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초콜렛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라우라 에스퀴벨 지음, 박경범 옮김 / 울림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얼핏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과 표지를 본 기억이 있었던 책이다. 그때 내 눈에 비쳤던 책은 민음사에서 출판된 것인데 정작 난 민음사 전에 울림사에서 나왔던 구판을 접하게 되었다. 돈을 주고 책을 샀다면 최신 완역판인 민음사 것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책이기에 구판이지만 그냥 읽었다. 크게 관심있었던 책은 아니었으므로.

 이 책은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퀴벨의 작품이다. 최근 소설을 위시한 문학작품에서 남미열풍이 불면서 아마도 주목받게 된 책이 아닌가 싶은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이 작가의 처녀작이라 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전세계 20여개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사실 책은 다 읽은 지금 내게는 그다지 머리를 깨우치게도 가슴을 울리게도 하지 않는 그런저런 작품들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영화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뿐 영화가 언제 나왔는지 배우가 누구였는지조차 모른다. 단지 책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라면 아마도 베스트셀러였다는 점은 사실로 믿어도 될 듯 한데 내게는 그런 감동이 오지는 않았다는 것만이 현재 확실한 점.

 소설에는 무지한지라 순전히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나의 느낌만을 적어볼까 한다. 그다지 많은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고 소설이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나로서 이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는 바는 오로지 나의 주관적 느낌뿐이다.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다. 왜냐면 막내딸이기 때문에. 막내딸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어머니 옆에서 그녀를 보살펴야만 한다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도,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 정말 이런 풍습이 멕시코 어느 마을에는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소설의 시작이 내게는 쌩뚱맞았다. 작가의 인위적인 설정인가 아니면 실제 멕시코 어느 마을의 풍습인가.

 또 쌩뚱맞은 하나의 설정은, 막내딸을 사랑하는 남자는 곁에서 막내딸을 지켜보기 위해 그녀의 언니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 또한 언니도 이를 알고 있다. 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인가. 언니는 동생을 미워할 수 밖에 없다.

 위와 같은 설정 이외에도 소설의 줄거리는 내게 현실적이지 않다라는 느낌을 전해주지만 주어진 운명 속에서 사랑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꽤 진실하게 다가왔다. 지금껏 그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고 이 금기를 깬다. 그리고 언니의 아이, 막내딸이 태어났을 때, 그 어린아기에게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져버린 운명에 분노하며 이 아기가 나중에 자유롭게 살 수 있게 육아나 교육면에서 도움을 준다.

 소설에서 또한 두드러지는 부분은 각각의 상황에서 항상 요리하는 과정을 집어넣음으로써 맞물려 비유한다는 점이다. 그닥 요리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내게는 그런 것들이 별 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아마도 이 책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분은 그런 부분이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언제나 감동은 주관적이고 내게는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 확실할 뿐.

 구판의 번역자는 후기에서 그렇게 말했다. 멕시코의 음식문화에 대한 부분이 우리네 것과는 사뭇 달라 완역하지 않았노라고. 아마도 번역자도 나와 같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듯 한데 그렇더라도 번역자의 태도로서는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일단 완역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네 것과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우리네와 다르다고 해서 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수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민음사의 완역본을 다시 한번 볼까 생각중이다. 그때 다시 읽으면 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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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6-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아프락사스님이 남자분이라서 별 감흥이 없었나봐요. 솔직히 이 책 순정만화 같았거든요. ^^ 그리고, 민음사는 번역이 정말 훌륭했었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인 음식쪽을 완역하지 않았다니, 울림사 너무 했다 싶네요. ^^;

마늘빵 2005-06-0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제가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한가봅니다. 민음사 것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marine 2005-06-09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저도 아프락사스님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저도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감동이 적었을까요? 논리적으로 너무 개연성이 없는 만화식 전개가 맘에 안 들더라구요 (전 민음사 걸로 읽음) 그런데 책을 본 후 영화를 보니까 훨씬 이해가 쉽더군요 상상만 하던 장면들이 영상으로 펼쳐지니까 참 재밌더라구요 만약 영화만 봤다면 아주 재미없었을텐데, 함께 보니까 참 좋았어요

마늘빵 2005-06-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만 그런건 아니었군요. 저도 요리도 잘 모르고, 너무 만화같더라구요. 순정만화보는 듯함. 비현실적인 전개도 그렇고. 영화를 나중에 봐야겠네요. ^^

marine 2005-06-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영화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비헐리우드 영화는 확실히 화면 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덜 세련된 느낌이예요 다만 책과 거의 100% 똑같기 때문에 (원래는 시나리오로 쓴 걸 소설로 출판했다네요) 책에 나온 장면들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영화로 보니까 훨씬 더 개연성도 있어 보이고... 그런데 책을 안 보고 영화 보는 사람은 과연 주인공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더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 - 김혜니 교수 에센스 세계문학 1
토마스 불핀치 지음, 김혜니 옮김 / 타임기획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신화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어린이용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가 나오고 붐이 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어렵지도 않다.

 우리네 신화격인 <삼국유사>는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서양사상, 서양문화의 기원인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각광을 받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어쨌든 서양을 이해하는데 있어 기본이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많은 이들이 친숙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인 듯 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보통 토마스 불핀치가 쓴 책이 가장 많이 읽힌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도 대부분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번역하거나 짜집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혜니 교수의 에센스 세계문학의 시리즈 1권인 <그리스 로마 신화>도 역시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토대로 편역한 것이다. 이전에 <신곡>을 언급하면서도 고전 축약본에 대한 생각을 밝혔지만 나는 고전을 축약해서 내놓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축약함으로써 고전의 묘미를 다 살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바가 없겠지만 사실 두꺼운 원전을 번역하면서 이미 한번의 오류를, 그리고 완역본을 축약시키면서 또 한번의 오류를 범하며 고전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임기획의 <그리스 로마 신화> 또한 완역본의 축약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무수히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제우스, 헤라, 프로메테우스, 아폴론, 다프네, 바우키스, 나르키소스, 에로스, 프시케, 시지포스, 안티고네 등 이런 식의 이름이 익숙치 않은 우리에게는 이들이 누구인지 일일히 다 기억해내기 힘들다. 물론 자꾸 자꾸 보면 구분이 되겠지만 처음에는 정신이 없다. 오히려 원전 완역본을 읽는 것보다 만화로 먼저 접한 아이들이 신의 이름과 특성을 더 잘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재미와 흥미를 느낀 아이들은 마치 포켓몬스터 만화에 나오는 포켓몬의 이름과 성격을 다 파악하고 있듯 그리스 로마 신화도 그런 만화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들이 재밌고 쉽기 때문에 책은 금방 읽힌다. 문제는 나중에 기억해내려고 하면 너무 많은 신들의 경우를 본지라 기억하기 쉽지 않다는 점. 내가 아직 그리스 로마 신화에 친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책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흑백의 삽화들은 읽으면서 흥미를 더욱 유발시킨다. 읽으며 상상한 장면들과 삽입된 그림들을 보면서 비교도 해보며. 

 가급적 완역본을 읽었으면 좋겠지만 단기간 내에 고전을 훑어보려는 사람들에겐 타임기획 시리즈 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고전은 천천히 뜯어보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타임기획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본 것은 완역본을 읽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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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를 論한다 -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
박효종 외 지음 / 바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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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란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지만, 그것은 깔끔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것은 대체로 현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지닌 태도의 복합체를 뜻한다. 그래서 보수란 말은 엄밀한 뜻에서의 보수주의와 그리 큰 관련성이 없고 그 두 말은 구별되어 쓰여야 한다." (복거일)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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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를 論한다 -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
박효종 외 지음 / 바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의 이념은 보수주의이고, 또한 보수주의자가 한국에 제일 많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진영에서의 보수에 대한 논의는 사실 전무했었다. 반면 소수의 진보주의자들은 진보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 나갔고 흔히 진보주의 인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끼리의 진보에 대한 설전도 많이 오가며 서로 물어뜯는 형국도 종종 보여줬다. 그래서 어쩌면 진보주의자는 적으나 진보가 마치 한국의 주도세력인 것처럼 보여졌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엄연히 우리사회에 진보주의자는 극히 드물고 진보라 생각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나 또한 포함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말하지만 가끔 나는 내가 보수주의자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까.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라는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수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책은 아마도 처음으로 보수주의자라 칭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보수에 대해 성찰해본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보수를 말하는 보수주의 진영의 인사로 이름이 거론된 이들은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박효종 교수. 그는 민주화된 이 시대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국민윤리학과'라는 이상한 학과의 교수이기도 하며, 역시 국민을 교육시키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일보에 꾸준히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또한 그의 이름이 유명한 분야는 중등 임용시험이다. 그는 중등 도덕윤리교과 임용시험 출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의 책을 보지 않고는 시험을 볼 수조차 없다고 한다. 한국의 중등 도덕윤리교사들이 그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두번째로 이름을 내놓은 사람은 복거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익숙한 인물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진영의 대표적인 인사이며, 영어공용화론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대단한 내공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유명한 소설가이다. 또한 한국의 지식인 이념지도에서 비판적 자유진영에 속하는 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씨가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고 한나라당에서 유일하게 내가 괜찮게 보고 있는 인물이다. 예전에는 지금 열린우리당에 몸을 담고 있는 이부영 의원을 한나라당에서 유심히 바라볼 유일한 인물로 보고 있었는데 그가 열린우리당으로 옮기고 난 뒤에는 원희룡만이 지켜볼 만한 인물로 남아있다.

 네번째는 이한우. 조선일보 기자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인물로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다. 책도 무쟈게 써댔다.

 다섯번째로 김정호. 이 인물은 사실 처음 본다. 자유기업원 원장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름은 처음 접하고 대외적인 행보를 자제하는 인물인 듯 하다. 내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섯번째 함재봉. 어디서 들어본 거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인물. 연세대 정외과 교수라고 하는데 별로 관심없다.

 마지막으로 정성환. 서울대 국문과 학부 졸업생이고, 대학 때 <데일리안>이라는 인터넷 신문의 기자였단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아마도 '서울대'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갓 학부를 졸업한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할 만한 곳은 아무데도 없으니깐. 

 필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 간략한 소개가 끝났다. 책의 전체적인 부분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의 진보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참 못마땅하다.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은 결국 자기들끼리 물어뜯으라는 건데 자기들끼리 물어뜯기는커녕 상대 진영에 대해 물어뜯기를 시도하고 있으니 이 책은 책 제목과 글 내용이 상반되고 있다. 주제를 줬는데 논점일탈했으니 논술고사 빵점이다.

 본래 책을 집필하자는 의도는 좋았는데 그 필진들이 영 아니올시다 이다. 하긴 보수진영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써야하니 이 사람들 아니면 쓸 사람도 없을 터인데 그 대표자들이 논점일탈을 해버렸으니 뭐 볼 장 다 봤다고 해야겠다.

 그래도 그중에서 괜찮은 글을 쓴 사람으로는 복거일과 원희룡을 들 수 있다. 이한우나 김정호, 함재봉 같은 이들은 결론은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으로 내리면서도 근거로 삼고 있는 내용들이 죄다 보수주의자의 진보비판이라는 점에서 근거부실이다.

 일단 안된 글의 유형을 먼저 살펴보자. 그래도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이라고 삼고 있는 근거라는 게 우리는 진보진영처럼 선전을 잘 하지도 못했고 잘 뭉치지도 못했다 라는 건데 이건 사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비판은 아니다. 물론 비판은 비판이지. 진보를 본받아 우리도 변신을 꽤해 성공해보자 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비판은 비판인데 발전적인 비판이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겠다.

 그중에서도 김정호라는 잘모르는 이 인물이 펼치는 논리는 가히 못봐주겠다. 

 "진보진영은 외국의 것들에 대한 폐쇄성도 그러내고 있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는 안되고 한국의 영화는 된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한국의 영화 소비자들이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한국인은 한국의 영화인이 만든 것만 봐야 한다는 투이다."

 "쌀도 그렇지 않은가. 진보주의자들은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한다. 한국 사람은 한국 농민이 재배한 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만한 차별이 어디 있는가."

 등등 많이 살펴봐야 타자치고 있는 내 손만 아프다. 김정호는 그의 글 전체에서 계속 이런 냄새를 풍기며 논리를 펼치고 있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의도생성의 오류' '의도확대의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은 한국 농민이 재배한 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는 저들의 없는 의도를 아예 만들어낸 대표적인 부분이다. 그의 글 중 어느 한 곳만을 따와 이렇게 비판해봤지만 그의 글 전반에 걸쳐 이와 같은 논리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일단 이와 같은 글의 내용은 처음 지적한 바와 같이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점일탈임과 동시에 각종 오류 투성이로 점철되어 있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또 다른 이들의 글 또한 더 살펴봐야 내 팔만 아프고, 그중 괜찮은 이들이 복거일과 원희룡이다. 박효종 또한 봐야 눈만 아프다. 그는 아직 박정희과 전두환 시절을 살고 있는 인물이고, 여전히 국민을 가르쳐 교육시켜야 한다는 시각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복거일이 괜찮은 것은, 그가 보수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현재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는데, 그 내용들이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이나 진보진영의 선전전을 본받자는 투가 아니라 정말로 보수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몇몇 인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사고 후회를 하지 않은건 순전히 복거일 때문이다.

 나의 복거일에 대한 옹호에 대해 못마땅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보수주의자 중에서 복거일에 대해서는 좀 특별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정부분 자유주의자 고종석씨 때문으로 사료된다. 나는 고종석씨를 좋아하고, 고종석씨는 복거일에 대해 괜찮게 생각하니 나 또한 복씨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복씨에 대한 '한번 더'의 배려를 제외하더라도 이 책에서 건질만한 것은 복거일의 글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거일의 글은 매우 짧지만 체계적이다. 보수를 정의내리고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드는데 첫째 현존하는 체제를 지지하고 변호하는 일은 어느 사회서나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체제를 옹호하기보다 비판하기가 쉽기 때문에 진보주의가 더 우세한 영향력을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두번째 현 체제에 대한 태도들을 변별하는 일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일반적 관행에 내재하는 편향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보수라는 말과 진보라는 말이 가진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보수는 뭔가 안좋은 것 같고, 진보는 뭔가 좋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말로 이도 일리는 있다. 

 셋째, 자본주의의 본질과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큰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 넷째,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다섯째, 우리사회의 거센 민족주의가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왔다. 여섯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까닭은 보수의 핵심적 집단들이 모두 과거의 잘못들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일 터이다.

 이와 같은 말들로 보수가 현재 부진한 이유에 대해 진보를 거들먹거리지 않으면서 분석해냈다고 볼 수 있다. 대략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보수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 체제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우리는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둘째, 우리 시민들이 자본주의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애써야 한다.
 셋째, 우리는 민족주의가 너무 극단적인 모습으로 분출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넷째, 어떤 이념이나 체제는 궁극적으로 그것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판별된다.

 
 그러나 복거일에게서도 드러나는 헛점은 가장 중요한 보수진영에 대한 처절한 비판이 없다는 점이다. 보수가 부진한 이유를 살펴보자는 것이 아니다. 진보가 진보를 물어뜯듯이 보수도 보수를 물어뜯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런게 없다. 그런점에서는 복거일도 다른 이들과 다를바는 없다.

 원희룡의 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그도 역시 보수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없다는 점에서는 이 책의 부제와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에 복거일과 원희룡이 그나마 낫다고 말 한 것은 다른 이들이 진보를 물어뜯으며 보수진영의 혁신을 꾀하려 하는 반면, 이들은 상대진영을 뜯지 않고 보수에 대한 성찰을 한다는 점에서 좀 낫다는 말이었다. 물론 원희룡의 글에서도 '진보의 보수비판은 정당한가'라는 부분을 통해 진보를 비판하지만 애교있게 봐줄만 한 부분이다.

 결국 글쓴이들 모두가 '진정한 보수비판'이라는 점에서는 별로 보여주는 바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이 이런 책을 낸 것은 책의 어떤 이들이 말하듯 진보진영의 선전전을 본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 책을 선전전의 한 유형으로 삼아 진보진영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보수비판은 여전히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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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5-05-3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이 중에 제대로 정신 틀어박힌 놈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죠. 이한우, 박효종, 함재봉, 우와, 희대의 똘아이들이 한데 모였군요. ㅋㅋ 근데 복거일이 교수에요?

마늘빵 2005-05-31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넵 조갑제나 박지만도 가세했으면 딱이었을텐데

마늘빵 2005-05-31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론 복거일 어느대학에 국문과 교수로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노부후사 2005-05-3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여... 복거일이 교수라는 말은 처음 들어서...

마늘빵 2005-05-3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a 착각했나? ^^
 
신곡 - 김혜니 교수 에센스 세계문학 8
단테 지음, 김혜니 옮김 / 타임기획 / 1999년 10월
절판


'슬픔의 나라로 가려는 사람,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 파멸의 사람들 속에 끼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거쳐 가라. 나는 무한으로 이어지니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제3곡 주께 충성도 반역도 하지 않은 자들 - 지옥의 문 문구)-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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