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_일본의 대표적 좌파 지성지 ‘세카이’
우경화 일본의 좌익 선봉장…‘격차사회’ 주요 이슈로

2006년 05월 17일   라경수 일본통신원 이메일 보내기

지하철에서도 늘 책이나 신문을 읽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종종 회자하곤 한다. 그만큼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문, 잡지, 서적 등의 출판문화가 탄탄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는 한국의 교수신문처럼 학계, 특히나 학자 및 연구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지성지는 필자가 알기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적 식견을 피력할 수 있는 학술저널들은 물론, 학술성에 대중성까지 겸비한 전문 잡지들이 셀 수 없이 많기에 굳이 교수신문과 같은 매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대신, 나름대로 일본 지식인들의 대표적 담론표현의 장이 되고 있는 '세카이(世界)'라는 잡지를 소개할까 한다. '세카이'는 신문이 아닌, 월간지로 지식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사회현상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접근을 원하는 일반 독자들도 즐겨 찾는 잡지다. 이 때문에 정가 7백80엔(약 7천8백원)의 '세카이'가 발휘하는 사회적 학문적 영향력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


'세카이'는 아사히신문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좌파적 시각을 갖고 있는 대표적 매체다. 그래서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세이론(正論)', 그리고 문예춘추에서 발행하는 '쇼쿤(諸君)' 등 우익성향의 매체들과는 항상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 일본사회가 전체적으로 '우향우!'하고 있는 반면, 좌파매체들의 침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카이'는 일본내 "사상과 지식 스펙트럼의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세카이'는 또한 한국과 북한에 대한 글들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며, 전체적인 논조도 꽤나 우호적이다. '한반도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는 '세이론'이나 '쇼쿤'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이런 '세카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잡지를 출판하는 '이와나미(岩派) 서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나미 서점은 창업자인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가 자신의 성을 따서 만든 출판사로 1913년에 설립되었다. 지금도 고서점이 즐비한 도쿄의 진보쵸(神保町)에서 조그만 점포로 출발한 이와나미는 올해로 벌써 창업 93주년을 맞았다. 창업한 다음 해인 1914년부터 이와나미는, 당시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아사히신문 기자가 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고꼬로(こ?ろ, 마음)'를 출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출판활동을 시작한다. 그 후, 1927년에는 동서고금의 고전문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이와나미 문고'를, 1938년에는 사회적 문제와 논쟁들에 초점을 맞춘 '이와나미 신서'를 창간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나미는 군부들의 ?! 鈞째? 방해가 심했던 제 2차 대전 와중에도 출판활동을 굽힘없이 이어갔으며, 패전 직후인 1946년에 지금의 '세카이'를 처음으로 발간, 굴지의 종합 출판사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는다. 현재, 이와나미에서 발간하는 대표적인 잡지에는 '도서', '과학', '사상', '문학' 등이 있다. 어느 하나 중량감 있는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잡지 '세카이'는 "이와나미의 얼굴"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로 창간 60주년을 맞은 '세카이'는 양질의 정보와 심도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퀄러티 매거진'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나름대로 이름있는 필진들 수십 명이 매월호마다 시론적 논문들을 기고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공동의 집"이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주창하고 있는 동경대 강상중 교수도 '세카이'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일본사회에 발신하는 대표적 논객으로 꼽힌다. '세카이'가 다루는 주제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에서부터 최근에는 인터넷, 학교, 에이즈, 지방분권, 의료복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세카이'는 반드시 특집란을 마련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매호마다 사회적 혹은 학술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특정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서 특집코너를 마련,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금년도 들어서 다뤄진 특집란 테마들을 소개하자면, "동아시아 공동체-미래에 대한 구상"(1월호), "현대 일본의 기분-어디로 향할까?"(2월호), "경기(景氣) 상승을 어떻게 볼 것인가?-양극화 확대 속에서"(3월호), "오키나와-미군 재편 '미일합의'는 깨지다!"(4월호) 등 다채롭다.


금번 5월호의 특집은 "탈(脫) 격차사회에 대한 구상-또 하나의 일본으로"라는 주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도 '격차사회'라는 담론으로 사회 양극화 현상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그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잃어버린 10년'의 늪으로부터 겨우 빠져나와 일본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 빈곤층이 점점 늘어나는 등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이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노동과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소득을 저하시킨 반면, 경영자들의 부는 증가시켰다는 인식이 일본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가 교육, 문화, 정보 등 사회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는 중산층의 몰락만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확산되면 될수록 경쟁적 사회로 변하고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문화가 조성돼, 결국 사회적 범죄, 자살, 도덕불감증 등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적 경쟁논리가 반드시 사회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한 회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일본사회다. 한국의 양극화 논쟁과 아주 흡사한지라, 밴치마킹할 점이 없나 일본의 '격차 논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이상, 일본의 대표적 지성잡지, '세카이'의 역사, 사상, 논조, 최근 이슈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때로는 일본 사회 내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때로는 일본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보다 보편적인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잡지 '세카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닐까? 창업주 이와나미 시게오는 "낮게 행동하고 높게 사고하라!"는 '低?高思'의 정신을 늘 출판사 경영에 투영시키고자 했다. 이 정신은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세카이'의 논조와 사상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본다. 지금의 지식인들이 되새길 말이다.

라경수 / 와세다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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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6-05-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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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아르 이주노조 위원장 1년 만에 석방
[참세상 2006-04-26 11:51]    
'일시 보호 해제' 명목으로 25일 자유의 몸 돼

최인희 기자

▲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을 환영하기 위해 찾아온 활동가들이 즉석에서 만든 환영 피켓과 꽃다발을 들고 목동 출입국사무소 계단에서 석방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출입국의 표적 단속에 의해 강제 연행됐던 아노아르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이 1년 만에 석방됐다. 이번 석방은 아노아르 위원장의 건강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일시 보호 해제' 명목하에 이뤄진 것이다.

25일 오후 5시 10분경 아노아르 위원장이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 6층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복도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20여 명의 활동가들이 아노아르 위원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1년 전에 비해 다소 야윈 모습이었으나 건강해 보였고 표정은 밝았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석방 소감을 묻는 질문에 "동지들이 보여준 관심에 제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며 "여러분과 떨어져 있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면 1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현재 제 건강 상태가 무척 좋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 "정부가 그런 식으로 단속을 실시해도 별 효과가 없을 뿐더러 한국의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보호소에서 이미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이며 기억 장애, 떨림증, 불면증, 식사 장애 등의 증상을 겪고 있다.

아노아르 위원장의 석방에 힘을 쏟아온 권영국 변호사는 "출입국에서 우리의 석방 요구에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며 "오늘 석방은 참으로 다행이자 지극히 환영하는 바"라고 밝혔다.

권영국 변호사는 "아무리 불법 체류라 할지라도 구제 절차와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현재 아노아르 위원장의 몸이 많이 아파 치료를 요망하는 상태이고, 계속 구금했을시 인권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고 출입국이 대단히 전향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평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해 보다 발전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 석방된 아노아르 위원장이 꽃다발을 들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노아르 위원장이 구금돼 있는 동안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온 샤킬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동조합 차원에서 많은 일을 할 순 없었지만 위원장 석방을 위해 노력했고 많은 동지들이 연대해 준 결과"라며 "아노아르 위원장의 보호 해제 요청에 정부의 손을 들어준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늘 아노아르가 자유가 됨에 따라 자신들의 결정이 잘못됐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샤킬 위원장 직무대행은 "늦었지만 정부가 보호 해제의 필요성을 인정한 점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평하고 "아노아르 위원장이 건강을 회복하는대로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노아르 위원장의 '일시 보호 해제'는 명목상으로 강제 연행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법원 판결 종료 시점까지를 그 시한으로 둔다. 이밖에도 이주노동조합 설립 신고 반려에 대한 항소심 등 몇 가지 소송이 진행중이다.

이날 아노아르 위원장의 석방을 환영하기 위해 민주노총 서울본부, 금속연맹 소속의 노동자들과 노동사회단체 활동가 20여 명이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마당에서 노래와 구호를 외쳤다. 아노아르 위원장은 일단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모처에서 당분간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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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위해 미군기지 이전 참으라고? 천만에"

 

[해외리포트] '일본의 대추리' 이와쿠니시를 가다

 

 

텍스트만보기   박철현(tetsu) 기자   
▲ 이와쿠니 미군기지 정문 입구. 미 해병대 제1항공단과 해상자위대 제31항공군이 같이 기지를 쓰고 있다.
ⓒ 박철현
지난 3월 12일 일본 혼슈섬 야마구치현의 작은 도시 이와쿠니에서는 역사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기지 확장 이전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투표율 58.68%(총유권자 8만4659명 중 4만9682명 참가)에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가 89%(4만3433명)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토대로 이와쿠니의 이하라 가츠스케 시장은 중앙정부에 "더이상 이와쿠니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미군기지의 확장이전을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했고, 지금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기자가 이와쿠니시의 기지대책과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6개월간의 급박했던 일정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었다. 기지대책과의 무라야스 과장은 "일본 및 해외의 매스미디어들은 3월 12일의 투표결과를 알리기에 바빴지만, 실제로는 그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쿠니 시의회의 다무라 쥰겐씨 역시 투표 이전의 과정에 대해 "시민들과 지방정부의 의견보다 미일안보조약을 더 중요시하는 일 중앙정부의 횡포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투표결과만을 대서특필하는 매스컴에 환멸을 느꼈다"고 말한다. 6개월간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 이와쿠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항공모함 탑재기의 이착륙 훈련. 빛줄기들이 모두 전투기들이다. 무려 100여대의 전투기가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쉴새없이 이착륙을 반복하는데, 이 훈련이 시작되면 시민들은 모두들 신경이 곤두선다고 한다. (사진제공:이와쿠니 지역신문 츄고쿠신문사)
어느날 날아든 <주일미군재편 중간보고>... 급박했던 6개월

미 해병대 기지가 지난 51년 처음으로 이와쿠니에 들어선 이후 이와쿠니 시민들은 55년간 기지와 동고동락해왔다. 미군범죄, 항공기소음, 전투기 추락 등 이와쿠니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50년의 긴 세월동안 적응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1일 도쿄 인근의 아쓰기 비행장으로부터 새롭게 항공모함 탑재기 57대가 이와쿠니 미군기지로 이전되어 온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와쿠니 시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의 이하라 카쓰스케 시장. 전 노동성 관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줄다리기 하고 있다.
ⓒ 박철현
그리고 11월 4일 방위시설청 장관은 <주일미군재편 중간보고>를 통해 이 사실을 정부차원에서 공식발표했다. 발표를 접한 이하라 시장은 야마구치현 지사와 미군기지가 있는 유우쵸의 대표 3인과 함께 도쿄로 올라가 "더 이상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번 중간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 이후 11월 16일 방위청의 누카가 후쿠시로 장관이 직접 이와쿠니로 내려와 이와쿠니 시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 이 회담에서 이하라 시장은 "나 역시 국방협력에 충실히 할 것이며, 기존의 미군기지를 철수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확장이전에 시민의 희생이 2배 이상 강요되니까 지금의 이전계획을 철폐해 달라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작년 12월 21일과 올 1월 16일 연이어 가진 회담에서도 양자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1월 16일 회담에는 아소 타로 외무상이 직접 내려와 ‘미일 안보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장시간 설파하면서 이와쿠니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을 밝히자, 이하라 시장은 "2004년 통과된 시의 조례안에 명시된 주민투표법에 따라 이번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쳐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실시된 주민투표. 주민투표 운동에 대해 시민단체 <이와쿠니 주민투표를 힘으로 하는 모임>의 요시오카 미쓰노리 대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기지이전 찬성파인 시의원들과 보상금을 노리는 지역유지들은 그때 주민들에게 투표하러 가지 말라고 독려(?)했어요. 가만 있으면 보상금 받고 좋지 않냐는 식이었지요. 반면,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투표하러 가자는 운동을 했습니다. 조례안에 50% 이상의 투표율이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 기지대책과로부터 받은 4월 28일자 <최종보고서 설명회> 자료. 이 자료에는 이와쿠니의 "협조"를 바라는 방위청의 입장이 자세히 개진되어 있었다.
ⓒ 박철현
주민투표를 묵살한 중앙정부, 분노한 이와쿠니

89%의 반대결과를 가지고 이하라 시장은 당당하게 '이전계획 철폐'를 요구했다.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이하라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예요. 다만 주민들의 의지가 이러하니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장으로서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약 1개월 후인 4월 15일 이와쿠니에 전해진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명 '2+2'라고 알려진 정부의 최종보고서는 "아쓰기 비행장의 항공모함 탑재기 57대에 수송기 2대를 추가한 총 59대의 비행기와 후텐마 기지에 있는 미해병대 공중급유기(KC-130) 12대를 이와쿠니로 이전하고, 이와쿠니에 있던 해상자위대 소속의 비행기 17대를 아쓰기 비행장으로, 미해병대 헬리콥터 8대를 괌으로 이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하라 시장은 "그 보고서가 전해졌을 때는 아찔했다"며 "6개월간 해온게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어 버린 셈"이라고 말한다.

즉, 몇차례 있었던 회담이 최종보고서에 반영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기지확장은 항공모함 이착륙 훈련에 중점을 둔 것으로 기존의 소음문제, 비행제한으로 인한 산업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 최종보고서의 반향이 만만치 않자 4월 28일 키타하라 방위시설청 장관이 이와쿠니로 내려와 따로 상세한 설명회를 가졌다. 그안에 특히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미군의 수.

이와쿠니에서 괌과 아쓰기 비행장으로 이전하는 미군과 자위대는 1080명(자위대 900명, 미군 180명)인데 반해, 새롭게 이와쿠니로 들어오는 미군과 그 가족은 무려 4140명에 달한다. 안 그래도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범죄가 늘어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하라 시장은 "이번 최종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질문서를 보내었고, 다시 정부가 5월 중순에 설명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정부는, 그러니까 협의가 아닌 '설명'을 다시 할 생각인 셈이다"며 "그렇지만, 시장으로서 주민들의 요구를 계속 밀고나갈 생각이고, 주민들의 요구는 확장이전 반대니까 이전계획을 철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 미군기지의 출입금지 팻말.
ⓒ 박철현
지금 이와쿠니는 해안 매립지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활주로 건설의 목적은 시가지와 공장지대에 인접해 있는 기존 활주로가 주민들에게 주는 불편(소음, 추락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짓고 있는 것으로 확장이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와쿠니 미군기지반대 시민단체의 사무국장도 겸임하고 있는 다무라 쥰겐 시의원은 "정부는 어차피 새롭게 활주로도 지어지니 증강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고 말한다.

그는 나고와 기노완의 사례를 들면서 "오키나와에서도 들고 일어나고 우리도 지금 시장을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 이렇게 들고 일어나면 결국 미군은 자기나라 말고는 갈데가 없어진다"며 "다 돌려보내는 것이 나의 목표"라며 웃는다.

한편, 한국의 대규모 투쟁장면을 TV화면으로 보았다는 이하라 시장은 "저렇게 반대하는데 강행처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도리어 기자에게 "왜 시민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해야 하지요?"라고 되물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미 오래전에 결정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가 집행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려주자 "그럼, 주민이 안 사는 곳에 기지를 세우는 것이 낫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군기지 이전 막아내는 주민투표의 힘

일본에는 이미 주민들의 힘으로 주일미군기지 이전을 막아낸 적이 있다.

1997년 오키나와 기노완시(宜野灣市) 한복판에 있던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나고시(名護市)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때 나고시는 일본역사상 최초로 중앙정부의 시책에 대해 지자체 자체의 주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같은해 12월 22일 <후텐마 비행장 이전에 따른 해상항공기지 건설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라는 긴 이름의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찬성과 반대 뿐만 아니라, 조건부 찬성, 조건부 반대라는 항목도 들어가 있었다.

결과는 기지이전 찬성이 45.33%(찬성 2,562표, 조건부 찬성 11,705표)이고 기지이전 반대가 52.68%(반대 16,254표, 조건부 반대 385표) 무효표가 2.89%(565표)로 나왔다. 조건부 찬성의 조건이 해상기지 개발에 있어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산호초와 바다환경의 보전이었으니, 결국 반대표가 거의 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투표는 당시 결국 나고시의 시장이 이전 반대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투표결과를 묵살해 법적인 근거를 가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고시의 시민들은 지난 10여년간 싸워 결국 정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노완시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나가기로 해놓고 왜 안나가느냐는 것. 재미있는 것은 이 투쟁이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고와 기노완의 시민들은 현재도 연대투쟁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지금도 후텐마 비행장의 미군병력을 이전시킬 곳을 찾고 있다. 결국 나온 것이 분산안이며, 그중 일부가 이번 최종보고서에 명시된 것처럼 이와쿠니로의 분산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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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6 11:00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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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황새울'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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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여명의 황새울'이 지나간 자리


진재연| 정책편집부장



지금은 새벽5시 입니다. 사회진보연대에 보낼 이 글을 쓰기 위해 집에서 나와 평화바람숙소에 왔습니다. 초등학교가 무너진 이후 컴퓨터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아 모두가 잠든 이 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영농단을 거쳐 황새울 쪽으로 걸어오는데 경찰들이 영농단 가는 길에 방패를 들고 서 있었고 라이트를 켠 포클레인 두대가 논을 파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밤새 포클레인이 땅을 파 둑을 쌓고 철조망 치는 일을 합니다. 어제 밤 내리쪽에서는 한꺼번에 열대가 넘는 국방색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처음 이곳에 포클레인이 들어왔을 때처럼 날카로운 삽날에 몸을 던지지도 못하고 이제는 그저 안타까워하며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5월 4일 그날도 이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4시 30분에 예정되었던 '여명의 황새울'작전은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초등학교 앞쪽에 미군기지철조망을 뚫고 경찰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아수라장이 되었던 마을은 해가 지고 초등학교가 그 형체를 잃어가면서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 날 이후 주민들의 마음은 학교의 잔해만큼이나 황량합니다. 논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민들은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파랑새 공원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폭풍이 지나간 마을을 청소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아 싸움을 이어가지만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주민들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논에서는 날마다 포클레인의 작업소리가 들리고 마을 곳곳의 진입로가 차단되었습니다. 경찰은 다리를 부수고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도두리로 들어오는 15번 버스가 며칠 째 못 들어오고 아이들의 학교차량도 출입이 어렵습니다. 군부대는 논 한가운데에 철조망을 치고 숙영지를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작은 충돌에도 연행지침을 내려 지킴이들을 잡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대가 주둔하며 버리는 쓰레기로 논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고 그들이 수도물을 끌어다 써 마을주민들의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그들과 싸우고 몰래 들어오는 사복경찰, 국방부 직원들과도 싸웁니다. 요즘 부쩍 눈에 띄는, 전경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차량을 막기도 합니다. 매일 곳곳이 아수라장이고, 그렇게 하루종일 뛰어다니다보면 하루가 저뭅니다. 이제는 기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주민들과 지킴이들 몇몇만이 있는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날까 하루 종일 마음 졸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터널같은 시간이 주민들을 더욱 체념하게 하고 지치게 할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날마다 촛불집회를 하고 전국에서 이 싸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주민들의 마음이 병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산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저를 일깨우는 것은 3년 넘게 싸우며 버텨온 주민들입니다. 이젠 드라마를 봐도 다르게 보인다고, '장길산'에서 민초들이 그렇게 저항하고 싸우려했던 게 뭘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끝까지 싸우자고 하십니다. 한국정부와 지배세력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그들의 역사를. 숱하게 당하고도 비밀투표를 통해 '계속 싸우자' 는 결정을 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입에서 '반미'비슷한 말만 나와도 난리 법석입니다. 무식한 촌로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리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외부세력들의 의식화의 결과라고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선동하는 외부세력만 축출하면, 마을을 점거하고 보상금 협상해 주민들을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상금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던 주민들은 마르지 않는 눈물을 부여잡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지킴이들은 그런 주민들이 있기에 마음을 다 잡아 갑니다. 마을 곳곳에 야만적인 침탈의 흔적이 남아있고 포클레인 소리 멈추지 않고 있지만 반드시 승리하는 민중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싸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정부는 5월 14일 예정되어 있는 범국민대회를 불허하겠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검문이 강화되고 출입통제가 심해졌습니다. 지난 5월 5일처럼 많은 동지들이 몰려와 저들을 뚫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600일을 훌쩍 넘는 주민들의 촛불행사에서 주민들은 항상 말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싸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 많은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을 만나기 바라며,
대추리에서 진재연
2006년05월15일 14: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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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펌/평택범대위] 김지태위원장 두번째 편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지태위원장 두번째편지] 고생많으셨습니다.
2006-05-15 17:48 | VIEW : 262

[두번째서신] 어려운 역경을 뚫고 범국민대회를 성사시킨
                                전국의 평택지킴이 여러분께 드립니다!

만물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민주에 대한 열망이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열정의 계절 5월.
13일 국방부앞에서, 그리고 광화문으로 14일에는 생명과 평화의 땅 팽성에서 솟아오르는 정열을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으로 승화시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동지들의 힘겨운 싸움에 함께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저로써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한편, 희생을 각오한 동지들의 투쟁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멀쩡한 농지에 거대한 철조망을 흉물스럽게 쳐놓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랍시고 선량한 집회를 아예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집회자체를 불허하는 만행!
사통팔달의 도로는 완전히 봉쇄하여 대추리로의 접근을 아예 엄두를 못내게하고, 심지어 집회에 참가하는 국회의원조차도 6-7번의 검문끝에 겨우 현장에 들어가게 하는 상황(여기서도 저는 법의 이중적 잣대를 또 느낍니다. 어쨌든 국회의원은 통과를 시켜주었으니..)에서 얼마나 황당하고 무력감을 느끼셨습니까?

천신만고끝에 물어물어 찾아간 본정리에서는 닥치는 대로 연행하는 묻지마식 연행이 자행되고(언론에 의하면 폭력시위혐의로 연행했다하지만 우리는 동영상을 통해 똑똑히 확인하였습니다), 방송차량마저 차단이 되어 수천의 군중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속에서도 <군부대철수, 미군기지확장계획전면재검토, 평화농사실현 범국민대회>를 대중적으로 성사시킨 동지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저멀리 보이는 철조망과 그곳에 자라고 있을 우리들의 희망볍씨를 그저 바라만 보고 훗날을 기약하며 발을 동동굴러야했던 동지들. 눈앞에 보이는 그 평화의 땅에 결국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고 거대한 공권력앞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셨을 동지들의 마음을 알고있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비록 우리의 앞길을 막고있는 철조망을 걷어내고 도두리, 대추리로 달려가지 못했지만 이번 싸움이 끝이 아니기에 다시 서로를 추스리고 어깨를 걸고 앞으로 진군해야합니다.

이제 팽성 도두리, 대추리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국각지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양심이 불길처럼 타올라 독선과 아집으로 밀어붙이던 미군기지이전사업을 모든 민중들의 힘으로 밀물처럼 쓸어버리리라 확신합니다.
정부에서 군인과 경찰을 아무리 동원한다해도 우리에게는 피끓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동지들이 있기에 도두리, 대추리 주민들은 결코 외롭지않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믿습니다. 농사도 계속 지을것이구요.
하루속히 미군기지 문제를 매듭짓고, 대추초등학교운동장에서 막걸리를 건네며 그간 못나눈 이야기꽃을 피을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힘찬 생활을 기원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06년 5월 15일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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