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이 나온지도 몰랐다가 어떤 분이 메일로 안부 인사를 전하면서 출간 소식을 전해줘서 알았습니다.

월요일쯤 출간된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군요.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작은 그림으로 보니까 표지 그림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무슨 연기 같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까 허깨비, 유령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 ;;;

책값은 비교적 잘 책정이 된 것 같네요.

하드커버가 아니라 페이퍼백으로 만든 것도 마음에 들고요.  

 

어쨌든 책을 만들어내느라 여러분들이 애를 많이 쓰셨는데, 관계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전합니다.

 

저로서는 오래된 과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어서 홀가분하긴 한데,

이런저런 오역들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

번역의 문제라든가, 아니면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있으시면

<토론> 게시판을 적극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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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자꾸때리다 2007-10-0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 기념 이벤트는 없나요? ㅋㅋㅋ 10만 힛도 그냥 넘으셨는데.

책 디자인은 정말 "킹왕짱" 이네요 ㅍㅍㅍ

근데 양운덕씨 번역본보다 한 1.5배는 두툼해진 듯한...

라주미힌 2007-10-0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겠습니다 :-)

balmas 2007-10-04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헉, 넘 오랜만이시네요. 안녕하시죠?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
Mravinsky님/ ㅎㅎ 이벤트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여건이 별로 안 좋아서 ... 나중에 한 번 하죠.
책이 두꺼워진 이유는, 아마 역주와 역자 해제, 용어 해설 때문일 거예요. :-)
라주미힌님/ ㅎㅎㅎ 감사합니다. 잘 읽히는 번역이어야 할 텐데 ...

딸기 2007-10-04 13:15   좋아요 0 | URL
사.랑.하.는. 발마스님,
댓글 한번 달아보고 싶어서 달았어요~~ 랄라~

청년도반 2007-10-0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왔군요. ㅎㅎ 출간 축하드립니다.

안 그래도 오늘 주문한 『대중들의 공포』가 왔는데,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바로 주문해야겠네요. 올해 9, 10월은 여러모로 풍성하네요. ^^

비로그인 2007-10-0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의 책은 발마스님 책으로 스타트~^^

waits 2007-10-0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표지도 마음에 들고 구입은 하겠지만... 지적 같은 건 언감생심.
대신 구입할 때 꼭 이 페이퍼에 땡스투를 하도록 할께요.
발마스님 축하드리구요, 타지에서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최원 2007-10-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책이 나왔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지금 막 가서 주문을 했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itournelle 2007-10-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 책과 함께 가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네요...이런 표현은 어떨런지? "발마스님과 함께 데리다를" 항상 건강하시길...

rtour 2007-10-0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나왔군요. ^^ 축하드립니다. 책 표지가 '유령'스러운 것이 멋지군요!

람혼 2007-10-05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balmas 2007-10-0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주시면 제가 오히려 고맙죠. :-)
rtour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스피노자 공부는 잘 되고 계십니까? ^^ 표지가 맘에 든다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ㅎㅎ
무화과나무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주세요. :-) 잘 읽히는 번역이었으면 좋겠는데 ... ㅎㅎㅎ
최원님/ 고맙습니다. 벌써 주문하셨군요. 한국에 있었으면 한 권 보내드릴 텐데 ... ^^
나어릴때님/ 오, 오랜만이시군요. :-) 잘 지내시죠? 역시 표지가 마음에 드셨군요. ㅎㅎ 오, 페이퍼에도 계속
땡스투가 되나요? 감사합니다. 돈 좀 벌었네요. ㅋㅋ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어릴때님도
건강히 지내세요.
바람구두님/ 고생은 출판사 분들이 많이 하셨죠. ㅎㅎ 아무래도 이제이북스 북디자이너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가 봅니다. 표지가 좋다고 칭찬하는 걸 여러 번 봤거든요. 나중에 기회되실 때 천천히 읽어보세요.:-)
테츠님/ 왠지 영광스러운 이 기분 ... ㅎㅎㅎ
웅기/ 그래, 고맙다. {대중들의 공포}나 {마르크스의 유령들} 모두 열심히 읽어라. 사학도가 철학도 열심히
공부하니 대견하다. ㅎㅎㅎ
딸기님/ 엄머, 넘 노골적이시다. 부끄럽습니다. ㅋㅋㅋ

릴케 현상 2007-10-0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은 했습니다만^^ 읽는 건 장담 못하겠네요~

balmas 2007-10-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산책님, 고맙습니다. 조금 어려운 책이긴 한데, 2-3-4장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답니다.:-)

바라 2007-10-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출간 축하드립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지요? 어제 서점가서 책 만져보기만 하고 왔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표지보다가격이 예상외로 저렴해서 안도했습니다;; 제겐 너무 벅찰 것 같긴 하지만서도...하여튼 감사히 읽겠습니다(_ _)

waits 2007-10-06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우매한 독자로서 길잡이 글들까지 열심히 올려주시니 감사해요.
근데 페이퍼에도 땡스투는 되던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발마스님의 페이퍼가 뜨지를 않네요.
훌륭한 역자님께 정말 작지만 뭔가 보태드리고 싶었는데...^^;; 진심이예요.ㅎㅎ

balmas 2007-10-06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오랜만이군.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구나. 나는 잘 지내고 있어. ㅎㅎㅎ 나도 가격이 비교적 잘 정해져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책 살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면, 그거 참 괴로운 일이지. :-) 열심히 읽어봐.
나어릴때님/ 헉, 그렇군요. 아마 책 아래 있는 [토크토크]에서 페이퍼를 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그런가봐요. 어쨌든 마음만은 감사합니다. ^^

cplesas 2007-10-0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것이 왔군요. 어떻게 부대로 반입해야할지 고민중입니다.

balmas 2007-10-0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영님/ 군대에 계시군요.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ㅎㅎㅎ 군대가 민주화됐다더니 아직도 이런 책 보기는 좀 어려운가 보죠? 책 표지 제목을 "데리다의 유령들"로 고쳐보시죠. ^^;;
제 친구가 90년 무렵에 군대 있었을 때 데리다의 Grammatology를 영역본으로 보고 있었는데, 부대 장교가 보더니
"우리 마누라도 요즘 데리다에 푹 빠져 있는데, 너도 그러냐?"라고 하더랍니다. ㅋㅋㅋ 국내에 한때 데리다가
그렇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때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
 

 

아래 댓글을 보니까 Yoonta님이 R. H. M. Elwes라는 사람의 영역본을 구했다고 하시네요. -_-;;

Elwes본은 {Ethics}와 {A Theologico-Political Treatise & A Political Treatise}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Dover 출판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왠만한 대학도서관에는 다 비치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판본은 지난 19세기 말에 나온 번역본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지난 1925년에 나온 스피노자의 고증본 전집

(Carl Gebhardt ed., Spinoza Opera, vol. 1-4, Carl Winter) 이 아니라 다른 판본을 대본으로 해서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도 번역 상태가 좋다면 괜찮을 텐데, 요즘은 스피노자 연구자들 중 누구도 이 판본을 사용하지 않을 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번역본입니다.

최근 Amazon을 비롯한 인터넷 서점에서 새로 장정해서 Elwes본을 팔고 있던데,

값이 약간 더 비싸더라도 제가 아래에 소개한 판본들을 구해서 보시는 게 훨씬 좋을 겁니다.

게다가 Elwes 본은 인터넷 상으로도 얼마든지 참조할 수 있으니까 더 사서 볼 필요가 없겠죠.

 

Yoonta님, 좀 안타깝게 됐습니다만, 다른 판본을 구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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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10-0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그렇군요. 싼게 비지떡이라더니..ㅜ.ㅜ

balmas 2007-10-0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 ;;;;;;;;;;;;
 

 

 


국내 스피노자 연구는 인제 걸음마를 하는 단계라서 사실 좋은 연구서나 입문서를 찾아보기 어렵고, 기존에 나와 있는 번역본들도 썩 신뢰하기 어렵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어 텍스트나 연구서에 많이 의존하게 되는데, 영어권 책들 중에서는 다음 책들이 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 저서의 번역본으로는 다음 책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I. 스피노자 저작 번역본

1. 전집류

1) Edwin Curley ed. & trans., The Collective Works of Spinoza vol. 1, U of Princeton P, 1985.

컬리가 편집한 이 책에는 스피노자의 초기 저작들 및 {윤리학} 번역본이 실려 있고, 편지로 일부 수록되어 있습니다. 번역도 좋은 편이고 주석도 많이 달려 있어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일부 주석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신학정치론}과 {정치론} 번역이 수록된 2권도 10여년 전부터 곧 나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

2) Samuel Shirley trans., Spinoza: Complete Works, Hackett, 2002.

컬리의 번역본에 비하면 엄밀한 맛은 좀 떨어지지만, 잘 읽히는 유려한 번역본이고, 한 권에 스피노자의 모든 저서와 편지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죠. 값도 비교적 싼 편입니다.


2. {윤리학} 번역본

{윤리학} 번역본 중에서는 서너 가지 정도를 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Samuel Shirley trans., The Ethics & Treatise on the Emendation of the Intellect  & Selected Letters, Hackett, 1991.

셜리의 이 번역본에는 {윤리학} 이외에 {지성개선론} 및 몇 편의 편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값도 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좋은 번역본입니다. 

2) Edwin Curley ed. & trans., A Spinoza Reade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이 책에도 역시 {윤리학} 이외에 컬리의 [서론] 및 다른 저서의 발췌본이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절판돼서 좀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국내의 웬만한 대학 도서관에는 소장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3) Edwin Curley trans., with an Intoruction of Stuart Hampshire, Ethics, Penguin, 2005.

얼마 전에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컬리의 {윤리학} 번역과 스튜어트 햄프셔의 [서문]이 붙은 새 문고본입니다. 값도 싸고 이용하기에 편리한 좋은 판본입니다. 


3. {신학정치론}

지난 80년대 이래 영어권에서 새로 나온 번역본으로는 다음과 같은 3종이 있습니다.

1) Samuel Shirley trans.,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Hackett, 1998.

셜리의 번역본입니다. 값도 비교적 저렴한 데다가 잘 읽히는 좋은 번역본입니다.

2) Martin Yaffe trans., Spinoza's Theologico-Political Treatise, Focus Publishing/R. Pullins Co, 2004. 

스피노자 및 유대 사상 전문가가 번역한 판본입니다. 상당히 엄밀한 번역이지만,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스피노자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좀 부적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Jonathan I. Israel ed., Michael Silverthorne trans.,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저명한 “케임브리지 정치사상 텍스트” 시리즈에서 올해 나온 번역본인데, 생각보다는 정확성이 좀 떨어지는 번역본인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대를 많이 한 판본인데, 좀 아쉽더군요.

요컨대, {신학정치론} 번역본으로는 셜리의 번역본이 제일 무난할 것 같군요.

4. {정치론}

영어권에서 구할 수 있는 {정치론} 번역본으로는 두 종의 판본이 있습니다.

1) A. G. Wernham ed. & trans., The Political Works of Spinoza, Oxford University Press, 1959.

이 편집본에는 {신학정치론} 발췌본과 {정치론} 완역본이 수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국내 도서관에서도 쉽게 구하기는 어려운데, {정치론} 번역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2)  Samuel Shirley trans., Steven Barbone & Lee Rice‘s Introduction and Notes, The Political Treatise, Hackett, 2000.

결국 이 판본이 요즘 영어권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판본인데, 이 판본은 셜리의 유려한 번역과 바본/라이스의 좋은 서론 및 역주를 겸비하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런데 이 장점은 또 그대로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서론이나 역주에 바본/라이스의 관점이 너무 깊게 반영되어 있어서, 때로는 텍스트를 약간 곡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물론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무난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번역본입니다. 


II. 스피노자 연구서

영어권에는 스피노자 개론서나 연구서가 다른 주요 철학자들에 비하면 좀 부족한 편이긴 하지만,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스피노자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나서 이런저런 연구서들이나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여러 가지 문헌들 중에서 아래의 저서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1. 개론서

1) Genevieve Lloyd, Routledge Philosophy GuideBook to Spinoza and The Ethics, Routledge, 1996.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구자인 로이드의 이 책은 {윤리학}을 직접 읽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윤리학} 1부에서 5부까지 주요 쟁점들을 소개하고 있고, 현대 연구자들 사이의 논쟁도 간략히 제시하고 있어서, {윤리학}의 전체 윤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죠. 책도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죠. :-) 

2) Steven Nadler, Spinoza: A Lif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이 책은 스피노자 전기입니다. 스피노자 전기 중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책이죠. 

3)        . Spinoza's Ethics: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네이들러의 이 책은 {윤리학} 1부에서 5부에 이르기까지 해설하고 있는 책입니다. 일종의 작은 {윤리학} 주석서라고 볼 수도 있겠죠. 네이들러는 화려한 업적을 쌓은 대가는 아니지만 아주 견실하고 꼼꼼한 중견 연구자이고, 이 책은 그의 견실함이 잘 드러나는 입문서입니다. {윤리학}을 읽을 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이죠. 

4) Stuart Hampshire, Spinoza and Spinoz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햄프셔의 이 책은 예전에 나온 {Spinoza}라는 입문서와 함께 그의 논문들을 몇 편 함께 묶어서 펴낸 책입니다. 대학도서관에서는 예전에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입문서도 쉽게 구해볼 수 있을 겁니다. 

5) Henry Allison, Benedict de Spinoza: An Introduction, Yale UP, 1987.

헨리 앨리슨의 이 책은 영어권에서 나온 가장 좋은 스피노자 입문서로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절판이 돼서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내 도서관에서도 한두 군데밖에 소장되어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 출간이 됐으면 좋겠는데, 좀 아쉽더군요.

2. 연구 문헌 몇 가지

그 이외에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나 전문적인 쟁점들을 공부하고 싶다면 아래의 책들을 보시면 됩니다.

Yirmiyahu Yovel ed., Spinoza by 2000.

vol. 1, God and Nature: Spinoza's Metaphysics, Brill, 1989.

vol. 2, Spinoza on Knowledge and the Human Mind, Brill, 1994.

vol. 3, Desire and Affect: Spinoza as Psychologist, Littleroom Press, 2000.

vol. 4, Spinoza on Reason and the "Free Man", Littleroom Press, 2004.

이스라엘 출신 연구자 요벨이 편집한 이 책들은 {윤리학} 1부에서 4부에 이르기까지 주요 쟁점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문을 묶은 책입니다. 영미권에서 나온 논문집 중에서 단연 가장 좋은 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논문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는 논문집들이죠. {윤리학} 5부 이외에 정치학에 관한 논문집도 준비하고 있다니까 더 기대가 됩니다. :-)

국내 도서관에서 비교적 쉽게 구해볼 수 있습니다.  

Don Garrett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Spinoza, Cambridge UP, 1995.

주로 영미권 학자들이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분야에 관해 쓴 글을 수록한 논문집입니다.

Genevieve Lloyd ed., Spinoza: Critical Assessments, vol. 1-4, Routledge, 2001.

스피노자 철학에 관한 영미권의 논문을 묶은 논문집입니다. 좋은 논문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죠. 특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연구자들의 논문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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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내에 번역된 책들 중에서는 다음 책들이 읽을 만합니다.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박기순 옮김, 민음사, 1999.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 몇 편하고,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용어에 대한 해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이죠. 

번역도 신뢰할 만하고, 용어 해설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질 들뢰즈,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권순모, 이진경 옮김, 인간사랑, 2002.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걸작 중 한 권이죠. 그만큼 깊이가 있고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좀 미묘하거나 어려운 논의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꽤 오역들이 많아서 국역본만으로 읽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피에르 마슈레, {헤겔 또는 스피노자}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4. 

역시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대표작 중 한 권으로,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해설서로 활용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와 정치}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5.

스피노자의 정치철학 및 인간학에 관한 좋은 연구서입니다.

안토니오 네그리, {전복적 스피노자} 이기웅 옮김, 그린비,

 

주로 정치철학에 관한 네그리의 논문을 묶은 논문집인데, 번역이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번역이 잘 돼 있다면,

 

스피노자에 관한 네그리의 최근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국내에는 네그리의 {야만적 별종} 번역본도 있긴 한데, 번역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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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9-3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urley의 펭권판 에티카는 국내 대형서점에 가보니 있더군요. 그런데 가격이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대신 Elwes판으로 구입해서 봤는데..이 판에 대한 평은 어떤가요? 어떤 글에서 본바로는 그닥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해이] 2007-09-30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네요.

우주돌이 2007-09-3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감사합니다.
스피노자는 서양의 스님 같은 사람인가? 갸우뚱 했었어요.(그에 대한 저의 이해는 이정도?)

스피노자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9-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찜해노아야지~ ㅎㅎ 지도 감사요~ 발마스님^^

balmas 2007-10-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llnaru님,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yoonta님/ 헉 Elwes판만은 피하셔야 하는데 ;;;;;;;;;; Elwes판은 19세기 말에 나온 판이고, 지난 1980년대 이래 새로운 번역본들이 나오면서 거의 쓰이지 않는 판인데 ...
고니님/ 다행입니다. :-)
우주돌이님/ 스피노자는 보통 "서양 노자"라고 하죠. ㅎㅎㅎ 동양철학 하는 분들 중에서도 노장 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특히 스피노자를 좋아하죠. :-)
테츠님/ 별찜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

2007-10-06 0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7-10-06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맑스주의 대회는 잘 돼가고 있나 모르겠네요. 저도 시간이 있었으면 갔을 텐데,
못가서 못내 섭섭합니다. :-)
나중에 파리에 가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김로디 2016-09-0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도움 잘 받고 갑니다.
 

아마 진태원 선배 말씀을 제가 좀 거칠게 축약을 해버려서 오해를 했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진선배의 아래의 구절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2부 정리 37과 38에서 증명된 것, 곧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과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은 어떤 독특한 사물의 본질도 구성하지 않는다”(정리 37)와 “모든 것에 공통적이고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들은 적합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따라 나오는 규정입니다.
따라서 notio communis에서 “공통적”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모든 물체들 또는 몇몇 물체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요컨대 실재적인 기초(사물들 또는 물체들에 공통적인 것)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초를 적합하게 인식하는, 표현하는 notio가 notio communis인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notio communis와 일반적인 notio, 곧 실재적인 기초를 갖지 않는 상상의 양태나 사고의 양태로서 notio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얼렁뚱땅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피노자가 이곳에서 말하는 것은 '모든 사물들에 공통된 것은 그 자신 사물들의 일부인(즉 그 자신도 사물인) 인간에도 있으며 이 공통된 것에 대해서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저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해당부분을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그렇게 읽히는군요. 당연히 인식 대상과 인식하는 자 사이의 공통성이 common notion의 common이 지시하는 것이다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좀 표현이 거칠었긴 하지만 크게 문제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서 발리바르가 한 말의 앞에 나오는 말을 조금 더 읽어보기로 하죠.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함께 읽어보면 또 다른 맛이 나니 말입니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견해들을 표명함 없이, 친구들로 이루어진 회합에서라도 그것들을 교통하지 않고, 전적으로 혼자서 사고할 수는 없다. 사고의 장소는 사적 개인이 아니며, 그것의 철학적 실체(hypostase)인 의식[양심]의 은밀성이 아니다. 사고의 장소는, 그 한계 또는 범위가 무엇이든, 교통 그 자체이다(cf. 󰡔신학-정치론󰡕 20장, pp. 328-329). 우리는 왜 󰡔윤리학󰡕이 “나는 사고한다”[cogito―데카르트]가 아니라 “인간은 사고한다”라고 공리화하고 나서, 인간은 자신의 의념들이 공통의념들로 되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주는지 이해한다."

저는 여기서 저 마지막 구절을, 인간은 자신의 "통념"이 말하자면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실재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공통통념"이 될 수록 많이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말로 읽을 도리는 없다고 봅니다. 도저히 맥락과 맞질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다른 함의를 이 문장에 실으시려고 하시나 하고 궁금해하다가 진선배가 이번에 주신 질문을 보고, 아!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선배님은, "인간은 사고한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는데, common notion없는 사람은 그렇다면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이냐라는 식의 질문을 주셨지요.

보다 정확히 옮기면, 

"제가 볼 때 최원 형 생각의 난점은 notion은 사적이거나 개별적이고 common notion만이 공통적이다라고 간주한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사고한다Homo cogitat”는 {윤리학} 2부의 공리는 common notion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notion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 질문은 제 관점에서는 질문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이고 따라서 어폐가 있는 질문인데, 그것이 묘하게 선배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의 차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사고의 장소는 특정한 개인이 아닙니다. 위에서 발리바르가 말하듯이 그것은 교통 그 자체이지요. 그리고 "인간은 사고한다"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 개인을 지목하여 이런 사람은 사고를 하냐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개인은 '의식'을 하겠지요. '사고한다'는 것은 '의식한다'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notion은 기본적으로 '의식'에 속할 것입니다. universal notion은 원인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효과/결과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의식에 탁월하게 속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진태원 선배의 해석의 난점은 "인간은 사고한다"를 "모든 개개의 인간은 사고한다"(each man thinks or everyman thinks)로 은연중에 바꿔 놓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적 개인을 사고의 장소로 보는 데카르트 입장이지 스피노자의 입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개개의 개인들로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항상 이미 교통의 과정 속에 있고 거기에서 관개체적인 사고의 과정은 항상 이미 시작되어 있느니만큼 거기에 참여(?)하는 한에서 어떤 모종의 합리성(이론적인 합리성까지는 아니라도 실천적인 합리성이라면 말입니다)을 항상 이미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동안 선배님도 토론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진범님께 책을 맡겨 두는 것은 좀 뭐하군요. 장진범님도 할일도 많을텐데. 나중에 한국에 들어가시면 이메일 한 번 주십시요. 그때 댁으로 보내드리든지 사정이 허락되면 직접 찾아뵙고 드리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좋은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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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7-09-2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올리고 나서 조금 더 추가했습니다.

balmas 2007-09-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최원 형 생각이 뭔지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나는군요. :-) 그런데 스피노자에 관해서는 더 이야기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역시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한국에 가서 메일 한 번 드리죠. 수고했습니다. ㅎㅎㅎ
 

 

 

ㅎㅎㅎ 최원 형의 답변을 잘 읽었습니다. 최원 형으로서는 “의념”이라는 번역어에 상당히 애착이 가는가 봅니다. 번역자로서는 당연히 그렇겠죠. :-) 이야기를 계속 해나갔으면 좋겠는데, 이번 답변으로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일단락 짓는 게 좋겠군요. 이 정도 했으면 최원 형이나 내 생각은 충분히 표현된 거 같고, 사실 더 한다고 해서 얼마나 더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올지도 약간 의문이 듭니다. 이쯤에서 논의를 끝내고 사람들이 각자 판단하도록 맡겨두기로 하죠.

그런데 최원 형의 답변에는 제 글에 대한 몇 가지의 오해가 엿보이는 듯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의미에서 그것만 몇 가지 바로 잡아보기로 하죠. puissance에 관한 이야기는 그 정도 했으면 됐다고 봅니다. 

우선 common notion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좀 놀랍더군요. 

“진선배님은 notion이란 명확히 1종의 인식에 속하는 것이고 common이 그 앞에 붙어 줌으로써 2종의 인식이 되므로, 합리성의 원인은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공통성을 가리키는 common에서 주어져야 한다.(1-1) notion은 그 자체로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통용되는 것으로 거기서 통용된다는 측면은 common notion의 common과는 상관이 없다고(1-2)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

좀 아랫부분에도 다음과 같은 지적이 나오죠.

“저는 스피노자의 common notion이란 단순히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어떤 부분의 일치에 대한 인식을 의미할 뿐(2-1)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우선 최원 형이 {윤리학} 2부에 나오는 common notion의 의미를 (1-1)이나 (2-1)처럼 해석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학정치론}을 제외한다면) {윤리학}에 나오는 common notion의 의미가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공통성을 가리키는”, “단순히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어떤 부분의 일치에 대한 인식을 의미할 뿐”인 건지요? 저는 지난 번 제 답변이나 제 논문 어디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이런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최원 형 자신이 {윤리학}에 나오는 common notion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 방식인데, 최원 형은 그것을 제 견해라고 말씀하시니 좀 당황스럽더군요.

또 다른 이유는 저는 지난 답변에서 {윤리학}만을 문제 삼았고 {신학정치론}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데, 최원 형은 제가 {신학정치론}의  common notion의 용법을 간과한 가운데, common이 “공통적”이라는 사실을 못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2). 제가 지난 답변에서 {윤리학}만을 다룬 것은 그 이전에 최원 형이 지난 번 글에서 notion의 번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윤리학}이 “나는 사고한다”[cogito―데카르트]가 아니라 “인간은 사고한다”라고 공리화하고 나서, 인간은 자신의 의념들이 공통의념들로 되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주는지 이해한다."

여기서 notion을 통념으로 옮기면 이상한 말이 됩니다. "인간의 통념이 공통통념일수록 인간은 더 많이 사고한다"(진 선배님 번역, 198쪽)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이 경우 통념은 이미 공통된 관념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면, 공통된 관념이 공통된 관념이 되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곧 최원 형은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notion 자체는 개별적이거나 사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는 듯해서, {윤리학}에 나오는 notion의 용례를 살펴보면서 그 용례에 비추어보면 notion은 결코 개별적이거나 사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거나 집단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common notion과 universal notion이 어떻게 다른지 해명하는 차원에서 {윤리학}에서 볼 때 common notions의 “common”은 일반적인 notions과 달리 실재적인 기초를 가진다, 곧 모든 물체들 또는 몇몇 물체들에 공통적인 특성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참되거나 적합하다고 말한 거지요.

제가 볼 때 최원 형 생각의 난점은 notion은 사적이거나 개별적이고 common notion만이 공통적이다라고 간주한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사고한다Homo cogitat”는 {윤리학} 2부의 공리는 common notion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notion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곧 스피노자가 이 공리에서 데카르트의 “ego cogito” 대신 유적인 인간을 주어로 하는 "인간은 사고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고는 항상 이미 공동적이다, 사고는 항상 이미 소통을 함축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이 점에는 최원 형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최원 형이 생각하듯이 notion을 가진 사람은 사적이고 개별적으로 사고하고 common notion을 갖는 사람들만 공통적이고 소통을 한다면, notion만을 가진 사람들은 일종의 인식의 자연 상태 안에서 혼자 고립된 채로 사고하는 원자론적 cogito가 아니겠습니까? 그럴 경우 “인간은 사고한다”는 공리는 공리가 아니게 되겠죠. 더욱이 어떻게 자연 상태 안에 고립된 채 존재하는 개별적인 cogito들이, 말하자면 사회상태, 국가를 설립해서 common notion을 가지게 되는지도 더 의문스럽지 않겠습니까?  

이 점과 관련하여 최원 형은 지난 번 제 글의 핵심 논점은 간과한 듯한데, 다음 구절이 제 글의 핵심 논점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원 형이 인용한 발리바르의 문장도 약간의 모호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문장 전후의 맥락을 보면 발리바르는 notion은 개별적인 것이고 notion commune은 공통적인 것, 교통을 함축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그렇지 않죠. 모든 notio가 “보편적인 것”이고, 이러한 보편적인 notio를 형성하는 두 가지 방식, 하나는 부적합하고 상상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합하고 합리적인 방식인 두 방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보편자를 구성하는 또는 인식하는 두 가지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1부 [부록]이나 4부 [서문]에 나오는 notio에 관한 용법은 아주 일관된 셈입니다. 

제가 볼 때 notio나 notio communis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이 진정으로 혁신적인 점은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 역시 notio communis에 대한 논의에서 이전까지의 논의와 단절된 면모를 보여주지만, 결코 notio에 대한 발생적인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더 나아가 notio를 보편자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두 가지 상이한 인간학적, 심지어 정치적인 방식의 문제로 보지는 못했죠.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notio를 구성하는 두 가지 방식의 문제는 윤리적, 정치적 개체화의 상이한 양식에 관한 쟁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제가 발리바르의 주장이 모호한 인상을 준다고 말한 것은, 최원 형이 이 말을 ‘notion은 개별적이고 common notion만이 공통적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notion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common notion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고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 최원 형이 (번역하고) 해석하는 식의 말을 하지는 않지요. 따라서 발리바르의 진의를 정확히 해명하려면, 곧 그의 말에서 모호함의 인상을 제거하려면, “더 많이 사고한다”는 말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런데 최원 형은 답 글의 첫머리에서 “제 판단으로 그 구절에서 common은 여러 사람에게 공통되다는 뜻으로 발리바르가 쓴 것이 확실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최원 형의 이 말은, 위에서 말했듯이 제가 common notion에서 “common”을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공통성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단순히 대상인 개체와 인식하는 개체 사이의 어떤 부분의 일치에 대한 인식을 의미할 뿐”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전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제 말 뜻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제가 바로 다음에 덧붙인 구절에서 잘 드러납니다.

“모든 notio가 “보편적인 것”이고, 이러한 보편적인 notio를 형성하는 두 가지 방식, 하나는 부적합하고 상상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합하고 합리적인 방식인 두 방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보편자를 구성하는 또는 인식하는 두 가지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제 말은 universal notion을 형성하는 것과 common notion을 형성하는 것은 보편자를 구성하거나 인식하는 상이한 두 가지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편자를 구성하거나 인식하는 것은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죠. 그것은 항상 어떤 집단적인 사고 양식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양식과 결부된 문제입니다. 스피노자가 {윤리학} 1부에서 목적론적인 편견에 빠진 사람들, 따라서 예속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들이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을 해명하기 위해 notions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곧 notions 또는 universal notions은 예속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및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집단적인 사고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지,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최원 형이 강조하는 common notions의 “이론(주의)적” 측면과 “실천(주의)적” 측면도 해명이 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는 common notions의 용법과 관련하여 이론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반면, {신학정치론}에서 그 실천적인 측면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뜻합니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부적합한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의 이행, 더 나아가 수동적인 삶의 양식에서 능동적인 삶의 양식으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죠. 이런 목표를 염두에 둔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1종의 인식의 상태에서 벗어나 2종의 인식, 3종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1종의 인식과, 2-3종의 인식 사이에는 일종의 단절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1종의 인식이 부적합한 인식이고 “오류의 유일한 원천”인 반면, 2-3종의 인식은 적합한 인식이라고 말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겠죠. 요컨대 양자 사이에는 이행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common notions은 이러한 이행을 달성하기 위한 기반이자 동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1종의 인식, 곧 상상이나 의견, 또는 universal notions은 거짓과 오류, 기만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다시 말해 배제하고 제거하고 떠나야 할 영역으로 간주되지요. 따라서 여기서는 예속 상태에 놓여 있는 무지자, 우중과 자유, 해방, 구원 등을 달성한 현자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고, 무지의 상태, 예속과 기만의 상태에서 벗어나 적합한 인식과 자유, 구원을 향해 전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현자도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수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우중들과 더불어, 그들과 상상과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이죠. {윤리학} 5부 마지막에 가서 “우중vulgus”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죠. 따라서 {윤리학}의 핵심 주제는 오류와 가상의 원천인 1종의 인식에서 벗어나 2종의 인식, 3종의 인식으로 나아가는 전진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1종의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 상상과 언어의 사용을 그만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신학정치론}이 정치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학정치론}의 주요 주제가 현자와 대중의 공통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또는 좀 더 나아가 상이한 notions을 갖고, 상이한 종교, 상이한 세계관, 가치관 등을 갖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었기 때문이겠죠(발리바르가 Sub spicies universalis라는 논문에서 {신학정치론}에 나타나는 “실천적 보편성”의 문제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점이겠죠). 곧 {윤리학} 5부 마지막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우중과 현자의 관계라는 문제를 재조명해볼 수 있는 근거를 {신학정치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common notions의 문제도 새롭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볼 경우 common notions의 실천적인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우중들의 지니는 notions을 개조하는 것, {윤리학}에서처럼 완전히 notions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예속 상태에, 곧 신학권력의 지배 아래 있는 우중들의 notions을 개조하는 것이 주요한 문제가 됩니다. 여러 집단들이 각자 자신들의 notions(스피노자에게는 특히 상이한 종교적 notions이 문제일 텐데요)을 고집하는 상태에서는 첨예한 갈등과 폭력,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스피노자의 테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진정한 종교의 기초로서 “Credo minimum”이라는 게 있지요. 다시 말해 신에 대한 복종과 경배를 정의 및 박애와 등치시키는 실천적인 교리가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common notions의 한 가지가 됩니다. 둘째는 자유로운 공화국을 위한 부정적인 기초(다시 말해 왜 개인적인 의견과 사고, 발언, 종교 등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는가에 관한 논거)로서 언어의 공통성(또는 사고의 조건으로서 소통 및 그 물질적인 토대로서 언어)이라는 것이 있겠죠. 사실 {윤리학}에서 언어는 상상에, 1종의 인식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데 비해,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따라서 우중만이 아니라 지식인까지도)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이 더 부각되죠. (물론 과연 {윤리학}에서 언어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되느냐 하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최근 여러 주석가들이 보여준 것처럼 {윤리학}에서도 기호 및 언어의 자연성, 물질성에 관한 논의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언어나 기호 또는 notions 일반의 문제에서 {윤리학}과 {신학정치론}을 지나치게 대립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우리는 왜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인간의 notions이 common notions일수록 인간은 더 많이 사고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앞서, “나는 사고한다”고 말하지 않고 “인간은 사고한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때, <<더 많이 사고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1) 여기서 “더 많이 사고한다”는 것은 최원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로만 국한될 수는 없습니다. “서로 공유한다”는 것은 notions 일반의 특징이지, common notions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2) “더 많이 사고한다”는 것은 <<더 참되게, 더 적합하게 사고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 참되게, 더 적합하게 사고한다는 것을 가리키죠. 그리고 이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참되게 사고한다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인식의 양식과 삶의 양식, 곧 1종의 인식 및 미신적이고 예속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개조의 투쟁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미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부적합한 인식과 미신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개조가 없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참되게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그런데 notions 일반 속에 이미 “여러 사람들이 서로 공유한다”는 특징이 들어 있지 않다면, 이런 투쟁의 쟁점, 이런 개조의 쟁점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3) 따라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common”을 최원 형처럼 “서로 공유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common의 의미를 평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적이고 개별적으로 사고하던 개인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그러나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공동으로 사고하게 된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4) 요컨대, notions 자체 안에 이미 “여러 사람이 공유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common notions은 notions과 다른 어떤 지평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인 notions 내부에서, 그것들을 개조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 많은 것을 사고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해준다고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common notions이 그런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지 “공통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들에 공통적인 특성”을 표현하는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윤리학}에서 common notions은 notions과 달리 “실재적인 기반을 지닌다”고 말할 때 의미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5) ㅎㅎㅎ 그래서 결국 제 생각으로는, 적어도 스피노자에서 notion은 “통념”이라고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봅니다.

어쨌든 최원 형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해줘서, 서관모 선생이나 최원 형의 의도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듯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로서는 웬만큼 이야기를 한 셈이니까, 특별한 쟁점이 새로 제기되지 않는다면, 다음 번 최원 형의 답글로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은 마칠까 합니다.

타향에서 추석 잘 보내시고, 알라딘 주인장 여러분도 즐거운 한가위 맞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번역본을 한 부 보내주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책은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11월 초에

한국에 한 번 들어갈 예정이어서, 들어가서 살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다른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을 보내시려면 이곳으로 부치지 마시고 장진범 형에게 맡겨두면, 제가 한국에 들어가서

만나서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힘들게 번역한 책을 당연히 사서 봐야 하는데 그냥 덥석 받자니 염치가

없기는 하지만, 고맙게 받아서 열심히 읽겠습니다. 서관모 선생에게나 최원 형에게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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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vinsky 2007-09-2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모르겠다. 빙빙@.@ ~~~

balmas 2007-09-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Mravinsky님, 앞으로 스피노자 공부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