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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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14쪽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사라진 물음, "왜 대학을 가는가?" 그리고 이상한 물음, "왜 대학을 그만두는가?" 나는 세 장의 대자보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이 ‘사라진 물음’과 ‘이상한 물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또한 내가 끝내 놓을 수 없었던, 나 스스로에게 던져 왔던 삶의 수많은 물음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조심스럽게 꺼내놓고자 한다. 나의 글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받아 쓴 것이기에, 문제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도 답을 찾아가는 것도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20쪽

스스로 경험하고 해낸 것 없이 퇴화되어 버린 존재는 모든 영역에 걸쳐 ‘소비자’가 되었다. 이것이 국가와 대학과 시장이 만들어 낸 최종의 인간상이다. 우리는 만들어진 상품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일에는 생의 의욕을 느낀다. 또한 그것들을 소유한 자신을 다시 하나의 상품으로 팔아 돈을 버는 데는 엄청난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벌고, 상품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 해내는 일에는 열정과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다. -58-59쪽

88만원 세대라는 담론을 습관적으로 쓰는 이들은 나의 행동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저항이 시작됐다’고 자동적으로 말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들은 나의 대학 거부에 대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니 ‘함께 하자’고 말해왔다. 청년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관심에는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런데 무엇이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것인가? 무엇을 함께 하자는 것인가?
-78-79쪽

정말 인문학인가? 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삶’ 사이는 머리와 가슴보다 더 멀지 않은가. (중략)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린 삶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리 속에 집중적으로 집어넣는 인문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나는 나 자신과 친구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접하며 절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인문지식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 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86-87쪽

세상 모든 좋은 부모님들께 부탁 드린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말씀 드린다.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유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당신이 하고 싶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끔찍이 아끼고 믿고 잘해준 아이의 내면에 지금 무슨 일이 생겨나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당신은 결코 아이의 내밀한 영혼을, 아이만의 상처와 비밀을, 그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부모 앞에서 태연히 웃고 있는 고뇌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중략) 그저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보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스스로 저지르고 실패하고 성찰하고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서툴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고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저항에 기꺼이 져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100-101쪽

돌아보면 ‘불온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꿔 왔던 것 같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불온한 생각,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불온한 생각, 돈이 주인이 아닌 인간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불온한 생각, 정의와 평등의 세계를 실현하겠다는 불온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거대한 주류질서를 뒤엎고 세계를 이만큼 진보시켜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순수한 가슴이 부르는 길을 따라 진리와 정의를 상식의 사회로 여기까지 밀어왔다. 오늘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는 민주화와 자유의 공기는 바로 그런 앞선 젊은이들의 피 어린 발자국을 딛고 피어난 것이다. -113-114쪽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 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117쪽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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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를 못 들었으니 강의 엠피쓰리라도 들어본다. 작년 2월 5일에 시작된 첫 강의 내용이다. 엠피쓰리 입수한지는 좀 되었는데 하나도 안 듣고 있다가 이번에 책 나온 겸 해서 책과 진도를 맞춰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제 1강. 호메로스는 이름만 나온다. ^^ 강의 오리엔테이션과 고전 강의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강의 핵심 내용은 야망을 버려라! 야망을 가지면 삶이 괴롭고, 타인을 밟고 일어서야 하고, 결국에는 자신을 망친다. 경제 발전이 침체되었다는 것은, 비로소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상황을 반겨야 한다. 아, 경제가 왜 이래,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아 공부를 해야겠구나, 라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성장률이 멈췄다. 달리기를 하다 쉬고 있다. 이때 내가 인생을 얼마나 달렸나,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며 성찰하고 관조하는 시기다. 직장에서 잘렸다. 그러면, 별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고... 성장률이 멈췄다. 걱정을 한다. 우리가 박정희 이래로 성장률 얘기를 쭉 들어왔다. 성장률이 멈추면 종 땡땡 울리면 침 질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성장률의 개가 되었다. 성장률이 멈췄다. 잘됐네, 공부해야겠네. 지성인이 되는 길이다.

  고전은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육체는 지지만, 정신은 영원하다. 3000년 전의 호메로스가 자신이 쓴 책이 한국에서 읽히리라 생각을 했겠느냐. 그런데, 우리는 지금 호메로스를 읽고 있지 않느냐. 그럼 책을 써야 한다는 말이냐. 아니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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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4-1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군주론 읽고 있습니다. 강유원 샘 강의는 쉬워서 공부하고싶은 생각을 마구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막상 공부를 대하면 좌절하게 만드는 약점도 있습니다. ^^

마늘빵 2010-04-15 11:56   좋아요 0 | URL
강의는 매일 하나씩 들으려고요. ^^ 책읽는 속도보다 많이 느려질 거 같아요.

2010-04-15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0-04-1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ㅡ 재밌겠다..
이 글을 보니까 예전에 수업들으면서 메모하던 기억이 물씬 풍기네요.

읽다만 [일리아스]가 먼지 쌓인채 울고 있는데요,
재밌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안읽고 있는지 ㅋㅋ

마늘빵 2010-04-16 17:56   좋아요 0 | URL
다시 대학 가고 싶네요. 지금가면 열심히 할 텐데. 일리아스는 저도 천병희 선생님 역으로 가지고 있는데, 먼지만 쌓입니다. 이건 읽을 엄두가 안 나죠.

yamoo 2010-04-1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유원이 누구지?? 아우 몰루는 사람들이 넘 많다~~ㅜㅜ 아~ 글샘님 덧글 보니, 군주론 읽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ㅎㅎ 일리아스는 3학년때인가 읽었는데...재밌더라구요..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읽고 과제 내야 하기에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마늘빵 2010-04-17 23:21   좋아요 0 | URL
아, 예전에 한겨레21이었나 씨네21이었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칼럼에 처음 등장했던 걸로 압니다. 회사원 철학자로 알려져있다가, 회사 그만두시고, 대학에서 강사 생활하시다가, 이것도 그만두시고 - 샘의 말로는 둘 다 잘린 거라고 합니다 - 지금은 강연 다니시면서 번역하고 책 쓰고 그러십니다. ^^
 
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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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온전한 의미의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에너지, 행동에 특별한 "기분" 또는 "색조"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란 행동의 한 측면, 곧 "에너지가 실린" 측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인지, 정서, 판단, 욕구, 육체 등을 모두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14쪽

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 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의 문화 규정들을 구현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 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 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5-16쪽

감정이입 - 타인의 관점이나 감정과 동일시하는 능력 -은 감정 기술인 동시에 상징 기술이다. 곧 감정이입의 전제조건은 남들의 행동이 보내오는 복잡한 신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남들의 행동과 감정을 해석할 줄 안다는 뜻이다. 소통을 잘 하려면 감정 기술과 인지 기술 둘 다를 매우 복잡하게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곧 감정이입에 성공하려면 남들이 자기의 자아를 은폐하는 동시에 노출하는 복잡한 신호망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49쪽

경제 영역은 감정이 결여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로 가득한 영역이 되었다. 이때 정서란 공조의 과제를 담당하는 동시에 공조의 과제에 의해 운용되는 정서, 또는 "인정"을 토대로 한 갈등 해결 양식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용구하고 창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서를 그 상호작용의 핵심으로 삼다보니, 애초에 자기가 수립했던 성정체성을 해체하게 되었다. (중략) 소통의 에토스는 남자들과 여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게 하고, 친화적이 되게 하고, 자기를 상대방의 눈으로 보게 하고, 상대방에 감정이입하게 하며, 이런 방식으로 남녀의 구분을 흐린다. -54-55쪽

감정 자본주의는 여러 감정 문화들을 재배치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자아를 감정적이 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들을 좀더 도구적 행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55쪽

감정이란 본디 상황적이고 지표적이다. 곧 감정은 자아가 특정 상호작용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며, 자아로 하여금 자기가 특정 상황에서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속기이다. 요컨대 감정은 특정 대상에 대한 암묵적, 구체적 문화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그 대상을 평가하고 상대할 때 지름길로 가게 함으로써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80쪽

"인정이란 자기상실의 통찰에서 시작된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대방 속에서 나를 잃는다는 것, 나 자신이자 나 자신이 아닌 어떤 타자 속에서 그리고 그 타자에 의해서 전유된다는 것이다."(주디스 버틀러)-82쪽

"상상 속의 키스는 실제 키스에 비해 좀 더 쉽게 조절할 수 있고, 좀 더 철저하게 즐길 수 있고, 좀 더 깔끔하다."(존 업다이크)-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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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0-04-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는 프레임이군요!

마늘빵 2010-04-15 09:26   좋아요 0 | URL
으음, 제가 기대했던 내용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핵심 주장들만 알고 나면 꼼꼼히 읽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딧불이 2010-04-1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고 있었던 이름(존 업다이크)도 보이고..책내용이 짐작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것 같아요. 감정을 일으키는 외부적 요인이 흥미롭구요,<감각의 박물학>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마늘빵 2010-04-15 20:46   좋아요 0 | URL
제가 제목에서 기대했던 바와는 좀 달랐어요.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딱딱한 내용이랄까요.
 
도덕철학
제임스 레이첼즈 / 서광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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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단순한 취미의 표현과는 다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한다면, 그는 거기에 대한 어떤 이유를 가질 필요가 없다.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서술을 하고 있을 따름이요, 그 이상의 어떤 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왜 커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를 "이성적으로 옹호하는" 것 같은 일은 전혀 없으므로 그에 관한 토의 따위는 있을 까닭이 없다. 그가 자기의 취미에 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느껴야 한다는 어떤 의미도 함축하고 있지 않다. (계속)-24쪽

(이어서) 만일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이 커피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뒷받침할 이유를 제시해야만 하고, 만일 그 이유가 건전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 힘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단순히 무슨 소리인가를 지껄이고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 사람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전혀 없다. -24쪽

윤리학적 진리는 이성에 의해 뒷받침된 결론이다. 윤리학적 문제에 대한 "옳은" 해답은 이성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해답이다. 그러한 진리들은 우리가 원하거나 생각하는 것과 독립적으로 참이라는 의미에서 객관적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그것이 그렇게 되기를 단순히 소원함으로써 선하거나 악하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성의 추가 자기 편을 들어간 또는 반대하도록 단순히 임의로 의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하거나 악한 것에 대해서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성이 무엇을 명하는가에 대해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견이나 욕구에 관계없이, 이성은 자신의 말만을 하는 것이다. -69쪽

도덕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할 수 없다면 도덕은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혀 쓸모없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건전한 도덕은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주의적 개념에 기초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95쪽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각 개인은 그 또는 그녀 자신의 이익만을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하나의 이론인 심리학적 이기주의와는 구별된다. 심리학적 이기주의는, 사람은 정말로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여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하나의 규범적 이론, 즉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에 관한 이론이다.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계없이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에게 좋은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도덕적 의무도 없다고 말한다.-117쪽

"만일 형벌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면, 그것이 보다 큰 악을 제거한다는 약속 아래에서만 받아들여져야 한다."(벤담)-199쪽

"형사적 처벌은 단순히 범법자 자신이나 시민 사회 그 어느 쪽에 관계되거나간에 다른 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해져서는 안 되고, 어느 경우에나 오직 그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의해서만 가해져야 된다."(칸트)-203쪽

도덕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우해야 할까를 지배하는 일단의 규칙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성적 인간은 서로의 상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규칙들을 따른다는 조건 아래 그 규칙들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것이다.(사회계약론에서의 도덕의 의미)-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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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절판


나는 오랫동안 철학을 했다. 그럼에도 철학이라는 신성한 물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오늘도 그 영원한 물가에서 서성거린다. 내가 알기로 철학은 본디 실용적 학문이었다. 삶을 선택하게 하고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초고를 보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출간을 말렸다. 철학하는 사람이 쓸 책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철학의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쓸 책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철학이 사람의 삶에서 거리를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재야에 산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비루해진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더 비루해진다.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하다. 그러니 이제 보라. 누가 더 비루하고 더 가난한지를! 겨울이 끝나 추위가 가면 꽃피는 바닷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믿음이여, 내 가난한 믿음이여. 소망이여, 내 간절한 소망이여.-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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