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민음사에서 출간될 스티븐 내들러의 신작,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에 대한 추천사입니다.
제가 추천사 분량을 착각해서 의뢰받은 것보다 3배 정도 많은 분량의 추천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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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내들러,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추천사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여전히, 미지의 텍스트다. 스피노자가 사망한지 35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스피노자의 철학을 찬양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해설하기 위해 많은 잉크가 사용되었음에도,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요지부동, 독자들에게 쉽게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 그만큼 난해하고 난해한 텍스트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독자들이, 특히 스피노자를 전공하거나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독자들이, 스피노자를 찾고 [에티카]를 읽어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낯설고 난해한 텍스트의 어떤 점이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에티카]를 읽을 때마다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스티븐 내들러는 영어권 스피노자 연구자 가운데 독특한 면모를 지닌 철학자다. 대개의 영어권 연구자들은 [에티카]의 이런저런 주제들에 관한 면밀하고 분석적인 연구에 천착하며, 대개 논문을 통해 작업을 한다. 그들은 주로 영어권의 동료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저술 활동을 한다. 반면 내들러는 스피노자 연구의 전문적인 논의에 직접 참여하는 연구자이면서도, 이 논의들을 소화하여 폭넓은 대중을 위한 교양 저작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스피노자에 관한 전기나 [에티카를 읽는다],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같은 저작들은 작가로서 그의 능력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본서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역시 내들러의 이런 장점이 아낌없이 발휘된 책이다. 내들러는 그동안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주로 전념해왔던 형이상학이나 인식론 같은 주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윤리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스피노자가 자신의 대표작에 [에티카]라는 이름을 붙였음에도, 스피노자의 윤리 사상은 그동안 연구자들에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우선 ‘신 즉 자연’이라는 문구로 요약될 수 있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이 워낙 압도적인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기보존의 노력을 의미하는 코나투스 개념에 기초를 둔 스피노자의 윤리가 이기주의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자유인은 언제나 정직하게 행동하며, 절대 기만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거나 “이성적인 사람은 자살을 할 수 없다.”처럼 유별나 보이는 명제들만이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반면 내들러는 이 책에서 한편으로 [에티카]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서양 철학 전통과의 비교를 통해 스피노자 윤리 사상이 지닌 매력과 강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내들러가 내세우는 주인공은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서의 자유인이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인은 특별한 사람이지만, 성인(聖人)이거나 초인은 아니다. 자유인도 보통 사람들처럼 때로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때로는 분노를 터뜨리고, 때로는 슬픔에 빠지면서 수많은 정념을 겪는다. 인간은 외부 존재자들과 끊임없이 교섭하면서 서로 변용하고 변용되는 관계 바깥에서는 실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념들은 자유인의 행동을 추동하지 않으며 그에게 길고 오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자유인의 자유는 무엇보다 자주적인 자유, 이성의 지도에 따라 흔들림 없이 자신의 존재 역량을 보존하고 향상시키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자주적인 자유인은, 하지만 누구보다 진정한 친교와 우정에 힘을 쏟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처럼 이성의 지도에 따라 코나투스를 발전시키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이로써 더욱 진실하고 견고한 우정의 관계를 쌓아나가려고 한다. 또한 자유인은 자신의 자주성과 능동성이 신 또는 자연이라는 궁극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깊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이 그 일부를 이루는 신의 지적 사랑은, 따라서 불멸성의 추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삶의 영원성에 대한 자각, 나의 삶의 현재를 영원성으로 이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특별하고 쉽지 않은 노력이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만약 내가 이런 책을 썼다면, 아마 나는 내들러보다는 좀 더 관계론적인 입장을 택했을 것이고, 좀 더 [에티카]의 추론 과정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도 내가 내들러보다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서 이 책을 읽는다면, 교양 독자들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연구자들도 이 책에서 얻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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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책에 실릴 추천사는 아래 내용입니다.^^ 아래 추천사를 읽으실 때 위의 내용을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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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내들러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전문적 논의에 직접 참여하는 학자인 동시에 이 논의들을 소화해 대중을 위한 교양 저작으로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역시 내들러의 작가적 역량이 아낌없이 발휘된 책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 연구에서 주로 주목받는 형이상학이나 인식론 같은 주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윤리적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 욕망이나 분노, 슬픔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존재 역량을 보존하고 향상시킬까?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자신을 지키면서 어떻게 타인과 함께 성장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아 나갈까? 죽음에 집착하지 않고 현존하는 삶의 영원성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내들러가 인간 본성의 전형이라 할 자유인의 모습을 통해 답하는 물음들이다. 그는 한편으로 『에티카』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서양 철학 전통과의 비교를 통해 스피노자 윤리 사상의 매력과 강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교양 독자들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연구자들도 얻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