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노릇 7개월째 접어들며 이제 낮에 쇼파에 누워 케이블 티비보는 것이 버릇이 됐다. 참 나쁜 버릇 하나 들었다. 해야할 공부는 안하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내가 항상 못마땅하면서도 항상 그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오늘은 '바람난 가족'을 보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등을 만든 임상수 감독은 영화판의 비주류 감독 중 하나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이지만 난 이 감독을 비주류로 분류한다. 그가 만드는 영화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는 변두리적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에 나오는 이들이 대부분 일종의 아픔이나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상업적 성과가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바람난 가족>은 제목 그대로 가족들이 죄다 바람이 난 영화다. 돈 안되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도맡아하는 30대 변호사 영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 윤리와는 거리가 멀게도 한참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났고, 전직 무용수였고 동네 무용학원에서 춤추는 그의 아내 호정은 옆집 고딩와 바람이 나 섹스를 한다. 영작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로 간암말기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와는 섹스를 안한지 15년이 지났고, 이제서야 할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눈이 맞아 섹스를 한다. 온 집안이 다 바람난 것이다.

아마 애초에 임상수 감독은 '가족이데올로기'를 깨자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가 변해갈수록 우리사회에서 대가족은 핵가족화되었고, 이제는 핵가족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이란 그저 선택적일 뿐이다. 씨족사회를 의미했던 가족은 이제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이 되었고,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의무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보다는 좋으면 계속 같이 살고 아니면 헤어지고 식의 사고방식으로 맺어진 관계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세월이 흘러 아니다 싶으면 다시 깨지고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여기서 결혼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요새는 오히려 동거를 하다 결혼을 한다는 커플이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 적절하지 못해 보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듯 하다. 옳고 그름은 '가족이데올로기'의 전제에 다름 아니다.

가족 모두가 바람이 난 상황에서 이 영화속의 가정을 어떻게 봐야할지 참 난감하다. 자기 좋은 삶을 찾겠다고 바람이 났지만 결국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고 바람이 난 개인 스스로도 자기좋아 바람난 것에 이건 아니다 싶은 심정을 지닌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영작과 호정은 깨지지만 둘의 깨짐은 둘의 만족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가족이데올로기를 깨자구 했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면서 구성원인 개인 또한 상처를 입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쯤되면 영화는 '가족이데올로기'를 옹호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듯 하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혹은 바람난 이들에게 영화는 각자에게 나름의 메세지를 전달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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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영화 '사토라레'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사토라레'가 '왓 위민 원트'보다 늦게 개봉됐다는 점에서 소재의 원조는 '왓 위민 원트'에게 있으나 두 영화를 비교판단하여 우위를 가릴만큼 비슷한 것은 아니다. 소재는 같지만 그것을 영화에서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재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

'사토라레'가 한 개인의 마음 속 생각을 모두가 공유한다면, '왓 위민 원트'는 개인이 주변의 여성들의 마음 속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수와 소수의 시각의 차이를 보인다. '왓 위민 원트'는 한 개인만이 그런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투명인간'과도 같다. '투명인간'은 스스로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몰래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을 읽는 '왓 위민 원트'와는 차이를 보이지만 여전히 한 개인이라는 소수가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마샬은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을 가진 자기잘난맛에 사는 광고기획자이다. 그런 마샬에게 달시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고 그녀를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날 주위 여성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읽는 능력을 지니게 된 마샬은 달시의 머리 속 생각을 읽게 되면서 달시의 아이디어를 몰래 가로채 승진의 기회를 잡고, 결과적으로 무능력자로 전락해버린 달시를 간접 해고시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마샬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달시에게 찾아가 달시의 아이디어를 가로챘음을 고백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게 되고, 달시는 그런 마샬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마샬과의 에피소드는 달시가 중심이지만 달시 뿐 아니라 그의 딸과도 그의 직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한 서류정리 여직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마샬은 그동안 주위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그들의 힘겨운 직장생활의 속감정들을 들춰보게됨으로써 이들에게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타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소통의 부재가 안겨주는 슬픔과 고통이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한 남성의 능력으로 인해 '소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해결자가 '마샬'이라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모순되게도 '남성주월적'이게 되지만, 그가 '남성'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한 사람을 통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주제를 훌륭히 풀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강력추천한다. 남성우월주의자를 위해서건, 여성을 위해서건, 소통의 부재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해서건,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의미있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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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굉장한 영화였다. 내 생애 이렇게 피를 끓게 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내가 밴드에서 '드럼'이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지만, 꼭 드러머가 아닌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대형 운동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퍼레이드를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은 둘째치고라도 그들 각각이 대단한 악기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본을 맡은 닉 캐논이라는 배우와 그의 선배이자 밴드의 리더인 숀을 맡은 레너드 로버츠가 정말 그만한 드럼실력자인지 궁금하다. 그냥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그렇게 그려낼 수 없을 듯하고, 그저 흉내내기만 하더라도 그만한 연주를 보일 수 없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굉장한 드러머인데 이 배우들이 실존하는 드러머일까? 영화를 본 첫번째 의문은 그것이다. 이 둘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드럼실력이 굉장했다. 그들의 1/10만이라도 따라갈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의 목소리와 여태 너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라는 식의 질책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대고 있었다.

영화 내에서의 로맨스와 선후배간의 갈등, 연습장면 등등도 볼만하지만 마지막 씬인 각 학교간의 대결에서 오랜 숙적인 모리스 모건 대학과 애틀란타 A&T 대학이 동점을 받자 승부를 가리기 위해 드럼라인이 마주보고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드러머라면, 밴드의 멤버라면, 혹은 악기를 배우고자하는 지망생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다. 여태 이런 영화를 몰랐다니! 이 영화를 보면 당신의 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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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칙'이라는 단어는 'HOT CHICK' 즉 우리말로 '영계'를 뜻한다. 제목부터 포스터만큼이나 야릇한 뭔가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에로영화는 아니다.

어느날 골동품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황금빛 귀걸이를 훔친 제시카는 양쪽 귀에 끼고 다니다가 어리버리한 좀도둑에게 털린 한 주유소에서 한쪽 귀걸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귀걸이는 주유소를 턴 좀도둑 클라이브의 손에 들어가고 그냥 재미삼아 껴본 클라이브는 다음날 자신의 몸이 바뀌어있음을 알게된다. 이는 물론 제시카 또한 마찬가지. 하루아침에 잘나가는 얼짱 몸짱 여고생이 30대 뚱뚱 아저씨로 바뀌고, 30대 뚱뚱 아저씨는 얼짱 몸짱 여고생으로 변해 순식간에 횡재한다.

처음에는 놀란 클라이브는 이내 새로 얻게된 '무기'인 자신의 몸으로 환락가를 드나들며 스트립쇼를 하고 뒷골목에서는 무자비한 힘으로 남성들을 개패듯 패며 돈을 훔친다. 한편 제시카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집 정원사와 학교 청소부로 취직을 하며 주변인들을 곁에서나마 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는데,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에이프릴의 도움으로 진실에 한발한발 다가가게 된다.

제시카는 그동안 자신의 행적(?)에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의 숙적이었던 동료들을 친구로 맡이하게 되고, 30대 뚱뚱 아저씨의 몸으로 집정원사와 학교 청소부를 하며 아빠와 엄마 사이의 문제도 해결하고 남자친구의 진심도 알게되는 의외의 성과도 얻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여고생들의 섹시발랄함을 볼거리도 제공하는 한편 몸이 바뀐 제시카를 통해 가족들의 사랑과 남자친구의 애정을 확인하게하는 다소 진실된 내용도 담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영화가 보여주려하는 것이 '금발이는 너무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뭘 보여주려는지는 영화 포스터만 봐도 다 알기 때문에, 또한 미국식(?)의 가벼운 애정관과 천박함을 내세우기에 그다지 보고픈 영화는 아니다. 예쁜 여배우들의 몸매를 감상하려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그다지 볼만한 영화가 아니란 말이다. 어찌하다보니 케이블에서해주는 영화를 쇼파에 누워 보게 되었으나 나 역시 이 이상을 기대하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대체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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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참 오래된 영화다. 제목도 생소한 것으로 봐 당시 그다지 흥행하지 않았나보다. 그러나 이 영화 참 재밌게 봤다. 내용은 사실 단순하다. 하지만 그 안에 은근한 매력이 있다. 어린아이를 유괴, 납치해 돈을 뜯어낸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다른 납치사건과 달리 경찰이 개입되지 않고 납치범과 이에 걸려든 가족들만의 긴장관계만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물론 영화 말미에 FBI랍시고 몇명 나오긴 하지만 그저 엑스트라 수준에 불과하다. 액션과 대형사고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끝에서 약간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정도이고, 영화의 주된 긴장과 해소는 두 집단(납치범 집단과 피해자 가족)간의 심리관계로 이루어진다.

남편의 세미나 당일 딸인 에비와 함께 집에 돌아온 캐런은 에비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납치범 히키는 에비를 마빈에게 데리고 있도록 하고, 자신은 집안에서 그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그의 아내는 캐런의 남편인 윌을 호텔방에 감금한 채 전화로 히키의 지시를 받는다.

원칙 1. 30분 마다 마빈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마빈은 에비를 죽인다.
원칙 2. 히키의 아내는 마빈에게 전화할 수 없고, 히키의 전화를 기다릴 수만 있다.
원칙 3. 사건종료는 24시간 이내 25만불을 받아내는 것.
원칙 4. 사건종료후 현장을 이탈할 때는 마빈과 히키, 그의 아내가 함께 행동한다.

원칙 1로 인해 캐런은 히키를 해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해칠 수 없고, 윌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감시하는 납치범들이 계속 살아있어야 에비가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애초 경찰에 연락하는 것을 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납치범들이 이전의 네번의 범죄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칙 2는 히키의 아내가 에비를 살려보고자 하는 과정에서 깨진다. 히키는 돈을 받더라도 에비를 죽일 생각이었고, 윌로부터 진실을 알게된 히키의 아내는 에비에게 자신의 딸과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원칙 3은 결국 25만불을 받기는 했지만 범죄의 막판에 일이 틀어지면서 결국 성립되지 못한다.

원칙 4는 히키의 지시에 의해 깨진다. 히키는 히키의 아내로 하여금 돈을 받고 먼저 비행기를 타고 현장을 이탈하도록 지시한다.

납치범들은 이전의 네번의 완전범죄에서 이 모든 원칙들을 잘 지켜냈고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범죄에서는 원칙들이 모두 무너지면서 이들은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들의 불안은 히키의 죽음과 나머지 두 사람이 체포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원칙이 깨졌더라도 이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범죄가 실패한 것은 납치범들이 피해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이미 그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마빈은 에비의 천식으로 인해 에비가 잘못해 죽을까봐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이후로도 에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에비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영악했기 때문에 마빈은 에비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히키 역시 캐런에게 칼로 베이는 지경에 이르는 등 캐런을 확실히 잡지 못했고, 히키의 아내는 오히려 윌에게 주도권을 확실히 넘겨준 꼴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범죄현장에서는 피해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꿈도 꿀 수 없다. 현실을 영화로 착각하고 그랬다가는 납치범들은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고분고분 말을 들어도 죽을까 말까 한 판에 그들에게 대항하기란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에서의 납치범죄의 형태는 정말 실제로 납치범들이 써먹더라도 완전범죄를 성립시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의 감독 루이스 만도키는 이 영화로 인해 모방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를 했다고 하니 시나리오의 치밀성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한다. 나 역시 이 영화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면 정말 완전범죄가 가능하리라 본다.

영화를 통해 크게 무엇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냥 재미삼아 보는 편이 이 영화를 즐겁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기대치 않고 봐서 재밌게 봤지만 다른 이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 영화를 통해 등장 배우들의 허리웃에서의 가치를 기대하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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