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직업에 관한 고찰 1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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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부모 앞에서는 부모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사는 게 편하거든요. (중략)
이보다 큰 문제는 부모가 자식에게 어렸을 때부터 은연중이든 공개적으로든 특정 직업을 주입한다는 것입니다. -49쪽

노숙자라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일거리를 찾아 나섭니다. 카메라는 길거리에 버려진 파지를 주워 리어카에 싣고 팔러 다니는 노숙자를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는 하루에 2만 원 정도 벌어 그 돈으로 밥을 사 먹습니다. 자기가 번 돈으로 밥 사 먹는 것에 그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른 노숙자들처럼 무료 급식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비록 벌이가 변변하지는 못해도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지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83쪽

직업이란 단순히 먹고살려고 돈을 버는 방편이 아니라, 인간다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84쪽

돈이 많아도 놀고먹으면 안 되지만, 돈도 없는 형편에 일하지 않는다면 생계뿐 아니라 심하면 목숨도 위협을 당하므로 더더욱 안 될 일입니다. 먹을 것도 사고, 집세도 내고, 옷도 사 입어야 살아갈 것 아닙니까. 매우 단순하고, 매우 강한 현실입니다. 단순할수록 강한 것이 세상 이치인 법이라,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인가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자기 힘으로 일해서 먹고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88쪽

사람은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는 자신의 외모나 성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남과 접촉해야 합니다. 일이 그런 역할을 해 줍니다.-108쪽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의 능력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고, 능력과 성취 사이에도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운이 엄연히 우리의 희망과 성취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직업을 택하든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다면, 실제로 실패했을 때 크게 좌절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137쪽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 말에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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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9-10-2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에 대한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 사색을 담은 책이 한권 나왔음 좋겠어요. 알랭 드 보통 신간 보니 잠시 언급되긴 하더라만 뭐랄까 진짜 인생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겐 너무 가벼운 이야기일 뿐인거 같아요.

마늘빵 2009-10-28 22:43   좋아요 0 | URL
보통 씨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 나왔다 하지만, 관찰자 시점을 벗어나지 못했죠. 그게 또 보통 씨 책의 컨셉이고.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면서 깊이 들어갔다 나오는 게. 순전히 탁석산을 좋아해서 나오자마자 읽었습니다. 철학적 접근이라기엔 가벼운데,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할 말만 끄집어내서 잘 정리했습니다.

BRINY 2009-10-2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보관함에 넣습니다.

마늘빵 2009-10-29 10:26   좋아요 0 | URL
2권도 있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읽었는데,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 학생들에게 추천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창비 직업 시리즈가 있는데, 금태섭 변호사도 인터뷰한 책이 있고. 수준은 딱 중고등학생입니다. 중학생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머큐리 2009-10-2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아프님...ㅎㅎ

마늘빵 2009-10-29 10:26   좋아요 0 | URL
^^

비연 2009-10-2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가와요. 아프님^^ 새글 발견하고 바로 들어왔습니당~~

마늘빵 2009-10-29 10:26   좋아요 0 | URL
^^
 
삼국지 1 - 도원에서 맺은 의리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7월
구판절판


어떤 이는 정의와 의리를 볼 것이며, 어떤 이는 권모와 술수를, 그리고 어떤 이는 경영과 처세를 읽을 것이다. 번역을 위해 <삼국지>를 찬찬히 다시 보면서 나는 읽을 때마다 자신이 처한 사정과 나이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는 유비 삼형제가 모두 죽어버리고 나면 신명도 없어지고 어쩐지 허전해져서 대충 읽어치우게 되었는데, 이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해지던 것이다. 역시 <삼국지>를 읽는 맛은 가슴이 썰렁해지도록 밀려오는 사람의 일생이 덧없다는 회한과, 그에 비하면 역사는 자기의 흐름을 갖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옳고 그름을 판결하게 된다든가, 조금 주어진 생이지만 사람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반성 등일 것이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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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부분을 읽으니
얼마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식에게 삼국지를 읽힐 일이 없게 됐으니 팔아도 되겠다 해서, 싼값에 처분한 것이.. 매우매우매우 후회되네요 -_-

10권까지 읽으며 주인공은 유비 삼형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새삼 놀랐었는데 ^^

아프님, 방가방가-

마늘빵 2009-10-29 10:22   좋아요 0 | URL
작년 창비 행사 때 사놓고 이제 읽고 있어요. 일단 사두고 끌릴 때 읽자는 주의라서, 오래 묵혔죠. 이보다 더 오래 묵히고 있는 책들도 많고. 황석영 본으로 읽고 장정일이나 박태원 본으로 다시 읽을까 합니다.
 
말과 사람 -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을 만나다
이명원 지음 / 이매진 / 2008년 11월
절판


지식인의 세계는 낮의 화려한 언어의 향연에서 피어나는 주체 못할 담론의 우아한 쾌락과 밤의 초라한 골방에서 나뒹구는 격조 없는 소외감이 왕복운동하면서, 내면적 분열증을 증폭시킨다.(레지 드브레, <지식인의 종말>을 인용하며)-5쪽

간혹 대중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지식인조차 지식인의 ‘하방(下方)’이라는 표현을 드물지 않게 쓰는 걸 보면, 그것이 대중이든 아니면 국가 권력이든, 자신을 고유한 존재로 구별 짓는 지식인의 습속은 사실 존재 상황의 불안정성에 기인한 신분적 반동 형성의 측면이 짙다. -6쪽

누가 그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대체로 지식인이라는 표현을 듣기에 적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비전에 대한 탐구를 가치 있는 지식노동의 존재론적 기반이라 인식하고 있다. -8쪽

비체제적 지식인은 체제에 대한 협력과 저항이라는 지식인의 상투적인 ‘역할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한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과 주장에 내포되어 있는 ‘분류 체계 그 자체’의 타당성을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검토해볼 만한 지식인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9-10쪽

앞으로 우리들이 목도하게 될 미래형 지식인은 ‘체제적 지식인’으로서 그 기능을 부여받는 것과는 상대적으로 무관한 ‘비체제 지식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4쪽

"작가는 한 사회의 모순과 비인간적인 것을 주도면밀하게 꿰뚫고 투시해서 좋은 쪽으로 반전시키려 노력하고, 사회의 불안 요소나 동요가 있을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지, 그것을 조장하고 불안을 더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들은 좀더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 세력의 책동에 대해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조정래)-52쪽

"문인이 현실 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모순과 갈등을 감시 감독하는 관점에서 발언해야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기의 사적 견해, 개인의 감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희생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조정래)-52-53쪽

"작가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이 과거처럼 아무런 전문성 없이 개입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발전이겠다. 하지만 전문가만이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 발언하는 세상은, 그것도 끔찍한 세상이다. 자기 분야에서 충실하게 활동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또 전체에 대해서는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소신을 갖고 발언해야 할 것이다."(백낙청)-95쪽

"우리 사회는 이미지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많이 이야기하는데, 나는 미디어에 노출된 모든 정치인은 다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말과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창과 같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바라보는 창도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사람이 말과 글은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진실 여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도 또 다른 언어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김민수)-135-136쪽

"자유가 철학의 전제가 아니라, 자유를 박탈당하고 노예 상태에 있는, 억눌리고 묶인 자들이 자기를 해방시키고 도야하고 계몽하는 과정에서 씨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동시에 더불어 싸우고 항쟁하고 요구하는 부름의 소리가 20세기 한국 철학이었다. 세계 철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철학의 새로운 보편성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상기해보라. 여가 속에서 철학을 향유하는 사람들보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묶여있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이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말하는 철학의 보편성은 허위의식에 갇힌 것이다. 함석헌은 철학자이면서 농부였다. 존재 기반 자체가 민중적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었다."(김상봉)-153-154쪽

"씨알은 자신 안에 생명의 힘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스스로의 꽃과 열매를 맺는 자발적인 생명"(심의용)-156쪽

"서양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은 한편에서는 노예를 만들면서 반대로 자기들은 자유로워지는 모순적 과정이었다. (중략)
노예를 만들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 모두 더불어 자유로운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자유를 위한 투쟁이 한국사다. 그 점이 다르다. 서양은 자기들만의 고상한 자유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밑바닥에서 출발한 자유이므로 누구도 노예를 만들지 않는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그 속에 같이 있다. 이것이 한국의 20세기 철학과 항쟁의 역사 그 자체가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김상봉)-158쪽

"국가는 시민들의 서로 주체성의 현실태인 한에서 서로 주체성의 표현이고, 그 실현인 한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가가 씨알을 모두 보호하고 최선을 다해서 모든 씨알을 위해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국가기구 또는 헌법적 질서라고 하는 것이 법을 빙자해서 극소수의 특권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때, 수탈과 억압의 도구에 지나지 않을 때, 씨알들과 국가 사이에는 전쟁 상태 말고는 다른 것이 조성될 수가 없다."(김상봉)-166쪽

"‘피를 나눈다’라고 하는 건 고통을 나누는 거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다는 것이다."(김상봉)-168쪽

"물론 지금의 정치 체제 속에서는 국가에 복지정책을 더 많이 하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국가 역시 공리주의적,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는 체제가 아닌가. 그리고 그 체제는 무엇보다도 국민을 타자화한다. 국가나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지 않은 게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란 국가를 전제로 한다. 국가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생태적으로 이것은 지속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그 자체가 반생태적인 것이다."(김종철)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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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품절


"인간은 유희에 젖어 있을 때 비로소 진실한 인간이 된다. 노는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최고 수준으로 발휘한다."(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152쪽

책이나 잡지의 원고를 쓰던, 단 한 장의 제품 기획서를 쓰던, 단 한 줄의 광고 카피를 쓰던, 한 단어의 제품 이름을 정하더라도 그곳에는 늘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정보 편집의 장치와 원칙은 알아 두어야 한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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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9월
절판


내가 볼 때에 진짜 문제는 ‘비판’에 대한 인식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전체를 싸잡아 하는 비판은 아무리 독하게 해대도 ‘건전한 비판’인 데 비해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실명으로 비판하는 건 ‘인신 공격’이라는 거다. -12쪽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러니까 피부에 와닿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너무 거시적이어서 현실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몽롱한 사안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그러한 태도 말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비평 문화의 폐해를 매우 심각한 어조로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그것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이러한 ‘선택적 이중사고’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건강한 비판과 논쟁의 문화는 형성되기 어렵다."(이명원)-12쪽

"우리 시대의 비판은 일종의 의식으로 전락한 걸까? 늘 사회 각계를 향해선 온갖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선 성실하게 반론을 할 생각은 않고 서로 얼굴 빤히 아는 같은 동업자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비판을 한 사람의 ‘인간성’ 문제를 들먹이며 욕하는 건 학계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비판은 왜 하는지 묻고 싶다. (중략) 왜 정치인들은 마음껏 비판하면서도 동업자 비판은 안 된다는 걸까? 혹 동업자 비판에 대한 비난은 ‘비판=쇼’라고 하는 원칙을 훼손한 것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다 끼리끼리 뜯어먹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 아니겠느냐 이 말이다."(강준만, <인물과 사상>15권, ‘한국 지식인은 왜 심약하고 비굴한가? : 학계의 패거리주의와 ‘침묵의 카르텔’’)-13쪽

임지현은 내가 "마녀재판을 주관"했다고 그러시는데, 나로선 그런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근무하는 한양대에 대거 침투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임지현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난리를 피웠을리도 없을 테고, 또 내가 누구를 비판하면 그 사람이 화형대에 설 만큼 내 힘이 강한 것도 아닌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임지현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한국 최대의 비대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원 사격까지 받고 계신 분이 나에 대해 ‘마녀재판’ 운운하시니 언어 사용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셔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87쪽

임지현이 나에 대해 느낀 분노는 인간 강준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실명비판’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임지현은 ‘실명비판=마녀사냥’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89쪽

나도 조심하겠지만, 우리 제발 감정이 격화되어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식의 싸움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90쪽

이진우식 글쓰기가 공격적 글쓰기에 비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추상화의 수위가 한두 단계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감대의 ‘깊이’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넓이’는 이진우식 글쓰기가 더 유리하지만, ‘깊이’는 공격적 글쓰기가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저는 ‘넓이’보다는 ‘깊이’가 더 필요하다고 보지만, 두 가지 종류의 글쓰기가 평화공존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진우식 글쓰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비판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적 글쓰기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셨습니다. -97쪽

"조선일보를 얘기하려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기생하면서 사는 중산층 얘기를 해. 그게 뭐냐면, 전두환이 사람 때려죽이고 정권 잡은 다음에 중산층한테 국물을 조금 떨어뜨려줬단 말이야. 그래서 강남에 형성된 중산층들이 원죄의식이 있단 말이야. ‘아이, 전두환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아이 몰라, 술 한잔 먹자, 돈 몇푼 생겼는데….’ 그러는 거지. 그래서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해. 그럴 때 거대한 체계를 던져주면 덥석 문다고. 천민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중산층들이 그걸 자기의 이데올로기로 가져간 거야. 조선일보도 그 이데올로그를 자처할 때 이득이 생긴다는 걸 알아. 안다고. 둘이 붙어먹으면서 수지가 맞은 거야. 근데 재밌는 게 조선일보는 또 좌파 쪽을 팔아요."(황석영,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한겨레21 2000년 1월 6일)-104쪽

내가 출판 담당 기자래도 강준만의 책은 안 다뤄줄 것이다. 죽어라 하고 언론을 두들겨 패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강준만은 책을 너무 많이 낸다. 게다가 도무지 낯짝을 구경할 수 없는데다 인터뷰하자고 팩스를 몇 번 보내도 가부 연락조차 아예 해주질 않는다. 이런 싸가지 없는 저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문들이 내 책을 거의 다뤄주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도 않거니와 불만도 없다. 내 불만은 지극히 공적인 것이다. -117쪽

나는 번역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신문들이 외국 유명 지식인들이 낸 책의 번역판에 베푸는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18쪽

저는 지식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대중매체 이용 행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도 건드리고 국문학자도 건드리고 경제학자도 건드리고 정치학자도 건드리고 소설가도 건드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망정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생산해내는 현실참여적 글과 말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과 능력이 저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런 믿음이 타당하며 그런 믿음에 근거한 저의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32쪽

위대한 철학자가 노상 방뇨를 했을 때 그걸 비판하는 건 위대한 철학의 이해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위대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133쪽

나의 이기주의를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그 어떤 독설로 공격하더라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일 것이다. 나의 무식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진 않는데…"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대학 교수로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아웃사이더’로 행세하는 나의 위선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재벌 총수들의 모임에도 아웃사이더는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중략)
그러나 나는 누가 나를 ‘지식인 혐오증’ 환자로 모는 것엔 결코 그 어떤 도량도 보여줄 수 없다. 내가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건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딱지는 내가 하는 모든 사회참여적 활동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 비판에 임하여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보여줘야 할 도량이란 게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156-157쪽

나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의 미덕과 공적인 논쟁에서의 미덕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7쪽

운동이라는 게 뭔가? 나는 그게 ‘사람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 장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적을 많이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몫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몫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 주장의 일부분에나마 공감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널리 퍼뜨린다면 그걸로 내 소임은 이루어지는 것일 뿐, 내가 중심이 되어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그게 바로 나의 한계이자 나의 몫이란 거다. -168쪽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는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많은 사람들이, 실명비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걸까?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흠잡는 일’이라고 비하해서 부를 만큼 무얼 따지고 하는 일에 익숙지 않거니와 그걸 좀 상스럽게 보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323쪽

한국인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너만 깨끗하냐?"이다. 이는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것으로서, 나도 깨끗하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건데 왜 너만 잘났다고 모든 걸 까발려댐으로써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전국 차원’에선 내부 고발자에 대해 ‘용감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국 차원’이란 건 그 내부 고발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매체들이 보여주는 당위의 차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심은 그러한 당위와 거리가 멀다. 총체적 부패구조에 한 발을 담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편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부 고발자가 소속돼 있는 조직에선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324쪽

나는 한국 국민이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부정부패는 척결되어도 좋지만 나의 부정부패는 ‘사람 있는 인정’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이중성이 한국인 다수의 머리에 콱 박혀 있다. -325쪽

한국인들이 진정 부정부패 척결을 원한다면,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몰거나 ‘무슨 딴 이유가 있겠지’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중략) 한국인은 입으로는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영원히 부정부패와 같이 뒹굴며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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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10-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 같은 말씀들의 인용이네요.
정말 이성적/논리적/비판적으로 “따지는” 글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름다운 글귀,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10-18 14:42   좋아요 0 | URL
밑줄치고 싶은 부분은 더 많았는데 고르고 골라서 올렸습니다. 요새 강준만의 옛 글들을 읽으려고 절판된 책까지 주문하네요. 중고샾에는 아직 몇 권이 남아있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언급한 내용은 정곡을 찌릅니다.아무래도 자기 조직 내부의 문제가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9-10-18 20:51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머리가 한번더 껍질을 벗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강준만의 글은 지금보다 그때것이 더 생생하고 살아있습니다. 주제는 옛것일지 몰라도 메세지는 현재진행형이에요.

글샘 2009-10-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실명 비판을 하지 말고,
주어도 쓰지 말고,
곱게 말하자고 하잖습니까. ㅎㅎㅎ 쌀이 많이 남아 도니깐, 빨리 떡 돌리고 싶다고...

마늘빵 2009-10-18 20:52   좋아요 0 | URL
쌀 이야기는 뭔지 잘... 이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