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부터 격주로 [한겨레] 신문에서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가 시작됩니다.
21세기 현재 외국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수행하는 저명한 진보 지식인들(주로 사상가 내지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대략 27-8회 정도 연재될 것 같은데, 국내의 전문가들이 각자
한 꼭지씩 맡아서 글을 쓰거나 아니면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아래 글은 전체 기획의 총론격으로 쓴 글인데,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조언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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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를 시작하며
‘역사의 종말’의 기만적 현실성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의 보수적인 저널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역사의 종말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그 글은 2년 뒤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새로운 세계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얼마 못가 그 순진함과 조야함이 드러났다는 의미에서 기만적이었던 이 선언은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후쿠야마가 석학 대접을 받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대한 선언의 현실성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입증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후쿠야마의 선언이 순진하고 더 나아가 기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사실은 반공주의)의 최종적 승리에 대한 그 선언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논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2009년 벽두에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후 어떤 진보 사상인가
20세기 세계 진보 사상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진보 사상은 역사적인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인가라는 화두와 마주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진보 사상은 근본적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다룰 지식인들 중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유일한 지배의 원리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노동자 계급이라는 ‘역사의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극단적인 폭력을 수반하는 고도의 과학기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자신을 포함한 근대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모두 확실하지만 낡은 답변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좀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진보 사상의 주역은 누구인가
우리가 이번 기획에서 다룰 진보 지식인들은 지난 20세기 후반기를 풍미했던 진보 사상의 대가들의 후예다. 프랑스의 경우 알튀세르,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을 계승하고 있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장-뤽 낭시, 브뤼노 라투르, 베르나르 스티글러가 이번 기획의 주인공들이다. 바디우와 발리바르,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지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사상의 성좌에 새겨 넣고 있다면, 낭시는 하이데거와 마르크스, 데리다, 블랑쇼의 유산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여 ‘무위(無爲)의 공동체’라는 독자적인 사상의 경지를 이룩했다. 라투르와 스티글러는 각각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삶의 형식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지, 또한 비자본주의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길은 어떤 것인지 탐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하버마스와 아펠 이후 독일 비판이론의 전통을 계승한 악셀 호네트와 한스 요아스가 이번 기획의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와 비판이론을 독창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사상의 지평을 열어가는 크리스토프 멩케도 주요한 인물로 소개될 것이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책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은 엘마 알트파터나 [히스테리]로 독창적인 여성 연구의 한 차원을 보여준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도 한겨레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기획에서 제일 역점을 둔 것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진보 지식인들에 대한 소개다.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배출한 이후 20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빼어난 진보 지식인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세계 사상의 흐름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다소 때 이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번 기획에서 다룰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지안니 바티모는 모두 이미 독자적인 사상의 영역을 개척한 21세기 사상의 선구자들이다.
영미권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프레드릭 제임슨,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진보 이론의 최전선에서 작업하는 지식인들이 이번 연재의 중추를 이룰 것이다. 이들 중에는 현대 문화연구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튜어트 홀이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급진 민주주의의 제창자로 잘 알려진 샹탈 무페가 포함돼 있다. 또 탈근대 사회의 모순적인 삶의 양상들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저 유명한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이론가들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매뉴얼 월러스틴 이후 가장 주목받는 세계체계론 연구자인 조바니 아리기와 생명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내재한 정치철학적 함의를 추적하고 있는 니콜라스 로즈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지식인들이다. ‘정보시대 3부작’으로 잘 알려진 도시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와 비판지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하비의 작업에서도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인물들은 이른바 ‘북쪽’, 곧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활동하는 진보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 이래 우리가 깨닫게 되었듯이 21세기 진보사상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는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이다. 우리가 서양 바깥의 진보 지식인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 중에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인도의 지식인들이다. ‘현존하는 인도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라나지트 구하는 소수의 전문가들 외에는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지하고 가난한 대중을 지칭하는 서발턴(subaltern)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후반 진보 사상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 놓은 역사학자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에서 영감을 얻은 가야트리 스피박은 서발턴 연구에 비판적으로 동조하면서 탈식민주의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야 센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제창한 ‘센코노믹스’도 21세기 진보 사상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와 인접한 동아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대안을 구상하는지 살펴볼 것이며, 중국의 신좌파 지식인의 대표자인 왕후이가 제창하는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연대에 관한 구상을 들을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좀더 많은 인물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해방 철학의 대가 엔리케 두셀은 우리에게 남아메리카 진보 사상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또 다른 진보의 세기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카지노 자본주의의 거대한 도박 노름에 민중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 30여년 뒤로 되돌아간 듯 공안통치의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정권의 기세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반동의 역풍이 거셀수록 진보의 나무는 조금씩 희망의 싹을 틔울 것이다. 우리가 한겨레 독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진보의 세기가 시작될 수 있고 또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의 씨앗을 뿌리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연재에 많은 독자들의 성원과 조언, 격려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