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이 한국에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마침

 한겨레에 인터뷰가 실렸길래 옮겨옵니다. 흥미로운 점도 있고 그다지 신통치 못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참고자료 삼아 읽어보시길. :)

“미 정부 돈 풀어 위기수습…신자유주의 이미 종착역”
[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한겨레 이세영 기자 신소영 기자
 








 

» [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제라르 뒤메닐(사진 오른쪽) 파리10대학 교수는 지난달 28일 정성진(왼쪽) 경상대 교수와 가진 <한겨레> 대담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당장의 고비는 넘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을 심화시켜 더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케인스주의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선 “이번 위기가 케인스가 처방했던 거시정책의 유효성을 확증해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케인스주의의 또다른 축을 구성하는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5일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한 뒤메닐 교수는 서울에 머물며 경상대 국제학술회의와 사회단체 간담회 등에 참석한 뒤 지난 주말 출국했다.


정성진=당신은 이윤율 동향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장기동학을 설명해왔다. 최근 세계 경제위기 역시 이를 통해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제라르 뒤메닐=지금의 위기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이윤율 저하로 인한 위기가 아니다. 이윤율은 1970년대 들어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 초부터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두 개의 큰 요인이 이번 위기를 가져왔는데, 첫번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금융화와 결합된 상층계급(자본가와 경영자)의 고소득 추구 경향이다. 두번째 요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된 미국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인데,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요인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금융화·고소득 추구 경향으로 이뤄진 위기 요인의 조합이 취약한 금융구조를 낳고, 여기에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가세하면서 금융의 취약성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정=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런데 표면상 위기는 더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뒤메닐=현재 위기는 1930년대 위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고소득 추구나 금융화는 1920년대에도 있었다. 다른 점은 미국경제의 불균형이란 요인이 1930년대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대공황만큼 심각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인데, 개입의 강도를 보여주는 게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8%였던 미국 재정적자는 올해 11%로 늘었다. 1930년에는 겨우 4%였다.

정=위기가 큰 무리 없이 수습될 수 있다는 얘긴가.

뒤메닐=2001년 불황 당시엔 주택경기를 부양해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주택버블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지금의 위기 상황에선 이것이 불가능하다. 오바마 정부로선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국가재정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것이 경제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새로운 위기를 부른다는 점이다.

미국재정적자 11% ‘불균형’ 심화
세계화·금융화·고소득 추구 등
취약해진 금융구조 파국 부채질



정=많은 학자들이 최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 종말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뒤메닐=신자유주의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라틴아메리카는 확실히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추세다. 중국도 다른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경제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머잖아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유럽은 아직 뚜렷한 변화 조짐이 안 보인다. 프랑스·독일의 보수정권이 정책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리지만 완만하게 탈신자유주의의 길을 갈 것이다.

정=한국에도 번역된 <자본의 반격>에서 케인스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케인스주의가 여전히 실행가능한 대안이라고 보는가.

뒤메닐=케인스주의는 위기에 대한 거시경제적 처방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타협까지 포함한다. 일단 좁은 의미의 케인스주의, 다시 말해 케인스의 거시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핵심은 강력한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무역과 자본이동에 대한 일정한 규제 등인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와는 상충되는 방향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이번 위기는 결과적으로 케인스의 타당성을 재차 확증해준 셈이다.

정=사회민주주의적 타협도 마찬가지로 유효한 대안일까.

뒤메닐=회의적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의 계급타협은 대중계급과 손잡은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강력한 대당(對當)으로 자리잡고,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도 거대한 사회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사회운동도 위축된 지금 상황에선 과거 같은 타협이 쉽지 않다. 물론 새로운 유형의 타협이 나타날 수는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중계급과의 동맹 없이)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정=최근 자크 비데와 함께 쓴 <대안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다른 세계를 위한 다른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무엇이 갱신돼야 한다고 보는가.

뒤메닐=무엇보다 계급론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전통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했다. 이런 이분법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 계급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법인기업의 출현과 함께 소유·경영이 분리되면서 거대한 관리자 계급이 등장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분화도 가속화돼 전통적 생산노동자뿐 아니라 광범위한 비생산노동자와 실업자층이 양산됐다.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전통적 이분모델은 이제 ‘자본가-관리자-대중계급’이란 삼분모델로 대체돼야 한다.


남미·중국 신자유주의 일탈 조짐
“미국도 곧 거대한 변화 있을 것”
케인스주의 유효한 처방 ‘득세’


정=당신이 주장하는 ‘대안마르크스주의’는 결국 ‘관리자 자본주의론’을 마르크스주의 안에 수용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뒤메닐=맞다. 그런데 계급론 외에 두 가지가 추가로 필요하다. 하나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다. 마르크스에게 착취의 국내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있었지만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새로운 국제적 착취기구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은 외관상 민주적이지만 이들을 통해 관철되는 것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다. 착취의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으로서 제국주의론이 요청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변혁론이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대중투쟁을 제시한다.

정=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혁명인가.

뒤메닐=여러 종류의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관리자 계급으로부터 한층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선 대중계급이 더 강하게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할 것은 관리자의 지배가 대중계급의 지배를 대체하는 ‘대리주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귀결은 대리주의였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제라르 뒤메닐은?


‘불균형 미시경제학’ 통해 세계 경제위기 도래 예견





 

» 제라르 뒤메닐 교수
 
제라르 뒤메닐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명제인 이윤율 저하 경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 경제학자다. 특히 ‘불균형 미시경제학’이라는 독창적 프레임으로 20세기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세계적 경제위기의 도래를 예견해 주목받았다. 현재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임연구원으로 있다.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뒤메닐 교수의 시각은 최근 출간된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3장과 <네오리버럴리즘>(그린비) 1장에 집약돼 있다. 여기서 그는 신자유주의를 “소수에 이롭고 다수에 해로운 약탈적 체제”로 규정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계급의 소득과 부를 회복하고 미국 경제의 우월성을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런 성과는 대다수 미국인과 세계 다른 지역의 희생을 대가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성장률 역시 이전 시기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뒤메닐 교수는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계급 타협의 결과물로 해석한다. 20세기 들어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반경향’으로 관리조직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해 등장한 것이 ‘관리자(경영자+관리직) 계급’이다. 관리자 계급은 2차대전 뒤 사회민주주의적 타협 국면에서 대중 계급(pupular class)과 손잡고 자본가 계급을 제어하고 규율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자 이들은 자본가 계급과 동맹해 대중 계급을 압박하게 되는데, 이것이 198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계급 타협의 본질이라는 게 뒤메닐 교수의 설명이다. 뒤메닐 교수는 최근 신자유주의의 동학과 한계를 규명한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책을 탈고하고 내년 초 출간(하버드대 출판부)을 기다리고 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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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9-06-08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안녕하세요. ^^ 제가 며칠전에 요 인터뷰랑 이번에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지젝 글을 갖고 쓴 페이퍼가 하나 있는데, 혹시 시간이 나시면 읽어보고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젝의 글은 쉬운 글이었는데, 바디우, 아감벤 등 제가 잘 모르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나와서요.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게 과연 맞는 생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번에 나온 뒤메닐과 레비의 새 책은 아직 못 봤는데, 이전 저작을 꽤 흥미롭게 읽었던 저로서는 이 양반에 대한 기대가 나름 큽니다.

balmas 2009-06-09 02:32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님, 오랜만이시네요. 지젝에까지 관심을 보이시고 대단하십니다.^^ 제가 지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뒤메닐/레비는 더 잘 모르는데, 한번 보여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ㅎ 뒤메닐에 대해서는 에로이카님이 훨씬 더 잘 아시니까 아마 기대하시는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

에로이카 2009-06-09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eroica/2886317

요기 있습니다. 대단할 것까지는 없구요. 그냥 제목이 흥미롭게 보여서 읽기 시작했다가 재미있어서 끝까지 보게 된 글이었어요. 읽다가 발마스님을 떠올리게 된 것은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공산주의적 가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여쭤보고 싶었구요. 또 자크 랑시에르의 개념이라는 "the ‘part of no part’ of the social body"는 대충 감은 오는데... 그러니까.. 그 사회 안에 물질적으로 실재하되,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 정도일 것 같은데요...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혹시 이 개념이 한국말로 번역되어 쓰이는 건가요?

그리고 비단 이 뿐만 아니라, 뒤메닐 인터뷰도 올리시고 해서.. 그냥 발마스님께서는 제 페이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더욱 궁금해졌답니다.

제 주변엔 통 이런 걸 여쭤볼 분들이 안 계셔서요. 감사합니다. ^^

balmas 2009-06-10 03:52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님, 공산주의적 가설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나온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바디우의 글을 보시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랑시에르 개념은 "몫없는 이들의 몫" 정도로 옮기면 될 것 같습니다.^^

chanel purses 2010-07-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난 주에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이 한국에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마침

한겨레에 인터뷰가 실렸길래 옮겨옵니다. 흥미로운 점도 있고 그다지 신통치 못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참고자료 삼아 읽어보시길. :)
 
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가 겨냥하는 것은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는 글로벌한 세계사, 세계 경제의 역사를, 근대 경제를 대상으로 서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계사나 경제사에서 지배적인 유럽중심주의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는 은의 세계적인 유통 흐름이라는 구체적인 쟁점을 가지고 이 두 가지 목표를 수행하려고 시도한다.   

문외한인 데다가 전공도 전혀 다른 사람이 세계적인 화제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재미있게 책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의 권리를 빌려 한 마디 해보고 싶다. {리오리엔트}는 비유하자면 {공산당 선언}에 가까운 책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유럽 혁명(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썼던 것처럼, 아마도 동아시아의 새로운 (재)발흥에 고무된 프랑크의 머릿속에도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세계체제라는 유령이”라는 문구가 소리 없이 맴돌고 있었을 법하다.  

비유를 좀더 이어가자면, 마르크스(ㆍ엥겔스)는 완성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자본} 1권을 출판함으로써(그리고 2, 3권을 편집ㆍ간행함으로써)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저 허망한 허깨비가 아님을 입증했다. 그러나 프랑크는 ‘선언’은 했지만, 그 선언을 뒷받침해줄 만한 결정적인 저작은 미처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프랑크의 솔직한 고백처럼 “이 책도 ‘분석’은 미진한 반면 ‘서술’에 너무 치중한 것이 사실이다.”(538쪽) 아마도 이 때문에 우리는 프랑크의 ‘서술’(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선언’과 ‘촉구’)에 약간의 흥분감을 느끼며 때로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끝내 ‘그렇지만 ...’이라는 망설임과 회의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리오리엔트}의 주장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웬만한 지지자나 동조자가 아니고서는 선뜻 그의 주장들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토인비, 폴라니, 파슨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스와 베버 및 브로델이나 월러스틴도 모두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며, 따라서 19세기 이후 서양의 사회과학자들 중 거의 누구도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으로 말하면 그의 세계체제론은 적어도 지난 2세기 동안의 (따라서 사실은 그 역사 전체에 해당하는) 서양 사회과학 전체를 뒤집어엎으려는 대담한 시도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담한 시도를 위해 프랑크가 제시하는 논거들은 너무 불충분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인상, 적어도 너무 간단하거나 단조롭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프랑크가 제시하는 콘드라티예프 장기 순환설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그에 따르면 청동기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세계 체제에 되풀이해서 작용해온 경기 순환의 사이클은 마치 세계 체제 내의 각 부분 경제들의 발흥과 몰락, 재발흥을 설명하는 유일한(적어도 궁극적인)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 특히 그렇다. “결국 1800년을 전후하여 아시아가 유럽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전반적으로 빈곤해서도 아니었고 전통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무슨 대단한 실책을 저질러서도 아니었다. 마르크스식이면서 슘페터식의 어법을 빌리자면 실패의 근원은 성공에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밀리게 된 것은 그때까지 아메리카에서 유입되는 화폐를 자금으로 삼아 18세기 상당 기간동안 지속되었던 장기 ‘A’국면적 팽창으로 조성된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있었다.”(488-89쪽)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고 주장했다면 프랑크는 “인류의 역사는 장기순환의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마치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의 경제사적인 판본처럼 들린다. 곧 지역적인 경제 현상들의 작용 이면에는 세계체제의 장기 순환이라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프랑크가 이 책에서 전체론적인 관점을 일관되게 역설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크는 지칠 줄 모르고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임을 주장한다. 이는 나무들에 몰두하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다른 ‘국지적인’ 역사가들에 대한 비판이자 진정으로 ‘글로벌한’ 세계사를 구성하려는 그의 궁극적인 방법론적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랑크가 보지 못한 것(또는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전체론은 결국 환원론에 빠지기 쉽고 환원론은 역사를, 헤겔이 말했듯이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처럼 그려낼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역사에서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이 장기순환이라는 신의 몸짓의 표현들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너무나 황량한 풍경일 것이다.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계급투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설정함으로써 역사 과정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이나마 남겨두었다면, 그 유럽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프랑크가 레오폴트 랑케(그는 이 책에서 비판받지 않는 유일한 19세기 사상가인 것으로 보인다)의 문구가 일종의 기독교 신학의 세속화된 판본임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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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04-1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오~ ^^

balmas 2009-04-15 02:39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

2009-04-1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4-15 02:40   좋아요 0 | URL
속삭이신 님/ 아, 어쩌죠, 저도 그 책을 아직 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시간이 있어야 좀 들춰볼 텐데, 요즘 일이 너무 밀려서 당분간 볼 틈이 없을 것 같네염. 죄송.

balmas 2009-05-14 04:48   좋아요 0 | URL
지나가다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경청할 만한 이야기네요.

2009-04-15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5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7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4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4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은 조만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올 에티엔 발리바르의 책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의  

맨 앞 장의 번역본입니다.  발리바르 책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소개할 겸 올려봅니다.  

이 책은 이 장까지 포함해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책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정치적 쟁점들을 인식하는 데, 또 실천적인 대안들을 모색하는 데 

이 책에 비견될 만한 책은 지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이 책 전체는 이 장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개괄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이 장을 올려봅니다.  

아직 교열이 끝난 원고가 아니니까 당연히 인용은 불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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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막. 유럽의 경계들에서   

[1999년 10월 4월 데살로니카 프랑스 연구소와 데살로니카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철학과 공동 초정으로 인문대학의 원형 대강의실에서 발표한 강연. 이 강연은 Transeuropéennes n° 17, Paris, 1999-2000에 실렸다.]


나는 전통적인 형세―강력한 신화들과 더불어 역사적인 사건들의 지속적인 발생을 반영하는 형세―에서 볼 때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한 나라들 중 하나인 그리스에서 “유럽의 경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데살로니카 자체가 이 경계의 나라의 경계선상bord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한편으로 외국인(숙적으로 전환된)과의 주기적인 대결과 다른 한편으로 문명들 사이의 소통(이러한 소통이 없다면 인류의 진보도 존재할 수 없다)의 변증법이 작용한 장소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나는 내가 다룰 대상의 중심에―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난점들과 더불어―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계frontière”라는 용어[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frontière”라고 할 수 있다. 불어에서 이 단어는 “국경”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좀더 일반적으로는 “경계”라는 뜻으로 쓰인다. 발리바르가 이 책에서 논증하려는 주요 테제 중 하나는 국가의 영토적 경계로서 “국경”이 국민국가의 위기 속에서 좀더 일반화된 “경계들”로, 곧 이주민들, 난민들, 외국인들, 소수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경계들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frontière”라는 개념은 보통 사회과학에서 의미하는 “국경” 이외에 경제적ㆍ사회적ㆍ인종적 “경계”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이 후자의 뜻이 좀더 핵심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는 이 개념을 주로 “경계”라고 번역하되, 특별히 “국경”이라는 의미가 강조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경계/국경” 같은 식으로 번역하겠다.]는 극히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내 가설 중 하나는 이 용어의 의미가 심원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국가의 주권적 기능들을 보존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정치ㆍ경제적 실재의 경계들은 더는 영토들의 경계선 상에 모두 위치해 있지 않다. 이러한 경계들은 정보와 사람, 사물의 이동이 실행되고 통제되는 곳이면 어디든지(예컨대 세계화된 도시들) 얼마간 분산되어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테제들 중 하나는, 이른바 주변적인 지대들, 곧 세속 문화와 종교 문화가 충돌하고, 경제적 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심화되는 지대들은 인민peuple(demos)―인민이 없다면 고대 이래 민주주의 전통에서 전승되어온 의미에서 시민권citoyenneté(politeia)도 존재하지 않는다―이 형성되기 위한 도가니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계에 위치한 지대들과 나라들, 도시들은 공적 공간의 구성과 관련하여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만약 우리에게 유럽이 무엇보다도 해결되지 않은 한 가지 정치적 문제의 이름이라면, 그리스는 그 문제의 중심들 중 하나다. 그리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우리 문명의 신화적인 기원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에 집중돼 있는 문제들 때문에 그렇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중심이라는 통념은 우리를 한 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한다. 이 통념은 권력의 집중 및 가상적이거나 현실적인 국가핵심기관의 지방 분권 같은 국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중심은 브뤼셀이나 스트라스부르 또는 런던 시티[“City of London”은 금융회사가 밀집한 런던 뱅크역(驛) 사방 1평방 마일의 지역을 가리킨다.]나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또는 오히려 유럽 건설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들의 수도인 베를린에 위치할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파리와 런던 등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이 통념은 또한 다른 의미, 좀더 본질적이면서도 좀더 파악하기 어려운 의미를 지니는데, 이 경우 이러한 통념은 시민civique 의식의 창출 및 인민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의 집합적인 해결을 통해 인민이 구성되는 장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유럽적인 인민”, 그것도 생성 중에 있는 그러한 인민은 존재하는가? 이것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유럽적인 인민, 아직 마땅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인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술관료적인 외양을 넘어서는 유럽적인 공론장이나 유럽적인 국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 전에 “유럽에는 어떠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Es gibt keinen Staat in Europa”는 헤겔의 유명한 정식을 모방하여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이 책 9장 참조].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열려 있어야 하며, 경계의 지점들에서는 특히 “중심적인” 방식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난점은 더 있다. 우리는 코소보, 발칸 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직후인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데, 서구 열강들이 프리스티나Priština[코소보의 주도(州都)]에 설치한 보호령은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심스러운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반면, 베오그라드에서는 현 체제의 장래를 둘러싼 책략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가까운 시일 내에 벗어날 수 없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모두 동일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들 사이에는 심각한 이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전쟁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점에 관한 명백한 징표일 것이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각자 상이한 이유에 따라 나토의 개입을 비난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또한 각자 상이한 이유에 따라 한 “깃발” 아래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토의 개입에서 미합중국이라는, 헤게모니를 쥔 외부 세력에게 유럽이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그러한 개입에서 유럽의 국가들이 대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의 무력을 용병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아마 그럴 것이다) 운운. 
 

나는 이러한 딜레마를 단칼에 해결하겠노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들이 유럽 건설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무자비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나의 신념을 이 자리에서 밝혀보고 싶다. 유럽의 건설이 단일한 화폐의 설립과 그에 따른 사회ㆍ경제 정책을 위한 공동의 틀의 건설을 통해, 그리고 “유럽적 시민권”의 형식적 요소들의 실행을 통해 비가역적인 문턱을 넘어섰다고 간주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이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들에서 사람들은 곧바로 유럽적 시민권의 군사적ㆍ치안적 맞짝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행정과 세력관계의 “공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민들 사이의 소통과 협동의 “공적 공간”이기도 한 유럽 공간 내에서의 포함과 배제의 양상들에 대한 정의다. 결과적으로 이는 용어의 가장 강한 의미에서 유럽 건설의 가능성이냐 불가능성이냐가 달린 문제다. 코소보를 공동 보호령으로 설립한 것과, 간접적으로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통치하는 세르비아를 봉쇄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발칸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능성이 압도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 같다. 비록 사람들이―내가 그렇듯이―진행 중에 있는 “종족 청소” 과정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을 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사람들이―내가 그렇듯이―정치적 제도의 역사에서 인민의 자기결정권에 관해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불신한다 할지라도 그렇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구유고슬라비아 전체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출구도 없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발칸반도(및 좀더 일반적으로는 동유럽)의 인민들에게 결사associations라는 정치적 해법을 제안하고 발전의 전망을 열어주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침해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유럽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무능력할뿐더러 그 책임을 거부했던 결과였다. 따라서 그 이후에 발생한 재앙들 및 그로 인해 오늘날 생겨나게 된 결과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유럽, 특히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발칸 전쟁이 유럽 건설이 맞이한 곤경 및 그 불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확히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건설은 어떤 조건 하에서 다시 가능하게 될 수 있을지, 상이한 장래를 위한 잠재력들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과거 잘못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피함으로써 어떻게 그러한 잠재력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지 질문해보는 용기 또는 광기를 가져야 한다. 동일성에 대한 모든 신비화에서, 역사의 경로의 필연성에 대한 모든 환상에서, 그리고 특히 통치자들의 무오류성에 대한 모든 믿음에서 자유로운, 능동적인 유럽적 시민권에 대한 기획에 대해 유일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노력을 나는 촉구하고 싶고 또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는 경계라는 특별한 문제를 중심으로 유럽적인 인민 및 유럽에서의 국가라는 질문을 논의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경계라는 문제는 정치ㆍ경제 권력의 쟁점들과 더불어 집합적 상상계 속에서 전개되는 상징적 쟁점들, 곧 한편으로는 세력관계 및 물질적 이해관계라는 쟁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성에 대한 재현/표상들이라는 쟁점을 응결하고cristallise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새로운 발칸 전쟁[발리바르는 여기서 1912-13년에 걸쳐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발칸 전쟁과 구별하기 위해 1990년대에 벌어진 발칸 전쟁을 “새로운 발칸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중에 유럽이라는 이름이 서로 모순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기능했으며, 이는 내부와 외부라는 통념의 애매성을 잔혹하게 부각시켰다는 사실에서 나는 경계 문제의 중심성에 대한 충격적인 징표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유고슬라비아를, 하지만 또한 각자 상이한 정도로 발칸 반도 전체(따라서 여기에는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이 포함된다)를 [유럽에 대한―옮긴이] 외적 공간으로 간주해왔는데, 이러한 공간에서는 유럽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떤 실재가, 내가 여기서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유럽과 발칸 반도 사이의―옮긴이] 상호 외재성을 표현해주는 “개입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인류에 대한 범죄를 막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자신의 막강한 동맹자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개입을 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칸 반도는 유럽의 바깥에 존재한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컨대 알바니아의 국민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é가 제안한 주제들[“Il faut européaniser les Balkans”, Le Monde, 17 avril 1999.]을 빌려 말하자면, 이러한 개입은 유럽의 영토 위에서, 유럽의 역사적 경계 내부에서, 유럽 문명의 원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돼 왔다. 따라서 이번에는 발칸 반도는 온전한 권리에 따라 유럽의 경계들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요컨대 유럽은 단지 도덕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자기 자신의 영토 위에서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나는 결코 이것이 순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유럽의 공적 공간의 일부라고 지칭된 발칸 지역의 통합을 예상하거나 가속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수반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실패작이었던 “발칸 회의” 기획의 와해는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해준다. 관련 당사국들 전체와 유럽 공동체 그 자체가 관여하는 복구와 발전을 위한 경제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프랑스의 작가인 장 셰노Jean Chesneaux가 훌륭하게 제안했던 것처럼[“Quelle paix au Kosovo?”, Le Monde, 3 juin 1999.] 세르비아 군대 및 민병대에게 신분증을 빼앗긴 코소보 난민들에게 “유럽 주민증”을 부여함으로써 “유럽적 시민권”이라는 통념을 구현하려는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 연합”으로 진입하기 위한 단계 및 기준들에 대한 재정의도 없었다. 
 

그리하여 발칸 반도는 한편으로 유럽의 일부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부를 이루지 못한다. 분명히 우리는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대륙의 동쪽편에는 터키를 필두로 러시아와 코카서스 지역과 같은, 이것과 등가적인 경계 영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경계 영역은 도처에서 점점 더 극적인 중요성을 띠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역설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 첫째, 코소보의 식민화(현재 코소보의 체제를 레지 드브레Régis Debray가 제안했던 것처럼 이렇게 부르고자 한다면. 하지만 나는 그가 알제리 전쟁과 비교한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생각을 달리 한다)는 (일종의 미국의 용병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유럽에 의한 유럽의 “내부 식민화”로 제시된다. 하지만 나는 또한 다른 상황들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가 자신이 유럽 주권 지역 내부에 속하는지 아니면 그 외부에 있는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인데, 그리스가 이런 질문을 제기한 것은 그리스 자신이 참여하려고 하지 않은 지상점령군의 진입지점으로 그리스 영토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터키가 이 작전에 참여한 사실이 언급되었을 때 그리스의 어떤 “애국자들”은 [그리스와 터키라는] 두 “숙적” 중에서 정치적 유럽―군사적 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에 더 내재적인 쪽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을 만도 했겠다고 능히 짐작이 간다. 
 

이 모든 것은 경계의 표상/재현의 토대를 이루는 내부와 외부라는 통념들이 정말이지 지진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이는 경계, 영토, 주권에 대한 표상/재현들 및 경계와 영토에 대한 표상/재현 가능성 자체가 비가역적인 역사적 “강압forçage”의 대상을 이룬다는 점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재현들은 정치적 공간을, 법의 부과이면서 동시에 육지의 분배로서의 주권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모종의 관점의 구성적 요소를 이룬다. 이러한 관점은 유럽 근대에서 탄생해서 나중에는 세계 전체로 수출되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자신의 1950년의 대작 󰡔대지의 노모스Der Nomos der Erde󰡕에서 유럽의 공법Jus Publicum Europaeum이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또한 알고 있다시피 이러한 표상은 국가 제도에 본질적이기는 하지만, 유럽 역사를 구성하는 동일성들 사이의 복잡한 현실 및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때로는 평화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를 지탱하고 있는 위상학의 복잡성을 해명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이전에, 우리가 특히 중부 유럽에서, 좀더 일반적으로는 유럽 전체에서 관여하고 있는 것은, 단일한 블록들의 병치라기보다는―심지어 “소수자”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상호 모순적인 문명들 사이의 “삼중의 교차점” 내지 유동적인 “중첩 지대”라고 제안한 바 있다. 유럽은 모든 점에 있어서 다수적이다. 유럽은 항상 복수의 종교적ㆍ문화적ㆍ언어적ㆍ정치적 소속들 사이의 긴장의 본고장이자 역사에 대한 복수의 독해 및 나머지 다른 세계와의 복수의 관계 양상의 본고장이었다. 그것이 아메리카주의이든 오리엔탈리즘이든, “북유럽” 법체계의 소유적 개인주의이든 아니면 지중해 지역 가족 전통의 “부족주의”이든 간에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은 사실은 전혀 유별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특징적인 마주침과 갈등 도식들의 국지적인 투사라고 제안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 거리낌 없이 유럽적인 인종 관계라고 불렀는데[“Les frontières de l'Europe”, in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1997; 「유럽의 경계들」,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 물론 여기서 인종이라는 통념은 종교적ㆍ언어적ㆍ계보적인 동일성의 지시체들의 역사적 축적을 자신의 내용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 나로 하여금 유럽의 동일성의 운명 전체는 유고슬라비아에, 좀더 일반적으로는 발칸 반도에 달려 있다(비록 이곳이 그 운명이 시험받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지만)고 주장하게 이끄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한편으로 유럽은 발칸의 상황을 자신의 가슴에 이식된 괴물로, 곧 저발전이나 공산주의의 병리적인 “잔재survivance”로 인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역사의 한 이미지나 효과로 인정하고, 정확히 이러한 사실과 대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따라서 그것을 다시 문제 삼고 그것을 전환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유럽은 분명 다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한편으로 유럽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고, 계속해서 이 문제를 외재적인 수단들(식민화라는 수단을 포함하여)을 사용하여 극복해야 할 외재적인 장애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곧 유럽은 미리 자신의 시민권에 대해 유럽 자신의 주민들이 넘어설 수 없는 내적인 경계선을 강제하며, 자신의 주민들을 거류 외국인의 상황으로 끝없이 몰아간다. 그리하여 유럽은 자신의 불가능성을 재생산하게 된다. 
 

이제 “경계의 시민권” 내지 접경의 시민권으로서 유럽적 시민권이라는 질문을 좀더 확장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기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거리를 둔 가운데 사태를 다시 고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가능성과 가상성들virtualités의 응축물인 이러한 시민권을 다시 작동시켜야 한다. 
 

고전주의 시기 이래 20세기 중엽 제국주의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주권이라는 질문이, 정치적이면서 또한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서 경계/국경이라는 질문―“진영들”의 붕괴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이러한 유산을 물려받아왔다―과 역사적으로 한데 결부되어 왔는지 환기해보기로 하자. 유럽이라는 이름이 지닌 정치적 의미의 기원들 중 하나,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당대에는 대부분 군주적 주권 체제로 조직되어 있던 국민국가들 사이에서 “유럽적인 균형” 체계가 구성되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종종 역사 교과서에서 읽는 것과는 달리 이는 “투르크의 위협”이라는 배경 아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맞붙어 유럽을 폐허로 만들었던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되었던 “베스트팔렌 조약”(1648)과 정확히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조금 늦게 이러한 유럽적 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프랑스 군주정이 대표하는 헤게모니적인 관점과, 국가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 체제라는 의미에서의 공화주의적 관점―이러한 관점은 국내 질서에서 몇몇 시민권들을 인정하는 것에 상응했으며, 이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체결한 동맹에 의해 구현되었다―이 서로 대결하게 된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빌렘 드 오라녜의 명령에 따라 작성된 선전문에서는 주권적인 국민들 내지 국가들 사이의 세력 관계와 교류 관계 전체―이 국가들 사이의 균형은 협상을 통한 국경의 확정에 따라 실현되었다―를 지칭하기 위해 당시까지 외교적으로 사용되던 “기독교 세계”라는 명칭을 유럽이라는 용어가 대체했다. 우리는 또한 이 통념이 때로는 민주주의적이고 세계시민적인 이상(칸트가 이론화한)을 향해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강력한 국가들에 의한 인민들과 문화적 소수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감시(이는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비인 회의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를 향해 나아가기로 하는 등 계속해서 동요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시기에 근접할수록 점점 더 심원하게 이 체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두 개의 진화 운동에 좀더 주목하고 있다. 
 

첫 번째 운동은 유럽적인 균형과 그에 상응하는 국민적인 인민 주권이, 17세기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세계에서 유럽의 헤게모니적인 지위, 좀더 분명히 말하자면 유럽의 식민 열강들―여기에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작은 국민들”을 비롯하여 러시아(이후에는 소련) 같은 주변적인 국민들도 포함된다―에 의한 세계의 제국주의적 분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나 칼 슈미트 같은 비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각자 자신의 용어법에 따라 강조했던 것이 바로 이점인데, 슈미트는 여기에서 “유럽 공법”이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또 그 뒤에는 한나 아렌트 역시 이 점을 강조했으며, 우리 시대에 좀더 가까운 인물들로는 역사가인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있다.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또 스스로 그렇게 구성되려고 시도했던 유럽의 공간 내에서 “정치적”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원래는 그리고 중심적으로는 대지를 분할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대지에 대한 수탈을 조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 전체를 유럽의 확장으로, 좀더 나중에는 동일한 정치 모델 위에 구축된 “또 다른 유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주변부에 “경계/국경 형태”를 수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운동은 탈식민화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현재의 국제 질서의 구축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운동은 결코 완수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곧 독립적이고 주권적이면서 통일적이거나 동질적인 국민 국가들을 형성하는 일은 세계의 아주 많은 지역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또는 이는 단지 유럽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그 자체의 일부 지역에서도 의문시되었다. 
 

이는 분명히 매우 심원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이 점에 대해 좀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적인 “절대적” 국가 주권 형태가 보편화 불가능한 것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들의 세계”, 심지어 통일된 국민들nations unies[“nations unies”는 또한 “국제연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이라는 표현이 용어 모순이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한편으로 유럽 국민들의 구성과 그것들 간의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균형”, 그것들 간의 내적ㆍ외적 갈등과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세계사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연관성이 국경 갈등의 영속화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늘날 유럽 인민들에 전형적인 인구학적ㆍ문화적 구조도 낳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 인민들은 모두 포스트식민적인 공동체이거나,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낫다면, 유럽의 공간 내부에 세계의 상이성이 투사된 것이다. 여기에는 이민이라는 원인도 존재하지만 또한 난민들의 본국송환 같은 다른 원인들도 존재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두 번째 운동은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라는 통념의 진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앞의 운동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로부터 때로는 매우 폭력적일 수도 있는 강한 긴장이 생겨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국가들의 체계 및 그것들 간의 영속적인 경쟁 관계 속으로 주민들과 인민들이 역사적으로 삽입된 것이 이러한 인민들에 대한 표상 및 그들이 자신들의 “동일성”에 대해 지니는 의식을 내부로부터 변형시키는 방식이다. 
 

내가 월러스틴과 함께 1988년에 출간했던 󰡔인종, 국민, 계급. 애매한 동일성들󰡕이라는 저작에서 나는 사회들과 인민들, 따라서 문화들과 언어들, 계보들의 경향적인 국민화를 지칭하기 위해 “허구적 종족성의 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인민에 대한 두 가지 통념이 대결하는 장소이지만 또한 상호 함축적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통념이란 그리스 언어 및 그 이후의 정치철학 전통 전체가 에트노스ethnos와 데모스demos라고 지칭해온 것인데, 전자가 소속과 혈통의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인민”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대표와 결정, 권리들의 집합적 주체로서의 “인민”을 가리킨다. 이중적인 측면을 지닌 이러한 구성물의 위력, 또한 이를테면 그것의 역사적 필연성, 그리고 일정한 조건들 아래에서 그것의 우연성과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개인들이 속하는 집단들 사이에 서로 삼투되지 않는 방수된 경계선들을 상상적으로 그림으로써, 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든 아니든 간에 위로부터 개인들에게 지정된 경계들을 서로 주관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문화적이거나 정신적인 민족주의(간혹 “애국주의”나 “시민종교”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를 발전시킴으로써 경계라는 관념을 주관적으로 내면화하는 것, 곧 개인들이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서로 표상하는/재현하는 방식―아렌트를 따라서 개인들이 세계에 존재할 권리라고 말해두자―을 낳은 것이 바로 이러한 구성물이다. 
 

하지만 시민의 권리들―여기에는 교육권과 정치적ㆍ조합적 표현의 권리, 안전한 삶과 적어도 상대적인 사회보장의 권리가 포함된다―의 민주주의적인 보편성을 특수한 국민적 소속과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구성물이다. 이 때문에 국민이라는 형태 속에서 인민의 민주주의적 구성은 불가피하게 배제의 체계들을 산출하게 된다.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균열 및 좀더 심층적으로는 원주민으로 간주되는 인구들과 외래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들로 간주되고 인종적이거나 문화적으로 차별받는 인구들 사이의 균열이 그 사례들이다. 
 

이러한 균열들이 식민화와 탈식민화의 역사를 통해 강화되어 왔으며, 세계화의 시기에는 폭력적인 긴장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각각의 민족체 내부에서 이미 극적이게 된 이러한 균열들은 유럽 연합이 지향하고자 하는 포스트국민적이거나 초국민적인supranationale 공동체의 수준에서 재생산되고 배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프랑스 및 유럽에서 이민자들과 “미등록 체류자들sans-papiers”[“상 파피에sans-papiers”는 말 그대로 하면 “서류 없는 이들” 또는 “체류증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3개월 이상 장기 체류를 위해 필요한 체류증을 갖지 못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이 책에서는 “미등록 체류자들”이라고 옮기겠다.]의 상황에 관한 끝없는 토론 도중에, 유럽적 시민권 그 자체와 동시에 형성되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을 불러내게 되었다. 은폐하기 어려운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는 “동쪽”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남쪽” 주민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능하면서 불가능한 장래의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실재로서의 유럽은 허구적 종족성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유럽은 이러한 유형의 건설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시민권에 대해, 곧 자신이 포함하는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유럽이 부여한다고 간주되는 새로운 권리들의 체계에 의미와 실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제도들과 동시에 개인들의 상상계 속에 기입될 수 있는 유럽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표상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적 동일성 또는 내가 조금 전에 그 발생에 관해 환기한 바 있는 허구적 종족성에 특징적인 폐쇄성은 세계화의 사회적ㆍ경제적ㆍ기술적ㆍ통신적 현실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체의 권리droit de cité en Europe”라는 의미로 이해된 “유럽적인 정치체의 권리”라는 관념, 곧 유럽의 건설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아포리아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곧 인민의 새로운 형상,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역사적 공동체들에 대한 소속(ethnos)과, 다른 한편으로는 집합적 행동, 생존과 노동, 표현에 대한 기본권과 동시에 시민적 평등, 언어들과 계급들, 성(性)들의 동등한 존엄성을 획득함으로써 시민권을 연속적으로 재창조하는 것(demos)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형상을 집합적으로 발명해야 할 필연성에,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그 불가능성에 바로 아포리아의 핵심이 존재한다. 오늘날 유럽적인 인민이라는 관념에 대해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민주주의적인 유럽 국가라는 기획에 대해 내용을 부여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이 맞닥뜨린 두 가지 장애물―모든 유럽적인 사회 정책과 모든 유럽적인 사회 운동에 대한 부정, 유럽에 대한 소속을 규정하는 배타적인 경계선의 권위주의적인 확정―과 동시에 대결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하지 않는 한 인민의 새로운 형상을 발명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이름들의 존속은 모든 “동일성”의 조건이다. 우리는 어떤 이름들을 위해, 또 그 이름들을 전유하기 위해 다른 이름들에 맞서 투쟁한다(유럽,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 하지만 또한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이름들). 이 모든 투쟁은 향수와 국경 또는 유토피아와 변혁 프로그램의 형태 아래 흔적들을 남긴다. 그리하여 유럽이라는 이름(이는 아주 먼 고대 시기에서 유래한 것이며, 처음에는 아시아나 소아시아의 작은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은 세계정치적인 기획들과 결부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들 또는 그러한 시도들이 야기한 저항과도 결부되어 왔으며, 또한 세계 분점 및 “문명” 확산 프로그램―식민지 열강들은 스스로 문명의 수호자로 자처했었다―과도, 세계에 대한 적법한 소유권을 둘러싼 “진영들” 사이의 경쟁과도, 지중해 북부의 “번영 지대”와 “21세기의 열강”을 창조하려는 기획 등과도 결부되어 왔다. 
 

민주주의 정치가 직면한 어려움은, 역사적으로 해방의 기획들 및 시민권을 위한 투쟁들과 결합되어 왔으며, 나중에는 이러한 기획들과 투쟁들을 재개하고 영속적으로 발명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던 표상들 속으로 폐쇄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동일화는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구조들과 이데올로기(문화적ㆍ정치적 통일체에 대한 소속 감정들)라는 이중의 제약에 종속되어 있다. 현재의 쟁점은 유럽적인 동일성 그 자체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의 투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공산주의” 및 진영 분할의 종언 이후에 쟁점은 오히려 유럽의 경계들을 민주화할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유럽의 내적 분열들을 극복하고 세계 속에서 유럽 국민들의 역할을 완전히 재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시민권을 발명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선회하고 있다. 중심적인 문제는 유럽 연합이 “지역적인 질서”의 보장을 감당할 만한, 또는 인도주의적이거나 신식민주의적인 개입들을 통해 대외적으로 자신을 “투사할” 만한 군사적인 역량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지중해 지역의 동쪽과 서쪽 및 남쪽과 북쪽에 공통적인 민주화와 경제 구성의 기획이 입안되고 인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불가능한 유럽, 가능한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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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4-13 01:2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 고맙다. 나오면 해줄게.^^

balmas 2009-04-1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님/예,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떤 걸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nation을 국민으로 번역하면, nationalism도 국민주의라고 옮겨야 적절할 때가 있는 듯합니다. "국가주의"야 발리바르가 "etatisme"이라는 용어를 따로 쓰니까 혼동될 염려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NA 2009-04-15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출간이 될 모양이군요. 축하합니다. 빨리 번역본을 사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장의 한 구절을 보니 진태원 선배님이 nation을 국민으로 옮기고자 하는 이유가 조금 보이는군요. 전 여전히 nation을 민족이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미 전에 충분히 말씀드렸으니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오늘은 droit de cite를 '정치체의 권리'로 옮기신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우선 '정치체의 권리'라는 번역은 언뜻 보기에는 '정치체가 갖는 권리'라는 뜻으로 읽히는데, droit de cite는 오히려 cite에 대한 권리 또는 cite에 들어가고 머물고 떠날 권리를 말한다는 점에서 de를 -에 대한으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cite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있어서 그것을 정치체로 옮긴 것은 일면 수긍이 가지만(왜냐하면 정치체로서의 도시/국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조금 부적절한 면이 느껴집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cite는 장소의 의미를 여전히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곧 도시/국가에 들어가고 머무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정치체라는 말이 자칫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발리바르는 droit de cite를 한나 아렌트의 the right to have rights에 대한 비판적 가공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렌트의 개념이야말로 정치체를 가질 권리, 정치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의미한다면, 발리바르의 droit de cite의 경우는 그 정치체에 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그 장소에 권리들을 가지고 머물 권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cite를 정치체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는 그냥 씨테라고 놔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사람들이 cite, city라는 말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balmas 2009-04-15 02:43   좋아요 0 | URL
예, 사실 droit de cite를 어떻게 옮길까 하는 것도 좀 고민거리 중 하난데, 최원 형 제안이 여러 가지로 유익한 것 같네요. 좀더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PD수첩 탄압은 진실에 대한 탄압" - 전문가 단체들의 입장

시의적절한 좋은 성명서네요. 요즘 다들 조금씩 무기력해지고 시니컬해지는 것 같던데, 이 성명서가  

조금이라도 힘을 북돋아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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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3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balmas님의 "Marx & sons 역자 해제 "

ㅎㅎ 예 고맙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그렇게 바꿔놓았더군요.^^ 신문사에서 나름대로 쓰는 용어법이 있는가봅니다. 여기가 nation에 관해 논의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최원 형이 코멘트를 하셨으니 몇 마디 덧붙여보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citizen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또 반대로 '민족'이라는 말은 배타적으로 종족적인 함의를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최원 형이 "외제적 종족체로서의 nation"이라고 말한 것에는 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nation에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nation=ethnicity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nation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겠죠. nation이라는 말의 서구적 용법에는 오히려 citizenship과의 연관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nation-state는 근대의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 공동체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말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함축된 citizen과의 연관성은 생각만큼 꼭 특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최원 형이 nation은 의제적 종족체이기 때문에 nation은 민족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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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9-03-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하지만 nation이 fictive ethnicity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저로서는 조금 의아하군요. 데리다에게선 아니라는 말씀이시라면 그건 제가 데리다 공부가 짧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저도 더 공부를 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선배님이야 이미 잘 아시겠지만, 관심있는 다른 분들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발리바르는 "민족형태"(이론 6호, 121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nation state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를 지칭하기 위해 의제적 종족체라는 용어를 쓴다."

balmas 2009-03-11 01:28   좋아요 0 | URL
제 말은 nation이 fictive ethnicity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양자를 같은 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nation은 "fictive ethnicity"의 성격도 지니고 있지만,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 공동체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건 데리다 이야기라기보다는 발리바르 자신의 설명이구요. 어쨌든 제가 해석하기에는 그렇습니다.^^

NA 2009-03-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님께서 nation이란 fictive ethnicity의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공동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선배님은 fictive ethnicity를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공동체와 적어도 잠정적으로 대립시키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fictive ethnicity은 정치적 보편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발리바르가 fictive universality를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fictive ethnicity는 그 자체로 정치적 보편성을 갖습니다. 국민이라는 말은 여전히 그러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보편성을 갖는 공동체(nation state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로서의 의제적 종족체를 표현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말이지요.^^

NA 2009-03-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제 뜻을 잘 전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민족이라는 것도 보편성을 갖는데(한민족의 보편성), 민족이라는 말은 그 보편성이 또한 의제적 종족체의 보편성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반면, 국민이라는 말은 그것이 갖는 보편성이 종별적으로 어떤 허구적/의제적 보편성에 연결된 것인지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국민도 국민이고, 도시국가의 국민도 국민이라면, nation form을 지칭하는 말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지요. 국민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거의 citizen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좀 무차별적인 면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제 생각은 그런데, 뭐 번역어의 선택 문제는 항상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90% 제가 맞다고 믿는 것이지요. 저도 더 생각을 해보지요. 전에도 notion가지고 선배님과 토론을 꽤 했었는데, 나중에 그 용어에 대해서만큼은 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통념으로 가기로. ㅎㅎ

balmas 2009-03-12 02:45   좋아요 0 | URL
예, 최원 형 논지는 잘 알겠습니다. "허구적 보편성"에 관한 해석에서 좀 의견이 다른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