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당신의 판단, 정말 최선입니까?

 

 

 



  "당신의 판단, 정말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금태섭 변호사의 본격 법 이야기 두 번째(라고 기억한다). 궁리에서 나온 <디케의 눈>을 읽었고, 2년전쯤인가 이화여대에서 조국 교수와 함께 한 강연회도 무척 재밌었다. 당시 조국 교수의 인기가 너무 많아-그래도 지금처럼 모든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인물은 아니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수많은 여대생들이 조국 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길에 서는 사태가 빚어졌고, 다른 한 편에선 함께 강연을 했음에도 줄이 전혀(?) 없는 금태섭 변호사가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고 기억한다).  

  강의의 주제는 이번에 출간된 <확신의 함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보통 책이 출간되면 그에 맞는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간혹 비슷하지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엔 후자인 것. 책을 안 읽은 분들에겐 전자가 더 낫겠지만, 이미 읽은 분들에겐 후자가 더 신선하고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 '금태섭 변호사와 함께하는 국민참여재판 아카데미'라는 주제답게 2008년 한국에 도입된 배심 제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배심원으로 뽑힌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아직 배심 제도가 본격 활성화되지 않아서인지 관련된 내용을 접한 적이 전혀 없다. 다음은 금태섭 변호사의 강연 내용이다.  

  "2008년 배심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사건 발생 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은 굳이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법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을 판단하는 것에는 법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으며, 일반인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죄와 무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법관의 영역이라고 봐도, 여기까지 도출되기 위한 사실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판사는 기존에 쌓인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명확히 균형있게 사실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기존에는 재판이 서류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구두 변론이 가능토록 하였다. 배심원들은 서류가 아닌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판단을 하게 된다. 때문에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현재 법 전문가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법률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고, 전관 예우 등의 폐해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배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으로는 살인, 뇌물, 강도 등의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재판은 거의 하루 만에 끝내야 한다. 배심원들의 생활을 빼앗으면서 오래 끌 수는 없기 때문. 배심원은 열두 명을 앉히는데, 그 중 세 명은 예비 배심이다. 그러나 누가 예비 배심인지 알려주지는 않으며, 이는 재판 과정을 진정성 있게 듣게 하기 위함이다. 재판이 모두 끝나면 그때 예비 배심을 알려준다."  

  "배심원은 주민등록 추첨으로 후보를 선정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들만 부르고, 후보들 가운데 재판 배심원으로 선정하기 부적합한 경우는 배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지인이 폭력, 살인 등을 당했는데 비슷한 사건에 배심원으로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 또,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 후보들 중에서 배제했으면 하는 사람을 지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배심원들의 생김새나 분위기 등을 보고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을 직감적으로 선택하는 것."  

  "배심 제도의 난점으로는, 배심원들의 재판 이전의 생각이 변론을 통해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 또, 지역의 평균적인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부르기 어렵다는 것, 배심원이 사건 당사자(피고)와 아는 사이인 경우 유죄 평결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배심원들끼리 토론을 할 때 동전 던지기를 통해 유무죄를 결정한 사례가 있었는데 미국에선 이를 유효하다고 보았다는 것,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표정을 드러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즉, 판사는 유죄라고 생각하는데, 배심원들이 무죄라고 하면 배심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기에 그들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미리 내색을 한다는 것." 

   금태섭 변호사는 배심 제도가 대략 이러한 난점을 드러냈지만, 난점을 알고 있으니 보완해 나가는 방안을 찾고 있으며, 재판 과정에 시민이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검사로서, 또 현재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겪는 여러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이야기했기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여러 강연을 갔지만 Q&A 시간에 이렇게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질문에 질문에 질문에,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여전히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시간이 오래 지체되면서 금태섭 변호사는 '이제 그만!'을 속으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배려하여, 어느 선에서 멈추었고,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아쉽게 강연장을 나서야 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대로, 옳다고 믿는대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움츠려들거나 자기자신을 꺾는다면 그 사람은 딱 거기까지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일이 지난 뒤 후회 없이 살고자 하면 그 상황에서 소신을 꺽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 질문자 덕분에 이와 같은 말로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계속 검사로 살고자 했지만 검찰에 실망도 많이 했고, 자의반 타의반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그는, 이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서기도 한다. 조국 교수가 강단과 시민사회에 머리를 제공하는 학자라면, 금태섭 변호사는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하는 실천가이다. 그를 다른 자리에서 또 만나기를 기대한다. 다음엔 세 번째 만남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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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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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폭력으로 답하는 것은 결국 폭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별도 없는 어두운 밤하늘에 더 깊은 어둠을 더하는 것이지요." (마틴 루서 킹)-82쪽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151쪽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진리가 산맥의 저쪽에서는 오류가 된다."(파스칼)-169쪽

힘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확실한 사실은,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196쪽

"학생의 부당한 이유 없는 출석․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관계자 지도․감독하의 정당한 수업․연구 활동을 제외한 학교 내외의 집회․시위․성토․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 (이 조항을)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1974년 4월 3일 시행 대통령 긴급조치 4호 5항) -220쪽

"나의 관점이 당신의 관점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당신의 주장이 절대로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사르트르)-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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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0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지난주엔가 한겨레21에서 이 책 광고 보고 보관함에 넣어두었거든요. 리뷰 써줄거죠? 아프님 리뷰 읽고 사야겠다.

마늘빵 2011-08-09 22:43   좋아요 0 | URL
응응, 술술 잘 읽히고, 재밌어요. 리뷰 쓸 게요. ^^

비로그인 2011-08-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늘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시작하는데, 왜 늘 어떤 이들은 이걸 약점으로 잡는지 모르겠어요.

마늘빵 2011-08-10 21:49   좋아요 0 | URL
음, '누구나 늘 틀릴 수 있다'라는 걸 마음에는 두어야겠지만, 밖으로 표현할 경우 그렇죠. 주의주장이 약해보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이 점을 들어서 넌 그렇게 생각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그냥 해버리면 -_- 더 할 말이 없죠.
 
기획회의 300호 2011.07.20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대표적인 출판 잡지, 기획회의. 잡지의 제목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잡지가 되어버렸는데, 때문에, 출판 관련 잡지를 찾으려고 검색하는 사람들도 별다른 정보가 없다면, 이 잡지를 찾아낼 수 없을 것.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후 몇 차례 구입해 보았다.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이다보니 매회마다 기획을 새롭게 할 수는 없을 것.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신선한 정보와 기획을 원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300호는 기념 특집으로 '한국의 저자 300인'을 선정했고,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에게 글을 의뢰했다. 특집답게 책의 분량도 늘어났고, 가격도 두 배다. 판매지수를 봐도 과월호에 비해 월등히 많이 팔렸음을 알 수 있다. 기획이 독자를 사로잡고, 책의 판매량을 좌우하는 것. 굳이 베스트셀러 단행본이 아닌 출판 잡지만을 놓고봐도 알 수 있다. 300호에 300인의 저자. 인원 수의 선정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당한 시점에서 정리는 잘 했다. 혹, 어떤 저자는 자신이 빠진 것에 대해서 서운해 할 수 있겠다.

  기획회의 입장에서는 300인의 저자를 선정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아마도, 인터넷 서점 창을 열어놓고 분야별로 스크롤을 쭈욱 내리면서 검토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평소 저자 위주로 살펴본 사람이어도 이렇게 300명만 골라 선정할 때엔 분명 빠지는 이들이 있을 테니.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거나 빠뜨리지 않도록 검토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쏟았을 것 같다. 한 번쯤 이렇게 한국에서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하는 저자들이 누가 있는지 정리하는 것도 괜찮고, 내가 평소 관심 갖고 있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 저자들로는 누가 있나 훑어보는 계기도 된다.

(참여하신 자문위원 중 한 분께서 다음과 같이 선정 과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문광부의 우수 교양 도서를 비롯하여 최근 5년간의 각종 추천 도서 목록, 기획회의에서 언급되었던 저작물 목록 등을 취합해서 1차 참고 목록을 만들고 선정 자문 위원들이 그 목록을 놓고 첨삭을 해서 최종 후보 목록을 만든 뒤에, 필자들에게 제공하고 여기에 각 주제를 맡은 필자들이 글을 쓰시려는 방향에 따라 다시 첨삭을 가하고 최종적으로 선정 자문 위원들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선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념 특집에서 좀 아쉬운 것은, 필진 후보가 없었는지 썼던 사람이 여기저기 수 편씩 썼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심지어 글을 네 편 가량 쓰기도 했는데, 여러 편 쓴 필진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기획회의가 300인을 선정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누가 그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여기 실린 글이 함량 미달이거나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거나 하진 않는다. 한 사람이 여러 글을 썼더라도 중복을 피하려 했을 것. 그치만 글을 읽는 맛을 위해 한 사람이 각각 하나의 글만 썼으면 어땠을까.  

(위와 관련해서도 자문위원 중 한 분께서 기획회의 자체의 열악한 운영 시스템으로 인해 빚어진 불가피한 일임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매 회 이렇게 신선한 기획으로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한 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기구독을 신청하기엔 내겐 그 한 방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매번 눈길이 갈 때만 지갑을 연다.  

  덧) 아쉬운 점 하나 더. 책의 후반부에 300인의 저자들의 대표 저작물을 표 안에 함께 기록해두었는데, 해당 저자의 대표작을 정작 빼놓고 부차적인 저작물을 넣은 경우가 보인다. 탁석산의 경우는 심했는데, 그의 주 저작은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이라고 봐야 한다.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와 같은 책은 그를 대표할 수 없다.  

('덧'과 관련해 자문위원 중 한 분께서 잡지의 어디에도 '대표작'을 선정했다는 말은 없었지만, '최근 5년작'이라고 표기하지도 않았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독자가 '대표작'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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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8-0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지가 다 있네요. 신기하다.
아프님이 출판계에 있었다는게 이런걸 보면 생각나요~

마늘빵 2011-08-04 09:46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책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본다는. ^^

로쟈 2011-08-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필진으로 끼는 바람에 알고 있는 내용을 덧붙이자면, 300인 명단(실제론 좀 넘습니다)은 기본리스트를 바탕으로 선정자문위원들이 분야별로 리스트를 뽑고 거기에 각 필자들이 조금 더 보탠 식입니다. 최근 5년간 출간된 책 위주구요(그래서 누락된 저자들도 있습니다), 학술서는 배제했습니다('학술적'인 책도 없진 않지만요)...

마늘빵 2011-08-04 10:16   좋아요 0 | URL
앗 네. 자문위원들이 검토를 하여 선별한 거군요. 거의 빠짐 없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대표작 선정은 좀 문제가. 위에 언급한 탁석산 같은 분이 보면 기분이 별로겠다 싶어요.

똥개 2011-08-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말씀... 로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최근 5년간'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가장 지양하려고 했던 건, 인터넷 열고 키보드에 손가락만 올려놓으면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나열하는 건 가급적 피하자는 거였습니다. 강준만 교수처럼 다작인 경우는 최근 5년간의 저작목록만으로도 엄청난 분량이 나오는데 그걸 다 수록할 수는 없고, 또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10년도 넘은 책을 대표작이라고 지목하는 건 자의성의 여지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선 최근엔 이렇다할 저작을 못 내놓고 있는 것으로 비칠 소지도 다분하지요. (다시 찾아보니 '대표작'이라는 표기는 어디에도 없네요. '대표작'이 아니라 '최근작'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최근작'이라는 표기도 하지 않음으로써 '대표작'으로 오해될 수 있게 한 것은 분명 편집 실수이겠습니다만...

똥개 2011-08-0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자 중복 문제는 안타까운 부분이기는 한데.. 그게 현재의 현실입니다. 기획회의가 살림이 넉넉하다면, 평소에 필자 발굴 노력도 좀 하고, 넉넉한 원고료로 계속 글을 쓰실 지면도 드리면서 격려도 좀 하고 그럴텐데, 상근인력은 한 달에 두 번 마감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의 최소한의 규모로 운영되는 상황인지라... 잡지의 파워 문제도 크고요. 가령 기껏 신선한 필자에게서 글을 받았는데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부득이 버린 원고도 있는데, 이런 건 평소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잡지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잇는 문제입니다만, 그런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급조가 불가피해지는 건 커뮤니티가 형성될 만큼까지는 매체 파워가 미약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지적하신 아쉬뭉을 피하려면, 당장은 모자라더라도 더 응원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다른 매체들이 다 죽어버려 글 좀 쓰실 만한 분들이 안정적으로 글쓰기를 할 지면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나마의 아쉬운 모양새로라도 단 한번의 결호도 없이, 또 부실한 내용으로 구색맞추기식 지면때우기를 하지 않으면서 버텨내고 있는게 차라리 기적에 가까운 일로 보입니다.

똥개 2011-08-0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뒷얘기'삼아 한가지 귀띔해드리자면, 인터넷 서점창은 아니고요. 최초의 목록은 문광부의 우수교양도서를 비롯하여 최근 5년간의 각종 추천도서 목록, 기획회의에서 언급되었던 저작물 목록 등을 취합해서 1차 참고목록을 만들고 선정자문위원들이 그 목록을 놓고 첨삭을 해서 최종 후보 목록을 만든 뒤에, 필자들에게 제공하고 여기에 각 주제를 맡은 필자들이 글을 쓰시려는 방향에 따라 다시 첨삭을 가하고 최종적으로 선정자문위원들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선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각 단계에서 첨삭을 가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인터넷서점에 축적된 정보가 유용하게 이용되었겠지만, 처음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포함하여 서점의 자료를 저본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늘빵 2011-08-04 22:52   좋아요 0 | URL
헙,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제 추측에 대한 사실 확인을 공개적으로 해주셔서 궁금해 하실 다른 분들도 시원할 듯합니다. ^^ 선정작에 '최근 5년'이라는 말이 없어 당연히 대표작으로 여겼습니다. 다른 분들은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서 이전작이나 최근작이나 대표작으로 삼아도 될 것 같은데, 탁석산 샘의 경우는 활동이 뜸하신데다 최근작이 실용서에 가까워 그를 모르는 분들에겐 다소 왜곡된 이미지를 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문제제기를 해봤습니다. 기나긴 해설 감사드립니다. ^^

똥개 2011-08-05 14:18   좋아요 0 | URL
'최근 5년' 외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작고하신 분들은 제외했고요. 문학적 평가가 우선되어야 하는 시/소설 등 순수창작물도 제외했습니다. '왜곡된 이미지'를 말씀하셨는데, 꼭 탁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어느 저자든 현재의 저작 활동이 펼쳐지고 잇는 지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왕년'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전혀 고려의 지점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 꽤나 의미있는 저작을 남기신 중요한 저자임에도 최근 5년 동안 1종 이상의 출간도 없는 분들은 과감하게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5년이라는 기준이 자니치게 자으적이랄 수는 있겠지만(왜 10년은 아닌가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하겠죠.) '이 시대의 대표저자'라는 기획 취지를 살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탁선생님은 과거에 어떤 책을 내셨든 '이 시대'에 저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분이 최근에 내신 책들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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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름 자체가 이미 상품성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저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자신감이 있거나. 이 책은 어디에 해당할까. 저자의 첫 책인듯 보이니 당연히 전자는 아니고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책 제목에 왜 이름을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출판 편집자와 저자에게 물어야 할 것. 결론내릴 순 없지만 후자로 추측해본다.

  표지는, '서양 고전 껍질 깨기'라는 제목을 너무 의식한듯 서양 작가들의 인물 스케치를 그려놓고, 노동자들이 머리 위에 올라타 머리를 깨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인물의 머리를 고전의 껍질에 비유하고, 이것을 깨는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제목과 표지가 일치하기는 하지만, 표지 그림은 조금 섬뜩하다. 두 개골을 망치로 부수는 그림이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목도 그냥 정직하게 '서양 고전 수업'과 비슷하게 가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국어교육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현대 소설을 공부했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과 논술을 가르치고,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의 결과물이라고 봐야겠다.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 우리, 세상, 이상으로 점차 범위를 확대한다.

  각각의 장으로 들어가면 한 고전 작품에서 추출한 주제 제목을 달고, 해당 고전에 대해 간단히 해설한다. 이후 고전의 주인공과 가상 대화를 시도하면서 인물이 처한 상황과 상황에서의 행동 원인을 심리적으로 추측해보게 한다. 다음으로, 세 가지 질문을 차례대로 던져 작품과 작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했다. 교사의 역할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대표 독서록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교사의 마지막 평가 내지 해설을 첨가한다. 관련 책 소개 코너는 책의 보너스다.  

  이 책 안에는 열두 개의 고전이 들어가 있고, 대부분 청소년 추천 도서로 많이 거론되는 서양의  고전 작품들이다. 이방인, 그리스인 조르바, 인형의 집, 오만과 편견, 햄릿, 노인과 바다, 걸리버 여행기, 오뒷세이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984, 달과 6펜스, 인간의 조건. 마지막 '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의 저작이 아닌 앙드레 말로의 작품.  

  서양 고전을 섭렵하지 않아서인지 언급된 작품 중 내가 완독한 것은, 걸리버 여행기와 1984 둘 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선물 받았지만 아직 읽지 않았고, 오만과 편견은 영국 드라마와 영화로만 봤다. 햄릿은 일부 지문을 접해봤을 뿐이고, 노인과 바다는 고등학교 때 읽다 말았다. 오뒷세이아는 구입했으나 너무 두껍고 읽기 어려워 장식용으로 꽂혀 있으며,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의 작품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단행본은 고등학생들과의 고전 수업의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고, 그대로 활자로 구현한듯 하다. 불행히도 언급된 고전 작품들을 두루 접하지 않아 '읽음'을 전제로 한 이 수업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해당 고전 작품을 이 책과 함께 읽거나 고전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접한다면 얻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흥미로운 세미나 방식이고, 그대로 다른 교사가 현장에서 적용해도 유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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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 Insight 2011.8
이코노미인사이트 편집부 엮음 / 한겨레신문사(잡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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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오는 경제 잡지다. 한 10년 전쯤 한겨레21 주간지를 열심히 정기구독하여 보다가 시사IN 창간 때 일 년 간 그 매체를 정기구독하였다. 이후엔 간간히 한겨레21과 시사IN을 가판대에서 구입해 보다가 다시 한겨레21을 정기 구독하는 중이다. 광고지를 넘기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라는 이 잡지를 발견했고, 주제도 끌리고, 색다른 포지션을 취한 것 같아 구입하였다.  

  종이질은 주간지보다 훨씬 낫고, 분량도 조금 더 두껍지만, 주간지와 달리 이 경제 잡지의 가격은 무려 12,500원이다. 주간지가 3,000원인 걸 생각하면 무척 높은 가격이다. 어쩌면 이 잡지의 가격이 높은 게 아니라 주간지가 여태 3,000원인 걸 신기해 해야 할 지도. 한겨레신문사에서 내는 매체는 한겨레21과 씨네21이 있었지만, 씨네21은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고 들었고, 이제 빈 자리를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메꿀 모양. 받아든 책이 16호이고, 월간지이므로 창간한 지 일년 반이 조금 안 되었다.  

  기존의 경제 분야 정기간행물들은 거의 친기업적이고, 친정부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바람에 기업과 정부의 광고지에 다름 아니었는데, 이 잡지는 전혀 다른 포지션을 취한다. 진보적 시사 주간지가 경제 분야 기사를 쓰는 관점에서 기사를 구성한다. 당연히 특색을 지닐 수밖에 없다. 여러 경제지들에서는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루고,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다르니, 나름 이 매체가 시장의 틈새를 잘 공략했다고 봐야겠다.  

  이 잡지는 여타 경제지들과 같이 광고를 대신한 기사를 싣지 않고, 윤리적 소비나 공정 무역, 대기업과 중소 기업의 관계 등 마땅히 경제 분야에서 다루어야 하나 시사 분야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밀도 있는 기사를 담는다. 8월호의 주제도 '티셔츠는 알고 있다'이다. 부제는 '착한 기업의 나쁜 짓'. 10년이 지나도 '착한' 가격에 티셔츠를 공급하는 한 회사가 어떻게 상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 파고드는 기사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대충 예상할 수는 있다. 노동 착취가 그 이면에 있을 것.  

  혹시나 해서 구입해 본 잡지가 마음에 쏙 들었고, 다음 달 것도 나오면 구입해 볼 생각이다. 정기구독이 가능하다면 고려해보겠는데, 이상하게 정기구독 안내 문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정기간행물이라면 모든 매체가 정기구독을 선호할 텐데 안내 문구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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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8-0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일단 땡투누르고 구입들어갑니다 ^^;;

마늘빵 2011-08-03 20:45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