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
2006-06-26 11:33 | VIEW : 116

"진보, 더 이상 침묵하는 건 죄입니다"



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2006년 6월 26일



지난 6월19일,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 87년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 딸)를 만났다. 인터넷신문 <레디앙>과 함께 기획한 이번 인터뷰(인터뷰기사 [원문보기])는 이미 레디앙에 기사화되었으며 많은 반향이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만을 정리한 부분이다. 기사는 레디앙의 윤재설기자가 작성했다.

- “동진호가 납북, 억류된 경위에 대해 먼저 말씀을 해주시죠.”

=“1987년 1월15일 텔레비전 속보를 통해 동진호가 납북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정부로부터 ‘아버님이 인천에 모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2월초에 아버님이 오실 것이다’라는 통보를 받았죠.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아버님 기자회견이 취소됐다’고, ‘남북한에 미묘한 뭔가가 있어서 오지 못하게 됐다, 최선을 다하겠다…’ 그런 공문이 왔어요.

사실 저는 북한을 몰랐어요. 아버지가 납치되셨지만 배를 타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매일 매일 돌아오는 분이 아니라 한달에 한번 정도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납치돼도 실감이 안 났어요. 언제나 그랫듯이 저희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오시며 집으로 오실 것만 같았어요.

아버지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건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납북되었음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1999년이었는데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전반적인 실태조사가 모든 일간지에 실린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정치범 수용소…. 저는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를 못했어요. 짐승도 먹지 않는 그런 것을 먹는 곳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인 22명. 거기서 아버지 이름을 봤어요. 너무나 황당하고 믿을 수가 없었죠. 어떻게 믿어요.”

최우영 씨는 먼저 통일부에 전화를 했다. 통일부에서는 그 자료는 국가정보원에서 배포한 것이라며 자기들은 모른다고 했다. 국정원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는 만나지 않겠다, 자신이 누군지 밝힐 수 없다, 자료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며 귀찮아했다.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 인간 이하 삶을 살고 있는데 얼마나 힘드신지 알고 싶어 통일부 를 찾아갔죠. 갔더니 공무원이 87년도 자료를 그대로 읽고 있는 거예요. 똑같은 얘기 들었다고 얘기하니까 그 공무원은 충격을 받아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왜 탈출 못하냐고 원망했었는데…"

저는 아버지를 원망한 시절이 더 많았어요. 제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했고 목숨을 걸고 오시는 분인데 기다려도 오지 않으시는 거예요. ‘목숨을 걸고 탈출을 왜 못해’하고 원망했던 마음이 너무 죄송스럽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한 거예요. 한달을 울었어요.”

이 얘기를 지금까지 수백 번 했을 테지만 이 대목에서 최씨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뒤에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서 탈북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놀라운 사실을 많이 듣게 됐죠. 그분들 중에 한분이 아버지를 봤는데 아버지가 한달에 한번 햇볕을 보러 나왔대요. 한달에 한번 햇볕을 보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희망을 가지라는 거예요.

박종철 사건 잘 아실 거예요. 수지김 사건도 알려졌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저희 아버지 사건일 거예요. 87년 그날 박종철 사건이 있었고 김만철 씨 가족이 탈북해서 대만으로 갔었죠. 북한에서는 김만철 씨가 탈북이 아니라 배가 떠내려 간 거라고 하면서 송환을 요구했죠.”

당시 전두환 정권은 탈북해서 대만으로 갔던 김만철 씨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왔다. 그러자 북한은 동진호를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김만철 씨 가족과 맞교환을 요구했고, 남한 정부가 이를 거절하자 북한은 동진호를 간첩선으로, 선장인 김순근 씨와 어로장인 최종석 씨를 간첩으로 몰았다.

- “아버지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정부를 통해서 들은 적은 없나요.”

= “정부를 통해서 들은 적은 없어요. 기사를 통해서 봤죠. 적어도 나에게는 국가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댈 곳이 없는 거죠. 그때 그 기사를 못 봤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 “납북 후에 최종석 씨가 북한에서 비전향장기수로 몰렸었는데요.”

= “북한은 아버지를 비전향장기수로 주장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비전향 장기수는 김순근씨와 아버지입니다. 우리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내주고 그 전에 이인모 씨도 보내줬죠. 그런데 한국은 북한이 인정하고 있는 비전향장기수에 대해서도 송환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견디기 어렵고 이미 3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었지만, 이 부분만큼은 우리 정부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한에서 학교 나왔고,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세금을 내고, 제 동생은 군대를 갔어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건데 침묵 당하고 무시 당하고…. 자다가도 눈물이, 피눈물이 나요.”

- “납북자 가족들은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들었는데 실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요. 이사 가면 찾아오고…. ‘납북자 가족’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납북자 가족이라고 지금도 밝히지 않아요. 전쟁 때 82,950명, 전쟁 후에 489명 납치가 됐어요. 한 집 건너 납북자와 관련이 다 있을텐데…. 언론인이 납치됐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방송국 피디가 납치됐어요. 학교 선생님이 납치됐어요. 한살짜리 애가 납치됐어요. 온가족이 납치가 됐고, 독일에서 공무원이 일하다 납치됐고, 학생들이 납치됐어요. 그런데 납북경위라든지 하나도 밝혀지지가 않았잖아요.”

- “납북자들 중에서 돌아오신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 같은 경우에는 정보기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 등 돌아와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요.”

= “그렇죠. 그런데 저희가 그런 분들까지 못 챙겼어요. 저희는 피해자 단체이고 다들 직장들이 있고, 직업으로 활동하는 분이 없거든요. 갈 곳이 없으니까 저희한테 오시는데, 그런 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고문을 많이 당해서 40세 이전에 많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남은 분들이라도 살아계실 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었으면 해요”

- “납북자가 485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국정원에서 명단을 통보해주는 것은 아닌가요.”

= “생사확인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현재로선 이산가족 만날 때 한번 만나는 것이 전부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는 똑같은 간첩이었는데 북한에서는 가족들이 영웅대접을 받잖아요. 장기수들은 국내 30여 인권단체들 도움으로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활하는 모습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보기도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생사확인조차 못하고 있지요.”

인터뷰 말미에 최씨는 “<송환>을 보면 우리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반대하는 단체로 비쳐졌다”며 “그건 명백히 왜곡된 이미지”라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들 만나보세요. 가난이 대물림되는 생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6년간 (납북자 관련 특별)법제정을 요구해왔지만 아직도 법제정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정부를 향해서 청원을 한다던가 그런 적은 없었는지요.”

= “방법을 몰랐어요. 최근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님이 도와주셔서 하게 됐죠. 일찍 알았으면 그런 것부터 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 “200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이 있었고 이듬해 4월 국가인권위가 ‘납북자가족 인권침해에 관한 실태 파악과 특별법 제정 권고안’을 발표했는데요. 그 이후 이종석 통일부 장관 청문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 “역대 장관들 중에 특별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분입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 “납북인지, 월북인지 어떻게 아냐, 그런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얘기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땐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유괴를 당했어요. 유괴 납치범이, ‘가출해서 나한테 왔다’고 하면 그 얘길 누가 믿나요? 그런 사람한테 손을 잡고, 괜찮을 거라고, 곧 올 거라고, 고생이 얼마나 많냐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저희들은 북한보다 남한의 벽이 더 두터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진보단체들의 무관심, 냉대, 의혹의 눈초리

최우영 씨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금세 납북자 가족을 지원해줄 단체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한달만에 생겼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원단체가 쉽게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평화, 인권, 통일과 관련된 단체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최씨에게 돌아온 것은 무관심과 냉대, 의혹의 눈초리뿐이었다.

= “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진보진영에서는 어느 정도 대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제 납치 문제는 전세계의 인권문제가 되어 미국, 일본 뿐아니라 유럽의회에서도 납치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있어요. 독일, 폴란드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인터뷰 요청을 하고 있어요.

2003년에는 이미 영국의 목사님이 납북된 안승운 목사에 대한 생사확인을 북한에 제기한 사례도 있어요. 시대가 많이 변해 세계적으로 한국의 납북자 인권문제에 대해 행동을 시작하고 있는데 과연 납북된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언제까지 그렇게 팔짱만 끼고 있을런지요.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납북자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켓 하나 들어주는 게 고마울 따름

물론 피해자와 제3자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그동안 얼마나 납북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는가를 되묻게 하는 최씨의 토로는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었다.

- “일본내 주류의 움직임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나 인권법 제정을 통해 압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합니다. 한국에서도 시청 앞에서 30만이 모여 북한인권대회를 하면서 압박을 하는데 그게 과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적인 접근일텐데요. 2월에 적십자 회담에서 북한이 낮은 수준이지만 납북자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산가족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 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는 것인데요. 가족들은 더디고 답답하게 느끼겠지만 그나마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이나 대화채널 확보로 가능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부터 한국의 납북자 문제해결 방향은 중요한 실험대에 오르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납북자 가족들은 만나야겠고 만난 가족들은 송환을 포기하고 국민들 관심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오는 28일 최계월 씨가 아들 김영남 씨를 만나러 가는데 분명, 북한은 ‘자기가 스스로 왔다. 북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찬양을 하리라 생각돼요. 이 상황에서 납북자 김영남 씨 가족이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받쳐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요. 그래서 단 1명이라도 송환되기를 기원합니다.”


“북한, 일본에는 잘 하면서 우리는 무시”

- “그게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일본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그래서 만나지 말라고 하는데요.”

= “일본에서는 이미 ‘만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일본에서는 귀국의 사례가 있었잖아요. 요코다 메구미 씨는 유골이 송환됐고요. 그런데 그게 가짜였고 한 분은 동물뼈가 섞여 있었다고 하고요. 우리는 돌아온 사례가 없어요. 송환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살아계시면 송환해야 되고, 돌아가셨으면 유해라도 모셔와야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한은 일본의 납북자문제만큼 우리를 존중해줬으면 해요. 그것이 진정한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납북자 문제는 북한 인권 문제 아니다"

우리는 북한 인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국내 인권의 문제예요. 우리도 북한인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납북자 문제는 국내문제예요.

- “납북자 문제가 북한 인권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북한인권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섞어서 얘기하면 진보는 얘기하기 꺼려지고 보수는 북한체제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납북자 문제는 남한 정부가 책임을 다 했는가라는 문제이고, 북한이 힘없는 민간인에게 가한 국가적 범죄행위로 성격을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최씨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두 시간 넘도록 길게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최우영 씨는 작은 소망을 밝혔다.

“저도 아름다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기에는 납치피해자 가족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과 양심있는 지식인과 NGO활동가들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다음 주면 김영남 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질 것이고, 미국과 일본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국회에서는 납북자 관련 특별법 제정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그동안 납북자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해온 진보진영이 이제 최씨의 작은 소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자세가 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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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조기 어학연수 붐

 

입력: 2006년 06월 26일 18: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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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갈 어학연수라면 일찍 가는 게 낫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확대하면서 캠퍼스 풍속도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조기 어학연수 붐. ‘영어강의 스트레스’를 못 이긴 신입생들이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조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려대 언론학부 이모씨(20)는 “친구들 절반 정도가 2학년 마치기 전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다”며 “영어 스트레스로 군입대를 서두르는 후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외국민 특례입학 학생들의 약진도 눈에 띠는 현상.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 덕분인지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데다 최소한 영어강의시간에 자기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점을 잘 받고 있다.

서강대생 박모씨(26)는 “교수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회화를 잘하는 특례입학생의 학점이 더 잘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공지식보다 영어로 학점이 결정되는 현실에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원생들도 죽을 맛이다. 각종 과제와 시험 채점은 대학원 조교의 몫인데 영어강의가 늘면서 채점 스트레스가 늘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대학원생 김모씨(28)는 “문법이 틀리는 영어를 읽는 것도 괴롭지만 정확한 점수 매기기가 어려워 단어 중심으로 채점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틀이면 끝나던 채점이 일주일을 넘길 때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김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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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上) 준비안된 부실수업

 

입력: 2006년 06월 26일 18: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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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대학 강의들이 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이고 교수들의 영어수업 역량도 떨어지면서 부실강의로 이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글로벌화의 명분 아래 진행되는 영어강의의 그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ㄱ대의 ‘수리물리학’ 시간. 원서를 보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지만 책을 보고 읽는 수준이었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는 학생도 교수도 진땀을 뺐다.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 ㅇ대의 사회학 전공과목인 ‘지식사회학’은 텍스트를 영어 원문으로 읽고 학생들이 소규모로 토론을 벌이는 수업. 하지만 번역서를 읽기에도 난해한 저작을 영어로 이해하는 것이 벅찬 데다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부족했다. 기초적인 의견교환만 하다 결국 교수·학생 합의 아래 한국어로 토론수업을 진행했다.

주요 대학들이 글로벌화 명분 아래 영어강의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인 데다 일부 교수들은 영어강의를 소화할 역량이 없다. 영어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한 강의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26일 각 대학에 따르면 고려대는 전체 강의 중 30%가 영어강의이며 201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2007학년도부터 5개 이상 영어전공강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연세대도 전체 수업 중 18%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2010년까지 40% 선으로 영어강의를 늘리려 한다”며 “영어강의시 강의료를 추가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줘 더 많은 영강이 개설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역시 2006학년도 입학생은 3과목, 2007학번은 4과목 이상 들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서울대는 2006학년 1학기 전체 교양강좌의 10%를 영어강의로 지정했다. 이중에는 한국 근현대사·한국문학 등 한국학 관련 과목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의 확대가 대학본부로부터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강의를 영어강의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한국사학과 등 역사관련학과를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영강의무화 학과로 지정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김모씨(21)는 “영어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학생·교수 모두 한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학생간 영어 실력차와 교수들의 영어강의능력 부족도 걸림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어원서를 읽는 수준이거나 아예 영어회화수업으로 변질된 강의도 많다. 문제는 강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전공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양대 영문과 조모씨(22)는 “지난 학기에 영어강의 ‘문학과 시’를 수강했는데 영어능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학생 허모씨(24·여)는 “교수님들도 영어강의를 하면 의미가 70%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이 재학생 375명을 대상으로 영어강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불만족의 이유로 ‘영어수준이 너무 높아 이해하기 힘들어서’가 42.5%였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의 모종린 학장은 “굳이 영어강의가 필요없는 곳도 많다”며 “전공별로 차별화해서 영어강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일·이호준·김유진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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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교수가 낸 책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그가 '쓴' 책들(사실은

'녹취한' 책들이라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르지만)을 읽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쉽지 않다.

 한편으로 그가 쓴 경제학 분야의 책들은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현학적이어서,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이윤율 경제학에 관한 수학적인 논의들이 특히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경우는 지나치게 요약적이거나 말하자면 짜깁기 식이어서 또 읽기가

쉽지 않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공부를 하고 논리를 엄밀하게 다듬어서 이야기한다면, 

글도 매끄러워지고 논점도 분명해질 텐데, 때로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견강부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호하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또 어떤 경우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해서 또 읽기가 쉽지 않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스피노자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singular'이기 때문입니다. 'singular'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다(single)는 뜻을 갖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일자라는 말입니다. 마르크스

생산관계의 관점에서 개인을 비판한다면, 스피노자는 유일자의 관점에서 개인을 비판한다고 할

있겠지요."([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 128쪽)

 

명색이 스피노자 전공자인데도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

나는 자기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저렇게 자신있게 주장하는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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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6-27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부분 기억 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singular와 individual을 대비시켰던 것 같던데요...

이 책 읽고 계시나요? 사실 그 때 스피노자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 궁금한 게 굉장히 많았는데... 그 때마다 발마스님께 좀 여쭤볼 걸 그랬네요. 얼마전 이진경 씨 책 읽을 때도 철학 쪽 얘기들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들이 꽤 됐었거든요. 다음에는 좀 갖고 와서 여쭤봐도 될런지요? ^^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 중에서 과시적 글쓰기 외의 글을 못 쓰는 분들(위의 두 분을 칭하는 것은 아닙니다)의 글을 보다 보면, 그게 그 전공분야 내에서 통용되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jargon인지, 아니면 쌩야부리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더라구요... 일반 독자들이 <지적 사기>를 가려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싶어요...

balmas 2006-06-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처음 나왔을 때 조금 읽다가 치워두고 다시 조금씩 읽고 있답니다. :-)
ㅎㅎㅎ 제가 뭐 제대로 답변해드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야 답변해드릴 수는 있지만 ... ^^;;
윤소영 교수가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논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윤소영 교수가 사회성격논쟁의 중심에 있을 때는 결코 저런 식의
나이브하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지 않았거든요.

yoonta 2006-06-2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할수없는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_-제가 보기엔 윤교수는 개인individual은 분할할 수 있고 유일하지single않지만 스피노자의 대상은 분할불가능하고 유일한 singular (단독자?개별자?라고 번역해야 하나요?)이다라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자연/신에 대한 설명이라면 맞는 것도 같은데..발마스님은 어떤 점에서 이해할수없거나 틀리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balmas 2006-06-2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타님, singular는 자연/신에 대해 적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윤리학] 2부 정의 7을 한번 보세요.

singular 또는 singular thing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간략하게 써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 참조하시는 게 좋겠네요. 아래 주소로 한번 가보세요. :-)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320


yoonta 2006-06-2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근데 그렇다면 즉 자연/신에 적용되는 것이라면 맞는 이야긴가요?
저도 어서 스피노자 윤리학에 한번 도전해봐야 하는데 아직은 엄두가 안나네요...^^

balmas 2006-06-3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ingular라는 말은 자연/신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죠. 그것은 자연 사물들,

유한한 실재들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입니다.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 적용하는 단어로는 "unicus", 곧 "유일한"이라는 게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신의 유일성, 유일한 신 등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하다"는 말은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대략 두 가지 

방식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모델의 여러 가지 사례, 또는 표본에 대해

이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우표는 지구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우표다"

라고 말할 때, 이런 의미로 쓸 수 있겠죠. 이 경우에 이 우표의 유일성은 우표의 본성에서

따라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우연적인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우표는 본성상

유일한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원인들의 결과(다른 우표들은 모두 화재로 불타

버렸다든가 하는)로 유일한 것이죠. 

반면에 신 또는 자연의 유일성은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결과, 또는

스피노자 자신의 용어법대로 하면 "특성"(proprietas)으로서의 유일성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유일성"이라는 것은 그밖의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balmas 2006-06-3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윤리학]은 혼자서 읽기는 매우 힘든 책입니다. 비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헤겔의 [대논리학] 같은 책을 혼자 읽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죠.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좋은 주석서도 없으니까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너무 사기를 저하시키는 이야기인가요? ^^;;
 
 전출처 : 로드무비 >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만약에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올리브유와 생리대와 샴푸가 한꺼번에 떨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
시장에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을 것이다.
평소 시장비가 5만 원이라면 10만 원을 써야 한다.
10만 원이라면 2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거기다 소고기 국거리라도 큰맘먹고 한 근 사게 되면
계산대 앞에서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 게 틀림없다.

그런데 만약 지갑 속에서 현금을 꺼내어 계산한다면
시장바구니는 절반 정도로 줄지 않을까?
카드로 지불하면 아무래도 자신이 쓴 돈의 구체적인 액수가 실감나지 않게 마련이다.

살 것이 많을 땐  대형마트가 편하다.
매대 사이를 누비며  메모해 온 물품을 집어 카트에 던질 때는 묘한 쾌감이 인다.
메모에는 분명 없는데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은 물품들도 있다.
1 플러스 1 상품이 그렇고, 사은품이 본품을 능가하는 물건도 있다.
사은품으로 주는 밀폐용기 같은 건 찾아보면 한 박스는 될 텐데 볼 때마다 욕심이 난다.
예전에는 동네에 슈퍼가 새로 문을 열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통을 개점 선물로 주었다.
그 플라스틱 통이 탐나 온 식구를 동원해서 슈퍼에 가는 아줌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부가 되고 보니 플라스틱통의 용도는 어쩜 그리도 다양하고 쓸모가 있는지
나도 가능하면 아이들까지 줄 세워서 한 개 더 받고 싶다.
더구나 플라스틱은 분리수거가 가능하니 낡아서 버릴 때 따로 애쓸 필요가 없다.

요즘은 의도적으로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
동네의 농협슈퍼를 이용한다.
달걀 한 줄이나 급히 필요한 두부, 맥주 큐팩 같은 건 단지 앞의 작은 가게에 가서 해결한다.
장사가 안 되어 술만 드시고 있는 아저씨를 보면 가슴이 무겁다.
채소나 나물 같은 건 되도록 노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땡볕에 시든 나물 바구니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들이 우리 동네엔 어쩜 그리 많은지......

지난주 겉절이 하려고 연하디연한 열무 한 보따리를 샀더니 그걸 봉지에 담으며 할머니,
"이 채소로 반찬 맛있게 해먹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오!"하는 인사를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부추와 생강을 사러 농협슈퍼에 들렀더니 부추단이 너무 실하다.
'부침개 한 번 해먹고 겉절이에 좀 넣고 그래도 남겠네?'하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자니 조금 전 부추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부추가 필요한기요?"

"아뇨, 딱 절반이면 좋겠는데......"

"그러면 우리 절반 노눕시다. 부추는 꼭 남아서 버리게 되더라고."

화끈하신 할머니는 말이 끝나자마자  절반 딱 나눈 부추를 비닐봉지에 넣어 내게 내미셨다.
급히 지갑에서 동전을 찾아 반에 해당하는 돈을 드렸더니 안 받으시겠단다.
죄송해서 어쩌냐고 했더니 서로 좋은 일이란다.
참으로 쿨하고 멋진 할머니였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내가 부추든 뭐든 사겠다고 인사하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좀전 알라딘에 들어오니 노마트, 즉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기사를
라주미힌님이 퍼오셨다.
그날 두 분 할머니에 대해 페이퍼를 하나 써야겠다 생각하면서 집으로 왔는데 까먹고 있었다.
잊기 전에 급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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