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술지와 외국 학술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글의 수준? 언어의 차이? 돈받고 판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술지에 한정하자면, 내가 판단하건대,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서평의 차이다.
도서관 같은 데서 외국 학술지를 한번 훑어보기를. 웬만한 외국 학술지는 대개 10여편 정도의 서평을 싣고 있고,
많은 데는 수십편, 아니 때로는 짧막하게나마 수백 편의 서평을 싣는 곳도 있다.
그에 비해 국내 학술지는 마지 못해 한두 편을 싣거나 아예 아무런 서평을 싣지 않는 곳도 있다.
국내에는 서평할 책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정말로??
지금 당장 알라딘을 한 번 검색해보라. 번역서를 포함해서 한 달에 도대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몇 권의 책이 출간되는지. 서평은 하찮은 일이어서 연구자가 할 만한 일이 못되나? 왜??
그런데 왜 외국 학술지, 최근 국내 학계의 오매불망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 외국 학술지는
왜 그렇게 많은 서평들을 싣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이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국내에는 국내 필자들의 학술 도서가 적어서 서평이 거의 없는 것일까?
그런데 번역서는 서평의 대상이 못되는 것일까? 왜?? 오히려 국내 인문사회과학 번역의 실상을 고려할 때
엄정한 번역 비평이야말로 학문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 아닐까?
그런데 왜 서평을 안하지?? 번역이 너무 형편없어서???
인간관계가 얽혀서???? 서로 점잖고 인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내 생각에 서평은 학문 연구자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아닐까 한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남의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책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해야 하고, 그것을 대개 제한된 지면 안에서 균형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좀더 좋은 서평이려면, 이 책을 관련된 분야의 연구 현황 및 역사 속에 위치시키면서
그 책의 위상이나 의미, 한계, 문제점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좀더 욕심을 내보자면, 서평자 본인의
뚜렷한 개성과 관점이 담긴 문체도 담겨 있어야 한다. 이 정도면 훌륭한 학술 서평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논문이나 저서에서 요구되는 사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서평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성은 학계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겠지만, 국내에는 이제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일개 독자로서는 그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평소에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선진
학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고급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부러움과 시샘, 절망감 속에서 바라보곤 하는데,
어느덧 우리나라도, 대부분 번역서들이긴 하지만, 상당한 분량의 고급 지식들이 매일 산출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는 이런 정보들을 선별하고 분류하고 평가할 만한 체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대개 값싼 실용서나 심심풀이 교양서로 지면을 채우곤 하는 신문 서평란에게는 도저히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학계에서 그 일을 맡아야 할 수밖에. 사실 지금도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늦었어도 갖출 건 정확히 갖추고 나아가야 한다.
활발한 서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많들고 그것을 비중있게 대접하는 길 이외에는
그런 체계를 마련할 다른 방법이 없다. 본격적인 서평 전문지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각종 학술지 등에서
서평란을 좀더 넓히고 좀더 비중있는 업적으로 대우하는 일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제대로 된 서평문화의 정착은 자립적인 학술활동, 내실 있는 교양의 축적을 가능하게 할 든든한 받침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어진 것은 [교수신문]에서 아주 반갑게도 서평 특집호를 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자리에서 서평의 중요성과 국내 서평의 현황과 문제점을 말해왔는데,
교수신문에서 이렇게 알찬 특집으로 다뤄주니 고맙기 짝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특집호에 실린 글들을 모두 가져오고 싶지만,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하니까 아래의 주소로 직접 가셔서 한 번 읽어보시길.
제때에, 아주 시원스러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서, 여간 기분이 상쾌한 게 아니다.
------------------------------------------------------------------
왜, ‘서평’을 다시 말하는가 |
서평특집호를 내면서 |
|
|
|
|
 |
|
|
Francois Schuiten,The Ultimate Book, 68.6 X 96.5cm,Poster. |
|
|
추위가 한풀 꺾인 1월말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우려면 한껏 추위를 떨쳐야 하는데, 온난화 탓인지 매서움도 예전만 못합니다. 이 지리멸렬한 계절 한 가운데, 교수신문 <비평> 467호는 ‘서평’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서평이야 일간지를 비롯 곳곳에서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전문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서평지를 표방한 매체도 더러 있긴 하지만, ‘서평문화’가 꽃처럼 만개했다고 보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교수신문 <비평>은 서평 관계자들의 심층 의견조사를 벌였습니다. 교수신문을 비롯, 일간지, 계간지 등에 서평을 기고해왔던 서평자, 서평을 게재하고 있는 계간지의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 등 36명의 전문가로부터 귀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서평문화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서평문화가 이처럼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2
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