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A님의 "민족과 국민"

최원 형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 말했듯이 최원 형 생각은 잘 알겠는데, 저는 최원 형 글의 몇몇 대목이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아마 단상을 정리하는 수준의 이야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발리바르의 시민권 이론이나 국민 국가론에 대한 해석도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구요. nationaity를 민족성으로 번역한다든가, natin state를 민족 국가로 옮기는 것에서는 더 그렇군요. 이전의 한두 차례 문제제기를 포함하여 최원 형 글에 답변하려면 아마 좀 긴 논의가 필요할 텐데, 언제 기회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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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해에 대한 찬반 여부야 어쨌든, 이런 글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관된 논지를 갖추고 있는 지식인은  

최장집 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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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4186 

 

최장집 "신보수화의 레일 놓은 건 DJ와 盧"
"더이상 경제관료에 의존 말라", "하토야마 벤치마킹하라"
 

2009-09-01 16:02:56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1일 야당들에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서민-중산층에게 지지받을 수 있는 대안정당으로 전환을 촉구, 논쟁을 예고했다.

최장집 "보수화의 레일 깔은 것은 DJ와 盧"

최 명예교수는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진보개혁입법연대(대표 조승수 의원) 초청 강연에서 행한 특강을 통해 "현재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방안 만들기에 급급하다"며 "앞 지도자를 승계하는 데 경쟁하고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향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정치는 책임정치가 핵심이기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뭘 잘했고, 뭘 잘못했는지 객관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민주정부의 부동산, 노동 정책 등을 "신자유주의적 정책레짐(틀)"으로 규정한 뒤 "이른바 민주파 정부 10년 동안에도 관료들에 의해 사회경제적 보수화의 레일이 깔렸는데 보수를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가 그 레일에서 더 보수적으로 가는 것은 분명한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명박-한나라당 정부는 지난 10년간 진보개혁세력의 민주정부가 실패한 결과로 등장했다"며 "지금 이명박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앞 시기에 진보개혁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부운영의 미숙, 무능력이 보수정부의 등장을 불렀다"고 꼬집었다.

그는 "촛불시위, 두 전직 대통령 사망 등 큰 정치적 사건들이 생긴 과정에서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성찰하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 비판만이 강해지는 경향이 일어났다"며 "보수적 정책에 대한 대안없이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을 진보로 인식하는데, 이명박 정부와 진보개혁세력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면 반드시 보수화 경향이 나타난다"며 "(그런 점에서 현재의) 보수우위 양당체제는 진보개혁세력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MB정부, 파시즘 아니다"

최 명예교수는 MB정부 성격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정부나 파쇼정부로 보지 않는다"며 "지금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등 기본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을 반통일수구세력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예컨대 남북관계에서 반평화세력이라 함은 전쟁을 원한다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다. 오바마 등장 등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햇볕정책의 레일 위로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한나라당만 해도 많이 변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와는 다른 정당이 됐다"며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누구냐는 경험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나라당이 보수세력을 다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오히려 조중동이 한나라당 이상의 정당으로 기능하고 있다. (조중동이) 원외 정당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은 조중동보다 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행보 한 걸 두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로 고착될 것이라는 것은 선입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세가 회복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악으로 규정하면 기대수준을 너무 낮춰 조금만 뭘 잘하더라도 평가를 크게 높여버릴 수가 있다"라며 과도한 적대적 개념 정의가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더이상 경제관료들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최 명예교수는 서민-중산층 정당을 표방하는 대안 정당의 나아갈 길로 민주정권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경제관료에의 의존 탈피, 노동 있는 민주주의 등을 제시했다.

그는 "보수우위 양당체제가 굳어지고 투표의 보수 경향화 현상도 나타난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고 볼 순 없다. 진보, 중도, 보수의 비율이 다른 나라들하고 비슷할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 확대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더 진보적인 면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에 대해 "제1야당인 민주당이 좀 더 좌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차이를 갖는 대안정당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보수정당체제에 실망한 시민들이 야당 지지로 되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생활세계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이슈가 안되는 것이 한국정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며 "시민권의 개념 속에 노동의 문제가 들어와야 정치변화나 정당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노동 있는 민주주의, 경제관료 중심 정책운영의 탈피, 재벌중심 성장정책의 변화 등을 담지 않는다면 정책개발이라는 것은 권위주의적 온정주의를 지속하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집권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가 지난 27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보면 첫 문장이 근본적 시장중심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 폐해 비판과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춘 하토야마 전략을 벤치마킹하라는 주문인 셈.

"민주대연합은 억압적 담론"

한편 최 명예교수는 민주당이 제시한 민주대연합론을 "억압적 담론"이라고 비판한 뒤, "현 보수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대동단결론은 이해관계를 억압하기 쉽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차이를 대표하는 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뒤, "여러 당으로 구성된 야당블록을 형성해 여기서 진보개혁세력의 역할이 커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며 광의의 대연합을 주문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자민당식 장기집권 가능성에 대해선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라며 "보수진영이 장기적 헤게모니를 쥐고 나갈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한국 국민들의 성향이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투표를 통한 반복적 정권교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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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올리는 김에 현재 번역하고 있는 중인 에티엔 발리바르의 또 다른 책에 수록된  

글을 한 편 올립니다.  현재 번역을 다 마치고 교정을 보면서 해제를 쓰고 있는 책은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 

라는 책이고, 이번에 올리는 글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정치체에 대한 권리Droit de cité}, PUF, 2002라는 

책입니다. 그냥 {정치에 대한 권리}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두 번째 책은 첫번째 책보다 분량이 다소 적긴 하지만, 첫번째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글들이 

수록돼 있고, 짧지만 감동적인 글도 몇 편 수록돼 있어서, 저로서는 아주 좋아하는 책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도 비교적 짧지만 아주 풍부하고 깊은 함축이 담긴 글인데, nation에 관해 기왕에 발리바르가 

쓴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문제제기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교정을 거치지 않은 글이니까 당연히 인용은 불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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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1995년 5월 18-20일 파리 국제철학대학에서 알제리 오랑 대학교 및 작가의 집과 공동 주최로 열린 “알제리-프랑스: 교차된 시선들” 콜로퀴엄 발표문. 󰡔리뉴Lignes󰡕 제 30호, 1997년 2월호에 발표되었다. ]


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이 콜로퀴엄 시작 이래 나는 우리가 계속 해서 이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 제목은 확실히 도발적인데, 왜냐하면 그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알제리] 독립에 대해 새삼 왈가왈부하고 싶어 할 것이며, 알제리 해방 전쟁의 의미와 효과를 “고쳐réviser” 보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지중해 이쪽과 저쪽에서 알제리와 프랑스는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두 나라는 진정으로 두 개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곧 각자는 진정으로 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알제리는 아직도 너무 “프랑스적”이거나 프랑스화되어 있고, 프랑스는 이미 너무 “알제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 유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때에 이런 도발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비가역적 이원성이라는 시공간적 또는 사회시간적 관념이 탈식민화의 표시가 아니라 역사의 지속적인 식민화의 표시라면,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재 알제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우리는 “프랑스 이전과 이후에”, “독립 이전과 이후에” 알제리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 묻게 되지만, 또한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알제리 이전과 이후에” 프랑스 인민의 역사 및 프랑스 국가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알제리와 함께, 그리고 알제리에 맞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 분명 항상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질문들을 아마도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는 셈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억압된 어떤 것의 복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우리 정세의 본질적 측면인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민화도 탈식민화도 소멸되지 않으며, 그와는 정 반대다. 그것들은 이러한 성찰의 소재 자체를 이룬다. 그것들은 교차된 시선들이라는 문제의 핵심에 존재한다. 우리가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각각 고립시켜서, 그리고 특히 서로 상반된 것으로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역사를 동일한 것으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더욱 더 그렇지 않다. 분명히 상호성은 이러한 극단적 양상들 중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호성이란 무엇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해, 프랑스가 자신 안에 품고 있는, 하지만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타자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탈동일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탈동일화 없이는 민주주의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 랑시에르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국적 때문에, 경계의 저쪽으로 넘어가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또한 알제리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알제리 자신의 필수적인 탈동일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질문해보거니와, 이러한 탈동일화하는 담론들―각자가 자신을 가두는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인정하려고 시도하는 그러한 담론들―은 하나의 유일한 담론 또는 적어도 하나의 공통의 담론, 공유된 담론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상호성의 양식을 찾아서는 안되고, 고통스러운 경험의 조건 자체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전적으로 일반적인 문제, 오늘날의 국제주의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데리다가 최근에 말했듯이 “새로운 국제주의”에 대해 말을 한다면, 이러한 국제주의의 언어는 무엇이 될까? 고전적인 국제주의는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간주된 “계급 의식”이라는 관념에 의지해 있었다. 다른 이들―활동가들이든 지식인들이든 간에―은 모든 인민에게 공통적인 언어를 만들어내려고 했다(이 언어는 의미심장하게도 에스페란토esperanto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메타 담론 내지 상위의 의식 또는 “중립적” 전달 매체를 구성하려는 이 모든 시도들은 다소간 완전하게 실패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시도들이 상황들 및 갈등들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국제주의가 언표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변하지 않고서는 국제주의는 전혀 생겨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 사이의 역사적 상호 관계 및 역사와 국민 형태가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미증유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시기가 강제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이 두 개의 이름이 가리키는 실재들 사이의 독특한/단일한 관계인 그 역사는 우리에게 “국민”이라는 개념 및 그 용법과 한계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알제리, 프랑스: 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라고 써놓고서 내가 처음에 하려고 한 것은 단지 한 가지 가설적 진리의 요소, 곧 소속의 격렬한 분열 속에 존재하고, 알제리의 “프랑스파Hezb I França”나 프랑스의 “마그레브의 침공” 같은 끔찍한 정식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러한 요소를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이 두 국민이 실은 하나를 구성할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둘을 이루는지 묻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국민 자신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 묻는 것(이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알제리에 대해서도 타당하다)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질문들은 프랑스와 알제리 관계의 독특성에 따라(비록 이러한 관계가 역사상 유일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늘날 객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이레)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하나 또는 두 개의 국민들”을 형성하며, 각각의 경우 이런저런 식으로 답변할 이유들이 존재한다. 르네 갈리소René Gallissot는 몇 년 전에 이런 시각에 따라 “프랑스ㆍ알제리 혼합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데, 이것은 흥미로운 정식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두 개의 역사적 실재의 비분리 내지 비배제를 표상하기 위한 또 다른 형상/도형figure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너무 연속적인 데다가 충분히 갈등적이거나 변증법적이지도 못한 “혼합체”라는 형상이 아니라 현대 기하학자들이 “프랙탈”이라고 부르는, 불완전 경계frontière non-entière라는 좀더 추상적인 형상이다.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국민적 소속의 차원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나 둘 같은 정수/완전수nombre entière에 의해 표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적어도 수적 알레고리라는 명목에 따라,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는 둘이 아니라 하나 반을 이룬다고 제시해야 한다. 마치 각자가 서로 더해질 때, [알제리와 프랑스 각자가] 항상 미리 타자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가 절대로 둘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그것들이 서로 공통의 인구를 공유하기 때문일 수는 없다(비록 이러한 공유의 사실이 중요하다 해도 그렇다). 현행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인정되는(곧 약간의 입법의 변화만으로도 쉽게 이중 국적자가 되거나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이중 국적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은 좀더 일반적인 질문에 준거한다. 사실 산수는 국민 형태 그 자체 또는 국민 국가 구성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통일성/단일성 및 몇 가지 동일화의 특징들 내지 “단선적 특징들traits unaires”(라캉)―문화적이거나 역사적인 지표이든 아니면 정초적 사건 등이든 간에―로부터 자신을 세거자신을 열거한다. 동시에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속하는” 개인들을 센다. 이것이 바로 국상학(國狀學)/통계학statistique, 곧 “국가 과학”의 기원인데, 이것은 처음에는 “정치적 산수”라고 불렸다. 좀더 근저에서 본다면, 국민들은 방금 우리가 길게 언급했던 주체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 자신에게 속한다고 간주되는censés(또 그렇게 집계되는recensés) 이들이 그들 스스로 하나를 이룬다고 셈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은 절대적으로 우회 불가능한 것이다. 이 현실은 역사 속에서 국가의 지배력을 표현해준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나는 결론에서 시민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 점에 대해 다시 다룰 것이다)는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양자 택일, 곧 국가의 관점을 택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하는 양자 택일에 그칠 수는 없다. 마치 국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국경들은 과거의 유물이라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적 셈/고려compte에서 출발하여 개인들 및 집단들을, 국가에 의해 개인들 및 집단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셈하는/고려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단순한 방식으로 “정수”의 방식으로 셈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불확실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곧 어떤 역사적 시기에 최대의 확실성이 추구되고 또 선언되는 곳에서 자주 이러한 확실성은 말하자면 “강압”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알제리의 현재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가능성, 착종의 가능성들과 마찬가지로 고립의 가능성들도 재검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기에 어떤 가능성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대신하여 부과되고, 또 왜 그러한 가능성들이 특권화되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알제리 전쟁” 기간 동안 제르멘 틸리옹Germaine Tillion은 미뉘Minuit 출판사에서 󰡔상호 보완적인 적들Les ennemis complémentaires󰡕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 표현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이 표현은 둘로 분할되는 통일체라는 관념과 하나로 융합되는 이원체라는 관념을 동시에 차례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또는 지중해 양쪽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전개 과정을 장기적으로 파악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 두 가지 관념을 차례대로 동시에 원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중해 연안 양 편의 모든 민족주의자들―이 표현을 순전히, 정치에서 국민의 우선성을 인정하고 방어하는 사람들로 이해하기로 하자―은 자연히 둘로의 분할이라는 형상을 특권화했다. 이들 모두가 동일한 진영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여기에서는 그들 중 몇몇 사람이 특히 흥미롭다. 우리는 1957년 출간된 레몽 아롱Raymond Aron의 󰡔알제리의 비극La tragédie algérienne󰡕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입장의 탁월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레몽 아롱이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그의 정치 철학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시기에도 국가와 국민의 필연적 동일성에 대한 옹호자였기 때문에, 그는 알제리와 프랑스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므로 필연적으로 “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국제주의자들은 가장 복잡한 입장, 심지어 가장 애매한 입장을 택했다. “이름 없는 전쟁”(베르트랑 타베르니에Bertrand Tavernier가 자기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던 표현을 다시 사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전쟁은―적어도 프랑스 쪽에서는―결코 “대외 전쟁”으로도 “내전”으로도, 곧 이원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통일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지칭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기간 동안, 이 질문은 분명히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결국 탈식민화는 하나라는 거짓된 단순성에서 둘이라는 거짓된 단순성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요컨대 이는 프랑스 전통 속에 아주 깊이 기입되어 있는 시민권과 국적의 등식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등식이 쇠퇴의 시작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불가능한 고립으로 되돌아갈 경우에만 상호 의존을 설립하거나 아니면 제도적 상호 삼투를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여러분은 왜 내가 전적으로 “국민”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지 당연히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역설적인 언표를 통해 답변해보겠다. 곧 그것은 이 용어가 가장 중의적인équivoque 용어이기 때문이다. 인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들 중 누구도 “알제리 인민”과 “프랑스 인민”은 하나를 이룰 뿐이라고 말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두 인민 각자에 고유한 내적 다양성을 더 잘 의식할수록 우리는 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알제리와 프랑스가 단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거나 형성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두 개의 인민이고 두 개의 국가이며, 그들 각자는 오늘날의 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상대적으로 주권적이고 독립적이다. 하지만 이 둘이 정확히 두 개의 국민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들이 (지중해 양쪽에서) 프랑스를 알제리로부터, 그리고 알제리를 프랑스로부터 절단하려고 하는, 곧 어떤 식으로든 완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1962년의 [알제리 해방] 과정을 “완수하려고” 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이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때문에 나는 늘 동일한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수정”하지 않고서도, 곧 미완의 탈식민화를 주장하지도 않고, 다소간 프랑스 제국의 환영들에 사로잡힌 “형성 중인 국민”으로서의 알제리라는 저 유명한 테제로 돌아가지 않고서도 이러한 상황을 사고할 만한 수단들을 지니고 있는가?

***

여기서 적절한 방식에 따라 몇 가지 질문들, 곧 사회정치적 범주들로서의 인민들 및 인민이라는 질문, 국가 헤게모니의 구성이라는 질문, 상호적 민족주의라는 질문 및 민족주의의 쌍이라는 질문을 검토해봐야 한다.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짧게, 세 가지 가설을 언급해보겠다.

첫 번째 가설은 프랑스-알제리 쌍은, 그것이 수반하는 동일시 및 경쟁 효과들과 더불어 프랑스-독일 쌍만큼이나 프랑스 현대사에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국적인 흔적이 띠고 있는 예외적 모습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 전체에서 국민이 지닌 제국적 모습의 지양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에는 1962년의 탈식민화가 이러한 쇠퇴를 낳는 데 그 자체로 충분했다고 믿지 않는다. 30여 년 뒤에 와서야 우리는 어떤 지점까지 서양 민족들의 구성에서 제국적 형식이 필수적이었는지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탈식민화 및 새로운 국민들에 대한 인정이 의미했던 바에 대해서도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에서 우리는 전면적 부인의 대상이 되었던 극단적 상황과 관계하고 있었다. 알제리 영토를 “프랑스의 구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프랑스는 자신을 구성했던 제국주의적 지배를 부인했으며 피지배자들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인했다. 이는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차별과 억압 형태들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알제리] 문화를 뿌리뽑으려는 시도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 제국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제국이 항상 아직도, 물리적ㆍ법적 분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국민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특히 프랑스 및 알제리의 사회 공간 속에서 행정적ㆍ문화적 정책들에 의해 다문화주의가 부인되고 억제되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에서] 현상은―식민화 자체가 그랬듯이―분명히 대칭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양쪽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알제리 쌍에서 무엇보다 국민과 제국의 이러한 상호 소속의 지속적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지배 장치domination으로 구성하게 되는 국민들의 제국주의의 제거할 수 없는 “흔적”을.

나의 두 번째 가설은 우리가 사후에, 한 세대 이후에 이러한 주권 형태의 붕괴의 결과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곧 비록 허구적인 방식이라 할지라도 제국들이 아닌 국민들은 존재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엉뚱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진정한 국민들이 제국 형태에서 해방되고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제3 세계라고 불렀던 새로운 국민들은 자신들을 반제국적인 국민들로 구성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 국민들 역시 그 자신들의 수준에서, 심지어 [이전보다] 축소된 공간에서조차 제국주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모면하지 못했다. 알제리 제국주의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전의 식민주의적 국민들의 경우는 자신들 내부에서 종족적ㆍ문화적 차별 형태들을 계속 영속시켜 왔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세계적인 차원의 보편성의 담지자라는 주장을 다시금 제기했다. 이 후자의 국민들은 제국 없는 제국주의 국민들이 된 셈이다. 분명히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는데, 단 (유엔 헌장이 이상적으로 명문화한 것과 같은) 전 세계의 국민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 및 헤게모니의 새로운 관계들(이러한 관계들을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 것인지는 남겨진 과제다)을 위해 사라지고 있다.

이로부터 나의 세 번째 가설이 나오는데, 이것은 국경이라는 통념 및 프랑스와 알제리의 경우에 국경이 지니는 아주 특수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나는 프랑스-알제리 집합 그 자체가 하나의 “국경”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물론 매우 두껍고 복잡한 국경으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두 개의 자율적 주권들 사이의 경계선이라는 이론적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알제리 집합이라는 이 국경에서 일어나는 마주침과 갈등은 지중해 공간 전체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세계 경제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러한 경계를 세계 경계라고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속의 모든 경계들이 그 자체로 세계 경계들, 곧 북쪽과 남쪽이 각각 [상이한] 사회 및 경제 유형들임과 동시에 적대적인 문명 유형들로서(이 경우에는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균열에 뒤따르는 유럽과 아랍 사이의 “차이”가 문제다) 서로 뒤얽혀 있는 경제ㆍ문화적 경계들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알제리가 각각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상당한 두께를 지닌 이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는가? 시기에 따라 다소간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단순한 인접 관계가 아니라, 이중적 제약, 곧 이 두 집합체를 분리해야 할 필연성과 그 불가능성이라는 이중적 제약의 강화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강화는, 항상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항상 어렵기만 한 정치적 인정을 추구하는 역설적 개인들, 곧 이전에는 “무슬림 프랑스인”이라고 불렸고 오늘날에는 “프랑스 무슬림”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증가로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를 결정적으로 분리하기는커녕 양자를 통합하는 “세계 경계”는 이 양자가 함께 국경의 경계선 자체 위에서 갈등적인 위치를 차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제 우리는 식민화와 탈식민화가 사후에 알제리 사회 내부와 프랑스 사회 내부에 산출한 유산들 및 효과들의 독특한 의미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콜로퀴엄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알제리 안에 현존하고 있듯이 알제리는 프랑스 안에 환원 불가능하게 현존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서 “이질적인 몸체”가 단지 물리적으로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 새겨져 있고 동일성 구성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하다. 프랑스와 알제리 각자는 내적 차이, 자기 자신과의 본질적인 비동시대성으로 인해 변용되어affectant 있다.

이러한 비동시대성은 국가 속에서 사회의 대표/재현 및 역으로 국가에 의한 사회의 “국민화”를 작동시키는 주요 제도의 중심에 존재한다. 우선 언어의 경우, 언어 정책 및 공적 공간 내에서 상이한 언어들의 위치가 문제다. 이는 알제리에서 정치의 언어는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인데(이는 가장 가시적인 문제다), 왜냐하면 알제리에서 프랑스어가 어느 정도까지나 대중적인 권리 요구 및 지적 기획의 매체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게 되면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일종의 이상적인 프랑스에 대한 준거(또는, 때로는 “자코뱅주의”나 “정교분리”로 불리기도 하는 공화주의)가 영속적으로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프랑스의 공적 공간 내에서 아랍어와 아랍주의의 위치라는 잠재적인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적인 언어(“방리유”의 언어)의 진화에서 아랍어가 미친 영향이 한 가지 징표인데, 교육과 지식 생활에서 아랍어 및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아랍 문화의 위치라는 질문 역시 마침내 제기되고 있다(알랭 드 리베라Alain de Libera의 󰡔중세 시대의 사유Penser au moyen âge󰡕는 이러한 경향을 눈부시게 입증해준 바 있다).

가족 구조 및 세대라는 문제는 언어보다도 더 근본적이다. 이 문제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별을 근원적으로 뒤흔들면서 동시에 행정적 관행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도전을 제기한다. 콜로퀴엄 첫째 날 압델와하브 메데브Abdelwahab Meddeb는 오늘날 알제리에서 알제리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모종의 불가능성을 묘사하기 위해 “계보의 단절”이라는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나는 또한 그와 상관된 질문을 제기해보자고 제안했었다. 곧 계보의 단절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또는 봉합될 수 있는가? 수많은 프랑스-알제리 가족들 및 그 양쪽의 “친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선 “사적” 수단들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그들의 “동일성”은 정확히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동일성은 아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정치적 결과들을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들 중에서 특히, 다른 곳보다도 미디 지방[“미디 지방Midi de la France”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지역을 가리킨다.]에서 민족주의적인 반감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폭력적인 결과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는 한편으로는 독립 전쟁 말기에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강제적인 본토 이주와 다른 한편으로 이민 노동의 전진적인 통합을 낳은 이중적 억압의 귀결이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회의 모든 계급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가족들에서 [프랑스인과 알제리인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이 가족들은 프랑스와 알제리를 분열시키며, [동시에] 프랑스와 알제리가 서로 공유하게 만든다).

알다시피 가족들 자신에게는(그리고 아마도 국가들에게도) 거주와 교육, 행정부 및 경찰과의 관계 등과 같은 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 정책의 기조는 복잡성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 곧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가 지닌 폭력성은, 비자와 “체류증”에 얽힌 수많은 비열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매일같이 목격하게 되듯이, 가족들을 도려내려는 영속적인 경향에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의 우위가 재긍정되는데, 단 이는 국민 국가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탈정당화라는 상징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왜냐하면 국민 국가는 상상계 속에서는 일종의 커다란 가족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을, 가족들의 계보가 제도화되고 인정받고 보호받는 포괄적인 통일체로 나타낼 수 없는 순간부터 국가는 자신의 한계들에 직면하게 된다. 언젠가는 “사적인 것”의 구조들이 모든 “공적” 제도의 재생산 속에 연루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서는 사적 유대의 발전이라는 문제는 분명 구체적인 분석들, “미시 사회학적인” 또는 “미시 정치학적인” 분석들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이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재검토 및 국민 주권들의 상대화라는 세계적 맥락―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노골적인 세력 관계로 표현된다(걸프 전쟁을 떠올려보자)―속에서 제시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어떻게 이러한 맥락이 “문화적” 대결들의 형태를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프랑스-이슬람 집합체 내부에서 이슬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면, 이는 특히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심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마땅한 것은 어떤 측면인가? 그것은 식민화가 갑자기 억압하고, 심지어 말살했던, 그리고 오늘날 복귀하고 있는 특수주의로서의 알제리의 전통적인 이슬람주의인가? 지속적인 차별―곧 이슬람이 프랑스의 공적 공간 속에서 늘 그 대상이 되고 있고(알다시피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은 이러한 차별을 표현하기 위해 도발적이지만 적절한 “가톨릭적인 정교 분리catholaïcité”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바 있다), 필경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에 대한 인식을 규정하고 있는―이 그러한 측면인가? 역으로 그것은 또한 모종의 보편주의 아닌가? 또는 이슬람을 통해 보편주의에 진입하는 모종의 방식이 아닌가? 이러한 방식은 명백히 이슬람 자신이 보편자 및 국민에 대해 역사적으로 제시한 특수한 표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특수주의 및 전통주의에 대한 너무 단순한 이미지들(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던 편견에 의해 늘 영향 받은)과는 무관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 친구인 모하메드 하르비Mohamed Harbi는 현재의 이슬람주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 전근대적인 종교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어쨌든 그것은 이 후자의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화 과정이 맞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종교적인 것의 정치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국민 형태 및 그것에 고유한 “시빌리테” 모델들의 위기는 명백히 이러한 세계적 위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깜짝 놀랄 만한,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모종의 동맹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와 특정한 과학ㆍ기술적 진보주의 사이의 동맹이다. “반(反)개화주의obscurantisme”라는 상투어구와는 대립적이게도, 적어도 어떤 경우들에서는 기술적 세계화로 진입하려는 열망과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에 대한 옹호 사이에 경향적인 통일성이 존재한다. 알제리에서는 이러한 동맹이 “프랑스파”에 대한 또는 프랑스적인 공간 및 프랑스적인 상상계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파리아[“파리아pariah”(프랑스어 표기로는 paria)는 원래 인도의 최하층 계급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요즘은 주변인 또는 지배적인 동일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 지식인들에 대한 사회학적 일반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교육과 행정의 아랍화의 특수한 역사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늘날 집합적ㆍ관국민적 동일성들이, 세계화의 맥락 속에서 일반적으로 미국화에 대한 대안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적어도 모종의 이슬람주의는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대체물 내지 보충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지배적인(유럽적이거나 서구적인) 자신의 모습에 맞서 보편성을 옹호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바로 여기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난폭하고 불쾌한 방식이지만, 보편성을 현시하는 서양식 관점에 깃들어 있는 특수주의의 요소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사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인권은 “서양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주장, 곧 이슬람에 준거하는 모종의 방식 안에도 인권 및 그 보편화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주장에 내재적인 모순은 또 다른 모순, 곧 서양의 열강들이 가로챈 보편자에 대한 전유, 보편자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라는 모순에 대한 응답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무대는 결코 보편주의 대 특수주의들 간의 갈등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구적 보편성들 사이의, 보편성에 대한 적대적 주장들 사이의 갈등의 무대이며, 그리고 보편주의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의 무대이기도 하다.

내가 방금 국민과 언어, 가족 내지 계보, 종교 및 보편성에 대해 제기해보려고 한 모든 질문들은 각각 경계라는 질문의 상이한 측면들이며, 이러한 측면들은 경계의 고유한 복잡성을 구성한다. 우리는 경계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또는 우리는 점점 더 그것에 대해 무지하게 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실상 경계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경계는, 우리가 남쪽에서 보는지 북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및 아마도 다른 몇몇 경우)에 서로 겹치는 두 개의 시선은 서로에 대해 내면적인 것이 되었으며, 따라서 말하자면 경계 그 자체에 내재적인 것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국경/경계가 정치적 공간과 맺는 관계가 전화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 질문해보도록 인도한다. 나는 시민권이 완전히 국민적 소속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 없이는 정치가 없는 것처럼 국가 없이는 시민권도 없다. 그런데 초국민적 국가 내지 경계 없는 국가라는 관념은 오늘날 진정으로 일정에 올라 있지 않다. 역으로 관국민적 제도들이라는 관념은 뜨거운 현실성을 맞고 있다. 문제는 국가적인 국적이 시민권을 가두고 조건 지을 것인가 아니면 규정되어야 할 한도 내에서 시민권이 국적을 넘어서 그것을 상대화할 것인가 여부다. 어디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시민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시민권 제도가 우리로 하여금 모순적인 두 가지 요구, 곧 차이에 대한 권리라는 요구와 차이로부터 차이화할 권리라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줄 것인가?

나로서는 프랑스-알제리라는 쌍couple(또는 역사적인 결합couplage)이 우리의 성찰 및 우리의 정치적 실천의 특권적인 쟁점들 중 하나가 될 때에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또한, 이러한 쌍이 순수하게 이원적인 관계, 각자가 차례대로 선하고 악한 타자의 모습을 띠게 되는 대면 관계 속에서 돌고도는 일을 멈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인들과 알제리인들은 단지 자기 자신들 및 상상적으로 폐쇄된 자신들의 역사를 “탈동일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쌍” 역시 탈동일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세계화의 관점 속에 기입하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 삼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경계가 더 이상 단지 행정적ㆍ경제적ㆍ문화적 경계가 아닌 이상, 또는 문명 원리들 사이의 경계가 아닌 이상 이는 더욱 더 필수적이다. 경계는 또한 폭력의 경계(또는 경계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알제리인들에게는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그리고 심지어 국경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일이 절박한 문제인 데 반해, 많은 프랑스인들은 국경을 폭력의 분출로부터 거리를 두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러한 국경의 강화를 자신들의 안전 및 정치 자체의 조건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특별히 위험스러운, 하지만 또한 맞서 싸우기가 특별히 어려운 미망이다.

반대로 나는 정치 및 민주주의와 동시에 사람들까지 살해하는 극단적 폭력의 확산은 또한 그 본질적인 일부에서는 국경의 강제 및 불가능한 봉쇄를 수단으로 한 국가에 의한 인구 정착과 격리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면서 반폭력의 정치(내가 시빌리테의 정치라고 부르는)를 옹호하고자 한다. 국경에 대한 치안적 관점, 곧 국경을 “방역선”으로 간주하는 관점 대신, 국경에 대한 정치적 관점 및 실천이 필요하다. 국경을 정치의 장으로 전위시켜서, 더 이상 국경이 모든 반항과 통제, 상호성의 권역 바깥에, 가장자리에 놓이지 않고 중심에 놓이도록 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개인들과 집단들이 오늘날 때로는 국경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말하자면 그들이 경계선 양쪽에 걸쳐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탁월하게 비민주주의적인 제도, 그 자신은 결코 집합적으로 통제되지 않음에도 개인들과 인구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국경이라는 이 제도가 정치적 쟁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곧 그 활용 양상 및 전화를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믿기로는 바로 이것이 현재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알제리 쌍이라는 특권적인 형태로 이 질문과 마주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이러한 형태 안에서 이 질문과 대결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지중해 공간”이라는 아주 일반적인 관념―이는 하나의 역사 내지 하나의 문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역사들 및 문화들 사이의 영속적인 만남 및 갈등의 지점을 가리킨다―이 다시 한 번 문명 기획의 지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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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족과 국민
    from Droit de cité (씨테에 대한 권리) 2009-09-02 07:32 
    우리가 (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국민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근대'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국민'이 존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도,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봤을 때도  어딘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디어 환경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고 또 (세계적) 지배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기사가 하나 있어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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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언론 [참세상]

고깃배 타고 해적이 된 어부들


[경계를넘어] 소말리아 해적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경계를넘어 ifis.or.kr / 2009년06월01일 16시32분

소말리아 해적문제가 연일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21세기에 미국이나 유럽, 또 한국의 군대가 해적과의 전쟁을 선포할 줄은 20세기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21세기가 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해적과의 전쟁이라니! 우리 기억속의 해적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이나 모험소설에 등장해 주인공들을 괴롭히던 바다의 무법자들이었다. 피터팬의 친구 웬디를 갑판에 묶어놓고 바다에 떨어뜨리겠다며 협박을 하던 후크선장, 또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해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묘한 매력을 풍기며 영화 역사 상 가장 매력적인 해적으로 등극한 잭 스페로우 선장이 가장 유명한 해적들이다.


"외세의 간섭을 받아야 했던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의 해역에서 여러 나라의 군대가 미사일을 장착한 군함과 헬기를 동원해 이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그 그림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21세기 해적의 초라한 행색에 더 의아해진다. 조그마한 나무배에 옹기종기 끼어 탄 그들은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해적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어부처럼 보일 뿐이다. 기껏해야 재래식 무기라도 들면 다행일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왜 각국의 정부들은 초대형 군함을 소말리아에 보내놓고 야단들인 걸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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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9-06-1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 저도 상상으로는 그런 게 아닐까 했지만...

moncler coats 2010-07-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털 사이트에서 '소말리아 해적'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ed hardy 2010-07-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 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해적과..

buy moncler jack 2010-07-2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충격!!! 저도 상상으로는 그런 게 아닐까 했지만...

links of london 2010-07-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 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해적과..
가 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해적과..
 
 전출처 : 에로이카님의 "대안 마르크스주의와 새로운 해방 주체 구성"

ㅎㅎㅎ 에로이카님,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에로이카님의 문제의식에 십분 공감하고, 뒤메닐과 지젝, 그리고 오건호 선생의 견해를 연결하는 방식에도 동의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또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사람은 발리바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발리바르는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경제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또 지젝처럼 입만 열면 혁명을 떠벌리는 것도 아니고, 오건호 선생과 달리 공공성 문제를 항상 이데올로기 문제(또는 민족주의 및 인종주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점이 꽤 있다고 봅니다.  

가령 발리바르는 계급론의 틀에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내에서 대중운동과 대중적 주도권의 중요성(결국 인민주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은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뒤메닐과 연결될 수 있는 점이 있겠죠. 또 지젝이 말하는 "사회적 아파르트헤이트"는 사실은 발리바르가 사용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그대로 가져다 쓴 개념입니다. 그가 발리바르를 인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그리고 발리바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 시민권의 강화에 있다고 주장하니까 오건호 선생의 이야기와도 통하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발리바르의 관점에서 볼 때 뒤메닐은 여전히 경제주의적 관점이 강한 것 같고(경제학자니까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지젝의 이야기는 당위적인 혁명주의 수사에 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사실 저 정도 이야기도 꽤 발전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오건호 선생 이야기는 사민주의를 그대로 되풀이할 우려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배척하자는 뜻이 아니라, 세 사람 이야기에는 그만큼 빠진 점들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들의 논의(및 다른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결합한다면, 아마도 최근 발리바르의 문제의식과 통할 수 있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발리바르 예찬인가요? ㅎㅎㅎ  

아무튼 제가 지금 거의 번역을 끝내고 곧 출간할 발리바르 책이 하나 있고, 앞으로도 한 두어 권 더 번역해서 소개할 생각인데, 제 생각에는 지식인들이나 활동가들이 이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바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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