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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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도서관 책장 사이를 오가던 중에 나의 관심을 끄는 이름이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한 대형서점의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당시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첫 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소개글을 읽은 후로 그의 이름은 나의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움베르토 에코는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현대의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다. 서양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부터 시작해 퍼스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을 쌓은 사람이며,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할 줄 아는 언어의 천재이다. 전세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십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우리에게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1988) 동화 <폭탄과 장군>(1988) <세 우주비행사>(1988) 이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열린 작품> <기호학 이론> <논문 작성법 강의>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대중의 슈퍼맨> <해석의 한계>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원재길 옮김, 열린책들 1995년 펴냄) 또한 그의 다양한 저술활동을 증명해주는 책으로 에코가 문학잡지 <일 베리>지의 '작은 일기'에 기고하던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장르상 문학비평서라고 하기에도,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다. 그냥 '에코의 일기들을 묶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당시의 문화비평이나 칼럼들은 지극히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에코는 이 칼럼에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온 특이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패러디, 환상, 광기의 요소를 뒤섞은 독특한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잡지 칼럼치고는 파격적인 글쓰기의 형식과 에코의 방대한 지식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실려 있는 글의 제목만으로 글의 내용을 먼저 짐작해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글 제목이 '∼하는 방법'의 형식이며, 에코는 굉장히 사소한 주변의 문제를 뭔가 있는 것처럼 표현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은 이 책에 실려있는 하나의 칼럼 제목으로, 글을 읽기 전 제목을 접하는 독자들은 "이 글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정말로 우리가 연어와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혹 바다속 탐험 이야기는 아닐까?"하는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은 에코가 스톡홀롬과 런던을 여행하던 중에 생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코가 스톡홀롬 여행 중에 덩치가 엄청 큰 연어를 하나 샀는데, 이 놈을 가지고 런던으로 가 보관하기 위해 호텔객실 냉장고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고 냉장고 안에 가득 들은 술병들을 꺼내 다른 곳에 놓고, 그 안에 연어를 집어넣었단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에코가 술을 다 먹은 줄 알고 연어를 꺼내고 다시 술병을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에코는 또 술병을 다 꺼내고 다시 연어를 집어넣었고, 몇 차례 이런 일이 더 있고 난 후 체크아웃을 하려고 접수대에 갔더니 술값이 엄청나게 청구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처음의 의문을 품고 글을 읽은 독자들은 글을 다 읽은 뒤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 글 이외에도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비행기에서 식사하는 방법' '낯익은 얼굴에 대처하는 방법' '택시운전자를 이용하는 방법' 등에서 에코만의 기발하고 독특한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글이 에코가 여행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많은 글에서 패러디의 형식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에코 서문'에서 에코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패러디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오로지 기분전환을 위한 글도 들어 있는데, 비평을 한다거나 교훈을 전달한다거나 하는 의도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옳은 일인지 해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특별한 목적없이 하나의 유머책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에코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연어와 여행하는 법]은 1999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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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자서전
N. 게오르캰 외 지음, 표윤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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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대통령이 낸 자서전이 한창 화제였던 적이 있다.  대통령의 자서전이라 하면 인생관, 세계관부터 시작해 집권기간에 발표하지 못한 뒷이야기들까지 망라하게 되는데, 김영삼 前대통령 역시 그러했고, 출판됨과 동시에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여야 정치인과 언론인, 나아가 학계에서까지 큰 논란이 벌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책속 내용에 대한 사실 진위 여부를 묻고, 어떤 사람들은 직설적인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들 조용하기만 하다.

자서전은 이렇게 일을 마무리한 뒤에 본인이 직접 쓰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푸틴 자서전>은 푸틴이 한창 활동중인 때 출간됐다. 물론 정식 자서전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푸틴 개인에 대한 성장기와 인생관 등을 담고 있어 자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책은 기자와 푸틴, 기자와 푸틴 주위사람들과의 대화형식이며, 중간중간 짤막한 설명이 가미돼 있다.

3년4개월만에 한낱 샐러리맨에서 국가원수(元首)로!

이 한 문장으로 현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 더이상의 다른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푸틴 자서전>(·N.티마코바·A.콜레스니코프 편저/표윤경 옮김/문학사상사 2001년 펴냄)은 세 명의 러시아 기자가 푸틴과의 여섯 번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푸틴의 가족과 친구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완성된 책이다.

그들은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2001년 1월 다보스국제회의에서 트러디 루빈이라는 미국인 여기자가 질문한 "푸틴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러시아의 유명한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들은 대답대신 오랜 침묵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만큼 푸틴은 러시아에서 그리 알려졌던 사람이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1952년 10월 7일 레닌그라드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노동자들의 낡고 허름한 공동주택에서 지냈다. 그는 어린시절 자신을 가리켜 ‘날라리’라고 했으며, 각종 운동이란 운동은 모두 좋아했으며 한번은 권투를 시작하자마자 코뼈가 부러져 이후에는 유도를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릴 때 비행기 조종사와 선원이 되고 싶어했다가 '창과 방패'(바딤 코제브니코프가 쓴 유명한 첩보소설을 후에 블라디미르 바소프 감독이 영화로 각색하였다. 68년 모스필름 제작)라는 영화를 보고 하늘의 별따기같다는 첩보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민간항공대학을 가라는 부모님과 주위 선생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법과대학에 진학한다.

푸틴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삼보 선수권을 따냈고, 2년 뒤 유도선수로 활동하여 세계선수권 선수들과 붙기도 했다. 또한 첩보아카데미에서는 그의 겁없는 저돌적인 훈련으로 '위험불감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전화로 자신의 꿈인 KGB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아내 류드밀라와 함께 동독으로 파견을 나갔으며, 작전책임관에서 부장보좌관, 수석보좌관으로 승승장구하며 더 오를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동독정부가 마비상태에 이르고, KGB지부가 민중의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지시가 없자, KGB를 나와 90년 모교인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서 총장의 국제관계담당 보좌관이 되었다. 또한 푸틴이 정치적 대부로 모시는 당시 렌소비에트 의장 소브차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92년 소브차크가 민선시장으로 당선되었으나, 96년 낙선의 고배를 마시자, 새 시장이 유임을 간청했음에도 공약대로 실직자의 길을 자초했다.

후에 푸틴은 96년 8월 대통령 총무실부실장, 97년 크렘린궁 총감독부장, 98년 행정실 지역담당 제1부실장, 연방보안국장, 국가안보회의 의장, 99년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진급하고, 2000년 3월 마침내 옐친에 이어 러시아의 세 번째 대통령으로 변신한다. 3년4개월만의 샐러리맨(푸틴은 KGB란 직업은 샐러리맨과 같다고 한다)에서 일약 러시아 3대 대통령으로 변신을 거듭한 것이다.

<푸틴 자서전>은 이렇게 푸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신문에서 본 딱딱한 이미지의 푸틴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따뜻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하면 뭔가 대단하고 거대한 위치에 있는 것 같고, 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인 것같이 생각되지만 <푸틴 자서전>을 읽고 나면 대통령도 한 명의 성공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단 일반인들과 다른 것은 그가 하는 일의 규모와 성격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조그마한 실수, 말 한마디에도 조심해야 하며, 대내적으로 그 나라의 국민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자존심을 지키며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일반인과 대통령의 차이인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의 또 다른 의미는 푸틴의 '강한 러시아 만들기' 정책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와의 관계수립이나 대내외적 정책방향을 쉽게 알 수 있는 참고자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푸틴의 '강한 러시아 만들기'에 따라 몰락했던 러시아가 서서히 일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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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학문하기 - 새 천년을 맞이하는 진통과 각오
조동일 지음 / 지식산업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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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어떤 학문을 해왔고, 학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네 학문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등등...

<이 땅에서 학문하기>(조동일 저, 지식산업사, 2000)는 우리 학문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과 성찰을 시도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필자가 이 책의 저자 '조동일' 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동일씨의 책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책을 통해서였다. 그 다른 책은 바로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대형서점의 인문학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탁석산 선생님(조동일은 '씨'라는 호칭을 붙이고, 탁석산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탁석산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의 저서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이다.

탁석산 선생님은 지난 학기 필자가 다니는 대학 철학과에 출강하시며 매 시간마다 책선전(?)을 하셨고, 학기가 끝날 무렵 필자는 결국 탁석산 선생님의 화려한 장사꾼(?) 언변에 넘어가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그것도 두 권 다. 그러나 탁월한 선택(그것이 선택이었나? '무의식적 강요', '암묵적 강요'라고 함이 더 옳을 듯하다)이었음을 느낀다.

<한국의 주체성> 의 책 맨 뒤에 '더 읽어야 할 자료들'에서 탁석산 선생님은 조동일씨의 <이 땅에서 학문하기>를 소개하며 조동일씨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미 강의시간 중 선생님의 조동일씨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익숙해 담담하게 읽어내렸지만, 조동일씨가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았을 때, 일개 소장 철학자(지금은 소장철학자가 아니지만)가 학계 거물을 물어뜯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랄만한 일이다.

<한국의 주체성>에서 탁석산 선생님은 조동일씨를 향해 이렇게 비판한다. "거의 자아도취에 빠진 지은이가 자신의 포부를 다시 한번 밝힌 책이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그거야 남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누가 인정했지? 나는 아닌데."

이렇게 필자는 탁석산 선생님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조동일씨가 누구인지 알고싶어 거의 저서 중 하나인 <이 땅에서 학문하기>를 읽게 되었다. 조동일씨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그동안 <우리 학문의 길>, <독서, 학문, 문화>, <인문학문의 사명>등의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이 땅에서 학문하기>는 저자 자신이 근래 있었던 자신의 학문에 대해 시비한 두 글(강준만 교수와 홍윤기 교수의 비판)에 대한 답으로써 책을 썼노라고 머리말에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이 전체적으로 기존의 저자의 책에서 발췌하고 기타 신문 기고 글이나 새로 첨부한 글로서 엮어져있다고 말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제1부 새로운 출발(위기 이겨내기, 글읽기와 글쓰기, 신명풀이와 창조정신), 제2부 탐구의 내역(동아시아문명권의 공동유산, 민족해방을 위한 자아각성, 남북분단을 넘어서는 지성, 세계학문의 새로운 지평), 제3부 학문 정책(선진학문을 위한 학술진흥, 국제학술회의를 통한 세계 진출, 학문을 죽이는 정책과 살리는 정책)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글이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연관되어 있고, 모든 글에서 저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의지, 국가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통해 저자의 정신을 느꼈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여타 다른 책을 읽으며 느끼지 못했던 저자의 열정이 이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글들에서 몇몇가지 중요하다 생각되는 점을 끄집어낸다면, 저자는 '세계학문의 지평'에서 자신이 저자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이론인 생극론(生克論)을 전면에 내세우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1세계의 학문은 조화로운 생성을 뜻하는 '生'에 치우쳐있고, 러시아를 중심으로하는 제2세계의 학문은 투쟁을 통한 발전을 뜻하는 '克'에 치우쳐있음을 주장하며, 그래서 둘 다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둘을 합쳐서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생'에 치우친 결함은 '극'으로 시정하고, '극'으로 해결책을 삼기만 하는 편향성을 '생'의 실현을 통해 바로잡아 '생'과 '극'을 둘 다 온전하게 하는 '생극'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저자는 '동아시아문명권의 공동유산'에서는 유럽문명에 맞설 수 있는 동아시아문명을 이룩하자고 한다. 유럽에는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라틴문명권이 있고, 이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문명권과 상통하며,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문명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문명권을 형성해야하며, 동아시아에서 이는 언어로는 한문문명권, 종교로는 불교문명권, 더 자세히는 대장경문명권이라고 하며 유럽의 인권, 자유에 대한 동아시아의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럽문명권에 맞서 동아시아문명권을 형성하고, 이를 대장경문명권이라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장경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가 정말로 문명권을 형성할 수 있는지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의문이다. 조동일씨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나라가 그 대장경이라는 것에 그만큼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우리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이 그러한지는 또 의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몇몇 주장으로 볼때 국가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열정, 시도는 높이 사지만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실제 그러한 것이 있는지, 실체가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논의라 생각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헤겔의 '역사철학강의'가 생각나는 것은 왜인가?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제3부 학문정책에서 저자가 우리네 대학의 학문정책이 잘못됐음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그 대안까지 확실하게 제시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지막 3부는 1,2부에서의 추상적인 논의와 달리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한 지극히 '현실적'인 장이었다. 정말 지금의 학문정책이 그의 주장대로 실현된다면 우리나라의 학문적 성과를 극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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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2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에서 우리학문의 길을 읽고 제대하면 나도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기억이^^제대하고 공부하지 않아서 지금은 뭐라 말을 못하겠지만...언젠가 조동일씨의 책을 좀 읽고 싶네요

마늘빵 2005-01-2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냥 생각만 그렇죠. ㅋㅋ 너무 무뎌지다보니 이젠 자극을 받아도 반응이 시원찮습니다.
 
한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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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필자의 지인이 필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했다. 유아교육과에서는 필수독서 서적이라면서 덧붙여 이 책에 대해 설명하기를 어떤 헌신적인 선생님과 온갖 불행과 고통을 겪은 한 어린 소녀에 관한 실화라고 했다. 필자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단지 이 설명이 다였다. 필자는 이 책이 유아교육과 필독서라는 것과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본래 제 시간이면 잠이 드는 필자는 그 날 밤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한 아이>(토리 L.헤이든 지음, 주정일, 김승희 옮김, 샘터, 1984)는 정상적이지 못한 여섯살 난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의 이름은 쉴라. 그 아이는 누구에게든 절대 말을 하지 않고, 아무리 아파도 울지 않으며, 눈은 항상 분노로 이글거렸다.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길가에 버려졌고, 술주정꾼인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자랐다.

그 후 쉴라는 동네의 세 살 난 어린 남자아이를 유괴해 나무에 매어놓고는 불을 질러 커다란 화상을 입게 만들었다. 결국 이 아이는 정신병원이 지어지는 대로 그 곧에 들어간다는 조건하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문제아 반에 배정되었다.

이곳에서 쉴라는 토리 헤이든 선생님을 만나며 서서히 변한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이는 그동안 사랑이란 것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그동안 엇나갔던 것이다. 토리 헤이든 선생은 쉴라와 함께 있으면서 쉴라가 여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지능지수가 매우 놓은 천재아라는 것을 알았다. 쉴라의 지능지수는 180-190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쉴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쉴라의 재능을 가르쳐준 사람. 토리 헤이든은 이 책의 저자이다. 헤이든 선생은 머리말에서 어느날 신문 한 구석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불태웠다는 기사를 스쳐지나가듯 읽었고, 그 사건의 주인공인 쉴라가 자신의 학생이 될 줄은 몰랐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은 쉴라를 처음 봤을 때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고 막막했다고 고백하며, 이 책은 결코 자신이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사람들로부터 쉴라에게 동정을 구하기를 위해서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이 책은 "오직 한 아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실제 제목 또한 'One Child' 이다. 한 아이...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특수한 상황도 그저 한 아이를 가르치는 평범한 일이며, 우리가 보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 또한 그저 평범한 한 아이 일뿐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아이는 내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나 마찬가지 인간이고,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남은 생존자일 뿐입니다."

세상의 '비정상적'인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비정상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것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 '비정상적'인 것을 '잘못'으로 보는 분들에게 쉴라가 토리 선생님께 시를 바친다.



사랑하는 토리 선생님께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웃게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나와 게임을 했습니다.
더러는 재미를 위하여 더러는 승부를 위하여.
그러다가 다 가버렸습니다.
상처입은 게임 속에 나를 내버려 둔 채,
무엇이 재미고 무엇이 승리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홀로 남은 내 귀에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쳤지만
그것은 나의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왔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엉뚱했습니다.
사람도 아닌 듯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울게 하였습니다.
울어도 상관을 안했습니다.
단지 게임이 끝났다고 말할 뿐
그리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내 눈물이 모두 기쁨으로 바뀔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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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고지 -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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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영어원제는 'Pedagogy of the Oppressed'으로 번역하자면 '억압받은 자를 위한 교육학'이다. 이 책은 꽤나 오래된 교육학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1971년에 브라질에서 프레이리에 의해 씌여진 이 책은 2002년 <페다고지>가 출판된 지 30주년이 되어 미국에서 30주년 기념판을 찍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크게 달라질리는 없고 단지 '30주년 기념판 발간에 부쳐' 정도가 더 덧붙여진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30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좀더 눈길을 끌고 팔아먹으려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전략도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본래 10주년이네 20주년이네 100주년이네 하면서 10단위로 기간을 쪼개어 기념을 하는 것이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페다고지>는 상당히 유명한 책인가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조차도 이번에 처음 접했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학문적 냄새를 풍기는 제목이 일단 나의 눈길을 끌었고, 30주년 기념판은 부차적인 부분이었다. 교육학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서로 생각되는 이 책의 저자 프레이리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상당한 마르크스 주의자로 추정된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는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유독 기독교 학교여서 그런건지 우리네 철학 커리큘럼에는 유물론에 관한한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았고, 나 홀로 읽은 책은 <마르크스 평전>쯤이다. 그러니 내가 마르크스에 대해 알아봐야 그의 가족사나 생활부분 말고는 얼마나 알겠는가. 하지만 그는 책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을 수시로 언급하며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저 그렇게 추정해볼 뿐이다.

 또한, 프레이리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제외하고도 실존철학자로 분류되는 장 폴 사르트르와 카를 야스퍼스도 언급하며, 훗설, 베르그송, 헤겔, 에리히 프롬 등의 철학자들도 등장시키고 있다. 더불어 마르크스 만큼이나 자주 나오는 체 게바라와 마오쩌뚱, 피델 카스트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짬뽕되어 프레이리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나온 것이 <페다고지>다.

 그는 교육에는 중립이란 없으며, 모든 교육은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말하며, 피억압자가 억압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찌해야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억압받은 자는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의식화 과정을 통해서 억압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네 교육은 모든 것을 알고 행위하고 명령하는 교사와 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과의 관계로 성립되어 있으며, 이는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 교사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받아 저장하고 암기하고 반복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한다.

 프레이리는 "인간화 교육의 방법은 교사가 학생을 조작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니라 학생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표현하는데 있"으며, "지식은 창조와 재창조를 통해서만 생겨나며, 인간은 끊임없고 지속적인 탐구 정신을 통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또 타인과 더불어 살아나갈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양자가 대화하며 함께 행함으로써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함으로써 이 구조를 타파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방안이 바로 문제제기식 교육이며, 이 교육의 골자는 '대화'이다.
 
 30주년 기념판 <페다고지>의 해제를 쓴 부산교육대학교 심성보 교수의 글은 프레이리의 대화에 대한 생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대화는 객체를 주체로 변화시키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의식화 수단이다. 대화적 의식화는 억압사회를 해방시킨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사회적, 정치적 존재로 동일시하는 존재, 사회의식을 가진 존재로 발전시킨다. 진정한 대화는 세계와 인간을 이분하지 않고,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어떤 결합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대화는 의사소통, 협동, 일치, 투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요구된다. 대화 자체가 사랑이다. 대화는 사랑하고, 겸손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리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이 책은 생소한 마르크스식의 단어 사용으로 소설 읽듯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끈기있게 읽어나간다면 프레이리가 주장하는 바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며, 그 구조만 익힌다면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오늘날의 교육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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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5-01-2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제가 학교 다닐때는 필독서처럼 읽혔지요.아마 그 전 세대에게는 금서였겠지요.프레이리가 빈민층,농민층을 상대로 학습 교육한 과정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아주 인내를 요하는 과정이었지만 결국 민중의 의식성장에는 시간과 인내..거기에 낙관적이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아요.

마늘빵 2005-01-28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의 교육방법에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한 인내를 감당할 교사가 얼마나 될지. 저도 자신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