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피라이터와 아티스트의 시선
박웅현 지음, 박규호 사진 / 예문 / 2003년 7월
품절


모르는 것은 흡인력이 강하다.
처음 보는 풍경은 자극으로 충만하고,
그래서 낯선 도시에 가면 오감이 바빠진다.
우리의 시선은 낯선 거리를 편식한다.
-13쪽

모든 가장들의 어깨는 무겁고,
모든 아이들의 표정은 맑다.
모든 여자들은 쇼핑을 좋아하고
모든 남자들은 철이 없다.
세상에는 일정한 틀이 있다.
그 틀의 이름은, 일상이다. -113쪽

구두 수선공은 구두의 뒤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한다.
이발사는 머리 모양으로
생활 수준을 파악한다.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광고쟁이에게도 직업병은 있다.
광고쟁이들은 모든 사물을
광고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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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피라이터와 아티스트의 시선
박웅현 지음, 박규호 사진 / 예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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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2003년 12월 31일. 지금으로부터 1년 조금 넘는 그때, 한해를 마감하는 시기였다. 당시 군에 있던 이 몸은 함께 휴가 나온 다른 동생과 함께 종로와 인사동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31일에 휴가 나온게 어디냐만은 우리네 두 몸이 머물 곳은 없었고, 쓸쓸히 서로를 위안하며 코드가 맞는 두 사람은 그 길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한 아트센터에서 전시회가 진행중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나아트센터였다)무료다. 돈없는 우리는 무료라는 말에 예술작품 좀 감상해볼까 하고 들어갔다. 진짜 공짜인가보다? 하고 전시회장을 벽을 따라 쭉 돌아보며 작품을 감상했다. 익숙치 않은 풍경. 난 미술작품 전시회는 가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깐.

 그곳 전시회장에선 전시회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책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공짜로 들어왔지만 사진이 좋아  각자 책을 한권씩 구입했다. 이 책이 그 책이다. 12,000원이라는 값을 지불했다. 공짜로 전시회를 구경했지만 결국 그 사진들을 소유하고픈 마음에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전시회가 공짜인 것은 그것을 유도하는 것일게다.

 <어느 카피라이터와 아티스트의 시선>이라는 그럴듯한 책 제목. 그것은 지금껏 광고만 찍고 광고 카피문구만 만들던 두 사람이 모여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어온 여행사진과 문장의 조합이었다.

 디렉터 박웅현은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경의선은 경제입니다" "잘자, 내 꿈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와 같은 문구를 만들었고, 부업으로 아시아퍼시픽 광고제, 깐느 광고제 심사위원과 몇몇 국제 광고대회 초청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단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사람이다.

 더불어 아트디렉터 박규호는 'KTF적인 생각' 캠페인, 맥심카푸치노 캠페인, 모토로라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날개' 등을 만들었고, 몇몇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역시 이 사람도 잘 나가는 사람이다.

 두 잘나가는 광고쟁이가 모여서 일상적인 여행 사진에 의미심장한 문구를 덧붙임으로써 작품을 만든 것이다. 사전에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여행길에 찍어둔 사진에 글을 붙이고 그래서 그냥 놀이로 작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직업을 또다른 놀이로 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은 참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사람, 그 일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일을 즐기는 사람은 그에게 그것은 일이자 취미이다. 그들의 작업은 활기차다. 그들에게 놀이인 것이 사람들에겐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일반인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 요새는 많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글 몇 줄 담아내는 연습을 하다보면 이와 같은 작품은 누구나 도전할만하다. 나도 이 전시회를 보면서 언젠가 한번 이런 작품 만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그 언젠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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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2-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몇 장 보여주세요.. 포토 리뷰로 올리심이..^^;;

마늘빵 2005-02-2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고 싶어하는거 같아서 몇장 찍어서 포토리뷰도 올렸습니다...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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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에 맛들렸나보다. 내친김에 그의 유명작들을 다 읽고 있다. 그래봐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연금술사>에 이어 지금 읽은 <11분> 이렇게 세권이 고작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다른 책을 미루고 그의 책만 연속적으로 읽는 것은 그가 꽤나 매력적인 글을 써냈다는 증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코엘료를 다 읽고 아 드디어 코엘료라는 한 작가를 내 머리 속에 꾀어찼다는 어떤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함도 있으리라. 에니아그램 5번형인 나는 지식 쌓기를 즐기니깐.

 애초 내가 코엘료를 오해했던 <11분>이라는 책은 역시나 경영실용서는 아니었다. 11분안에 뭐 끝내기 이런게 아니라 남녀가 성관계를 지속시키는 시간을 의미하는 11분이었던 것이다. 11분? 코엘료 이전에 어떤 작가, 1970년에 미국에서 어빙 월리스라는 작가가 <7분>이라는 섹스에 관한 책을 썼다가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윌리스는 섹스지속시간을 7분이라고 생각한 반면 코엘료는 7분은 너무 짜다? 고 생각하여 11분으로 늘렸다고 한다. 둘 모두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전의 다른 소설들은 코엘료 자신의 험한 인생담을 담고 있는데 비해 이 책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브라질 출신의 한 여성이 쓴 글을 통해, 그녀와 이야기함으로써 작가의 머리에 완성되어 간 것이다. 그녀의 경험을 자신의 손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코엘료는 그렇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한다.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진 않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브라질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그녀를 스위스에서 만났다. 소설의 얼개와 분위기는 그 여성의 이야기이지만 그건 곧 나 자신의 이야기, 나 자신의 실수를 쓴 것이다."

 그는 또 "성 정체성에 대한 충돌이다. 많은 사람이 얼굴을 마주칠 땐 결코 즐겁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척하고, 몸과 마음이 서로 일치되지 못한 상태로 거짓말을 한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성(性)의 신성함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다." 라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소설 속에서 마리아가 나중에 쓰고자 마음 먹었던 그리고 그녀가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섹스에 대한 책을 찾았던 책이 바로 코엘료의 <11분>이다.
 
 소설 속에서 겨우 11분을 위해 모든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마리아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프로이드 식의 어거지 논리를 들이대자면 그리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프로이드는 모든 것을 성적인 잣대로 분류하니까. 우리가 화장품을 바르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운동하고, 거울을 보는 행위는 모두 11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만족이나 타인에게 잘 보이기 정도를 넘어 섹스로 까지 연결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개개인마다 다 다를테니까.

 <11분>은 섹스에 대한 소설이지만 순전히 섹스를 위한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코엘료의 다른 소설들과 같이 자아찾기에 대한 소설인데 단지 '섹스'를 통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마리아는 어린나이에 섹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여자가 됐지만 그녀는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가 전에 자신이 꿈꿨던 일들을 실행하려 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섹스'지만 궁극적인 도달점은 '자아찾기'다.

 코엘료가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성(性)의 신성함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다"라고 말한 것도 섹스를 말했다기보다는 사랑을 말했다고 봐야겠다. 섹스는 마음이 없이 몸으로 가능하지만 사랑은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랑은 나를 향한 것이건 타인을 향한 것이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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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베로니카만 읽으면 되겠네요 저는 두 소설이 내용이나 짜임새에 큰 불만은 없지만 책을 덮고 떠오르는 단어를 한마디로 하면 '피상성'인 듯해요^^ 두 소설 다 저는 지극히 상식에 기대어서 읽었다 할까요? 물론 건전한 상식의 파격 정도를 놓고 소설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근대문학 '하는 사람들'의 틀에 갖힌 것일 수 있지만^^

마늘빵 2005-02-2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확실히 강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난하게 은근히 매력적인 맛은 있지만.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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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말도 안되는 소리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밤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고 가정할 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숫가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117쪽

인간은, 갈증은 일 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그-119쪽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122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 욕망이 그의 보물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가오게 만든다. 욕망은 내 영혼이 선택한, 너무나 강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 마음의 동요이다.
나는 매일 내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진실을 택한다. 나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려 애쓴다. 하지만 늘 욕망을 동무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의무감 때문도, 내 생활의 외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 욕망은 아주 좋다. -216쪽

삶을 통해 누군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걸, 마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투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질투에 대한 거창한 이론을 갖고 있고, 그것이 연약함의 증거임을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러한 감정을 결코 억누르지 못할 터였다. -222쪽

섹스는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곗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는 두 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곗바늘을 맞추어야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 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25쪽

주석 :
레오폴트 폰 자허 마조흐(Leopold von sacher-masoch)(1836-1895)
오스트리아 소설가. 청년 귀족 쿠젬스키의 사랑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모피옷을 입은 비너스>(1891)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성적 기행이 성심리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마조히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241쪽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 오로지 매일 11분만을 위해 산다고, 남자들은 그것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남자들 역시 여성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를 만나기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갈망한다. -271쪽

산더미처럼 쌓인 그 종이쪽을 가지고 유서 깊은,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는 대형 스위스 은행을 찾아가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몇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는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합니다." 라는 답변을 듣게 될 때까지는.-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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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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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보고서 괜찮다 싶어 코엘료의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다. <연금술사>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보다 2년여 먼저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책으로 인해 코엘료붐이 일었다는 점에서 <연금술사>를 먼저 볼껄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번역된 순서가 뭐 중요하랴.

 연금술사. 영어로는 Alchemist 라고 한다. 영어실력이 짧아 앞에 붙는 Al 이 어떤 역할을 해주는 지는 모른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에 따르면, '연금술'은 "옛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유럽에 퍼진 원시적 화학 기술. 비금속을 금, 은 등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며, 또, 불로 불사의 영약을 만들려던 화학기술"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산티아고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어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하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산티아고는 여행을 통해 나를 찾고자 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생떽쥐베리의 세권으로 된 책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내용은 다르지만 두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같다. 또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생떽쥐베리의 유명한 저서 <어린왕자>이다. 이 책에서 산티아고는 마치 여러별을 여행하며 이런저런 물음을 묻는 어린왕자와도 같다. 코엘료가 <어린왕자>의 형태를 답습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그도 이 유명한 책을 읽지 않았을리 없다 -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맴도는 <어린왕자>의 환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연금술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물론 연금술사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등장하기는 한다. 이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소설이 끝난 뒤 '작가의 말'중에 드러난다.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다. 하나는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하나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이다.

 우리가 '연금술사'하면 떠올리는 사람들은 대개 첫번째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연금술은 사전에 정의된대로 값어치 없는 금속을 값어치 있는 금속으로 바꾸는 그런 마술을 하는 기술이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오히려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위 분류의 세번째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금술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 자신으로서 연금술사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자아를 깨우친 사람들.

 산티아고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P142)

 산티아고는 연금술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이미 연금술을 깨우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금술사'라 불리우는 자는 산티아고가 스스로 그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나 자신을 깨우치고 있는가? 대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은 한다 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돈과 권력보다는 나의 자아실현을 꿈꾼다. 누군가가 내게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아직 내게는 직장이 없다. 난 학생이다 - 난 아닙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된 돈은 돈이고, 내가 기존에 하던 일은 계속 해야한다. 그것은 돈벌이를 위함이 아니라 나의 자아실현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니까 말이다.

 나는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기술은 원치 않는다. 그런면에서는 나는 첫번째 연금술사보다는 세번째 연금술사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나를 깨우쳤다고 결론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나는 연금술사는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고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연달아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지오웰의 <1984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연달아 읽음으로써 좀더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듯이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어린왕자>와 <연금술사>를 함께 읽음으로써 자아에 대한 사색에 좀더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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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도 같이 보실것을 권합니다.
오래전 읽었을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으나 (오히려 지루...) 얼마전 그 와 유사한 환경 (며칠을 대륙을 가로질러 혼자서 드라이브한..)에서 극심한 고독과 함께 그가 무얼 애기할려는지가 가슴으로 오던군요...

마늘빵 2005-02-2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야간비행>은 잘 모르지만 김규항의 를 낸 출판사 이름이기도 하죠.

비로그인 2005-02-2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읔..
생떽쥐베리의 대표작입니당...

릴케 현상 2005-02-2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은 좋긴했지만^^한편으로는 거부감도 있었어요. 비행사의 죽음... 그의 죽음을 통해 인류는 더 많은 비행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로서 인류는 한발짝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진보의 사명을 띠고 물러서지 않고 저 심연 속으로 날아간다... '좀팽이처럼' 사는 저는 누군가 저를 부추기려고 할 때마다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게 되요. 헉 난 아냐 하고...

마늘빵 2005-02-2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야간비행을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소설인가요? 아니면 에세이?

릴케 현상 2005-02-2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