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학과 사회] 가을 호는 생명 정치(biopolitics)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특집의 편집 책임을 맡아서 기획하고 필자 섭외하고 역자도 물색하고 글 한 편 쓰고
하느라고 좀 바빴는데, 이제 모두 정리가 되고 출간을 앞두게 돼서 홀가분하네요.
이번 특집은 모두 4편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제 글은 푸코의 생명 정치론을 개괄하는 것이고,
파리 1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양창렬 선생이 쓴 두번째 글은
푸코의 생명정치론과 아감벤의 생명정치론을 비교, 분석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필자인, 미국 로욜라 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최원 선생의 글은
인종주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푸코와 발리바르의 논의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푸코가 1974년에 강연했던 [의료의 위기인가 반의료의 위기인가]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제 글은 좀 허접하지만(에구 민망해라 ^^;;;),
양창렬 선생이나 최원 선생의 글은 푸코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나
현대 생명정치론의 쟁점들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글입니다.
푸코의 글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어쨌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생명정치론을 다루는 기획이니까
관심을 갖고 많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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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을 내며
“생명 정치bio-politics”나 “생명 권력bio-power”은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개념들이다. 하지만 미셸 푸코가 지난 1970년대에 처음 사용한 이래 이 개념들은 현재 서양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생명 정치라는 개념이 많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지난 1997년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던 강의록들이 속속 출간되어 이 개념이 통치성gouvernementalité 개념과 더불어 푸코의 후기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코의 개념을 원용한 이탈리아의 철학자인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과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등의 작업 역시 생명 정치론을 부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아감벤은 1995년 출간된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저서에서 생명 정치 개념을 독창적으로 활용하여 서양 정치철학의 역사 전체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푸코의 주장과는 여러 모로 대조적인 결론을 이끌어냄으로써 생명정치에 관한 논의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밖에 지난 세기 중반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생명공학이 제기하는 문제들 역시 생명정치론이 각광받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문학과 사회 특집호는 이처럼 국제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생명정치론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꾸며졌다. 우리는 생명정치론이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이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뿐더러,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탐구하고 해명하는 데도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
이번 특집은 모두 네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글인 「생명 정치의 탄생: 미셸 푸코와 생명 권력의 문제」에서 진태원은 생명 정치라는 개념이 푸코의 작업에서 등장하게 된 이론적 맥락을 분석하면서, 이 개념이 푸코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그는 생명 정치 개념은 푸코의 작업에서 드물게 사용되며 더욱이 일시적으로 출현했다가 곧 사라지지만, 푸코 사상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생명공학의 발전에 걸맞은 새로운 생명윤리를 모색하는 데서도 푸코의 작업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두 번째 글인 「생명 권력인가 생명 정치적 주권 권력인가」에서 양창렬은 생명 정치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감벤의 작업과 푸코의 작업을 비교ㆍ분석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아감벤은 푸코의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또한 푸코에 맞서 자신의 고유한 생명 정치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은 두 사람의 이론적 차이점뿐만 아니라 현대의 생명정치론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 다음 「인종주의라는 쟁점: 푸코와 발리바르」라는 제목의 세 번째 글에서 최원은 푸코의 생명 정치론의 또다른 축을 이루는 인종주의에 대한 분석을 발리바르의 작업과 비교하면서 검토하고 있다. 푸코의 인종주의 분석은 식민주의와 젠더 정치에 대한 고찰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대의 인종주의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논점이다.
이번 호 생명 정치 특집의 마지막 글로는 「의료의 위기인가 반의료의 위기인가?」라는 푸코의 글을 수록했다. 이 글은 지난 1974년 푸코가 브라질에서 강연했던 세 편의 글 중 하나로, 생명 정치의 문제설정을 엿볼 수 있는 최초의 글 중 하나다. 푸코는 이 글에서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의료나 반의료냐 또는 자연 치료법으로의 회귀냐를 둘러싼 논쟁의 무익함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18세기 서양 사회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의학과 보건 정책을 지배하고 있는 의료화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푸코가 제시하는 생명 정치의 구체적인 면모가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이 글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어서 의료화에 관한 논의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생명 권력, 생명 정치에 관한 논의의 깊이와 넓이, 다양함에 비추어본다면, 우리가 이번 특집에서 제시하는 논의들은 개략적이고 시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로서는 이 특집이 국내에 처음으로 생명 정치의 문제설정을 소개하는 기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쪼록 이번 기획이 국내에서 생명 정치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6. 8
bal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