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내에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올 [정치체에 대한 권리] "서문"을 올립니다.  

발리바르가 쓴 여러 책의 "서문"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나고 인상적인 "서문"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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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에 관한 권리를 갖다/~에 속할 권리가 있다”avoir droit de cité라는 이 표현은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특히 사상들이나 문제들에 적용된다. 지난 수년간 이런저런 잡지나 학술지 또는 공동 저작에 발표됐거나 미발표된 논문들 및 발표문들을 묶으면서[나는 처음에 여기 실린 글들을 수록해 준 출판사들 및 간행물의 편집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학술지 󰡔리뉴󰡕(Lignes)를 편집하는 미셸 쉬르야(Michel Surya), 다니엘 도블(Daniel Dobbels) 및 프란시스 마르망드(Francis Marmande)에게 감사하고 싶은데, 그들은 지속적인 역경의 와중에서도 󰡔리뉴󰡕의 필수 불가결한 기획을 고수해 오고 있다.] 나는 독자들이 시민성/시민권[[옮긴이] 지난 󰡔우리, 유럽의 시민들?󰡕의 번역에서는 ‘citoyenneté’를 일괄적으로 ‘시민권’으로 옮겼는데, 이러한 번역은 ‘citoyenneté’에 담긴 이중적 함의, 곧 정치적 활동의 주체로서 시민의 본성을 뜻하는 주체적 함의와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도적 함의를 온전히 살리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 점을 감안하여 이 책에서는 경우에 따라 ‘citoyenneté’를 ‘시민성’과 ‘시민권’으로 구별하여 옮기거나 ‘시민성/시민권’같이 병기하여 옮기기로 하겠다.]의 생생한 문제들에 대해 프랑스에서 논의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주도록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민권이라는 주제는 이미 가장 많이 다룬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교육이 문제이든 아니면 기업이나 공공서비스가 문제이든 또는 공직 선출자의 책임 및 정치적 도의 내지 사회운동이나 문화의 역할이 문제이든 간에 “시민적” 및 “시민”이라는 관형어가 결부되지 않고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대꾸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 논점을 좀 더 정확히 해두기로 하자. 내 목표는 다면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때로는 형태를 가늠키조차 어려운 이런 토론 속에 대개 그것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일군의 문제들 ⎯ 이는 이 문제들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특수하”거나 평범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 을 도입하는 것이며, 또한 이런 문제들이 서로 소통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둔 문제들은, 집합적 복종의 토대들이라는 문제 또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원칙들을 적용하는 문제이며, 또한 거기에는 국민국가 내에서 외국인들의 지위라는 문제 내지 세계 및 도시의 갈등을 인류학 및 조형예술의 현대적 발전과 접합하는 문제들도 포함된다.

나의 논변과 탐구의 핵심에는 경계/국경 제도가 놓여 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더[나는 이미 경계/국경이라는 문제를 󰡔민주주의의 경계들󰡕(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La Découverte, 1992 및 󰡔대중들의 공포󰡕(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1997[󰡔대중들의 공포󰡕, 서관모・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에서 다룬 바 있다.] 경계/국경 제도는 단지 심원하게 기능이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제도를 구현하는 관행들 및 표상들 ⎯ 영토의 한정에서부터 내국인과 외국인의 (“자연적”이거나 “강요된”) 분리에까지 이르는 ⎯ 은 상호 양립 불가능한,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다수의 시민권의 정치들의 시금석을 이룬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시도해 볼 생각이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국경 제도의 민주화라는 개념은 비록 역설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가 존속 가능한 시민권, 그리고 모든 이들이 영위할 수 있는 시민권을 설립하고자 한다면 필수 불가결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나는 국경 제도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검토해 볼 것이며, 또한 이런 민주화를 정의하고 작동시키기 위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검토해 볼 것이다.

따라서 시민성/시민권에 관한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나는 결코 이런 문제들을 프랑스에 고유한 역사적 제도들 및 조건들에 대한 성찰과 분리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한 유럽 국민들 전체에 공통적인 문제들이나 지중해의 양쪽 연안 국가들에 공통적인 문제들(특히 프랑스 인민과 알제리 인민의 운명이 함축하는 문제들), 그리고 세계화 과정 ⎯ 이 과정에는 아메리카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데, 비록 이런 그림자를 미국의 제국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 속에서 문화의 생성이라는 문제들(무엇보다도 “다문화주의”의 등장이라는 문제)과도 분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이 문제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문명들의 중첩과 옛것과 새로운 것, 친숙한 것과 낯선 것lointain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는, 지리와 역사의 “삼중적인 지점들” 중 하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Les frontières de l'Europe”, La Crainte des masses, op. cit.; “유럽의 경계들”, 󰡔대중들의 공포󰡕, 앞의 책.] 현재의 세계에서 이 지점들보다 더 민감한 지점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분석의 관점 및 넓은 의미에서의 투사적인 활동의 관점에서, 이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경계 다름 아닌 프랑스 자신위에 나 자신 및 또한 독자들을 위치시키고 싶었다. 나는 이런 작업에서 이 책을 이루는 텍스트들의 대화 상대방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이 텍스트들 대부분은 나의 지인들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며, 그들과의 만남을 반향하고 있다. 제10회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의 프랑스 및 독일 예술감독들이나, 국제철학학교에서 열린 “알제리, 프랑스, 교차된 시선”Algérie, France, regards croisés이라는 제목의 콜로퀴엄을 조직했던 파리와 오랑Oran[[옮긴이] 오랑은 알제리의 도시 명칭이다.]의 내 동료들이 바로 그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요청들은 오늘날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요청들은 우리가 매번 지역주의와 국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아무튼 바로 이런 요청들로부터 우리는 “프랑스식” 시민성의 가장 훌륭한 유산인 정치적 보편주의를 확장하고 재작동시켜야 할 필요성을 이끌어 낸다.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인권의 정치가 문제이든 아니면 식민화의 흔적들 및 그 흔적들이 불러내는 능동적 “기억”이 문제이든, 또는 “세계화”라고 불리는 것 속에서 국경과 국적의 문제 및 동일성들과 문화의 생성이 문제이든 간에, 이 문제들은 단순하게 이론적인 관계에 따라 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어떤 추상적 공식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데, 이 문제들이 결국에는 한 개념이 지닌 상이한 측면들을 밝혀 주는 데 기여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이 문제들의 접합을 지령하는 것은 어떤 정세가 지닌 강제력들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세는 육면체의 공간[[옮긴이] “육면체의 공간”은 프랑스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프랑스의 지리적인 모습이 육면체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을 훨씬 넘어서지만, 현재의 조건 및 프랑스의 전통은 이런 정세에 대해 아주 특수한 모습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성격을 띠고 있는 위기에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데, 국민전선의 발흥은 이런 위기의 가장 명백한 증상을 이룬다. 내가 샤토발롱Châteauvallon[[옮긴이] 샤토발롱은 프랑스의 툴롱(Toulon) 시에 있는 문화공연센터의 명칭이다. 샤토발롱에서 발표한 발리바르의 글은 이 책 6장에 “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과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국민 우선”이라는 문제 ⎯ 이는 국민전선의 중심 구호들 중 하나이며, 국민전선이 지닌 파시즘적인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 주는 구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에 관해 큰 목소리로 고찰하면서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국민전선에 강박 들려 있지 않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화급한 문제들을 정식화하는 데서 국민전선이 불러 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모두가 다 기억하는 말을 원용하여, 국민전선은 “좋은 질문들”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해 두자. 하지만 국민전선의 영향력은 진정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국민전선의 영향력이 민주주의에 대해 가하는 위협은 구조적 원인들에서 유래한다. 이런 위협은 잔혹하게도, 만약 우리가 집합적으로 정치를 재발명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아주 험난한 저항의 길밖에 없는, 그런 조건들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 점에 관하여 부단히 참여와 성찰을 호소하는 것이 비관론이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될 수는 없다.

확신하거니와 이런 위기에 대한 이해는 일방적인 문제 설정의 틀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런 이해는 일의적인 용어법을 통해서는 표현될 수 없으며,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처럼 “다중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그리고 예술의 자원들 및 역사, 사회학, 정치철학의 자원들 등이 이런 다중 언어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지시적 범주가 필수적인데, 이 범주는 시민성/시민권의 실천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실추를 거듭해 온 제도적 복합체, 더구나 이런 실천들이 함축하는 현재의 긴장을 격발시키고 있는 그런 제도적 복합체가 지닌 상이한 측면들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범주다.

내가 제안하려는 지시적 범주는 국민(적이고) 사회(적인) 국가État national (et) social라는 범주인데, 나는 이 표현의 도발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범주는 우리를 경제 신학적인 이념성들의 천상天上(“섭리국가”[[옮긴이] 우리가 “섭리국가”라고 옮긴 “l'État-providence”는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welfare state”, 곧 복지국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어 뜻 그대로 이해하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잘 통치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런 명칭의 기원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노동헌장을 통해 당대 자본주의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고발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 및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는 국가를 제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발리바르가 “l'État-providence”를 “경제 신학적인 이념성들의 천상”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에서 역사적 전환들이 이루어지는 지상으로 데려가며, 계급투쟁 및 사회운동을 유토피아로 투사하거나 역으로 악마화하지 않으면서도, 점차 국가로 통합된 계급투쟁 및 사회운동이 미친 세속적 효과를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 “계약적 질서”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위기 및 그것이 낳은 사회적・정치적 “소속 박탈”désaffiliation의 효과들의 뿌리에 관한 연구들 가운데 이론의 여지없이 가장 탁월한 연구[R.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 Une chronique du salariat, Fayard, 1995.]에서 로베르 카스텔Robert Castel은 위험을 무릅쓰고 적어도 한 차례는 이 범주를 사용하고 있지만, 또한 동시에 이 범주가 지닌 통제 불가능한 함의들을 경계하고 있다. 반대로 나는 논의를 일탈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범주가 지닌 모든 함의(가장 우려할 만한 함의들까지 포함해)를 열어 놓기 위해 이 범주의 사용을 옹호한다.

지난 50여 년 동안 산업 발달을 이룩했고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는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사회들(프랑스와 같은)이 경험했던 상대적인 사회적 평형 상태가 파시즘과 친화성을 지닌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이 범주를 사용하는 이유는 결코 아니다.[[옮긴이] 발리바르 말의 의미는, ‘국민사회국가’라는 개념이 나치스, 곧 ‘국가사회주의’(독일어로는 Nationalsozialismus, 불어로는 socialisme national)을 연상시킬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전자의 사회들에도 불평등과 배제가 존재하고 도덕화하고 정상화하려는 강제들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점차 국민주의의 틀 속에서 사회적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또한 이와 상관적으로 사회정책을 수단으로 하여 다양한 동일성들, 국민적 공화주의의 다원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점차 소멸시켰던 경제적이거나 기타 다른 변화들에 대해 이 사회들이 취약했던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사실 [사회적 갈등의 조절과 다양한 동일성들의 통합 사이의] 이런 “선순환”은 사회적 투쟁의 동역학의 산물로서, 이는 코포라티즘이라고 비난받아 왔지만, 또한 그런 사회적 투쟁은 특히 능동적 시민성을 산출하기도 했다. 이런 선순환이 중단되자마자, 위기의 상황에서 선순환이 표상해 왔던 파시즘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 역시 더는 사고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상위의 수준에서” (예컨대 “사회적” 유럽의 수준에서) 이런 선순환의 재구성을 다소간 의례적으로 예고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이를 회복해야 하며 ⎯ 처음 보기에는 아무리 그럴듯하지 않다 하더라도 ⎯ 모든 수준에서(지역적・국민적・관국민적) 민주주의적 실천들과 개혁, 반역, 혁명의 수렴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국민사회국가의 역사적 형상을 넘어서, 개인적 지위로서의 시민권과 집합적 해방으로서의 시민성의 변증법을 또 다른 틀 속에서 재개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일반적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텍스트들은 한 번의 계기에 저술된 것은 아니지만, 같은 특집호에 수록된 여러 편의 글들처럼 읽을 수 있다. 이 텍스트들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내가 보기에 본질적인 점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이런 모순들을 감추고 싶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 정세가 지닌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정정은 지적 작업을 제시하는 일의 일부를 이룬다. 지적 작업을 제시하는 일은 독백을 고집하는 연구를 소개하는 일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만남과 호명, 현실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일에서 유래한 작업은 그 흔적을 담고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새로운 대결을 향해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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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정한 상황들 속에서 “시민 불복종”에 대한 발의를 요구하는 원칙들을 검토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공개적인 환기를 통해서 이 책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코 국가 권위에 대한 불복종 및 그 내용이나 입안 조건들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법률들을 집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가 시민성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사멸”을 요구하는 무정부주의가 공동체를 정초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이 함축하는 개인주의는 정치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불복종에 대한 이런 필수적인 준거가 없이는, 그리고 심지어 이처럼 불복종에 의지함으로써 생겨나는 위험을 주기적으로 감수하지 않고서는 시민성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외국인의 프랑스 입국 조건을 훨씬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 “드브레” 법안에 맞서 1997년 2월 벌어진 집합적인 반항 운동 시기에 발표됐고 이 책에 수록된 글에서 내가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시민 불복종은 그것이 필수적인 것이 되는 경우에는 제도에 맞선 개인적 양심의 항거를 표현하지 않으며, 사적인 도덕적 측면과 공적인 삶의 측면 사이의 치유 불가능한 분리를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상징적 토대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용어의 강한 의미에서 정치적 행동이다. 사실 국가의 상징적 토대는 국가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이런 토대는 초월적 권위에게 돌려지던가 아니면 사회에 내재적인 “구성 권력”에서 비롯해야 한다. 하지만 정당성이 기성 질서로부터 분리되자마자 두 경우에서는 갈등과 폭력의 위험, 이율배반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에 대한 복종의 조건들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봉기의 행위 또는 좀 더 간단히 말하면 불복종 행위가 오류나 과오 또는 범죄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결정하는 판단은 규칙 없고 모델도 없는 항상 독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불복종 행위를 보편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불복종 행위의 상황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들은 공적인 장소에 “미등록” 이민자들의 처지(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기로 하자)를 드러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상황들은, 인정받는 인간 및 시민의 지위를 요구하는 이민자들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이들에게 합법적인 체류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선택 및 자신의 행정적인 모순들,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유산이 낳은 결과들을 떠맡기를 거부한(그리고 여전히 많은 부분 거부하고 있는) 국가의 완고한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개적인 갈등에서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이 가담하도록(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담하게) 만든 것은,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것과는 반대로 지식인의 참여가 지닌 메시아적인 모습에 대한 향수나 이제는 상실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망상적인 대체물의 추구 때문이 아니다. 국민전선이 조장하고 고무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증오에 맞서 외국인들을 그 자체로 사랑하자는 대칭적인 명제를 무책임하게 대립시키려는 시도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이동권 및 생존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정, 그리고 입국 및 체류에 대한 치안상의 제한에 대한 이런 권리들의 우선성이 국적 그 자체의 원칙을 정당하게 활용하기 위한 시금석이 되리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치체에 대한 권리로부터 가장 완강하게 배제되고 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제도적 쇄신 및 발명(이를 통해 오늘부터 시작해서 미래의 시민성이 짜여 나갈 것이다)이라는 대책을 강구하도록 강제하는 이들의 개인성을 현시하지 않고서는 또는 적어도 환기시키지 않고서는, 정치체에 대한 권리라는 질문을 그것이 지닌 상호 의존적인 차원들 전체와 함께 검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미래의 시민성은, 상징적 준거들(자유, 인간들 사이의 평등, 연대)의 질서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권리들에서도, 무국민적이거나 반국민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관국민적일 것이다. 이런 시민권은 추상적이게도 반국가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주권적인” 국민국가의 전능함이라는 신화의 정정과 더불어 시민권의 설립 장소의 확대, 따라서 인간 활동의 공공성publicité 영역의 주목할 만한 증대를 전제할 것이다. 미래의 시민성은 결국 국가가 수행하는 문명화/국가 자신에 대한 문명화la civilisation de l'État(이 표현의 이중적 의미에서)를 경유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단지 관습과 덕목, 또 법률만이 아니라 이상들과 연대들, 집합적인 반역이나 봉기, 그리고 시빌리테와 안전 및, 폭력과 대항 폭력의 발전에 맞선 저항의 실천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것은 “습속의 문명화”를 훨씬 넘어선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과제는 아니지만, 커다란 상상력을 요구하는 과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치적 기예의 상반된 측면들을 실천적으로 묶어 내는 능력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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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기말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상상의 힘을 해방시키면서도 유토피아와 결별하는 일이다. 이런 테제는 확신하건대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내지 정치 사이의 불모의 대립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집단주의적인 것이든 개인주의적인 것이든 간에 유토피아는 현실주의와 비현실성이라는 양자택일 속에 상상력을 가두는 반면, 현실주의는 근원적으로 비현실적인 것이며, 통용되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것, 심지어 “불가능한 것”은 그것이 없이는 인간 역사 속의 어떤 현실도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지구화”globalisation 내지 “세계화”mondialisation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과정[나 자신은 “세계의 세계화”라는 표현, 곧 세계의 “총체성”이라는 형상의 실질적인(virtuelle)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이 책에 수록된 “세계 문화?” 참조.]과 함께 고전적인 유토피아의 토대들 자체가 근원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점을 확인해 두지 않을 수 없다. 역으로 제도들의 변화라는 질문 및 제도가 불가피하게 포함하는 허구의 몫(집합적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대표하기 위한 단어들과 권리들, 새로운 기법들의 발명,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접합하는 가치들의 변화)이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여기에는 진정한 철학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내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해 잠시 우리가 마르크스와 푸코에게 물려받은 정식들(두 사람의 철학의 양립 불가능성을 고려해 볼 때 결국 이 정식들 사이의 수렴은 그만큼 더 의미심장한 것이다)을 원용해 보겠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아주 일찍부터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진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간의 거짓된 양자택일로 인해 은폐되었으며, 주지하는 바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대립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 두어야 한다(노벨 경제학상의 과학적 자본주의가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자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적 자본주의의 대립물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것은 오히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귀결이며, 실증주의적 언어로 변환된 결과물이다. 마르크스의 유토피아 비판의 의미는 과학 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과학의 기능은 전혀 다른 것, 정확히 말하면 인식이다) 실천 쪽에서, 그리고 혁명적 실천관 쪽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를 변혁하기”,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의 진화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기, 그리하여 세계의 진화에 대한 대안이 세계의 모순들 및 세계의 투쟁들 속에, 지배적인 경향들이 점점 더 광범위한 인간 대중들이 견뎌 낼 수 없는 강제들을 부과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그런 불가능성 속에, 따라서 이런 강제들이 야기하는 저항들 속에 객관적으로 기입되게 만들기.

푸코의 경우에는(그에게 저항의 사상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유토피아에 대해 대중의 변혁 운동이 아니라 그가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른 것을 대립시켰으며, 그것의 실제적인 다양한 변이 형태들을 기술하고 분류하고자 했다. 헤테로토피아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가장자리 위치해 있지만, 역으로 사회에 대해 작용을 가하며, 사회가 크고 작은 차원의 차이들을 조절하는 데서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배제의 장소들 또는 그와 반대로 실험과 정상화 및 일탈의 장소들, 매음굴, 식민지, 극장, 감옥, 박물관, 정원 …… 요컨대 우리는 어떤 제도가 과연 헤테로토피아적인 차원을 갖고 있지 않을지, 그리고 과연 그런 차원 없이 존속할 수 있을지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성의 모순 및 그것이 지닌 화해 불가능한 갈등들이 아니라, 모든 정상화에 대해 반항적이고, 모든 규칙보다 더 복잡하거나 이질적인 특징을 지닌 사회적 행위들의 이질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또한 마르크스와 푸코가 각자 나름대로 정치의 본질적인 한 차원을 탐구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좋은데, 이런 차원은 사회적인 장 속에서 주체성이 이런 장의 절대적 “타자”로서가 아니라 그것의 내밀하고 필연적인 차이로서, 그것의 불가피한 유동성 내지 “역사성”의 보완물로서 등장한다는 점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제 현대 세계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비판이 제기하는 문제들로 되돌아가 보자. 좀 더 빨리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세계화는 유토피아의 고전적인 거대 형상들에 조종을 울렸다고 말해 볼 생각인데, 이는 특히 이런 형상들이, 법치국가Rechtstaat 및 권력국가Machtstaat의 현실들에 대해 ⎯ 마치 그것들의 이면裏面을 이룬다는 듯이 ⎯ 상상적 보충물이자 명예의 표현으로 작용했던 “세계시민주의”의 지평 속에 기입되어 있었던 한에서 그렇다. “세계시민주의”는 이상 도시Città ideale의 조화로운 꿈을 세계 전체로 확대한 것으로 근대의 모든 진보 사상의 지평이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지구 전체의 지배, 교환 및 지적 소통, 분업의 유일한 공간 내부에서 인간 종의 통합이 인종적이거나 국민적인 적대들의 해소와 더불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태의 불평등 및 인간에 의한 인간의 압제의 제거와 일치하게 되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두 진영” 사이의 단순화된 적대의 종언에 의해, “남”과 “북”의 주민들의 점증하는 상호 침투에 의해, 새로운 국제 질서 및 그 인도주의적 보충물의 피비린내 나는 실패에 의해, 요컨대 사람들이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미몽에서 깨어난 우리의 눈앞에서 완전히 산산조각난 채 끝나 버린 것이 바로 이런 유토피아적 전망이다. 사실 동일한 세계 내부에서, 동일한 경제적 규제에 종속되고 동일한 환경 문제들에 직면한 가운데, 동일한 관측 위성들의 감시 아래 놓인 채로 마침내 실현된 인간 종의 통일성은 시민적civique / civile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홉스가 자연 상태로 묘사한 바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과 더 닮았다. 더욱이 통신의 “가상 세계”는 계속해서, 스펙터클로 전환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의 불행(보스니아나 르완다 또는 알제리에서 볼 수 있듯이)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고, 이제는 결정적으로 폐지된 것으로 믿었던 “우등 인간”과 “열등 인간”(심지어 “일회용 인간”)의 분할을 재창조하고 있다.

따라서 더는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유토피아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들이 정말이지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이제 “지나간 미래”(Vergangene Zukunft;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만들어 낸 표현을 따르면)가 되었다. 󰡔지나간 미래󰡕, 한철 옮김, 문학동네, 1998 참조.] 이 때문에 아마도 유토피아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퇴락된 형태들로서만 지적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다. 기술 관료적 프로그램이나 메시아적인 예언 같은 것들 …….

나로서는 결코, 상상은 이제 정치에서 아무런 자리도 갖고 있지 않으며 정치는 불가피한 것을 관리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불가피한 것의 가장자리들을 정돈하거나 인간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한 상상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상상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나는 이런 상상력을 집합적・실천적 차원 및 법적・상징적 차원을 아우르는 제도적인 창조의 장 속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령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다루겠다) 민주주의 그 자체의 탁월한 반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는 국경 제도의 민주화를 기획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허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허구란, 경험 그 자체로부터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는 것이며, 인식과 행동이 서로 분리할 수 없게 결합된 것, 그리고 구성/헌정을 산출하는 봉기(및 현존하는 헌정들의 변혁)를 의미한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개인적 책임이자 집단들 사이의 소통의 도식으로서의 정치를 재발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경험을 통해 허구의 장소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직접적 현실은 우리에게 그런 장소들 중 몇 가지를 (하지만 제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리켜 준다. 가령 “국민” 내에서 외국인들의 지위 또는 국민들과 외국인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표상/재현/대표 같은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차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폐지는 문명을 형성하는 차이들의 종언이 될 뿐만 아니라, 환대라는 본질적인 통념의 의미를 박탈시킬 것이다), 차별의 기능에서 상호성의 기능으로, 그리고 이로부터 세계적인 연대와 갈등의 공간을 지역적으로 개방하는 기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한 사례에 불과하고 또 이것을 노동 분야에서 또는 문화적 동일성과 종교 분야에서 제기되는 다른 쟁점들과 분리해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가 지난 10여 년 또는 20여 년간 헤쳐 온 여정을 생각해 볼 때 모든 것을 잘 고려한다면 이것은 허무주의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1997년 10월 30일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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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비평] 가을호에 실릴 글을 하나 올립니다.  재작년에 발표된 [국민이라는 괴물?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 51호, 2009의 후속편 성격의 글입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난 글이 아니므로, 이 글에 대한 토론이나 비평을 원하는 분들은 [역사비평] 가을호에 수록된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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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 
[1. 이 글은 2011년 4월 11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제148차 월요모임에서 처음 발표됐고, 그 뒤 7월 7일 제1회 역사비평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두 발표회 참석자들의 유익한 문제제기 덕분에 글의 논점을 좀더 분명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참석자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이 글에 여전히 담겨 있을 난점이나 문제점은 온전히 필자의 책임임을 밝혀둔다.]
 

I. 들어가는 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을 쓰게 된 몇 가지 동기를 밝혀두겠다. 우선 나는 그동안 서양어인 네이션이나 내셔널리즘, 또는 내이션 스테이트[2. 이 글이 부분적으로는 nation과 nationalism, ethnicity, ethnie 등과 같은 서양 개념들의 번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개념들은 발음만 옮겨서 표기하도록 하겠다.]가 때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 민족국가로 또 때로는 국민이나 (드물긴 하지만) 국민주의, 국민국가 등으로 특별한 원칙 없이 번역되거나 아니면 그냥 발음에 따라 표기되는 경향을 꽤 불편하게 생각해왔다. 이것은 대개 네이션이나 내셔널리즘 등이 갖는 원래의 다의성을 근거로 하여 정당화되곤 한다. 더욱이 민족, 민족주의, 민족국가 등의 번역을 선호하는 이들이나 19세기 말 네이션이 처음 소개된 이후[3. 이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권보드래, 「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 [민족문학사연구] 33, 2007 및 박찬승,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의 형성」, [개념과 소통] 창간호, 2008을 참조.] 일제 시대 및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이 용어가 사용된 용법을 근거로 하여 우리말의 ‘민족’ 개념이 갖는 특수성(심지어 세계사적인)을 강조하는 이들은 때로는 민족을 국민의 상위 개념(더 포괄적이거나 규범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의미에서)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경향이 우리말의 국민과 민족을 네이션 개념에 대한 서로 경쟁하는 번역어로 간주하거나 또는 동일한 지시체를 지칭하는 두 개의 상이하고 때로는 배타적인 용어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 이러한 혼용(더 나아가 ‘혼동’)은 이해할 만한 이유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지만[4.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흔히 말하듯이 매우 유례가 드문 ‘단일한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어느 정도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서양(특히 영미권)에서도 ethnicity나 ethnic group 같은 용어가 부재한 가운데 nation이 ethnicity나 ethnie를 포괄하는 뜻으로 꽤 다의적으로 사용되어온 데도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 연구에 따르면 ethnicity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처음 등재된 것은 1972년이며, 영어권에서 이 용어는 1953년 사회학자 데이비드 라이스먼(David Riesman)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Thomas Erikson, Ethnicity and Nationalism, Pluto Press, 2002(2nd Edition), p. 4 참조], 이제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부정확하고 현실에 대한 설명력도 떨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근대 네이션은 우리말의 용법을 고려해보건대 ‘민족’이라는 말로 번역되거나 표현되기는 어려우며, 우리말의 ‘민족’은 서양어의 에스니시티나 에스니(ethnie)에 더 가까운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에 적합한 우리말 표현은 ‘국민’이다. 단 이것은 민족과 국민을 동일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이한 지시체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보통 다소 형식적인 법적 의미로 이해되는 국민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두 번째 동기는 지난 2008년에 전개된 촛불시위의 경험이다. 이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시위대들이 즐겨 부르던 “헌법 제1조”라는 짧은 노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조문을 되풀이하는 이 노래는 아마도 주권자로서 또는 제헌권력으로서 국민(또는 ‘인민’)의 위상과 의미가 대중들에게 자각적으로 인식되고 그들의 정치적 기억 속에 기입되게(또는 재기입되게) 된 최초의 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전에도 ‘국민’은 ‘민족’과 더불어 (진보와 보수 또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 의해) 정치적으로 자주 호명되었지만, 대중들이 자기 자신을 단순히 피통치자나 수동적인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헌정의 주체로서 자각적으로 호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정치적 사건을 이론적으로 좀더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에 대한, 곧 근대 네이션에 대한 심층적인 정치적ㆍ존재론적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글의 또 다른 저술 동기와 연결된다. 나는 지난 20여 년 간 국내에서 이른바 ‘포스트주의’ 내지 ‘포스트 담론’이라 불리는 사조에 속하는 철학자들과 이론가들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 담론이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학계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상당히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 포스트 담론은 넓은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것과 꽤 생산적인 갈등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던 데 반해[5.이 점을 특히 잘 보여주는 저작으로는 로버트 영,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박종철출판사, 2005; [백색신화], 김용규 옮김, 경성대출판부, 2008을 각각 참조. 다만 두 번째 책은 (까다로운 내용 때문이지만) 번역에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국내의 포스트 담론은 지난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의 화두였던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는 담론으로 기능했으며,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여러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주제들을 약화시키거나 때로는 배제하는 데 기여해왔기 때문이다.[6.이 문제에 관한 필자의 관점은 「진태원과의 대담: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현재적 과제」, 김항ㆍ이혜령 엮음,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 그린비, 2011 참조.]


이런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분야는 네이션이나 내셔널리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자생적 발전론’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민족사’의 구성이 20세기 후반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중심적 화두 중 하나였다면, 포스트 담론의 대두 이후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관한 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족국가’ 내지 국민국가에 관한 논의도 ‘위기’나 ‘종말’, ‘소멸’이라는 관념과 결부되어 줄곧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은 다양한 포스트 담론을 원용하는 이들에 의해 괴물로 치부되기도 하고 국민들에게 노예적인 삶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내지 파시즘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기도 했다.[7.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진태원, 「국민이라는 노예?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 51호, 2009 참조.] ‘포스트 담론’으로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조야한 논변과, 자신들이 비판하는 이들 못지않은 극단적인 이분법과 환원주의로 점철된 (말하자면 ‘민족=국민=근대=전체주의’ 식의) 이런 식의 논의가, 하지만 국내에서는 또한 대표적인 포스트 담론으로 통용되는 현실에 대한 불편함과 곤혹스러움이 이 글을 쓰게 된 또 하나의 동기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자크 데리다가 즐겨 말했듯이, 해체 또는 탈구축(필자는 이것이 데콩스트뤽시옹(déconstruction)이라는 프랑스어의 좀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믿는다)은 이런저런 철학자의 작업이기 이전에, 현실 내지 사태 자체가 스스로 수행하는 작용이다. 현실은 항상—범박하게 말하자면—철학자가 작업하기 이전에 스스로 탈구축되고 재구축된다. 따라서 철학자나 이론가가 수행하는 탈구축은—역시 범박하게 말하자면—2차적인 탈구축이다. 현실 내지 사태가 스스로 탈구축되는 것은 그것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모순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겔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종말론에 의거하는 이들이 믿었던 (또 이른바 ‘금융위기’를 계기로 고무되어 다시 한 번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러한 모순은 전면적으로 지양되지도 않거니와 반드시 행복한 귀결을 낳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사태를 구성하는 복합적 모순은 스스로 탈구축되면서 더 강화되기도 하고 전위(轉位)되면서 새로운 모순들을 산출하기도 한다. 2차적 탈구축이 좀더 복잡하고 다면적인, 그리고 미묘한 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네이션이나 내셔널리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는 네이션(또는 네이션들의 체계)이 근대를 대표하는 구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또 네이션이 오늘날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탈구축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네이션이 수행하는 탈구축은 단순히 네이션의 종말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정치체로의 선형적인 대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네이션(또는 네이션들의 체계)의 운동을 규정했던 복합적인 모순의 심화이고 새로운 전위일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네이션들의 체계가 수행하는 탈구축의 운동에 대응하는 2차적 탈구축을 위한 과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또는 국민이나 국민국가)를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들을 단순히 저주하고 청산하려는 것일 수도 없다. 그러한 탈구축은 무엇보다 네이션의 운동을 규정해온 모순의 성격을 밝히고 그러한 모순의 운동을 굴절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만약 탈근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탈구축의 작용을 통해서만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II. 네이션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1.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는 경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우선 네이션의 번역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최근의 한 연구는 국내에서 네이션이 적어도 해방 이후에는 줄곧 ‘민족’이라는 말로 번역돼온 사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민족’이란 단어는 ‘nation’의 번역어이다. 20세기 한국사에서 ‘민족’이란 단어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와 분단의 현실은 ‘민족의 독립’, ‘민족의 통일’을 20세기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만들었다. nation은 본래 ‘국민’이라는 말로로 번역되었고, 따라서 ‘국민’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로 인한 국권의 상실은 한국인들의 ‘국민’될 자격을 박탈하였고, 남북 분단으로 인한 불완전한 국가의 성립은 한국인들에게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국민’이라는 단어보다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8. 박찬승, [민족, 민족주의], 소화, 2010, 21쪽.] 그리고 그는 이후 별다른 정당화의 논거 없이 네이션을 민족이라는 용어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고, 전근대 시기의 ‘민족’에 대해서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 그가 찾아낸 ‘족류’(族類)라는 용어가 적합할 것 같다고 제안하고 있다.[9. 박찬승, 같은 책, 50쪽 이하 참조.]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따른 이유[10. 한국사 연구자들은 간혹 개념 내지 용어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민족’이라는 말이 네이션에 대한 타당한 번역어라고 옹호하면서도 그러한 역사성을 과거의 역사성으로 한정한다. 다시 말해 역사라는 것은 계속 변화하고, 그에 따라 변화된 역사적 현실을 지칭하는 용어도 새롭게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 곧 용어의 역사성은 현재 및 미래의 역사성도 함축한다는 점을 다소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많은 민족 관련 연구자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친 시대적 맥락을 매우 중시하면서도 1990년대 이후의 상황을 새로운 시대적 상황으로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박명규, 「네이션과 민족」, [동방학지] 제 147권, 2009, 32쪽 주 7).] 이외에도 네이션이나 내셔널리즘을 ‘민족’이나 ‘민족주의’로 번역해야 하는 논리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필자들도 적지 않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로서는 만일 ‘네이션’을 ‘국민’으로 번역하면 ‘네이션’에 함유되어 있는 종족의 문화적 측면(민족)은 소거되고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성원(국민)이라는 측면만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모든 ‘네이션’에는 종족의 문화적 논리와 시민의 정치적 논리가 공히 존재한다. ‘민족’이란 번역어도 ‘국민’에 깃들인 정치적ㆍ계약적인 성격이 약하기는 하지만 혈연적ㆍ문화적 공동체를 함의하는 ‘종족’(ethnicity)이란 말이 따로 있으므로 ‘민족’은 ‘종족’과 ‘국민’의 중간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11. 장문석, [민족주의 길들이기], 지식의풍경, 2006, 10쪽.]

국내에는 네이션과 내셔널리즘 또는 네이션 스테이트에 관한 논의는 많아도 이 용어들의 번역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대략 관례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장문석은 자신의 번역 이유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논거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네이션을 ‘국민’으로 번역하는 경우

하지만 네이션을 ‘국민’으로 번역하자는 제안도 국내에서 이미 몇 차례 제시된 바 있다. 특히 서양사학자인 최갑수의 제안이 주목할 만한데, 그는 일련의 논문들에서 이런 주장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는 1995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 네이션이라는 서양 개념은 우리말의 ‘민족’과 ‘국민’ 두 가지로 옮길 수 있으며, 오히려 후자의 의미를 더 강하게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12. 최갑수, 「서구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민족주의」, 한국사연구회 편, [근대 국민국가와 민족문제], 지식산업사, 1995, 15쪽.] 더 나아가 “그것이 우리말에서 주로 ‘민족’으로 옮겨지고 있음은 우리가 드물게도 ‘종족적으로’(ethnically) 매우 동질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국민을 아직 이룩해내지 못한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13. 같은 책, 같은 쪽. 더 나아가 최갑수는 “‘종족적으로’”라는 말에 각주를 달아, 이러한 번역은 영어의 ‘ethnic group’을 ‘종족’으로 표현하는 기존 국어사전의 용례에 따른 것이지만, “원래 혈통적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는 ‘종족’이 과연 ‘ethnic group’의 적절한 번역어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인종’은 더욱 부적절하다. 차라리 ‘민족’이 어떨는지. 즉 ‘nation’을 ‘국민’으로, ‘ethnic group’은 ‘민족’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감히 제언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좀더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

몇 년 뒤에 발표한 다른 글들에서는 좀 더 나아가 네이션 이외에 내셔널리즘이라는 개념 역시 단일한 의미로 이해하기보다는 구별해서 이해하고 번역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가령 1999년의 「프랑스 혁명과 ‘국민’의 탄생」 첫 번째 각주에서 그는 (프랑스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네이션은 ‘국민’으로, 내셔널리즘은 ‘국민주의’로 옮길 것을 제안한다.

"이희승 선생의 [국어대사전](민중서관, 1975)에 따르면, 민족이란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말을 하며 생활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집단.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한 것임”이며 국민은 “동일한 통치권 밑에 결합되어 국가를 조직한 인민”을 뜻한다. 전자를 문화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치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nation’이 이 두 의미를 포괄함이 명백하나, 그 근대적 용례를 확립시킨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적어도 187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정치적 개념인 ‘국민’이 단연 우세했다. ... 따라서 본고에서 ‘nation’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국민’으로, ‘nationalism’ 역시 ‘국민주의’로 옮길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독일의 민족주의와 같이 프랑스의 ‘국제주의적’ 헤게모니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나타났던 경우는 ‘국민주의’보다는 ‘민족주의’로 옮기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14. 한국 서양사학회 편, [서양에서의 민족과 민족주의], 까치글방, 1999, 107쪽. 이러한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는 김인중, 「민족주의의 개념」, [프랑스사 연구] 제 22집, 2010, 309쪽 참조.]

그 뒤 2003년에는 더 나아가 ‘에스닉 그룹’(ethnic group)의 번역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언어, 역사, 신화, 관습, 그리고 아마도 종교를 포함하는 기본적인 삶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는 인민”을 말하는 ‘ethnic group’은 어떻게 옮겨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민족’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내셔널리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nation/ethnic group의 구분법을 Nation/Volk로 유지했던 것이다."[15. 최갑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특성」, [서양사 연구] 제 31집, 2002, 2-3쪽.]

내가 최갑수의 견해를 인용한 것은 대체로 그의 논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고 또 그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명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상당수의 인류학자들이 네이션을 ‘국민’으로, 그리고 에스니시티나 에스닉 그룹은 각각 ‘민족성’이나 ‘민족’ 등으로 옮기자고 제안한다는 점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견해가 주목할 만하다. “ethnic group, ethnicity는 원래 미국의 다문화, 다민족사회의 맥락에서 소수민족들의 존속이나 부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1960년대 이후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민족집단 및 그것들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nation의 번역어로 쓰이는—인용자] 민족의 개념과 구별하기 위하여 ethnic group(ethnicity)이 종족(종족성) ... 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ethnic group, ethnicity라는 용어가 이제 한 국가 내의 주류 민족 집단(예를 들어 중국의 한족)뿐만 아니라, 국가의 범역을 넘어선 민족현상의 설명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소수민족’으로 번역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민족에 관한 광범위한 현상들이 ‘민족’이라는 일상화된 실천적 용어에 의해 설명되고 있는 현상을 감안할 때, ‘종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어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실제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ethnic group, ethnicity를 별도의 용어로 번역하기보다 전자는 민족집단, 소수민족, 민족단위로, 후자는 민족성, 민족 정체성, 민족 특질, 민족관계, 민족현상 등으로 맥락에 따라 개념화되어 서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16. 유명기, 「민족과 국민 사이에서: 한국 체류 조선족들의 정체성 인식에 관하여」, [한국문화인류학] 35권 1호, 2002, 75-76쪽. 또한 이광규, [신민족주의의 세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2장 및 이 책에 대한 서평인 이정덕, 「서구적 개념어의 번역에서 오는 혼란」, [한국문화인류학] 41권 1호 참조. 시안 존스, 이준정ㆍ한건수 옮김, [민족주의와 고고학], 사회평론, 2008, 11쪽에 나오는 번역 용어에 관한 설명도 참조하라. 이 책의 원제는 Siân Jones, The Archeology of Ethnicity, Routledge, 1997이다.]

인류학자들이 이처럼 에스닉 그룹이나 에스니시티에 관한 번역에 민감한 이유는 원래 서양에서 이 개념들이 생성되고 또 최근에 널리 논의되는 분야가 인류학 분야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17. 서양 사회과학에서 이 개념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시안 존스, 󰡔민족주의와 고고학󰡕, 2장-4장을 참조.] 반면 한국에서는 그동안 소수민족 문제나 다민족 문제가 그다지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분과학문에서는 이 개념들의 용법이나 번역 문제에 대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앞의 인류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에스니시티나 에스니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는 네이션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에스니시티나 에스니라는 개념들을 고려해야 민족과 국민,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좀더 깊어지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반론: 네이션과 에스니

다시 앞의 논의로 돌아가자면, 장문석은 앞서 인용했던 것처럼 네이션이 종족과 국민 사이의 중간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민족’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몇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 번째 반론은, 과연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단어가 종족과 국민 사이의 중간적인 의미를 표현해낼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앞서 인용한 국어사전에 따르면 우리말의 민족은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말을 하며 생활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집단.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한 것임”을 뜻한다. 이러한 정의는 실제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잘 전달해준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당연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 한국어,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양식, 한국인에게 고유하다고 여기는 심리적ㆍ정서적 습관을 떠올리며, 한국어를 잘 구사하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잘 알고 있고 한국의 의식주 생활에 익숙한 사람, 더욱이 검은 머리를 하고 약간 광대뼈가 나온 사람을 그러한 민족의 성원으로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한국에서 20여년을 살아오면서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서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이다 도시라는 방송인을 한민족의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더욱이 대개의 경우 그는 한국어를 잘 하는 신기한 외국인으로 비쳐질 뿐 한국인으로 여겨지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은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섭섭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어법이 이런 상황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네이션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단어는 장문석이 ‘종족’이라고 번역하는 에스니시티,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에스니’(ethnie)[18. 에스니라는 단어는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프랑스어 단어다. 영어에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ethnicity나 ethnic group 같은 단어들이나 ethnic이라는 형용사만 존재했을 뿐 단일한 명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아래에서 논의되는 앤서니 스미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ethnie라는 프랑스어를 수입하여, 그것을 에스닉 공동체의 한 유형을 가리키는 명사로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용법이 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이 단어는 최근 서구학계에서 공용 학술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여기서 새로운 쟁점이 나타난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네이션과 에스니에 관한 최근 서양학계의 정의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네이션과 에스니에 관해 비교적 체계적인 정의를 제시한 사람은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내셔널리즘에 관한 권위자로 명성을 누리고 있는 앤서니 스미스(Anthony D. Smith)다. 이른바 ‘민족상징론’(ethno-culturalism)의 주창자로 분류되는 그의 작업은 한편으로 네이션 및 내셔널리즘에 관한 원초론(primodialism)적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에른스트 겔너, 에릭 홉스봄 또는 베네딕트 앤더슨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근대론(modernism)적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전근대적 에스니와 근대적인 네이션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여 국내 학계에서도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우리가 거론했던 장문석이나 김인중 역시 그의 입장과 저작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전근대적 에스니와 구별되는 근대 네이션은 대략 다섯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19. Anthony D. Smith, Nations and Nationalism in a Global Era, Polity Press, 1995, pp. 54-56; 앤서니 스미스, 강철구 옮김, 󰡔국제화시대의 민족과 민족주의󰡕, 명경, 1996, 75-76쪽 참조.] 이러한 특징을 종합하여 그는 근대 네이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유된 신화와 기억, 대중적 공공 문화, 특정한 고토(故土, homeland), 경제적 단일성,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이름 붙여진 인간 집단.”[20. A. D. Smith, Ibid., pp. 56-57; 앤서니 스미스, 같은 책, 76쪽.] 또는 최근에 출간된 책에서는 “고토를 점유하고 있고 공통의 신화와 공유된 역사, 공통의 공공 문화와 단일한 경제, 모든 성원을 위한 공통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이름을 지닌 인간 공동체”[21. A. D. Smith, Nationalism: Theory, Ideology, History, Polity Press, 2001, p. 13.]로 네이션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에스니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고토와 연결돼 있고 선조와 관련된 공통의 신화, 공유된 기억,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공유된 문화 및 (적어도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연대의 수단을 소유한 이름을 지닌 인간 공동체.” [22. A. D. Smith, Ibid..]

이 두 가지 정의는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지만(고토와 연결됨, 공통의 신화, 공유된 문화), 뚜렷한 차이점도 지닌다. 하나는 네이션의 경우 고토를 점유하고 있는 반면 에스니는 고토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자의 경우 현재 고토에서 살아가는 집단을 가리키는 반면, 후자는 고토와 떨어져서 살아가는 이주 집단들이나 망명 집단들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이션의 경우 공유된 역사를 가지는 반면 에스니는 공유된 기억만을 가지는데, 이것은 에스니가 서로 분산된 영토에서 흩어져 살아가지만 같은 혈통과 신화 및 문화와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을 포괄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네이션의 경우 단일한 경제와 공통의 공공 문화, 모든 성원을 위한 공통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데 반해 에스니는 이러한 것들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네이션은 문화적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ㆍ법적 공동체인 반면, 에스니는 문화적 공동체로 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말은 네이션보다는 오히려 에스니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에스니시티나 에스니 또는 에스닉 그룹 같은 용어는 앞의 인류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우리말에서 비교적 생소한 ‘종족성’이나 ‘종족’, ‘종족 집단’ 같은 번역어로 옮기기보다는 내용상으로도 더 적절하고 일상어로도 친숙한 ‘민족’ 관련 어휘들로 옮기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더욱이 에스니시티나 에스니를 ‘종족성’이나 ‘종족’으로 옮기거나 아니면 일부 인류학자들이 하듯이 ‘소수민족’ 등으로 번역하는 것은 최근 서양학계에서 이 개념이 이룩한 이론적 진전을 몰이해하게 될 소지도 있다. 앞서 논의한 앤서니 스미스의 이론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에스니시티나 에스닉 그룹의 용법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나 의고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에스니라는 개념을 근대 네이션의 기원 및 구조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23. 이 점에 대해서는 Eric Kaufmann & Oliver Zimmer, “‘Dominant Ethnicity’ and the 'Ethnic-Civic' Dichotomy in the Work of A. D. Smith”, Nations and Nationalism, vol. 10, nos. 1-2, 2004 및 Andreas Wimmer, “Dominant Ethnicity and Dominant Nationhood”, in Eric Kaufmann ed., Rethinking Ethnicity: Majority Groups and Dominant Minorities, Routledge, 2004를 참조.] 그의 작업 이전까지 서양 학계 및 서구 사회에서 에스니시티나 에스닉 그룹이라는 말은 타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가령 영국이라면 파키스탄이나 인도 출신의 이주자들, 프랑스라면 북아프리카나 아랍 출신의 이주자들 또는 미국이라면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이민자들이 이 단어의 지시체들이었다. 하지만 앤서니 스미스가 모든 근대 네이션은 에스니라는 역사적ㆍ문화적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대개의 네이션에는 다수의 에스니가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한 이후, 에스니시티는 더 이상 타자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한정되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영국의 경우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과 다른 본토 영국인들(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 및 심지어 잉글랜드인 등)도 일정한 문화적ㆍ역사적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에스니이고, 중국의 경우 티벳족이나 만주족 또는 조선족만이 아니라 한족 역시 하나의 에스니이며, 한국의 경우라면 한국인 역시 하나의 에스니인 셈이다. 따라서 문제는 더 이상 본토인 대 이방인(또는 소수민족)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국민 내에 존재하는 다수의 에스니들 사이의 구별(그 중 어떤 에스니는 다수이자 문화적ㆍ정치적으로 지배적일 수 있고 어떤 에스니들은 소수적일 수 있는)이며, 그것과 네이션 사이의 관계다.

셋째, 민족이나 민족주의, 종족성 같은 용어를 택하는 이들 역시 이른바 ‘종족적 민족주의’가 지닌 폐해를 지적하며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억제하고 관리하면서 이른바 ‘시민적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앞에서 인용했던 장문석을 비롯해 많은 필자들이 이런 관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종족적 민족’ 대 ‘시민적 민족’이라는 이분법이 지닌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이분법을 고수하게 되며, 더 나아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시민적 민족’이나 ‘시민적 민족주의’ 자체가 함축하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맹목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른바 ‘시민적 민족’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나 미국이나 호주 같이 이민자들에 기반을 두는 나라에서 오늘날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배타적 시민권의 문제를 제대로 고려할 수 없게 된다. 다음과 같은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시민권은 사회적 폐쇄의 지극히 막강한 도구다. 그것은 (국경이 없고 배타적 시민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전쟁과 내부 갈등, 기근, 일자리 부족이나 환경오염 등을 피해 도피하고 싶어 하는 또는 자녀들이 좀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해주고 싶어 하는 거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를 구하는 나라들을 보호한다. 시민권에 대한 접근은 도처에서 제한돼 있으며, 그것이 원칙상 민족성(ethnicity)과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시민권으로부터 배제된 이들, 심지어 국가의 영토에서 배제됨으로써 시민권에 지원할 가능성마저 배제 당한 이들에게는 작은 위안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민적” 배제 양식은 비범하게 강력한 것이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이것은 아마도, 삶의 기회를 형성하고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대대적 불평등을 유지하는 데서 이른바 민족성에 기반을 둔 어떤 식의 배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비가시적으로 남아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24. Rogers Brubaker, “The Manichean Myth: Rethinking the Distinction between “Civic” and “Ethnic” Nationalism”, in Hanspeter Kriesi et al. eds., Nation and National Identity, Ruëger Verlag, 1999, pp. 64-65. 또한 Bernard Yack, “The Myth of the Civic Nation”, in Ronald Beiner ed., Theorizing Nationalism,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9도 참조.]

따라서 에스닉 내셔널리즘보다 시빅 내셔널리즘이 더 개방적이고 더 진보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시민권이나 정치적 신조에 기반을 두는 시빅 내셔널리즘은 공통의 문화나 공통의 혈통에 기반을 두는 에스닉 내셔널리즘과 “다른 식으로”[25. R. Brubaker, Ibid., p. 65.] 개방적이거나 배타적이라고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할 것이다.

III. 국민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처럼 시빅 내셔널리즘이 좀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보는 생각은, 사실은 네이션과 내셔널리즘(및 에스니시티)에 관한 논의에서 국민이라는 용어 자체가 실제로는 공백으로 남겨지거나 논외로 취급되는 것과 논리적으로 연결돼 있는 문제다. 사실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에 관해 논의하고 또 이 개념들에 대해 상이한 번역어를 제안하는 필자들 중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의미를 천착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국민이라는 단어는 너무 자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한 국가를 구성하는 성원들, 또는 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또는 앞서 인용한 [국어사전]에 따른다면 국민이란 “동일한 통치권 밑에 결합되어 국가를 조직한 인민”이다. 따라서 국민은 새삼스럽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상이 될 만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네이션을 국민으로 번역하자고 제안한 이상, 그리고 국민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성원"을 가리키기 때문에 네이션의 번역어로 부적합하다는 반론이 이미 제기된 이상, 이러한 번역의 정당화를 위해서도 한번 국민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이다.

1. 보편적 모순체로서의 국민

따라서 국민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피해야 할 함정은 그것의 의미가 지닌 자명성의 외관이다. 이러한 자명성은 무엇보다 국민을 법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서 생겨난다. 곧 국민을 “동일한 통치권 밑에 결합되어 국가를 조직한 인민”으로 정의하거나 아니면 좀더 간단하게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의 성원”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 국민이라는 용어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것이 될뿐더러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아무런 개념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속한 시민은 이러한 의미의 국민이 아닌가? 또한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이런 의미의 국민이 아닌가?


따라서 네이션으로서의 국민에 대해 좀더 적절한, 그리고 좀더 근본적인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의 정치적 존재론을 사고할 필요가 있다. 내셔널리즘에 관한 빼어난 저작을 남긴 한 사회학자의 지적은 우리 논의의 실마리로 삼을 만하다.

"주권이 인민 안에 있다는 것과 인민의 여러 계층 간의 근본적인 평등을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근대적 국민 관념의 본질을 이루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기본 신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국민됨(nationality)에 대한 인식과 함께 태어났다. 민주주의와 국민됨은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결로부터 떼어놓으면 양자 모두 충분히 이해될 수 없다. 내셔널리즘은 민주주의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취했던 형태였고, 나비가 누에고치 속에 들어 있듯이 국민 개념 속에 들어 있었다. 원래 내셔널리즘은 민주주의로서 발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본래의 발달조건이 존속된 곳에서 양자 사이의 동일성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이 다른 조건 속으로 확산되고 국민 개념에서 강조점이 주권자라는 성격에서 인민의 단일성으로 옮겨가면서 그것과 민주주의의 원리 사이의 본래의 등가관계는 상실되었다. 이것의 함의 중 하나는 (마땅히 강조될 만한 것인데) 민주주의는 수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국민에게는 내재해 있는 성향일 수 있지만, 다른 국민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며, 그래서 후자에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거나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은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한다. 주권인민이라는 본래의 (원칙적으로 비-배타적인(non-particularistic)) 국민 개념의 등장은, 명확하게 ‘인민’의 상징적 지위상승과 정치 엘리트로서의 인민의 새로운 정의를 시사하는 해당 주민의 성격 전환, 다시 말해 구조적 조건의 깊은 변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했다. 그 이후의 배타적 국민 개념의 등장은 그와 같은 전환을 반드시 겪지는 않았던 조건에 본래의 국민 개념이 적용된 결과였다."[26. Liah Greenfeld, Nationalism: Five Roads to Modernity, Harvard University Press, 1992, p. 10. 강조는 원문.]

이 인용문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째는, (16세기 영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본래의 국민 개념의 본질은 인민주권과 인민 내부의 평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것, 따라서 본래의 내셔널리즘은 민주주의로서 발달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민주주의는 어떤 국민에게는 내재적 성향이지만 다른 국민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어서 정체성의 변화를 동반할 경우에만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배타적 국민 개념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조건에 본래의 국민 개념이 적용된 결과라는 점이다.


내가 그린필드와 견해를 같이 하는 것은 본래의 국민 개념이 자신의 본질로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포함한다는 점이며, 견해를 달리 하는 것은 나머지 두 가지 논점이다. 만일 우리가 이 두 가지 견해를 따른다면, 본래적인 국민(곧 민주주의를 내재적 성향으로 지닌 국민)과 비본래적인 국민이 존재하며, 내셔널리즘이 지닌 배타성은 이 후자의 국민에 고유한 것이라는 견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브루베이커가 지적했듯이 이른바 본래적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의 국가들에게 고유한 배제적 성향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기 어렵게 만든다.[27. 이것은 그린필드의 논의가 다소 형식적인 역사적 유형론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국민이 지닌 민주주의적 성격과 그것의 배타적 성격을 상이한 국민들(및 문명)에게 각각 지정될 수 있는 상호 분리된 성격으로 보거나 상호 외재적인 성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근대 국민의 모순적인 본질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왜 이른바 시빅 내셔널리즘의 본향이라고 할 만한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이 배타주의적인 성향을 띠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왜 근대 국민 형태가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 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가능한 방향은 어떤 것인지 적절히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점을 가장 명쾌하고 깊이 있게 보여준 사람은 에티엔 발리바르다. 그는 지난 20여년의 작업을 통해 국민국가의 역사를 관통하는 모순적인 경향을 분석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가능한 경로들을 모색해왔다. 발리바르의 논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프랑스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쉬나페르(Dominique Schnapper)와의 논쟁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도미니크 쉬나페르는 프랑스의 신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사회학자로서 국민국가의 위기 시대를 맞아 공화주의적 전통 위에서 국민 개념을 옹호하려고 시도한다.[28. 특히 Dominique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Gallimard, 2003(19941); Qu'est-ce que l'intégration?, Gallimard, 2007 참조.] 그녀에 따르면 “시민들의 공동체”로 이해된 국민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삶에 대한 개인들의 능동적 참여라는 의미에서의 시민권의 본질적인 토대이며 또한 세계화 시대에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법이다. 그녀의 핵심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근대적 의미의 국민은 특수한 신분이나 위계, 민족적(ethnique)ㆍ문화적 차이에 기초하지 않고 “개인들의 존엄성을 ... 그들이 지닌 보편적 인간이자 시민으로서의 자격과 연계한다”[29. D.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p. 106.]는 점 때문에 다른 어떤 정치공동체보다 더 보편적이다. 둘째, 따라서 국민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덜 배타적이며 덜 폐쇄적이다. 국민이라는 정치공동체가 모종의 배타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타자에 대해서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배타성은 배척이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식별”(discrimination)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곧 모든 정체성이 불가피하게 타자들과의 차이를 통해 정의되듯이 국민 역시 자신의 타자로서 외국인을 통해 정의된다는 의미에서 국민은 외국인이라는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민족적이거나 문화적ㆍ언어적 실체에 기반을 둔 정치 공동체나 ‘헌정 애국주의’에 근거를 둔 하버마스식의 포스트 국민 정치체보다 국민이야말로 여전히 현실적이면서도 민주주의적인 정치공동체의 기초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30. 네이션에 대한 쉬나페르의 관점은 프랑스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지만, 동시에 프랑스 안팎에서 상당한 비판을 초래했다. 프랑스 국내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다문화적이고 다민족화된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무시한 관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프랑스 바깥에서는 프랑스에 고유한 네이션 개념, 곧 정치적 네이션 개념을 과도하게 보편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발리바르는 국민국가가 보편주의적인 정치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국민국가가 배타성이나 배제성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배제적이라는 점, 따라서 정치 공동체의 보편적 형태가 지닌 모순을 첨예한 형태로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점에서 국민국가는 보편적이면서 배제적인가? 발리바르는 외연적(동화적) 보편주의와 내포적 보편주의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를 해명한다.


외연적 보편주의(universalisme extensif)라는 개념이 지시하는 것은 국민국가와 식민화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성이다. 곧 유럽 국민국가들의 형성과 패권 경쟁은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졌는데, 식민화에 나선 각각의 국민국가들은 이를 보편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식민화는 단순한 약탈이나 침략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선교의 사명 내지 인류 전체의 문명화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수행되었으며, 더욱이 내면화된 신념에 따라 수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식민화를 통해 비유럽의 피식민지 인구들은 지배자들의 국적에는 포함되었지만, 식민지 본국의 시민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같은 국적을 지닌 시민들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비(非)시민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하나의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또 다른 보편주의, 곧 내포적 보편주의(universalisme intensif)를 통해 좀더 첨예한 형태를 띠게 된다. 내포적 보편주의는 “인권선언”에서 구현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것, 곧 평등=자유라는 명제를 가리키며, 또한 그것과 내재적으로 연결된 인간=시민 명제, 곧 인간은 무매개적으로 시민이라는 명제를 가리킨다.[31. Etienne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평등자유명제], 진태원 옮김, 그린비, 근간 참조.] 내포적 보편주의가 함축하는 모순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면, 또는 적어도 그럴 권리를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이 누리는 평등과 자유는 그가 어떤 정치체(대부분 국민국가)의 성원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낳는다. “시민권의 배제 ... 는 인간성 또는 인간 규범 바깥으로의 배제와 달리 해석되고 정당화될 수 없다.”[32.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 131쪽. 강조는 발리바르.]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그가 사람인 한에서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만, 역으로 이러한 권리는 그가 시민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만, 곧 특정한 정치체, 특정한 국민국가의 성원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실제로 향유되고 행사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한에서는, 곧 그가 이러저러한 국민이 아니고,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한에서는 실제로는(잠재적으로는) 인간성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무수히 생겨난 국적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모순을 실제로 체험하고 구현했음을 보여준 바 있다.[33.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박미애ㆍ이진우 옮김, 한길사, 2006, 9장 참조.]

이러한 모순은, 보편적인 시민권의 체계로서 근대 국민국가는 항상 그것과 맞짝을 이루는 배제의 체계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함축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국민국가가 ‘국민사회국가’(État national-social)로 전환됨으로써 이러한 모순은 한층 더 강화된다. 왜냐하면 이미 국민국가 체계에서 시민권이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커다란 특권(권리들에 더하여 누릴 수 있는 자격이자 심지어 신분)이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자신의 본래 의미와 모순되는 것이었지만, 국민사회국가에서는 사회권이 기본권으로 포함됨으로써 시민권을 누리는 본래적 의미의 시민들과 그것에서 배제된 비시민들(소수자들 및 이주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은 훨씬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정부는 이러한 차별을 폐지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더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값싼 노동력의 수요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미등록(불법)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수입 제한과 고용 금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불법) 수입과 고용은 관행적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들을 합법화하는 데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과 법적ㆍ행정적 문제점 때문에 각 국가들은 이들을 계속 불법적인 상태에 놓아두려고 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들의 노동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불법 행위를 조장하고 그것을 구실로 하여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사회적 치안을 강화하려는 국가의 기만적인 이중적 행태가 전개된다.

정리하자면, 근대적 의미의 국민은 ‘시민들의 공동체’로서 내포적 보편성과 외연적 보편성을 갖는 정치적 공동체다. 하지만 국민의 이러한 보편성은 배타성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보편성 때문에 또한 그것에 고유한 배타성 내지 배제를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이 함축하는 배타성은 특수한 종류의 국민(가령 동유럽이나 비유럽 지역의)에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국민 자체에 배태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국민적 인간: 일상적 국민주의와 국민적 정체성

근대 국민 개념에 고유한 이러한 모순은 내셔널리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내셔널리즘은 매우 병리적이거나 퇴행적인, 또는 적어도 후진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곤 한다(국내에서도 몇 년 전에 벌어진 이른바 ‘디워 논쟁’ 당시 진중권 등의 논객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견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빌리그는 [일상적 국민주의]라는 저서에서 그 당시까지 내셔널리즘에 관한 논의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국민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이 지닌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34. Michael Billig, Banal Nationalism, Sage, 1995.]

그의 출발점은 내셔널리즘을 “새로운 국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극우파 정치”[35. M. Billig, Ibid., p. 5.]와 결부시키려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내셔널리즘을 ‘우리’가 아닌 ‘그들’의 문제로, 곧 아직 국민국가의 형성을 달성하지 못한(또는 서구와 같은 수준의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제3세계 내지 주변부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퇴행적이고 후진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이미 이러한 과정을 완수하여 잘 제도화된 국민국가를 구성한 서구인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과 같은 나라들은 “계속 실존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이 나라들은 국민들로서, 그리고 그 나라의 시민들은 국민 성원들로서 재생산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재생산의 필요성이 “너무 익숙하고, 너무 연속적”[36. M. Billig, Ibid., p. 6.]이어서 이러한 재생산을 위해 국민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가 “일상적 국민주의”라고 부른 것은 이처럼 “서구의 확립된 국민들이 재생산될 수 있게 해주는 이데올로기적 관습”[37. M. Billig, Ibid., p. 7.]을 가리킨다. 따라서 일상적 국민주의라는 개념은 국민주의를 무언가 비정상적이고, 어떤 격변이나 사건이 도래했을 때 일어나는 열광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통념을 넘어서, 국민국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재생산되기 위해 꼭 필요한 상징적ㆍ관습적 관행들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주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일상적 국민주의는 사실은 국민적 인간의 형성과 재생산이라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국민적 인간’이라는 표현은 발리바르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이것은 국민국가의 핵심 목표가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하는 ‘국민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고, 국민적 소속이 다른 모든 소속과 일치하고 그것들을 통합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일”[38.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55쪽.]임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근대 국민국가 내에서 각 개인들은 (자유주의에서 상정하는 것처럼) 국민에 대한 소속 이전에 또는 그러한 소속과 무관하게 자신의 독자적인 개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얻게 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집단들 및 개인들은 자신들을 이러저러한 집단의 구성원이자 이러저러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모두 똑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곧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이고 국민으로서의 자본가이고 국민으로서의 선생이고 학생이고 가정주부이고 범죄자 등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모든 국민 국가(프랑스나 미국 같은 ‘이민자 국가’를 포함하는)는 정의상 국민주의적이며, 또한 그 국민 국가의 성원들은 자신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국민주의적이다.


이것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자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39.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Verso, 2006(3rd Edition), pp. 5-6;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윤형숙 옮김, 나남, 2002, 21쪽 참조.] 여기서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은 가상이나 환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국민이 자연적인 공동체(곧 혈통에서 유래하거나 에스니시티를 기반으로 하는)가 아니라 근대에 만들어진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인공물(cultural artefacts)”[40. B. Anderson, Ibid., p. 6;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책, 21-22쪽.]임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인공물로서의 국민은 인쇄 매체들 덕분에 가능해진 근대에 고유한 시간, 곧 ‘공허하고 동질적인 시간’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41. B. Anderson, Ibid., p. 35;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책, 56-57쪽 참조.]


하지만 일상적 국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앤더슨의 정의가 지닌 약점은 그것이 국민적 정체성 형성 및 재생산의 문제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42. 나중의 저술에서 이 점이 다소 보완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충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B. Anderson, “Nationalism, Identity, and the Logic of Seriality”, in The Spectre of Comparisons, Verso, 1998 참조.] 반면에 발리바르는 앤더슨과 거의 같은 의미에서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이 개념을 국민적 인간의 형성과 재생산 문제와 결부시킨다.

"결정적인 논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민은 어떤 점에서 하나의 ‘공동체’인가? 또는 오히려, 국민이 설립하는 공동체 형태는 어떤 점에서 다른 역사적 공동체들과 종별적으로 구별되는가? 전통적으로 이 통념과 결부돼 왔던 반정립들과는 곧바로 거리를 두겠다. 우선 ‘현실적’ 공동체와 ‘상상적’ 공동체라는 반정립으로부터 거리를 두겠다. 제도들의 기능 작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사회적 공동체는 상상적이다. 다시 말해 이 공동체들은 개인적 실존을 집합적 이야기의 짜임 속에 투사하는 것에, 공통의 이름을 인정하는 것에, 기억도 할 수 없는 과거의 흔적으로 체험되는 전통들(이러한 전통들이 근래의 상황 속에서 제작되고 주입된 경우에도)에 의거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정한 조건들 속에서는 오직 상상적 공동체들만이 현실적 공동체들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43. É. Balibar & I.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La Découverte, 1988, p. 126; 에티엔 발리바르, 「민족형태: 그 역사와 이데올로기」, [이론] 6호, 1992, 117-118쪽―번역은 수정.]

이러한 의미에서의 ‘상상’은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공상이나 환상 또는 착각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을 인공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상상적 공동체로서 국민 공동체의 생산 및 재생산의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발리바르는 그것을 상상적인 것으로서 인민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찾는다. 이것은 인민이 자신들을 국민으로서 (재)인지하고, 인민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들이 바로 이러한 국민에 대한 소속을 매개로 하여 자신들의 개인적 정체성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국민 성원들 사이의 일체감, 동질성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동질성의 기원 및 주체에 대한 보충적인 상상계를 수반한다. 이는 우리나라 같이 이른바 ‘단일 민족’의 경우에는 더욱 더 사실이다. 여기서 허구적 민족체(ethnicité fictive)(또는 의제적(擬制的) 민족체)라는 또 다른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개념은 국민이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고 연속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온 역사적 실체 또는 심지어 (유일한) 역사적 주체라는 국민주의에 고유한 상상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상상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라는 개념이 가상적이라거나 가짜 또는 단순히 공상적이라는 의미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도적 효과라는 의미, 곧 제작”[44. É. Balibar & I. Wallerstein, Ibid., p. 130; 같은 글, 121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 때문에, 좀 어려운 말이기는 하지만 ‘의제적 민족체’라는 번역어가 일리가 있다).

이런 의미로 이해된 허구적 민족체는 실존하는 어떤 국민이 오래된 민족적 기원을 지니고 있으며(가령 골족의 후손, 단군의 자손 등), 그 국민은 동일한 기원을 공유하면서 오랫동안 세대를 거치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유구한 역사적 실체(또는 오히려 주체)로서의 민족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이러한 허구적 민족성은 국민 국가 내의 집단들(사회 계급이나 이러저러한 에스니들) 및 개인들이 자신들은 이러저러한 사회적 조건의 차이를 초월한 이해관계의 동일성을 지닌 같은 국민이라고 여기게 해주는 상상적 토대의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이나 인식이 단순히 공상적이거나 가상적인 의식에 머물지 않으며, 교육 제도나 가족 제도 같은 사회적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훈육되고 각종 의례나 절차, 관행 등을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재생산된다. 따라서 국민주의는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이러한 허구적 민족성을 더 강하게 반영하기 마련이며, 상상적인 역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자신의 기초로 삼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왜 여기에서 민족주의 대신 국민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내셔널리즘을 ‘민족주의’로 이해할 경우 내셔널리즘을 국민국가의 유기적 이데올로기, 또는 국민국가의 고유한 상상계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말의 민족이라는 의미로 이해된 민족주의라는 말은 서구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비서구사회, 특히 덜 민주주의적이고 덜 발전되고 덜 개화된 국가에 고유한 퇴행적 이데올로기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 서구의 이른바 선진국들에 고유한 내셔널리즘, 곧 빌리그가 일상적 국민주의라고 부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연적인 관행으로 간주될 것이다. 반면 국민주의라는 번역어는 내셔널리즘을 유기적인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 내지 상상계로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발리바르가 말하듯이 “모든 사회적 공동체는 상상적”이라면, 이것은 상상계 없는 공동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상상계 또는 이데올로기를 그 자체로 비난하거나 그것을 초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문제는 상상계 내지 이데올로기를 좀더 복합적인 체계로 인식하고 그것들 내의 차이를 식별하는 일이다. 이는 내셔널리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흔히 내셔널리즘을 단일한 이데올로기나 상상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내셔널리즘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이데올로기다. 가령 프랑스의 예를 든다면, 쉬나페르 등이 대표하는 신공화주의적 국민주의와 극우파 국민전선의 민족주의(“프랑스인의 프랑스”)는 모두 내셔널리즘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양자가 똑같은 의미나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자가 국민 개념에 내재한 모순에 둔감하긴 해도 민주주의적 시민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반면, 후자는 배타적 인종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IV. 결론을 대신하여

요컨대 우리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용도폐기할 때가 되었고 대신 ‘국민’이라는 개념이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45. 필자는 7월 7일 역사비평 토론회에서 상당수의 참석자들이 필자의 주장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는 다수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일제 시대 및 독재 시대 이래로 민족=‘저항적, 비판적인 것’, 국민=‘순응적, 관제적인 것’이라는 구별법을 일종의 (절대적인?) 규범적 가치로 간주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로 보인다. 이러한 규범성은 이른바 뉴라이트 쪽에서 8ㆍ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개칭하자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발로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필자의 주장은 민족과 국민은 동일한 지시체에 대한 서로 경쟁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각각 상이한 지시체를 가진 개념들이라는 것이며,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현재의 논의에서 나타나는 혼란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적 네이션보다는 시민적 네이션이, 민족주의보다는 국민주의가 그 자체로 더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근대 국민에는 민족적 요소와 시민적 요소가 공히 존재하며, 또 국민주의는 그것이 국민주의인 한 모종의 배타성을 띠기 마련이다. 보편적인 정치체로서 근대 국민에 함축된 이러한 배타성이야말로 근대 국가의 전개 과정을 규정한 핵심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론을 대신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점이다. 첫째, 국민이 여전히 지배적인 정치 공동체로 존재하는 한에서 국민국가의 모순을 영위하기 위한 실용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민이라는 모순적인 복합체는 그것을 괴물이나 노예적인 것으로 저주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분간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종류의 국민 공동체보다는 다른 종류의 국민 공동체, 한 종류의 국민주의보다는 다른 종류의 국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판단 기준은 그것이 얼마나 근대 국민의 이상, 곧 민주주의적 시민성의 이상에 더 근접한 것인가 여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유럽의 특정한 국민을 모델로 하여 그것을 뒤쫒는 것(가령 독일 대신 프랑스, 에스닉 네이션 대신 시빅 네이션)과는 다른 종류의 과제다.

둘째, 하지만 근대 국민이 역사적 위기에 봉착한 만큼 이러한 실용적 해법은 충분할 수 없고,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해법은 민족이나 국민과 다른 또 다른 상상적 공동체(이 경우에도 여전히 공동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요구할 것이며, 앞서 말한 실용적 해법은 이러한 새로운 상상적 공동체에 대한 모색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새로운 상상적 공동체의 사례를 하나 언급해두고 싶다. 우리가 본문에서 여러 차례 논의한 바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는 네덜란드의 정치철학자 헤르만 판 휜스테렌(Herman van Gunsteren)을 따라[46. Herman van Gunsteren, A Theory of Citizenship, Westview Press, 1998; [시민권 이론], 장진범 옮김, 그린비, 근간 참조.] ‘운명 공동체’(community of fate)라는 이름의 새로운 상상적 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 공동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로 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폐지할 수 없는 집단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현실의 공동체”[47.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248쪽.]를 가리킨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원주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시민적 정체성을, 적어도 상징적으로라도 재검토해 보아야 하며, 다른 모든 이들―곧 어디 출신이든, 선조가 누구든, ‘적법성’이 어떻든 간에 오늘날 지구의 한쪽에서 동일한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그런 정체성을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해야”[48.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책, 258-59쪽.] 한다.

이러한 종류의 공동체에서는 가령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게 된 모든 사람은, 그가 한민족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또 그가 한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이 물려받은 정체성의 특권(가령 한국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에 비하면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 없으며,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이들, 곧 같은 지리적 공간, 같은 정치체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동등한 시민의 자격으로 새로운 시민적 정체성을 재발명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의미의 운명공동체는 이 용어의 통상적인 용법[49. 가령 2006년 4월 27일자 북한 [로동신문] 사설은 남한의 다문화주의 정책을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민족을 운명공동체로 정의한 바 있다. “민족은 력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성원들의 사회생활단위이고 운명공동체이며 ... 단일성은 세상 어느 민족에게도 없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민족의 영원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위한 투쟁에서 필수적인 단합의 정신적 원천[이다].” 박명규, 「네이션과 민족」, 앞의 글, 54쪽에서 재인용.]과는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형성될 남ㆍ북한 공동체를 우리가 말한 의미에서 운명공동체로 지칭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에스니라는 의미에서) ‘민족’이라는 배타적 틀로 묶이지 않는, 또 묶이지 않아야 할 운명공동체일 것이다.


너무 공상적인 공동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적어도 그 어떤 현실적인 정치체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근대 국민의 이상 속에는 이미 이러한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약속이 기입되어 있다.[50. 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E. Balibar,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op. cit.에 수록된 여러 글 참조.] 따라서 그러한 약속이 도래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국민국가의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자들이 상상해봐야 할 과제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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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바보 2011-08-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날에 하신 얘기들 중에 누군가 脫構築이 더 적절하지 않냐고 선생님께 질문했던 적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한마디 하시는 군요. 뭐 일본에서는 이미 쓰고 있었던 번역어지요. 저도 이게 더 나은 듯 합니다.

예상대로 선생님이 언젠가는 "국민주의"라고 부르실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렇게 부르시는 군요.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회를 엿보시는 건지 아니면 논거를 준비하시는 건지?

그런데 "서양인들이 보기에 퇴행적인 이데올로기로 이해될 수 있다"는 얘기는 뭐하러 하셨습니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느냐 안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지식은 바보 2011-08-2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버트 영의 책 이야기도 언급하셨으니 조금 얘기해 보자면 술탄-갈리에프나 마리아떼기 또는 셍고르 또는 범아프리카주의가 nation(나시옹)을 언급할 때 그 nation은 흔히 말하는 nation-state를 당연한 전제로 하면서 언급하는 것도 아니고 nationalism에 근거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죠. 설사 그런 요소가 있더라도 최소한 그것만으로 한정되지 않아요. 발마스 님이 말씀하시는 "國民"으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부적절합니다.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 또는 메트로폴리스 정부의 對식민지 정책인 제국주의가 "민족적 억압"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물론 지금은 민족적 억압의 형태는 아니고 훨씬 복잡하다) 한국의 위대한 지식인들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부르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는 nation이나 nationalism을 "國民"이나 "國民主義"로만 이해했던 게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발마스 님이 마련해야 할 듯 합니다. 물론 짜증나는 나라 또는 국가 한국은 제외하고 그렇다는 거죠.


지식인은 바보 2011-08-2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급하신 최갑수 씨는 인도의 라나지트 구하에 대해 학을 떼시는 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라나지트 구하에 대해 아주 적대적인 분이죠.

최갑수 씨가 보기에는 프랑스에 "국민"이 우세하다고 발마스 선생님이 좋아하실 이야기를 하셨군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에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쓰던 nation은 제가 보기에는 "민족"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 근대국가가 뚜렷해지면서 그런 식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생긴 거 뿐이죠. 1830년 알제리 침공으로 본격화된 프랑스 제국주의가 생산한 "문명화 담론"(빅토르 위고가 아주 좋아한) 같은 것을 보면 저는 최갑수 씨나 발마스 님에게 순순히 동의할 수가 없네요.

서발턴은 더 바보 2011-08-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 시민사회와 민족-국가 그리고 자본주의는 서로 결합했습니다. 따라서 시민운동이든 시민단체든 시민이 들어가는 것들은 결코 국가나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죠. 그것은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식민주의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모두 모던 안에 있는 겁니다.

발마스 선생님의 논의는 결국에는 유럽중심주의의 시선 안에 있다고 봅니다.

balmas 2011-08-30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지식인은 바보님 댓글에 대해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한 가지는 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서양인들이 보기에 퇴행적인 이데올로기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문에서 쓴 적이 있나요? 저는 이런 말은 전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국민주의 2015-04-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현재 일본에서 내셔널리즘을 연구하고 있어서, 글쓴이의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가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하게 된 것은, 일본이 nation을 민족이라고 번역한 것을 그대로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근데, 현재 일본은 더 이상 nation을 `민족` 그리고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내셔널리즘이라는 말은 그대로 쓰지만, nation은 대개 `국민`으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내셔널리즘도 `국민주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죠. 전후, nationalism의 번역어 `민족주의`는 오역이었다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비판으로 시작해서 nation에 대한 용어 논쟁이 있었죠. 이런 번역어 논란은 거의 60년 전에 이루어져서, 빠르게 용어에 대한 논쟁이 정리되었고, 지금은 `국민`이라는 용어가 자리를 잡고 , `민족주의`라는 번역어는 내셔널리즘과 별개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와 중국(타이완을 포함해서)에서는 아직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아직도 쓰고 있는데, 이건 아마도 국가차원에서 민족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용어를 고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부분은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요. 다만, 요근래 민족이라는 용어는 다시 논의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비록 이 글은 4년 전 글이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이 nation에 대한 적절한 용어 논의가 있었으면 합니다.

balmas 2015-04-28 00:24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논의에 관한 좋은 정보를 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일본에서 내셔널리즘, 국민주의 등에 관한 논쟁사를 역사비평에 한번 기고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제 글에 관해 몇 분 선생님께서 이미 [역사비평] 지면에 글을 기고하신 적이 있는데, 일본의 논쟁사를 소개한다면, 이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글과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쓰셔도 좋습니다.^^ 저도 작년에 다른 선생님들의 논평에 대한 답변을 겸해서 이 문제에 관해 한번 더 글을 써볼 생각이었는데, 한겨레 연재로 인해 시간이 너무 쫒기다보니 미처 글을 싣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다뤄보고 싶은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국민주의 2015-05-03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코멘트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역사학 관련자가 아니고 정치학 전공자(게다가 아직 학위 과정 중입니다.)라 말씀하신 잡지에 글을 기재하기엔 제 역사적 내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 또한 이에 관련된 글을 써보고 싶긴 합니다. 사실 제가 직접 쓰는 것보다, 일본에서의 논쟁사를 번역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지만요.ㅎ

일본 학계(내셔널리즘을 주로 연구하는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에서)도, 본문에서 언급하신 국내 인류학자들의 번역처럼, 민족을 ethnicity의 번역어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단순 nationalism이 아니라 `Ethnic nationalism`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nationalism에 관련된 연구를 주고 받을 때, 근본 용어부터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 관련 서적 중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보면 일일이 보통 nationalism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Ethnic nationalism`을 말하는 건지 항상 확인합니다. 영어 병기가 있으면 문제가 없으나, 없을 땐 참 난감하더군요/ 참고로, 국민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 영어 병기도 대부분 함께 쓰는데, 민족주의를 쓰는 사람들의 경우 영어 병기를 잘 표시하지 않더군요. 모든 용어에 영어 병기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번역 용어에 논란이 있는 건 원어도 함께 적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물론 당사자들은 논란이 되는 용어가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이와 관련된 논의를 한 번 더 다루어주신다면 후학 세대들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일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 또한 기회가 된다면, 그 논의에 동참하겠습니다.
 

 조금 시간이 된 글이긴 하지만, 에티엔 발리바르의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작년 5월에 발표된 짧은 글을 보충하는 글인데,  

유럽의 위기에 대한 발리바르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글입니다.  

아마 이전에 나온 유럽에 관한 책[Europe Constitution Frontière, Editions du Passant, 2005 ]의 증보판에 수록될 예정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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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ranseuropeennes.eu/en/articles/227/Reflections_on_the_Current_European_Crisis

 

Transeuropéennes: Translating in the Mediterranean Area

 

Reflections on the Current European Crisis

 

Etienne BALIBAR

 

28 July 2010

 

On the 21st May I circulated a series of theses on the situation created in Europe by the start, more than six months ago, of what it is agreed can be called the “Greek financial crisis”.1 The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The crisis began well before the announcement by the Greek Treasury of difficulties (at a minimum with the bursting of the American real estate bubble and the banking failures that it brought about). Fuelled by the existence of enormous insolvencies, it was not be ended by the budgetary and austerity measures, imposed in Greece first and then in other countries, either. It was thus bound to develop, affecting the relations between States, nations and European peoples very profoundly.

 

2. The demonstrations by the Greek population protesting against cuts in salaries and the elimination of social services, affecting civil servants, workers pensioners, are essentially justified, because these measures do not target those principally responsible for the crisis (whether financial speculators or those who profited from corruption) and constitute a denial of democracy by the way in which they were decided on.

 

3. In a general way the policy of “saving the Euro” currently being implemented by governments and the European commission – not without some major internal tensions, arbitrated by the most powerful nation – rests on a mystification and a dissimulation. It makes a policy oriented by the interests of certain classes and certain nations pass for the “technical” expression of the general interest. It dissimulates the social costs and stakes of the recession that it will bring about, but also the problems that it would be necessary to confront once one wanted effectively to put to work a politics of European solidarity.

 

4. In the current phase of globalization, whose conflictual character is dramatically revealed by the crisis, the fate of European nations is determined by the place that they occupy in a long term, double economic process: the generalization of competition between territories (which evidently doesn’t stop at the borders of the EU) and the displacement to the old “periphery” of centres of production and of accumulation of capital, which tends to diminish the importance of [secondarise] Europe, despite the massive population and resources that it represents. The question is posed of knowing if we will submit to this passively, or if we will be able to oppose it with original, collective political strategies.

 

5. But Europe as a political project is caught today in an almost insoluble contradiction: between the demand for strengthened institutional solidarity – that is to say, a federalism, the modalities of which are [yet] to be invented, but which alone would give consistency to the “economic government” called for from diverse parts, and the absence of any real democratic participation in its current institutions and in its political life, prey [as it is] to bureaucratization, “spectacularisation” and demoralization. There is no chance of federalism seeing the light of day without democracy2. That is why I have taken the risk of talking about the necessity of a “European populism” – a provocative expression since what is developing in Europe today as nationalist populisms. The question which poses itself is that of knowing in which direction popular reactions to the aggravation of the crisis will orient themselves: will they contribute to sketching some ways out of the crisis or, on the contrary, bury us in it irremediably?

 

6. To finish – adding to this pessimism – I have noted the political disappearance in Europe of what is called “the left”. Attempting nevertheless to sketch out an alternative to the decline of viewpoints that the constitution of Europe at least nominally opened up, I have called on the intellectuals of our countries hailing from or identifying with the left, beyond their divisions into “revolutionary” and “reformist”, to move from the simple critique of neo-liberalism to the search for an anti-crisis strategy via an international debate.

 

To open the discussion I would like this evening to re-affirm these positions, which – it seems to me – are not invalidated by the developments of the last few weeks. But I would like also to try to explain the difficulties they raise, by returning to three points: democracy and populism, economics and politics, the centre and periphery of the European continent.

 

Democracy and Populism

 

I am conscious of the formidable equivocations that using the term “populism” entails. But these equivocations belong to the very nature of the political “thing”, which cannot avoid the risk [of equivocating] once it leaves the realm of abstraction so as to take into consideration the real forces at the heart of a determinate conjuncture. And on the other hand they designate the very point on which a democratic politics must make its efforts at mobilization, organization and clarification bear. It is not only a matter of constructing (or reconstructing) the popular force that is lacking today, but - in the middle of a terribly hazardous historical passage – of giving ourselves (and giving it) the moral, institutional, theoretical means of resisting the drifting that it can entail, by trying to learn the lessons of an often tragic past. Other participants in the debate – the outline of which is starting to appear – have insisted on the necessity of a “citizens” initiative in counterpoint and counterweight to government actions: they have referred to a sense of citizenship [civisme] rather than to populism3. Elsewhere, I have myself pleaded the case for an extension of the category and demands of the citizenry on the transnational – and, notably, European – scale. I’m not renouncing that at all but I do believe that, even if one extends it beyond its traditional signification, this notion is not enough to prefigure the force that we have need of here.

 

The dominant discourse – as Ernesto Laclau in particular has insisted – stigmatizes the notion of “populism” because of its visceral fear of the masses and of their intervention in the political field, supposing it to disorder the play of constitutional rules and of putting democracy itself in peril.4 And even more profoundly, it is because of the menace that this notion, in the eyes of the privileged, casts over things, making the adoption and putting to work of anti-popular politics more difficult. What is called “populism” in dominant discourse, based on examples of demagogy and dictatorship (they aren’t lacking), is thus in reality this supplement of democracy (in relation to its elitist and restrictive definitions) or even this excess, made up of participation, protests, demands, of spontaneous or organized mass movements, without which democracy is only a hollow word or even a mystification. It is the crystallization, in an active and passionate visible figure, of the demos or the plethos (“multitude”, “majority”) of which democracy wishes itself the expression. Not in order to destroy representative or parliamentary institutions, the division of powers, the safeguarding of individual rights, but so as to re-establish the equilibrium of social forces and the conditions for an egalitarian distribution of power, by compensating for the power exercised at the heart of state and society by wealth and economic power, worldly and professional relations, expertise and university solidarities, the quasi-hereditary monopoly of public functions (what Bourdieu call the “State nobility”), international networks and support5. These last weeks we have seen what effects the crying absence of such participation and such a counter-weight produces: no-one has been able truly to contest the policies proposed, accepted or imposed by governments and international and communitarian organisms. The effect of such policies is to transfer the burden of debt generated by the anarchy of the markets or the imprudent (if it isn’t corrupt) management of public finances onto populations. This “democratic deficit” – to employ the current euphemism – manifested itself first in Greece, in the phase of bargaining between the Papandreou government and the institutions it called to its rescue. It manifested itself once again when a certain number of European governments, including France, Spain, Germany, the UK, decided to implement policies of social and budgetary austerity, which evidently have nothing to do with the commitments for which they had been elected (in particular with regard to the struggle against poverty and unemployment). No-one will deny that the conjunctures of unforeseen crises impose changes in political orientation. But one cannot consider as “democratic” the fact of putting the population – that is to say, the interested parties – practically out of the loop when it is a matter of determining the extent and the objectives of these changes. What holds at the national scale holds, a fortiori, at the supranational, “communitarian” scale, where one clearly sees that the truly constraining decisions are taken. For want of a European-wide debate amongst the population, of movements of opinion organized across borders, in short, of European democracy, the only things that play are the illusory oppositions and relations of force between governments, who are more or less dependent on transnational capitalist powers, and the prisoners of electorates, whose prejudices they try to use, instead of fostering their participation.

 

One touches here on a congenital flaw in the European Union, which is doubtless not the only cause of the degeneration of democratic life at the heart of each nation, but which it does nothing to correct. Governments utilize the institutions of the community when it is in their interests, particularly when making political choices appear as “technical” imperatives, but they short-circuit them when something like a transnational public sphere the procedures of which they alone would not be in control of, threatens to emerge. Also it has never been a question of having the plans for financial support or the orientation monetary and budgetary policies to come examined or discussed in the parliament in Strasbourg, which thus falls below the level of a consultative body! But this “hatred” or “fear” of democracy is extraordinarily self-destructive. In the long term it will cost dearly, in terms of the delegitimation of politics and of governmental and representative institutions themselves, whether that be at a national or European lev el, the fates of which here are indissociable. That is why in a certain fashion it belongs to the peoples of the European nations, the components of a virtual “European people” to give life back to the democracy without which there is no legitimate government or durable institutions, and firstly by expressing vigourously their rejection of politics founded on the continuation of privileges and even on their reinforcing by means of the crisis.6 That is what I wanted to say in speaking of the necessity of a “European populism”. It is not the contrary of the sense of citizenship, it is its other face in a determinate conjuncture.

 

For all that, I make no secret of the fact that the “populism” with which we are dealing today – the populism that develops most quickly in Europe – is not at all this peaceful insurrection of the citizens of different countries that we need in order to revitalize democracy and impose its demands on those who fear it and use any means to put obstacles in its way. On the one hand it is an aggressively xenophobic, nationalistic or regionalistic populism (which could become murderous if the social situation deteriorates further), which is directed against the “allogens” (immigrants, coming from Asia, the South of the Mediterranean in particular, gypsies, possibly even Jews). But it is also directed against other Europeans (North against South, West against East, neighbour against neighbour, including in the heart of the same nations – as in Italy), the manifestations of which one sees from one end of the continent to the other. On the other hand, it is what Giacomo Marramao, thinking of the situation in his country under the Berlusconi government, calls a “media populism”, the mass media manipulation techniques of which are like a soft fascism, that is reconstituted in different historical and cultural conditions.7 It is totally illusory to think that one can oppose simple moral preaching, a hymn to the virtues of the State and to liberalism, to these more or less interconnected, reactionary populisms, which translate the demoralization of the working and middle classes, the cynicism of the ruling castes, and the absence of any post-national perspectives able to stand up to globalization and the regression of social movements. That would cover over the perpetuation of inequalities and the crushing domination of the interests of private property and finance. A popular remobilization, the motor of which, initially, can only be a protest, is needed. But it is true that such formulae involve a risk: this is why it is essential to associate them with an intransigeant democratic engagement straightaway, and at the same time to open up viewpoints of positive construction, in the economic domain in particular. That is also why the programmes to which the components of such a movement would rally – contrary to what certain theorists think with regard to “populism” (Ernesto Laclau) – cannot be “empty”. On the contrary, it is necessary for them to be substantial, bringing out a veritable convergence of interests and ideas across frontiers and social groups. This leads us directly to a second order of difficulties.

 

Economy and politics

 

If there is one truth that the dominant discourse had endeavoured to dissimulate behind all sorts of more or less new notions (“network society”, “governance”, “management”, “market rationality”, to say nothing of “the end of history”, somewhat discredited today) and which the current crisis brings out into the cold light of day, it is the fact that the whole of the economy is political, but also that all of politics is economics (even if it isn’t only that – which is what my master Althusser called “overdetermination”). This is true not simply for the conditions and consequences but for the processes themselves, and thus for the contradiction that they contain, the relations of force and the alternatives that they impose on us. One may even think that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globalization whose laws we are now experiencing, is that this double, economic and political determination immediately extends to all aspects of existence: citizenship, work, culture, social security, everyday life … One mustn’t stick to generalities here, but try to render the stakes perceptible in actuality.

 

I do not want to repeat what is most well-known, in particular concerning the political choices that were made after the crisis started in America, and which we see today that by transferring the cost of private financial speculations onto the public finances and national economies, they have done nothing but multiply the risks. But – to say in a few words what needs lengthy analyses – I would like to bring out three structural lessons relative to the “capitalist” articulation of State and market, and to bring up two specific problems: that of continuity and rupture, that of forces present in the dilemma that presents itself to European nations, and without doubt also to others.

 

First lesson: the “crisis of public finances” is not an accountable phenomenon to which one can attribute an absolute magnitude. In fact, it is relative to the temporary “decisions” of the financial markets, to their rating of the abilities of States to service the interest on their debts, and to the agreed interest rates for the new loans that the debtor nations need to meet their financial commitments. The degree of indebtedness of States, their degree of autonomy or of economic “sovereignty”, fluctuate, then, as a function of the way in which they are permanently “evaluated” by the markets like businesses quoted on the Stock Exchange8. But whoever says markets says a system of exchange and of valorization for which the principal actors (dominant, if not all-powerful) are the big banks and the principal speculative funds. These have become, in a strong sense, political actors, in the sense that they dictate to a whole set of States, and even to central banks, the conditions of their social, economic and monetary policies. This situation has some crucial consequences on the capacity of traditional political bodies (peoples or nations of citizens) to determine their own development. Today perhaps only China - because of the virtually hegemonic position that it is in the process of acquiring in the “world-economy” – escapes from this reversal of relations between the political capacity of States and that of deterritorialised financial actors. But it certainly is not the case for the United States, and that explains many things about the “strategy” of the Obama administration after the shock of 2008.

 

This leads us directly to a second lesson, which has been forcefully underlined, notably by Michel Aglietta9: there is no middle term between the two logics which oppose each other over the “regulation” of operations on the financial markets. It must be noted that these are “markets” in a sense that is very particular and at the limit is in contradiction with the usual signification of the term, which nevertheless continues to guide their presentation by the “orthodox” discourse: competition does not lead to an equilibrium of supply and demand, but to a headlong rush into the capitalization of assets, the value of which grows indefinitely with the extension of credit…until the latter collapses. Either it is the public power that imposes rules of prudence and transparency on speculative operations. Or it is the unlimited demand for liquid capital, able to be transferred to the most profitable short term speculations, which forces a more and more complete deregulation. But it cannot be both at the same time. Here once again one is dealing with a political alternative in the field of the economy (via finance), which is linked to a conflict of sovereignties. But it must be noted – and this observation acquires a crucial signification at the current stage of globalization – that by “public power”, one no longer necessarily understands nation States (or national financial authorities): that depends on their size and their place in the world economy. Of course there are States that “prefer” to make themselves into the instruments of the deregulation of the markets, in order to acquire or to preserve their status as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s, not seeing in that any “giving up [abandon] of sovereignty” (but not accepting for all that its limitation in an enlarged political frame). There is above all this difficulty, which Europe visibly comes up against: that States (even the “rich” ones) are no longer in a position, in isolation, to constitute authorities for the effective regulation of the financial markets, without one knowing, for all that, how to institute politically an authority and public powers at the supra- or trans-state level.

 

A third lesson, which for can be taken from the works of Pierre-Noël Giraud10, is that in the long term there is a fundamental correlation between the way in which social inequalities are distributed between national “territories” or on the inside of these territories (inequalities of income – direct or indirect salaries – and thus – taking into account historical and cultural conditions – inequalities in the level and quality of life), and the policies put to work to increase their competitiveness from the point of view of attracting international capital (by pressure on salary levels – by means of immigration or State-union agreements, or both – and by the lowering of tax levies, which in the long run inevitably threaten social policies and protection). From this perspective, States regain, at least a part of their capacity to determine politically the economic conditions of politics, of which it was said above that it tends to escape from them to the profit of financial actors in the credit game. And one sees clearly that they make use of this capacity to privilege, for example, the defence of a model of social security, or, on the contrary, the adjustment for historical under-development by means of an industrialization turned specifically towards exports. But this only takes place between the two – more or less narrow – limits. On the one hand, one which derives from the fact that in the globalised economy, a mode of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maintained by the State (a “type of capitalism”, as Pierre-Noël Giraud) cannot be chosen at will, by a pure decision independent from what others do (paradoxically, then, at least in the eyes of theorists of the “sovereignty” of the State, this political capacity of inflecting the economy is all the more the real as States are more interdependent, and act in a more concerted fashion). On the other hand, one which derives from the fact that political “choices” about the matter of social inequalities (and at the limit, the exclusion or inclusion of entire populations) are more or less patiently put up with by citizens – in other words, they are exposed to what until recently was called class struggle.

 

It is on the basis of these structural constraints, which are evolving very rapidly today, that – since the start of the crisis - the discussion has given rise to Neo-Keynesian propositions. These propositions haven’t stopped insisting on the fact that it is impossible to reinforce the capacity of States (or coalitions of States, such as Europe) to limit “systemic risks” and increase their power to regulate the financial markets, without at the same time developing on the one hand a new institutional capacity for governing the economy and on the other hand a set of policies for “counter-cyclical” growth (as a consequence, going against viewpoints in favour of the reduction of deficits, deflation and measured depression, by means of which the neo-liberal orthodoxy envisages mopping up the insolvency that has been transferred from the private to the public since the beginning of the crisis). Now it is very difficult, not to say impossible, to conceive either the one or the other without radically calling into question the current regime of economico-political power, which has been displaced largely outside its official legal, administrative and parliamentary loci, referring the most decisive choices to a whole shadow form of governance, of which the role of the IMF in “setting up” of the European plan to “rescue” Greek finances is a good example.11 It is just as difficult if the tendency to the growth in inequalities of wealth, which more or less uniformly characterizes globalization – despite the “catching up” of a whole part of the old “third world” – continues to become more pronounced12. Truth to say, the radicalness of the political changes implied by the putting to work of these conditions is such that one might conclude either that every Neo-Keynesian viewpoint is utopian in the current global framework13, or that such viewpoints have become indiscernible from a rupture with capitalism, or a reactualisation of the “socialist hypothesis” in forms to be invented (in particular, to dismiss the phantom of “socialism in one country” definitively). Although I don’t doubt, for my part, that every political initiative able to make the financialisation of the economy and social life recede needs regulative ideas with a socialist or even communist character, I will not, however, enter into such speculation, which is of no use in the immediate conjuncture. On the other hand, to finish on the point which occupies us, I will say a word on a very closely related question: that of the nature of the forces engaged in a battle over different ways of facing the crisis, forces whose effect will be to resolve or to aggravate the crisis, and which will evidently not benefit the same sectors of society …

 

A moment ago I said that class struggle really does haunt the underpinnings of the new relation between State and market. However, it is extremely doubtful that the forces or camps between which the political battle rages today can be defined as “classes” (as Nicos Poulantzas was still trying to do thirty years ago), or even simple antitheses between a capitalist imperium and a “multitude” or a mass of people which would be its victim, and because of this, would only be expecting an ideological offer or an organizational programme in order to revolt and to beat the power of money (the “Wall Street model”, as Aglietta says). Why are things less simple, and because of this the viewpoints much less certain than such a binary schema – which is profoundly anchored in the imaginary of the left (before passing from that to the many variants of the “third way” for a part of the left) - allows? It is not because of the mystification that the masses are [supposedly] prisoners of (for example: nationalism and religion, however harmful their influence may be), any more than it is because – here or there – forms of State clientelism plunging deep into the social fabric corrupt the civic spirit (even if it would be absurd to deny the reality of this phenomenon). It is, it seems to me, much more decisively, because the multitude or mass is implied in the functioning of financial capitalism, from the point of view of its activities (so, in its stable or precarious employment, its working conditions, etc), its material interests and its survival, to say nothing of its leisure activities and its culture. Nothing would be more false, in this regard, than to represent financial capital, as speculative, “immaterial” and “fictive” as it may be, to oneself as a parasitic or “rentier” capitalism, notions that were invented in the 19th century by an industrialist and productivist ideology from which Marxism has not been exempt. What the subprime crisis has made evident is precisely the fact that the most elementary conditions of life – housing, as it happens – of the whole population and most notably its poorest part (in the United States, but also the United Kingdom etc) depend immediately on the generalization of credit facilities and their capitalization by the banks (which have thus found another way to make the poor pay, the most fundamental recipe for getting rich throughout history).14 Those who the system rejects are, in a certain fashion, even more strongly included (or if one wishes, their exclusion takes the form of an “inclusive exclusion”). And to take an example from immediate current events, when BP, the company responsible for the ecological catastrophe in the Gulf of Mexico is threatened with sanctions by the American government and sees its share price collapse, the pensions funds, which are built in part on the inclusion in their share portfolio of BP shares, which are considered particularly safe and profitable, panic and warn of the repercussions this could have for the pensioners they serve. What conclusions are to be drawn from these facts, which could, along with others, be ranged amongst what Marx called the development of the real subsumption of the workers, and of the population more generally, under the movement of capitalist accumulation?15 In the first place, it seems to me, is this: that there is no exteriority between the interests of capital and those of the population. That doesn’t in the slightest mean that there is no antagonism, contradiction or conflict, but it does mean that antagonisms traverse the way of life, the models of activity and consumption, the interests and thus the forms of consciousness of social groups. Combat is thus not so much between two pre-existing groups (big and small, exploiters and exploited, those who hold power and those who are its victims) as it is between two possible ways of “collectivizing” the interests of individuals which in part concern the same classes, the same nations, the same professions, and which each time implies another mode of government for society. One is tempted to say, in the Gramscian language (taken up again today by Laclau) that the combat is between “historic blocs” and alternative “hegemonies”, which do not only imply that certain interests have priority over the others (thus competition or social security, capitalization of the stock exchange or durable development, imperial power or exchange between cultures…), but also that individuals and social groups “choose” between multiple ways of protecting their interests and ensuring their survival – a choice which is, of course, anything but ideally free, and the modalities of which depend very strongly on the place in which they are situated in a “hierarchised” world. The identity of actors or social forces is thus itself a function – as Marx had sometimes sensed – of the forms of their own “struggle”, which itself unfolds under given material “conditions”.16 This leads us directly to the last question that I would like to evoke, if only very rapidly.



 

Centres and peripheries

 

The discourse and institutions of the European Union are formally egalitarian (although the nature of this equality has always been a problem: does it concern European citizens, or the States whose “weight” varies as a function of their economic power, their population?) But what the current crisis has made strongly evident is that in reality it is a matter of a hierarchical structure, where the decision-making powers are concentrated in the hands of a “club” of founding nations (essentially France and Germany, who sometimes form a coalition, sometimes neutralize each other, while others exercise a more or less effective counter-power and England plays on its double belonging to the European and Atlantic worlds), and where inequalities have a tendency to deepen rather than be reduced. The dynamic of this structure has been profoundly transformed by its enlargement to the old countries of the East freed from the grip of the Soviets. It is being altered once again under our eyes by the developments of the financial crisis: the relations of domination are exacerbated and an acute question is posed of knowing how they might be modified, even transformed into the levers of a reconstruction on a different, more egalitarian basis. This evidently supposes a very profound change in the perception that the “Europeans” have of themselves, of what unites them and what opposes them to one another.

 

The most insistent schema for characterizing this internal hierarchy in Europe, in which symbolic, economic and political factors are combined, is that of the centre and the periphery (or rather peripheries, because it seems evident that despite the proximities and formal analogies Ireland and Greece, or Great Britain and Poland, or Spain and Portugal do not form a homogeneous ensemble). One of the implications of the schema which reoccurs insistently today is that the “peripheral” nations are in some way less intensely, less completely “European” than those of the centre, either because of their political history, or because of their type of economic development, or because of their culture (if not to say their “customs”). Hence the idea – which has just been applied to Greece in a large section of the American, German press and so on – that the peripheries, or at least certain amongst them are less strongly attached to the European construction, and are, for that reason, susceptible of being detached from it (willingly or by force). Related to the question of the “survival” of the Euro, one has thus seen the extrapolation of a kind of theory of the externalization of the costs that certain “failing” countries or those countries that can’t be “assimilated” to the dominant model (the one which would point to the nations of the “centre”) represented.17 Against this representation, I recalled (in a paper given in Thessalonika in 1999) that it in a very constraining sense, one accentuated by the transformations underway in the “political space” that it is precisely the “peripheries” which are “at the centre”, or whose functions and problems become central.18 The current situation is not going to disprove this thesis. But it supposes, precisely, that one adopts a political point of view, in which the present always refers to the totality of its historical factors: not only economic, but also cultural and ideological factors. It is the ensemble of these factors that defines the strategic function of frontiers – as zones of contact rather than simple lines of separation. It is their positioning, as much as the more or less great distance from a “centre” which determines what should be understood by “periphery”. Now, frontiers (national and above all “continental”) have today become the centres of the centres themselves. How, from this point of view, is one not to accord a very particular signification to the fact that shortly after the imposition on the Papandreou government of the draconian plan for budgetary rigour, the acceptance of which brought the “admiration” of the President of the IMF,19 Greece received a visit from the Prime Minister of Turkey? Turkey, a country kept out of the EU by the determination of France and Germany, which is in the process of becoming one of the arbiters of Mediterranean politics? He had come to examine the conditions for reinforced cooperation between the two “traditional enemies” of the Aegean world, implying in particular a reduction in their military spending and thus contributing to their entry into Europe in the 21st century.20

 

It is from this point of view that we can return to what, without a doubt, constitutes the most sensitive point in the debate about the “place” of Greece and other “peripheral” countries (faced with analogous financial difficulties, or whose financial difficulties are accentuated in an analogous fashion by the pressure of the markets): the question of the articulation of interests, institutions and the foreseeable evolution of the European Union and those of the unified monetary zone (sometimes designated using the revealing sobriquet “Euroland”). As this question is – if the crisis lasts and worsens – likely to be transformed into a focus for very sharp tensions and because, on the other hand, it involves no simple solution, it may be useful to discuss it successively from two points of view: that of Greece itself, a “periphery” threatened with externalization, and that of Europe as a more or less shadowy system of domination, the evolution of which depends in particular on the policies decided at its “centre”.

 

From the Greek point of view, pending a deeper discussion, it seems to me that one can say that the “decoupling” of the European political construction and the Eurozone assumes an essential, maybe vital, signification. This idea is paradoxical, perilous because the single currency is the only “marker of sovereignty” that Europe has at its disposal in the world. But in the catastrophe-scenario that certain economists envisage – that of the simple deferral of a “defaulting” by the Greek State, which would finally be precipitated by the recession that austerity may provoke and by the unendurable character of its social consequences, at the same time – it is imaginable – although not necessarily desirable (it’s the whole question of the “lesser evil”, which doesn’t necessarily exist, which precisely creates the obligation to try to change the terms of the problem) – that Greece may be led to leave the Eurozone so as to obtain the restructuring of its debt and to benefit from the advantages of a “competitive devaluation” like Argentina or Sweden. It is evident that in these conditions (which, once again, are “catastrophic” not only for the country but in its snowballing repercussions for other countries), it would be essential that “Europe” and “Eurozone” not be considered as synonymous concepts, and that Greece (or other nations faced with the same dilemma) not find itself “marginalized” or “minorised” at the heart of the European Union (for example, in the form of the suspension of its “voice” in the Council, a “threat” brandished by Germany at countries in deficit, apparently forgetting that that was its own case not so long ago). It would thus become necessary for this distinction between Europe and the Eurozone to become an essential demand for European democrats.

 

If we now move to the point of view of the “system” itself, the point of view which seems to be being sketched out, and which in many ways is just as catastrophic, is that of an increasingly accentuated divergence between the two heads of the famous “Franco-German” couple. It is evidently not reducible to the personal antipathy between Angela Merkel and Nicholas Sarkozy, but rather refers to heterogeneous political cultures which are surfacing again in the experience of the crisis, and to the disequilibria or power which have deepened since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the opening of the EU to the ex-socialist countries of the East, and the adoption of different rules faced with the 1997 “norm” concerning budget deficits (the Stability and Growth Pact included in the Treaty of Amsterdam). In a striking article, Habermas recently wondered about the “growing indifference” of German politicians towards the European construction – to put it plainly, their tendency to make the nationalist point of view of the reinforcement of their own power prevail over European interests (which in his eyes are also the long term interests of Germany itself).21 One could say as much about the French, even if they give themselves the fine role of defending “the weakest”, should the occasion arise. Apparently the French government relies today on several of the countries in the Eurozone weakened by the crisis (Spain, Greece, Portugal) so as to advance the idea of a monetary and budgetary policy coordinated by the “Eurogroup” and to take several steps in the direction of European protectionism.22 That, at least, is what its adversaries reproach it for. Inversely, the German government relies on countries that are not part of the Eurozone (Poland, Great Britain, Sweden, Czech Republic) so as to advance the idea of European budgetary control, decoupled from monetary policy and forbidding “financial transfers” between States. North-Eastern versus South-Western Europe? It is to soon to know if the German thesis is a prelude to a reversal of its position in relation to the centrality of the Euro in the construction of Europe. That depends precisely on the result of this “tussle”, even if certain commentators speculate on the interest, for a Germany that is more and more oriented towards an export market essentially constituted by other European countries, of an “exit from the top” of the common currency, symmetrical to an “exit from the bottom that other predict or advise for Greece.23 What is most likely is that despite the advantages that they get from their “condominium” and the degree of interpenetration reached by their economies, the two central powers will enter into a long phase of divergence and chronic conflict (even if they endeavour to mask it with protestations of understanding and to avoid it degenerating as far as a rupture, for which they would both pay a high price). What then becomes of the idea of a “centre” of Europe, even if it is occulted? One may think that the interest of European peoples is to upset this face off, by making other voices heard and by proposing other projects. In this way, one finds the burning question of democracy again, in the form of the equality of nations as well as that of the circulation of alternative hypotheses in a transnational public space, one which is not strictly controlled by governments and their electoral machines.24 Perhaps one should go so far as to call into question the very figure of the “centre” and “periphery”, in other words, the hierarchical structure that finally prevailed in the history of the construction of Europe, although it was a figure that was not inevitably implied by this history. Not so as to overthrow it, term by term, but so as to confer priority on the interdependent development of member countries, the complementarity of their regions and the catching up after internal “inequalities of development”, which is also the condition for a collective guarantee against “systemic risks”, and which would also allow an attack to be made against the phenomena of demagogy or corruption in such and such a country, with some chance of success, instead of these becoming an instrument of blackmail.

 

But there is another reason why this figure ought no longer to be tenable: this is because it dissolves in the context of globalization. What is in the “centre” or the “periphery” in the world is not necessarily so in Europe, and vice versa, while Europe as such finds itself in an unstable equilibrium between the “central” (or dominant) and “peripheral” (or subordinate) regions of the new world-system. The figure of centre and periphery at the heart of Europe touches here on its absolute limits, because it ignores [the fact that] internal relations of force are determined permanently by exchanges and contacts with the exterior. Or, if it doesn’t ignore it, the figure is content to instrumentalise the fact. If there are several divergent “centres”, it is because their strategic relation to the tendencies of globalization is no longer the same. And if there are several types of periphery – if, for example, Polish low wages and Greek low wages do not have the same signification – it is because the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ur, like the “layers” of culture and historical traditions, runs across the European continent, inscribing multiple frontiers in it, that are both mobile and irreducible.

 

This multiplicity of situations and of statuses with regard to power, work and culture may become the damnation of Europe, if it serves to aggravate and exploit inequalities, and ends up by degenerating once again into insoluble antagonisms, as at other moments in its history. It could, on the contrary, become one of the instruments of its vitality and of its communication with the rest of the world if – even through the violent experiences of a crisis – it issues in the invention of an original combination solidarity and diversity. This is why it seems so important to me that we reflect together, as European citizens, on the tests that you are going through and on the means which you have at your disposal to overcome them, but also on what they reveal that concerns us all. It is in order to contribute to this reflection that I came here this evening, on your invitation, which I am touched and feel honoured by. But above all it is so as to learn to better engage in reflection. I have acquired the long-standing conviction that a sort of “right to inspect” the affairs of our neighbours was one of the conditions for European citizenship. But I also know that one can never claim to know better than another what makes for the singularity of his or her historical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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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urope: crise et fin?’ published on the website Mediapart (www.mediapart.fr) 24/5/2010; ‘Europe: Final Crisis?’, shortened version published in The Guardian 25/5/2010; ‘Europe: Final Crisis. Some Theses’ published in Theory and Event 13 (June 2010).

 

2. This is the inverse of what certain pro-European editorialists maintain – such as Bernard Guetta in Libération (5/5/2010): ‘The uncertain birth of Europe’: “we are in the process of going from principle to the viewpoint of an economic government (…) This will be so delicate and difficult to implement that the European Union will not succeed. If that was the case, it would be the beginning of its end but (…) if Europe became integrated, instead of disintegrating, then the question of democracy, too indirect today to be complete, would be posed”.

 

3. Cf. for example J.K Galbraith ‘Quelle Europe pour briser les marchés’ in Le monde diplomatique June 2010.

 

4. The examples of what is today called ‘populism’ covers a very broad spectrum, going from European nationalist and neo-fascist movements to the anti-imperialist mobilisations of a Hugo Chavez or of the neo-Peronist Argentinians, who freed themselves from the yoke of the IMF when the peso collapsed, even as far as the attempts attributed to Barack Obama to get support from public opinion to impose regulations on the financial operations of Wall Street. Cf. 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London, Verso, 2005) and my account of it,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aris: PUF, 2010) ‘Populisme et politique: le retour du contrat’.

 

5. Cf the article by Alain Duhamel in Libération (10/6/2010) ‘L’électorat populaire et l’électorat financier’.

 

6. Vigourously does not mean violently, even if this possibility cannot always be excluded (in any case, it cannot serve as an alibi for preventative repression). But then alternatives are needed: one may ask oneself what parties on “the left” and European unions (or other associations) are waiting for in order to think about demonstrations and campaigns petitioning Brussels and Strasbourg against the plans for austerity, which will devastate the social elements of the “European model”.

 

7. Giacomo Marramao used this formulation in his presentation during the ‘Marx aujourd’hui’ study day run by Groupe NoSoPhi at the Université de Paris I, 4th June 2010.

 

8. Frédéric Lordon correctly remarks on this point that the Greek debt saw itself multiply suddenly because it was “chosen” as the first target in Europe for Stock Exchange speculation on a bailout by Europe and it could be the same tomorrow for Spain or the United Kingdom (‘Crise, la croisée des chemins’

http://blog.mondediplo.net/2010-05-07-Crise-la-croisee-des-chemins).

Joseph Stiglitz makes the same remark in ‘L’austérité mène au désastre’ in Le Monde 22/5/2010.

 

9. Cf. his book La crise. Les voies de sortie (Paris: Michalon, 2010) and his article ‘La longue crise de l’Europe’ in Le Monde 18/6/2010.

 

10. Cf Pierre-Noël Giraud, L’inégalité du monde (Paris: Gallimard, 1996), La mondialisation. Emergences et Fragmentation (Paris: Editions Sciences Humaines, 2008)

 

11. But of which the corruption of the intermediaries of the major public markets, or high income inflation are also an aspect. It will be recalled here that it took the courageous insistence of the Green MEP Daniel Cohn-Bendit to draw attention to the “unsaid” of the plan to restrict public spending imposed on Greece last April: these restrictions would not affect the enormous military spending of the Greek State, from which essentially French and German arms companies profit …

 

12. Cf. Giraud op. cit. See also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s published in Libération 14/6/2010, with the commentaries from Daniel Cohen and Gilles Finchelstein.

 

13. This is Toni Negri’s position. See his article in the special issue of Radical Philosophy devoted to Keynes ‘No New Deal is possible’. Radical Philosophy 155 May-June 2009 (‘Return to Keynes?’).

 

14. Cf. Frédéric Lordon: Jusqu’à quand? Pour en finir avec les crises financières (Paris: Raisons d’agir, 2008).

 

15. Karl Marx, Resultate des unmittelbaren Produktionprozesses (Frankfurt am Main: Verlag, 1969). Cf my commentary in Balibar La proposition … op. cit., ‘L’antinomie de la citoyenneté’ p. 42–43.

 

16. I referred to the Gramscian notion of the “historic bloc” and consequently to its development by Ernesto Laclau. But there is a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schema proposed by Laclau and the one I am trying to put to work here: I share the idea that politics is played out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alternative hegemonies, each of which constructs a “chain of equivalences” between heterogeneous interests and demands, by imposing on them a common form (by making of them a “people”), and by subsuming, in part, the same groups. I believe that this idea is fundamental in the current conjuncture, and that it contains one of the keys for our reflection on the coming developments in the European crisis. On the other hand, I do not at all believe that the condition for the construction of a determinate hegemony (“populism” for example) is the emergence of a nomination that is as empty as possible and which is thereby susceptible of being interpreted in different terms by each social group – something which would leave the “substance” of the basic demands of each group intact, and simply unified by analogy with the others. On the contrary, I believe that political choices divide the interests of each group between contradictory alternatives, and the historically transformative (or conservative) hegemonies have really distinct forms of life and modes of production as their content.

 

17. See the declarations of the European Commissioner Karel de Grucht in the Süddeutsche Zeitung of 6/5/2010: “it is not a matter of criticizing Germany, it is a matter of imitating it by developing the export capacity of every country (“Deutschsland macht, was alle machte sollten”)…There are many variants on this theory, which sometimes go as far as turning it the other way around. Thus part of English public opinion periodically perceives Great Britain as a “detachable periphery”, but in the name of the idea that it naturally belongs to another grouping, or that it is in its interests to privilege this other grouping. And on the other hand, the point at which one passes from the “centre” to the “periphery” is by definition completely floating. In certain extremist scenarios, it is a question of “starting all over again” with the construction of Europe beginning with a highly restricted “core”: the famous “Franco-German couple”, the solidness of which is presented as the “motor of Europe” or a sort of “Mark zone” reconstituted at the heart of the Eurozone itself…”

 

18. Etienne Balibar ‘Aux frontières de l’Europe’ in Nous, citoyens d’Europe? (Paris, La Découverte, 2001) pp. 15-26.

 

19. Declaration reported by Le Monde 4/6/2010

 

20. Cf. Le Monde 15/6/2010: “A ‘New Era’ in Greek-Turkish relations. Turkish Prime Minister Erdogan visits Athens. At the centre of the discussions, the question of defence.” The press used the occasion of the Greek crisis to come back to the circumstances and the conditions of the entry of Greece into the ‘European community’ in 1981, shortly after the end of the dictatorship by the colonels, recalling that it was essentially determined by the will to consolidate democracy on the Southern flank of Europe, but also to reinforce the “common front” of members of NATO in the face of what, at the time, was still perceived as the “Soviet threat” to the European continent. This reminder takes on its full signification when one brings it into relation with the regional function that the normalization and reconciliation of Greco-Turkish relations is in the process of acquiring.

 

21. ‘Deutschlands neue Gleichgültigkeit’ published in Die Zeit 20/6/2010.

 

22. Or of a “communitarian preference” explicitly inscribed in the electoral programme of Sarkozy in 2007.

 

23. Cf the article of J.P. Vesperini in Le Monde 11/6/2010 (‘The least bad solution would without doubt be the German exit’).

 

24. One might think that, at least ideally, the interest of European peoples would be to explore the means for a ‘common currency’ distinct from the ‘single currency’ currently managed as a function of a sole norm of stability that is less and less tenable. Cf. Frédéric Lordon ‘Crise, la croisée des chemins’ op. cit. Let us recall that at the time of the constitution of the European Central Bank, the inclusion amongst its statutes of the objective of full employment beside the objective of struggling against inflation was explicitly ref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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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하나 올립니다.  

지난 봄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된 [인터뷰-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에 수록된 인터뷰 원고입니다. 

최종 교정이 끝나기 전의 판본이니 혹시 인용하거나 토론하고 싶은 분들은 책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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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태원과의 인터뷰

 

 

맑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주의

김항: 지난 20년 동안 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생각해 보면,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맑스주의의 퇴조, 서양 현대철학의 유입, 문화 연구나 페미니즘 등의 새로운 시각, 민족주의 비판 등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인간관이나 공동체관이나 제도관 자체가 변화했다고 총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진태원 선생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평가하시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태원: 20년 동안 제일 중요한 변화라면 맑스주의가 실추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70~80년대, 특히 8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주요한 성과를 맑스주의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건 상당히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그 시기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맑스주의의 실추가 너무 명백하고 ‘사회주의가 얼마 안 남았다. 사회주의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죠. 70년대 말~80년대 초에 이미 기정사실화됐던 일들인데, 한국에서 맑스주의의 복원은 80년대의 중요한 화두였다는 게 상당히 역설적이고 독특한 현상이에요. 80년대 한국에서의 맑스주의의 복원은 세계사적인 시간하고 차이가 있었던 거죠. 전반적으로 사회주의가 무너질 거란 생각을 잘 안 했던 거 같아요. 페레스트로이카가 1차적으로 충격을 줬는데,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내부개혁의 시도였으니까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고요. 물론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고, 그렇지는 않다 해도 얼마간 미심쩍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죠.

어쨌든 87년에 한국에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한국사회성격 논쟁(사구체 논쟁)이 85년부터 시작이 돼서 88년 정도가 제일 뜨거웠던 거 같아요. 87~88년이 정점이었던 거죠. 그런데 89년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90년에 소련 해체가 일어난 것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향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맑스주의를 고수하거나 아니면 이러저러한 개조를 통해 맑스주의를 구원하려고 했던(또는 한국에서의 맑스주의의 복원 작업을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이제는 진짜 소수가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80년대 말~90년대 초에 맑스주의적인 작업을 수행하던 분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동구권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회주의 붕괴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맑스주의를 지킬 것인가 또는 한국의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복원을 포기하지 않은 가운데 어떻게 맑스주의를 개조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론지의 창간(1992)이라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혜령: 한국적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복원과 세계사적 상황에서 그것의 해체를 어떻게 수용해 내느냐?

 

진태원: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나름대로 변용할 것인가? 또는 한국적인 시간성에 근거하여 어떻게 세계사적 시간의 흐름을 지연시킬 것인가? 그게 아마 당시 맑스주의자들(특히 이른바 PD 진영에 속한)의 중심적인 고민거리이자『이론』지의 출간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맑스주의의 실추가 지난 20년 간의 흐름 중에서 제일 두드러진 것이었다면, 두 번째 중요한 변화는 이것과 맞물린 이른바 포스트주의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주의의 어떤 위기, 또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대략 80년대 말~90년대 초이고, 한국에서 현대 프랑스철학, 또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연구 등이 수입된 때도 80년대 말~90년대 초라고 보면 그 두 시기가 엇물리죠. 그래서 이 포스트주의, 특히 포스트 맑스주의 및 포스트구조주의로 지칭되는 현대 프랑스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연구, 또 나중에 가면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이 있죠. 포스트 맑스주의는 90년대 초에 일찍 소개가 된 편입니다.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에요.

맑스주의가 실추하고 포스트주의의 부상이 같이 진행되다 보니까 포스트주의가 맑스주의의 대안, 대안 이데올로기, 대안 이념으로 등장을 했죠. 포스트주의를 수용했던 분들이 반드시 ‘맑스주의는 끝났다. 맑스주의는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하다. 맑스주의는 과거의 유산이다.’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보지는 않는데, 시대적인 분위기가 기묘하게 엇물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맑스주의의 유산하고 포스트주의의 흐름 간에 생산적인 대화나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운 일종의 시대적인 분위기, 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 같아요. 그래서 맑스주의를 복원하거나 유지하려고 했던 사회과학자들은 포스트주의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포스트주의의 수용을 주도했던 서양 문학이나 프랑스 철학 연구자들은 반드시 맑스주의를 배격하려는 뜻은 없었지만, 비맑스주의적인 관점 내지 어떤 점에서는 반맑스주의적인 관점에서 포스트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를 해소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결국 양자 사이의 생산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고 어렵게 만들었던 측면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정적인 결과 중의 하나가 근대성 논쟁이라든가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인 것 같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임지현 선생 같은 분들이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 『당대비평에서 했던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라는 게 포스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제제기죠. 예를 들면 호명 이론이나 푸코의 규율권력론,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연구 등이 결합돼서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가 나오고, 그게 국민국가․민족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고 나중에 대중독재로까지 가죠. 그러면서 이론적인 전선이—임지현 선생 개인의 취향이랄까. 그것도 이론적인 입장일 수는 있겠지만—너무 과잉되게 반맑스주의․반민중민주주의․반민족운동 쪽으로 형성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든가 반파시즘․반민족주의 논의로 국민국가의 역사적 한계를 문제 삼는 게 꼭 반맑스주의라든가 반민중운동의 태도와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었을까는 의문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임지현 선생의 개인적인 입장 여부를 떠나 80년대 말 이후에 한국의 지적인 흐름에서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가 분리되고, 상호 대치하게 된 상황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포스트주의 수용 문제

 

이혜령: 포스트주의가 한국에서 다소 편향된 입장 속에서 수용되었다는 말씀이시죠?

 

진태원: 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 말~90년대 초 이래로 포스트주의가 그렇게 수용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추상적인 수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미국에서 공부했던 영문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 수용을 주도했는데, 80년대 영미문학 이론과 문화이론계를 주름잡던 사람들이 데리다와 푸코, 라캉, 리오타르 등이었죠. 그런 흐름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비평이론으로 배웠던 분들이 글도 쓰고 분석하고 문헌들을 번역하고 그러면서 수용이 됐던 거죠. 그분들은 자신들의 전공 분야와 관련해서 한 것도 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미치는 미국 인문사회과학의 영향이라는 게 굉장히 막강했으니까요. 미국에서 유행하던 담론들을 “이런 게 유행한다. 이런 게 많이 뜨더라. 번역을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수용한 것도 있고요. 90년대 초의 수용은 상당히 추상적인 거였는데, 말하자면 어떤 저작이 있는지 보자,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푸코․들뢰즈․데리다의 저작이 그렇게 수용이 됐다고 봅니다. 그게 한국의 학문 담론적인 상황에서는 근대성에 관한 문제제기와 민족주의․국민국가 비판 쪽으로 구체화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김항: 20년 동안의 변화에 대한 선생님의 개괄적인 평가를 들어보면 논쟁이 중구난방이었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자면 ‘맑스주의의 위기’ 이후에 진전이 된 게 없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인간과 공동체와 제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에 대해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왔어야 되는데,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고 선생님께서 파악하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합니다.

 

진태원: 네, 그렇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포스트주의의 수용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맑스주의를 복원하고자 시도한 것은 이론적인 수준이라든가 결과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평가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거죠.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한국 사회는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 사회이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식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가 등과 같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틀을 만들고 식민지반봉건 사회론이나 주체사상 같은 것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포스트주의 수용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그런 게 없다는 점입니다. 포스트주의는 수입 자체부터 무언가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수입한 게 아니었죠. 그러니까 어떤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사고하는 데 “이런 이론과 패러다임을 한 번 원용해 보면 어떨까?” 해서 그것을 더 구체화하고 그 와중에서 변형이라든가 개선이 이뤄지고 이런 식이 아니라 “영미권에서 이게 요즘 뜬다더라, 요즘 미국 학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론이라더라” 라는 식의 태도에 따라 수입이 된 거죠. 지금도 크게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인문사회과학계의 학자들이나 대학원생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영미권의 지적 흐름이나 유행입니다. 예컨대 지젝이나 아감벤 같은 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것은 어떤 실질적인 문제의식이 수반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이것은 물론 이들의 지적 역량을 부인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최신의 이론 사조나 학문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소개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왜 이런 담론이나 이론이 중요한지, 그것이 이런저런 현상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어떤 의의가 있는지 분명히 이해하고 또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포스트주의 담론을 소개한 분들에게서 그런 문제의식을 찾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반면 포스트 담론들 자체는 원래 아주 구체적인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것이었죠. 포스트맑스주의를 예로 들면, 라클라우(Ernesto Laclau)하고 무페(Chantal Mouffe)가 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한국어판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김성기 외 옮김,, 터, 1990)이라는 공저를 냈는데, 그건 정말 그 사람들 사회에서 아주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나온 책이거든요. ‘동구권에서 구현되었던 사회주의는 더 이상 역사적인 전망이 없다.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전 같지 않다. 그 대신에 신사회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이나 환경 문제라든가 인종이라든가 다양한 사회운동이 분출하고 새로운 투쟁들이 나왔을 때, 이런 상황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사회주의 전략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이 사회주의 전략을 모색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뭘까?’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였거든요. 노동자계급이 항상 중심에 있고, 다른 문제들은 다 여기에 종속되어 따라야 한다는 문제설정으로는 선진 자본주의에서 현실적인 변혁이라는 걸 사고할 수가 없는 거죠. 또한 라클라우의 초기 이론적 작업의 중심 배경이 되었던 중남미 현실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노동자 계급에 중심을 둔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는 중남미에서 실질적인 변혁 운동이나 사회 운동을 수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라클라우와 무페의 헤게모니 이론은 중남미 현실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일종의 연합전선 전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적절한 이론이 뭐가 있을까 봤더니 라캉이나 데리다의 문제제기가 상당히 의미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접목을 시켜서 독창적인 문제설정을 만들어 낸 거죠.

우리나라의 포스트주의 수용에서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한두 가지 사례를 제외한다면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김진석 선생의 90년대 초반 시도 중에 상당히 재밌는 발상들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 이론적으로 충분한 성과를 낳거나나 반향을 일으킨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령 김진석 선생의 첫 번째 저서인 『탈형이상학과 탈변증법 (문학과지성사, 1992)에 보면 ‘탈’이라는 말의 중의적 의미(가면을 쓴다, 체계에 탈을 내다, 곧 장애를 일으키다, 체계에서 벗어나다)를 원용해서 데리다의 해체론 및 탈구조주의 일반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한국어의 특성을 활용해서 데리다의 언어유희의 묘미를 살리는 언어적 감각도 돋보이고 사상을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변용하려는 태도도 의미가 있었죠. 전반적으로 그런 식의 포스트주의가 수용될 때부터 이거는 “외부에서 이런 게 유행하니까 한번 해보자. 우리도 한번 번역해 보고 읽어 보자”는 문제의식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결과를 낳기가 어려운 것이었고요. 그러다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90년대 말 이후 근대성 논쟁이라든가 민족주의 비판․국민국가 비판 같은 것이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접목돼서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또한 그것은 또 그것대로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령: 결국 맑스주의가 상정하던 ‘현실’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하게 된 거 같습니다. 근대성 논의나 일상적 파시즘 논의는 그런 현실하고 달리 일상이나 내면 등을 문제 삼는 거니까요.

 

진태원: 이혜령 선생님이 지적하신 문제가 아까 김항 선생님 말씀하고 연결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공동체․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다고 봤을 때, 아까 김항 선생님이 맑스주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상부구조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해주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가인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이 ‘서구 맑스주의’(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비공산권의 맑스주의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서방 맑스주의’라고 하는 게 옳겠죠)라는 것 자체가 상부구조 중심의 흐름이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 장준오 옮김, 이론과현실, 1987). 루카치라든가 그람시라든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은 결국 다 상부구조를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의식입니다. 그걸 돌이켜서 반추해 보면 상부구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거죠. 말하자면 ‘노동자계급이 형성이 되어 있고, 숫자도 많아지고 세력화․조직화가 돼 있는데,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 또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에 이어 상부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식으로 경제가 사회변혁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게 아니더라, 경제와 상부구조 사이에는 굉장히 의미 있는 간극 같은 것이 존재한다. 노동자계급임에도 불구하고 극우파에 투표를 한다든지 파시즘이나 나치를 지지하는 것 같은, 말하자면 자기 계급에 대한 배반 같은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게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던가 싶어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80년대 말 이후의 포스트주의의 수용, 문화 연구나 페미니즘의 수용, 그리고 근대성 논쟁, 민족주의․국민국가 비판 이런 것들은 상부구조론 내지 이데올로기론 또는 상징권력론이나 문화이론을 중심으로 한 문제의식이었겠지만, 양자를 동일시하기 어려운 측면도 존재합니다. 가령 서구 맑스주의자들이 상부구조를 강조했을 때, 그 사람들에게는 ‘사회 전체의 변혁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자기 배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게 중요한 과제였다면 80년대 말 한국에 수용된 포스트주의 같은 경우에 그런 문제의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변혁이나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기본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하는데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미친 영향이겠죠.

 

알튀세르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으로

 

김항: 포스트주의 수용에서의 문제점을 잘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편향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적극적으로 현대 프랑스철학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작업을 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데리다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는 작업을 해오셨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 수용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프랑스철학 자체의 문제로 넘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 안에 내재한 문제 설정이나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앞에서 파악한 한국사회의 문제로 넘어오면 어떻게 상황이 다르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하게 왜 선생님께 중요한 철학자가 알튀세르(Louis Althusser)였고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였는가, 이런 부분부터 말씀해 주시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진태원: 제가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80년대 말쯤입니다. 처음에는 루카치라든가 마르쿠제, 헤겔-맑스주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저작에 훨씬 관심이 많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알튀세르는 흔히 구조주의자라고 불렸고, 역사나 주체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80년대 중반에도 계속 있었죠. 그런 평가 때문에 알튀세르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읽을 만한 책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처음 알튀세리안들 책을 접한 게 89년이었어요.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도 있었는데, 저는 그 책보다도 『역사유물론 연구(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라는 책을 처음 읽었고 그 책에서 상당히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역사유물론을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구나’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이전까지 알고 있던 역사유물론(보통 ‘사적 유물론’ 또는 줄여서 ‘사유’라고 했죠)은 구 소련에서 교과서로 사용되던 책들에서 소개된 것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당시에 과 학회나 동아리 세미나 때 주로 사용되던 것들인데, 나름대로 역사유물론을 체계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긴 하지만, 뭐라고 할까요 생명력이 없는 도식적 체계, 이를테면 김이 다 빠져버린 맥주 같은 역사유물론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읽히고 친구들이 모두 읽으니까 같이 읽고 공부하고 또 제가 선배가 돼서는 후배들에게 또 가르치기는 하는데, 배우고 읽고 가르쳐도 별로 흥이 나지 않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헤겔 맑스주의 철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사람들의 책 속에는 이런 류의 도식화되고 무미건조한 체계와는 전혀 다른 생생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의 책에는 뭔가 어두운 구석이라고 할까요, 비관적인 논조가 지배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 역시 혁명이나 변혁의 주체, 계급투쟁 등에 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뭔가 진정한 믿음이 담긴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역사유물론의 도식이 지배하는 현실 맑스주의(또는 변혁운동)의 정치와 비관적이지만 매력적인 헤겔 맑스주의 사이의 괴리에 대해 꽤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발리바르의 책에서 감명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 책이 이러한 괴리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 같은 것을 제공해줄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역사유물론에 대한 생생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해석, 현실 정치와 철학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관점 같은 것이 거기에 담겨 있다고 느꼈던 것이죠. 또한 알튀세리엥 맑스주의가 통상적인 평가와는 너무나 다른 아주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이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책의 초점을 이루는 개념은 ‘계급투쟁’이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역사유물론 연구죠. 발리바르는 60~70년대에 자신을 포함한 알튀세르엥들이 수행했던 작업을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별한 바 있습니다. 60년대에는 과학적인 맑스주의를 추구하는 인식론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70년대 초중반의 작업은 계급투쟁을 초점에 둔 정치적인 관점에서 맑스주의를 재해석하는 것이었고, 7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입각한 맑스주의 재해석이라는 것이죠. 『역사유물론 연구』나 『민주주의와 독재』는 정치적 관점에서 맑스주의를 재해석하려는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들이었습니다. 정치적인 맑스주의 재해석은 다른 말로 한다면 맑스주의를 레닌주의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들이었고, 그래서 더 더욱 인상이 깊었어요. 당시에 제가 레닌 저작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국가와 혁명이었는데, 발리바르 책은 마치 이 책의 관점에서 맑스주의 전체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발리바르의 저작들 덕분에 당시 한창 진행 중에 있던 사회성격논쟁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윤소영 교수를 비롯한 이른바 PD그룹이 이론적인 준거로 삼고 있던 책들이 바로 그 책들이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80년대 PD그룹의 작업을 레닌주의와의 대화, 레닌과의 대화라고 평가를 하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레닌주의적인 맑스주의를 한국에서 복원하는 일이 PD그룹이 주체사상에 맞서 수행한 중요한 작업입니다.

『역사유물론 연구 이후로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당시에는 국내에 별로 번역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영역본 책이나 논문들을 복사해서 읽었습니다. 『맑스를 위하여』나 『자본을 읽자 또는『자기비판의 요소들 같은 책들을 처음 접한 게 그 무렵입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맑스주의의 위기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면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저작들이 다수 번역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번역의 질에 문제가 많았고, 당시 발리바르가 수행하던 작업을 단편적ㆍ일면적으로 소개하는 것들이었다는 점에서 얼마간 문제가 있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알튀세르는 80년에 부인을 목 졸라 죽이고 정신병원에 유폐되었기 때문에, 80년대~90년대 한국에서 알튀세르 수용이라는 것은 주로 발리바르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관점에 따라 전유된 알튀세르의 사상이었죠.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가 다른 프랑스철학자들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제일 처음에 푸코 책을 봤던 것 같아요.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푸코에 관해서 제일 처음 봤던 책이 김현 선생의 책이었습니다.

 

이혜령: 󰡔시칠리아의 암소󰡕(문학과지성사, 1990)요?

 

진태원: 아니『미셸 푸코의 문학비평(문학과 지성사, 1989)이었습니다. 김현 선생 외에 여러 사람이 푸코의 글들을 편역한 책이죠. 제가 그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그 책에 나타난 푸코의 모습이 굉장히 사변적인 철학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까지 풍문으로 듣던 푸코는 권력이론을 주로 다루고 성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론가, 따라서 뭔가 철학자라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죠. 게다가 가십성의 소문들도 많이 떠돌았기 때문에, 푸코를 비롯한 프랑스철학자들은 문란하고 방종적인, 재기는 넘치지만 진지하고 깊이 있는 면모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 책에서 막상 접한 푸코는 매우 사변적이면서도 헤겔-맑스주의라든가 이런 쪽과는 굉장히 다른 식의 사변을 전개하는 그런 철학자였고, 저에게는 그 점이 아주 매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말과 사물』이나 『감시와 처벌』또는 󰡔성의 역사󰡕같은 책들은 나중에 읽었죠. 하여간 제가 처음 읽은 푸코 책은 그 책이었는데, 재밌는 점이 뭐냐면 나중에 그 책의 원문들을 보니까 그 책에 실린 번역에 오역이 아주 많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때 푸코한테 매력을 느꼈던 것은 굉장히 사변적이면서 잘 알듯 말듯 뭔가 오묘한 거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알듯 말듯했던 부분들은 다 오역이었어요. 『미셀 푸코의 문학비평』이라는 제목 아래 모아 놓은 글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푸코의 사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과는 상당히 다른, 푸코의 독특한 측면들을 묶어서 낸 글인데다 오역들이 심해서 번역본으로서는 문제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책을 옮긴 대부분의 역자들이 김현 선생의 제자뻘 되는, 20-30대의 젊은 불문학도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생경한 사상이 담긴 데다 깊은 사변적 성찰로 가득찬 그 글들을 젊은 불문학도들이 제대로 이해해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그 오역본 덕분에 저는 푸코에 대해 아주 깊은 인상을 받게 됐고, 지금도 그 책에서 받은 인상은 깊이 남아 있습니다.

데리다의 글은 80년대 말에 문학잡지나 아니면 문학 관련 책에 한두 편씩 번역되어 소개되었죠.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온 분들이 주로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큰 매력을 못 느꼈죠. 그러다가 나중에 92년인가에 『입장들(박성창 편역, 솔, 1992)이라는 책이 번역이 됐는데, 저는 그 책이 상당히 인상이 깊었어요. 맑스-레닌주의와의 관계나 정치에 관한 문제, 또 데리다 작업의 전반적인 성격 등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대담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데리다가 맑스-레닌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대해 거리를 두는데, 그 문제제기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싶더라고요. 물론 당시에는 데리다를 잘 몰랐고 또 저 나름대로는 스스로 맑스주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데리다의 문제제기 방식이 상당히 성가시게 느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후로 데리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가 데리다를 본격적으로 읽게 된 때가 90년대 중반쯤인데, 이 당시 데리다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라는 이중적인 정세를 배경으로 하여 법의 힘(1990)라든가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 같이 정치적이고 실천철학적인 책을 연속적으로 내기 시작해서 그런 책들을 많이 읽게 됐어요. 주로 영어 번역본으로 봤죠. 그러면서 데리다의 문제제기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생각했어요. 물론 데리다의 초기 저작들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저는 특히 데리다의 에크리튀르(écriture)개념에 끌렸습니다. 에크리튀르라는 개념은 일단 우리말 번역에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데리다의 초기 저작 중에 L'Écriture et la difference(1967)란 책이 있습니다. 데리다가 그 전에 썼던 여러 논문들을 묶어서 펴낸 책인데, 이 책에는 유명한 푸코와의 논쟁의 시발점이 된 [코기토와 광기의 역사]라든가 레비나스의 타자론에 대한 해체론적 독서인 [폭력과 형이상학], 바타이유에 관한 논문인 [제한 경제에서 일반 경제로], 그리고 미국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 수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문과학에서 구조, 기호, 작용](이 글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에 관한 해체론적 분석입니다) 같이 빼어난 논문이 다수 수록되어 있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데리다 사상이 국내에 제대로 수용되려면 이 책을 비롯해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1967)나 『철학의 주변들/여백들』(1972) 같은 책들이 제대로 번역되고 또 주석서나 해설서가 출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책은 현재 우리말로는 『글쓰기와 차이(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1)라고 번역됐는데, 본문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제목 번역에 문제가 있죠. 좀더 적절하게 번역한다면 ‘기록과 차이’나 ‘문자기록과 차이’ 이렇게 해야 됩니다. 데리다가 말하는 에크리튀르는 작문이라는 의미에서의 글쓰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로고스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록 내지 기입(inscription)을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에크리튀르는 어떤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거리두기의 작용, 공간 만들기와 시간적인 지연 작용의 지주 내지 매체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기록이 없다면 차이도, 동일성도, 로고스도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크리튀르가 로고스의 근거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벌써 에크리튀르가 로고스에 의해 파악 가능하다는 것, 포섭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반대로 에크리튀르는 로고스의 절대적 한계 내지 타자죠(이 때문에 데리다는 유물론적인 철학자, 그것도 가장 급진적인 유물론자 중 한 사람입니다).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는 어근을 분철하면 gramme + logos, 곧 문자/기록에 관한 학문입니다)의 불가능성에 관해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는 그라마톨로지, 곧 기록에 관한 학문을 구성하려는 책이 아니라 반대로 그러한 학문의 불가능성에 관한 텍스트입니다).

그 책의 문제제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이 깊었어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데리다의 ‘해체’(저는 déconstruction이라는 개념의 번역어로는 ‘탈구축’이라는 말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보통 많이 쓰이는 ‘해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또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체는 유물론의 한 형태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유물론 중에서도 굉장히 래디컬한 유물론이죠. 왜냐면 데리다 이전의 유물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 간에 관념론의 원리들하고 타협하는 유물론이었거든요. 곧 ‘기원’이라든가 ‘원리’, ‘본질’ 또는 ‘목적’이라든가 ‘주체’ 같은 불변적이고 토대적인 공리들을 자기 이론의 전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관념론과 상당히 타협적인 것이었죠. 반면 데리다는 그 관념론의 기본 원리들과 가장 비타협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철학자, 누구보다 과감하게 관념론의 기본 원리들(데리다가 로고스 중심주의나 팔루스 중심주의 또는 현존의 형이상학 등으로 불렀던 것)을 해체하는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데리다는 주류 철학계의 철학자들로부터 비합리주의자나 허무주의자, 상대주의자라는 비판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역으로 데리다가 기존 철학의 기본 원리나 전제들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 따라서 데리다를 제대로 보고 평가를 하려면 그의 해체론이 어떻게 유물론을 래디컬하게 만드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것은 물론 상당히 역설적인 유물론입니다. 왜냐면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결국 유물론이라는 것은 ‘유령’(spectre)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하니까요. 가장 비실재적이고 가장 허깨비고, 그런 것의 대명사가 유령인데도, 유물론은 유령을 통해서 가능하다, 유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니, 유물론은 관념에 대한 물질의 우위를 주장하는 학설이라는 통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역설적이고 기괴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죠. 하지만 데리다의 얘기는 우선 우리가 유령이나 허깨비 같은 것에 대해 실재성이나 물질성을 부여할 때에 유물론을 좀더 일관되게, 좀더 철저하게 사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의 실재성, 물질성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현실에서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물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데도 오직 경제만이 현실적이고 물질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이미 빌헬름 라이히 같은 사람이 제기했던 것과 같은 질문, 곧 왜 노동자들은, 대중들은 혁명에 복무하지 않고 파시즘이나 나치즘을 지지하는가, 왜 박정희를 숭배하는가라는 질문이 또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민족주의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같은 문제에도 맹목적일 수밖에 없죠. 유령의 유물론은 더 나아가 모든 동일성(identity)은 어떤 균열을 포함할 수밖에 없으며, 동일성은 바로 이러한 균열, 어긋남으로부터 비로소 성립 가능하다고 주장하죠. 따라서 그것은 불변적이거나 본질적인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탈구축적인 동일성의 추구를 유물론 및 유물론 정치의 핵심 기준으로 설정합니다. 정치 공동체나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당연히 탈구축적이고 다원적인 관점을 옹호하는데, 다만 데리다 식의 해체론적 정치를 이해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데리다를 너무 조야한 의미의 반구조주의자나 반제도론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데리다는 동일성이나 정치 제도, 사회 구조에서 탈주하자, 벗어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체적인, 탈구축적인 동일성, 제도, 구조를 구축하자고 하는 사람이죠. 데리다는 국가주의자도 아니지만 무정부주의자도 아닙니다. 그게 바로 데리다가 유물론자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저한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맑스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문제제기도 포지티브하게 본다면 아마 그런 관점에서 맑스주의를 비롯한 해방사상․해방운동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개조할 것인가 볼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에 개인적인 얘기를 좀더 해본다면 저한테 들뢰즈는 일차적으로 니체와 스피노자 연구자로서의 들뢰즈입니다. 제가 들뢰즈 책 중에 제일 인상 깊게,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이진경 옮김, 인간사랑, 2003)라는 책과 『니체와 철학(이경신 옮김, 민음사, 2001)이라는 책입니다. 들뢰즈는 니체 연구자고, 스피노자 연구자다, 이것이 제가 들뢰즈를 보는 일차적인 관점입니다. 제가 스피노자를 연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제공해 준 사람도 들뢰즈와 알튀세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 알튀세르 책들을 읽을 때 어렴풋이 눈치채기는 했지만, 에티엔 발리바르와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 같은 그의 제자들의 스피노자 연구들을 접하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과연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인지, 또 그것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해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기회에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관심 있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제 글들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현재성], 『모색2호, 2001; [범신론의 주박에서 벗어나기-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 동향], 『근대철학2권 2호, 2007; [관계론, 대중들, 민주주의: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 『시와반시71호, 2010년 봄호).

스피노자 철학의 현대적인 해석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저에게는 오히려 들뢰즈가 일차적인 길잡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의 스피노자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실체와 속성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론적 해석과 평행론 해석, 공통 통념(common notion)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이런 해석을 통해 들뢰즈가 보여주려고 한 스피노자는 기존의 금욕주의적이고 범신론적인 스피노자와는 전혀 다른, 아주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철학자, 실천적인 철학자로서의 스피노자였죠. 한국에는 스피노자에 관한 두 가지 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서양철학계에서 통용되는 범신론 철학자의 상이죠. 스피노자가 범신론자라는 것은 한국의 서양철학계에서는 거의 상식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의 상은 사과나무의 철학자라는 상입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금언이 있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금언 덕분에 스피노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꼽히곤 합니다. 스피노자가 전혀 알지도 못한 문장이 스피노자의 금언으로 알려져 그가 일종의 국민철학자로 사랑받게 된 사정이 과연 어떤 오해에서 비롯한 것인지 자못 궁금할 따름입니다. 어쨌든 들뢰즈가 제시한 스피노자의 상은 이 두 가지 상과는 매우 다른, 강력한 해방의 사상가라는 상입니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의 정치철학은 그 자신도 말하듯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재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의 스피노자 해석에 강력한 영감을 준 것이 바로 들뢰즈의 스피노자 연구였습니다. 이런 식의 스피노자 이해는 아주 매혹적이고 또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욱이 들뢰즈의 연구는 상당히 정밀하고 독창적인 독해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영미권의 스피노자 연구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죠. 제 경우도 들뢰즈의 연구를 통해서 스피노자 철학의 현재성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스피노자 철학이 매력적인 연구 주제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좀더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해석이 라이프니츠 내지 베르그손의 시각에 따라 재구성된 스피노자 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또 여러 가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지만, 그의 스피노자 연구의 독창성과 중요성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니체와 철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제가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이미 국내에 두 차례에 걸쳐 번역됐지만(『니체—철학의 주사위』, 신범순ㆍ조영복 옮김, 인간사랑, 1994;『니체와 철학』, 이경신 옮김, 앞의 책), 두 개의 번역본 모두 문제점이 많아서 실제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한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들뢰즈 철학의 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그가 약관의 나이에 첫 번째 저서(흄에 관한 졸업논문이었죠)를 낸지 9년만에 출간한(1962년) 성숙기의 첫 번째 저작이기도 하죠. 제가 보기에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니체의 철학을 ‘도덕의 계보학’에 입각하여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이데거가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허무주의에 입각하여 니체를 재해석하는 것과 비견될 만한 독법인데, 실제로 들뢰즈가 겨냥했던 적수는 헤겔과 그의 변증법이었죠.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역사와 사회를 해석하는 변증법 모델을 제시했다면, 들뢰즈는 그러한 모델에 맞설 수 있고 또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비변증법적 차이의 모델을 니체의 주인과 노예의 계보학에서 찾은 셈입니다. 적대와 갈등을 역사와 사회의 기본적인 동력으로 제시하면서도 변증법 모델과 달리 목적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니체 자신의 귀족주의 및 인종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들뢰즈는 주인의 소수화에서 찾고 있죠. 따라서 니체 철학에서 계보학의 중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니체 해석은 푸코의 해석과 공통적이지만, 동시에 큰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중에 푸코와 들뢰즈가 결별하게 된 것은 니체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다시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의 관계라는 첫번째 문제제기로 돌아가본다면, 80년대 말 이후에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동향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나 알튀세르 하는 분들은 현대 프랑스철학이라든가 포스트주의에 대해 굉장히 반감이 강하고 거부감이 깊은데, 제가 볼 때는 이 둘을 분리한다는 것은—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또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랑시에르 같은 사람의 입장도 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포스트주의라고 부르는, 좀더 좁혀서 말하면 포스트 구조주의라고 우리가 부르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을 맑스주의와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특히 윤소영 교수 같은 분들이 이런 식의 적대적 관계를 조장하고 분리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곤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별 근거도 없을 뿐더러 방향도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그 양자를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주의를 수용하시는 분은 “아직도 알튀세르야? 아직까지도 알튀세르를 보냐? 맑스주의를 여태까지 보냐?”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요. 제가 생각할 때, 포스트 구조주의라든가 포스트맑스주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다 개인적으로 맑스주의자에서 출발했던 사람들이고, 나름대로 맑스주의가 역사적으로 직면했던 한계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 과정에서 자기의 개별적인 사상을 개척했던 사람들이죠. 데리다나 들뢰즈, 또는 푸코, 리오타르 같은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지요. 어떤 식으로든 맑스주의의 세례를 받았고, 한계를 느꼈고, 그것을 개조하려고 노력했어요. 포스트 콜로니얼리즘도 마찬가지죠.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사람도 그렇게 볼 수 있고, 특히 서발턴 연구의 대표자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이나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 같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라클라우나 무페 같은 사람은 물론이고요. 따라서 포스트주의를 맑스주의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제가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중적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그런 시도는 포스트주의의 생성 조건 또는 그 원초적인 문제의식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 작업을 넓은 의미의 맑스주의 운동사 속에서 이해하는 것도 어렵게 만듭니다. 이것은 맑스주의에 포스트주의를 종속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포스트주의의 문제의식은 맑스주의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그런 시도는 포스트주의와 맑스주의의 접합 내지 비판적 소통이 낳을 수 있는 창발적인 가능성들을 처음부터 봉쇄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양자의 접합이나 소통은 둘 사이의 조화나 통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조화나 통합이 동질화, 동화의 가능성을 전제한다면, 접합이나 소통 또는 혼융은 반대로 환원 불가능한 차이와 갈등을 가정합니다. 그러한 차이와 갈등이 없다면, 접합이나 소통의 필요성도 없겠죠.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로버트 영의 저작들이 이미 풍부한 논증과 예시들을 제공해준 바 있죠(『백색신화』, 김용규 옮김, 경성대출판부, 2008 ;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박종철출판사, 2005). 한국에서의 포스트주의가 조금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결과를 내려면 맑스주의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데리다 말을 빌리자면 한국에서 맑스주의는 아직도 유령으로 떠돌고 있는데, 굉장히 불행한 유령이죠. 맑스주의에 걸맞은 애도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거예요. 저는 이게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맑스주의의 유산들을 결산할 것인가? 유령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이것은 포스트주의 하시는 분들한테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맑스주의를 생략한 가운데, 맑스주의에 대한 독자적인 애도를 하지 않은 가운데, 그냥 포스트주의에서 곧바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볼 때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데리다가 말했듯이 그러면 그럴수록 맑스주의라는 유령, 맑스주의의 유령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맑스주의의 유산과 포스트주의의 작업들 간에 생산적인 대화, 또는 논쟁과 토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혜령: 선생님께서 지금 맑스주의에서 프랑스 현대철학으로 단계를 밟아 설명해 주셨으니까 ‘아, 그렇구나’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지난 20년의 경과가 꼭 그렇게 전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포스트주의는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맑스주의와 상관없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생산적이냐는 둘째 치고라도요. 그래서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 사이의 대화, 그리고 맑스주의에 대한 정당한 애도가 어떤 생산성을 갖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

 

진태원: 적절한 질문이신데요. 예를 하나 들어보면요. 맑스주의의 역사적인 한계가 ‘노동의 인간학’ 또는 ‘노동자계급 중심주의’라고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근데 노동의 인간학이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맑스주의에 한계를 미쳤는지, 그리고 노동자계급 중심주의가 맑스주의의 실천적인 한계라면 노동자계급 중심주의가 아닌 어떤 노동운동, 노동자운동을 해나갈 것인지? 또, 과거 맑스주의의 핵심 개념이었던 잉여가치의 착취 말인데요, 결국 잉여가치의 착취가 자본주의의 물질적이고 규범적인 한계 내지 모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혁의 물질적이고 규범적인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죠. 만약에 노동의 인간학을 우리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문제는 없는 걸로 하고 그냥 갈 것인지? 그러면 노동자운동이라는 것은 사회의 민주주의와 민주화라든가 사회의 개조․변혁을 위해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영역인지? 이런 질문들이 방치가 돼 있단 얘깁니다. 노동의 인간학을 해체한다는 것은 그것을 포기한다거나 청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의 재구성 내지 개조를 촉구하는 것이 바로 해체의 작업입니다. 사실 데리다는 초기부터 해체는 이중 운동이라는 점을 역설하죠. 데리다에 따르면 해체의 전략은 우선 ‘전복’의 단계, 곧 ‘어떤 주어진 순간에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전복의 단계를 무시하는 것은 대립의 갈등적이고 종속적인 구조를 망각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사실상 이전의 영역을 현상 유지시키고 이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박탈”(󰡔입장들󰡕, 박성창 옮김, 앞의 책, 65쪽-강조는 데리다)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전복이 기존의 체계 내에서 대립항들의 전도에 그치게 된다면 계속해서 지배구조 자체를 재생산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두번째로 해체는 지배구조에 대한 “긍정적 전위(轉位)”(déplacement affirmatif)(󰡔입장들󰡕, 93쪽)를 시도하는 데까지, 곧 기존의 지배 구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구조, 좀더 개방적이고 좀더 평등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déconstruction이라는 데리다의 개념을 ‘해체’라고 번역하는 것은 데리다의 이 개념이 지니고 있는 능동적이고 포지티브한 측면을 축소시키거나 소거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보다는 탈-구축이라는 번역어가 déconstruction의 이중 운동을 표현하기에 훨씬 적합하죠. 그런데 déconstruction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외국에서도 해체론을 비난하거나 폄훼하는 이들은 주로 해체론의 이런 이미지를 부각시키죠.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번역의 문제만으로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이혜령: 제가 전에 마침 메이데이에 대학로를 걸어가다가 찌라시를 한 장 받아 왔는데 이런 문구가 써 있었어요. “자율주의자, 들뢰지안, 트로츠키스트, 투쟁하라! 혁파하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런 구호가 나오는 까닭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를 통째로 괄호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태원: 제가 볼 때는 맑스주의가 포스트주의에 반감을 갖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데 있습니다. 통속화된 의미의 포스트주의는 기존의 노동의 인간학 및 맑스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전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오히려 청산하거나 포기하자는 주의니까요. 결국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문제를 아예 말소시켜 버리는 셈이죠. 하지만 만약 노동의 인간학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범주나 가치들을 노동이라는 범주에 종속시키고 그리하여 그 범주에 대해 초월적인 가치를 부과하는 것, 그것을 맑스주의나 사회운동을 사고하기 위한 불가침의 범주로 간주하는 따위의 태도들이 문제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노동의 인간학이 문제라고 해서 역으로 사회나 역사를 사고할 때 또는 사회운동을 사고할 때 노동이라는 범주를 아예 배제하고 노동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을 거론하는 것을 낡은 태도로 간주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해체론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입니다. 사실 노동의 인간학이 문제라고 해서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초과 착취되고 그런 현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그리고 노동자계급 중심주의가 문제라고 해서 노동자운동이라는 게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포스트주의의 문제제기라든가 논의 구조를 보면 실제로 노동의 인간학을 해체하는 것과 노동의 인간학을 배제하고 청산하는 것을 혼동하는 경향들이 있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후자를 노동의 인간학의 해체로 간주하려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게 제가 아까 얘기했던 맑스주의의 유령이 계속 떠돌고 있고, 맑스주의에 걸맞은 애도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긴데요. 포스트주의 담론들이 이 문제를 다루고 그것에 관해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자신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포스트주의가 현실적이고 자생적인 한국식의 담론이나 이론 또는 문제설정으로 재생산되고, 창조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적어도 반동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의 가교

 

김항: 한편에서는 포스트주의의 현학적이고 원리적인 사변이, 다른 한편에서는 맑스주의의 낡은 식상한 용어들이 90년대 중반 이후 각각 자기 걸음을 하게 된 거죠. 사실 포스트주의는 현실에서 유리되었고, 맑스주의는 이론적 갱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둘 사이의 가교란 이론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는 문제아닐까요?

 

진태원: 그렇죠. 그것은 보통 말하는 학제 연구의 필요성과도 연결되겠죠.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장, 제도적인 기반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측면도 있지만요. 그 다음에 아까 얘기하고 조금 더 관련되는 측면에서 보자면 제가 생각할 때에는 맑스주의하고 포스트주의의 생산적인 대화․토론․논쟁에서 상호전화—이런 것들의 추구는 꼭 여기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과감한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20세기에 굉장히 중요한 사상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을 두 개를 뽑는다면 제 생각에는 한편으로는 서구 맑스주의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주의가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서구 맑스주의하고 포스트주의가 서로 만나 상호 토론을 하고 논쟁하고 상호 전화해서—서구 맑스주의나 포스트주의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사상운동을 생성해 내느냐는 것은 어떻게 보면 20세기의 결산, 21세기의 진로를 개척하는 문제하고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맑스주의하고 포스트주의가 생산적으로 결합된 예는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반대로 생산적으로 결합된 예들 가운데는 빼어난 작업들이 대부분이지요. 아까 얘기했던 라클라우나 무페 같은 작업도 굉장히 중요한 성과라고 볼 수 있고(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제가 그들의 이론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견해의 차이나 비판점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의 작업이, 불어식으로 표현한다면 “시대를 만들었다”(faire la date)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발턴 연구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고요. 국내에는 이제 라나지트 구하의 책이 번역돼서 막 서발턴 연구의 본격적인 수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서발턴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젝 같은 사람도 결국 맑스주의의 유산하고 라캉의 정신분석을 결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지젝 자신은 의도적으로 포스트주의와 라캉의 유산을 분리시키려고 하지만요.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발리바르 같은 사람이 데리다라든가 들뢰즈, 푸코 이런 포스트주의의 유산하고 맑스주의 유산을 결합하려는 시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발리바르는 제가 지금 거론한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맑스주의의 업적과 한계, 전화의 가능성들을 모색해왔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맑스주의를 포기하거나 청산했을 때에도 여전히 맑스주의자로 자처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은 사람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언급한 그 누구보다도 더 맑스주의자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발리바르가 맑스주의의 유산과 포스트주의의 유산을 결합하는 방식 역시 다른 이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발리바르는 일관되게 맑스주의의 문제설정 속에서,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결합의 가능성들을 모색하고 있죠. 가령 포스트주의 담론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 점이 잘 나타납니다.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가들은 대부분 맑스주의와 무관하거나 맑스주의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폭력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데리다가 [폭력과 형이상학](『기록과 차이)이나 『법의 힘』 , 『불량배들등과 같은 저작에서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그렇고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 연작 같은 데서 폭력이나 전체주의의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발리바르는 폭력의 문제를 다룰 때 늘 맑스주의의 역사 및 그 역사 속에서 맑스주의자들이 직면했던 아포리아라는 문제설정을 견지하죠. 이 점은 그가 쓴 [게발트](Gewalt)라는 논문에서 잘 드러납니다(에티엔 발리바르,『폭력과 시빌리테』, 진태원 옮김, 난장, 근간에 수록).

 

이혜령: 서양이론의 수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산발적이기보다는 들뢰즈 번역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죠. 소개되는 사상가도 많아졌죠. 그래서 번역-해석-실천의 장이 확장되고 토착화되는 양상을 보인 것 같습니다.

 

진태원: 80년대 말 이후에 20년 동안에 한국에서 수용된 포스트주의 중에서 또는 현대 프랑스철학자 중에서 제일 체계적으로 번역이 많이 되고 논의되는 철학자는 푸코와 들뢰즈라고 생각합니다. 푸코가 국내에서 널리 읽히고 또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원용이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선 푸코 저작들이 많이 번역돼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죠.『감시와 처벌』,『성의 역사』,『광기의 역사』,『지식의 고고학』같은 주요 저작들이 거의 모두 번역되어 있고,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과 비교해볼 때 번역의 질도 좋은 편입니다. 물론 『말과 사물』이나『임상의학의 탄생』같은 저작들은 번역에 상당히 문제가 많아서 언젠가는 재번역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근에 프랑스와 영미권을 비롯하여 외국 학계에서 큰 화제를 낳고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도 번역되고 있죠. 현재까지는 『비정상인들』(1975)과『“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6) 같은 두 권의 강의록이 번역되었는데, 앞으로 후기 푸코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통치성에 관한 강의록이 속속 번역될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저작들이 읽을 수 있게 번역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사상가든 간에 제대로 논의되고 연구될 수가 없습니다. 서양 인문학을 연구하는 분들 가운데는 번역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건 큰 착각이라고 봅니다. 가령 국내에서 현대 영미철학이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주요 영미철학자들의 저작이 거의 번역되지 않는 이유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콰인이나 데이빗슨의 저작이 번역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 인문학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죠.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원서를 읽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인문학이라는 문화적 제도를 고려한다면 번역이 없는 사상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플라톤의 사상적 삶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따라서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 학계에서 푸코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것은 그의 주요 저작들이 비교적 잘 번역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푸코는 맑스 이후에, 또는 맑스와 달리 정치와 사회 또는 문화를 어떻게 읽고 분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푸코가 반드시 맑스와 대립한다고 볼 수는 없고 또 맑스와 동일한 영역, 동일한 지평을 탐구한 사상가도 아니지만, 푸코는 어쨌든 맑스 없이도 정치와 사회를 분석할 수 있고 또 맑스가 간과한 영역들에서도 중요한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람이죠. 예컨대 이성과 광기의 대립 또는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이 근대성의 핵심적인 구성소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주었고, 학교, 감옥, 병원 등과 같이 우리가 보통 정치와 무관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곳이야말로 진짜 정치, 진짜 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밝혀냈죠. 그 때문인지 국내에는 푸코의 문제설정을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전유하거나 아니면 푸코의 관점에서 맑스주의의 변형 내지 개조를 추구하려는 시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푸코는 맑스의 대안처럼 받아들여졌죠.

들뢰즈와 가타리는 약간 사정이 다른 것 같습니다. 들뢰즈/가타리의 국내 수용과 확산에서는 특히 수유너머의 연구자들, 이진경 선생이나 고병권 선생, 고미숙 선생 같은 분들의 노력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들뢰즈의 책들이 많이 번역이 되고, 좋은 번역들이 이루어진 것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따진다면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가령 『천 개의 고원』이나『차이와 반복』또는『의미의 논리』,『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같은 책들이 번역이 되지 않았다면, 들뢰즈가 그처럼 많이 논의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들뢰즈나 가타리 저작 중에도 번역에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들이 있죠. 『반(反)오이디푸스』, 『니체와 철학』같은 책들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그런 번역들을 바탕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읽고 각자의 공부 분야에서 응용을 시도하고, 그것을 또 삶의 문제라든가 정치적 현상을 해석하는 기반으로 삼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어떤 이론적인 성과라든가 실천적인 의미가 있는 문제제기를 했느냐를 평가하기 이전에 그 방향과 태도, 자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라고 봅니다.

국내의 들뢰즈 연구(들뢰즈와 가타리는 여러 권의 저작을 공동 저술했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들뢰즈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이렇게 부를 수 있겠죠)는 상당히 특수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령 프랑스나 영미권을 비롯한 외국의 사례를 볼 때 국내처럼 들뢰즈가 대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 들뢰즈(/가타리)는 『반오이디푸스』가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늘 학계의 소수파적이고 이단적인 현상이었죠. 들뢰즈에 열광하고 그들의 저작을 활용하거나 발전시키려는 학자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지만 그들은 학계에서 늘 소수이고 또 대중적인 영향력도 미미한 편입니다. 반면 국내에서 들뢰즈는 2000년대 그야말로 대중적으로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죠. 대중들이 들뢰즈 책을 실제로 읽고 그 내용을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들뢰즈 사상의 무언가가 대중의 욕망 내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볼 때에는 들뢰즈에 대한 대중적인 열광은 무엇보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 시절과 상당히 겹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대 한국의 정치와 사회ㆍ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단어 또는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인민주의(populism)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단 이 경우 인민주의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악마적인 평가(과천연구실에서 나온 『인민주의 비판』이라는 책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책입니다)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양가성을 공정하게 파악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민주의로서의 노무현 현상은 기성의 제도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그것을 변혁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진정한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정한 정치는 맑스주의적인 정치는 아닙니다. 대중의 시각(또는 대중의 상상계)에서 볼 때 맑스주의(또는 운동권)는 또 하나의 제도 정치이고 기성의 낡은 정치죠. 대중은 엘리트들이 좌우하고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불과한 기성의 정치를 넘어서 보통 사람들, 서민들의 아픔과 이해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치를 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대중의 열망, 대중의 상상계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유명 대학 출신도 아니고 집안의 배경이라든가 권력의 연줄 같은 것과도 무관한 인물, 그러면서도 사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고 정치권에서 입지를 다질 만한 능력을 지닌 인물,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계파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었고, 민주화 이후 고양된 대중의 정치적 자신감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그를 2000년대 한국 정치의 정점으로 이끌어올린 것이죠.

노무현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평가는 이 대담의 주요 논점이 아닌 만큼 더 이상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볼 때에는 들뢰즈 사상의 대중적인 인기, 또는 대중적인 상상계 속에서 이해된 들뢰즈 사상은 노무현 현상의 사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그런데요, 우선 2000년대 국내에 소개되고 확산된 들뢰즈 사상은 맑스주의에 대한 (상상적) 보충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의 들뢰즈는 맑스주의를 계승하되, 그것이 지닌 역사적 한계를 교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좀더 세련되고 일반화된 맑스주의입니다. 적어도 대중들은 그렇게 받아들였죠. 이 경우 맑스주의를 계승한다는 것은 엘리트가 아닌 피지배 대중들을 정치와 문화의 주체로 간주한다는 점, 그리고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진정한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맑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 이미 보수화되고 제도화된 ‘운동권’을 넘어 진짜 대중, 진짜 서민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표현해줄 수 있는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둘째, 대중들이 보기에 들뢰즈 사상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표현하고 또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탈주론’에서 그것을 찾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욕망’ 개념에서 찾기도 했고 아니면 ‘소수자’ 이론에서 찾기도 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매우 난해한 들뢰즈의 사상에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볼 때 이진경 선생과 고미숙 선생은 대중들에게 들뢰즈 사상의 이 두 가지 측면을 각각 구현해준 사람들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대중적 들뢰즈 또는 상상적 들뢰즈는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및 비극적인 죽음과 비슷한 시기에 퇴조를 겪은 것 같은데, 앞으로 과연 들뢰즈 사상이 지난 10여년 동안 누렸던 인기와 권위를 지속시킬 수 있을지, 새로운 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푸코와 들뢰즈는 체계적으로 번역ㆍ소개되고 또 나름대로 심화ㆍ확장되었다는 점에서 90년대 이후 포스트주의 내지 프랑스철학의 수용사에서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고 봅니다.

 

이혜령: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주의와 맑스주의의 대화에 선생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실망들도 하셨지만, 믿음과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진태원: 저는 맑스주의를 공부하는 분들, 또는 아직도 맑스주의 관점에서 연구를 하고 실천을 모색하는 분들하고, 포스트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업을 하는 분들이 각자 노력을 하고 작업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것은 포스트주의 하는 사람들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맑스주의 하는 분들도 포스트주의의 성과나 문제제기를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는 그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소개하고 연구하고 검토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한국에서 맑스주의 연구하는 분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지만, 맑스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분들은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맑스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소개하고, 평가하지 않고서 맑스주의를 애도하는 것, 곧 맑스주의의 역사적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근대성의 맥락에서 맑스주의를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지, 근대성에서 맑스주의가 어떤 의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또 맑스주의의 한계가 근대성의 한계들과 어떻게 연동돼 있는지, 근대성의 전체적인 구조와 전개, 그것의 한계 등과 맑스주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결합하는 작업들이 많이 소개가 되고, 또 한국의 연구자들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아마 조금 더 폭넓은 시야에서 맑스주의를 애도하고 포스트주의의 역사적인 위상 같은 것을 규정하는 데도 중요할 겁니다.

 

김항: 맑스주의라고 하는 원리라든가 교조적인 체계가 아니라 실제로 맑스주의가 사유되었던 방식 자체를 계보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지역이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건 상당히 방대한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진태원: 이것은 한 집단이나 사람의 과제가 아니라 상당히 포괄적인 연구 방향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가령, 이런 거죠. 맑스주의라는 것은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프랑스혁명이나 영국에서의 혁명 또는 대중운동하고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혁명이나 영국에서의 혁명운동은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사상적이고 제도적인 운동의 흐름하고 연결이 되어 있고요. 또, 포스트콜로니얼 시각에서 보면 그런 것하고 세계의 식민지 분할 패권경쟁하고 연결되는 측면들도 연구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체계적인 소개나 연구가 상당히 드문 편이죠. 영국혁명은 더 그렇고요. 또 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의 반식민 해방투쟁과 대중운동의 역사에 대한 연구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아무튼 맑스주의의 역사를 근대성의 역사라는 시각에서 연구하는 건 앞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연구방향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연구재단 체제와 한국 철학계의 폐쇄성

 

김항: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의 가교나 근대성의 역사로서 맑스주의의 역사 연구 등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연구재단의 지원이 그런 기반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죠. 다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철학과 다른 학문 분야 사이의 교류는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것 같습니다. 신기한 건 글 쓸 때, 프랑스철학을 인용하지 않는 문학 연구자가 없을 정도로 철학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대중화되었음에도 실제로 철학하시는 분들과 인적으로 교류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아무튼 이런 제도적 기반과 학문간, 특히 철학과 타학문간의 교류 문제에 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태원: 질문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에서 연구재단(구 학진) 체제라는 걸 어떻게 볼 수 있느냐 하나 하고, 프랑스철학을 중심으로 봤을 때 철학하고 다른 인문․사회과학 분과와의 상호작업, 공동작업, 학제적인 작업의 부족이나 결여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느냐 두 가지 문제라고 보는데요.

첫번째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연구재단 체제의 문제점에 관해서 지적하는 사항들에 공감할 수 있는 점도 있는데, 어떤 측면에서는 문제를 너무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문제점도 있다고 보지만, 결국 연구재단 문제는 한국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 자신의 문제를 연구재단에 전가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약간 사정이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지난 10여 년 간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연구재단의 역할이 반드시 부정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또 연구재단이 그렇게 경직된 기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 조직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논문식 글쓰기’를 강요한다, 또는 어젠다 중심이다, 심지어는 이런 얘기도 하지요, 돈 가지고 인문․사회과학을 관리․통제하려고 한다, 그런 문제제기들을 하는데, 그게 어떤 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점도 있지만,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해요. 돈 가지고 인문․사회과학자들을 관리하려고 한다는 지적은 돈 걱정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죠. 학위를 마치고 아무 일자리도 없이 강의나 나가는데, 연구과제라도 있어서 그거 지원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는 거는 시간강사들한테 통제의 문제가 아니죠. 원래 과제를 만든 이유 자체도 연구자들한테 인건비를 지원하자는 취지들도 있는 거니까 이걸 돈을 가지고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 봅니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대규모 사업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느냐 오히려 개인 중심으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느냐, 또 비정규직 학자들에 대해 장기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부족하다는 등의 비판은 일리가 있고 또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논문식 글쓰기라든가 등재지 중심의 업적평가, 즉 양적인 평가는 연구재단에 떠넘길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만약에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충분히 거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걸 개선할 수 있는 대안들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연구재단에서 어느 정도 그걸 수용하고 개편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인문사회학자들이 그런 대안이 없었던 거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의식이나 해결방안이 없으니까 그게 계속 강요처럼 느껴지는 거죠. 저는 이런 문제에서는 인문사회학자들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평 논문 같이 학술지 논문 등재지 이외에 다른 계간지라든가 이런데 실린 글들의 업적은 인정을 안 해주냐? 업적으로 인정해 달라.” 이런 것도 인문․사회과학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체계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근데 사람들 보면 놀라운 게 가령 연구재단에서 어떤 규정 같은 것을 만들면 아무 문제제기 없이 그냥 따라가요. 가령 대학에 있는 선생들 만나면 등재지에 글 쓰라고, 꼭 등재지에 쓰라고 합니다. 왜? 등재지만 업적 평가가 되니까. 그러면 제가 비등재지도 업적 평가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않냐 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는 생각을 못해요. 또, 그런 걸 하긴 귀찮아하고, 그걸 하려면 뛰어다니고, 사람들 모아서 학교에 건의도 해야 되고, 연구재단에도 얘기를 해야 되니까 그냥 따라가요. 연구재단으로서는 국정감사도 받아야 되니 쉽게 바꾸려 하지 않죠.

 

이혜령: 계량화와 투명화가 필요한 거죠.

 

진태원: 국가기관으로서 자기들의 규칙이 필요한 집단이자 기관이죠. 그것을 인문․사회과학의 실정에 맞게 변화시키고, 그걸 좀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인문․사회학자들밖에 없는 건데, 그냥 따라 가요. 인문․사회과학자들을 보면 어떤 점에서는 마치 공무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복지부동 같은 태도도 있는 것 같고, 위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면 그냥 그대로 순응하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령: 저는 연구재단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비평공간을 축소시켰다는 점보다는, 논문 글쓰기를 규칙화하면서 분과 학문체제는 강화했다는 점 같습니다. 사실 논문 쓰기와 심사를 규격화하고 엄격화하면서 글의 질은 나아졌지요. 그런데 분과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면서도 논문 중심의 글쓰기 체제는 분과 학문의 울타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태원: 연구재단 지원방식 또는 체제의 문제점은 공론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걸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재단의 지원방식이 학회를 중심으로, 학회에서 내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지원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오히려 과 단위 분과학문 단위로 분산시키고, 그걸 고착화하고, 대신에 여러 분과 사람들이 모여서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여지를 상당히 축소시킨 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도 논란이 됐던 것 같은데요. 가령, 『창비』 같은 학술지를 등재지로 할 거냐 말거냐. 그거 가지고서도 아마 논란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걸 등재지로 해야 된다고 하는 분들은 『창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론장으로서 기능을 하고, 또 의미 있는 글들이 많이 실리니까 학술지로서 평가해 줘야 한다라는 관점을 갖는 거고요. 반면에, 왜 『창비에게만 그런 특혜를 주냐는 문제제기 논란이 있는 거죠. 결국 현재 연구재단의 지원방식으로는 공론을 형성하고, 학제적 연구를 촉진하는 건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혜령: 이것도 저것도 등재지가 되어야 한다는 차원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거죠.

 

진태원: 맞습니다.

 

이혜령: 그래서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인문학자들의 대안적인 상상이 필요한 거구요.

 

진태원: 아무튼 저는 모든 것을 꼭 연구재단의 문제라고 돌리기는 어려운 점들이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 질문하신 게 철학하고 다른 인문․사회과학하고 공동작업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볼 때는 80년대와 최근의 분위기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철학이 다른 학문들하고 교류도 하고 같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맑스주의라는 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데, 그게 무너지고 난 다음에는 그걸 묶을 수 있는 틀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에 철학하고 다른 학문 분과의 교류가 없다는 것은 사실 철학 자체의 문제점이 더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9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다른 인문․사회과학 분과에서 철학을(특히 프랑스철학이겠죠) 참조하거나 준거로 삼는 경향이 많아졌다는 건데, 정작 프랑스철학, 또 일반적으로 철학을 하는 분들은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참조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국문학에서 프랑스철학을 어떻게 수용을 하고 있는지, 또 역사학자들이, 예를 들어 임지현 선생 같은 분들이 알튀세르나 푸코를 어떻게 수용을 하고 있는지 이런 데 관심이 없는 거죠.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수용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할 만한 능력도 부족한 것 같고요.

왜 관심이 없냐 하면 서양철학, 프랑스철학도 마찬가지지만, 서양철학하는 분들의 관심은 프랑스나 독일, 영미 쪽에 가 있지 한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어로 글을 써도 관심은 프랑스나 영미 쪽 논의나 연구동향에 가 있지, 여기서 어떤 문제가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아요. 그것은 유럽이나 영미쪽이 현재의 인문사회과학의 본산이고 또 그쪽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의 수준이 훨씬 높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좀 비판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한국의 프랑스 철학을 비롯한 한국의 철학 일반이 갖는 대외종속적․타율적 속성, 한국 인문학자로서 프랑스철학 연구자들이나 다른 철학 연구자들이 갖는 ‘뿌리 없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철학이라는 게 원래 추상적인 학문이긴 하지만, 그 추상적인 학문에도 그것이 성립하고 발전하고 변형되는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중요하고 강력한 철학자들일수록 이러한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고 늘 이 맥락을 조회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고 발전시키죠. 한국에서 상당히 논의가 많이 되고 수용이 많이 된 철학자들, 데리다, 들뢰즈, 푸코, 리오타르, 최근에는 랑시에르, 발리바르, 아감벤 같은 사람들이 대단한 점들이 뭐냐면 그 사람들의 문제의식 자체가 너무 구체적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가지고 자기들이 물려받은 사상적인 자원을 무기로 해서 문제를 사고합니다. 자기 선배들의 철학과 싸우면서 자기들의 입장을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사유의 밑바닥에는 항상 자신이 살아가고 사고하는 현실의 맥락에 대한 준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아무리 추상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그 추상적인 얘기들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나왔는지 분명하게 추적할 수가 있어요. 따라서 이들의 사상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작업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작업이 어디에서 발원했고 또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그 실천적인 방향이 뚜렷해요. 우리나라 철학자들에게는 그런 게 없죠. 들뢰즈를 전공하는 철학자, 또 데리다를 논의하는 철학자 또는 푸코를 연구하는 철학자는 존재하지만, 그들이 왜 그 사람들을 전공하고 연구하는지,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행에 편승한다는 비판들이 제기되곤 하죠. 저는 사상의 유행이라는 게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상이 유행한다면 그것은 그 사상이 시대의식을 잘 구현하고 있고 또 동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첨예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철학사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각각의 시대에 유행했던 사상들의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 및 좀더 일반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 일반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유행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유행을 ‘우리의’ 유행으로 만들 것인가, 그들의 유행과 우리의 유행 사이에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죠.

따라서 문제는 프랑스 철학을 비롯한 서양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한국이라는 리퍼런스를 준거로 기입해 넣을 것인가, 또는 어떻게 한국이라는 준거점에서 프랑스 철학을 수용하고 변용할 것인가라는 점인데, 상당수의 서양 인문학 연구자들은 이런 리퍼런스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왜냐하면 이미 프랑스, 독일, 영미 같은 리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아니면 그 문제를 괄호에 넣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국이라는 리퍼런스가 기입될 경우 보편성이나 객관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도 이런 태도가 한국의 서양 인문학 연구를 더욱 더 추상적으로 만들고 자족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들지 않는가 합니다.



김항: 데리다를 읽든 들뢰즈를 읽든 문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문제에 맞닥뜨려서 그 난해한 이야기들이 구체성을 띠고 제시가 되었냐고 하는 상황까지 포함해서 연구해야 그걸 우리 스스로의 처지와 맞춰서 상대화하고 거기서 수용을 할 건 하는 태도들이 생겨날 수 있겠죠. 그때 비로소 다른 학문 분과들하고 문이 열릴 것 같은데요. 한국의 철학이 그 단계에 계속 안 가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진태원: 맞습니다. 김항 선생님이 잘 아실 텐데요. 우리나라와 비교해본다면 일본 학자들이 그런 걸 잘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일본 학계의 전통이나 분위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국내에 소개된 몇몇 사람들 책을 보면 가라타니 고진 같은 사람도 그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고, 사카이 나오키 같은 학자도 마찬가지죠. 이 사람들은 무슨 문제를 논의하든지 간에 항상 일본이라는 리퍼런스를 밑바탕에 깔고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데리다를 굉장히 추상적이고 난해한 사상가, 현실 문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현학적인 철학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데리다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 보면 데리다 얘기하면서 꼭 일본의 문제를 같이 얘기합니다. 가령 얼마 전에 『주권의 너머에서라는 책이 번역된 우카이 사토시 같은 학자는 프랑스나 영미권에도 잘 알려진 데리다 연구자인데, 책 전반에 걸쳐 데리다 사상을 전제하면서 그것을 일본과 동아시아를 비롯한 현실 문제에 대한 사고 속에서 녹여내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데리다 사상으로 일본의 문제, 아시아의 문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고 속에서 데리다 사상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변용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나라 철학 전공자들한테서는 그런 걸 볼 수가 없어서 굉장히 유감입니다.

 

이혜령: 결국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신 맑스주의와 포스트주의의 생산적 대화와도 연결이 되는 문제네요.

 

김항: 저는 한국의 현대철학 연구자들의 저작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내용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도대체 이들의 현재적 생명력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요. 그건 아마 그 딱딱한 철학연구서에서 그것이 마주했던 현실을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철학 연구의 전망

 

이혜령: 화제를 좀 바꾸자면 오히려 철학 자체는 매우 대중화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90년대 후반 이후에 과 자체는 지방대 같은 데서는 없어지기도 하지만, 철학이 인문학 담론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진태원: 그게 프랑스철학이 한국에 수용되는 특징하고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프랑스철학의 한국적 수용은 첫째로 말하면 비철학적인 수용이라 볼 수 있어요. 프랑스철학이 많이 수용된 곳은 철학과가 아니고 철학 외에 다른 분과들에서 많이 수용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철학과를 보면 프랑스철학 전공자가 많지 않아요. 프랑스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전임 교수로 존재하는 철학과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널리 논의되고 원용되는 철학이 프랑스철학인데, 정작 대학의 철학과에는 프랑스 철학 전임 교수가 드물다는 것은 한국 철학계가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죠.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철학 전공자 중에서는 베르그송 전공자들이 숫자가 제일 많아요. 그런데 베르그송은 그 철학의 중요성이나 탁월함과 별개로 90년대 이후 국내의 다른 인문사회과학 분과에서는 별로 영향을 못 미쳤습니다. 제가 볼 때는 앞으로도 특별히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90년대 이후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 프랑스 철학이 널리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대학의 학문 제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현상입니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프랑스 철학의 수용은 굉장히 비제도적인, 대중적인 수용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프랑스철학의 수요, 또 그것에 대한 관심은 전문적인 연구자들도 있겠지만, 일반 교양대중들의 관심들에 힘입은 바가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이런 현상의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한국사회가 사회적으로 봤을 때에 교양대중들의 철학에 대한 지적인 필요․욕구가 상승한 결과일 수도 있고요. 또, 출판을 중심으로 프랑스철학에 수용된 결과일 수도 있겠고요. 프랑스철학의 수용을 주도한 사람은 철학자들이 아니고, 대개 출판사하고 문학이론을 한 분들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제도적으로는 프랑스철학이 별로 수용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학에서 지금 들뢰즈나 데리다나 푸코나 리오타르 철학을 배울만한 곳이 거의 없거든요.

 

김항: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인터디시플리너리한 학과에서는 리오타르 논문도 받아주지만, 철학과에서는 베르그송이나 데카르트죠. 메를로-퐁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진태원: 어떻게 보면 포스트 구조주의라는 철학 자체가 굉장히 성격이 특이합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포스트 철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그 사람들의 작업 자체가 전통적인 철학 분과에 포섭되지 않는 글쓰기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또 그들이 다루는 영역이나 소재들도 그렇고, 다루는 주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푸코 이전에 누가 광기를 주제로 철학 분야의 국가박사학위 논문을 썼겠습니까? 데리다가 문자기록(écriture)이라는 문제로 그라마톨로지에 관한 책을 쓴 것도 마찬가지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프랑스 철학이 철학과 바깥에서 수용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점이 있죠. 철학과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방식의 논증․스타일․주제를 다루니까요. 그런 것도 개인적인 관심 중의 하나인데요. 포스트구조주의 이후에 철학이라는 게 어떻게 변모되었을까? 과연 철학이라는 게 예전과 같은 그런 식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철학은 이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고, 다른 분과학문 속에서 그 학문들에 기생하여, 말하자면 유령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에게 상당한 자유와 해방의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게 아닐까 ...

 

이혜령: 대학에서의 철학과는 어떤 식으로 가야 될까요?

 

진태원: ‘데카르트 이후’에 철학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고, ‘칸트 이후’라든가 ‘맑스 이후’라든가 철학의 성격이 달라졌듯이 아마 포스트 구조주의도 역시 철학이라는 분과에 대해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다. 프레드릭 제임슨 같은 사람은 ‘포스트 철학’(post-philosophy)에 대해 말한 적이 있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철학과라는 것이 없어지고, 그 대신 대학의 모든 과에 철학이나 그 비슷한 것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존재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가령 문학 분야의 학과에 문학적인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있고, 경제학과에는 경제적인 것에 관한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수학과에는 수리적인 것의 본성을 따지는 학자가 존재하는 식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포스트구조주의로서의 프랑스철학이 철학에 미친 효과는 철학이 더 이상 다른 학문, 다른 분과와 독립적인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일종의 철학의 해체, 또는 철학의 탈-구축인 셈이죠. 하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것이 반드시 반철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항: 어떻게 보면 장르 파괴적인 거네요.

 

진태원: 그런 성격들이 좀 있죠.

 

김항: 두 시간 정도 진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더 나가면 ‘철학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까지 갈 것 같습니다. 오늘,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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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iked-83 2011-08-09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저 박찬경 입니다. 외국에 나갔다가 바로 회사에 다니느라, 새움에 간지도 벌써 몇 년이네요. 웅기형과는 종종 보았습니다. 조만간 새움에서든 어디에서든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글들도, 이 인터뷰도 안 보이는 곳에서 틈틈히 소중하게 읽고 있습니다.^^

balmas 2011-08-10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찬경아 오랜만이다.^^ 회사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잘 다니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ㅎㅎ 그래 조만간 시간 나면 한번 보기로 하자.

강병호 2012-01-27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좋은 인터뷰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이렇게 내용이 알 찬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것인데.
말씀하신 것들의 대부분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인문학자들 스스로의 반성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
인문학은 지원이 적다, 이런 말에 스스로 취해서 투정만 할 줄 알지, 자기반성은 알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자기<반성>을 못 하는데 어떻게 철학을 하겠어.
등재지에만 글 쓰지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투고하는 그 노력, 정말 쉬운 것 아니죠. respect!

balmas 2012-01-27 19:10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새해 복많이 받아라.
정색을 하고 말하니 좀 민망하다.^^

Jeronimo 2022-12-2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연구재단 글이 인상깊습니다.
 

[헤겔연구] 제27호(2010년 6월)에 실린 글을 한 편 올립니다.  

제 학위논문 3장의 일부를 다소 손을 본 뒤에 발표한 글입니다.  

혹시 인용하시거나 논평하실 분은 [헤겔연구]에 수록된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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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과 연관의 인과론―스피노자 인과 이론에 대한 한 가지 해석

 

 

I. 머리말

 

스피노자의 인과 이론은 그의 철학 체계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예컨대 근대 철학의 인과론을 다루는 책(Nadler 1993)의 「서문」에서 스티븐 내이들러는 근대 철학의 인과론을 데카르트의 상호작용론과 기회원인론,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스피노자의 인과론에는 아무런 자리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 또 그의 인과론에 대해 논의하는 경우에도 다소 막연하거나 모호한 주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갈릴레이에서 흄에 이르는 근대 철학에서 인과론의 문제를 다루는 책에서 엘하난 야키라(Elhanan Yakira)는 스피노자를 말브랑슈, 라이프니츠와 더불어 근대의 기계적 인과론에 대한 “반대자”(dissidents)로 분류하면서 그의 인과론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지만, 형이상학적 차원의 몇 가지 언급에 그치고 있다.[Yakira 1994, pp. 80 이하 참조.] 근대 철학에서 인과론 논쟁에 관해 최근에 출간된 또 다른 개론서의 경우는 “원인들과 충족 이유”라는 제목이 붙은 한 장에 걸쳐 스피노자를 라이프니츠와 더불어 다루고 있지만, 라이프니츠와 달리 스피노자의 인과론에 대해서는 간략한 요약 정도로 그치고 있다.[Clatterbaugh 1999. 이 책은 서양근대철학에서 인과이론을 개관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책이지만, 뒤에서 살펴볼 것처럼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 중 한 가지를 반복하고 있다.]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논문이나 저서에서도 스피노자의 인과론에 관한 논의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스피노자의 인과론만을 전적으로 다루는 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고, 몇몇 연구서나 주석서를 제외하면, 스피노자의 인과론을 독립적인 주제로 논의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Gueroult I, 8-10장 ; Donagan 1988 중 6장 1-4절; Macherey 1992a 등 참조. 그 이외에 Deleuze 1999의 “자기원인” 항목도 참조. ] 그리고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스피노자의 인과론에 대한 여러 주석가들의 논의에는 상당한 오해가 담겨 있다. 이처럼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에 관한 논의가 드물 뿐만 아니라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스피노자가 자연철학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근대 철학에서 인과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갈릴레이의 물리학 혁명이 계기가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인과론에 대한 논의는 주로 자연학과 관련하여 전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스피노자 철학에 체계적인 자연철학이 부재하다는 사실은 스피노자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인과론을 지니고 있었는지 의심해 볼 만한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근대 철학에서 인과론의 또 다른 쟁점은 신체와 정신, 물질과 사고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데카르트가 신체의 형상으로서 영혼/정신이라는 중세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사유와 연장을 엄격하게 구분한 이후, 인간이라는 하나의 통일체(적어도 우리의 경험에 의거했을 때)를 이루는 두 부분인 신체와 정신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데카르트가 제기한 해법, 곧 신체와 정신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해법이 내포하는 애매모호함 때문에, 스피노자와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은 각자 이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스피노자는 신체와 정신을 하나의 통일체로 간주했기 때문에, 적어도 인과론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리 주목을 끌 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하지만 Della Rocca는 정신과 신체의 동일성에 관한 스피노자의 주장은 그의 인과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Della Rocca 1991 참조.]

그러나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 철학에는 인과론에 대한 매우 체계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스피노자의 인과론은,[이하에서 스피노자 저작은 다음과 같은 약어로 표시하겠다. 스피노자 전집은 G라는 약칭 아래 권 수는 로마자로, 페이지 수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할 것이다. 스피노자의 각각의 저작 및 󰡔윤리학󰡕의 정의와 공리, 정리, 증명, 주석 등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시한다.
󰡔지성개선론󰡕: TIE, 󰡔소론󰡕: KV,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PPD, 󰡔윤리학󰡕: E
정의: D, 공리: A, 정리: P, 증명: d, 따름정리: c, 주석: s, 보조정리: L
E II P29s → 󰡔윤리학󰡕 2부 정리 29의 주석
KV II, 17, §5 → 󰡔소론󰡕 2부 17장 5절
]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E I P18)
내재적 인과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내재적”이라는 관형어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주석가들은 내재적 인과관계를 협소하게 해석하여 유한 양태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른바 “타동적”) 인과관계와 대립하는 것으로, 또는 그것과 외재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인과론이 내재적 인과론이라고 해서, 이를 근대 자연과학에서 확립된 외재적 인과관계(상대성 이론적 인과론이라는 의미에서)와 대립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내재적, 외재적이라는 용어를 상식적인 관점에 따라 잘못 이해하는 것일뿐더러, 자칫 전근대적인 자연학으로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다. 스피노자의 내재적 인과론은 갈릴레이 이후 확립된 상대론적 인과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를 동역학적 관점에서 발전시키려는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피노자 인과론의 쟁점은 외재적 인과론을 수용하면서 어떻게 각각의 물체들에게 내재적인 인과역량을 부여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있으며, 우리가 보기에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변용(affectio)과 연관(connexio)이라는 두 개념에서 찾아야 한다. 변용이라는 용어는 󰡔윤리학󰡕에서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고 존재론에서 인간학에 이르는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일관성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동안 주석가들에 의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연관—또는 연쇄(concatenatio)—이라는 개념은 빈도가 매우 드물긴 하지만, 스피노자의 용어법들이 대개 그렇듯이 매우 전형적이고 일관된 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개념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내재적 인과론이, 내면적 인과론 내지는 신과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수직적 인과론이라기보다는 유한 양태들의 외재적이고 무한한 변용의 인과연쇄를 통해 전개되는 인과론이라는 점을 밝혀줄 수 있다.

 

II.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

 

1. 초기 저작의 인과론

 

인과론과 관련하여 초기 저작과 󰡔윤리학󰡕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초기에 사용되던 스콜라철학적 용어법이 󰡔윤리학󰡕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며, 더 나아가 용어들이 상당히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초기 저작 가운데 인과론에 관한 용어법들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은 󰡔소론󰡕 1부 3장이다. 스피노자는 여기서 8가지 측면에서 작용인을 구분하면서 신이 어떤 원인인가를 밝히고 있다.

 

작용인을 여덟 개의 부분으로 나누는 게 관례적이므로, 이제 신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원인인지 탐구해보기로 하자.

 

1. 우리는 신이 그의 행위의 유출적 또는 생산적 원인(uytvloejende ofte daarstellende oorzaak/emanantive or productive cause)이며, 행위의 발생과 관련해서는 능동적 또는 작용적 원인(doende ofte werkende oorzaak/active or efficient cause)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를 한 가지로 취급하는데, 왜냐하면 이것들은 서로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2. 그는 내재적 원인(inblyvende oorzaak/immanent cause)이지 타동적 원인(overgaande oorzaak/transitive cause)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실행하지 자기 바깥에서 실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왜냐하면 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3. 신은 자유 원인이지 자연적 원인이 아니다. [...]

4. 신은 자기 자신을 통한 원인(oorzaak door zig zelfs/cause through himself)이지 우연적 원인(toeval oorzaak/accidental cause)이 아니다. [...]

5. 신은 그가 직접 창조한 결과들(물질 속의 운동 등과 같은)의 주요 원인이며, 여기에는 부차적 원인을 위한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차적 원인은 특별한 실재들로만 한정된다(신이 강한 바람으로 바다를 마르게 할 때라든가, 이와 유사한 자연 중의 다른 모든 특별한 실재들의 경우처럼). [...]

6. 우리의 앞선 증명들로부터 명백하듯이, 신만이 최초의 또는 창시적인 원인(eerste ofte beginnende oorzaak/first or initiating cause)이다.

7. 신은 또한 일반적 원인이지만, 이는 그가 상이한 실재들을 생산한다는 관점에서 그럴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신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결과를 생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8. 신은 무한하고 부동적인, 그리고 우리가 그가 직접 창조했다고 말하는 실재들의 가까운 원인(naaste oorzaak/proximate cause)이지만,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특수한 실재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원인(laaste oorzaak/remote cause)이다.(KV I 3 §2; G I 35-36)

 

“관례적”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과론에 대한 이러한 구분은 당대의 강단철학의 용어법들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피노자 자신의 관점에 따라 얼마간 변형된 것이다.[게루에 따르면 이는 Adrien Heereboord라는 레이든 대학의 철학교수의 󰡔논리학 해설󰡕(Hermeniea Logica)(1650)이라는 책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책은 그의 스승인 Franco Bürgersdijk의 󰡔논리학 개요󰡕(Synopsis Burgersdiciana)에 대한 해설이다. Gueroult 1968, p. 245-46의 주 7) 참조.] 게루에 따르면 이 구분법은 6가지 측면에서 독창적인데,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세 가지 점이다. 첫째, 스피노자는 여기서 이미 신의 내재성을 확립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재성은 “단지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존재 안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열이 불 안에 포함되어 있고 빛이 태양 안에 있듯이 결과가 원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모순에 빠지지 않고서는 하나 없이 다른 것을 정립할 수 없다는” 점까지 함축한다(Gueroult 1968, p. 250). 따라서 이는 󰡔윤리학󰡕에 나오는 내재적 원인 개념과 거의 동일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신을 자유 원인으로 규정하되, 이를 자연의 필연성과 대립시키지 않고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셋째, 강단철학자들이 기초로 삼던 아리스토텔레스식의 4원인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가 작용인만을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용어법들 중 󰡔윤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 자유 원인과 떨어져 있는 원인/가까운 원인뿐이며, 나머지 용어들은 더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떨어져 있는 원인/가까운 원인은 󰡔소론󰡕보다 훨씬 더 내재적인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가령 우리가 뒤에서 살펴볼 󰡔윤리학󰡕 1부 정리 28의 주석의 용법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윤리학󰡕의 용어법은 󰡔소론󰡕보다 훨씬 더 단순해졌을 뿐만 아니라, 원인의 내재성을 좀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2. 󰡔윤리학󰡕에서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

 

따라서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1부 정리 1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타동적 원인이 아니다(Deus est omnium rerum causa immanens, non vero transiens).[이와 거의 동일한 표현이 73번째 편지에도 나온다. “왜냐하면 저는 신은 만물의 타동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G IV 307.]

 

이 정리는 보통 스피노자의 인과론이 내재적 인과론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전거로 많이 활용된다. 그런데 이 정리에서 좀더 주목해야 할 점은 뒷부분에 나오는 “타동적 원인”의 의미가 무엇이며, 내재적 원인과 타동적 원인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곧 신이 내재적 원인이라면, 따라서 신과 양태들 사이의 관계가 내재적 인과관계라면, 반대로 양태들, 특히 유한 양태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타동적인 인과관계인가? 만약 그렇다면, 스피노자에게는 신과 양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내재적 인과관계와 유한 양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타동적 인과관계라는 이중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윤리학󰡕 어디에서도 유한 양태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타동적 인과관계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사실 “타동적 원인”이라는 표현은 󰡔윤리학󰡕에서 단 두 차례, 곧 1부 정리 18과 그 증명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타동적 인과관계의 원래 의미, 곧 “타동적 원인은 자기 바깥에 결과들을 생산하는 것이다”(causa transiens est quae producit effectum extra se)라는 의미를 생각했을 때, 만약 유한 양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가 타동적 인과관계라면, 유한 양태들은 자신들이 지닌 원인으로서의 지위를 어떤 타자, 곧 신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신은 정리 18에서 내재적 원인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또는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데카르트의 신과 마찬가지로 피조물 또는 유한 양태들의 인과적 힘을 독점하는 존재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Clatterbaugh는 바로 이런 관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특수한 실재들의 영역에서는, 각각의 특수한 실재의 과거와 미래에까지 미치는 신을 넘어서는 원인들의 무한한 연쇄가 존재한다. 데이비드 사반(David Savan)이 지적하듯이 “각각의 유한 양태는 이러한 두 가지 인과적 축의 교차(intersection다).” 이러한 “교차”를 의미 있게 생각하려면, 신과 창조의 관계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점은 데카르트의 협력론과 아주 강한 유사성을 띠어야 한다.”(Clatterbaugh 1999, p. 136)] 또한 이는 스피노자가 연장에 내적인 역량을 부여하고 운동과 정지를 연장의 무한 양태로 만들어, 자연 안에서 작용하는 힘을 자연에 내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과 어긋날 수밖에 없다.[스피노자는 연장을 신의 속성 중 하나로 격상시킴으로써 데카르트와 달리 연장을 단순한 “길이, 넓이, 깊이”가 아니라 “연장하는 행위”(actum extendendi)(PPD II D1)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연장에 독자적인 역량을 부여할 수 있었다. 취른하우스(Tschirnhaus)에게 보내는 81번째 편지에서 스피노자가 명시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스피노자에서 연장의 지위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Jaquet 2004; Matheron 1998 참조.] 따라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타동적 원인이라는 개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과 내재적 원인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해명되지 않는 한, 스피노자의 인과론을 정확히 해명하는 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3. 타동적 원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윤리학󰡕 1부 정리 28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심적인 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윤리학󰡕 1부 정리 28이다. 왜냐하면 여러 주석가들은 이 정리에서 타동적 인과성이 예시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정리가 타동적 인과성을 제시한 것이라면, 스피노자 철학에는 신과 양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내재적 인과성과 유한 양태들 간에 성립하는 타동적 인과성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인과성이 존재하는 셈이 되며, 그 경우에는 이 두 종류의 인과성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 해명하는 것이 주석가들의 주요 과제가 된다. 반면 우리가 이를 타동적 인과성을 예시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정리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명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 제시된 인과성이 내재적 인과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역시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1부 정리 28을 살펴보자.

 

모든 독특한 실재, 곧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모든 실재는(Quodcumque singulare, sive quaevis res, quae finita est), 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nisi ad existendum et operandum determinetur ab alia causa),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될 수 없으며, 이 후자의 원인 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될 수 없으며, 이처럼 무한하게 나아간다(et sic in infinitum).

 

이는 얼핏 보기에는 하나의 유한양태가 다른 유한양태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는 관계가 무한한 수의 유한 양태에 이르기까지 계속 선형적으로 지속되는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장 탁월한 스피노자 연구자들까지도 이 정리를 일종의 “악무한”의 한 형태, 곧 유한한 실재들 사이에 존재하는 외재적 인과론 내지 타동적 인과론의 전형적인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이러한 경향은 Joachim 1901, pp. 70 이하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게루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Gueroult 1968, pp. 338 이하 참조). 게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특한 실재들은 이중의 필연적 규정―하나는 신에게 유래한 규정(정리 26-27)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 원인들에서 유래한 규정(정리 28)―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규정되어 있다.”(같은 책, p. 340) 그리고 매우 미묘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들뢰즈(Deleuze 1969)나 마슈레(Macherey 1992b; 2010)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는 (1) 여기서 나타나는 외재적 인과론과 다른, 좀더 본질적이고 좀더 동역학적인 인과론의 모델을 찾아내고 (2) 이러한 인과론의 모델에 기초하여 외재적 인과론, 타동적 인과론의 한계를 평가하는 게 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견해가 이런 관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일시적 연쇄의 각각의 고리는 독특한 실재의 한 관념이며, “각각의 독특한 실재는 [...]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어야 하며, 이 후자의 실재 역시 다른 실재에 의해 규정되어야 하고, 이처럼 무한히 나아간다.”(󰡔윤리학󰡕 1부 정리 28) 이러한 “무한히”는 하나의 포괄적이고 일관된 전체를 지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재적인 관념들의 연쇄의 무한성은 전혀 상이한 종류의 것이다. [...] 내재적 연쇄의 무한성은 실재의 포괄적이고 통합된 측면을 지시한다. [...] 내재적 연쇄는 하나의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은 그의 속성들의 양태들인 모든 특수한 실재의 원인이라는 점을 가리킨다. [...] 타동적 인과 연쇄의 고리들은 기껏해야 원인들의 집계(aggregate)를 구성하는 반면, 내재적 인과 연쇄의 고리들은 일관된 총체적 체계를 구성한다.(Gilead 1990, p. 456)

 

흥미 있는 것은 이런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1부 정리 25의 주석의 의미도 이원론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마디로 말하면, 신은 자기원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또한 만물의 원인이라고 말해야 한다(ut vero dicam, eo sensu, quo Deus dicitur causa sui, etiam omnium rerum causa dicendus est).(E I P25s)

 

다시 말해 그들은 “신은 자기원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또한 만물의 원인”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타동적 인과연쇄와 구분되는 내재적 인과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인용한 주석가는 이 점에서도 전형적이다. 그는 1부 정리 25의 주석에 준거하면서 “내재적 연쇄는 하나의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은 그의 속성들의 양태들인 모든 특수한 실재의 원인이라는 점을 가리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타동적 인과연쇄는 무엇인가? 내재적 인과관계가 이미 신과 만물의 인과관계를 포괄한다면, 이는 신과 무관한 연쇄란 말인가? 다시 이를 해석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첫 번째 부류는 이러한 인과연쇄를 가상이나 착각에 불과한 것으로, 곧 인간의 유한한 인식의 결과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요아힘과 같은 관념론적 입장의 해석가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관점이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인과연쇄를 단순한 가상이나 착각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진정한 인과관계, 신와 양태들 사이의 내재적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외재적이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신과 양태들 사이의 내재적 인과관계가 양태들의 본질의 질서를 표현한다면, 이러한 타동적 인과관계는 양태들, 특히 유한 양태들 사이의 실존의 질서를 표현한다. 들뢰즈나 마슈레의 저작 일부에서 이런 입장을 엿볼 수 있다.[Deleuze 1969, pp. 179 이하; Macherey 2010, 252-53쪽 이하.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모든 유한 양태는 무한한 원인들의 연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유한한 규정이 자신의 내재적 원인―이는 실체 자체다―의 무한한 역량에 의해 무한한 동시에 자신의 타동적 원인들의 무한한 다양성에 의해서도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같은 책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구절과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무한자와 유한자의 절대적 동일성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무한자와 유한자는 그 사이에 대응이나 종속 관계만 확립될 수 있는 두 개의 독립적인 질서가 아니다. 이 둘을 분리시키는 상상의 추상적 관점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것 없이는 나머지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것들은 각자의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규정 개념에 대한 헤겔 식 해석은 마치 변용들은 실체의 불변적 본질에 비한다면 작위적인 실존자들에 불과하다는 듯 실체와 변용들을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해석은 유지될 수 없다.”(같은 책, 261쪽) ]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내재적 인과관계의 내재성을 부단히 강조하면서도 결국 진정한 인과관계로서 내재적 인과관계와 대립 상태에 있는 외재적 인과관계를 설정하며, 이렇게 해서 스피노자의 인과관계를 이원론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 이는 스피노자가 자신의 자연학 및 인과이론에서 전제하고 있는 근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의 관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결과인 것 같다.[주지하다시피 상대론적 인과론이란 갈릴레이(및 데카르트)가 정식화한 등속직선운동 개념에 입각하여 뉴턴이 제시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완성한 것을 의미한다. 관성원리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외부의 작용이 없는 한 계속해서 등속직선운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외부 원인이 작용할 경우 이러한 운동은 방해를 받아 직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운동의 방향이 변화된다. 직선에서의 이러한 일탈은 마치 직선에 접한 원의 곡선과 같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뉴턴은 계속해서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힘” 개념을 도입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식화한 바 있다. “뉴턴의 목표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우리 행성계 천체들의 한 순간의 운동 상태가 알려지면 이 천체들의 운동을 완전히 계산해낼 수 있는 단순한 규칙이 있는가? [...] 뉴턴의 운동 법칙은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질점의 운동 상태가 외력의 영향 하에서 무한히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변화하는가? 뉴턴이 모든 운동에 적용되는 공식에 도달한 것은 무한히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것을 고려함으로써(미분법칙) 이루어진 것이었다.” Einstein 2003, 303-304쪽(강조는 인용자) 스피노자는 아직 뉴턴적인 의미의 “힘” 개념을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뉴턴-아인슈타인적인 의미의 상대론적 인과론을 정식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정식화한 등속직선운동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이 점에 대해서는 Lécrivain 1977; 1978 참조),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내재적 인과론을 정식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갈릴레이가 발견해낸 등속직선운동, 곧 관성 원리와 스피노자의 내재적 인과론을 대립시키는 것은 스피노자 인과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

 

III. 변용과 연관: 1부 정리 28의 인과론적 의미

 

1. 󰡔윤리학󰡕 1부 정리 28 해석의 쟁점

 

다시 1부 정리 28로 돌아가 보면, 여기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독특한 실재들의 인과연쇄가 신과 유한 양태들 사이의 내재적 인과연쇄와 다르지 않다는 점은 1부 정리 26에 의해 간단히 입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스피노자는 “어떤 것을 작업하도록 규정된 실재는 필연적으로 신에 의해 그렇게 규정된다(a Deo necessario sic fuit determinata)”고 말하기 때문이다. 곧 정리 26은 “실재들이 작업하도록 규정하는” 원인을 신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정리 28에서는 이 동일한 실재들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하는 원인을 다른 독특한 실재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곧 정리 28에 나오는 무한하게 많은 독특한 실재들이 적어도 다른 실재들이 실존하고 작업하는 것을 규정하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신과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1부 정리 26의 증명에 따르면 이처럼 “실재들이 그에 따라 어떤 것을 작업하도록 규정된다고 이야기되는 것(Id, per quod res determinatae ad aliquid operandum dicuntur)은 필연적으로 실정적인 어떤 것(quid positivum)이다.”(강조는 인용자) 따라서 정리 28에 나오는 각각의 독특한 실재들은 단순한 착각이나 가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내재적 인과관계 바깥에 있는 타동적 원인들로 간주할 수도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개의 연구자들만이 아니라 게루나 들뢰즈, 마슈레 같은 스피노자 연구의 대가들도 이 간단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서 1부 정리 28에 제시된 인과관계를 타동적 인과관계로 간주하고, 그리하여 스피노자의 인과론을 내재적 인과론과 타동적 인과론이라는 이중적 인과론으로 해석하는 것인가? 이는 너무 안이한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 주석가들의 이런 경향은 1부 정리 24 및 그 따름정리의 내용을 본질과 실존의 이원론의 방향에서 해석하는 데서도 유래하지만,[들뢰즈는 정리 24와 정리 25에 근거하여 양태의 본질이 양태의 실존과 구분되는 본질만의 독자적인 실존을 지니고 있다는 특이한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Deleuze 1969, pp. 174 이하) 이는 들뢰즈의 스피노자 독해의 라이프니츠주의적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정리 24와 정리 25는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비창조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반증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니며, 이를 본질과 실존의 이원론적 사고를 위한 지주로 활용하는 것은 스피노자 철학의 고유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한 근대 물리학이 이룩한 상대론적 함의를 과소평가하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갈릴레이와 데카르트가 제시하고 있는 관성 원리를 단순히 기계적인 인과”을 나타내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는 물체들이나 유한 양태들은 자기 내부에 인과적인 힘을 지니지 못한 채 외부 원인의 작용에 따라 타동적이거나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유한 양태들 사이의 인과성을 제시하고 있는 1부 정리 28이 타동적 인과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스피노자 철학이 이러한 인과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석가들이 될 수 있는 한 1부 정리 28의 의미를 축소하고 그 대신 신과 유한 양태들 사이의 내재적 인과론을 부각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스피노자 철학과 근대 물리학의 이론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며, 내재적 인과론이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운동의 상대성 원리 이전의 자연학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신과 유한 양태들 사이의 인과론과 유한 양태들 사이의 인과론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해석하지 말고, 또 이들 각각을 내재적 인과론과 타동적 인과론으로 해석하지도 말고, 오히려 둘 사이의 필연적 연관성, 더 나아가 동일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2. ‘자연학 소론’

 

이를 위해서는 우선 1부 정리 28이 운동의 상대성 원리나 관성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피노자는 이미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정리 14와 15에서 관성 원리를 간결하게 제시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동역학적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시도한다.[정리 14는 관성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에서 속도의 지속을 가리키며, 정리 15는 운동 방향의 지속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철학원리󰡕에서부터 이미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의 운동학적 관점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동역학적인 관점에서 변형시키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가 2부 정의 8의 두 번째 논평에서 운동과 힘을 분리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레크리뱅은 이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 “운동 개념과 힘 개념의 분리는 갈릴레이 작업의 엄격한 연장선상에서 힘은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으로 운동의 원인으로 간주될 수 없으며, 운동을 변용시키는 변화들, 곧 가속, 감속, 방향의 변화의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보여준다.”(Lécrivain 1978, p. 113―강조는 인용자)]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원리󰡕는 데카르트의 자연학에 대한 해설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스피노자 자신의 관점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스피노자의 독자적인 관점을 파악하려면 󰡔윤리학󰡕 2부의 「자연학 소론」을 검토해봐야 한다.

스피노자는 보조정리 3과 그 따름정리에서 1부 정리 28에 나오는 인과성 모델을 관성 원리와 결부시켜 논의한다. 우선 보조정리 3은 1부 정리 28을 운동과 정지의 관점에서 다시 서술한다.

 

보조정리 3

운동중이거나 정지해 있는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ab alio) 정지하거나 운동하도록 규정되었어야 했으며, 이 다른 물체 역시 다른 것에 의해 운동하거나 정지하도록 규정되었고, 이처럼 무한하게 나아간다(et sic infinitum).

 

이 정식과 1부 정리 28의 유일한 차이점은, 여기서는 운동 중이거나 정지해 있는 물체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고찰되는 반면, 1부 정리 28에서는 독특한 실재로서의 유한 양태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고찰된다는 점이다. 곧 여기서 고찰되는 물체들은 부분들을 갖고 있지 않고 부분들 사이의 관계도 갖고 있지 않은 단순 물체들이다.[이는 실제로 단순 물체들, 또는 “가장 단순한 물체들”이 실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물체들은 복합 물체, 곧 개체가 운동과 정지의 관점에서 추상적으로 고찰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물체들은 운동이나 정지와 같은 한 가지 상태로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이는 운동의 상대성 원리나 관성 원리와의 관련성을 좀더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물체들이 단순하다는 것, 곧 이 물체들이 한 가지 상태로만 특징지어진다는 것은 이 물체들은 아직 자신의 본질, 자신의 내면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물체들은 외부의 물체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 물체들은 그 자체로 외재성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물체들은 운동하고 있느냐 정지하고 있느냐에 따라서만 구분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릴레이가 확립한 운동의 상대성 원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물체의 운동이나 정지는 그 본성에 따라 규정되지 않고 다른 운동체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규정된다는 점에 있다. 운동은 어떤 물체의 본성과는 무관한, 다른 운동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 속에서만 식별될 수 있다(동일한 운동도 우리가 어떤 좌표계를 택하느냐에 따라 운동하거나 정지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체계에 관한 대화󰡕(1632)에 나오는 둘째 날 대화에서 살비아티(Salviati)와 심플리키오(Simplicio), 사그레도(Sagredo) 사이에서 전개되는 논쟁의 핵심 쟁점이 바로 이것이다. Galilei 1967, pp. 116 이하 참조. 이에 관한 좋은 주석으로는 Balibar 1983 및 Koyré 1966 참조.] 이런 의미에서 운동은 물체의 본성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외재적이며, 또 다른 운동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관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조정리 3에서 제시되는 인과관계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 특성, 곧 운동의 외재성과 관계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1부 정리 28의 독특한 실재들은 이런 의미의 단순한 물체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본질을 지니며 자신을 합성하는 부분들도 지닌 존재자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조정리 3으로부터 1부 정리 28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몇 가지 측면을 더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자연학 소론」에서 개체, 곧 복합 물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자.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개체를 정의한다.

 

같은 크기를 지니고 있거나 크기가 서로 다른 일정한 수의 물체들이 다른 물체들에 의해 제약되어/압력을 받아(coercentur) 서로 의지할 때, 또는 그것들이 같은 속도나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서로 전달할 때, 우리는 이 물체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단 하나의 물체 또는 개체를 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개체는 물체들 사이의 이러한 연합에 의해 다른 모든 개체들과 구분된다.(G II 99-100)

 

이 정의에 대한 좀더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이 정의의 핵심 논점만 추출해보자. 이 정의에 따르면 개체는 부분들로 합성되어 있는 복합 물체이며, 개체의 개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전달하는”(ut motus suos invicem certa quadam ratione communicent) 부분들이다. 곧 개체의 개체성은 단순히 부분들로 합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운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또는 보조정리 5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동과 정지의 관계”(motus & quietus rationem)를 지닌다는 점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복합 물체들이나 독특한 실재들 일반의 개체성은 부분들이 서로 주고받는 운동과 정지의 어떤 관계에 의거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체들 자체도 또한 서로 일정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를 맺게 되면,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개체의 부분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러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는 폐쇄적인 관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학 소론」의 요청 3에 따르면, 물체를 이루고 있는 개체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인간 신체의 경우에는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에 의해 변용되기 때문이다.[“요청 3. 인간 신체를 합성하는 개체들, 따라서 인간 신체 그 자체는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에 의해 변용된다.”] 또한 요청 4에 따르면 개체는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물체들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다른 물체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되기 때문이다.[“요청 4. 인간 신체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매우 많은 수의 다른 물체들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은 말하자면 인간 신체를 지속적으로 재생시킨다(a quibus continuo quasi regeneratur).” 예컨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나 음식물을 통해 양분을 섭취하는 것 등이 이것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개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운동과 정지의 관계는 처음부터 외부 물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외부 물체들과의 관계가 개체의 보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개체의 개체성, 곧 개체의 내면성은 항상 이미 외재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복합 물체인 개체들의 본질을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관계가 처음부터 외부 물체들과의 관계를 함축한다면, 보조정리 3에서 본 것처럼 가장 단순한 물체들의 차원에서 성립하는 운동의 외재성과 연관성은 여전히 복합 물체들의 차원에서도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3. 변용과 연관의 인과론

 

여기서 다시 1부 정리 28로 돌아가서, 지금까지의 논의에 근거하여 그것이 제시하는 인과관계의 특성을 검토해보자. 1부 정리 28에 제시된 인과관계는,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외재성과 연관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독특한 실재는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서만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이 후자의 독특한 실재 역시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실재들 사이의 인과관계는 외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독특한 실재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하나의 독특한 실재의 실존과 작업을 규정하는 원인 역시 다른 원인에 의해 항상 이미 규정되어 있는 한에서 선형적일 수 없으며, 또한 폐쇄적인 것도 아니다.

1부 정리 28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사람은 에티엔 발리바르다. 그는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였던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이 20세기 중반 전기공학 이론을 “변조”(modulation) 이론으로 재구성한 데서 실마리를 얻어, 스피노자의 인과이론을 변용의 인과이론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의 핵심 논점은 󰡔윤리학󰡕 1부 정리 28을 비선형적인 인과도식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그는 1부 정리 28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실존하기는 작업하기(opérer), 또는 다른 실재들에 대해 활동하기(agir)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작업 자체는 항상 필연적으로 다른 실재 또는 원인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원인 짓기”는 다른 사물이 작업하는 (또는 결과를 생산하는) 방식 자체를 변양시키는 (또는 시몽동이 신호이론의 어휘를 빌려와서 말하듯이 “변조하는”) 사물의 작업이다. 이 때문에 원인들의 무한한 연관은 독립적인 선형적 계열들의 추가나 원인과 결과의 계보(A는 B를 “원인 짓고”, B는 C를 “원인 짓고”, C는 ... )가 아니라, 독특한 변조들의 무한한 연관망에 의해서만, 또는 변조하면서 동시에 변조되는 활동들의 동역학적 통일성에 의해서만 제대로 표상될 수 있다(어떤 A의 작업에 대한 B의 변조 활동은 어떤 C들의 활동에 의해 변조되며, C들은 어떤 D들의 활동에 의해 또한 변조되고 ...).(Balibar 2005, 216-17쪽)[이는 Balibar 1996, 217쪽, 주 135)에 나오는 도식을 통해 좀더 간명하게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1부 정리 28이 제시하는 스피노자의 인과론 도식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위상학은 비선형적이다. 곧 다수의 항들의 상호작용은 여기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 활동의 “기본 구조” 안에 항상 이미 함축되어 있는 원초적인 것이다. 둘째, 이 위상학을 구성하는 “연관의 질서”(ordo et connexio 또는 concatenatio)는 원자적인 항들(이것이 대상들이든 사건들이든 아니면 현상들이든 간에) 사이에서가 아니라, 사실상으로는 항상 개체들인 독특한 실재들(res singulares) 사이에서 확립된다.(Balibar 2005, 215-16쪽)

 

사실 1부 정리 28에 따르면 어떤 독특한 실재가 실존하고 작업하기 위해서는, 곧 원인으로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실재는 먼저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어야 한다. 예컨대 A가 원인으로서 작용하기 위한 조건은 A가 B의 결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A는 결과일 때, 오직 그 때에만 원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자연 안에는 절대적인 원인, 곧 어떤 무엇의 결과도 아니고 스스로 원인인 그런 존재자 내지 실재는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물론 자연 그 자체인 실체는 예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실체는 하나의 존재자나 실재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존재자나 실재도 절대적 원인일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는 인과 연쇄의 최초의 항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데, 왜냐하면 최초의 항은 정의상 결과 없는 원인, 다른 어떤 것의 결과가 아닌 원인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정리 28에서 제시하고 있는 연쇄는 선형적인 연쇄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연관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개념적으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스피노자의 인과론 개념은 일차적으로 연관의 인과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연관의 인과론이라는 말은 단순히 동어반복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인과론은 기본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 따라서 인과 연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관”(connexio 또는 concatenatio)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이 좀 강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1) 연관이라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개체들은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에서 독립하여 성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곧 관계들 이전에 미리 이러저러한 개체들이 존재하고 그 이후에 비로소 이 개체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은 관계들을 통해 성립하며 관계들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하고 존속할 수 있다. 연관의 인과론에서는 최초의 개별적인 항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으며, 항상 이미 (무한하게) 많은 원인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함축하는 반목적론의 또 다른 측면이다. 왜냐하면 목적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창조나 기원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에서 이러한 기원이나 시초는 결과 없는 원인, 최초의 원인이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따라서 역으로 목적론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원이나 시초를 전제하지 않아야 하며, 더 나아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선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2) 연관의 인과론은 또한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함축한다. 「자연학 소론」의 요청 3이나 요청 4가 잘 보여주듯이 개체는 관계를 통해 성립하며, 개체의 내면성을 이루는 관계들은 외부의 물체들이 지니고 있는 관계들로부터 계속 충원되고 대체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계들은 각각의 개체들의 본질을 형성하기 때문에, 각각의 개체가 지니고 있는 인과 역량, 가장 내밀한 개체의 본질은 항상 이미 외재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내재적 인과성과 외재적이거나 타동적인 인과성을 대립시키는 주석가들의 관점은 스피노자 인과론이 본질적으로 연관의 인과론이라는 점을 간과한 데서 비롯한다.

우리는 위에서 “A는 결과일 때, 오직 그 때에만 원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을 강조했는데, 이는 각각의 독특한 실재들이 지니고 있는 내적 본질 또는 내적 인과 역량의 원천이라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다. 물체의 역량, 독특한 실재가 지닌 인과역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곧 기초적인 관성 원리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자신이 수행하는 운동을 지속하고, 또 자신이 멈춰 있는 상태에서 계속 멈춰 있을 수 있는 힘이다. 따라서 기초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물체가 지닌 인과 역량은 사실 그것이 지닌 운동의 외재성 및 연관성과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외재성 및 연관성과 동일한 차원에 놓여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복합 물체의 수준, 독특한 실재의 수준에서는 달라지는가? 복합 물체 또는 독특한 실재가 자신의 고유한 내면성이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히 단순한 물체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단순 물체의 수준에서 자신의 운동을 지속하고 또 정지의 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데 반해, 복합 물체의 수준에서 이는 그 물체 자체의 내적 본질, 내적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합 물체나 독특한 실재 일반의 본질 내지 역량은 바로 그 물체의 부분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운동과 정지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이러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는 외부 물체들과의 끊임없는 재생을 통해 유지된다면, 사실 독특한 실재가 지닌 내적 역량은 여전히 외재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더 나아가 그것에 의해 증대하거나 감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특한 실재의 인과 역량의 원천은 외부와 대립하는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이루어진 내부, 내면성 속의 외재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반대로 데카르트는 신에 의해 실재들이 보존되는 방식과 실재들이 서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분리시킨다. 󰡔세계󰡕의 한 구절은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오직 신만이 세계 안에 있는 모든 운동―그것들이 실존하는 한에서, 그리고 직선적인 한에서―의 작자(auteur)다. 하지만 물질의 다양한 성향이 이 운동들을 불규칙적이고 곡선적인 것으로 만든다.”(AT XI 46)]

이러한 해석은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4부 정리 29 및 그 증명에서도 확인된다. 4부 정리 29에서 스피노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의 조건은 본성의 공통성에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어떤 독특한 실재는 우리의 행위 역량을 북돋울 수도 저해할 수도 없으며, 절대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실재가 우리와 아무런 공통적인 것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좋거나 나쁠 수가 없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은 증명을 제시한다.

 

어떤 독특한 실재, 따라서(2부 정리 10의 따름정리에 따라) 인간이 실존하고 작업하는 역량은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서만 규정되는데(1부 정리 28에 따라), 이 다른 독특한 실재의 본성은(2부 정리 6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 인식되게 해주는 것과 동일한 속성에 의해 파악되어야 한다.(강조는 인용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독특한 실재의 역량은 다른 독특한 실재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문장이다. 바로 1부 정리 28에 준거하는 이 문장은 1부 정리 28에서 제시된 인과연쇄가 일체의 힘을 결여한 순수하게 타동적인 인과론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IV. 맺음말: 스피노자 인과론의 윤리적 함의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스피노자의 인과론을 내재적 인과론과 타동적 인과론으로 분리해서 다루는 주석가들의 공통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그들이 스피노자에서 변용과 수동성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사실 변용은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활용되는 스피노자 철학의 근간 개념 중 하나다. 이 개념은 󰡔윤리학󰡕 1부에서는 양태, 따라서 독특한 실재들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는 일의적으로 규정되기보다는 주목할 만한 이중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어떤 경우에는 변용들이 지니는 의존성, 따라서 수동성을 부각시키며, 반대로 다른 경우에는 변용들을 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따라서 그것이 지닌 능동성, 또는 적어도 작용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가령 전자는 1부 정의 5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양태를 실체의 변용들로, 곧 다른 것 안에 있으며, 이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으로 파악한다.”(E I D5) 또한 후자의 용법은 1부 정리 25의 따름정리에서 볼 수 있다. “특수한 실재들은 신의 속성들이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신의 속성들의 변용들 또는 양태들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이중성은 변용의 동사적 형태로는 “변용되기”(affici)와 “변용하기”(afficere)로 표현된다. 변용되기가 다른 개체들에 대한, 타자들에 대한 개체의 의존을 표현한다면, 변용하기는 각각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대해 행사하는 작용, 영향력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가 이 개념을 통해 양태들의 역량의 형성과 증대/감소의 문제를 사고한다는 점이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4부 정리 29의 증명에서 잘 나타날 뿐만 아니라, 2부 정리 14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수의 실재들을 지각할 수 있는 소질을 지니고 있으며(apta est plurima percipiendum), 그 신체가 매우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으면 있을수록 이러한 소질은 더욱 커진다(eo aptior quo ejus corpus pluribus modis disponi potest).

 

증명에서 요청 3과 요청 6에 준거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자연학 소론」의 결론에서 직접 따라 나오는 정리다. 이 정리가 첫 번째로 지적하는 것은 매우 많은 실재들을 지각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소질이나 능력은 신체가 매우 많은 방식으로 배치되는 능력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곧 신체가 외부 물체들로부터 많은 방식으로 변용되고(요청 3) 이를 통해 얻은 변용의 역량으로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을 변용하고 배치할 수 있게 되면(요청 6), 그만큼 정신의 지각의 능력도 증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의 능력은 신체의 능력에 비례하며, 신체의 능력은 변용되는 능력과 변용하는 능력의 증대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신의 지각 능력과 신체의 변용 능력이 스피노자에게는 양태의 인과 능력을 형성한다. 따라서 게루나 들뢰즈, 마슈레를 비롯한 해석가들이 사고하듯이 유한 양태들의 역량은 타동적 인과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신과의 내적 인과론을 통해 양태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증대/감소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과론을 이원적으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은 이러한 변용을 곧 수동성과 같은 것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변용 그 자체는 수동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수동성과 능동성으로의 분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인 존재론적, 인식론적 범주임에도 불구하고, 타자에 의해 변용된다는 사실을 수동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역으로 능동성은 타자에 의해 변용되지 않는 것으로, 곧 타자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사고될 수밖에 없으며, 유한 양태들이 지니는 인과 역량 역시 독특한 실재들 사이의 변용과 무관한 관계, 곧 (양태들과 독립해 있는)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그들은 이것이 내재적 인과론의 의미라고 이해한다)를 통해서 획득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스피노자의 인과론이 근대 물리학의 이론적 핵심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의 인간학 및 윤리학의 특징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왜냐하면 능동성과 수동성 또는 적합성과 부적합성은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윤리학의 핵심 범주들인데, 이 범주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변용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변용을 수동성과 동일시하게 되면, 끊임없는 변용하기-변용되기의 관계 속에서 실존하는 인간의 삶 자체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인식의 형성이 가능하고 또 실존 조건들에 대한 능동적인 개조가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스피노자를 숙명론자나 신비주의자로 해석하는 대개의 관점들은 바로 여기서 생겨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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