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가이즈> 개봉될 때부터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상업성면에서나 작품성면에서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조차 접었던 영화였다. 대개 이런 코믹영화들은 그냥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나오는 '그저 볼거리'인 영화인지라 그렇다.

 아무리 영화계 대부 박중훈이 나오고, 차태현과 한은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저그런 코믹영화'라는 평 이상을 받기는 힘들다. 원래 시나리오 자체가 그러니까.

 시나리오는 박헌수 감독이 직접 맡았다. 그는 이전에도  <주노명 베이커리>, <진짜 사나이>, <구미호> 등의 코믹영화들을 많이 다루었고 역시 최근의 영화도 <투가이즈>와 같은 코믹영화였다. 그가 감독을 하지 않고 각본만 쓴 <화산고>나 <싱글즈> 같은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관객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화격에는 속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감독으로 나선 영화는 모조리 큰 실패를 낳았다. 그래도 감독으로서의 욕심때문인지 계속해서 도전은 하고 있지만 이런 코믹영화들로는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안되는 영화에 계속 시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다지 별로 기대할 것 없고, 볼만한 것도 없는 영화다. 평이 너무 가혹한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 박중훈과 차태현, 한은정 정도까지 나왔다면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젊은 관객들의 눈길을 받을만한데도 철저하게 소외당했다. 그냥 너무 우울하거나 슬퍼서 웃고 싶다면 봐도 괜찮은 영화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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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헐크>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다. '헐크'라는 소재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헐크'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신선하게 각색해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영화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영화 <와호장룡>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의 이 작품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된 에릭 바나를 2003년에 개봉한 영화 <헐크>를 통해 다시 보는 느낌이 새롭다. 만약 <헐크>를 먼저 봤다면 난 <트로이>를 보면서 <헐크>의 에릭바나를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를 본 뒤 '헥토르'라는 인물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헐크'라는 진부한 소재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관점을 형성하지만, 에릭바나를 보는 것 또한 또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1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이끌어낸 듯 하고, 영화를 통해 새로 관심갖게 된 여배우 제니퍼 코넬리를 알게 되어 기쁘다. ^^; 조사 결과 70년생으로 미국태생이며, <헐크>이전에는 <뷰티풀 마인드>와 <레퀴엠>, <폴락>, <웨이킹 더 데드>, <다크시티>, <악의 꽃> 등에 출연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본 영화는 <폴락> 하나뿐. 기억을 떠올려보니 앵무새 폴락의 본래 주인이 나중에 어른이 된 후가 그녀였던 것 같다.

 영화감상의 말미에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연 잘못된 과학의 희생자로 태어난 헐크를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과거의 여자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베티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하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잘못된 실험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연구자 글렌은 그를 하나의 실험대상물로 볼 뿐이다. 또 그를 대하는 태도를 넘어서 그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끔 '위험한 존재'로 변한다면 그를 죽여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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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뚱한 브리짓 존스가 돌아왔다. 드디어 솔로로 처량하게 지내던 브리짓 존스가 완벽남 마크를 애인으로 두고 생의 봄날을 맛본다. 언제까지나 꿈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런 완벽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떠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크를 쳐다보는 그녀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엉뚱하고 바보같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극적 긴장감을 주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역시나 초절정 바람둥이로 나온 휴그랜트는 영화 <노팅힐>에서의 서점에서 일하는 순박남의 이미지는 어디간데 없이 치마두른 여성에 환장한 남자로 나오고 또다시 브리짓존스를 꼬신다. 근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도대체 저 뚱뚱하고 못생긴 뒤뚱뒤뚱거리는 여자를 왜 좋아하는 것일까?

 이에 반해 마크는 너무나도 완벽하다. 여자들의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그런 남자. 얼짱, 몸짱, 마음짱, 돈짱, 명예짱! 사고뭉치 브리짓 존스를 언제나 이해해주고 싸운 뒤에도 먼저 다가와 화해를 구하고, 헤어져있는 동안에도 그녀를 위해 그녀 모르게 일을 처리한다. 이런 남자가 현실에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의 여자들의 머리 속에 듣는 생각이 아닐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녀들의 머리 속의 완벽남을 실컷 즐길 수 있을터.

 특별히 뭘 기대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사랑과 열정>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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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본 알기 쉬운 대학 - 신완역, 양장
강병창 엮음 / 명문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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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수많은 역서 중의 한권인 이 책은 다른 역서들과 좀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각 문장에 한문 음을 달았고, 경제인의 관점에서 부가적인 해설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음을 달았기에 읽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음과 동시에 '자의'를 보고서 따로 옥편을 찾지 않고 이 책만 보고도 독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번역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로 맞춘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띄어 그다지 좋은 역서로 추천할만하지는 않다. 또한 굳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대학>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데 불필요하게 수많은 역서에 한권 더 추가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썼다는 해설은 사실 없어도 무방한 부분이고, 이 부분이 없어도 되는 부분이라면 굳이 이 책은 많은 역서들 중에 하나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양장본의 형태를 띠어 값이 비싼 것도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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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집주 (全) - 원본비지
김혁제 옮김 / 명문당 / 198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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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비지 대학집주>는 순전히 <대학>이라는 옛 고서 그대로 세로쓰기를 하고, 번역이나 해설 등 토시하나 안달고 원본 그대로 출판된 책이다.

 역자는 김혁제씨로 이분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원이면서, 대학역학교육학회 수석고문이라고 한다. 역학 관련해서만 60여권을 도서를 저술한 역학계의 원로로 불리운다.

 이 책은 순전히 4학년 2학기 마지막으로 들은 '한문'수업 때문이었다. <책문>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학교 과선배이자 선생님이었던 김태완 선생님의 가르침 하에 한학기동안 한문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에서 <대학>을 다루었다.

  다음은 <대학>의 또다른 책 <경제학자가 본 알기 쉬운 대학>에 나와있는 역자의 글을 대신함으로써<대학>을 소개하겠다.

 "<대학>은 옛날 태학에서 자기 몸을 닦아 장차 사람들을 관리할 사군자, 즉 엘리트를 가르치던 수기치인지술에 관한 교과서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원래 <예기>의 49편 중의 42편에 있던 것이다. <대학>에 관해서는 북송 때의 사마광이 주석한 <대학광의>가 처음이며, 그 뒤에 정명도, 정이천의 <대학정본>이 있었고, 그 제자 여대림의 <대학해>가 있었다. 이윽고 주자가 제가의 학설을 종합, 절충, 보완하여 <대학장구>를 편찬함으로써 비로소 <대학>은 <논어><맹자><중용>과 더불어 유교경전의 사서로 되었다."

 "<대학>은 사군자가 장차 남을 다스리기 위하여 자기를 닦는 규범을 말한 것이니, 소위 칙규지학이며 사서의 첫째로 가는 까닭이다. 따라서 현묘지학을 말한 <중용>, 무보지학을 말한 <논어>, 발원지학을 말한 <맹자>와 그 범위가 다르며, 또 <대학>은 도를, <중용>은 명을, <논어>는 덕을, <맹자>는 성을 위주로 하는 바이지만, 이 넷은 모두 이(理)로써 꿰뚫으니 결국 '사서'는 통리(通理)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순수하게 원본의 한자만으로 쓰여져있기에 독학자가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다만 원본을 가지고 또다른 해설이 있는 역서와 함께 본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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