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인지 몸살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몸이 뻐근하고 머리도 지끈지끈하여 토요일 투잡스인 나는 오전에 원잡만 끝내고 집으로 바로 향했다. 배는 고픈데 배를 채울 만한건 집에 없네. 쟁반짜장을 하나 시켰는데, 다 먹고 나니깐 내가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난 꼭 그런다니깐. 다 먹고 배터진대.

도저히 그냥은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먹자마자 쇼파에 누워서 티비를 켰다. 이 얼마만에 보는 티비더냐. 참 티비 안본지도 굉장히 오래됐다. 요새 영화도 못봤는데. 공중파에서는 별로 재밌게 없는거 같고, 케이블로 돌려보니 영화 몇 편이 상영중이다.

오늘 나의 선택을 받은 영화는 바로 이것.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머라 해석해야하지? 국가의 적? 갑자기 <공공의 적>이 떠오르는군.

다시 영화에 집중하자.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 주인공이다 싶더니 윌 스미스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겠다. 난 연예인이나 배우들 이름은 아주 유명한 사람들 빼고는 잘 모른다. 윌 스미스라는 것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알았다. 볼 때는 모른다니깐. 부르스 윌리스나 졸리, 탐 크루즈 같은 아주 유명한 배우들 얼굴만 기억하지.

 영화 속 티비에서 공화당의 한 의원이 국가안보를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를 보고 흥분하는 로버트 딘의 아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로버트 딘. 하지만 정작 나중에 국가안보국으로부터 위협당하는 것은 로버트 딘이다.

오랫만에 만난 대학 동창 다니엘. 하지만 다니엘은 란제리 숍에서 딘을 만난 뒤 쇼핑백에 뭔가를 살짝 집어넣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사망. 이 때문에 국가안보국으로부터 각종 위협을 받는 딘. 신용카드도 정지되고, 과거에 사귀었던 레이첼이라는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아내에게 배달되고, 아내를 팔팔 뛰고, 노동변호사인 딘은 신뢰를 잃어 회사에서는 짤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과거에 안보국에서 일했던 브릴을 통해 도움을 받아내 결국 진실규명을 하게 되지만, 그간 그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국가로부터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처벌, 음모.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망 등 모든 것이 국가의 감시를 받는 사회. 영화 속에서 브릴이 잠깐 언급했듯 누군가와 통화 중에 '대통령' '폭탄' 등의 낱말이 들리면 바로 도청을 받게 된다는 사실. 섬뜻하다. 당해보지 않으면 처음 딘이 아내를 향해 뭐 그런걸 가지고 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보이겠지만, 실제로 당해보면 국가의 감시와 통제라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점을 모르고 살아가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오웰의 <1984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감시카메라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확연히 드러나는 사회. 모든 것이 국가의 통제 아래 있고, 모든 것은 조작된다. 오웰은 1984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책을 썼고, 그 시점은 대략 약간 늦춰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감시 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강남구청에서는 강남지역 일대에 CCTV를 설치해서 동네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고, 한 차례 이 CCTV로 인해 범인검거에 도움을 얻자, 인권침해라는 등의 반발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 강남에는 CCTV가 모든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구청에서 그럼 강남의 범죄자들을 다른 구역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 며 따지자, 돈 많은 강남구청 왈 "그럼 니네 구역에 CCTV 설치하는 비용을 대주겠다" 라고 말했다지.

 참 별거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참 별거 맞다. 모든 시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일찌감치 주민등록증 이라는 것을 통해 지문날인하고 국가의 감시체제에 들어간 우리는 그 말고도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국가의 감시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단지 정말 인식하지만 못할 뿐.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사건에 연루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걸 단지 음모론이라고 생각지는 마시길. 한 때 주민등록증에 지문날인 반대 운동을 벌이자 - 주민등록증을 없애자는 주장이었나 - 나도 그들의 생각에 공감은 했지만 결국 주민등록증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해본 결과, 잔말 없이 구청에 가서 지문을 찍은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의식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존재자.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국가안보라는 이름 하에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이 얼마나 침해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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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7-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은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 저는 어쨌든 아프락사스님이 재밌다고 하시는건 재밌다고 봐요. ㅋㅋㅋ 저도 이 영화 한번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5-07-0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몸은 한결 낫습니다. 오늘은 바깥 나들이를 좀 해야겠어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번에 읽었던 스위스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 이어서 접한 그의 두번째 작품. (두번째란 의미는 순전히 내가 그를 접함에 있어서의 두번째. 그가 책을 낸 순서와는 상관이 없다)

 이런식의 개그는 절대 식상하지만, 절대 보통 사람 같지 않은 알랭 드 보통 씨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만의 특유한 문체를 사용하며 독자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최근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이 새롭게 디자인되어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여행의 기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등 그의 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치 <다빈치 코드>가 대박을 터뜨리자 댄 브라운의 이전의 다른 작품들이 쏟아져나온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한번 대박 터뜨린거 그의 이름을 빌려 다 팔아보자는 속셈이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즐겁다. 이런 기회에 이 즐거운 작가를 접하게 되었으니 말야.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의 원래 제목은 <KISS & TELL>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다소 딱딱하고 뉴스거리같은 책의 제목이 우리네 번역서에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표현이 되었던가? 그건 모를 일이다. 출판사만이 알일.

 절대로 이 책에서는 우리가 키스하기 전에 무슨 말들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키스를 못해봐서 키스를 하려고 하는데 뭔 말을 해야할지 고민 중인 남녀나 남들이 키스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은 이 책에서 손 떼시라. 아무리 찾아봐야 없으니깐. 키스는 말 없이 그냥 하면 되지 않남? ㅡㅡa 뭔 말이 필요햐?

 파아란 깨끗한 하늘에 뭉게 구름 둥실둥실 떠있는 책의 표지와 완벽한 정사각형은 아닐지라도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를 가진 이 책은 단번에 우리의 눈길을 끌기는 한다. 하지만 일부 책 수집가들에게는 이 책은 모양새가 튀는지라 다른 책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여 같은 선상에 꽂아넣기는 애매한 책. 그래서 불만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제목이나 모양새나 이래저래 출판사가 독자들의 눈길을 좀 끌어볼라고 애쓰기는 무진장 애썼다.

 근데 도대체 책 내용에 대해서는 언제 이야기하는거야? 너는 아직까지 서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잖아! 라고 짜증내지말길. 나는 원래 책 내용이야기보다는 딴 이야기를 잘 하니깐. 이게 내 감상문의 끝일지도 모르는거야.

 읽은지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 선뜻 감상문을 작성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일에 치여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지 상당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함부로 서투르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재밌게 봤고, 뭐 대단한 내용이 들은건 아니지만, 아껴주고 싶은 책이다. 나중에 다시 보게 될지 어떨런지는 모르지만 모양새나 내용이나 너무나 마음에 들어 옆에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책이기에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상당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그냥 지 멋대로 감상문을 갈기고 있다.
 
 외관에 대한 감상은 여기서 그만! 너는 너무 외모만을 보고 있잖니?

 "훌륭한 삶을 쓴다는 것은 훌륭한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라는 나는 잘 알지못하는, 하지만 보통씨는 책에서 이 사람들 자주 언급하고 있는, 리튼 스트래치 라는 사람의 문구로 책은 뚜껑을 연다.

 '시작하며, 어린시절, 가족관계, 음식과 이사벨, 기억, 사생활,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본 세상, 남자와 여자, 심리, 결말을 찾아서, 끝내며, 옮긴이의 말'이라는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제목에서 보면 혹시 알랭 드 보통 자신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용을 읽기 전에 제목에서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내용이 보통씨의 자서전은 아니었지만, 일단 전기인 점에서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단지 전기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걸 전기로 분류해야할지, 아니면 보통씨의 에세이로 분류해야할지, 아니면 소설로 해야할지 참 애매하다. 알라딘 서점에서는 이걸 '소설'로 분류하고 있고, 예스24에서도 역시 '소설'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차라리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나을 듯 싶다. 전기와 소설과 에세이의 교집합 선상에 놓여있는 이 책은 사실상 작가 보통씨의 사색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사벨이라는 평범한 한 여자의, 그것도 나이들어 죽음에 임박한 할머니가 아닌, 힘 팔팔 넘치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전기라니! 우리들이 흔히 지니고 있는 전기에 대한 상식을 깨버린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읽어왔던 전기의 공통점은, "1. 죽은 인물이다 2.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잠깐 생각해봐도 이 두 가지 점에서는 벗어날 전기가 없다.  그런데 보통씨의 전기는 이걸 다 깼다. 왜 전기는 죽은 인물이어야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겨야 하느냐는 것이다. 평범한, 아직 인생을 다 살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전기를 쓸 수 있다.

 또 보통은 전기를 쓸 때에는 작가가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통은 새뮤얼 존슨의 말을 빌리기도 하고, 자신의 언어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같이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기술할 수는 없다."(새뮤얼 존슨, p45)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저자와 주인공 사이에 어느 정도 정서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p68)

 "은유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주인공과 잠자리를 같이 해야한다. 전기가 격식에 맞춰 작성된 회고록이나 학술 논문과 구분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전기는 문자로 씌어질 수 없는 생각의 연쇄고리다. 침실의 불빛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를 조사해본 다음에야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려주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p154)

 대개의 전기작가들은 직업적인 전기작가들이고 따라서 여러편의 전기를 씀으로써 책을 내고 밥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한편의 전기를 쓰는데 있어서 전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만한한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다. 우리들이 접하는 전기는 그 인물의 작은 한 단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그 인물과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하면서 함께 생활에서 부대껴야하고 그 과정에서 그 인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일단 인물이 죽은 뒤에 전기를 쓰는 것은 여기선 불가능하다.

 보통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식을 쉽게 깨어버리고 이사벨이라는 여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아주 자연스럽게. 절대 인위적이기도 않고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대단했던 사건들만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처음 자위를 했던 이야기며, 남자와 관계를 맺었던 이야기며, 무슨 음식을 좋아하며 왜 좋아하는지와 같은 아주 시시콜콜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들까지도 보통은 늘어놓고 있다. 마치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기다 라고 말하듯이.

 그러면서도 알랭 드 보통은 전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고, 이사벨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중간중간 풀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이 전기가 아닌 에세이로도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든다. 도대체 이게 소설이야, 에세이야, 전기야! 라고 짜증내지말고 기존의 형식을 과감히 파괴한-일부러 파괴한 것 같지는 않다- 보통씨의 이야기 서술방식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보라. 너무나 사색을 깊이 한 나머지 독자들이 사색할 부분까지도 없애버리는 보통씨. 하지만 그가 깊게 사색한 것을 우리는 눈으로 살펴보며 우리의 머리 속에는 또다른 사색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색은 또다른 사색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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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6-3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들이 사색할 부분까지 없애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 지 알 거 같습니다. '왜 나는 너를'부터 '키스하기 전에'까지 읽는 내내 드 보통씨의 집요함에 치를 떨었거든요 ㅎㅎ..

마늘빵 2005-07-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님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독자의 몫까지도 빼앗아버린다구. 그래도 전 이 사람 참 맘에 듭니다. ^^

야클 2005-08-1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정성스런,그리고 훌륭한 리뷰네요. 잘 읽고 갑니다. 물론 Thanks to도 한방! ^^
 


 제목만 익히 들어왔던, 여러 사람들이 추천했던 작품이다. <천사의 아이들>.

 온통 모르는 배우들뿐인 이 영화는 비록 좋아하는 배우를 눈으로 보며 즐기는 즐거움을 선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눈물 짜내는 드라마. 비록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감동적이고 따뜻한 영화였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사실.

 조니와 새라에게는 두 딸이 있고, 막내 아들 프랭키가 있었지만, 그 아이는 2살때 계단에서 굴러 죽었다. 조니와 새라는 그를 잊지 못하고 항상 가슴에 담아두고 산다. 두딸 크리스티와 아리엘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둘 또한 가슴 속에 프랭키를 담아두고 매일같이 프랭키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대화는 비록 일방적인 메아리에 불과하지만.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의 마약쟁이들이 사는 허름한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 가족. 그 아파트에는 매일같이 괴성을 지르는 우라부락하게 생긴 한 흑인 사내가 살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 대문 밖에 쓰여있는 'keep away'라는 문구는 그를 보지 않은 가족들에게도 섬뜩함을 전해준다.

 미국의 할로윈 데이. 아이들은 집에서 만든 괴상한 복장들을 하고선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그 누구도 나오지 않는다.

 "사탕줄래? 골탕먹을래?" 라는 두 꼬마아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마지막으로 두 꼬마는 '킵 어웨이'라고 쓰인 대문을 쿵쿵 두드리고 안에서 들리는 괴성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열때까지 두드려댄다. 화가 나서 문을 연 험상궂은 흑인사내는 두 귀여운 꼬마 아가씨들을 보자 마음이 누그러지고 셋은 좋은 친구가 된다.

 가슴 속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설리번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고, 산모나 아이 둘 중 하나는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흑인 사내 마테오의 덕담을 믿고선 밀고 나간다. 새라가 병원에 입원하고, 마테오는 몸이 안좋아 역시 병원에 입원하고.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마테오는 죽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병원비는 마테오라는 이름으로 이미 지불되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두 꼬마 여자아이들의 연기다. 나이 답지 않게 사려깊고 성숙한 두 아이는 엄마 아빠가 그들의 가슴 속에서 프랭키를 지우는데 도움을 준다. 아픔을 가지고 있고 가진 것 없고 사는게 항상 힘겨운 가족에게 두 아이는 천사와 같은 존재다. 감동의 드라마를 느끼고 싶다면 <천사의 아이들>을 추.천.

 

 

참 영화를 다 보고 이 영화가 왜 영국과 이란의 합작영화인지가 궁금해졌다. 이란인이 등장했었나...?



요 사진은 두 꼬마천사들.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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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분의 러닝타음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요즘 웬만한 영화는 죄다 백분을 넘기는 상황에 짧은 러닝 타임으로 긴박한 긴장과 공포를 선사하리라고 믿었던 영화는 기대이하의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었다. 더운 여름날의 공포는커녕 짜증만 더해졌다.

 송일국과 장신영이라는 괜찮은 배우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허술함과 밋밋함으로 그저그런 영화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다. 김동빈 이라는 감독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나와 대우조선에서 일하다 충무로에 입성했다고 하는데 대학 시절 영화동아리에서 했던 활동을 바탕으로 감독신고를 하기에는 그는 너무도 경험이 부족했고 아이디어가 없었다.

 밤 11시 50분의 심야열차의 비극. 과거에 일어났던 대형열차사고로 죽은  귀신들이 이 기차에 타고 있다. 이 기차는 오늘이 마지막 운행.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며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그저 과거에 열차사고가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또한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고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어이가 없을 밖에. 공포영화로 분류되지만 공포도 선사해주지 못하는 공포영화. 그냥 황당할 뿐이다.

 열차 바닥을 뚫고 등장하는 여자귀신은 오히려 웃기다. 이건 영화 주온이나 그루지를 보는 듯 했다. 최근 본 영화 <그루지>에서는 어느 한 건물의 복도 문 밑으로 통과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있었고, <레드아이>의 그 장면은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물론 <레드아이>가 더 먼저였고, <그루지>가 더 나중이었지만, <그루지>의 모태가 된 <주온>이 <레드아이>보다 우선한다는 점에서 나의 이 비난은 정당하다. 물론 감독이 그걸 카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왜 '레드아이'일까. 이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빨간눈' 이미 죽은 사람들의 눈이 빨간색이었던가. 모르겠다. 별로 보여주는 것도 없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영화. 너무 혹평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이 영화가 개봉됐던 당시에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이 영화를 포기했던건 역시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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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사려 깊고 충실한 화자를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의 실수, 과오, 회피 그리고 편법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쓸모 면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확실한 존재들일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동질성만이 있을 뿐이다. 가식과 혐오를 벗어던지고 생각해보면 좋거나 나쁘거나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새뮤얼 존슨)-22쪽

"기존의 모든 전기는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인공이 어른이 돼 쓴 시나 산문에서 끄집어낸 우화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모 또는 그 반대의 친척들에 관한 추억,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얻어낸 에피소드 같은 것으로 치장돼 있다." -35쪽

"일반적인 전기에는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작가에 의해 기술된 주인공의 삶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작가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름뿐이다." -38쪽

"그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같이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살아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기술할 수는 없다."(새뮤얼 존슨)-45쪽

"타인에 대한 명료한 첫인상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무지함이 아닌 앎의 축적이라는 것을, 우리의 선험적 도식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길이다."-57쪽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58쪽

"전기의 고결함을 유지하는 것과 인간적 집착이라는 원초적인 영역을 서로 뒤섞어서는 안된다. 인간적 집착과 전기적 충동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완벽하게 알고 싶다는 충동이다."

"진정한 전기가 되려면 저자와 주인공 사이에 어느 정도 정서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68쪽

"당신이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들을 뒤쫓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홈즈)

"전기 작가들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주인공들에게 집착한다. 대개 그들은 주인공을 연구 주제로 택하는데, 그건 개인적인 감정의 영역에 기인한다. 처음부터 주인공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프로이트)-68쪽

"음식은 주인공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을 철학적 사유의 재료로 삼지는 않으며, 즐기지도 않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면 먹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배고픔을 느낀다. 그런데도 아침과 점심식사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우리의 욕구는 작품 속에 반영되지 않는다."(E.M. 포스터)-113쪽

"우리는 사적으로는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공적으로는 사소하게 치부해버리는 것들 속에서 한 개인의 본질을 찾는 경향이 있다."-114쪽

"누군가에게 과거를 떠올려보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총을 겨눈 채 재채기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순수한 의지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억도 아니다."

"과거 속 기억과의 진정한 충돌은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과거 속 장면이 우리 앞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속의 기억이 아니라 시간의 바깥에 있는 어떤 주머니 속에서 막 꺼낸 것 같은 시간이다. 진정한 기억은 자신과 현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녹여버린다."-127쪽

"기억이란 누군가의 질문에 의해 억지로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다. 어느 기차역 카페에서 풍겨오는 샌드위치 냄새를 맡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오래전으로 돌아가는 우연한 조우 같은 것이다."-128쪽

"기억은 스스로 단계를 밟아나가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불친절하게 불쑥 튀어나오고, 어떤 우연한 주제를 여는 서막일 뿐이다.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며 튀겨지는 요리가 아니라 다시 데운 음식이다."-130쪽

"은유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주인공과 잠자리를 같이 해야한다. 전기가 격식에 맞춰 작성된 회고록이나 학술 논문과 구분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전기는 문자로 씌어질 수 없는 생각의 연쇄고리다. 침실의 불빛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를 조사해본 다음에야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임을 알려주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154쪽

"섹스가 친밀함의 상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섹스 자체가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섹스가 상징하고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깨뜨릴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좀더 험난한 과정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나누는 것은, 마치 책을 사두고 그것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155쪽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 사랑할 가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 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덜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우리는 인간에게 완전히 속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되는 우리 성격의 어떤 측면들을 비밀이라고 부른다. 비밀은 우리가 가진 고유함 중에서 어둡고 창피한 일면이다. 사회적으로 예상될 수 있는 비밀의 효과란 천재나 영웅주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모욕감을 꿋꿋이 견뎌야 하는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164쪽

"죽음은 잠재적 대안들의 적이다. 죽음은, 외부적으로 보면 의미심장한 것들도 내부에서 목격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또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수보다 더 많은 플롯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214쪽

"우리는 모두 같은 요인들로 감정이 촉발된다. 모두 같은 오류들을 범하고, 모두가 희망에 의해 생기를 되찾고, 위험에 의해 가로막히고 욕망에 뒤얽히며 환락에 유혹된다."(새뮤얼 존슨)-231쪽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에 관한 즉각적인 경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생각도 형성할 수 없다. 마치 그들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느껴야 한다는 인식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편안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의 '오감'으로는 그가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오로지 상상에 의한 것으로, 그의 감각 작용에 대한 직시만을 형성할 뿐이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그의 상황에 처하고 그와 똑같은 고통들을 겪고 있다고 인식한다."(애덤스미스 <도덕감정론>)-232쪽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경험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접 경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의 상상이 말라가고 있을 때 은유가 등장한다."-233쪽

"훌륭한 전기를 쓰는 기술이란 멈추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다."-293쪽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은 없지만, 최소한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루소 <고백록>)-302쪽

"사람에 대해 과장된 찬사만을 쓴다면 약력은 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것을 쓰고 있다면 약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새뮤얼 존슨)-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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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5-06-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보구 여행의 기술 읽고 있는데요,...와...감동 입니다.

마늘빵 2005-06-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감동입니다. ^^; 줄친데가 많아서 계속 수정하면서 덧붙이고 있어요. 전 이거 다 보고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볼거에요. <여행의 기술>은 아직 안샀는데.

미미달 2005-06-2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나요?
책 자체가 무지 예뻐서 끌리는데.. ^ㅡ^

마늘빵 2005-06-2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거 재밌어요. 거의 다 읽었답니다. 마저 밑줄긋기 채워넣을게요. 너무 많아서 천천히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