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백과사전
김원중 편저자 / 을유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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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성어 백과사전>은 건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원중 씨가 엮은 책이다. 그는 이미 이쪽 분야에 있어서는 양질의 좋은 책들을 많이 내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지금 보고 있는 <고사성어 백과사전>을 비롯하여 2004년 출간한 <당시>, <송시> 도 그러하다.

 고사성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고사성어를 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좀 뜸해졌지만 아직도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서 연재되고 있는 고사성어를 간혹 접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 혹은 다른 교양서적을 읽다가 인용된 고사성어를 볼 수 있다.

 고사성어는 만들어진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것은 속담과도 같은 것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삶의 곳곳에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고사성어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진부하고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원중씨는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책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대동소이한 형태를 띠고 있고, 고사성어가 우리에게 줘야 할 의미를 그 책들이 제대로 매개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지금과 같은 책을 내놓을 수 있었고, 이 책은 다른 인문사회과학의 베스트셀러 못지 않게 팔려나갔다. 확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일단 시선을 끌고 책이 담고 있는 각 고사성어의 내용 또한 훌륭하다. 한자어를 모두 풀이해줬으며, 이와 관련된 해설은 물론이고, 실제 그 고사성어가 담겨 있던 시의 전문까지 소개하고 있다. 모르는 고사성어가 나올 때 이 책을 참고한다면 아마도 참고자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을 들춰보면서 나는 지금보다는 고등학교 때 고사성어를 훨씬 많이 알았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무식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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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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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는 위력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는 그 내용이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대다수의 다른 주의들(ISM)과는 달리 민족주의는 자신의 대사상가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4)-19쪽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 풍습, 종교, 정치, 경제 등 각종 문화 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집단의 최대 단위로서의 문화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20쪽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5)
-20쪽

"서양에서는 국가와 민족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NATION'은 국가이고 국민이며 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왕정이 붕괴되면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이 나온 것처럼 이런 국가 건설은 서양에서는 보통 근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대민족국가'라는 용어가 생긴 것입니다."-27쪽

"모든 국가는 국민국가인 한, 국경이라는 제한된 경계선 속에서 철도 및 그 외의 교통망을 가지며, 통일된 화폐와 도량형을 가지며, 조세제도를 가지며, 단일한 시장과 경제제도를 가지며, 가능하면 식민지를 만들려고 한다. 어느 나라에도 동일하게 헌법과 의회, 중앙집권적인 정부, 경찰과 군대가 있고, 호적과 가족제도가 있고, 학교와 박물관이 있고, 국민사와 신화가 있고, 기념비와 국기와 국가가 있다."
(니사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 P65)
-31쪽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르스트 르낭의 말,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5)
-34쪽

"민족이란 개념이 근대에 만들어져 근대부터 한국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대국가는 역사를 통해 사람들을 국민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67쪽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의식도 사라진다고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국가를 건설하려면 민족주의가 필요하기는 한데 민족주의는 내용이 없는 텅 빈 구호에 불과하므로 민족주의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 여기는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해서라고 생각된다."-80쪽

"민족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즉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민족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 중략 ... 민족이 공동체를 이루려면 역사공동체, 문화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룩하는 방법은 으외로 단순합니다. 즉 공동의 기억, 공동의 지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97쪽

"구한말에는 민족 자주가 보수, 수구였고 일본이나 러시아 등 외국과 손잡고 개방해야한다는 개화파는 진보였던 반면에 지금 한국에서는 민족 자주는 진보, 미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측은 보수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 중략 ... 즉 시대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면 진보, 시대의 발전을 외면하면 보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보수와 수구를 구별할 수는 있으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구가 무조건 옛것 혹은 지금의 것을 지킨다면 보수는 옛것중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킨다고 할 수 있지만 시대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큰 차이는 없습니다." -104쪽

"국민족 귀속감이 유발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은 역사적으로 선행하는 정체와 그들이 동일화하는 것, 즉 국민 역사를 공유한 결과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며 그들이 모두 공동의 긍지와 수치, 기쁨과 후회를 과거 사건에 대해 결부시키는 것이다."
(존 밀의 '공리주의')-105쪽

"대한제국이 근대국가가 되려면 이념적, 정치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근대화의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수도, 전기 그리고 전차라는 교통수단은 근대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근대화의 핵심 요소이다. 이런 필수 인프라를 외국인 손에 넘긴다는 것은 외국의 이권침탈이라고 말 할 수도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보자면 대한제국이 근대화 과정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구조의 문제이다."-110쪽

"민족이란 원래 실체가 없는 애매한 개념이라 그 기반이 허약하므로 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없어지면 그 효용이 이데올로기로 변하거나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명분 내지 핑곗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다." -115쪽

"역사에는 거리, 대립, 전망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에서 우리 자신의 상황과 같은 것을 찾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대립을, 완전히 다른 것을 찾는다. 서로 멀리 떨어진 양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는 긴장감을 가질 때야말로 역사적 이해가 생겨난다."(호이징가 '역사학의 성립')-128쪽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대 민족으로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때 민족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성격을 띤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 뿐 한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선한 민족이고, 일본은 본래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악한 민족이 된다. 도덕적 선의 문제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윤리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생각하며 자위한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강화해왔다. 즉 우리 민족은 선하다는 의식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악역을 맡은 일본의 이미지도 강화된다. 일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시기심이 우리의 민족주의를 견고하게 했다"-157쪽

"임지현에 따르면, 근대 조선에서 민족이란 도덕적 심판의 준거이자 역사적 판단의 잣대였다. 민족주의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식민지하에서 민족은 사실상 국가의 공백을 채워주는 실체이자 신화였고, 또 그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역사가 한국인에게 부과한 도덕적 정언 명령이자 사회적 규범이었다. 이른바 민족주의란 공동체의 집단성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개개인의 삶 속에 체화된 이데올로기이자 종교였다는 것이다."
(윤건차, '한일 근대사상의 교착')
-165쪽

"마사 너스봄은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논문에서 국가적 시민권보다는 세계적 시민권을 시민 교육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네 가지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 중략 ... 첫째, 세계시민주의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둘째, 우리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셋째, 우리는 현실적인,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지되지도 않았을, 세계의 다른 지역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깨달아야 한다. 넷째, 우리가 옹호할 태세를 갖춘 차이에 기초해 수미일관된 논지를 펴야 한다는 등 네 가지입니다."
(마나 너스봄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정리)-168쪽

"자본인 '공권력'이 없는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거나 증식시킬 수 없다." "부르주아적 세계정부가 자본의 가치증식을 보장하는 환경에서 자본이 세계 각 지역 주민들을 마음대로 착취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세계화인데,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의 혼란과 갈등과 빈부격차 속에서 각 국민국가는 자기 국가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이 사라지거나 국민국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세계 정부는 꿈속에서나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김수해, '국민국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역사비평 2002 봄, 155)-172쪽

"국민에서 시민으로 전환함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국가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가 되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하며 시민은 민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189쪽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이다. 의무만 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감시대상이며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다. 이런 국민은 개개인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개개인의 이름보다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번호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데 더 유용하다.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 국가의 부속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를 결성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영자를 바꾸든가 국가체제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을 택할 수 있다. ...중략... 이 땅에 태어났으므로 이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싫으면 이민을 가면 된다. 자신이 속한 국가를 변혁하든지 아니면 떠나면 된다.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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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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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탁석산을 좋아한다. 그가 처음 대중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작은 책자를 통해서였다. 이 두 책들이 한꺼번에 인문학 베스트셀러로 달리면서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마침 이때 그는 우리학교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이라는 강의를 맡고 있었다. 굉장히 튀는 사람이었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말하는대로 글빨과 말빨이 탁월한 사람이었고, 이력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내내 책만 읽어 공부는 꼴지를 달리고, 재수 일년 동안 공부해 서울대 자연계열을 일년동안 다니고 때려치고, 군에 갔다가 제대 후에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장학생으로 입학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그냥 이력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신의 자유로움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는 책은 그의 가장 최근작으로, 책 제목 앞에 <탁석산의>라는 문구를 붙인 것과 그의 얼굴을 책 전면에 드러낸 것은 이제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그의 이름을 빌려 책 판매에 도움을 얻자는 상업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때문인지 이 책은 인문서 치고는 대단히 많이 팔렸다. 그리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 라는 말은 과잉 사용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민족'고대, '민족' XX과 라는 식의 학교이름이나 학과이름 앞에 '민족'이라는 말은 쉽게 달라붙고, 이는 수식되는 학교와 학과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교 이름이나 학과 앞에 '민족'이라는 말을 붙일 하등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탁석산이 토론 형식을 빌려 어려운 주제를 대중에 다가가기 쉽게 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형식의 책은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저자는 부득이 각 장마다 '강의'라는 꼭지를 만들어 각 장에 해당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덧붙이고 있다. 토론 형식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고, 뒤에 붙여진 저자의 생각인 '강의'는 이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크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잉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한국 민족주의의 장래를 전망한다' 라는 다섯개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문화공동체인가, 핏줄인가, 언어인가, 역사적 유산인가? 저자는 이 모든 것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민족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한 핏줄인 단일민족도 아니며,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민족이라 하지도 않으며, 역사적 공동의 유산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아니라고 한다.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에 따르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적당히 이용해먹을 필요는 있다고 한다.

 따라서 민족정신이란 공허한 것이며,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것 또한 잘못이라고 한다. 민족은 애초에 없는 것이기에 사라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수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민족주의는 근거도 희박하고, 이제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장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만 민족주의 지지자들이 지닌 진정성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겸손한 장례식'론을 끌어들인다.

 또한 민족주의는 사다리라고 하며,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왔으며 이제 사다리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는 우리가 힘들게 한칸 한칸 쌓아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향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그 목표점에 거의 다 도달해있으며, 마지막 한 칸을 남겨두고 있다.

 "민족이란 원래 실체가 없는 애매한 개념이라 그 기반이 취약하므로 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없어지면 그 효용이 이데올로기로 변하거나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명분 내지 핑곗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다" 이는 민족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과잉된 예로 일본을 들면서,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으로 인한 우리의 피해가 더 컸음에도 우리가 중국에게는 관대하고, 일본에게만 과잉반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을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대 민족 이라는 구도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때 민족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성격을 띤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 뿐 한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선한 민족이고, 일본은 본래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악한 민족이 된다. 도덕적 선의 문제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윤리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생각하며 자위한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강화해왔다. 즉 우리 민족은 선하다는 의식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악역을 맡은 일본의 이미지도 강화된다. 일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시기심이 우리의 민족주의를 견고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일본을 하나의 보통  국가로 바라보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족주의의 사다리에서 이제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전환하자고 하며, 국가의 소유물인 국민이 아닌 세계시민이 될 때에만 우리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이다. 의무만 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감시대상이며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다." 라며, 반면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 국가의 부속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를 결성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영자를 바꾸든가 국가체제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한말 이래 민족주의는 이 땅에서 너무 많은 일을 했고, 우리는 이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을 정리한다.

 그의 근거와 주장은 그를 통해 민족주의를 접하게 된 나로서는 더이상 뭐라 반박할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내공이 너무 적은 탓에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점은 잘못이지 않나 싶다. 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건 아니다. 오히려 국사과목의 우리중심적 사고방식을 객관적 사실관계로 바꾸어놓고 이를 학생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그가 지적한대로 국어는 한국어로 바꾸어야하듯, 국사 또한 한국사로 바꾸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주관을 객관으로 바꾸자는 것일 뿐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 더불어 세계사도 동등한 관계에서 다루면 될 일이다. 국사를 알아야하는 것이 국가주의과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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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1-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이 두권의 책이 나왔을 때부터 정체성, 주체성을 따져도 꼭 뭉쳐서 덩어리로 따지는구나 이런 거부감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는 분인데... 리뷰 읽고나니 이 책은 좀 읽어보고 싶군요. 권혁범 씨가 쓴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와 비슷한 맥락이 보여서...

마늘빵 2005-01-3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탁선생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어쨌든 안티세력이 생긴다는건 또 그만큼 그 사람이 생산해내는 주장의 의미가 새롭다는 것이겠지요. 전 권혁범 씨의 그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권혁범 교수도 예전부터 관심갖어왔던 분인데.

히피드림~ 2005-02-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사놓고 바빠서(?) 아직 읽지도 못했네요. 서두에 학교얘기 하시길래 교수님인줄 알았네요.^^ 글도 잘 쓰시구요. 이 리뷰읽으니까 어서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구 서재 한번 둘러봤는데 정말 잘 꾸며 놓으셨네요.

마늘빵 2005-02-0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무리 토론형식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죠. 그래서 저도 한동안 사놓고 놔두고 있다가 읽었어요. 저도 님 서재 가볼게요~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
가토 히사다케 지음, 표재명 외 옮김 / 서광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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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보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지불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관심가는 책이 눈에 띄더라도 흥분된 마음을 자제하고 집에 묵혀둔 책들로 눈을 돌리곤 한다. 갈수록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사고픈 책들은 많은데 양자 사이에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대 윤리에 간한 15가지 물음> 이라는 책은 99년에 내가 경제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뒤 들은 첫학기의 수업 '윤리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교재는 아니었고, 단지 수업중 교수님께서 잠깐 언급했을 뿐이었지만 처음 철학에 입문한 나는 뭘 읽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수업중 언급되는 책들을 중심으로 사보기 시작했다.

<현대 윤리에 관한 15가지 물음>은 가토 히사다케라는 일본의 철학교수가 지은 책을 그의 제자인 경북대 윤리교육학과 출신 김일방, 이승연씨가 번역하고, 고려대 철학과 표재명 교수가 최종적으로 검토해 출간한 책이다.

가토 히사다케는 본래 도쿄대학 철학과를 나와 헤겔철학을 전공했으나, 이후에 윤리학에 관심을 보이며, 생명윤리, 환경윤리, 응용윤리 등 각종 윤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군.

본래 일본에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원고로 읽히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인데, 일단 일본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혹은 윤리학을 다루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는 현실이 부럽다. 방송에서 이렇게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이 방송 프로그램을 들을 만한 청자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라디오 방송의 원고를 듣는 형식이 아닌 읽는 형식으로 바꾸어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썼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대중이 이를 얼마나 알아들을지가 의문이었다. 이 책의 단점은 첫째가 그것이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다소 어려운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하기 위해 각종 다양한 예시를 들은 것에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윤리학적 이론의 지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점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책이라고 하기엔 무리이지 싶다.

두번째 단점은 번역상의 문제다. 이 책에는 쉽게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면서 철학자들만이 알아듣는 단어 사용을 한 곳이 곳곳에 눈에 보인다. 일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 프리오리(A priori)'라는 단어로 이는 본래 라틴어로서 '보다 앞선 것으로부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말로는 '선천적'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는 이 개념은 좀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논리학의 형식적 규칙들이 아프리오리하게 인식되는 유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아프리오리한 요소에 근거를 둔다. 대상은 이 형식 안에 주어지며, 인식은 오성의 아프리오리한 개념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대상을 사유하고 경험을 조직한다. 칸트에게 아프리오리는 '선험적'과 '초월적' 두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독일어 tranzendental은 칸트에게 '선험적'이란 뜻이며, 이는 tranzendence 인 '초월'과 '경험'의 중간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뭐 '아프리오리'라는 개념의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 때문에 칸트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칸트가 언급되는 부분이 아니니 '선천적'이라는 우리말로 번역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책은 별로 추천하고픈 책은 아니다. 언급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에서의 부적절한 위치나 번역상의 다소간의 문제점, 그리고 각각의 15가지 질문들과 대답이 엮어내는 체계성과 완결성의 부족함으로 썩 읽고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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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쇼
데이비드 에드워즈 지음, 송재우 옮김 / 모색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프리덤쇼>는 '세상의 모든 자유는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화 <트루먼쇼>를 모방한 것으로 보여진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일개 세일즈 맨이었으나, 이 세계를 떠나 집필과 교육에 열중하여, 이후 여러 저널과 잡지에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이다.

역자는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획득, 동국대학교 아나키즘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프리덤쇼>라는 책이 아나키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해서 이를 번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프리덤쇼>는 어떻게보면 음모론이다. 우리가 당연하다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에 딴지를 걸고 이것은 음모라고 말한다. 물론 '음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가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음모론적인 시각이다.

그는 책에서 노암촘스키를 자주 인용하며, 그의 미국에 대한, 환경에 대한, 권력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그의 입을 빌어서 음모론을 전개한다. 또 그의 지적들이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부터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 받아들이기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개 회사원치고는 참 여러분야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권위있는 지식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는 점은 그의 한계로 지적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고, 학위를 받지 못한 저자로서는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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