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다지 재미도 볼거리도 없는 영화다. '종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때문인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축 쳐져있다. 천사와 악마, 혹은 하느님과 악마라는 종교적인 주제는 '오멘'이나 기타 다른 공포, 스릴러에서도 다룬 바 있고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지라 더 나올 것도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이 주제를 택하고 있고, 역시 더 우려먹을 게 없는지 그다지 재미는 없다.

종말이 다가오기전의 일곱가지 징조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일곱번째 징조가 애비가 임신한 아이가 태어나면서 죽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갖가지 종말의 징조들이 보이고, 애비는 이 징조중 한가지라도 막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모두 허사. 그렇게 애비는 자신의 아이를 잃어야만 하는 걸까? 그럴리 없다. 결국 심판의 날 일곱번째 징조인 애비의 출산까지 가지만 애비의 아이는 죽지 않았다. 그 죽지 않은 이유라는 것이 참 납득하기 힘든 것이, 애비의 희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애비는 죽는다. 한낮 한 개인의 희망으로 인해 종말이 멈추었다는 것은 영화라 해도 너무나 오버했다. 게다가 애비는 종말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아이를 살리고 싶었을 뿐이고, 그것이 어찌어찌하여 종말을 막는 위대한 일이 되었을 뿐이다.

참 볼거리도 없고, 스릴있지도 않으며, 공포스럽지도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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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영화 한 편을 때려줬다. 참고로 이 영화는 2002년도 봄 작품이고, 제목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지만 내용은 모른다. 감독이나 배우들의 이름을 봐도 그다지 내가 알만한 인물은 없는 듯 하다. 다만 그나마 약간 친숙한 이름이 애슐리 쥬드인데, 누군지는 모른다. 영화속의 백인여자였나? 아님 흑인남자? 애슐리가 누구건 난 상관없다.

대략 난 이런 범죄를 중심으로 한 법정영화들을 좋아한다. 변호사와 검사가 나오고, 쫓고 쫓기는 접전이 벌어지고, 증거채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장면들이 재미있다. 사실 이 영화는 법정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스릴러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주거니 받거니 말싸움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법정 밖에서의 스릴 넘치는 아찔한 순간들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해병대인 남편이 9명을 살인했다는 죄목으로 끌려가고 그의 아내인 변호사 클레어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사건진상을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군법 전문가 찰리를 만나 남편구하기에 나선다.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의 침입, 미행, 도청, 심지어는 차가 미끄러져 굴러 아이를 잃는 순간까지 오지만 클레어는 결국 남편을 구해낸다. 법정싸움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국방부가 소송을 취하시키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남편을 살린 꼴이 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너무도 시시하게 끝이 나버렸고, 시시하게 이겼다. 뭔가 미심쩍다. 나는 이후의 영화진행을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아마도 클레어와 남편이 기뻐하며 살아가던 도중 괴한들의 습격을 당하고 다시 이에 대한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멕시코에 살해된 군인의 아내를 인터뷰하러 간 찰리를 통해 들은 사실. 남편 톰이 9명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고, 증인 2명을 추가로 죽였다는 것이다. 톰은 다른전화로 이 사실을 엿들었고 클레어를 어찌해보려하지만 순간 나타난 살해현장의 주민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죽는다. 그리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론은 의외였고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지만 그렇더라도 이 결론이 영화의 흥미를 이끌어내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한계가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칼 플랭클린은 <광란의 오후>와 <블루데블>을 만든 감독이라고 한다. 두 영화 모두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고, 그런 점에서 <하이크라임>도 그러하다는 것. <하이크라임>이 본래 소설이라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고, 감독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또 이것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과 평가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비디오로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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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정은이 출연중인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인기로 인해 이 영화는 적지 않은 부차적인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가문의 영광>의 이미지와도 같은 김정은의 푼수끼있고 어리버리하고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한 생활력 강한 잡초같은 이미지가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이어 16일 개봉한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로 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시 김정은은 '잡초 같은 여자'의 배역이 어울린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하게 한다.

<내 남자의 로맨스>는 외국영화 <노팅힐>과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게 한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러브 액츄얼리>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이미 결혼한 친구의 아내를 오래전부터 사랑해왔지만 평소엔 쌀쌀맞고 무뚝뚝하게 대하다 결국 친구와 결혼해버린 여자를 찾아가 뒤늦게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의 감동은 비록 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그때의 감동과 <내 남자의 로맨스>의 마지막 비오는 거리를 헤치고 7년간 사귄 여자에게 돌아가는 장면의 감동의 세기는 비슷하다.

또한, <노팅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인기 여배우와 평범한 회사원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비록 <노팅힐>에서는 둘의 사랑이 피어나는 것으로 감동적인 사랑의 결론을 얻지만,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는 다르다. 오승현과 김상경 사이에서 순간적인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김상경과 김정은의 사랑을 좀더 소중하고 진실된 것으로 비추게 하는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다. 이쁘고 인기많은 연예인 오승현과 만나면서 김상경은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 오래된 사랑인 김정은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김상경이 오승현을 찾아가 나눈 대화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오승현이 김상경에게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자고 제안하자, 김상경이 오승현을 찾아가 이를 거절하며 미안하다 한다. 그러자 오승현은,

"왜요?"
"무서워서요"
"현주씨가요?"
"아니요. 현주를 잃을까봐요..."

이 영화는 이렇게 감동과 함께 "순간적인 사랑을 쾌락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오래가진 못한다. 사랑은 오래될 수록 좋다" 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비록 영화 속 김정은의 연기를 보기 위해 본 영화지만 매우 만족스럽다.


p.s 서울극장 18일 5회에서 김정은은 무대인사를 나왔다. 내가 영화를 보러 간 날짜와 시간이 우연히 이때 딱 떨어졌고, 처음으로 영화를 보며 무대인사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약간 늦게 들어가 김정은을 잠시동안만 봐야했으나 맨 앞자리여서 그래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느낌은... 연예인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영화 속의 현주처럼 수수하고 맑고 발랄했다. 원래 성격이 그런 듯 하다는 느낌이다. 별루 이쁘지도 몸매가 뛰어난 것도 아닌 그녀가 지금처럼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솔직한 그녀의 삶을 영화에 반영시킨 결과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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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물론 영화관이 아닌 케이블 티비로 봤다. 영화관에서 보기에는 참 돈이 아까운 영화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기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도 수준차가 있는 법. 이 영화는 나의 기준에서 다소 떨어지는 영화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쯤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후 비디오로도 빌려보지 않았다. 왜냐면 비디오로 보기에도 좀 돈이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이 영화가 아닌 더 좋은 다른 영화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물론, 케이블 티비에서 공짜로 해줬기 때문이다.

영화의 출연진은 다소 빵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름을 대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윤다훈, 송선미, 신애, 오지호, 최윤소 이 정도는 다들 이름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들이다.

어느 시골 마을 열녀문이 세워진 집안의 딸이 몰래 서울로 대학오기 위해 야반도주했다. 하지만 홀로 서울로 온 그녀의 주위에는 갖가지 유혹들이 숨어있는데... 주학은 민서를 일년동안 쫓아다니며 그녀와 함께 잠자리를 할 생각만을 하고, 민서는 어떻게해서는 이를 뿌리치려고 한다. 선배들은 둘을 엮어주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다해보지만 결국 둘만이 섬에 떨궈진 상황에서도 주학은 민서와의 잠자리에 실패한다.

자칭 <색즉시공>의 뒤를 잇는다는 이 영화는 <색즉시공>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정도도 떨어지고, 극중 배우들의 연기의 어설픔이나 일관된 사건이 없이 여기저기 좌충우돌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집중력을 저하시킨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섹스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은장도>는 곳곳에서 '꼴리게'만들지만, 그저 그것 뿐이다. 선후배들이 모두 민서의 시골집으로 내려가 열녀문을 부수는 설정인 영화의 마무리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열녀문을 무너뜨리는 의미는 가부장제의 권위주의와 여성억압성을 무너뜨리자는 의미일진대 그것이 열녀문을 무수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심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으로서는 그것은 그저 대학 축제 때 무대에 올라와 차력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어설픈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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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참 오래된 영화다. 근래 본 영화중에 가장 오래된 영화가 아닌가 싶다. 1990년에 개봉했으니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이다. 이번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역시 케이블 티비를 통해서였지만 너무 오래된지라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네바다주의 어느 사막 한 가운데에 20명도 채 안되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러다 사막으로 지진학은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오게 되고 그녀는 며칠동안 이 사막에서 지진계를 통해 이상한 진동을 느낀다. 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고....

어느날 이사를 하던 발렌타인과 얼은 철탑에 매달려 죽은 에드거를 발견하게 되고, 소가 갑자기 사라지고, 전화선이 끊기고, 노부부가 차와 함께 사막으로 매몰된 현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상징후를 느낀다. 그러다 거대한 구렁이 같이 생긴 괴물이 땅속을 통해 사냥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발렌타인과 얼은 냅다 뛰어 절벽으로 괴물을 몰아내 죽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 죽은 것으로 끝날리 없다. 아직 셋이 더 남아있던 것. 이들은 마을에 알려 모두 피신을 하고, 괴물의 특징을 연구하면서 고립된 마을에서 도망칠 준비를 한다.

영화 제목이 <불가사리>인 것은 극중에서 한 마을주민이 이 괴물을 '불가사리'라 지칭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괴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불가사리'인 것이다. 고립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땅속 구렁이 같은 거대한 괴물을 등장시킨 발상은 참으로 재미있다. 영화의 재미는 다름아닌 이러한 괴물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눈이 없고, 땅속으로 헤쳐다니며, 소리와 진동을 통해 대상을 공격하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숨죽이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아무리 뛰어도 진동을 느낄 수 없는 사막의 바위를 안전한 장소로 생각해 내게 된다. 보통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팍하게 생긴 무서운 괴물과는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벌레같은 존재를 좀더 부풀리고 공격적으로 만들었을 뿐인 이 괴물은 영화에 재미를 주는 신선한 발상이다.

영화를 두번이나 봤지만 두번 모두 재밌게 본 것은 시간차를 두고 본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만큼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 본다면 좀 지겨울 법도 하다. ^^;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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