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09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이다. (오스카 와일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고, 사람들의 삶은 모방이며, 사람들의 열정은 인용이다. (오스카 와일드)-20쪽

실로, 세계의 무수한 갈등과 만행은 선택이 불가능한 독보적인 정체성이라는 환영을 통해 유지된다. 증오심을 구축하는 기술은 다른 관계들을 압도하는 정체성, 이른바 지배적인 정체성의 마력에 호소하는 형식을 취하며, 또한 편리하게도 호전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있는 인간적인 동정심이나 선천적인 친절함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20-21쪽

쟁점
첫째, 정체성들이 확고히 다원적이며, 하나의 정체성의 가치는 다른 정체성의 가치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은 특정한 맥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충성과 우선순위들에 상대적인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58-59쪽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뿐만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가’를 기술하며, (자발적인 단체의 경우처럼) 그들이 선택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발견해야 하는 애착의 대상이고, 단순히 그들 정체성의 속성이 아니라 그 정체성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81-82쪽

단일성의 환영은 인간을 여러 소속 관계를 지닌 개인이나 여러 상이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독보적으로 중요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특정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이해하는 추정에 의지한다. -95쪽

문명론적 접근은 단일 범주의 추정에 의존하는 것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 외에도, 동일시된 각 문명 내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결함을 안고 있기도 하며, 개별 문명들 간의 광범위한 상호 관계를 간과하는 단점도 있다. -96-97쪽

우리의 종교적 정체성이나 문명적 정체성은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많은 정체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슬람교(또는 힌두교나 기독교)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가, 호전적인 종교인가("정말 어느 쪽인지 말해 달라?")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심 깊은 무슬림이(또는 힌두교도나 기독교도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관행을 개인적 정체성의 다른 특정들이나 (평화나 전쟁에 대한 태도와 같은) 다른 신조, 가치들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종교적 소속 관계, 또는 "문명적" 소속 관계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문제 있는 진단이 될 것이다. -124-125쪽

세계를 종교에 따라 분할하는 것은 전 세계 사람들과 그들 간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심각하게 잘못된 이해를 낳는다. 그것은 또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나누는 하나의 특정한 구별을 확대하고 그 외의 모든 중요한 관심사는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37쪽

만약 인간에게 결정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그런 자유를 합당하게 행사해서 얻은 결과들 또한 존중해야지, 무조건적인 보존이 강요된 선례에 따라 그 결과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191쪽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전통적 생활 양식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을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문화적 자유가 방해받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191쪽

만약 개인이 (현재 진행 중인 전통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살도록 허용되고 장려된다면 문화적 다양성은 확대될 것이다. -192쪽

다양성은 또한 심지어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의 자유를 증진하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192쪽

사회적 억압이 문화적 자유의 부정이 될 수 있듯이,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다른 생활 양식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순응주의의 횡포에서도 자유의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194쪽

또한 다른 문화와 다른 생활 양식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이 결여되었을 때도 부자유가 초래될 수 있다. -195쪽

인간의 정체성이란 수많은 개별 형식을 취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 또 자신이 어느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데 대해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데 있어 이성적으로 추론해야 함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197쪽

세계화된 경제에 참여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좀더 부유해진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상호 관계의 이익과 그 관계의 막대한 잠재력에 따른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18쪽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덜 불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이 실질적으로 더 나은 그리고 더욱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하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국내외적 제도에 어떤 것이 있겠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실적으로 관여해야 할 지점이다. -221쪽

무쉬는 분노를 일으키는 정도로 충분하지만, 침해받았다는 느낌이나 신분이 강등된 느낌, 굴욕의 감정을 반란과 폭동에 더 쉽게 동원될 수 있다. -231쪽

세계의 약자들이 받고 있는 불평등하고 부당한 대우에 초점 맞추고 있는 "반세계화" 비판을 (이 비판에 세계적 윤리를 강력히 적용한다면) 진정한 반세계화라고 이해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그 생각들은 적절하게 변경된 세계 질서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을 더욱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을 추구하고 기회를 더욱 공정하게 분배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236-237쪽

만약 한 개인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언어, 계급, 사회관계에서부터 정치적 관점, 시민으로서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맺고 있는 다른 모든 소속 관계는 간과된 채 공동체나 종교에 의거해 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또 개인의 정체성은 숙고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려받은 종교나 전통에 자동적으로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문화주의의 도덕적, 사회적 주장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255쪽

폭력을 양성하는 호전적인 기술은 사유할 자유와 침착한 이성적 추론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기본적인 본능을 일부 끌어들여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일종의 논리, 즉 ‘단편적’ 논리 또한 끌어들이고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특정한 활동을 위해 분리된 특정 정체성은 대부분의 경우 새로 충원되는 사람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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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10-02-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었던 책이었난데ㅋ 아마르티아 센 좋죠!!ㅋ

마늘빵 2010-02-28 08:16   좋아요 0 | URL
글을 쉽게 쓰더라고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바로 눈과 머리에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임팩트가 강하진 않았지만 두루두루 호감형 학자. ^^ 센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요.

yamoo 2010-04-0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의 책을 얘의주시하고는 있습니다..근데, 인용된 것이 책의 내용 그대로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샥~ 가시는데요..ㅎㅎ 번역이 영~

마늘빵 2010-04-07 09:44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쉽게 읽히고 재밌습니다. ^^ 이 책 읽고 센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가던데요. 경제학과 윤리학 이었나.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
가야트리 스피박 외 지음, 주해연 옮김 / 산책자 / 2008년 7월
절판


추방되었을 때 우리는 권력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법기능을 특권처럼 휘두르는 물샐틈없는 군사적 권력의 손아귀 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추방된 자들의 상황은 자연 상태에 놓인 벌거벗은 삶이 아니라, 박탈의 조건과 상태를 생산하고 유지하도록 고안된 권력과 강제로 구성된 어떤 조건입니다. (버틀러)

* 벌거벗은 삶 : 정치 공동체 밖으로 내던져져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국가권력에 노출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14-15쪽

‘국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은 법적, 군사적으로 작동하는 국가권력에 의해 봉쇄되고 제한되는 것입니다. (버틀러)-22쪽

아렌트에게 정치의 영역이란 바로 이러한 권리 박탈과 무임금노동, 그리고 거의 인식되지 않거나 인지할 수 없는 인간 존재들의 영역을 가정함으로써 성립되며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구성됩니다. (버틀러)-24쪽

아렌트에게 자유는 자유를 실천하는 행위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란 다수의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이기에 공동으로 조율된 노력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관계 안에서 존재합니다. 아렌트는 자유가 자연 상태라는 관념을 거부하며,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이 귀환하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소위 자연 상태 역시 거부합니다. 자연은 누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류하여 결정짓는 박탈의 정치적 구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권력이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실행하는 공동의 조율행위에 누구를 가담하지 못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자유의 실행입니다. 분류 범주를 정교화하고 집행하는 정치적 행위로 시민이 아닌 자는 특정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이 지위는 국가가 없는 자에게 보호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 역시 박탈합니다. (버틀러)-28-29쪽

민족구가는 민족이 특정한 방식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민족 공동의 합의에 기반하여 설립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일치한다는 가정 아래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은 단일하고 동질적인 것으로 이해되며, 국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 단일화되고 동질화되어야 합니다. 국가의 적법성은 민족에서 나오기에, ‘민족적 소속’에 어긋나는 민족적 소수집단은 ‘적법하지 않은’ 거주자가 됩니다. (버틀러)-36쪽

봉쇄와 추방은 민족 국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벌어지는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봉쇄와 추방 모두 내부/외부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기제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이 경계는 누군가 그곳을 통과하거나 통과할 권리가 거부되는 순간에 존재합니다. (버틀러)-39쪽

"우리의 정치적 삶은 우리가 조직을 통해 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에 기대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오직 다른 것을 형성하는 사람들과 평등한 관계에 있을 때에만 행동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공동의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아렌트)

여기서 ‘인간’이란 개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공통성과 평등의 상황을 가리키며, 공통성과 평등은 변화와 행위를 구축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소위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평등한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행동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무엇인가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의 개인적 행동은 평등의 조건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그 개인적 행동은 무엇보다 평등을 확립하는 행동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행동은 복수의 행동이 되고,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행동이 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버틀러)-57-58쪽

노래를 부름으로써 거리가 자유로운 집회 현장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행동은 자유의 표현이자 권리를 향한 호소입니다. 또한 거리라는 공간의 틀을 다시 짜고, 법적으로 금지된 바로 그 순간에 집회의 자유를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적인 정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버틀러)-63-64쪽

‘권리를 가질 권리’에서, 후자는 설사 그 권리 보장을 국가에 요구한다 하더라도, 어떤 국가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전자는 법치를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버틀러)-65쪽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가로막는 권위에 대항하여 자유를 행사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행동은, 자유와 평등이 현재 생각되고 있는 방식을 넘어서서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버틀러)-66쪽

자유가 행사되고 있다는 것과 목적이자 목표로 요구하는 자유와 평등 사이에는 물론 간극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시 말해, 내가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수행적 발화 자체가 당장 나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적법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행동은 자유의 행사와 현실의 간극을 공적 담론 안에서 공표함으로써 그것을 가시화하고 결집시킵니다. (버틀러)-68쪽

국가는 우리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에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최소한의 추상적 구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재분배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스피박)-94쪽

칸트는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에서 윤리적인 국가라는 것이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중략) 윤리는 국가 구조의 추상화를 방해하지요. 이러한 구조는 법체계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국가구조를 보호해야 하는 까닭은 이 법적 구조가 정의를 판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스피박)-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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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2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의 책이네요. 저도 보관함으로 ㅎ

마늘빵 2010-02-26 11:36   좋아요 0 | URL
스피박과의 대담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버틀러 혼자 이야기를 한다눙.

가넷 2010-03-0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는 이름만 들어 봤고, 스피박은 어렵던데(정확히는 스피박을 '소개'하는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은 아주 얇더라구요. 처음 나왔을때 얄팍하기도 하고, 대담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서 살려고 하다가 '만' 기억이 나네요.

마늘빵 2010-03-03 09:5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논의하는 지점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고, 스피박과 버틀러의 별다른 차이도 잘 모르겠어요.

가넷 2010-03-03 21:31   좋아요 0 | URL
뭐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은 어떨까요?

마늘빵 2010-03-04 16:08   좋아요 0 | URL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도 그냥, 뭐. ^^ 오늘 막 손에 든 책이 있는데 <민족은 없다>라는 책은 제가 찾던 거네요. 근데 아마 절판으로 나올 겁니다.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 연락하여 별도 구입하거나 중고를 구해야 해요. 저는 중고로 구했는데, 중고도 이제 검색이 안 나와요.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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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란 억압과 착취를 낳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해체 혹은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7쪽

식민지(인) 입장에서 지배 권력에 맞선 저항은 중요한 전략이다. 식민지배자는 식민지인의 욕망과 저항을 위험한 것으로 보고 이를 항상 통제하고 억압하고 단죄하려 든다. 질 들뢰즈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것은 일종의 '코드화' 혹은 '영토화'이다. -8-9쪽

이런 선택적 임명(일부 관료직을 흑인으로 뽑는 행위)은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만들어 홍보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가 다문화주의와 관용주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려 든다. -36쪽

영어는 제국의 언어요 주인의 언어이다. 영어는 영국 제국주의 이념을 전달하고, 식민지인들을 명령하고 통제하는 권력 행사의 주된 매개체였다. 영문학은 식민지인들을 영국화하기 위한 문화동화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영어와 영문학은 영국 제국주의 전파와 실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런 후광과 유산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43-44쪽

먼저, 왜 영어(영문학)를 공부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영어(영문학)는 제국주의 이념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주된 매개체이다. 영어제국 건설의 일꾼도 아닌 우리가 왜 영어를 배우려고 아우성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요구된다. 또한 영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로의 전환 역시 필요하다. 문화연구는 권력은 어떻게 생겨나고 유지되며, 희생자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지배와 종속이란 힘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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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2-1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분명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하나도 안나네요. -_-;;

마늘빵 2010-02-17 13:24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읽으셨군요. 제 생각보단 좀 겉핥기 식이었고, 단편적인 나열이라 그냥 그랬어요.

2010-02-18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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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일한다.-22쪽

시작, 중간,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플롯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롯에서 시작은 "어떤 것 다음에 필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플롯행동의 시작은 플롯 바깥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플롯행동 그 자체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시작하는 행동이며, 전체 플롯을 움직이고, 주인공이나 적대자가 수행할 수 있는, 순수 의지가 행하는, 사실상의 ‘대폭발’이다. -31쪽

우리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극적 행동이 통합되어서 하나의 연관된 스토리 즉 ‘하나의 커다란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41쪽

극적인 핵심질문 하나를 던지고, 계속 키워서, 대답까지 할 수 있도록 당신의 시나리오를 쓴 다음 당신의 독자나 관객을 붙들어라. -45쪽

시인이 극적으로 통일된 이야기에서 다루어야 하는 제재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임을 강조하고 있다.-48쪽

필연적인 사건은 앞에서 일어난 행동 때문에 ‘반드시’ 일어나는 것을 뜻하며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중략)
개인적인 극적 사건도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이것은 일어날 법한 사건을 뜻한다. -50쪽

우리가 알다시피 실제 우리 삶 속의 사건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긴밀히 통일된 인과관계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 이야기는 가공의 그럴듯한 사건들의 고리로 엮인 가상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를 쓸 때 존재하는 역설이다.-54쪽

플롯을 단순하고도 간결한 액션 아이디어로 채워라. 관객들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은 장면을 더하라. 그렇게 하지 않고 쓸데없이 불필요한 외부기관 곧 장면을 더한다면, 당신의 플롯에서는 머리에서 손이 자라나는, 반드시 없애버려야 하는, 쓸모없는 시나리오의 촉수가 잔뜩 자라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시나리오는 반드시 망한다!-77쪽

어떤 이야기가 하루 또는 그 이내에 일어나면, 그 이야기는 ‘하나의 완결된 행동’이 되기 쉬우며,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이야기 속의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내기도 쉽다. -88쪽

서사시는 이야기를 직접 말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이라도 작가들이 꿈꾸는 것이라면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행위자’가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89쪽

시나리오를 쓸 때 하나의 완결된 행동을 만들고 우연, 필연, 개연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운명을 불러내야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98쪽

비극적 행위란 스토리 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강렬하고 끔찍한 것을 말한다. -99쪽

비극적 행위란 언제나 주인공을 둘러싸며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야기에 무게와 중력을 더해주며, 다른 모든 이야기 요소들이 작은 위성처럼 자기 주위에서 떠돌도록 한다. -101쪽

"인간의 불행은 인간의 원초적인 충동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어난다."(아리스토텔레스)-105쪽

관객들 마음속에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액션 아이디어’는 반드시 ‘엄청난 규모’로 일어난 부당한 불행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사건은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107쪽

당신의 시나리오 스토리에 재미를 더하고 싶다면 도덕적 갈등을 사용하라. 관객들은 정당한 것과 정당하지 않은 것 둘 다 보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16쪽

이야기의 길이는 그 이야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행복에서 불행으로 또는 그 반대로의 이행이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길어야 한다. -120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행복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며, 주인공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도덕적 의무라고 말한다. -120쪽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객들의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의 ‘원인’이 반드시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관객들은 주인공의 운명이 반전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운명이 바뀌어가는 ‘단계’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구축되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139쪽

플롯은 관객들의 내밀한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의 동기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이 말은 관객들이 주인공의 사상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이러한 사상이 행동으로 바뀌는, 즉 주인공의 도덕적 성질(성격)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주인공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에게 공감을 느낀다.
-142쪽

시나리오가 이상할 때 원인은 언제나 똑같다. 플롯이 적절하게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사는 플롯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효과가 점차 쌓이는 플롯으로부터 그 힘이 나온다. 대사는 극적 행동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생명과 에너지를 극적 행동에서 얻는다. -182쪽

극중 인물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인물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암시할 수 있도록 대사를 써야 한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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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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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애도 반응이 다른 것은 그의 내면에 이미 이별에 대응하는 저마다 다른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러나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경험이 내면에 들어 있는 사람은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한다. 당면한 이별이 묵은 상실의 감정들을 솟구쳐 오르게 하기 때문이다.-29쪽

애도작업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낡은 삶의 플롯,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면의 자기를 함께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 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44-45쪽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맛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 (베레나 카스트)-59쪽

이별 앞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부정과 부인일 것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 그리하여 상대방이 이별의 신호를 보내올 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속을 몇 차례 펑크 내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를 씹어도, 이메일을 읽지 않아도 그것을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신호라 믿지 않는다. "바쁜가 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합리화한다. -64쪽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떠난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 역시 애도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도 작업이 완료되면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옛 연인이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73쪽

이별이나 상실 앞에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지 않는다. 사건의 내막이나 헤어진 이유를 낱낱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그 답을 찾으려 현실 너머의 영역까지 기웃거리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현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이다. 사실 떠난 사람조차 자신이 왜 떠났는지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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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12-2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렸어요.^^
김형경님의 글..꽤 좋아하는 데, 좋은 이별은 예전 글들만큼 많이 빠지지를 못하고 있네요.
잘..읽고 다녀갑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요.

마늘빵 2009-12-20 22: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분 <사람 풍경> 참 좋았는데. 제목이 너무 기대를 품게 했나봐요. 아라리요님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 벌써 새해 인사를.

아라리요 2009-12-20 22:50   좋아요 0 | URL
김형경님은 자기 아픔을 참.. 잘 이겨낸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사람 풍경>은 너무 좋아서 한달쯤을 끼고 살았죠.^^

얼마 전, 알라딘 메인에 책소개를 보고 <천개의 공감>하고 <좋은 이별> 두권이나 샀는데.. 다는 못 읽었어요. 사람풍경 읽을 때보다는 감동이 좀 떨어지네요.

올 한해 내내 안좋은 일이 많았는데.. 새해 인사를 아프님에게 벌써 받게되니..아마 좋은 일일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요.

아프님도 해피뉴이얼 하세요.^^

비로그인 2009-12-2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늘 `평균'을 유지해주는 작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박민규처럼 업, 다운이 그리 심한 작가는 아닌 거지요. 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라는 인용은, 그 죽은 다음 어떻게 깨어나지요, 하고 묻고 싶게 만듭니다.

마늘빵 2009-12-20 22:33   좋아요 0 | URL
지난 작품들 다 좋았는데, 이번건 예상 밖이었어요. 나빴다는 건 아니고 기대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거. '이별'을 떠올릴 때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저 책을 샀을까, 생각해보면 살짝 저처럼 기대가 어긋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요.

아카키 2009-12-2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별'을 지난주에 읽었죠. 추천하고 싶습니다. 에너지가 발생하면 그 에너지는 어디론가 이동 하는데, 바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늦게 이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사랑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윈윈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던데요. 특히 가족간의 이별은 꼭 찾아 오잖아요.

마늘빵 2009-12-24 14:09   좋아요 0 | URL
네, 김형성의 이전 작들이 참 좋아서 저도 이번에 읽었는데 기대한 내용과는 사뭇 달라서 실망은 아니지만, 좀 어긋났죠 저랑은. ^^ 사람이 겪는 모든 이별을 고루 엿본 것은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