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을 비롯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흘깃흘깃 많이 봐놓았던지라 마치 예전에 봤던 영화를 또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쩜 그렇게도 어디선가 다 한번씩은 봤던 장면들일까.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애초 하지 않았다. 뭔가 구성이 어설프고 별 내용 없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베트남 전쟁 막바지 최태인 중위를 포함한 9명의 군인들은 알 포인트에서 실종된 부대원들의 증거물을 찾아 돌아가야하는 임무를 받았다. 주어진 기간은 7일. 영화는 7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정해놓음으로써 주어진 시간에 도달하기까지의 긴박감을 설정한다.

 알 포인트는 실제 베트남의 어느 한 지역의 이름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 편의상 군부대에서 특정 지역을 A, B, C, D ... 순으로 지정해놓고 이를 알파, 베타 등으로 지칭하는데 알파벳 R에 걸린 지점이 알-포인트였고, 이때의 용어는 로미오가 된다. 그래서 알포인트는 로미오 포인트라는 말과 동일하다.

 출발할 때 9명, 도착하니 10명. 이 설정은 좀 웃긴다. 출발할 때 자기들이 몇명인지도 모른채 출발하고 도착해서 10명인지도 몰랐다니.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치고는 뭔가 많이 어설프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뭔가 어설프다 싶을 정도의 구성의 치밀함이 떨어지고 상황설정도 인위적이다. 사실 공수창 감독은 신인도 아니다. 이미 영화 <텔미썸씽>에서 각본을 맡은 바가 있다. 감독으로는 신인이지만 영화판에서는 그다지 신인도 아니라는 말. 우리가 잘 아는 <텔미썸씽>말고도 다른 작품들에서 한닥거리를 했으니. 하지만 감독으로서 영화를 맡는 것과 각본을 맡는 것은 엄연히 다르긴 하다. 결국 이 영화의 질적 하락을 감독이 초짜라는 점으로 근거를 대야하는가.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그나마의 주목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감우성을 제외하고는 어느 출연진 하나 눈에 띄는 인물이 없고, 별 이름 없는 배우라 할지라도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그런 인물조차 없으니. 저들이 연기를 못하는건지 아니면 시나리오가 너무 어설퍼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는 지극히 인위적인 연기의 냄새가 나고, 마치 연기력 컨테스트에 출전한 연기지망생들이 상황을 부여하고 거기서 연기를 짜내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그닥 무섭지도, 연기가 볼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루하고 짜임새없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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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5-0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면서 실망많이 했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여러 편 쓴 작가 출신이기도 하고 [텔미 썸딩]을 재밌게 보기도 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한 평론을 봤더니, 아프락사스님 말씀처럼 이 영화 저 영화 짜집기 해놓은 거라고 영화제목까지 인용해가며 조목조목 반박해 놨더라구요. 그거 보고 표절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참 무서운 세상이군 했죠^^

마늘빵 2005-05-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 표절시비까지 걸린줄은 몰랐었는데... 그랬군요. 너무 어설프고 작위적인 연기의 냄새가 났어요. 쩝. 별로 무섭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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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쿠야. 영화리뷰를 다 써놓고 날려 버렸다. 엄청나게 길게 썼구만. 이 우울함이여. 누굴 탓하랴. 훌쩍. 다시 똑같이 쓸 수는 없고 짜증나더라도 써보기는 하겠지만 아까와 같은 글은 나오지 않을 듯 싶구나. 생각의 흐름을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감독 김지운. 나는 그를 주목한다. 어떤 감독에게는 그의 냄새가 풍긴다. 풍기는 정도가 아니라 심하게 진동한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과 복수 삼부작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그러하고, 싸이코로 간주되는 김기덕 감독이 그러하고, 지금 말하는 김지운 감독이 그러하다.

 또 어떤 감독은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 관심영역에서 한층 벗어난 이들도 있다. 그들을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위의 사람들에 비해 강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이나 강우석 감독이 그렇다. 사실 강우석 감독의 경우는 좀 애매하다. 자기만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의 감독들같이 심하게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허진호, 박찬욱, 김기덕, 김지운 같은 감독들은 강아지가 길거리에서 오줌싸며 자신의 활동영역을 표시하듯 자기 영역임을 콧구멍을 자극하는 진한 냄새를 풍긴다.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으로 알려진 김지운 감독은 이렇다 할 대단한 상업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고만고만한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영화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향수가 난다.

 혹자는 그의 영화를 향해 '느와르'라고 말하지만, 난 그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고, 오히려 엽기, 잔혹, 분노, 파멸, 비장미, 욕구, 고통과 같은 단어로 설명하고 싶어진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도 이와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것과 김지운의 그것은 색깔이 다르다. 박찬욱은 진하고 거친 핏빛이라면 김지운의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핏빛이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 기막힌 멘트. 이미 넌 나를 사로잡았다. 이미 잔뜩 기대를 품게 만들었으니 책임져라. 김지운.

 모던한 건축양식의 건물과 장식물. 깔끔하게 차려입은 호텔 종업원들. 와인 한잔. 소곤소곤 대화. 이 숨막힐 듯한 정적인 호수에 물 한방울 던져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말이 없는 호수. 기막힌 부조화. 역설.

 어느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멍한 나의 시선 속에서 내 머리는 장자의 '나비의 꿈'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만 그런가? 다른 이들에게 묻지 않았으니 그들이 나비의 꿈을 떠올렸는지 어땠는지는 모른다. 이는 마치 <매트릭스>를 보고서 멍한 시선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떠올렸던 때와 같다. 그리고 매트릭스에 대한 철학자들의 수많은 해석이 있었고, 혹자는 나와 같이 이데아론을 들먹이기도 혹자는 불교를 들먹이기도 혹자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들먹이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선우의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선우의 꿈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선우의 꿈이고 어디까지가 선우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시작과 끝은 없다. 아니 무수히 많다.

 보는 이에 따라 선우의 꿈은 여기가 될 수도 있고, 저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선우가 희수의 연주를 보며 눈을 감는 순간 선우의 꿈이 시작되는 걸로 봤지만, 어떤 이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이는 감독의 실수일까 아니면 감독의 의도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닐까.

 그건 중요치 않다. 사물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듯 영화에 대한 해석도 다양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옳다 어떤 것이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다. 이는 양비론고 양시론도 아니다. 다만 경계가 없을 뿐이다.

 장자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그때는 자기가 장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꿈에서 깨어나서야 비로소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깨어나  생각하니 지금이야말로 나비가 꿈을 꾸어 그 속에서 장자가 되어 살아가면서 자기가 나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비가 되는 꿈. 나비가 꾸는 꿈.

 꿈이 꿈인것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꿈에서 깨어난 것으로 다시 꿈꾸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깸에서 한번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를 대각(큰 깨달음)이라 한다.

 세계는 모든 사물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뉘어져 독립해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서로 얽히고 설키어 있으며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 될 수 있다. 세계는 개별 사물이 제각기 각각의 독특성과 함께 하나라는 전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가 될 수 있는 不二性의 세계다.

 나는 지금 꿈 속에서 사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면서 아 이런 이곳이 가상세계인가 실제세계인가 궁금해진다. 만약 내가 꿈 속에 있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아둥바둥 살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의 파장이 한도 끝도 없다.

어느날 한밤중 제자가 잠에서 깨어 울고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니요.."
"그러면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니요... 너무도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끝은 또다시 알 수 없는 기막힌 멘트를 날리며 멋드러짐을 뽐낸다. 끝내 총알세례를 받으면서도 죽음을 인정하기 싫은지 끝까지 숨붙어있는 선우. 생뚱맞게 등장한 에릭의 한 방으로 생을 마감한다.
 
 멋들어지게 죽음을 맞이하는 선우가 꿈 속의 그일까, 아니면 깨끗하게 차려입은 호텔 짱의 모습이 꿈 속의 그일까. 어느 것이 선우의 달콤한 꿈일까, 어느 것이 선우의 달콤한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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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4-23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콤한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맨날 이상한 꿈만 꾼다는..^^ 제가 본 영화를 님도 보셨다니 반가워서 인사드려요

마늘빵 2005-04-2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오늘 밤 달콤한 꿈 꾸세요. 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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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휴먼 코미디!? <역전의 명수>를 본 소감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난 코믹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 은근히 코믹 영화를 많이 본다. 코믹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간미 물씬 풍겨지는 휴먼 코미디와 그냥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가 그것이다. 전자에는 최근 본 <미스터 히치>나 <신라의 달밤><가문의 영광> 정도를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고, 후자에는 <여고생 시집가기> 정도를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코믹 영화를 본 다음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당연하고,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밀려드는 후회감으로 뒤끝이 개운치 않다. 하지만 전자의 코미디는 보고나면  후련하고 산뜻하다.

 <역전의 명수>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웃고 즐기고 감동받을 정도면 충분했다. 내 마음은 그 정도만을 요구하고 있었고 충족시켰다.

 영화제목 '역전의 명수'는 1. 역전앞(앞 前자와 '앞'이 중복 사용되었다는 동어반복의 오류임에도 일상적으로 이렇게 사용한다)을 지키는 명수 2. 인생역전한 명수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다. 전교 1등만 하는 현수는 결국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가 된다. 반면 쌍둥이 형 명수는 중학교 때 이미 주먹으로 학교를 정리하고 퇴학당한 뒤에는 군산역 뒷골목 창녀촌을 책임진다. 그곳의 여자들은 명수의 보호아래 일(?)을 하고, 명수는 그 중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가슴에 청테이프 붙인 년은 니가 처음이다"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두드려맞던 날 명수는 그녀를 보호해주고 군산 앞바다에서 그녀는 명수에게 곱게 간직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던 한쪽 가슴을 만지게 해준다.

 현수. 공부 엄청나게 잘 하고 수능끝나고 여자친구와 섹스 10번째 하던 날 명수를 시켜 자기 행세를 하게 해 그녀를 버리고 서울로 떠난다. 서울대에서 만난 순희와 사귀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몰락하자 가차없이 버린다. 훗날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꼬일대로 꼬여 더 이상 꼬일 것이 없는 현수와 인생 잘 풀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명수. 공부 못하지만 싸가지 있는 현수와 공부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명수.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현수의 경우를 최악의 삶으로 간주한다. 공부 엄청 잘해 대단한 사회적 위치를 누리고 있지만 비도덕적이고 싸가지 없는 경우를 사회악으로 친다. 이건 공부 못하고 싸가지 없는 경우보다 더 심하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에 그다지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자는 존재자체만으로 대단한 악을 행한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의 싸가지는 오로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으로 환원된다.

 현수를 비판하는 나는 그다지 누릴만한 사회적 지위나 명예, 부도 없기에 싸가지 없는 인간이어도 사회에 큰 해악이 되지는 않을 듯 싶다. 내가 얼마나 싸가지 있는 인간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엔딩은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유쾌하다. 그 못된 현수가 갑자기 착하게 변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인성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말야.

 참. 정준호가 실제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다지 공부를 한 축에는 속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범생타입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가문의 영광>에 이어 서울대 법대생으로 두번이나 나왔다는 건 그의 이미지에는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점잖고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그를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연예인 X파일에서조차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를 외쳤던 에이스 침대 광고의 그와 같은 이미지로 늙을 위인이라 했다. 두 영화 이외에도 정준호는 대체로 차분하고 이성적이고 푸근한 역할만을 해왔다. 실제 그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튀지도 가쉽거리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걸로 보아 그의 실제 모습도 영화 속의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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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4-22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도 낫고 시간도 좀 여유가 생기셨나봐요^^

마늘빵 2005-04-2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기도 낫고 연구소 교육도 이제 오전만 한다고 해서 시간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래도 서재달인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부리 2005-04-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미스터 히치 오늘 봤습니다. 재밌더군요. 신석기 블루스 이래 우리나라 코믹을 보는 데 망설임이 많아졌습니다. 이건 재밌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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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볼 만한 영화는 모두 봐버려 더이상 볼 영화가 없는 시점. 그래도 발길은 영화관으로 향한다. 어디보자. 썩 맘에 드는 영화는 없지만 봐도 후회는 안할 듯 싶다 싶을 정도의 영화가 하나 눈에 띈다. <블랙아웃>은 그렇게 보게 되었다.

정신의학적 용어로 '일시적인 기억현상'을 뜻하는 '블랙아웃'. 영화 속 모든 사건은 여주인공 제시카(에슐리 쥬드)의 간밤의 기억상실에서 비롯된다. 그녀와 하루밤을 지낸 남성들이 하나둘씩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되어 나타나고 모두들 그녀를 용의자로 몰아가는데...

1968년생으로 나보다 딱 11살 많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그다지 성공한 작품은 없다. <하이크라임> <산드라 블록의 행복한 비밀> <프리다> <썸원 라이크 유> 등 들어봤음직 하면서도 그다지 나의 기억창고에 들어있지 않은 리스트들은 이를 증명한다. 물론 내가 보지 않은 영화라 해서 다른 이들 또한 보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무리지만. 유일하게 <히트>만이 눈에 들어오지만 여기서 그녀가 나왔던가 하는 의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블랙아웃>에서 그녀는 능력있는 강력반 형사이면서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개방적인(?) 여성이다. 하루밤 섹스가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녀는 병적이라 할만큼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남성들과 섹스를 즐긴다. 얼마나 심할 정도면 영화 중 바텐더로 나오는 할아비가 그녀를 향해 "난 당신이 창녀인줄 알았수"라는 멘트를 던졌겠는가.

영화는 범인색출에 있어 한번의 반전을 던져주지만 또다른 반전이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는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아 이 허무함이여. 역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고 그다지 실망시키지 않았지만 그다지 기대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단지 애슐리 쥬드와 사무엘 잭슨이 나온다는 이유로 봤던 영화. 나중에 비디오로 즐겼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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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
서울교육대학 철학연구동문회 엮음, 이초식 감수 / 서광사 / 198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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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에 출간된 책으로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간혹 헌책방 어딘가를 드나들런지는 모르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도 서울의 대형서점에서도 이 책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4년간 나 혼자만 머리 속에서 대화하고 사색하는 '혼자만의 철학'을 해온 나는 철학교육연구소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철학을 접하고는 굉장한 충격과 희열감을 느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구나. 머리 속으로는 언제나 이런 교육을 꿈꿔왔었다. 막연하게. 그러나 내가 머리 속에서 그려왔던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은 철학교육연구소의 교육이 가능하게 한 일종의 지침서, 매뉴얼 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 책의 원본은 미국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인 아동철학개발원 IAPC(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Philosophy for Children)의 이론적 배경과 교수방법을 다룬 책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서울교대 철학연구동문회 출신들이 모여 함께 번역하고 엮어내고 우리나라 철학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신 이초식 교수의 감수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이것이다.

 어린이와 철학을 한다라고 하면(어린이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린이가 무슨 철학을 하느냐며 그 발상부터 의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 어린이도 철학이 가능하다. 다만 교육에 있어서 목표를 달리하면 될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이 다르고, 중학생이 다르고, 고등학생이 다르다.

 7차교육과정의 영향인지 최근들어 독서교육, 토론교육, 논술교육이 붐이다. 다른 학원들은 EBS 강좌 때문에 다 망하는 판에 이상하게 이 분야 만큼은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제대로 된 독서토론, 논술 교육이라면 과열되어도 나쁠 건 없다. 애초 교육이 목표해야할 바는 이런 쪽이어야되지 않았나 생각하니깐 말이다. 아무리 달달외우는 공부 해봐야 정작 지식을 습득하고 재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발전이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거기서 어떤 생각을 이어나가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지식을 재창조해낸다.

 이는 다 자란 성년이나 어느 정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한 청소년 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가능한 교육이다. 그들은 사고가 열려있다. 나이를 먹고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 입시교육을 받으면서 관심분야가 축소되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어린이에에게는 그런 부담감이 없다. 그들은 깊이있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수업 중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며 놀라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어린이를 위한 철학교육>은 이러한 교육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고, 교육방법적 측면에서 이와 같이 접근한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미 절판이 되었지만 누군가가 원본을 완역해 다시 낸다면 많은 관심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제 1부 사려깊은 어린이를 위하여, 제 2부 어린이를 위한 철학의 목적과 방법, 제 3부 교육현장에서의 사고기술의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에 3-4개씩의 작은 장들이 속해있다.

 철학교육이 무엇이고, 철학교육을 왜 해야하는지, 철학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떻게 교육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부록으로 철학소설 해리 스토틀마이어의 발견 1과를 담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편역된 책이라 그 서체가 매끄럽지 않고 옛날식 어투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독서중 거슬리는 점이기는 하지만 이후 개정본이 나오지도 않았고, 누군가 새로 번역하지도 않은 판에 그런 정도의 작은 불편함은 감수하고 읽어야 한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책이 두껍지도 않다. 작정하고 달려들 것 없이 편안하게 쉽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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