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제, 철학 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 강의 

-일곱 가지 테마로 이해하는 철학사 




  비가 많이 왔고 지하철에서 걷기엔 꽤 먼 거리였지만 강의실엔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알라딘 인문 엠디와 도서관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함께 보조 의자를 준비해 강의실을 찾은 이들이 편히 저자의 말에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말을 재밌게 하시는 분 같지는 않고, 유명 저자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을까? 알 수 없다. 


  “인생에 있어서, 행동은 바탕이고, 감각은 목적이며, 사유는 수단입니다.” 나누어 주신 강의록의 1장 들머리 부분의 첫 문장이다. 내 눈은 다음 문장으로 이동했다. “수단인 사유는 행동을 최대한 강렬한 감각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그러한 사유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사유가 바로 철학적 사유입니다. 그러고 보면, 철학은 최대한 감각적인 행동을 향해 있습니다.” 다시 첫 문장으로 눈이 이동한다. “행동은 바탕이고, 감각은 목적이며, 사유는 수단입니다.” 바로 선생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인생은 감각이다. 감각을 추구하고 향유하는 것이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감각적이다. 나의 행동이 어떻게 최대한 감각에 이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사유이다. 사유 자체는 목적이 아닌 감각으로 이르게 하는 수단이다. 그 중 최고의 사유가 철학적 사유. 인생에 있어서, 행동은 바탕이고, 감각은 목적이며, 사유는 수단이다. 


  수치심 등 안 좋은 감각들도 우리의 감각이다. 그러한 나쁜 감각을 버리고 좋은 감각을 찾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행동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행동은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존재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좋은 감각에 더 다가갈 수 있다. 감각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다. 


  ‘반인반마가 없다’, ‘둥근 사각형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없지만, 전자는 후자보다 뭔가 좀 더 있어 보인다. 없다는 느낌이 다르다. 실물이 있다는 것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도 있다는 의미가 다르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존재한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존재 방식이 다르다’ 라고 말한다. 사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존재 방식도 제각기 다르다. 존재에 있어 가소성이 높다. 가소성이 높다는 것은 인간은 환경, 상황에 따라 그 존재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장 특이한 존재 방식을 가진 것. 무(無). 헤겔에게 있어서 존재와 무가 변증법적 지양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것이 생성이다. 우리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 놓여 있다. 내가 무엇을 생성하고 무엇을 소멸한 것인가가 나의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 생성의 시공간적 지표가 ‘지금 여기’이며, ‘지금 여기’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우리가 지금, 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금은 지금이 아니다. 


  밀도와 강도는 질적인 문제이다. 쇠 1킬로그램과 소금 1킬로그램은 양적으로 같지만, 질적인 밀도는 다르다. ‘지금 여기’는 계속해서 생성 소멸된다. 나 개인의 지금 여기, 사회의 지금 여기, 온 우주의 지금 여기가 모두 생성 소멸한다. 인간은 소우주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소우주다. 인간은 존재를 현상으로 바꾼다. 존재는 지금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존재가 현상으로 바뀔 때에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예술 현상, 사회 현상, 정치적 현상, 경제적 현상, 물리적 현상, 생리적 현상 모두 마찬가지이다. 


  존재와 현상은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 어떤 주장은 현상을 보고서 할 수밖에 없는데, 진리는 존재가 드러났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다루는 학문이 인식론이다. 인간은 주체이자 대상이다. 도구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훗설의 에포케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빼고 보는 것이다. 불교의 해탈 또한 마찬가지다. 사물이야 말로 존재의 가장 가까운 통로이다.


  형식이 없는 예술은 없다. 그 형식은 언어적 감각이 바탕이 된다. 언어를 도구로 삼아 개념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 개념은 하나의 수단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기의는 개념, 기표는 기호의 감각이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는 감각적으로 다르다. 


  지금 여기가 밀도가 높다는 것은 매순간 감각이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잘 살기 위한 것이다.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 강연은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어 끝났다. 세 번의 문답이 있었고, 첫 번째 답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찌른다.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철학 사전에 담긴 여러 생소한 개념들은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개념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곰곰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다음 강의는 16일 월요일, 24일 화요일에 있다. 강연 신청은 알라딘 공부방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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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지음 / 꾸리에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시대의 증언작이자 철학자 김상봉 님의 본격 현실 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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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4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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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6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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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혁명 - 리딩멘토 이지성과 인문학자 황광우의 생각경영 프로젝트
이지성.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2월
절판


"우리는 생업뿐 아니라 정치에도 마음을 씁니다. 하여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조차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세상일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깁니다."(투키디데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4쪽

혁명은 '앎'에서 시작돼 '삶'으로 완성된다. (이지성)-4쪽

일단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우물이며, 더 큰 세상이 밖에 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렵고 어렵지만 이를 무릅쓰고 우물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개구리는 우물의 한계를 깨닫는 '생각의 혁명'을 통해, 우물을 탈출하는 '삶의 혁명'을 꾀한다. 그로써 더 넓은 세상을 향유하는 '생존의 혁명'이 가능해진다. -36쪽

그레이트북 프로그램(시카고 플랜)

첫 번째는 고전에서 자신만의 롤모델을 발견하라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가치를 찾으라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이 발견한 가치에 꿈을 품으라는 것이었다. -43쪽

"사람은 항상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능히 고칠 수 있는 법이니 마음이 괴롭고 계획이 어긋난 뒤에야 분발하고, 표정으로 나타내고 소리를 낸 뒤에라야 깨닫게 된다."(<맹자>, '고자장구')-48쪽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워렌 버핏)-49쪽

"내 머리에 모자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마찬가지로 나 대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비트겐슈타인)-54쪽

"끝나버리기 전에는 무슨 일이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라."(키케로)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는 것"(스피노자)-86쪽

"한 마리의 생선을 주면 한 끼의 식량이 되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의 식량이 된다."(<탈무드>)

생각은 우물을 파는 것과 닮아서 처음엥는 흐러져 있지만 차차 맑아진다.(중국 속담)-104쪽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이 계속되지 않을 뿐이다. 어제 맨 끈은 오늘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지기 쉽다. 나날이 끈을 잡아매야 하듯 사람도 그가 결심한 일은 나날이 거듭 조여야 변하지 않는다."(밀)-110쪽

차별이란 서로의 우위를 상정하는 데서 시작된다.(황광우)-126쪽

"혁명 그 자체는 작은 일이 아니지만, 작은 일에서 발생한다."(아리스토텔레스)-135쪽

"나를 완성시키려면 정신적으로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맺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자신을 살찌워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톨스토이)-150쪽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 축에 달린다. 수레바퀴의 쓰임은 빈 공간에 있다. 흙을 이겨 그릇을 만든다. 그릇의 쓰임은 빈 공간에 있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 방을 만든다. 집의 쓰임은 빈 공간에 있다. 때문에 무엇인가 있는 데서 이로움을 얻지만, 사실 쓰임의 근본은 빈 곳에 있다."(노자)-156쪽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인디언 속담)-158쪽

"율곡은 현실 파악을 위한 역사의 단계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혁명의 단계인 ‘창업’, 둘째는 보수적으로 유지되는 ‘수성’의 단계, 셋째는 혁신이 필요한 ‘경장’의 시기였다. 율곡은 자신의 시대를 경장의 시기로 파악했다. 경장이란 오래된 관습을 혁신하고 폐단을 바로잡아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것을 말한다. -249쪽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음은 한 발자국에 있다. 두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음이 두 번째 발자국에 있는 것을 경건하다 한다. 만일 한 발자국을 내딛었는데 마음이 두 발자국에 가 있고 두 발자국을 내딛었는데 더 먼 발자국에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경건하지 않은 것이다. 글씨를 씀에도 일을 함에도 마찬가지다. 첫 글자를 쓸 때 마음은 첫 글자에 있어야 하고 첫 번째 일을 할 때 마음은 그 일에 가 있어야 한다. 오로지 일을 함에 전일하게 하는 것이 경건이다."(<수기>)-251쪽

생각하면 책이란 참 희한한 물건이다. 본디 종이 위의 활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의 뇌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 그 전류가 사람의 손끝에서 글자로 변환되고, 글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책이 된다. 책이란 정신이 물질화한 증거물이다. 책이라는 물질을 타고 우리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 현자들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황광우)-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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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4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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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4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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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5: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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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1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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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화전쟁 - 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2
박단 지음 / 책세상 / 2005년 4월
절판


(프랑스 학교 내 히잡 허용 금지에 대해 반대하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앙리-레비는 이슬람의 억압으로부터 여중생 세 명을 해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을 학교에서 퇴학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속 학교에서 라블레와 볼테르의 많은 작품을 읽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이들은 게토 속에 함몰되어버릴 것이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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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편집자
캐럴 피셔 샐러 지음, 허수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월
절판


세상의 그 어떤 열정도 다른 사람의 글을 다듬는 열정에 비할 바가 아니다. - H.G.웰스-5쪽

당신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편집한 작품을 읽어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독자다.-27쪽

부정확하고 일관성이 없는 글은 작가의 권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독자의 집중과 이해를 방해하며 출판사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목차에 쪽수가 잘못 기재되어 있는 글은 그 글 속에 덧붙인 표의 내용도 꼭 틀린 것만 같다.
-37쪽

신뢰란, 작가가 지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이면 확실하다는 믿음을 뜻한다. 편집자가 일하는 이유는 독자의 마음에 들도록 글을 다듬기 위해서다.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여행길에 오른 독자가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빨간 불에 걸려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할 줄 안다는 것에서 이미 만족감과 긍지를 느끼기 때문에 편집자는 이 일을 한다. -37-38쪽

만약 작가가 원하는 것이 보다 큰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된다면 이때 편집자는 바로 참견을 해야만 한다. -38쪽

‘까다로운 작가’란 자신의 원고가 어떤 식으로든 교정되는 것을 마다하거나 교정에 대해 이야기할 마음조차 없는 작가를 뜻한다. -74-75쪽

내 경험에 비춰보면 출판 경험이 많은 작가일수록 편집자에 대한 아량이 있고 오히려 편집자의 존재를 고마워한다. 그대로 두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을 일을 편집자가 미리 찾아준다는 사실을 경험 많은 작가들은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대개 다른 일로도 무척 바쁘기 때문에 작품의 마무리 단계에서 편집자가 나서주는 것을 되레 반긴다.-76쪽

일단 편집자가 편집을 시작하면 작가는 자신의 원본 파일에 그 어떤 수정도 절대로 가해서는 안 된다.
-104쪽

(작가에게) 문제가 되는 대목에서는 왜 편집자가 그 대목을 손보려고 했을지 생각해보라.-112쪽

(작가에게) 다음 두 가지 행동은 피하라. 하나는 노발대발하며 편집자에게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악의 경우로서 편집자 때문에 노발대발하며 그 편집자의 상관에게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113쪽

"대체로 훌륭해서 손볼 데가 없었던 원고의 저자는 편집자를 칭찬하는 데에 무척 너그럽다. 반면에 다듬느라 피땀을 흘려야 했던 원고의 저자는 편집자를 몹시 푸대접한다."-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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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2-02-09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싶었는데~^^

마늘빵 2012-02-09 09:11   좋아요 0 | URL
큭큭. 재밌어요. 질문자한테 바로바로 답변해주지 않고, 딴 얘기(?)하는듯 하다가 마지막에 센스 있는 답변을 던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