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대추리의 봄 1
봄비 오시는 아침입니다. 평온하네요. 집앞 은행나무도, 마른 흙 버석이던 목련 나무에게도 택시회사의 택시에게도 고르고 평등하게 비 오십니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앎'에서 왔다지요. 봄은 '보다'에서 왔다지요. 대추리의 봄은 어디에 있나 알기 위해 갑니다. 제가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것은 최근 노무현 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야말로 '너무 쉬운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쉬운 길이란 힘있는 편에 서서 그쪽에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갖 아부를 떠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들에게는 평생 땅을 파며 씨 뿌리고 거두어들이며 살아온 사람들의 농토를 빼앗아 힘있는 놈들에게 상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살 파먹는 짓이지요. 땅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온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을 짓밟아도 된다는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짓입니다.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으며,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내일 모레가 되면 대한민국 군대가 명분 없는 전쟁에 자기 돈 들고 뛰어든 지 3년이 됩니다. 미국 내에서도 레임덕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전쟁광 부시도 그 힘을 잃은 게지요.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떡값 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노무현 정부를 향해 침묵하는 대다수는 소리쳐야 합니다.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실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이 공간에서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주저하며 마음만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하신 분들의 마음을 갖고 갑니다. 끙끙 고민하시다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걸어놓으신 분들의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이미 다녀오셔서 상황보고 해주신 분들의 마음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나도 가겠다고 결단을 내려주신 분들을 오늘 만나러 갑니다. 그분들의 고민과 절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맘껏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고 오겠습니다. 혹, 아직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까지도 담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봄날, 봄비 오십니다.
이렇게 몇 자 적어놓고 허둥대며 나서느라 제글을 퍼가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주신 바람구두님의 문망에는 정작 다녀오겠다는 편지글도 못 올리고 말았습니다. 아이 아빠 회사에 가서 아이를 맡기고 지하철을 타니 벌써 턱 다리 힘이 빠지더군요. 용산에서는 처음으로 함께 가시겠다고 덥썩 손을 잡아주신 고마운 지안님(에오스님)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함께 가시지 못하겠다던 알라딘의 푸하님이 가리봉동에서 전철을 타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사이 바람구두님이 아주아주 멋지신 구두한켤레님이 가실 거라고 응원을 해주시고, 내민 손을 덥썩 잡지 못하고 고민해서 미안타고 하신 알라딘의 잉크냄새님이 출장 중에 오시겠노라, 이번에는 타인의 삶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싶다고 하셨지요. 출발하기 전 초여름님이 기꺼이 가시겠노라 하시고, 마지막에는 민들레님이 이제 출발하셨다고,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알라딘과 문망 분들을 만나기 위해 평택을 향했습니다.
함께 가신 분들은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알라딘의 잉크냄새님이나 푸하님도 글을 통해서만 간혹 뵈었을 뿐 사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역시 문망의 파워는 쎄구나, 이틀 동안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다니 속으로 생각했더랬지요. 그런데 이건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가 우리들 각자에게 위기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런지요.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의 야구전으로 도배가 된 거대 언론에 가려진 '평택'의 문제가 그 땅에 살고 있는 농민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고, 되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런지요. 사실, 문제를 느끼고 그 문제 속으로 과감히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해서 좀더 다양한 분들이 있는, 모여 있다기보다는 각자의 공간을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방에 걸어놓는 형식의 인터넷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함께 하실 분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3월 초부터 미군 기지 확장 반대와 평택 투쟁 속보들이 연일 빠지지 않고 페이퍼로 걸렸고, 그 글 아래는 답답하다고 혀를 차는 댓글들이 실렸습니다. 구두한켤레님 말씀처럼 "평택에 간다고 회사에서 말했더니, 거기가 고향이냐고 묻더라"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최소한 평택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지요. 그리고 평택은 결코 먼 곳이 아니다. 달려와 달라는 호소도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할 테니 제발 농사 짓다 이렇게 죽게 해달라는 평택 농민의 비명도 들렸지요. 그런데 왜 갈 수가 없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나, 저는 저를 포함해서 이게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고, 도시에서 각자 일거리로 발목이 잡혀 있고, 가는 길을 모르고, 혼자 갈 용기가 없고, 다칠까봐 무섭고, 결정적으로 내 문제가 아니고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요. 그 중 앞서 몇 가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과 혼자 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잡아주면 덜렁 혼자서 어떻게 가나, 실은 제가 더 무서웠습니다만 다행히 다 다른 고민을 담고 일곱 분이 함께 해주셔서 없던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대추리로 향했습니다.

대추리 마을 초입(사진은 구두한켤레님)
1. 대추리의 봄
전날 '평화의 논갈이 행사'에서 연행된 인권활동가들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석방된 상황이라 토요일 대추리는 잠시 소강상태였습니다. 안정리 방향에서 언덕배기를 돌아 나오자 마자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K-6 공군 비행장)의 쇠창살과 대치하고 있는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라는 깃발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미군 기지를 따라 난 길은 대추초등학교까지 이어지고 있었지만 미군 기지와 농토를 가르는 길은 삼단 높이로 되어 있더군요. 그러니까 미군 기지 아래 길이 있고 그 아래 농토가 있는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지요. 나중에 민주노동당 경기지부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한 분이 "그러니까 여기까지 다 기지화되면 저기 높이에 맞춰 이곳에 흙을 쌓는 거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 2미터 가량 지면이 올라서는 거지요.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동안 땅을 갈며 땅을 숨쉬게 했던 기운이 다시는 살아나지 않도록 아예 땅의 생명력을 죽이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민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다만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만이 아니라 자연이 순환할 수 있도록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지요.

1940년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으로 1952년에는 미군 공군 기지의 비행장으로, 지금은 150만 평 규모의 캠프 험프리스. 주변의 대추리와 도두2리 마을 전체 24만 평이 1차 확장 예정지이다. 계획대로라면 미2사단과 서울 용산 기지가 주둔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2미터 가량 높아진 미군 기지는 이미 평택에 주둔해 있는 캠프 험프리스 150만 평만이 아니라, 지금 1차 확장 예정지로 공표되고 토지수용을 시작한 대추리, 도두2리 마을 전체인 24만 평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이 안 되더군요. 캠프 험프리스 면적만을 두고 볼 때 "여의도의 2배"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현재 평택 미군 기지 주둔 면적과 확장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게 도대체 얼만큼의 규모인지 얼른 확인해봤습니다. 여의도 면적이 약 86만 평, 포항제철소는 270만 평, 광양제철소는 450만 평. 현재 평택 내 미군 기지 주둔 면적은 신장동, 서정동, 고덕면, 서탄면, 진위면 일대에 위치한 미공군사령부의 200만 평(여의도의 2. 3배), 캠프 험프리스의 150만 평(여의도의 1.7배), 팽성읍 송화리의 미군사격장, CPX훈련장, 탄약고 등을 합한 나머지 5군데 미군 공여지 104만 평(여의도의 1.2배)을 합한 총 454만 평(여의도의 5. 2배)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평택 내 미군 부대는 광양제철소에 맞먹는 규모인 셈이지요. 게다가 민주노동당 당원인 상주 활동가의 설명에 의하면 평택은 "미군의 후방 재배치 계획에 따른 미군기지에 필요한 땅이 총 649만 평 가량 되고 거기다 추가로 100만 평 정도를 미군의 골프장 설치를 위해 추가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 분의 설명에 의하면 골프장 추가(이것도 토지수용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군기지 확장 면적은 총 749만 평! 현재 주둔 면적 454만 평을 빼면 추가 확정 예정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74만 평이 아니라 295만 평이 되는 셈이지요. 2003년 한미협약에 따라 예정대로 토지수용을 끝내고 2007년까지 한강 이북 미2사단(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와 미2사단 사령부인 의정부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가 통합)이 이전하고 용산 미군 기지까지 이전하고 나면 여의도 면적의 약 8.7배에 해당하는 규모의 동북아 허브 군사기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아, 미치겠다)
이는 서해와 인접한 평택이 '21세기 미국에 필적할 만한 경쟁국가'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북아의 기지가 되는 것이고, 아시아 지역 전체를 통틀어 일본의 오키나와 다음으로 큰 기지로 재편되는 미국의 '초대형 기지 프록젝트'로 1990년부터 진행되고 준비되어온 것이라는 점,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한미협약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국가 안보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미국의 신신민지 지배하의 식민지인으로 팔아버린 것이라는 점을 저는 먼 거리를 유지하고 대추리 주민을 감시하고 있는 미군 차량을 보며, 황새울터에 꽂힌 깃발을 보며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대언론은 식량 주권의 저지선인 쌀까지 내놓고(쌀협약) 정신과 문화의 바탕이 되는 문화(한미FTA)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프로그램화된 신신민지 인간을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미국의 하청업체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왔습니다. 이제 이라크의 현실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동북아의 군사 기지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 이는 그들의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고(저지하지 못하고) 미국이 얼마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대한민국은 미국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여야 하는 전쟁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겠구나 라는 위기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 어디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여기다(캠프 험프리스K-6 공군 비행장 주변 24만 평) 2003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을 근거로 미7군 공군사령부가 있는 '오산 에어베이스K-55' 주변 50만 평을 합한 74만 평은 한국토지공사의 감정평가를 끝내고 법적인 토지수용 절차까지 마친 상태라 현재 대추리 일대의 땅은 법적으로는 미공군의 땅인 셈입니다. 농민들이 자기 살길을 찾자면 지난 1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열을 올리던 그곳의 평화장로교회처럼 "국제적인 문제인데 사람들이 나선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서야 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하고 얼른 땅 팔아서 먼저 그곳을 떠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인 게지요. 대추리 입구에 있던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라는 깃발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내놓고 '국가 안보'를, 도시민의 안보를, 너 나아가 대한민국 국토를 전쟁기지화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 전략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대추리의 봄은 살길 찾아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시 갈아엎어져도 또다시 땅을 가는 농부들의 생명을 담보로 싹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2.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봄이 되는 사람들-촛불 시위 654회째
2004년 9월 1일부터 대추초등학교 마당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는 그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654회째 촛불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마을 주민 분들이(거의 할아버님 할머님들입니다) 구부정한 걸음으로 그 안을 가득 메우셨습니다. 한신대와 동국대 농활대 학생들이 모판준비와 흙담기 등의 구체적인 일들을 도와주고 있음을 보고했고, 평화장로교회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기 위해 학교 마당에 '천막교회'를 세운 목사님과 종교인들이 그들의 정신 빠짐을 질타하였습니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통과된 '쌀협상 비준안'을 저지하던 농부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영화인들이 한미FTA를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 질서가 일제시대의 식민화와 무엇이 다른가를 꼬집어 말하였고, 라디오를 통해 대추리의 현실을 접한 국립국악원의 젊은 소리꾼들이 농부들의 무거운 하루를 노래로 풀어주었습니다. 웹상에서 대추리 문제를 접한 한겨레 블러그 오프 모임 회원도 그곳의 현실을 열심히 알리겠다고 소개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15일 공권력 투입으로 연행되었다 뒤늦게 풀려난 대학생 한 명이 인권 활동가들의 현주소를 말해주었습니다.

마을 벽에 그려진 그림과 낙서
짧은 시간이라 사실 대추리의 봄을 다 담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잠시 비콘(비닐하우스 '콘사이트'라고 해서 그곳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비콘'이라고 부른다고 하시더군요)에서 나와 낮에 둘러보지 못한 마을과 2미터쯤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공군 기지(캠프 험프리스)와 그 사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싹을 내보내고 있는 황새울터를 빙 둘러보았습니다. 그저 보기만 하였습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던 한 시인의 목소리가 몇 겹의 옷을 입고 2006년 3월 대추리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다니. 억울하였습니다. "황형사 개새끼, 빨갱이는 정부이다"라는 어느 집 벽면에 씌어진 낙서처럼 그곳은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현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함께 하셨던 고마우신 분들
촛불 집회를 마치고 함께 그곳에 갔던 지안님(에오스님), 잉크냄새님, 초여름님, 민들레님, 혜경님(구두한켤레님과 함께 사시는), 푸하님 그리고 구두한켤레님과 간단한 정리 집회를 하였습니다. 각자 그곳에 오게 된 이유와 온 후에 느낀 점 등을 이야기하였지요. 직접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라고, 쪽수라도 채워주고 싶어서 왔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난 주에도 왔는데 혼자 왔을 때와는 다르다고, 남편에게 허락받는 것이 어려웠노라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어디 갔다 왔는지 알려줄 생각이시라고, 이런 일들은 결국엔 자신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그리고 몸으로 싸우려고 왔는데 실은 좀 싱거웠노라고 말하시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모여서 하나씩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날의 자리를 정리해주신 님들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 감히 밝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일당 열 명, 아니 일당 백 명씩 책임지고 다시 오자고 우스갯소리를 던졌습니다만, 대추리의 봄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은 다음에 다시 오기 위함임을 함께 해주신 분들을 보며 스스로 새겨넣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마당에 나오니 어느새 별이 떴더군요. 별 말씀 없이 출장지에서 양복 차림으로 달려오신 잉크냄새님이 허공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시리우스, 그 위에 작은 개자리, 그리고 그 위에 쌍둥이자리, 마차부의 카펠라, 그 아래 황소자리, 그리고 북두칠성의 가장 밝은 점들을 이으면 바로 겨울철 별자리인 육각형의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고 하시더군요. 손가락을 따라가니 정말 하늘의 지도가 보였습니다. 잠깐 미군 기지가 있는 대추리와 신장동, 서정동, 고덕면, 서탄면, 진위면이 별자리를 따라 펼쳐지다 오리온 성좌처럼 반짝이는 그곳에 황새울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반짝여야지요. 어디서 봐도 다 볼 수 있는 별자리처럼 사실만이 아닌 진실을 캐어물어야지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별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다. 반짝일 수 있게 그곳의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촛불 행사는 매일 저녁 7시에 대추초등학교 운동장 내 비콘에서 열리고 있고 매일 그곳에 방문하시는 분들(개인이든 단체든)을 대추리 주민들께 소개하는 자리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평택에서 하차하여 평택극장 앞에서 20번 16번 마을버스를 타고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들어가도 되고, 혹은 자가용으로 가실 때는 횡성(?) 방향으로 가시다 안정리를 찾으시면 대추리 방향 표시가 보입니다. 평택역에서 15분 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