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waits > [펌/한겨레] '일본판 대추리' 이와쿠니, "미군기지 더는 안돼"

 

“미군기지 더는 안돼” 주민·단체장 ‘똘똘’
‘일본판 대추리’ 이와쿠니에서는…
한겨레 전종휘 기자
▲ 다무라 준겐 이와쿠니시의회 의원이 11일 미군기지 확장건설을 위해 매립용 흙을 파내는 바람에 거의 평지가 된 아타고산에 올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에서 서쪽으로 40㎞를 달려 도착한 인구 15만의 작은 해안 도시 이와쿠니. 전투기가 5분마다 떠오르는 주일미군 해병대 기지 활주로 앞쪽에 굴착기와 트럭이 굉음을 내며 흙으로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새 활주로를 만드는 이 공사는 공정의 75% 이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새 활주로의 용도를 놓고 주민들과 일본 정부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생존권 무시 강행” 표로 심판

미국과 협의를 마친 일본 정부는 도쿄 인근 아쓰기 지역의 주일미군 항공모함 탑재기 부대를 2009년께 이 곳으로 옮아올 계획이다. 아쓰기 쪽은 훈련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미 해병대 1사령부 소속 탑재기 50여대의 밤낮 없는 훈련에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은 “더는 미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저항하고 있다. 주민들은 1962년 미군기지가 처음 들어온 뒤 귀청을 찢는 전투기 소음과 미군 3800여명이 저지르는 성범죄와 교통사고 등으로 이미 인내력의 한계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동안 활주로 끝에 공장지대가 있어 훈련에 불편을 겪는다는 기존 부대가 새 활주로로 자리를 옮기는 것만 받아들일 수 있다.

주민들의 뜻은 지난 3월12일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하라 가쓰스케(55) 시장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치르게 된 투표에서 투표자의 89%(전체 유권자의 51.3%)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민투표는 1주일 뒤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효’가 되어 버렸으나, 지난달 23일 후속 조처로 벌인 시장 선거에서 이하라 시장이 압도적 지지율(63%)로 다시 뽑히면서 주민들의 뜻은 정치적으로 재확인됐다.

당시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해 기지 이전을 지지했던 자민당 후보 아지무라 다로는 29% 득표에 그쳤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외상 등 유명 정치인의 현장 지원을 받았던 그의 패배는 ‘주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는 패배한다’는 통쾌한 교훈을 심어준 일로 평가된다. 집무실에서 만난 이하라 시장은 “국방도, 주민 생존권도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은 후자가 우선”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띠 잇기 등 연대 빛 발해

주민들은 지난해 6월19일 3500여명이 모여 미군기지를 빙 둘러싸는 인간 띠잇기 행사를 벌임으로써 기지 이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때 이와쿠니가 속한 야마구치현은 물론 인근 히로시마현 주민들도 연대의 정신으로 힘을 보탰다. 시민단체들은 크고 작은 학습모임을 조직해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다. ‘주민투표를 힘으로 하는 모임’의 요시오카 미쓰노리(60) 대표는 “시장 혼자 중앙 정부에 맞서기는 힘들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게 힘이 되도록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수많은 나라의 주민들에게 이와쿠니의 사례는 하나의 등대가 됐다. 이와쿠니는 다음달 23일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세계평화포럼’에서 사례 발표를 하고 연례행사인 ‘일본 평화의회’의 올해 개최지로 선정되는 등 연대의 손을 나라 안팎으로 내밀고 있다. 우리의 평택 대추리도 그 손을 잡고 함께 뛸 수 있을까?

이와쿠니/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ydhong@hani.co.kr

이와쿠니시 이하라 시장

“주민을 강제로 들어내?…상상할수 없는 일”

지난 10일 이와쿠니 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이하라 가쓰스케 시장(사진)은 “한국의 평택 대추리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며 “주민을 강제로 들어내고 기지 이전을 강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상황에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대추리) 주민들도 참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주민투표 뒤에도 (일본) 중앙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뜻을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민들은 내 뒤를 받쳐주고 나는 그들의 대변자로서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앙정부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인가?

=한국은 모르겠지만, 일본 정치가들은 시민과 시장이 강하게 반발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기지 이전을 강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시간을 질질 끌며 미루기도 한다.

-시장으로서 중앙정부의 눈치도 보일 텐데?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역에 내놓는 돈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심리적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시장의 정치성향이 그다지 진보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이데올로기적인 반대를 하는 게 아니다. 시장으로서 기지이전 계획이 주민의 희생을 너무나 강요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국방협력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주민들의 권리가 우선이다.

이와쿠니/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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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펌/평택대책위] [알림]군사시설보호구역설정처분 무효확인청구소송

 

[알림]군사시설보호구역설정처분 무효확인청구소송
2006-05-12 16:05 | VIEW : 82

"평택 군사시설보호구역설정은 무효다"  
민변.범대위, '절차상.내용상 명백한 하자'  

'평택범대위'가 12일 평택미군기지확장 예정지에 대한 군사시설보호구역설정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 이상렬 도두리 이장, 문정현 평택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등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청구소송에서, 국방부가 지난 4일 국방부가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도두리 일대 285만평에 대해 군사시설보호법상의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설정한 데 대해, 절차상.내용상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는 위법.무효라고 주장했다.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하면, 일정한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1)관계행정기관의 장(평택시장과 협의), 2)국방부군사시설보호구역심위원회의 심의 3)합동참모의장의 건의 4)국방부장관의 설정행위를 거쳐야 하며, 실체적으로는 '중요한 군사시설의 보호 및 군작전의 원활한 수행'이라는 목적과 필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평택시가 철조망설치와 대추분교건물철거가 한창이던 5월 4일 즉,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 이후인 당일 오후에야 '평택시장의 의견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며 평택시장과의 합의절차를 마치기도 전에 앞질러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실체적 요건과 관련해서, 철조망으로 둘러친 대추리 일대에는 '보호할 만한 군사시설' 및 수행할만한 군사작전이 있지 않고, 설치된 군철조망, 군임시숙영시설 등은 군사시설보호법시행령 제2조가 열거하고 있는 군사시설에 해당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실체적 요건을 갖춘 것처럼 보이기 위해 편법으로 설치한 것에 불과하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이에 앞서 범대위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행정법원 정문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가지고 "국방부는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을 방패삼아 이에 접근하는 모든 행위를 위법으로 매도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천주교인권위 조백기 활동가는 "민간인통제, 수돗물차단 등 마치 전쟁을 수행하듯 국가권력이 만행을 자행하고 있어 주민들은 상시적인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려 있다"며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에 따른 인권침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 5일 대추리 일대에서 군에 의해 포박된 빈곤사회연대 김도균 활동가도 "군인이 적대심을 드러내며 발로 차고 욕설을 했다"고 증언하며 "포로취급 하는 것은 백번 용서할 수 있으나 마치 적을 대하듯 한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소송을 대리한 민변 송상교 변호사는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설정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며 "정부가 사업을 강행하고 대화를 거부한 데 있어 민변은 주민과 함께 군사시설보호구역설정 자체가 무효임을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며 청구 취지를 밝혔다.

'평택범대위'는 "향후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 효력정지신청 등도 제기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국방부에 대하여 치촐한 편법의 뒤에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을 스스로 철회하고 진지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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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퍼옵니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paper&id=9212&page=1)

생각해볼 만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제안입니다. 한번씩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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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

제목은 제가 편의상 붙여 보았습니다.

그 전에 오고간 대화가 궁금하신 분은

최원님 홈페이지(myhome.shinbiro.com/~spinoc)를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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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질문이 두 부분인데, 첫 번째 부분은 동북아 사회운동 포럼이 어떤 질적으로 구별되는 투쟁을 가능하게 만드는가였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한-미-일 이 동맹구조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하고, 함께 성명서를 쓰고, 함께 데모를 하고, 함께 여론플레이를 하고... 이런 식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기계적" 접근을 넘어서는 투쟁은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지요.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Q님도 지적하셨듯이, 우리에겐 기계적 접근 조차 거의 존재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라고 물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저는 Q님께서 말씀하신 "기계적 접근"이 과연 그렇게 "기계적"이기만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는 말씀하신 것도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많은 것이고, 전혀 "기계적"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여기 Q님께서 열거하신 것들을 보면 이것이 결국 어떤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적 비판', 그 비판의 표명으로서의 '성명서', 또 그에 따른 정치적 행동으로서의 '데모', 또 더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인식을 도모하는 '여론전'. 이것이 과연 그 자체로 "기계적"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하면 이것은 또한 그 진행여하에 따라서는 또 다른 인식 내지 인식의 '지평'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투쟁들이기 때문입니다. Q님께서 "기계적"이라는 말을 할때, 제가 느끼기에 그 말은 기존의 인식들이 단순하게 반복되면서 답보되고 있는 상황을 지시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물론 그러한 Q님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에 이러한 시도들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거의 동일한 싸움들을 진행함에 있어서조차 우리가 그것들을 또 다른 관점과 전망 속에 기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또 다른 투쟁의 언어 및 상징을 발견하는 투쟁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투쟁의 언어나 상징은 단순히 어떤 명민한 개인 내지 개인들의 머리 속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다른 인식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정치적' 인식의 진전이라는 것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성찰 내지 반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집단적인 교통 및 논쟁의 방식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즉 새로운 사고의 장(field)를 생산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이미 존재하던 요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는 ...

당장 평택싸움만 놓고 생각해 봅시다. 얼마전에 오마이뉴스에 상당히 동의할만한 주장글(이태경, '대추리 프레임에 갇히다', 글 전문을 아래에 붙이겠습니다)이 실렸던데, 그 글의 주장은 현재의 논의가 반미-친북 대 숭미-반북의 대립으로 프레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대추리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쪽이 네티즌들에게 '진실'을 말한다 해도 그것은 네티즌들의 '숭미, 반북' 프레임을 거스르는 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조리 튕겨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의 살기등등한 폭력적인 반응들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고요. 이는 예전에 황우석 사태 때나 사실 매한가지 현상입니다. 황우석 사태 때도 초기에 mbc나 황우석 비판자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고려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었던 것을 기억하시죠? 물론 이 문제는 비교적 정답이 확실하고 검증 가능한 어떤 것이었기 때문에 젊은 과학자들의 이성적인 논쟁을 통해 사태를 역전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가능할 수 있었지만(사실 여기서 기존의 운동진영은 거의 한 일이 없지요. 여기서도 사실 진정 효과적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젊은 과학도'와의 모종의 '동일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반미/숭미 친북/반북 의 대립은 그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완고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논쟁을 보다 열심히, 보다 객관적인 자세로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사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욕하는데, 제가 보기에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우리의 맘에 완전히 흡족한 공정보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평택싸움 관련해서는 그래도 부족하나마 이런 저런 입바른 소리들을 하려고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동북아의 평화 문제와 관련지어 상당히 제대로 평택사태의 본질을 지적했던 사설도 그랬고, 또 사진화보집도 경찰폭력을 상당히 제대로 고발한 편이었고, 나중에는 조중동의 일방적 왜곡을 교정하려는 기사까지 내보냈었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고대 총학이 약간 오버를 했다는 생각도 한 편으로 들었는데, 어쨌든 제가 지금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한겨레나 경향신문조차 그런 식의 '원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혀 현재의 투쟁이 전진하질 못하고 있는가입니다. 이는 제가 보기에 정말 모종의 프레임에 우리의 사고가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반동적 태도를 보이는 네티즌들뿐만 아니라 운동진영 자체가 갇혀 있는 어떤 프레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러한 '이성'이 작동할 수 있도록 '관점 그 자체'를 전환시키는 '재프레임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보기에는 동북아 사회포럼 내지 (전시될 수 있고 경험될 수 있는) 국제주의적인 운동의 조직화를 통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고요. 즉 이것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평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투쟁이라는 것이지요.

한일의 반전, 평화세력, 게다가 북한과 중국과 미국의 반전, 평화세력이 동시적으로 이 싸움을 진행하고 더 나아가 평택에서(혹은 일본의 자마에서 혹은 또 다른 곳에서) 함께 대오를 형성, 연대 투쟁을 행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반미/친북에 대한 찬성/반대/비판적 지지'라는 스펙트럼으로 모든 논쟁을 환원할 수 없게 만들거나 혹은 적어도 그러한 스펙트럼 그 자체를 매우 곤란한 해석적 프레임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운동진영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부 쪽에서 봤을 때도 그런데, 더 이상 그러한 동북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 투쟁을 단순히 '반미/친북'이라는 잣대로 재단하여 대중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인 전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운동진영 내부에서의 전투, 즉 운동진영 내의 '민족주의 경향'과의 쟁점 또한 끝나지 않는 '설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물질적이고 아주 실천적인 방식으로 극복되거나 '부차화'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는 마치 정신질환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환상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지배를 부차화시킬 수는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혹시 어떤 분은 그 논쟁은 이미 우리가 벗어난 것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설전'에서 우리가 스스로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실천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우리의 투쟁들이 지속적으로 반미, 친북 구도에 갇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를 깨고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를 생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더 나아가서 '안전' 혹은 차라리 그것의 국가주의적 왜곡으로서의 '안보'를 질문의 성역지대로 만들어 지배계급이 진보세력 내지 좌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역으로 그 성역을 직접적으로 공략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것도 바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를 생성시킴으로써만 가능해질 것입니다. 문제는 대중들에게 이러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 대중들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력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 없지요. 경계지대 내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항)제도들의 생성을 위한 고민들을 실제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운동, 혹은 적어도 한미일 전쟁동맹에 대해, 한미일중의 평화동맹이 맞서는 상황으로 움직여 나가는 운동만이 과거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민족적 감정 및 냉전시대의 잔재들을 활용함으로써 전쟁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파열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두번째 질문은 국제주의 실천의 성공사례가 있는가...이를 위한 참조할만한 자료가 있는가...이것이었는데,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러한 사례는 드물지요. 이는 이론적으로도 이유가 없지 않은데 마르크스의 노동자 국제주의는 사실 민족국가에 대한 분석을 행하지 못하고, 그 외부에 자리잡으려고 했던 관점이었고 따라서 한계가 많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사회주의가 일국 사회주의로 전화되는 등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발리바르가 말하듯, 노동자 국제주의는 끝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어떤 눈부신 성공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과 '제국주의의 야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관련된 것이었지요. 바로 레닌(과 짐머발트 좌파)의 국제주의 말입니다. 혁명적 패배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 이것의 성공 및 실패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한 편 현재 여기 저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의 사회운동 포럼을 모델로 삼아 우리의 사정에 알맞는 어떤 형태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불충분한 답변이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가 서있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위안삼으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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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프레임에 갇히다
[주장] 평택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함의
이태경(red1917) 기자




▲ 평택 미군기지확장예정지에 주둔한 군인들이 9일 오전 시위대 진입에 대비한 교육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유혈참극을 보면서 드는 느낌 중 단연 으뜸은 '공포'였다. 시위대의 10배가 넘는 군경이 벌판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달려드는 장면부터 시작된 공포는 경찰이 시위대를 초주검으로 만들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나 진정 우리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 것은, 경찰의 잔혹한 진압방식이나 광주민중항쟁 이후 최초라는 민(民)과 군(軍)의 충돌이 아니라, 이른바 '평택사태'를 바라보는 상당수 네티즌들의 인식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각종 포털이나 인터넷 매체에 실린 '평택사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살기등등하기 짝이 없다. 범대위와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증오로 무장한 채 정부에 단호한 조치-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발포하라'는 극언을 하고 있다-를 요구하는 댓글을 쓴 이들은 대체로 범대위를 친북반미세력으로, 대추리 주민들을 토지보상을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으로 규정하며, 적법한(?)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자들에 대해 가차 없는 응징을 요구한다.

'평택사태' 본질 외면하는 일부 네티즌

이들은 '평택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위해서라는데 왜 휴전선 근방이 아닌 평택에 대규모 미군기지가 들어서는지, 정작 주한미군은 줄어드는데 당초보다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물음조차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행동은 전부 친북, 반미주의에 물든 때문이고, 이는 국기를 위협하는 범죄이므로 엄단해야 한다는 논리만이 이들의 두뇌 속에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정부 하에서 자행되는 야만적 국가폭력도, 대추리 주민들의 절규와 눈물도, 장차 평택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력충돌의 장(場)이 될 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이들의 안중에는 없다. 이들의 시야에는 오직 반미꾼들에게 매 맞는 군경들의 모습과 동요하는 한·미 동맹만이 들어올 따름이다.

평택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다양하지만, 상당수의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여전히 숭미(崇美), 반북(反北) 프레임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범대위와 대추리 주민들에 대해 쏟아내는 섬뜩한 증오와 저주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중요한 기제가 바로 이 '친미, 반북 프레임'이다.

숭미·반북 프레임에 포획된 대한민국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숭미·반북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위에서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프레임과 충돌되는 사실은 배척하며 자신의 프레임과 부합하는 사실들만 흡수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조차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맞지 않으면 기각당하는 것이다.

이미 숭미·반북 프레임의 지배를 받고 있는-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더딜 뿐만 아니라 노력에 비해 성과도 적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한 뼘이라도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숭미·반북 프레임의 허구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새로운 언어로 구성하는 작업은 그래서 시급하다.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협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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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화와노동
2006.05.12 | 평택특별판-310호

미국의 군사세계화에 빼앗길 수 없는 민중의 민주주의를 쟁취하자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미와 향후 계획


… 자주적인 한-미동맹을 실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말이 대국민 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지난 5월 4일 평택에서 벌어진 국방부 스스로의 불법폭력, 유혈진압의 행태를 통해 낱낱이 폭로되었다. 군사세계화를 추진하는 미국에게 있어 동아시아 군사․안보전략의 핵심요충지인 평택미군기지 확장계획에 대해 한국정부의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평택기지이전협상과 강제집행과정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행정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제국에 저항하는 민중의 정치적 권리의 문제이다. 또한 정부와 언론이 연일 선전하는 반미세력의 불법, 폭력시위라는 잣대 역시 현 사태를 규정하는 핵심 사안이 될 수 없다. 현 시기 이미 도를 넘어서는 대국민 폭력과 불법을 스스로 자행하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남한 지배계급이다. 현 시기 미국의 군사 전략의 재편의 첨병, 평택미군기지 확장이라는 사안은 한반도 민중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반도 민중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을 수호하며 미국의 군사패권의 우산 아래 머물 것인가, 아니면 군사력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폭력과 야만을 폭로하며 동아시아 민중들과 연대할 것인가. 팽성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존재하고 있다.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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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평택 평화를 위한 범국민행동을!

5월 12일(금)
19:00 평택 전쟁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서울 촛불문화제 (광화문 동아일보 앞)

5월 13일(토)
14:00 현대하이스코 투쟁승리 전국노동자결의대회 (양재동 현대사옥 앞)
14:00 한미 FTA 저지, 평택미군기지 저지를 위한 서울지역 반미반전 결의대회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 -KT 앞)
16:00 평택 군부대투입, 강제집행 규탄대회(국방부)
17:00 (가칭)전국노동자대회 (광화문)
19:00 (가칭)국방부장관퇴진, 군부대 철수, 평화농사실현, 범국민 촛불문화제 (광화문)

5월 14일
11:00 5.18 정신계승! 군부대철수, 평화농사실현 범국민대회 (평택 대추초등학교)
[자세히보기]





미국의 군사전략과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월간 사회운동 2006년 5월호)

평택 미군기지 막아내고 올해도 농사짓자(월간 사회운동 2006년 1-2월호)
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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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02-778-4001~2 | FAX:02-77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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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막아내고, 올해에도 농사짓자!


 

진 재 연 | 정책편집부장․반전팀


 

평택에는 두 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캠프 험프리(K-6)와 오산공군기지(K-55)가 그것이다. 한미 정부는 2005년 서울 용산기지와 경기북부2사단을 2008년까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캠프 험프리에 285만평, 오산 공군기지에 64만평의 토지를 추가로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며 3년 넘게 싸우고 있다.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한국정부는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최근 ‘평택국제화지구’ 계획을 발표하고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이른바 ‘평화신도시’가 그것으로, 고덕면, 모곡, 서정, 지제, 장당동 등 539만평에 외국인들을 위한 학교, 주거시설, 위락시설 따위를 설치해 미군기지 배후지원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 주민들 역시 반발하며 주민대책위를 꾸리는 등 미군기지를 둘러싼 투쟁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미양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키로 합의한 것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더욱 신속히 추진할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1월 20일 1차 한․미 장관급전략대화에서 반기문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력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전략적 유연성이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이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대 성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부는 현재 기지 확장을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끝냈고 이제 이 싸움은 주민들이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세 번째 추방


이 땅은 원래 바다였다.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 지형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평택은 바닷물이 유입되고 드넓은 간석지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버려진 갯벌에 둑을 쌓아 개간을 시작했다. 지게로 흙을 나르고 맨손으로 삽질, 가래질하며 일궈 낸 땅이다. 아이 업고 둑을 쌓다 아이를 떠내려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일궈 놓은 땅에 국가와 권력은 갑자기 ‘무허가’ ‘국유지’ 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땅을 빼앗아갔다. 1943년 일제는 이 땅에 일본해군시설대(302부대) 비행장을 건설하며 사람들을 쫓아냈다. 그것이 첫 번째 추방이었다.

해방이후 1952년 미군이 이 비행장을 접수하고, 미군기지를 확장했다. 미군은 전쟁 뒤 냉전 하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중요성이 대두하자 안정리와 송탄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을 군사 기지화했다. 미군기지가 커지면서 대추리, 안정리 등의 주민들은 강제 추방되었다. 두 번째 추방이었다. 지금 대추리를 둘러싼 철조망 너머에 있는 미군기지가 그 때 주민들이 살던 곳이다. 주민들은 그 곳을 구대추리(원대추리)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보따리 하나 없이 몸만 빠져 나왔다.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당시 구경도 힘들었던 불도저가 집을 밀어버렸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이치인 줄 알았던 주민들은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천막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귀를 찢는 비행장 소음을 참아내며 다시 땅을 일궜다.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며 잠을 못 자던 아이가 3일 만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게 올해로 53년째. 그리고 지금, 한국정부와 미군은 주민들에게 세 번째 추방을 통보한 것이다.


마을을 지켜내고 올해도 농사짓자


황새울 들녘.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들판이름이다. 황새가 날개를 뻗어 바다 쪽으로 힘차게 날아가는 모양을 닮았다는 이곳에는 실제로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 솔부엉이, 황조롱이, 원앙, 소쩍새, 고니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고, 환경부에서 지정한 보호야생동물인 뜸부기, 말똥가리, 큰기러기, 맹꽁이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환경들과 어울려 그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보상도 필요 없고 단지 이대로 살게만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러한 요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부는 토지수용절차를 마무리했다. 2005년 11월 23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미군기지 확장부지에 대한 수용재결이 이루어졌고, 국방부는 12월 1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보상금을 맡겼다. 그와 동시에 평택의 모든 농지는 국방부 소유로 등기이전 되었고 2005년 12월 22일이 강제토지수용 개시일이었다. 이제 용역깡패가 들어와 주민들을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집을 부숴버리고 미군기지 건설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국방부는 2월안에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대추리 140여 가구 중에서 30가구 가까이 마을을 떠났다. 시간이 가면서 떠나가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사람이 떠나가고 나면 고물상이 쇠망치로 집을 부수고 문짝이며 창틀이며 쓸 만한 것들을 떼어간다. 최근에는 떠나가는 사람들이 직접 자기가 살던 집을 부숴 다른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국방부와 토지공사에서 협의매수에 응한 사람들에게 내린 지침이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들엔 계고장이 하나씩 붙어 있다. “국가의 소유이니 불법점유하고 사용하는 이에겐 2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 원이하의 벌금형에 처 한다”는 내용이다. 이웃들을 떠나보내고, 폐허가 된 빈집을 바라볼 때 주민들은 불안하다. 국방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이에 평택지킴이들은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위해 직접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빈집을 채우고 텐트촌을 세워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다. 빈집을 수리해 찻집, 사진관, 놀이방을 만들었다. 전교조 평택지부에서 매일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고, 대추초등학교에서 평화영화제, 사진전,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대추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묵어 갈 수 있는 민박집인 ‘지킴이네 집’을 운영하고 있다.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들어오고 채워지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인간방패가 되어 마을 공동체를 지킬 때에만 미군기지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빈집을 채우는 지킴이들의 투쟁은 부당한 국가권력에 불복종하고,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마을주민이 되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대추리 주민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함께 농사를 짓고 마을을 채워가는 것이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든 농수로를 막고 각종 농작물 파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자연스레 주민들의 핵심구호는 ‘올해에도 농사짓자’가 되었다. 주민들은 건답직파(乾畓直播)로 농사를 짓겠다고 말한다. 건답직파는 못자리를 해서 이앙기나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려서 재배하는 농사법이다. 수로를 차단한다는 국방부에 맞서 마른 땅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


끈질기게 이어온 팽성읍 주민들의 촛불 집회가 500일이 넘었다. 마을 주민들은 2004년 9월 1일 시작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 7시면 어김없이 비닐하우스로 모여들었다. 처음 촛불을 든 날은 국방부가 평택대학교에서 미군기지 평택이전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던 날이다.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 항의했고 그 날 주민 9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주민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공청회는 끝났다. 성난 주민들은 경찰서로 몰려갔고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촛불을 밝혔다. 그 날 이후로 촛불은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촛불 집회 500일이던 2006년 1월 14일에는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500일 기념문화제가 열렸다. 그 날은 ‘트랙터 평화 순례단’이 10박 11일의 일정을 끝내고 대추리로 입성한 날이기도 했다. 7대의 트랙터는 대추리를 출발하여 시속 20km의 속도로 하루에 80~120km를 이동하여 부여, 군산, 나주,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 33개의 도시를 거쳐 평택으로 돌아왔다. 트랙터 순례는 프랑스 라르자크의 투쟁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프랑스 농민들의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1970년 프랑스 정부는 라르자크의 4230만평을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주민들은 10년 동안 싸웠다. 프랑스 정부의 군대가 주민들의 집에 폭탄을 설치할 정도로 극심한 탄압이 있었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라르자크에서 파리까지의 800km 트랙터 순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라르자크에서 열린 미군기지 반대 집회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이를 계기로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군사기지 계획을 철회했다. 이 싸움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프랑스 농민 조제보베는 지난 12월 대추리를 방문하여 대추리 명예주민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 농민들과 평택농민들의 투쟁이 너무나 닮아 있다고 말했다. 에펠탑에 양떼를 풀어놓았던 프랑스농민들의 심정이 소떼라도 끌고 청와대로 가고 싶은 평택농민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트랙터 순례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알려냈다. 비닐하우스의 촛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고 2월 12일 3차 평화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평택으로 모이자

 

이런 상황에서 1월 23일, 평택시장 송명호는 2월 1일 이임할 예정인 이온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감사패와 복조리를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주한미군과 지역사회의 교류증진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감사패를 전달함으로써 평택시는 주민들의 투쟁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있다. 한국정부와 미군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지역사회의 발전을 촉진할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주한미군 핵심전력을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벗어난 한강이남지역인 평택으로 재배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과 미군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 다른 나라들의 분쟁, 소요사태, 전쟁들에 신속하게 개입하여, 동북아지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들에 주한미군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미군의 평택기지 확장은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동시에 동북아의 군사적 대결을 격화시켜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이렇듯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평택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평화로운 삶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이 땅 모든 민중들이 함께 싸워야할 일이다. 이는 미 제국주의의 군사패권주의에 맞선 저항이며, 전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싸움이다. 한국정부는 민중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철회하고 미군은 이 땅을 떠나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군기지를 막아내고 드넓은 황새울 들녘을 지켜내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가 인간방패가 되자. 프랑스 라르자크에서 30만 명이 모여 미군기지를 막아냈던 것처럼 황새울 들녘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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