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 [거인](랜덤하우스 중앙, 2005)

 

유령-되기

 

그 사이 나는 아프고 늙지는 않았어요

그날의 햇살과 눈부신 의심 속에서

 

내가 유령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느냐, 그게 문제겠지요

 

그렇다면 얼굴이 생길 때도 되었는데

얼굴 다음에 표정이 사라집니다

윤곽이 사라진 다음에 드디어 몸이 나타났어요

내 몸이 없을 때 더없이 즐거운 사람

 

그 얼굴이 깊은 밤의 명령을 내린다면

누군가는 '아프다'고 명령할 겁니다

그날의 태양과 눈부신 의심 속에서

 

감정의 동료들은 여전히 집이 되기를 거부하지요

돌, 나무, 사람들의 데모 행렬엔 한 사람쯤

흘러다니는 내가 있어요

 

허공과 바닥을 섞어가며

흙발과 진흙발을 번갈아가며

공기가 움직일 때 나도 따라 걷는 사람

 

그가 유령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느냐가 문제겠지요

나는 중요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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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2006-06-17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 멋있네요. 김언..
 
 전출처 : 바람구두 > 친일파 후손, 서울대 총장 임명 옳은가?

친일파 후손, 서울대 총장 임명 옳은가?
[오마이뉴스 2006-06-15 16:56]
[오마이뉴스 정지환 기자]
 
▲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 이 교수 홈페이지 캡처.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가 일제시대에 식민사관을 수립하고 전파한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근 만났던 몇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받았던 질문 내용이다. 그들이 기자를 대면한 뒤 잊고 지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낸 것처럼 이런 질문을 던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기자가 수년 전 <시민의신문> 지면을 통해 보도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기사, '비명(碑銘)을 찾아서-실증사학자 이병도와 특무대장 김창룡의 기묘한 인연'을 떠올렸던 것이다.

우선 이 기사가 나오게 된 전말부터 소개하면 이렇다.

이건무-이병도-이완용, 이들의 기묘한 인연

2003년 3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차관급으로 승격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이병도의 손자 이건무씨를 임명했다.

바로 그 다음 날 이 신임 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인 이병도의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는데,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핵심 내용이었다.

물론 손자가 할아버지를 옹호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변호에도 어느 정도의 논리와 상식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할아버지를 옹호하려 한다고 해도 이른바 '국립'중앙박물관장이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민족과 역사의 정체성까지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포함해 한국의 언론인 중에서 이 발언에 주목하거나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이지 부끄럽게도 열흘 정도가 흐른 뒤 우연히 사석에서 몇몇 역사학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기자마저 그런 인사(人事)와 발언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군을 '사냥'했던 죄업 때문에 해방이 되자 한때 지하로 숨기도 했지만 정부수립 직후 도리어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는 심복으로 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특무대장 김창룡, 그가 옛 부하들에게 암살된 뒤 이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묘비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용비어천가를 방불케 하는 낯부끄러운 엉터리 비문을 지어바쳤던 역사학자 이병도.

3년 전 기자가 그들의 기묘한 인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역사기행'을 떠난 데는 이런 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역사기행 끝에 도달한 행선지에서 야생동물의 배설물과 흙덩이와 뒤엉킨 채 쓰러져 있는 김창룡의 조각난 묘비를 찾아냈다.

역사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증사학'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으로 위장한 이병도가 사실은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과 같은 가문(우봉 이씨)이었으며, '가문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이완용의 관 뚜껑이라는 역사적 유물을 가져다가 일방적으로 태워버렸다는 엽기적(?) 사실과도 조우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병도가 이완용을 자신의 조상으로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즉 '이완용 콤플렉스'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이병도를 두고 이병도의 손자인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그것은 '죽어서도 편치 못한' 친일파와 그 후손의 비극적 말로와 왜곡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초상이기도 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혹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역사의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이병도의 손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상황이었다.

이번엔 또 다른 손자가 서울대 총장 눈앞

 
▲ 서울대 정문 앞 전경. ⓒ2006 안현주
ⓒ2006 안현주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그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친형이 '국립'서울대학교 총장 후보로 선출되어 대통령의 낙점만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바로 기자에게 제보를 한 사람들임은 물론이다.

독일월드컵 열풍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6월은 보훈의 달이다. 얼마 전에는 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인 현충일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일제가 한국사를 왜곡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에 급조한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하며 식민사관 총서인 <조선사> 간행에 관여했고, 그 씻지 못할 죄업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단행본에서도 청산돼야 할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의 자손들이 당당하게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데 이어 '국립'서울대학교 총장까지 석권할 판국이다.

아시다시피 민족사학의 거두 박은식이 중국에서 지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국내에 유입되자 당황한 조선총독부가 조선사 왜곡을 위해 급조한 것이 '조선사편수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가 2005년 8월 29일(경술국치일)에 사전 공개한 3090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상 1차 명단 자료에 따르면, 이병도는 이 식민지 관제 기관의 주구로 무려 13년(1925년∼1938년) 동안 일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손자가 할아버지를 옹호할 수 있다고 해도, '조선사편수회'를 무슨 '조선어학회'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대 모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병도(실증사학파의 대부)가 지식인이자 역사가로서의 지조를 내팽개치고 외세의 간교한 권력과 타협하며 알량한 일신의 안위와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역사가인 백남운(사회경제사학파의 대부)은 옥고를 치렀고, 신채호(민족사학파의 대부)는 망명을 택했기에 더욱 그렇다.

문제제기 없는 언론들... 왜?

참으로 암담한 것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변함없이'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고 할 것이다. 도리어 "민감한 인사 문제 개입이나 현대판 연좌제 적용은 위험" 운운하면서 비판적 문제 제기의 책임을 방기하거나 나아가 그러한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

평소 '코드인사 절대불가'를 외치며 온갖 민감한 인사 문제에 개입해 왔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을 생명보다 귀중하게 강조하던 보수언론도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병도 문제는 단순히 한 개별의 자연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 젊은 역사학자가 기자에게 전해준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단재 신채호를 보면 두계 이병도가 보인다. 단재는 박은식과 함께 한국 근대 역사학와 민족사학의 비조로 불린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된 학술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부끄럽고 놀랍게도 197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그것도 신용하(사회학), 김영호(경제학) 교수 등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병도가 해방 이후 서울대 사학과(한국사 분야)를 접수한 뒤 주류 역사학계는 이병도 후학들에 의해 장악됐다. 그렇게 '이병도 사관(史觀)'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신채호 같은 인물은 철저히 잊혀진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언론의 정면비판이 진정 국내정치용 제스처와 포퓰리즘에 입각한 눈 가리고 아웅식 접근방식이 아니었다면 우리 내부의 친일 문제부터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가 시민의신문에 보도했던 기사를 정리해 올린 것입니다. 인터넷시민의신문(ngotimes.net)에는 이밖에도 몇편의 글이 더 실려 있습니다.


기자소개 : 정지환 기자는 현재 <시민의신문> 취재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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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월드컵 방송, 얘기 좀 해보자(강준만)

2006. 6. 14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606/h2006061318353024390.htm

 

[강준만 칼럼] 월드컵 방송, 얘기 좀 해보자

이탈리아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는 “과연 월드컵이 벌어지는 일요일에 무장투쟁이 가능한가? 축구 경기가 있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서남대 김욱 교수는 “축구 경기가 없는 일요일에는 언제나 혁명이 가능한가”도 물어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과연 누가 ‘무장투쟁’이나 ‘혁명’을 원하는가?”라는 질문도 추가로 던질 필요가 있겠다.

● 월드컵 과잉과 시청률 지상주의

최근 들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월드컵 열풍이 강해지면서 신문에 그걸 비판하는 기사들이 실리고 있는데, 그게 영 어색하다. 주로 방송의 월드컵 과잉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기사가 실린 지면을 넘기면 몇 개 지면이 월드컵 일색이다. 그렇게 괜한 시늉 내지 말고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해보면 안될까?

월드컵 열풍에 대한 비판은 거의 대부분 사회적 ‘기회비용’을 걱정하는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의 기회비용이다. 월드컵 열풍에 파묻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사건들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새삼 드는 생각은 “언젠 안 그랬나?” 하는 의문이다. 월드컵 과잉이 워낙 지나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월드컵 과잉은 4년에 한달이지만 나머지 3년 11개월이 더 문제가 아닌가?”라는 재반론도 가능하다.

방송사 측에선 월드컵 과잉은 ‘다수결주의’ 또는 ‘시장 논리’라는 주장을 내심 할 법도 하다. 월드컵 과잉을 비판하는 쪽은 소수이고 시청률은 그런 편성이 옳았다는 걸 입증해주니 말이다. 방송사들이 시청률이 낮게 나오는데도 그렇게 월드컵에 미쳐 돌아갈 리는 없잖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논의해야 할 것은 ‘시청률 지상주의’일 게다.

시민단체들은 특별히 공영방송인 MBC와 KBS를 문제삼고 있다. 공영방송만큼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인 것 같다. 그런데 수천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조직을 MBC와 KBS라 부르면서 비판해봐야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사장과의 대화를 시도해보는 게 좋겠다. 대화를 거부한다면 사장을 집중 비판하면 될 일 아닌가.

MBC 최문순 사장과 KBS 정연주 사장은 이른바 ‘개혁ㆍ진보파 사장’이다. 그들은 대단히민주적인 사장이겠지만, 기본적인 편성의 원칙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지금의 월드컵 과잉은 그들의 동의ㆍ지원하에 이뤄진 정책으로 보는 게 옳다. 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모두 다 당당한 자세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한쪽은 비판하고 다른 한쪽은 모른 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은 공영방송의 시청률이 떨어지면 일부 신문들이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고, 그로 인해 재정이 어려워지면 ‘방만한 경영’ 운운하며 공격하는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우리가 모르는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자.

● 공영방송 근본 문제 짚어봐야

공영방송 이대로 좋은가? 월드컵 핑계 대고 아예 이 문제까지 건드려보자. 누가 사장이 되건 전혀 바뀔 수 없는 방송사 특유의 ‘게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도 이번 기회에 알아두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될 게다.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다울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런 근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게 아닌가.

아니면 한달 정도의 월드컵 과잉도 인내하지 못하는 소수파의 옹졸함에 관용을 구해보자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건 얘기 좀 하고 살자.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훗날 누군가가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추진해도 할 말 없게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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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본분 망각·사회적 책임 외면·상업주의 조장 방송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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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광기어린 월드컵 편성을 즉각 중단하고,
이성의 영토로 돌아오라!



점입가경이다.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한국사회의 모든 미디어는 월드컵에 마비 증세를 보여 왔다. 지상파 3사는 평가전을 동시중계하며 시청권을 훼손하였고, 뉴스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미FTA, 평택,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들에 등을 돌렸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시민사회와 민중의 목소리는 방송이 목놓아 외치는 ‘대한민국’에 파묻혔다. 결국 우리나라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오늘, 방송은 더 이상 어떻게 할래야 할 수도 없는 괴기스런 편성으로 우리를 경악하게 하고 말았다.

오늘 새벽 12시부터 오늘 밤 12시까지 각 방송사별 편성의 원칙은 예외없이 ‘월드컵 전면도배’이다. KBS의 경우 1TV의 경우 24시간 가운데 14시간 40분을 월드컵 프로그램으로 편성하였다. KBS 2TV의 경우는 11시간 가량을 월드컵 프로그램으로 할애하고 있다. MBC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물론 18시간 30분으로 SBS보다 편성 비율이 그나마 적지만 아침 8시 30분 <MBC 모닝쇼 ‘최윤영의 오늘 아침’>을 시작으로 하여 오후 12시 50분부터는 월드컵 프로그램이 아닌 것이 없다. 오후 5시 15분부터 한국과 토고 경기가 있기 전까지 특별생방송을 편성하는 등, 월드컵 싹쓸이 편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SBS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오늘 새벽 12시부터 오늘 밤 12시까지 24시간으로 보면 월드컵 관련 편성은 무려 21시간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공영방송의 역할과 책임을 바닥에 내버린 채 과연 월드컵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 시청자들의 비판적 눈초리는 보이지 않은 채 돈과 축구공에 혈안이 된 방송사는 월드컵 이후 어찌 미디어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려 한다고 과연 떠벌릴 수 있을까? 과연 누가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도저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방송 3사의 광기어린 편성에 참혹함을 넘어 허무함을 느낀다. 방송이 제조하는 광풍 앞에 진지한 표정으로 언론의 책임, 방송의 공공성과 문화 다양성 확대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일이 서글프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오늘 죽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2년 월드컵이 어떻게 사회를 마취시켜가는가를 경험한 바 있다. 언론이 사회적 수임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월드컵 싹쓸이 편성까지 서슴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상업적 이익이라는 자본의 검은 그림자가 공영방송을 시꺼멓게 덮고 있다. 엄청난 편성료를 지불하고, 천문학적인 광고수익을 챙기려는 언론의 수작에서 막대한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이 연상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모든 사회적 의제들을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기적인 목소리로 치부하며, 오로지 대한민국만을 연호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언론이 기획하는 월드컵이다. ‘4강신화의 재현’ ‘필승’에 대한 언론의 광적인 집착은 자연스레 국가주의와 비이성적 집단주의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다. 이러한 증후는 이미 4년 전부터 예고되었다.

거듭되는 개혁의 실패와 민주주의의 후퇴의 원인은 결코 정치권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상업주의에 팔아먹은 언론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지금 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핑계 삼아 월드컵을 판돈으로 내걸고 한국사회를 거대한 투전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또 거듭하려하는 언론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이여, 비이성적 월드컵 편성을 즉각 중단하고, 이성의 영토로 돌아오라!
방송이여, 광풍 제조를 중단하고, 월드컵 넘어 진실을 방송하라!



2006년 6월 13일
다산인권센터/문화연대/민중언론 참세상/ 인권운동사랑방/전쟁없는세상/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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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춫현 & 펌~ 이요.

balmas 2006-06-1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아워요. ㅋㅋ
 

사회화와노동
2006.06.12 |314호

한미 FTA에 민중의 미래는 없다!
한미FTA 1차 본협상의 의미와 우리의 과제


생산과 고용이 아닌 금융적 팽창을 통해 자본의 위기를 지연시켜가는 세계 경제에 편입하여 소수의 재벌만 살아남겠다는 지배세력의 전략에 결코 노동자 민중의 이익은 없다. 그를 위하여 “투자자”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반면 민중의 모든 권리를 초민족 금융자본의 이윤활동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취급하고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 한미 FTA의 본질이다. ‘국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화’하는 동안, IMF의 처방에 따라 한국 사회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가중되었다. 농업·농촌은 붕괴되고, 빈곤은 확대되었으며, 노동권 · 여성권 · 건강권 · 교육권 등 민중의 권리는 파괴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한 국가의 탄압과 폭력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는 동안 고삐 풀린 초국적 투기자본은 막대한 이득을 챙겨갔고, 한국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확대해갔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의 시급한 과제는 지배세력이 그동안 ‘한국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목 놓아 외쳤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이렇듯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파괴적인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 전략에 적극 동조해가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한미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한 재벌 중심의 ‘생존’ 전략에 편승해 그 혜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이와 전혀 다른 노동자 민중의 대안을 형성하는 운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투쟁은 그 출발점이다.[자세히]


회원 토론회, “지방선거 이후 정세와 사회운동의 전망”

- 일시: 6월 20일(화), 19:00,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 토론 주제: 지방선거 결과 분석, 향후 정치지형 전망, 민주노동당 선거 대응 평가, 향후 사회운동의 대응 등

- 사회: 류미경 정책편집국장

- 패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정종권, 임필수 집행위원장, 인천지부 등 3-4인 [자세히]




[카르케디] 비교우위, 자본축적, 사회주의

G. Carchedi, "Comparative advantages, capital accumulation and socialism", Economy and Society, vol. 15, no. 4, pp.427-44, November 1986을 요약, 번역한 글입니다. [월간 사회운동] 6월호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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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4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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