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장바구니담기


감정은 온전한 의미의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에너지, 행동에 특별한 "기분" 또는 "색조"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란 행동의 한 측면, 곧 "에너지가 실린" 측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인지, 정서, 판단, 욕구, 육체 등을 모두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14쪽

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 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의 문화 규정들을 구현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 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 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5-16쪽

감정이입 - 타인의 관점이나 감정과 동일시하는 능력 -은 감정 기술인 동시에 상징 기술이다. 곧 감정이입의 전제조건은 남들의 행동이 보내오는 복잡한 신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남들의 행동과 감정을 해석할 줄 안다는 뜻이다. 소통을 잘 하려면 감정 기술과 인지 기술 둘 다를 매우 복잡하게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곧 감정이입에 성공하려면 남들이 자기의 자아를 은폐하는 동시에 노출하는 복잡한 신호망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49쪽

경제 영역은 감정이 결여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로 가득한 영역이 되었다. 이때 정서란 공조의 과제를 담당하는 동시에 공조의 과제에 의해 운용되는 정서, 또는 "인정"을 토대로 한 갈등 해결 양식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용구하고 창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서를 그 상호작용의 핵심으로 삼다보니, 애초에 자기가 수립했던 성정체성을 해체하게 되었다. (중략) 소통의 에토스는 남자들과 여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게 하고, 친화적이 되게 하고, 자기를 상대방의 눈으로 보게 하고, 상대방에 감정이입하게 하며, 이런 방식으로 남녀의 구분을 흐린다. -54-55쪽

감정 자본주의는 여러 감정 문화들을 재배치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자아를 감정적이 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들을 좀더 도구적 행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55쪽

감정이란 본디 상황적이고 지표적이다. 곧 감정은 자아가 특정 상호작용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며, 자아로 하여금 자기가 특정 상황에서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속기이다. 요컨대 감정은 특정 대상에 대한 암묵적, 구체적 문화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그 대상을 평가하고 상대할 때 지름길로 가게 함으로써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80쪽

"인정이란 자기상실의 통찰에서 시작된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대방 속에서 나를 잃는다는 것, 나 자신이자 나 자신이 아닌 어떤 타자 속에서 그리고 그 타자에 의해서 전유된다는 것이다."(주디스 버틀러)-82쪽

"상상 속의 키스는 실제 키스에 비해 좀 더 쉽게 조절할 수 있고, 좀 더 철저하게 즐길 수 있고, 좀 더 깔끔하다."(존 업다이크)-200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rnleft 2010-04-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밌는 프레임이군요!

마늘빵 2010-04-15 09:26   좋아요 0 | URL
으음, 제가 기대했던 내용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핵심 주장들만 알고 나면 꼼꼼히 읽지 않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딧불이 2010-04-1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고 있었던 이름(존 업다이크)도 보이고..책내용이 짐작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것 같아요. 감정을 일으키는 외부적 요인이 흥미롭구요,<감각의 박물학>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마늘빵 2010-04-15 20:46   좋아요 0 | URL
제가 제목에서 기대했던 바와는 좀 달랐어요.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딱딱한 내용이랄까요.
 
도덕철학
제임스 레이첼즈 / 서광사 / 1989년 5월
장바구니담기


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단순한 취미의 표현과는 다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한다면, 그는 거기에 대한 어떤 이유를 가질 필요가 없다.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서술을 하고 있을 따름이요, 그 이상의 어떤 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왜 커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를 "이성적으로 옹호하는" 것 같은 일은 전혀 없으므로 그에 관한 토의 따위는 있을 까닭이 없다. 그가 자기의 취미에 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느껴야 한다는 어떤 의미도 함축하고 있지 않다. (계속)-24쪽

(이어서) 만일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이 커피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뒷받침할 이유를 제시해야만 하고, 만일 그 이유가 건전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 힘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단순히 무슨 소리인가를 지껄이고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 사람의 말에 주의할 필요가 전혀 없다. -24쪽

윤리학적 진리는 이성에 의해 뒷받침된 결론이다. 윤리학적 문제에 대한 "옳은" 해답은 이성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해답이다. 그러한 진리들은 우리가 원하거나 생각하는 것과 독립적으로 참이라는 의미에서 객관적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그것이 그렇게 되기를 단순히 소원함으로써 선하거나 악하게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성의 추가 자기 편을 들어간 또는 반대하도록 단순히 임의로 의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하거나 악한 것에 대해서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성이 무엇을 명하는가에 대해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견이나 욕구에 관계없이, 이성은 자신의 말만을 하는 것이다. -69쪽

도덕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할 수 없다면 도덕은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전혀 쓸모없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건전한 도덕은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주의적 개념에 기초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95쪽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각 개인은 그 또는 그녀 자신의 이익만을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하나의 이론인 심리학적 이기주의와는 구별된다. 심리학적 이기주의는, 사람은 정말로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여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하나의 규범적 이론, 즉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에 관한 이론이다.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계없이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에게 좋은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도덕적 의무도 없다고 말한다.-117쪽

"만일 형벌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면, 그것이 보다 큰 악을 제거한다는 약속 아래에서만 받아들여져야 한다."(벤담)-199쪽

"형사적 처벌은 단순히 범법자 자신이나 시민 사회 그 어느 쪽에 관계되거나간에 다른 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해져서는 안 되고, 어느 경우에나 오직 그 인간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의해서만 가해져야 된다."(칸트)-203쪽

도덕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우해야 할까를 지배하는 일단의 규칙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성적 인간은 서로의 상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규칙들을 따른다는 조건 아래 그 규칙들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것이다.(사회계약론에서의 도덕의 의미)-2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절판


나는 오랫동안 철학을 했다. 그럼에도 철학이라는 신성한 물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오늘도 그 영원한 물가에서 서성거린다. 내가 알기로 철학은 본디 실용적 학문이었다. 삶을 선택하게 하고 사람을 변화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초고를 보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출간을 말렸다. 철학하는 사람이 쓸 책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철학의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쓸 책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왜 그리고 언제부터 철학이 사람의 삶에서 거리를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재야에 산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비루해진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더 비루해진다.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하다. 그러니 이제 보라. 누가 더 비루하고 더 가난한지를! 겨울이 끝나 추위가 가면 꽃피는 바닷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믿음이여, 내 가난한 믿음이여. 소망이여, 내 간절한 소망이여.-274-27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법
토리우미 진조 지음 / 모색 / 1999년 3월
품절


제재는 어느 곳에서라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이다. 언뜻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소재를 상상력에 의해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거기서부터 애니메이션이 되는 제재를 얻을 수 있다.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도 모티브 없이는 의미가 없다. 단지 그림으로 그린 인형에 불과할 뿐이다.
모티브를 구하는 데도 사회나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이 없으면 안 된다. 현실을 응시하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창조한다 할지라도 작품을 보는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현실 속의 인간을 통찰하는 과정 속에서 캐릭터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52쪽

<스토리의 3요소>
(1) 인물 - 성격
(2) 정황, 장소 - 환경
(3) 사건 - 행위-90쪽

이야기의 시간적 경과나 진행 정도가 기초적인 것을 스토리라 부르고, 인물이나 사건의 인과 관계가 확실히 묘사된 것을 플롯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오해하기 쉬운 것은 같은 형태의 문장으로 쓰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롯은 인물이나 캐릭터의 심리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116쪽

시나리오의 목적은 작가의 감동을 영상을 통해서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된 장면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묘사되고, 그와 더불어 매력이 있어야 한다. -1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해동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1월
품절


홉스는 여러 국가들이 제각기 자국의 일에 전념하고 다른 나라에 손을 뻗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로티우스가 제멋대로 생각해낸 국제 사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33쪽

샌섬의 인용을 의식하면서 말하자면, 그로티우스가 국제법을 발상학세 된 계기는 아시아 해역에서 벌어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분쟁이었지 현지 주민이 겪은 참화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보편성을 드러내는 국제법은 보편성이 통용되는 문명화된 세계, 결국은 ‘서구세계’라는 하나의 문명에만 적용되는 것으로서, 문명에 대해 특수성을 드러내는 미개한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열강이 식민지를 소유하는 것은 완전히 자유이며,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35쪽

국민국가시대 세계의 교통은 국경과 영해에 의해 한정됨과 동시에, 해로든 육로든 동일한 하나의 길이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부가 들어오는 영광의 길은 동시에 부가 수탈되는 빈곤의 길이며, 권력이 전달되는 지배의 길은 동시에 억압이 초래되는 복종의 길이다. -35쪽

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처음에는 세계시민주의적 주장과 강하게 결부되었던 문명/문화 개념도 어쩔 수 없이 국가이데올로기로 변용된다. -52쪽

1774년 돌바크의 ‘사회의 체계’에서
우선 첫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문명이라는 용어가 도덕적인 주장, 모럴과의 관련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문명이란 용어는 항상 계몽주의 또는 진보주의의 맥락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문명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 맥락 속에서 설령 도덕이나 인간성의 진보가 운위되더라도 그 논술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와 국민이다. -61-62쪽

피히테에게는 국민의 자유가 확대됨에 따라 국가가 점차 해소될 것을 바라는 국가를 부정하는 이상주의가 있었다. -76쪽

당시의 국제관계 속에서 대등한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국가로 인정받아야만 했다. 근대적인 국가의 형성이란 다른 근대적 국민국가와 동일한 원리를 공유하는 것이며, 그 동일한 원리가 바로 ‘문명’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문명’이란 그 나라가 근대국가인가 아닌가를 판정하는 기준이었다.
-95-96쪽

① 문명/문화는 18세기 후반에 탄생한 신용어이며, 근대 유럽의 새로운 자의식과 가치관을 표명하고 있다.
② 문명/문화는 근대 국민국가와 함께 태어나 성장한 이데올로기이며, 국민과 국민국가의 존재 이유를 표명하고 있다.
③ 문명/문화는 한 쌍의 대항개념이며, 여러 국가 간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문명은 선진국의, 문화는 후진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변용되었다.
④ 계몽사상의 사생아로서 처음에는 해방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문명과 문화는, 그 자체 속에 마침내 식민주의나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로 전화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었다.
⑤ 문명/문화는 주권국가의 국가이성(혹은 국익)이라는 냉엄한 에고이즘과 사람들의 국민화 혹은 국민통합이라는 강제를 은폐하는 꽃장식이다. 국민 혹은 내셔널리즘을 제1의 국가 이데올로기라고 한다면, 문명/문화는 그것을 지탱하는 제2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계속)-115-116쪽

⑥ 국민국가는 그 성질상 강력한 국민통합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며, 국민이라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문명/문화라는 비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두 가지를 가려 쓰면서 체제유지를 도모해왔다. 문명/문화가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가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 간파되지 않을 필요가 있다. -115-116쪽

‘국민’이란 구성원의 의지적 동의와 연대에 의해 성립되는, 말하자면 정신적인 원리(르낭)-140쪽

공통의 조상=종족, 종교, 언어, 동일한 문화 등을 모두 만족시키는 민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또 그 속성 대부분을 결여하고 있더라도 공속의식이 견고하기만 하면 민족으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공속의식은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르낭이 시사하는 두 번째 점은 이와 관련된다. 즉 그런 공속의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신비성이 필요하다. 르낭은 그것을 "국민이란 혼이며, 정신적 원리이다."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피히테의 "본원적인 생명의 샘"으로부터 기어츠의 "본원적인 감정"에 이르는 바의 문제의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 -140쪽

문화 개념은 문명에 대한 대항개념으로서 서구 국민국가 형성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민족 개념과 거의 표리일체를 이루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화 개념은 선진국의 우월적․지배적인 내셔널리즘(프랑스, 영국 등의 보편적이고 진보주의적인 문명 개념)에 대한 후발국(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들의 민족적 자기주장으로서, 자기의 독자성(개별적인 가치나 정신적 우위)을 강조하고 다른 국민이나 민족과의 공통성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내장하고 있다. -1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