의 좌절의 철학, 체념의 철학을 전파해주며 좌절의 위안을, 세네카와 비슷한 의미에서 몽테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다른 위안을, 쇼펜하우어의 사랑이야기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상심한 마음에 위안을, 니체의 삶을 통해 곤경에 대한 위안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그런 위안을 받을 수 있는거야? 라고 순진한 질문을 누군가 던진다면 꼭 그렇진 않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꼭 그런진 않아 라는 말 속에 담긴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사실 이 책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장담은 절대로 절대로 못한다. 여기에 담긴 각종 위안들이 모두 독자에게 먹힌다면 독자는 어쩜 비극적 현실에 처해있는 자신의 상황을 자기합리화 시키며 현실에 안주하려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여기에 나온 위안들이 독자에게 먹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각각의 철학자들의 삶의 이야기와 그들이 한 말들 하나하나 되새기며 자신의 삶을 음미하고 반추해보는 정도의 효과를 얻었다면 보통씨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한 것은 아닌가 싶다. 철학에세이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을 대상으로 사유하게 하는데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철학에세이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철학입문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철학에 이제 막 들어선 이들, 관심갖기 시작한 이들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려운 철학책을 접하기에 앞서 철학자들의 삶을 먼저 접하게 된다면 흥미를 유발 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씨가 안내해주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각각의 철학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이 책에 담겨있는 몇몇 철학자들의 말 중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와닿았고 뜨끔했다.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적욕구를 갈구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인데, 특히나 남들이 잘 읽지 않는 인문사회과학 서적 혹은 고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분야. 솔직히 나는 타인에게 내가 지적인 존재로 비춰졌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름대로 지적으로 보이려고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독서를 하는 것이다. 몽테뉴의 위와 같은 문구는 나를 뜨.끔. 하게 만들었다. 전혀 지적이지 않은 내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지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나의 허영심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의 그러한 허영심이 어느 정도 타인에게 먹혀 들어갔단 말씀. 지금 고백하지만 난 전혀 지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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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7-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명성이 자자해 서점에서 첫장만 들춰 읽어봤는데, 꽤 괜찮더라구요...보관함에 넣기는 했는데 언제쯤이나 ^^;;

하이드 2005-07-0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요. 사세요 사세요~ ^^
키스 앤 텔은 그나마 읽어본 중 별로였던 것 같아요.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의 연장선이긴 한데, 그나물에 그 밥이란 느낌이더라구요.

마늘빵 2005-07-0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드리머님 / 알라딘에 보통씨 팬들이 꽤 많더라구요. 저도 알라딘 마을에서 소개받고 합류했습니다. ^^

하이드님 / 저 님 추천으로 보통씨 책 전부 다 샀어요. 지금 집에 모셔두고 있답니다. ^^ 이제 또 다른 작품을 봐야죠.
 

 나와 취향이 비슷한 한 샘이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길래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가 재밌을거라 믿고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혼자서. 혼자 영화 봤다.

 날이 더워 조금만 걸어도 등이 다 젖어버리는 바깥과는 달리 영화관 내부는 매우 추웠다. 아이 추워. 더워서 속을 시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콜라를 사들고 갔지만 이놈의 차가운 콜라가 나의 내부를, 밖에서는 에어콘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떨게 만들었다.

 씬씨티. 영어로 Sin CIty. 이게 뭘 의미하는거야? 그냥 도시 이름인거야? 별 다른 의미가 있는거야? 아마도 제목에는 별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미국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정말 만화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대개 칼라판으로 출판되지 않는 만화와도 같이 영화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강조한 무채색 일색이었고, 간혹 빨간색과 노란색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역시 주된 색채는 흰색에서 검정색까지의 무채색이었다.

 이미 다른 영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예전에 <21그램>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한 얼굴, 베네치오 델 토로가 주연이다. 그밖에도 제시카 알바라는 여인네와 미키 루크라는 남정네도 주연 명단에 오르고 있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배우를 짝지어 보면,
 
 *제시카 알바 - 낸시, 어린소녀에서 8년 뒤 부쩍 자란 아가씨
 *미키 루크 - 마브, 괴력의 사나이, 불멸의 사나이, 거대한 체구.
 *베네치오 델 토로 - 잭, 재밌는건 이 사람 <21그램>에서도 잭이었는데 여기서도 잭이다. 망나니(?) 경관.
 *브루스 윌리스 - 하티건,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

  영화는 전체적으로 병렬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몇개의 시나리오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결말을 맞이한다.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는 어린꼬마아가씨 낸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괴력의 사나이 마브는 등치에 맞지 않게 자신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죽은 창녀의 복수를 위해 거리로 나선다. 사진작가 드와이트는 창녀를 괴롭히는 이들-아까 그 망나니 경관 잭과 그 일당를 비롯한 몇몇 놈들 - 징벌하기 위해 창녀대표 게일과 함께 거대권력에 맞선다.

 각각의 이야기는 아무런 연관관계 없이 알아서 진행되고, 이야기는 역시 예상했던대로 정의의 승리로 끝이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줄거리가 아니다. 줄거리만 따지자면 사실 다른 액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만화가 영화로 변환되면서, 만화적 색채를 살리고자 한 흑백의 대비, 잔인하고 피튀기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살인행위에 있다. 어쩜 그리도 살인을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필요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자에겐 마땅한 응징이 따를 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 그것이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삶의 철학이다.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나눠주는 것인데, 정의의 문제는 사람들이 적게 가지려하기보다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정의(dike)가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이 때의 정의는 분쟁해결의 수단이고, 현대정의론에서의 절차적 정의를 의미한다.

 그 이전의 정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당한 만큼 돌려주는 '복수'의 개념이 정의를 의미했다.

 영화 <씬시티>에 있어서 마브의 정의는 아마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사랑해주었던 창녀의 죽음. 이에 대한 복수. 그런데 다른 이들의 정의는 또 마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하티건은 정말 순수하게 "정의의 이름으로 얏!" 이라고 외치는 세일러문의 나의 이익이나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의라고 볼 수 있을 듯 하고, 드와이트의 정의는 직접적으로 나와 상관은 없지만 약자의 편에 섬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들은 각자 정의의 개념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머리속에 박힌 정의관대로 삶을 살아간다. 나의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까지.

 정의는 일종의 명예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정의관대로 나의 삶을 진행시킴으로써 나는 일종의 명예를 얻는다. 그것이 나의 이익과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정말 나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견상 그렇게 보일뿐이지 나는 이를 통해 명예를 얻는다. arete. 덕. 탁월함. 명예. 그들은 각자의 명예를 위해, 우리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 투쟁하며 승리를 쟁취한다.

 사족
 내 평생 영화를 보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정말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하다. 마치 움직이는 만화와 같다고 할까. 스크린 속에 모습을 드러낸 저들도 꼭 배우가 아닌것만 같다. 손으로 그린 만화를 빠르게 돌려놓음으로써 캐릭터의 동작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정말 탁월한 솜씨다.

 영화의 잔인함은 뻘건피가 아닌 하얀피라는 점으로 우리의 눈으로 영상이 들어오기 전에 한 차례 걸러진다. 마치 <에일리언>에서 외계생명체가 흘리는 끈적끈적한 피와도 같은. 그래서 그 잔인함이 한층 꺾여 다가온다. 흑백영화가 아닌 올 칼라 영화였다면 아마도 몇차례 눈을 돌리거나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래저래  새로운 방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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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성실한 감상을 올리다니 대단해요^^

마늘빵 2005-07-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읽어보면 별 내용은 없어요. ^^ 귀찮아서... ㅋ
 


 

 

 

 

 

 충격적인 잔인한 장면들이 난무하는 영화.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
 마지막의 반전이 뒷통수 때리는 영화.

 대략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소감을 말하라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장면부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이 전혀 없이 - 하긴 그게 있으면 공포감이 떨어지긴 하지 - 난데 없이 침입한 살인마. 손에 면도날을 쥐고 벨을 누른다. 띵.똥.
 
 문 열러 나간 아저씨. 살인마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피 엄청 튀긴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목이 달아난 뒤의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소나기. 쩝. 눈쌀 찌푸리게 된다.

 다음 살해자. 아줌마. 아줌마 된통 당하고 나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채로 전화기를 집어들다 면도날에 목이 잘린다. 쩝. 역시나 하얀 장농에 뿌려지는 빨간 피. 흰색과 빨간색의 색채대비.

 다음 살해자. 아저씨와 아줌마의 꼬마아들. 이 꼬마 냅다 집을 뛰쳐나가 달리지만 살인마 천천히 쫓아가 총으로 쏴 죽인다.

 남아있는 것은 딸과 딸의 친구. 딸의 친구는 일찌감치 눈치채고 이미 숨었다. 딸은 자고 있다가 발각되어 손과 발에 쇠줄로 묶이고 입에도 재갈이 물려진다. 비명은 소용 없다. 이미 집엔 아무도 없는걸.

 살인마는 딸 알렉스만은 죽이지 않고 차에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아직 살인마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딸의 친구, 마리아는 알렉스를 구하려다 차안에 같이 갇혀버리고. 주유소에서 급유를 하는 동안 도망치지만, 도움을 요청했던 주유소 점원도 살인마에게 도끼로 살해당했다. 차를 몰고 어디론가 질주하는 살인마와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쫓아가는 마리아.

 영화의 줄거리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잔인한 이름모를, 말도 없는 살인마는 도끼질하고 칼질하고 총쏘고 하며 원인모를 살인을 저지르고, 마리아는 친구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살인마를 쫓을 뿐.

 하지만 영화는 이게 다가 아니다. 살인마와 존재를 들켜버린 마리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결국 마리아는 살인마를 죽이게 되지만, 영화 참 이상하다. 살인마가 죽은 뒤에 마리아는 당연히 알렉스를 구해주는데, 풀려난 알렉스는 정신이 이상해진걸까? 마리아를 죽이려든다. 결국 마리아는 알렉스의 손에 죽게되고. 이 어쩌 황당한 결말?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다. 별로 흥행한거 같지도 않은 영화이기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영화의 비밀풀이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대략 짐작으로 애초부터 살인마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살인은 마리아의 단독소행으로 추정된다. 정신착란? 정신발작? 을 이르킨 마리아가 친구네 가족들을 참혹하게 죽여버리고 사랑하는 알렉스를 어디론가 끌고갔던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마리아. 어긋난 사랑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인가? 겁에 질린 알렉스는 마지못해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라고 외친다.

 프랑스 영화가 미국식 공포영화를 따라가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갑자기 떠오른 의문. 그런데 프랑스식 공포영화는 어떤걸까? 생각해보니 본 적이 없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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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7-0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너무 잔인하거 아녜요 , +_+ ㄲ ㅑ
저는 저런 영화 보고 있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던데..

마늘빵 2005-07-0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잔인해요. 저 웬만한 잔인한 영화 다 그냥 보는데 이건 자꾸 눈쌀 찌푸리게 되더군요. 님두 알라딘 하루 종일 하시네요? ㅋㅋ 공부 하세욧!!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몽테뉴)-1쪽

"타인과 대화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일이다."-16쪽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는 돈 많은 손님을 맞는 호텔 수위처럼 노예 같은 ㅌ ㅐ도를 취하는데, 이는 호의를 얻으려는 무분별한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16쪽

"정확한 진술이란 이성적으로 결코 모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진술은 그릇됨이 증명될 수 없어야 진실이 될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믿고, 그들이 제 아무리 저명한 인물이라 해도 그릇된 점이 증명되는 진술이라면 그것은 거짓임에 틀림없고, 그러면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40쪽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냐 아니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70쪽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에피쿠로스)-93쪽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93쪽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94쪽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에피쿠로스)-96쪽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그것을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동, 문제의 악화, 준비없이 당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96쪽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에피쿠로스)-98쪽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 않은 쾌락을 제공한다."(에피쿠로스)-101쪽

"삶의 본연의 목적이라는 잣대로 측량하면, 빈곤은 커다란 부고 무한한 부는 커다란 빈곤이다."(에피쿠로스)-113쪽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매고 있는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그것은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 순응하지 않고 마구 몸부림친다고 해서 묶여 있는 동물의 고통이 덜해지도록 적당히 느슨하게 만든 멍에는 이 세상에는 절대로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세네카)-118쪽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세네카)-120쪽

"가능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미래에 대한 낙관에는 위험스런 순진함이 들어있다.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사고는 어떤 것이든, 그게 제아무리 드물고 시간적으로 멀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것에 대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하는, 일어남직한 일들이다."-144쪽

"불공평은 정의의 규율들이 침해당했다는 느낌을 말하는데, 그 규율들이 약속하는 것은, 만약 명예로운 행위를 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고 나쁜 짓을 하면 마땅히 그에 따르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원칙이다."(세네카)-148쪽

"근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세네카)-151쪽

"위안은 근심을 치유하는 대책 중에서 가장 잔인한 형태다. 장밋빛 예언들은 근심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최악의 결과를 무방비 상태로 맞게 할 뿐 아니라, 고의는 아닐지라도 그런 위안의 말에는 최악의 결과가 닥칠 경우 매우 비참할 수도 있다는 암시까지 담겨 있다."-152쪽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는 가난해야 한다고 운명짓지 않았다."(세네카)-155쪽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여도 좋으리. 집안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세네카)-167쪽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세네카)-172쪽

"인간에게 어떤 사건들을 바꿀 만큼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그 사건들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주어진다"-178쪽

"은퇴 이후로 독서가 나를 위로한다.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몽테뉴)-186쪽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몽테뉴)-193쪽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한두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 안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만약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몽테뉴)-247쪽

"난해함이란, 말하자면 학식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문의 공허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법을 걸어 불러내는, 그리고 인간이 어리석음에 대한 보상으로 손에 쥐기를 갈구하는 한 닢의 동전과 같다"(몽테뉴)-249쪽

"나는 간혹 나 스스로 잘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말하는데, 그 이유는 언어 구사력이 허약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의 지력이 허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종류의 글을, 특히 지금도 살아있는 사람에 의해 씌어진 최근의 글을 공격하는 성급한 비평의 무모함을 저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위대한 명성 아래로 나의 허약함을 숨겨야 한다."(몽테뉴)-258쪽

"이 세상에 태어난 데 따른 벌을 치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세네카)-259쪽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262쪽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 쓴 책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다. 모든 책들은 부족한 면을 가진 저자들에 대한 해설로 가득 채워져 있다."(몽테뉴)-264쪽

"있지도 않은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두는 것이 더 낫다"(샹포르)-275쪽

"결혼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혐오스런 존재가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쇼펜하우어)-278쪽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그 두 사람이 결합할 경우 신체구조가 매우 나빠 그 자체로 조화가 일그러진 불행한 존재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선언하는 것이다."(쇼펜하우어)-309쪽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사랑의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란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312쪽

"가장 분별 있는 인간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애쓴다"(아리스토텔레스)-328쪽

"쾌락과 불쾌감은 서로 단단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가능한 한 많이 누리려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다른 한 가지도 그만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불쾌감을 가급적 적게 맛보면서 고통 없는 시절을 짧게 누리든지 아니면 이제까지 좀처럼 맛보기 힘들었던, 형언하기 어려운 쾌락과 환희를 누리고 그 대가로 불쾌감을 한껏 맛보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만약 전자의 길을 결정하고 인간적인 고통의 정도를 줄이거나 낮추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또한 그 고통이 줄 수 있는 환희에 대한 기대치도 줄이고 낮춰야 한다."(니체)-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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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두 한 방~

마늘빵 2005-08-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