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페다고지 - 탈토건 시대를 여는 생태교육 생태경제학 시리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절판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 물을 꼭 내려라.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64쪽

조경은 자연의 형상을 따라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시설물인데, 그렇다고 해서 조경물이 그 자체로 생태계인 것은 아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생태계에 피해를 덜 줄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많이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연은 조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엄청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판단에는 감수성이 먼저 개입한다. 대체로 개발독재 시대의 사람들은 조경과 생태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88쪽

고등학생들 아니면 십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나중에’ 라는 말은 많은 교사들에게는 적어도 그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아주 좋은 임시방편이며, 이는 학부형에게도 마찬가지다. 하긴 지금의 고등학생이 생태에 대해 약간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자신의 앎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앞장서라고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교육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59쪽

농업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경제의 세계와 자연생태계 사이에 있는 입구이자 출구이며, 두 가지 모순되는 우주가 화해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은 공간으로 음식으로 그리고 정신으로 우리의 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어주는 문인 셈이다. 그러므로 ‘핸드폰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영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85쪽

"혼자서 외치면 뻥이지만, 우리가 같이 외치면 길이 된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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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0-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석훈 신간을 벌써 다 섭렵하셨나는 말씀이잖아요...흐~

마늘빵 2009-10-14 11:11   좋아요 0 | URL
으흐흣. 연달아 다 읽었어요. 공저로 해서 한 권 더 나왔던데요?

turk182s 2009-10-14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내내 신간 3권다 읽었네요,,우박사는 볼수록 청소년,대학초년생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은듯해요.청소년은미래다..뭐이런것같은데, 변태우파들이 점령한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비젼은 10대한테있다..이런뜻인데, 근데 글발이 한국이 일말의 희망은 있지만 망해가는 속도가 너무빠르다 그래서 짜증난다. 뭐 이런 결론같습니다.

마늘빵 2009-10-15 00:03   좋아요 0 | URL
빠르시네요. ^^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것 많이 느꼈습니다. 10대에 대한 애정. 많이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갖고 있는데 부응해줄지는...
 
생태요괴전 -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생태경제학 시리즈 1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절판


드라큘라는 자본가들, 그들과 결탁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다. 좀비는 피지배층, 즉 노동자이자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위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88-89쪽

기술 중심주의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 결합되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기술과 자본이 결합된 몇 개의 기업은, 좀비 수준이라고밖에 말하기 어려운 강력한 소비 지지자들을 갖게 된다. 좋은 물건을 싸게 소비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믿음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퍼진 것이다. -94쪽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지금 죽거나 길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원래 야생에서 살았던 개나 고양이는 길드는 편을 선택했고, 야생에서 살던 벼와 밀도 녹말 함유량을 늘리면서 인간에게 길드는 편을 선택했다. 이렇게 길들기를 거부한 대부분의 생물종들은 인간의 활동범위가 확장되면서 조금씩 멸종해가는 중이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들이 더는 인간에게 고분고분 당하지 않겠다는 현상을 나는 ‘생태요괴’라고 불렀다.-155쪽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 메시지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을 괴롭혀야 행복해진다는 ‘사회적 마조히즘’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174-175쪽

나는 지금의 십대가 개발요괴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패닉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요괴들의 충실한 동맹자들은 살아야 할 날이 길지 않지만, 십대들은 살아가야 할 날이 더 길기에 ‘생태적 자산’에 대한 이해관계가 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또 전략적으로 보면, 개발요괴들은 상대적으로 이미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십대들과 대부분의 이십대들은 아직 잃을 것이 없으므로 선택의 범위가 넓다. 물론 물리적, 경제적 힘은 개발요괴들이 이미 장악한 상태지만, 상상력, 예술, 농업의 영역은 온전히 십대들에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27쪽

본능이 지시하는 과시적 소비의 욕구를 이기고 좁게 살려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기’가 가능해야 좁게 살 수 있다. 넓게 생각하기란 어떤 것인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좁게 살기’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적게 먹는다고 라면을 주식으로 먹거나 햄버거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은 ‘싸게 살기’이지, ‘좁게 살기’는 아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들임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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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9-10-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빨리 읽으시네요. 책 나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늘빵 2009-10-13 12:17   좋아요 0 | URL
흐흐. 금방 읽히더라고요. 컨셉은 재밌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어요.

이리스 2009-10-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쟁이 ㅋㅋ

마늘빵 2009-10-14 10:40   좋아요 0 | URL
이번에 나온 세 권 연달아 다 읽었다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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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20대 특히 대학생들은 아직까지 ‘침묵하는 다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미루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답답하지만, 가장 답답한 것은 아마 본인들일 것이다. 구조 앞에서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26쪽

흔히 케인스의 경제 체계를 ‘수정 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 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 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 정권이 민중들에게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계속)-46-47쪽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자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너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 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 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46-47쪽

마지막 5분 요약, 암기 그리고 그걸 통한 평가가 바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이 친구들은 몸 자체가 신자유주의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행복은 신자유주의 안에 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길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답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오픈 퀘스천’ 앞에서 끝없이 외로워진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이 아닌가.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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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9-10-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군때문에 고민좀 해봐야겠어. 우석훈 책을 읽어볼까.. 쿨럭~

마늘빵 2009-10-14 10:41   좋아요 0 | URL
일단 <88만원세대>를 시작으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으라능. 땡스투는 나한테 하라눙.

무해한모리군 2009-10-1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은 생태~ 시리즈는 어때요? 그걸 읽기엔 우린 넘 늙은거 아닐까? ㅎㅎㅎ

마늘빵 2009-10-15 19:06   좋아요 0 | URL
왜이랫 아마투어가티. 우린 아직 젊다오. 30대초중반도 결코 우석훈이 말하는 젊은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 우석훈이 걱정하는 것들을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오.
 
편집에 정답은 없다 -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출판기획 시리즈 3
변정수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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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십’과 ‘편집 경력’은 (아주 상관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무관하다. -21쪽

편집자는 근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구체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편집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편집자들 자신이 더 잘 안다. 하지만 ‘편집’이란 무엇인가, 또는 편집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를 물었을 때, 그 답은 편집자가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그 수많은 일들 하나하나로 결코 환원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모든 일의 총합과 등치되지도 않는다. 요컨대 편집은 ‘추상적인’ 일이다.-24-25쪽

편집자는 판단하는 사람이며, 의미를 나르는 기호를 가공하는 사람이며,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는 사람이다. -41쪽

쉼표 하나, 토씨 하나를 넣고 빼는 일에도 주어진 ‘정답’은 없다. 그저 편집자의 ‘판단’이 있을 뿐이다. -47쪽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대한 편집자의 판단이 필요하다. 즉 ‘텍스트와의 싸움’이 좀더 완성도 있는 의미의 구조물을 위해 어느 기호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라면, ‘시간과의 싸움’이란 책이라는 의미의 구조물을 이루는 기호 하나하나가 얼마만큼의 상대적 중요도를 가지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48-49쪽

대가를 받고 제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신’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55쪽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도달하는 일반적인 정신능력, 즉 ‘추상능력’의 발현으로 얻어진다. 추상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그물을 더 촘촘하게 짜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숲을 보는 통찰이 깊어지기를 원한다면 우선 자신의 추상능력을 점검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더 잘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80-81쪽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겨도 그만인 것들에서도 분명한 관계를 인식해내는 능력이란, 세상만사의 크고작은 관계들이 얽히고설킨 그물에 스스로를 던져놓을 수 있는 용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2쪽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란 애당초 세계상이 명료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혹 제 나름의 뚜렷한 세계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협소하고 관념적인 나머지 구체적인 판단의 계기에서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전체를 보는 통찰을 편집자의 업무능력으로서 평가하는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상을 가진 사람이다. -83쪽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있는 경험과 연관시켜 자신의 경험체계로 조직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93쪽

가공능력이란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지 기호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물론 의미를 표현하는 것은 기호이므로,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란 당연히 기호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만,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 없이 기호를 잘 다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의미가 사상되면 그것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니기 때문이다.-130쪽

텍스트의 의미를 책의 존재로 인해 매개될 사회적 콘텍스트 속에서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공’은 없다. -146쪽

텍스트를 장악하지 못하고 텍스트에 치여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 환기하자. 텍스트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앞서 ‘무엇을’이 ‘어떻게’에 선행한다고 말했지만, ‘어떻게’를 위해 선행하는 것은 단지 ‘무엇을’뿐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누구에게’ ‘왜’ 전달하는가에 대한 통찰이 텍스트 이해를 지배해야만 편집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장악할 수 있다. -158쪽

텍스트를 장악하지 못하는 편집자란, 텍스트와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것이며, ‘왜냐고 생각하기’를 소홀히 한 것이며, 텍스트에서 아무런 ‘상처’를 받지 못한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삶 속에서 텍스트의 전체적인 맥락을 통찰해내지 못하고 놓친 것이다. -174쪽

편집자에게는 비평가의 ‘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눈’을 외화해낼 비평가의 ‘언어’가 필요하다. -215쪽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체화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으며, 자신을 진지한 대화의 상대방으로 삼아 스스로조차 선뜻 납득되지 않는 자신의 낯선 모습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연장선에서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에 나설 수 있다. -218쪽

자존감도 자의식도 없는 편집자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게다가 우리는 어떻든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치에 대한 대가를 받아 먹고살아야 하며, 그것을 정당하게 인정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존재감의 발현은 필연적이다. 그것을 부인한다면 편집도 없고 책도 없으며, 나아가 편집자의 노동은 마치 가사 노동처럼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될 것이고 직업으로서의 편집자도 없을 것이다. -238쪽

‘자신의 삶에 대한 긴장’이 구체적이지 못한 사람에게서, 언감생심 ‘텍스트에 대한 긴장’을 기대한다는 것이 차라리 어리석은 일이다. -254쪽

‘텍스트 장악력’을 기대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머릿속에 주워담고 있는가 따위보다는 그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254-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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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10-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과 깊이 연관된 책이네요^^ 저랑은 그닥ㅎ

마늘빵 2009-10-10 1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 분께 수업도 들은 적이 있고. 눈빛이 강렬하시죠. 귀로 듣던 이야기를 눈으로 읽게 됐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10-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라는 책이 있다닛!!

마늘빵 2009-10-12 09:25   좋아요 0 | URL
나온지 며칠 안됐어요. ^^ 포스 강한 분이시죠.

네꼬 2009-10-1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 아프님 훌륭한 편집자 다 된 것 같아! (응?)

마늘빵 2009-10-12 09:26   좋아요 0 | URL
응? 에이 냐옹 씨가 그런 말 하면 부끄부끄.

이리스 2009-10-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책이. 아프군을 위한 책이로구나~ ^^;

마늘빵 2009-10-14 10:39   좋아요 0 | URL
응응. 편집 기술이 아닌 편집 마인드 교육책이지.
 
철학, 삶을 묻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구판절판


사람은 식물에게서 영양과 번식의 능력을 이어받고, 동물에게서 운동의 능력을 이어받아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고, 이 능력들만으로는 채울 길 없는 욕망은 의식의 운동, 곧 사고 작용을 통해서 충족시킨다. (중략) 사람의 욕망은 식물이나 동물의 욕망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생겨나고, 역사 속에서 채워지는 측면이 있다. 이 측면을 인간 욕망의 역사성이라고 부르자. (윤구병)-15쪽

불교에서는 이상으로 삼는 무욕의 상태, 다시 말해서 욕망과 충족이 완전히 일치하여 아무런 틈도 없는 상태는 불행 의식과 동시에 행복한 느낌도 사라지는 상태이다. 역설적으로 생명계의 진화는 욕망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서 생기는 불행을 원동력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고, 누군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생겨나는 욕망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사이에 메워지지 않은 틈이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윤구병)-18쪽

‘아예 없는 것’은 의식의 대상도 욕망의 대상도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아예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의 욕망은 ‘아예 없는 것’은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생명체의 건강한 욕망은 생명의 유지와 연관해서 ‘지금 없는 것’ 그러나 ‘앞으로 있을 것’, ‘여기 없는 것’ 그러나 ‘어디엔가 있는 것’, '나에게 없는 것‘ 그러나 ’내 밖에 있는 것‘을 지향한다. (윤구병)-23-24쪽

개체나 종에게 삶의 공간이 넓어지고 삶의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삶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반영한다. (윤구병)-24쪽

삶이 안정되면 의식은 잠이 든다. 감각마저 필요 없을 만큼 삶이 안정되면 감각도 잠이 든다. (중략) 사람이 감각 능력과 아울러 의식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동물에 비해 사람의 삶의 조건이 한층 더 불안정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의식의 발생은 본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생존 조건의 반영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사람의 의식이 건강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쓰여야 한다. (윤구병)-24-25쪽

사람의 욕망과 관련하여 ‘없는 것이 있다’는 결핍감은 ‘있을 것이 없다’는 의식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윤구병)-25쪽

사람의 욕망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욕망을 채우려는 방식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사람의 욕망이 이렇게 역사성을 띠는 것은 사람의 경우에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과 의식으로 파악된 ‘없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의 경우에 ‘없는 것’은 감각될지라도 의식되지는 않는다.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은 감각될지라도 의식되지는 않는다. 감각으로 파악된 ‘없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지금’, ‘여기에’, ‘나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따로 만들어낼 대상은 아니다. 어디엔가 이미 ‘있는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윤구병)-26쪽

새들의 울음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배고플 때 내는 소리 다르고, 짝지을 때 내는 소리 다르고,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내는 소리 다르다.
이처럼 의식이 없는 새조차 욕망의 충족과 좌절 정도에 따라 바뀌는 감정을 소리와 몸짓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데, 의식의 도움을 받아 어떤 생명체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표현할 능력을 지닌 생명체인 사람은 계급 지배의 긴 역사적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공포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인 채 숨죽이고 살아온 것이다.(윤구병)-34쪽

인생 전체를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채워야 하는 현대인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가?"를 묻는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인생의 가장 기초적인 물음조차 사치로 여기며 취업에 필요한 지식으로만 자신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박은미)-108-109쪽

자기 자신으로 살면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데 자신이 충분히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는 일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면서 살면, 즉 자아실현을 하면 타인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의 저 깊은 내면에서 자신을 승인하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된다.(박은미)-110-111쪽

자기답게 살자. 자기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늘 찾으며 자기다움을 형성하며 살아가자. 그러한 삶은 타인의 시선에 결정당하는 삶도 아니고, 타인의 시선에 얼어붙는 삶도 아니다.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각자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중략) 자기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자기다움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 알수록 타자의 자기다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소외되지 않고 존재 가치를 고양하면서 사는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원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실존적으로 살면서 인간다움과 자기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것이다. (박은미)-115쪽

진실로 철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우선 성실한 삶, 고뇌하며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깨닫고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주체적 의식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문제 의식을 갖게 된 사람은 이미 철학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를 깨닫고 그 문제와 씨름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건 모두 다 철학자다. 직업적인 소수만의 소유물인 철학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정신 속에는 그가 인간인 한 철학자로서의 소양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삶의 포괄적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의 본래적 요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또 그러한 지반 위에서만 철학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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