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말도 없이 섹스만 하고 떠는 여자. 어느날 제이는 그녀를 뒤쫒고 그녀가 일하는 극단에서 연극을 보게 된다. 옆에 있던 그녀의 남편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이름이 '클레어'라고 말한다. 남편과 제이는 계속되는 만남에 친해지게 되지만, 남편은 부인과 제이의 불륜사실을 모른다.

이 영화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 영화들이 대개 이유없는 섹스를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아마도 그네들의 욕망을 영화로 담아내는 듯 하다. 프랑스 영화의 섹스는 미국의 섹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은 유머와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섹스이지만, 프랑스의 섹스는 우울함, 상처, 실연 이라는 단어와 더욱 어울린다.

클레어는 가족과 남편에게서 채울 수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 제이를 찾게 되었고, 제이에게서 그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를 묻는 질문은 이 영화에서 빠져있다. 딴지를 걸거나 물음을 제기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감상하고 느끼기 위한 영화이다. 그녀의 행위가 어떤 식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심정적으로 그녀를 이해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영화 내용보다는 섹스신으로 개봉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섹스신이 총 35분이나 되고, 그 수위가 위험해 포르노에 가깝다는 평도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검열을 피해 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보여줄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프랑스식 사고방식이라면 이해갈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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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한참 된 영화를 케이블 캣치온을 통해 봤다. 개봉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고, 예상대로 크게 흥행했던 영화도 아니다. 애초 감독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대박을 터뜨리란 꿈을 지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보통 비주류 영화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배두나가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그랬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제외하고는 배두나의 출연은 대부분 '갓 사회밖으로 나온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털털한 여학생' 정도의 배역이었으며, 영화의 시선은 항상 일상속의 작은 것들에 시선이 머물러있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도 이와 비슷한 영화 중 하나다.

배두나와 김남진, 두 주인공은 영화계에 있어 대박스타는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어줍잖은 떨거지(?)도 아닌 어정쩡한 층에 있는 배우들이다. 이런 배우들과 함께 하는 용이 감독의 데뷔전은 곧잘 어울린다.

사소한 일상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배두나가 도서관에서 미술책의 한켠에 적힌 글을 보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이를 상상하고 사랑하는 배두나는 정작 어릴적부터 함께 커오며 자신을 사랑하는 김남진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친구일뿐... 하지만 누군가 그랬던가? 친구가 연인되고 연인이 부부되고 그러는 거라고? 도서관에서 르누아르 책을 뒤적이던 김남진을 발견한 배두나는 그에게 묻지도 않고 그를 그동안 자신이 찾았던 '빈센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빈센트가 아니다. 김남진을 나중에 이 사실을 밝히려고 했으나 기회를 놓쳤고, 결국 배두나는 이 사실을 안 뒤 김남진을 떠난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는 마음, 김남진은 괴로워한다.

스튜어디스의 꿈을 간직하고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진 배두나. 하늘은 커녕 땅위도 아닌 땅속 지하철을 이끄는 운전사 김남진은 배두나의 꿈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지적인 엘리트도, 책을 많이 읽지도, 그림은 더더욱 모르는 김남진은 배두나의 이상형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배두나는 깨닫는다. 자신을 곁에서 보살피고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김남진 뿐이라는 것을...

흔히 순수한 사랑을 담고 있는 영화는 그렇다. 일상 속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사랑의 애틋함을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어하고, 그 애틋함이 때로는 내가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경험했던, 경험하고싶은 것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첫눈에 반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커가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랑에 목말라 하는 그대들이여(나를 포함하여)! 주변에서 찾아라!

눈물 찔끔 짜내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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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전에 봤던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끝에 가서야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는 심심해서 티비 틀었다가 뒷부분만 봤나보다.

이 영화에서 아는 배우는 니콜라스 아저씨와 숀 아저씨 뿐이다. 니콜라스 게이지를 보니 최근 니콜라스 게이지가 19살짜리 한국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신문기사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전부터 니콜라스 게이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긴 했는데 한국인과 사귄다는 기사를 본 뒤부터는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영화는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버린 알카트라즈라는 미국 본토에서 한참 떨어진 섬에 있는 감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 등 세계각국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미 해병대원들의 유가족 보상문제에 불만을 품고 하멜 장군은 부하들을 데리고 알카트라즈를 점령, 관광객 81명을 억류한다. 요구조건은 그동안 나라를 위해 죽어간 해병대원들의 유가족에게 각각 백만달러씩을 보상하고, 자신과 부하들에게도 돈을 지급하라는 것. 하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알카트라즈를 공격해 인질을 구출할 생각을 하는데, 여기에 이전에 영국의 최고 첩보원이자 알카트라즈에 구금되었다 탈출한 메이슨과 화학무기 전문가 굿스피드를 비롯한 대원 몇 명이 동원된다. 하지만 대원들은 모두 전멸하고 메이슨과 굿스피드만이 남아 사태를 해결짓는데... 영화를 안봐도 뻔히 알다시피 둘의 작전은 성공한다.

나는 영화내용과 재미를 이야기하고픈 것은 아니다. 단순 테러영화고 우리가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테러범을 진압하는 미 정부의 요원들과 테러범의 전투씬의 재미다. 하지만 난 그런 재미외에 다른 것을 얻어냈다.

하멜은 비록 미 정부에게는 테러범이지만 그가 요구하는 조건은 정당하다. 조국을 위해 싸워간 이름없이 묻혀버린 해병대원들의 명예를 살리고 유가족에게 돈을 지급하라는 것은 어쩌면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 의무를 저버리고 속였기 때문에 하멜은 화가 났고 이에 대해 보상을 하라는 것 뿐이다. 전혀 틀린 말이 없다. 하멜이 비록 알카트로즈에서 관광객 81명을 인질로 잡고 있고, 화학무기를 샌프란시시코로 겨누고 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조차도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때문에 동료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처럼 인간성 넘치는 테러범이 있을까? 그는 인질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협박이 저들에게 허풍으로 받아들여지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생명을 죽이지는 않았다.

한편 하멜의 협박을 받은 정부는 하멜의 요구조건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들을 싹쓸이하고 인질을 구출하고 로켓발사를 막을 작전에만 몰두한다.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 조차도 섬 전체를 싹쓸이할 수 있는 결정에 승인한다. 결국 미 정부는 굿스피드와 메이슨의 작전성공이 아니었다면 관광객 81명과 하멜을 비롯한 부하들, 그리고 그들이 보낸 작전요원들까지도 모두 죽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조건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말이다.

81명의 인질의 인명과 로켓이 발사되어 죽을 수 있는 7만명의 목숨 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 말 할 수는 없다. 생명이 하나건 둘이건 숫자는 중요치 않다. 또한 이들 중 유명인사가 들어있건 뒷골목 깡패가 들어있건 그것도 생명의 우월성을 부여할만한 요건은 안된다. 모든 생명은 같은 것이다. 하멜은 그것을 알았고, 미 정부는 그것을 몰랐다. 결국 하멜이 죽고 미 정부가 작전에 성공했지만 정작 진 것은 미 정부고 하멜이 이겼다. 하멜의 자신이 테러범이 되면서까지도 인간 존중의 정신을 지킨 반면 미 정부는 애초에 그런 것은 찾아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 전쟁과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로 족하다. 더이상의 죽고 죽이는 살육전은 없어야한다. 그 시작이 비록 미국이 되기는 했고, 또 이라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인명들이 죽어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여기서 그쳐야한다. 일방적으로 당한 이라크에게는 이 말은 참으로 미안한 말이다. 모든 싸움의 발단에는 미국이 있어 왔고 상대방은 일방적으로 당했기에 그때마다 전쟁은 중단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어떤면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주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나는 약자들의 테러가 발생할 때에도 침묵함으로써 혹은 그들을 두둔함으로써 그들의 억울함을 지켜주고자 이해해주고자 노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라크 테러범들을 지지하지는 않으나 이해할 수는 있다. 무서운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항상 미국에 당하는 그들을 간접적으로나마 편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또 한편 이제 그만하자고 외치고도 싶다. 평화는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없다. 오직 평화만으로 평화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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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대 늑대인간의 싸움을 보여준 이 영화는 별 내용이 없다. '뱀파이어 대 늑대인간의 싸움'이 전부 다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내용이나 의미를 찾자고 보는 것은 아니다. 애초 그런 걸 기대했다면 그는 이런 영화를 봐서는 안된다. 나 역시 그냥 쇼파에 누워 느긋하게 감상했다.

이 영화에 대해서라면 감독이건 배우건 내가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원래 외국 영화배우들을 별로 알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얼핏 이름이나마 들어본 배우들이라도 이 영화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모르는 지하세계를 다뤘다고 해서 아마도 영화제목이 '언더월드'인가보다. 인간이 모르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600년에 걸친 싸움에도 로맨스는 있다. 뱀파이어인 셀린느와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마이클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 싸움의 시작이 서로 다른 종족간의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흔히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떠올리면 한 여름 밤 다 같이 모여 보는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마련. 하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등장함에도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 하나 둘 쯤 나오면 무섭지만 한꺼번에 나오면 무섭지 않은 걸까? 그것도 있지만 이 영화가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액션이다. 액션의 주인공들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일 뿐.

그냥 생각없이 시간때우기 용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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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그렇게 보고싶던 '올드보이'를 봤다. 또 우연히 케이블 티비를 켰다가 "어! 올드보이네" 이제 막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 깐느 영화제에서 최초로 '심사위원장 대상'을 차지해 화제가 되었던 '올드보이'는 '공동경비구역 JSA'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두번째 복수극이다. 첫번째 복수극은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서는 뭐 이런 영화가 다있나, 너무 잔인하다, 라는 식의 느낌만을 간직했던 나는 그것이 비록 눈살찌프리게 하는 잔인한 장면으로 구성되어있을지라도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이를 배제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그 영화는 달리 보인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유지태, 최민식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출연한 작품이기에 꼭 보고 싶었다. 비록 군에 있던 때 개봉된 영화라 영화관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역시 집에서 케이블 티비를 통해 보는 것은 감동이 떨어지는 듯 싶다. 쇼파에 누워 아작아작 과자를 씹으며 그것도 혼자라면 좋으련만 옆에 엄마도 함께 보고 있어서 성행위 장면에서는 비디오도 아니라 빨리돌리기를 할 수도 없어 약간 뻘쭘했다.

15년 동안이나 이유를 모르고 갇혀버린 오대수는 감방에서 티비를 통해 자신의 아내가 살해됐음을 알았고, 살해자가 자신이라는 지목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된다. 모든 것이 철저히 통제되어있는 그곳에서 15년이란 세월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11년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나머지 4년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고통도 생활이 되어버리면 무감각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이곳에 갇히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누가 가둬놨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다 감옥에서 나오게 되고, 그는 하나하나 추적해가며 진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살아남은 딸인 미도와 인연을 맺게 되어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그녀가 딸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되지만 딸에게만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기고픈 오대수는 결국 자신을 15년간이나 감옥에 가둬놓았던 이우진을 향해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왈왈 짖어대며 심지어는 이우진의 구두를 혀로 깨끗이 핥으며 개처럼 행동하고, 자신의 혀를 가위로 잘라내는 등 자학까지 해가며 이우진에게 사정한다. 결국 이우진은 미도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제 사는 낙이 없어진 이우진은 자신의 펜트하우스 꼭대기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권총자살로 생일 마감한다. 오대수는 미도와 함께 인적드문 산으로 올라가 함께 산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흔히 두 가지다.

"뭐 영화가 이러냐?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혹은
"대단한 영화다. '복수'를 주제로 인간내면의 심리적인 묘사를 보여줬다"

함께 영화를 본 엄마는 전자의 반응이고, 나는 후자의 반응이다. 전자건 후자건 어느 것이 바르고 옳다는 기준은 없다. 영화는 지금까지 살아온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홍상수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아무나 함부로(?) 보지 않는다. 멋모르고 봤다가는 돈 아까워 죽겠다는 소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면 그들의 영화를 본다. 일단 평범함을 벗어난 것이 이끌리고, 영화 자체가 주는 느낌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내용이 어떻건 그건 두번째 문제고, 난 색다른 영화들을 좋아한다.

'올드보이'는 확실히 색다르다. 홍상수나 김기덕 같은 색다름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거창하게 '복수'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평까지는 필요없다. 그저 그의 색다름을 즐길 뿐이다. 얼핏 보면 줄거리 하나 없는 이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가뜩이나 내용도 없는 이 영화가 더 어설퍼졌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다음에도 복수전을 보여주겠다며 복수극의 마지막편을 구상중이라 한다. 빨리 나오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천천히 나와도 좋다. 하지만 앞의 두편과 또다른 새로운 복수극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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