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무슬림사회 청년들 나날이 급진화
알카에다와 무관한 ‘자생조직’ 번성
서구사회 ‘무슬림 급진화’ 본격 성찰
영국 무슬림 청년들의 여객기 공중폭파 음모가 들통난 뒤, 무엇이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게 만들었는지를 두고 영국 정부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서구 언론과 정부는 무슬림 청년들의 급진화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루스 켈리 영국 공동체·지방정부 장관은 14일 무슬림사회 지도자들과 만나, 청년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 공동체를 존중하는 정책을 펴라고 요구했고, 양쪽은 “솔직하고도 날카로운 논쟁”을 벌였다고 한 관리가 전했다.
언론들이 조명하는 일부 무슬림 청년들의 대담함은 “영국이 바로 테러기지”라는 말이 나오게 할 정도다. 테러조직들은 국립공원에 훈련캠프를 차리는가 하면, 대학 사무실을 음모를 꾸미는 데 쓰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브루넬대 앤서니 글리스 교수는 지난 15년간 이슬람 극단주의 학생조직 20개가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적발되는 테러 음모들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수행했다기보다는, ‘자생적 테러세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더욱 높인다. 이웃의 성실하고 수줍은 무슬림 청년이 어느날 ‘트로이 목마’ 속의 적병으로 표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가 일부 영향을 준 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가담자 대부분은 알카에다를 접촉한 적이 없다. 알카에다가 이제 ‘사회운동’이 됐다거나, 사실상 이름만 빌려주는 식의 ‘프랜차이즈 조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카에다를 박멸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대테러 전략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영국 사회 주류는 테러리즘이나 순교를 영예로 여기는 광신적 태도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160만명 규모의 영국 무슬림사회가 나날이 급진화하는 가운데, 이런 접근법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지적도 강하다.
일간 〈가디언〉은 극단주의자들이 청년들을 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이번 음모로 체포된 청년 여럿이 다니던 체육관 관장 말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7·7테러 뒤 긍정적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이끌려는 취지의 행사에 수백명을 모았는데, 급진적 단체 사람들이 접근해 왔다. 극단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무시받는 무슬림 청년들을 파고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처참하게 죽은 레바논 어린이 사진 등이 전자우편으로 돌아 무슬림사회를 술렁이게 만들기도 했다. 한 이슬람 인권단체 관계자는 “영국 정부는 폭발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엠피3를 기내에 휴대하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편에서는 레바논을 강타할 폭탄을 미국이 스코틀랜드 공항을 통해 나르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종교적 배경 외에 다른 영국 청년들에 견줘 두 배 이상인 무슬림 청년들의 실업률이 보여주는 사회경제적 처지도 불만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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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행 항공기 테러음모 혐의로 체포된 파키스탄계 영국인 타이브 라우프(왼쪽)가 체포 몇시간 전인 지난 10일 영국 버밍엄의 식품 도매점을 찾은 모습이 이 상점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찍혔다. 버밍엄/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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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무슬림사회 왜 다른가
영 ‘파키스탄계 밀집형…우애돈독’ - 미 ‘구심없는 산개형’
52명이 숨진 지난해 7·7 런던테러를 비롯해 영국에서는 해마다 무슬림 청년들에 의한 테러 기도와 실행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알카에다가 기획한 9·11사건 말고는 영토 안에서 미국인 무슬림들에 의한 별다른 이상동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두 나라 무슬림들의 정착 형태가 차이나는 게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만~300만명으로 인구의 1%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 무슬림들은 한 곳에 모여살기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그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거나, 서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들 기회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160만명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영국 무슬림들을 비롯한 유럽 무슬림들은 따로 모여사는 경우가 많다. 동부에 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런던은 이슬람 국가 이름에 많이 쓰이는 ‘스탄’(땅)이 붙은 ‘런더니스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 영국 무슬림 인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5만명이 파키스탄 출신이기 때문에 유대관계가 한결 돈독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국적과 종교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 정체성인가’를 묻는 국제 설문조사에서 영국 무슬림의 81%가 종교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파키스탄계의 신앙심과 종교적 유대감이 깊다는 얘기다.
이본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