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나와 같은 여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한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를 먼저 읽고서 재미를 느끼고 저자의 또다른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자 반갑게 읽어준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실제 저자가 미국에서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고 <다빈치코드>가 후속작이지만-이는 두 책의 출판년도를 확인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빈치코드> 초반에 랭던 교수는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고 하는데 그 위기가 바로 <천사와 악마>에서 살인범을 쫓으며 겪은 경험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빈치코드>의 흥행에 힘입어 <천사와 악마>가 뒤이어 출판되었다. 전작의 유명세를 다른 작품으로까지 이어가려는 출판사의 상업적 속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건 출판사의 잘못이 아니라 출판사의 정당한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를 먼저 번역해 내놨어도 지금과 같은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확답을 하지 못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댄브라운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고 소수의 독자들에게 읽히고 끝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이라는건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두 책의 줄거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앞선 작품과 뒷선 작품을 시간순으로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접어두자. 오히려 나는 <다빈치코드>보다 <천사와 악마>에서 손에 땀을 쥐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나중에 봤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없다.
<천사와 악마>의 원 제목은 Angels & Demons 다. 엔젤은 그렇다 치고 왜 데블이 들어가지 않고 데몬이 들어갔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데몬과 데블의 차이점은 뭘까? 사전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데몬은 데블과 같이 악마, 악귀, 귀신이라는 의미이지만 세밀하게는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신들과 사람들 중간에 있다고 생각되는 악마라고 한다. 반면 데블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악마다.
흠. 그래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책의 제목은 데몬 대신에 데블이 들어가야 마땅하다. 종교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 천사의 반대개념으로서 더욱 적합한 데블을 쓰지 않고 데몬을 쓴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넘어가자. 모르니까. 저자에게 물어봐야 알 듯 하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코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그는 책의 서두에 '사실'이라는 대목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사실임을 미리 말해두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사실에 기반한 영화나 소설들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실화는 언제나 머리 속에서나 가슴 속에서나 생생하게 다가온다.
일루미나티가 실제하는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실제한다고 하지만. 하지만 일루미나티와 연관된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바 있다. <그림자 정부>라는 책은 이키유바라 최라는 사람이 썼다. 중국 출생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15년간 머물다 캐나다로 가서 사업가로도 활동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가 존재하고 그 실체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라는 것이다. 히틀러, 루스벨트, 처칠, 러셀, 현존하는 사람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빌 게이츠까지도 모두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주요위치에 머물며 서로 짜고 고스톱을 친다는 주장.
댄 브라운이 소설 속에서 언급하는 일루미나티는 바로 프리메이슨과 연계되어 있다. 일루미나티는 사라졌다고 생각되지만 프리메이슨은 현존한다.
바티칸에 맞서는 일루미나티의 부활. 네명의 교황 후보인 추기경들의 피살. 그것도 물, 불, 흙, 공기라는 네 가지 원소를 이용한 피살. 그리고 대칭되는 상징문구. 랭던 교수는 결국 네 명의 후보 모두를 구하지 못한다. 이는 소설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네 명 중 한명이라도 구하게 되면 소설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구할거라고. 하지만 결과를 알면서 보더라도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번의 반전. 반전은 언제나 그렇듯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언급을 자제해야한다. 두번의 반전으로 나는 절정에 올랐다. 캬~ 하는 감탄사와 함께.
이쯤에서 난 댄 브라운이 도대체 미국에서 어떤 과목의 교사였는지 궁금해졌다. 프로필엔 그냥 교사라고만 할 뿐 과목은 언급하지 않았다. 수학교사일까? 화학? 아니면 영문학? 뭘까... 의문은 계속된다. 수학교사라고 생각한건 그가 기호학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기호학을 전공하고 고교교사로 있을 것 같진 않았고 아무래도 비슷한 것으로 수학이 있다. 화학. 이건 아닌거 같다. 소설 속에서의 각종 화학반응과 물질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필이 안온다. 그의 전공이라는. 영문학이라고 생각한건 그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야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보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는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난 의심만 해볼 뿐이지 알려지지 않은 바에 대해 알 수는 없다.
백수인 내가 집에서 놀면서 책을 읽어도 이렇게 빨리 읽을 수는 없다. 하루에 한권씩 이틀만에 다 봤다. 그의 소설은 지적인 만족을 주면서 재미도 안겨주고 있어 지적재미를 추구하는 내게 딱이다. 다른 작품들도 이어서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