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님이 헤겔의 근대철학사 강의에 관한 책을 읽다고 잘 모르는 게 있다고 아래 같은 질문을 남겨주셨네요.
제가 그 책을 보지 못해서 정확히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아래처럼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도움이 되길 ...
(답변은 이탤릭체로 표시했습니다.)
산책님의 질문
데카르트가 말하는 연장res extensa을 가진 사물은, 그가 뚜렷하게 그런 것으로 깨닫지는 못했다 해도, 실제로는 사유의 부정으로서의 존재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유가 연장된 존재에 본질적인 규정들을 부여하고 있는데도, 그는 제멋대로 연장을 사유로 환원시킨다. 일단 우리가 (순수하게 논리적이고 영원한 진리들인) 본유관념들을 넘어서 사물들에 보편적인 규정들을 부여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된다. 첫째, 정신과 물체와 자연은 모두 실체들이지만 신이라고 하는 보장 체계에 의존하며, 그 신은 개념과 실재를 절대적으로 통일하는 자라는 것, 둘째 물체의 본질적인 속성은 연장인 반면, 정신의 본질적인 속성은 사유라는 것, 셋째, 그 결과 물체는 그것의 원인보다 덜 완전하다는 것, 넷째, 물체의 본질적인 연장성은, 예를 들어 (연장이 없는 물체인) 진공이나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 것인) 원자가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섯째, 물체의 제이 성질인 색깔, 소리, 냄새 등은 감각적이고 지각적인 기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순전한 사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데카르트는 이러한 감각적 성질의 생성을 사유와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그것이 사유의 부정적인 운동을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뒤이은 문장인데염. 철학은 읽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좌절을 안겨주네요 ㅠㅠ
'사유가 연장된 존재에 본질적인 규정들을 부여하고 있는데도, 그는 제멋대로 연장을 사유로 환원시킨다. '에서 '연장된 존재'는 '연장을 가진 사물' 하고 같은 것인가요?
“연장된 존재”는 “연장을 가진 사물”과 같은 것이긴 한데요, 이 문장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오역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
'둘째 물체의 본질적인 속성은 연장인 반면, 정신의 본질적인 속성은 사유라는 것,'에는 앞에서 나온 정신, 물체만 나오고 자연은 얘기 안하는데 왜 그런가요? 또 자연은 물체나 사유와 어떻게 다르죠?
이것도 이 문장만으로는 불확실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여기서 물체는 개별적인 사물을 가리키고, 자연은 이러한 물체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물체는 개별적인 실체인 반면, 자연은 물질 세계 전체로서의 실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죠.
'셋째, 그 결과 물체는 그것의 원인보다 덜 완전하다는 것,' 그 결과라고 하는데 뭐가 그 결과라는 말인지 모르겠네염. 또 그것의 원인은 '연장'인가요?(<---물체의 본질적인 속성은 연장이란 말에서?) 그리고 그럼
그 결과라는 것은 앞에 나온 문장을 가리킵니다. 곧 “정신과 물체와 자연은 모두 실체들이지만 신이라고 하는 보장 체계에 의존하며, 그 신은 개념과 실재를 절대적으로 통일하는 자라는 것”을 가리키죠. 다시 말해 신이 물체의 원인이고, 연장과 사유, 물체와 정신을 통일시켜주는 궁극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인에 의존하는 물체는 신보다 덜 완전하다는 뜻이죠.
'그 결과 정신은(혹은 자연은) 그것의 원인보다 덜 완전하다는 것'도 가능한가요? 생략된 것인지? 다른 뜻이 있는지?
좋은 질문입니다. 물체 또는 연장이 원인인 신보다 덜 완전하니까, 정신 내지 사유도 신보다 덜 완전하지 않느냐는 말인데,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논의 맥락은 연장과 물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신이나 사유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죠. 정신 또는 사유가 연장과 구별되는 것인 한에서, 곧 통일의 원리가 되지 못하고 물체와 더불어 전체의 한 부분으로 머물러 있는 한에서 정신이나 사유는 신보다 덜 완전합니다. 곧 전체=신=사유+연장=정신+물체+자연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사유는 연장과 함께 전체인 신의 한 부분에 불과하죠. 그리고 헤겔이 데카르트를 비판하는 논점 역시, 사유를 연장의 대립물로 파악하고 있을 뿐, 연장을 성립시키게 하는 원동력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죠.
'다섯째, 물체의 제이 성질인' (음 그럼 물체의 제일 성질은 연장인가요?)
그렇죠. 제일 성질은 연장입니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연장, 운동, 크기 등이죠.
'데카르트는 이러한 감각적 성질의 생성을 사유와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그것이 사유의 부정적인 운동을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이 말은 감각적 성질은 단순히 사유와 구분되는 물체의 성질인 것이 아니라 사유와 다름을 드러내는 물체의 성질로서 뭔가 연결되는 의미가 있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데카르트는 우리의 감관을 통해 지각되는 감각적 성질과 우리의 지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물들, 물체들의 객관적 성질을 구별합니다. 헤겔의 이야기는 전자와 후자의 성질 모두 연장이나 물체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데카르트는 사물의 객관적 성질들만을 우리 사유의, 우리 지성의 참된 인식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죠. 좀 모호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그런 듯합니다.
흙흙...사전처럼 하루에 한 사람씩 뗄려고 했는데, 데카르트 붙들고 며칠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