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쌓인 눈은 누가 밟아 주리

죽음은 바로 옆에 있다. 죽음은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성큼 다가서 있는데. 죽음은 공유될 수 없다. 죽음은 오롯이 타인의 죽음이다. 내가 체험하는 순간 나는 이곳에 없다. 삶이라는 상자를 열고 날아가 버리는 것.

죽는 순간 몸 안의 배설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안에 있는 건 유동적이고 흐물흐물하다. 딱딱한 건 안에 있을 수가 없다. 그것,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안 보는 우리의 몸이란 실상 얼마나 부드럽고 눅눅하고 따뜻한가? 죽음은 이러한 속엣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계기다. 집중된 힘이 흩어져 나가는 것. 탄력을 유지한다는 건 집중해서, 흩어져 나가는, 사라져 가는 것에 저항하는 것. 죽는다는 건 급속도로 흩어져, 잘려, 부서져, 찌그러져, 으깨어져, 떨어져, 분해되어, 부패해, 사라져 가는 것.

근사하게 말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 과정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이를테면 여행도중 눈길에 미끄러져 전복된 승합차 안에서 온몸이 으깨어질지 모를 어떤 것. 몸이 불 구덩이 속에서 산산히 분해되는 것. 내가 죽어 누워 있지도 못하고 흩뿌려지는 것. 공기 속을 오래도록 부유하며 사라져 가는 것.  

우리는 죽음을 발설하고 싶지 않다.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환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수 없기 때문이다. 저 너머에 봉인하고 싶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있고, 우리는 전생애를 감내하면서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시선을 회피하는 저 너머를 응시해야만 자기의 존재를 개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어쩌면 진실로 안식처일지도 모를) 곳을 지독하게 응시하려는 사람이었다. 범벅된 피, 고통, 상처; 그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아갔다. 너무 아픈 글만 쓰는 그가 안타까웠고,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그를 응원했다. 그가 나아가서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을, 이겨 버리기를.

그래서 죽음은 두려웠나 보다. 자기의 비밀이 시나브로 파헤쳐질까 봐. 죽음은 시인이 두려워서 일찍 잡아갔나 보다. 젊어서 죽음은 억울하다. 안타깝다. 아깝다.

나는 그를 단 한번 마주친 적 있다. 명동 어느 오르막길에 있는 까스등이라는 어두침침한 술집이었는데, 그는 말이 아예 없었고 표정은 어두웠으나, 늘 밝은 얼굴을 한 그의 애인과 퍽 다정해 보였다. 그의 애인은 그를 자랑하진 않았지만 자(사)랑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그에게 어색한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나는 원체 숫기가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와 나는 몹시 친해질 것 같은, 그래서 언젠가 형, 하고 부르게 될 것 같은,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만한 사람이 못 된다. 나는 그를 피상적으로만 알 뿐이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또, 아주 많이 외로웠던 사람이라고. 그를 모르지만, 그의 시는 안다, 고 말할 정도로 읽었다. 발표된 그의 모든 시를 애독했으며, 애독하며, 애독할 것이다. 그의 재학 시절 시들도 문집에서 모두 찾아 읽었으니 나는 그의 시를 조금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많이에 가깝게, 좋아하나 보다. 유고를 엮을 만큼 그의 시가 발표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의 유고를 많이 사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건네 주는 일, 그리고 그가 개진했던 저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며, 온 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일. 요며칠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아깝다, 안타깝다, 라는 말만 입으로 궁글리고 있다. 내일은 또 시를 제출할 테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께 마지막으로 시를 배울 것이며, 나는 학우의 시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다. 도대체.

그의 시 몇 편 그리고 그의 숨결이 생생한 홈페이지 주소다. 마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한, 마지막 게시물과 배경음악이 자꾸만 가슴에 걸린다. 그의 명복을 빈다.

 

               가족사진 
                                           신기섭


그들은 모두 맨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마다 간격을 두었지만 서로의 핏물이
커튼처럼 그 간격 꼼꼼히 닫아 주었다
무엇을 꼭 끌어안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발치엔 아기가 구토물같이 엎질러져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얼굴을 가린 여자들의
짧은 비명소리 같은 엄마!
(엄마, 언제부턴가 모든 엄마는 비명이었다)
깊이 파헤쳐진 무덤처럼 누워있는 여자
얼마나 귀가 찢어질 듯한 짧은 엄마인가?
혼자 멀찍이 떨어져 누운 여자의 사내는
여전히 술냄새를 풍겼으므로
그의 핏물은 거침없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피로써 스밀 수 있다는 걸
딱딱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눈을 감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 순간
카메라 불빛이 터졌다, 그들도 이 생에서
눈을 뜨고 가족사진을 박는다

 

               나무도마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화색(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텨가 내려지고 있었다

 

               등대가 있는 곳


위층에서 터진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는 또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노를 젓는다
여자의 몸이 욕실바닥을 휘젓는 소리
살림이 난파되는 소리 비명소리 속으로
콸콸 물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오후 내내 베란다에 앉아있던 여자의
흐느낌은 물소리였다 이내 길고 긴
골짜기가 되었다 화분이 하나 둘 흘러갔고
앞날을 모르고 웃고 있는 환한 사진들이 흘러갔다
불붙은 편지는 뒷걸음질치며 느리게 흘러갔고
우수수 머리카락들이 흘러갈 때
멀리 먼 바다의 문어대가리처럼 지던 태양은
먹물 같은 어둠을 갈겨 버렸다
그때 첨벙첨벙 어둠을 밟으며 장화 신은 그가 온 것이다
늘 바다 비린내가 나는 그의 몸,
그는 거친 뱃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도 갑판에 올라본 적 없는 선장
토막나고 썩은 물고기만 가득 싣고
그의 배의 바깥 손잡이를 끌며
허우적댔다 시장과 거리에서, 그는 자주 목격됐다
과중으로 인해 배의 뒤축이 침몰해 버릴 때면
그의 굽은 몸도 덩달아 들려 올려져 배와 함께
물 위로 입을 내민 고래처럼 포효하곤 했었다
해가 저물고, 그의 배가 여자의 골짜기 끝에 정박했던 것이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건져 올라온 그가
어딘지 모를 먼 곳으로 향해를 시작한 밤
물소리는 끝이 없고
도대체 저들은 어디까지 흘러간 것일까
귀를 막고 창문을 내다보면 너무 많은
등대의 불빛, 불빛들

 

              현기증


칼을 쥐고 변소에 갔다 변소에 매달린 끈을
끊으러 간다 끈을 잡고 반쯤 서서 일 보던
당신의 몸속에는 숭숭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들 중에 오래 전 내가 살다 나온 구멍 하나;
나를 내 뱉던 그날의 그 구멍처럼 변소가
뜨겁다 탯줄 같은 끈을 끊는데 우글우글 핏빛 똥통 속
구더기들 끓는 냄새 잉잉 파리떼 소리
덩달아 내 온몸에 맺힌 땅방울이 끓는다
툭, 끈은 끊어지고, 그러나 나는 왜 아직도 갇혀 있나?
자궁 속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데
점점 밀려오는 환한 빛; 고개를 숙이고
빛을 향해 나는 머리부터 먼저 내밀고 나가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쭈욱 잡아빼고 있다
바짝 곤두서는 머리칼! 나의 몸이 솟구친다.
빛이 입속으로 들어와 빛을 먹여준다.
빛을 입에 물고 빛에 안겨 숨막히는 이 순간
나를 꼭 안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빛, 한없이
나는 떨어져 내리고 빛은 사라져서 그늘진
마당에 주저앉아 나 이제 숨 쉰다. 희뜩희득
엄마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신생아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속; (뱀이 뱀을 먹으며 죽어간다
같은 황토色 비늘이라 얼핏 보면 한 마리 같다
처음과 끝이 꼬리인 길고 긴 몸
뱀의 대가리는 몸 가운데에 멈춰 있다
그 두 눈빛은 핏빛이다 힘껏 뒹굴어도 끊어지지 않는
몸, 속으로 못 박히듯 또 다른 몸이 채워지고 있다
황토色 비늘이 붉은 잔금들로 깨지기 시작한다
천천히 먹어치우며 가는 몸은 멀고 먼 길이다
고독한 길 뱀은 자꾸 이빨을 박으며 간다
독은 길을 따라 몸속으로 서서히 퍼진다
이 끔찍한 길은 포장도로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꾸역꾸역 삼키며 가는 길 뱀은 찔끔 눈을 감는다
그러자 몸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길
어쩌면 처음부터 저도 함께 안간힘 쓰며
몸속으로 밀려왔을, 서로의 몸 끝까지 가지 못하고
멎어버린다면 그 모습 얼마나 웃길까?
사랑은 그런 것, 천천히 몸속을 기어가는 숨막히는 길
서로 다른 끝을 보며 스쳐가듯 하나가 되는 고통 속
다시 슬그머니 눈을 뜬 뱀의 눈이 깊어졌다
함께 가자,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뱀은 운다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며 완전히 하나가 된 시뻘건 몸
천천히 굳어가는데) 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전원을
강제로 꺼버리는 그녀, 쩌억 벌어진 입에서
독이 쏟아지고 뱀 먹는 뱀처럼 갈 길이 정해진 듯
거실을 기어가는 늙은 몸 하나

 

              이발소 가는 길
 

손등에 글씨를 쓰고 날갯짓을 한 문창과 동생,
몸이 무거운 새* 그 날개에 남겨진 글씨; 삶이 무겁다
상투적이지만……이발소를 찾아가는 이 저녁, 삶이
무겁다 벌써 초겨울 낙엽 깔린 佛光洞 골목,
가슴을 내놓고 박수를 치는 여자; 이제 두 돌이 지났다고
많이 컸다고……(내 눈엔 보이지 않는 무게) 죽은 아기가
크고 있다 나날이 커질 무게, 행복하고 불행한 무게.
그나저나 이발소는 보이지 않고, 제 똥 보고 좋아라 하는
변비 환자같이 떨어진 무게를 굽어보는 홀가분한 가로수들,
처럼 잘라달라고 할까? 뜨거운 이발소 수건에 덮여
벌겋게 익을 얼굴 하얀 거품이 발린 무게 덩어리.
이발사는 칼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리라, 눈 감으세요.
그러나 얼마 만에 와보는 이발소인데 어둡고 한산하다.
의자에 앉아 이발소의 꽃, 달력 속 벗은 여자를 바라본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발기하는 몹쓸 무게 순간
대문처럼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전신거울, 거기
환하게 나타나는 붉은빛 통로! 어서 건너오라고
내게 손짓하는 여자! 잘못 온 길인데 제대로 온 길같이
설레다 머릿속의 무게들이 가볍게 떨리고 온몸 가득
퍼져나가는 (((떨림))) 천천히 입이 벌어지고, 삶이……
상투적이라서 말하지 않기로 한다.


* 그의 문집 제목임

 

http://xodd1234.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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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Marie-Louise Mallet, Ginette Michaud ed, Jacques Derrida , Herne (7 octobre 2004)

Collection : Les Cahiers de l'Herne
Format : Broche- 628 pages
ISBN : 2851970984
Dimensions (en cm) : 21 x 3 x 27

이 책은 Herne 출판사에서 내는 Cahiers de l'Herne[카이에 드 레른느]라는 총서 중 

한 권이다. 매 권마다 유명한 작가나 철학자, 사상가 한 사람을 골라서 그에 대한

글들과 그 사람의 미발표 글들을 함께 묶어서 내는 책이다.

횔덜린이나 랭보, 프랑시스 퐁주, 베케트,예이츠, 브레히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들도 있고,

 시몬 볼리바르나 마오처퉁 같은 정치가도 있고,

쇼펜하우어나 레비-스트로스, 리쾨르 같은 철학자들도 있다. 데리다는 83번째 주제인 셈이다.

 

값은 50 유로 ...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하면 약 6만원. 5유로 할인을 했으니까, 약 5만 5천원 정도.

그런데 판형도 크고 좋은 글들이 아주~ 많다.

데리다 지인들이 데리다에 대해 쓴 짧은 회고담이 한 10여편 되고,

데리다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들이 쓴 논문들이 한 40여편(발리바르의 글도 한 편 있구나)

미발표된 데리다의 원고가 한 6편 정도 ...

이 정도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 만하다.

책 판형이 크고(보통 책 두 배쯤 되네) 분량도 많은 편이니까 양적으로도 그렇고.

어느 것부터 읽어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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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24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피면, 페이지가 줄줄줄 흐르는거 아니에요?

balmas 2006-01-24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듯 ...
하지만 아니올시다. 이번 책은 실로 단디 묶었음.

balmas 2006-01-24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표지를 들여다봤더니,
사진을 너무 실물감 있게 찍어서, 깜딱 놀랐음 ...

아영엄마 2006-01-24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는 처음에 그림보고 발마스님이 담배파이프 사신 줄 알았슴다..^^;;

balmas 2006-01-24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담배 파이프 ...

Kitty 2006-01-24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교양이 줄줄줄 ^^;;
오늘도 늦게 주무시는군요~ 반가워요~!

하이드 2006-01-24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키티님, 반가워요~! 키티님 스토커 하이드!

balmas 2006-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두 분의 극적인 상봉을 보니 눈물이 ... ^^;
키티님/ 오, 대단한 통찰력. 데리다 얼굴에서 교양이 줄줄 흐르는 게 보이삼? ^^
저는 오늘은 아직 두어 시간 더 있다가 잘 것 같음~~

비로그인 2006-01-2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서는 주로 어디에서 사세요? 아마존? JPC?

숨은아이 2006-01-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 아자씨가 저렇게 생기셨군요. *,*

balmas 2006-01-2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아마존에서 주로 사지요. 제일 편리하고 사고도 거의 없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일 애용하게 되더라구요.
숨은아이님/ 예, 저렇게 생겼답니다. 말년의 사진 ...

둥가 2006-01-2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번역하실 계획은? ^^ 아 글구 이번에 목소리와 현상이 재번역되서 출판되었는데 믿을만한 번역본인지요. 글구 앞으로의 출판 계획은 어떤지 물어도 될까요? 글구 연대 대학원 스피노자 강의안이 빨리 보고 싶네요.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이런........ 이것저것 마구 요청해서 죄송함다~~

balmas 2006-01-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왜냐하면 분량이 너무 많은 데다가 데리다 저서도 아니기 때문이죠. 데리다 글들 중에서 한 두어 편은 나중에 선집으로 묶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출판 계획은 뭐, 일단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발리바르의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를 1학기 안에 내는 게 목표지요. 그리고 2학기 중에는 리오타르의 [Differend]를 내고, 그 이외에 공동 논문집 한 권 정도 내는 게 현재로서는 목표라면 목표겠지요.
스피노자 강의안은 지난 번에 올린 것과 비슷한데, 다음 주쯤 올리긴 올려야겠네요. :-)
[목소리와 현상]이 나왔군요. 제가 아는 후배가 번역한 건데,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읽을 만한 번역본일 것 같군요. 원래 후설을
공부한 친구인데, 석사 논문을 [목소리와 현상]을 주제로 썼거든요. 저도
한권 사봐야겠네요.

yoonta 2006-01-2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에티카라도 좀 재번역해주시면 안될까요..강영계교수님 번역은 읽기가 넘 힘들어요..오역도 종종 있는거 같공..

balmas 2006-01-27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yoonta님, "[에티카]라도"라뇨?
[윤리학] 번역은 정말 작심하고 달려들어야 겨우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요. 스피노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윤리학]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가지고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고 할 일은 아니니까 선뜻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하지만 언젠가 하긴 해야 할 일인 건 분명합니다.

비로그인 2006-01-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오타르의 Differend 을 번역하신다구요 @@ 근데 이 책 제목이 "분쟁" 인가요 "차이" 인가요?

balmas 2006-01-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ifferend]은 번역하기가 어려운 단어죠. 차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분쟁이 좀더
가깝기는 하겠지만, 글쎄요, 그게 좋은 번역어일지는 ...

2006-02-0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헌으로 인권읽기]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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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이 원칙은 일명 '파리 원칙'(Paris principles)으로 알려져 있는데 1991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가인권기구 국제 워크숍에서 제정되고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원칙이다. 유엔이 국가인권기구라는 제도를 얘기한 것은 일찌감치 1946년의 일이었다. '국가인권기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침' 등이 기본적인 문서 역할을 하다가, 여러 나라 국가인권기구들의 경험 축적을 기반으로 다시 집대성한 것이 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11월에야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설치 과정에서 국가인권위를 일부 국가기관의 부속물로 만들거나 그 권한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됐고 인권단체들은 4년여 동안 이에 맞서면서 두 차례의 폭염과 혹한 속에서의 단식농성으로 국가인권위의 제대로 된 설치를 요구했다. 국제기준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비빌 언덕이 되라는 기대를 갖고 국가인권위의 출범을 환영했다. 그리고 국가기관을 감시·견제하는 국가인권위의 활동을 감시·견제해온 것이 인권단체들의 활동이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란 걸 내놓은 요즘 비난의 폭죽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세금을 축낸다느니, 무국적 기관이라느니, 헌정질서를 무시한다느니,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부추긴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행동이 아니라 단지 입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 언론과 정치인, 재계의 면박을 받기 일쑤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처지이다. 더 적극적인 국가인권위의 행동에 목말라하는 인권피해자들의 편에서 보면 국가인권위의 존재, 아니 인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때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약국에 가서 당근을 달라고 하는 토끼 이야기가 있다. 국가인권위에 대한 공격에 핏대를 올리는 이들을 보면 그 토끼가 떠오른다. 국가인권위가 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역할을 바꾸고 호통을 치고 있다. 핏대를 올리는 자신들을 지켜보기 위한 감시견으로서 국가인권위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감시견이 자기 바지자락을 물었다고 항의하는 꼴이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에 따라 하나씩 살펴보자.

국가인권위는 국가 내부의 '반성문' 쓰는 장치이다.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이 실제로는 인권의 주요 가해자인 일이 다반사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기관을 잘 살펴보고 반성문 쓰게 하고 대안을 만들라고 하는 장치이다. 민간 인권단체들이 분명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인권보장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민간이 할 역할은 역할이고, 국가 자신의 임무인 인권보장의 일을 똑바로 하라고 국가기구를 만들 것을 국제사회가 합의한 것이다. 자기 내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를 국가기구로 만들더라도 다른 어떤 국가기구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예산을 깎겠다느니 없애버려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짓이다.

국내의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될지라도 국가인권위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규범을 자국에 적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내법만이 아니라 국제인권규범을 활동의 틀로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인권위에게 국내법을 무시한다고 질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권에는 실정법이 아우르기 힘든 회색영역이 존재한다. 기존 질서에 부합되는 법규정만으로는 진전될 수 없는 인권상황이 존재한다. 사법기관의 판단과 다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런 국가인권위에 법질서 훼손을 운운하는 것도 무지의 소산이다.

진보단체 쪽의 의견만 반영해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문제라 하는데, 그럼 국가인권위가 대기업이나 정부 관계자들과 친해야 할까? 인권피해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인권단체와 가까워야 할까? 민간 인권단체와의 협력은 국가인권위가 지켜가야 할 기본적인 행동양식이다. 인권단체와의 협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국가인권위의 타락을 방치하는 꼴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구를 내부에서 감시·견제하는 장치이고, 인권단체들은 여타 국가기구들과 국가인권위를 감시·견제한다. 인권단체들이야말로 국가인권위를 향해 항상 따가운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입만 열면 '선진국' 수준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인권을 빼놓고 달리겠다 하니 그 차에 승차할 수는 없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을 기업이미지 광고의 화려한 영상이 악몽으로 보이고, 화려한 정부 정책의 청사진이 누렇게 보이는 것은 새로 떠오르는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오래전에 인정되고 확인·재확인돼온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하기 때문이다. 인권의 주인들은 인권 감시견을 인권가해자가 걷어차는 현실을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of national institutions, 유엔총회 결의안 48/134, 주요내용 요약)
[권한]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필요한 광범위한 권한을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권한은 헌법이나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의 보호 및 향상을 위한 자문, 인권을 위한 교육과 홍보, 국제협력,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및 구제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권한에 속하는 모든 사안을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위와 권한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정부나 여타 공공기관, 사적 단체로부터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한과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인권기구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업무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절차규칙에 따라 일상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제공 요청 등 다른 기관, 특히 정부기관의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적 독립성
-국가인권기구는 활동의 물적 기반이 되는 재정을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안정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직접 국회에 제출, 승인을 요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며 어떤 형식으로든 다른 정부부처의 예산에 연계되어서는 안된다.

[운영방식]
-국가인권기구는 권한에 관한 모든 사안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회의체계의 구성이나 소집 등 운영방식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의견이나 권고사항을 직접 또는 언론기관을 통하여 널리 알리고 여론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는 특히 취약집단이나 특정 지역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데 헌신하고 있는 민간단체와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준사법적 권한]
-국가인권기구는 개별적인 인권침해에 관한 진정을 접수받아 신속하고 저렴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실정법상 명백한 범죄행위로 보기 힘든 이른바 '회색영역'의 인권침해문제를 조사하고 구제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가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보장받아야 한다. 조사에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청문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한 모든 정보나 문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결과 인권침해가 확인되었을 때에는 피해자에게 적절한 구제조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결정의 효력을 보장받아야 한다.
인권하루소식 제 2976 호 [입력] 2006년01월20일 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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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balmas 2006-01-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
 

293호 2006년 1월 20일(금)


참여와 타협의 주술에서 벗어나자!
-2006년 연대운동의 확장을 위한 민중운동의 과제


 

폭력의 확산과 저항의 확산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에 완전히 종속된 새로운 축적 체계(이는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관리체계이기도 하다)는 경기 안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동시에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집행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DJ의 정권교체와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이런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IMF와 세계은행, WTO 각료회의 같은 무역·금융투자기구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또 국가들 사이의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 지배세력들은 WEF, APEC 같은 회의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조율했고, 이런 것들을 축제화하면서 대중들을 선동해나갔다.

노무현 정권은 번영과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약속했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처를 확대하는 것만이 평화번영의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도 안 걸렸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경제적 궁핍과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데에 따른 공동체의 해체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중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폭력(착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평화와 번영은커녕 한반도의 위기상태는 지속할 뿐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인간안보)이라는 미명아래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확산일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려고 했다. 2003년 열사들의 분신·자결을 시작으로 김선일 피살 사건에 분노해서, 핵폐기장에 건설에 맞서서,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서, 노동의 불안정화와 농업말살에 맞서서 노동자 농민, 여성들은 투쟁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향한 지배세력들의 공론장인 WTO각료회의와 APEC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나갔다. 자본이 세계화되는 만큼 이에 맞서는 투쟁도 조금씩 세계화되고 있다.

 

대중운동의 정치적 후퇴

하지만 이러한 투쟁이 민중의 정치적 단결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위계화된 노동자의 현실에서 알 수 있듯) 구체적인 현실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은 개개인으로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에서 민중은 자신의 혹은 서로의 문제를 정치쟁점화 하는데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대중조작적인 인민주의적 경향이 정치지형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 대중의 정치적 권리를 몇몇 정치스타에 대한 정념적 지지로 이해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운동이 자기 개발을 담보할 수 있는 이념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가속하는 지배세력들의 정치공세 속에서 기존에 있던 대중조직의 운동이 마땅한 대응 방법을 못 찾을 때 대중의 통념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이미 운동에 내재해 있는 이념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드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저해하고 대중운동이 운동의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데 장애가 된다. 대중운동에서 종종 드러나는 (민족주의적 틀에 갇혀있는) 코퍼러티즘적 경향은 가장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지극히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한 민족국가의 발전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보존(통합)이 다른 문제를 압도하게 되면 민족주의 이념은 자신의 보편성을 탈각하고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띠며 급격히 우경화된다. 한편 경제위기상황에서는 지배세력들의 공세만이 강화될 뿐 타협의 여지는 크게 줄어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은 타협을 통한 탈출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최종목표를 대중조직으로서 자신만이라도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조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중조직은 노동자/농민 일반이 아니라 오로지 조합원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는 비즈니스 노선이 강화된다.

불행히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중운동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더 지배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농민운동은 ‘식량주권’을 제기할 때 농민의 생존권, 농업에 대한 민중의 민주적 결정권보다는 민족국가의 안녕(식량안보)이라는 차원에서 제기하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이 문제조차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지배세력들에게서 농업회생의 방안을 찾을 수 없었던 농민운동은 투쟁의 응집력을 통해서 이것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도 노무현의 배신 속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급격히 상실하게 된다. 2005년 두 농민 열사의 죽음에서 농민운동은 노무현 정권과 지배세력들의 농업말살정책에 치를 떨어야 했지만,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만다.

노동조합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합원의 투쟁을 응집력 있게 전개하는데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몇 번의 총파업 선언은 불발로 끝나거나 몇몇 사업장의 응집력에 기댄 채로 미약하게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층 사업장, 연맹에서는 투쟁의 한계라는 이유로 몇 가지는 양보하고 쟁취하는 식의 교섭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교섭은 종종 미조직노동자의 요구가 외면된 채로 진행되지만 ‘현실’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이 같은 노동조합의 비즈니스 노선(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 위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를 수립하는데, 이런 코퍼러티즘 전략은 사실, 조합원 중심의 실리주의 노선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표현에 불과하다. 2005년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에서도 이 같은 교섭전략(기간제 사유제한 예외를 인정한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이 문제가 된다. 단위사업장의 교섭전략이 당과 총연맹의 교섭무대에 그대로 등장한 셈이다. 2006년 국회 투쟁을 기약하는 것으로 2005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현실은 결국 오늘 노동조합운동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의식만 앙상해진 공동투쟁, 그리고 민중운동의 분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목표아래 민중운동은 공동투쟁을 조직해 왔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전국민중연대 운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조직 출범 3년 동안 공동투쟁이 제기했던 본래의 문제의식은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 운동의 외연 확대) 점점 축소되고, 대중운동들이 자체로 추진할 수 없는 투쟁들(시민운동과의 연계-외연 확장, 일정조율, 반전-반세계화운동)을 대리하는 양상이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실용주의적 경향이 난무하고, 정치토론은 실종된 채로 기존 운동의 이념(민족주의)이 복원되면서 패권적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늘 노농연대 투쟁이 안 되는 이유는 (강력한 정치조직/연대체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대중운동 내에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공동투쟁은 계속 이런 경향아래 갇혀져 있었고(기존 대중조직 운동의 외연 확대 -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대책위 남발), 위기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 민중들의 유대와 공통관념(반신자유주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으며, 실용주의적 경향(투쟁의 이합집산, 일정조정)만이 강화되어 왔다.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들 사이에서 조직 방어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노농연대는 구호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다. 공동투쟁은 더더욱 형해화하고 그 자리에는 특정 조직의 단일사안 단일요구의 투쟁만이 남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정치쟁점화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폭은 오히려 좁아졌다. 수세적인 국면에서 이루어진 의회진출은 민중운동의 국회 의존성(대정부 의존성)을 도리어 더 높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민중운동의 역량은 국회 앞으로 집중하게 되고, 결국 가을 정기국회를 전후로 각종 요구들이 나부끼는 농성투쟁이 모든 민중운동의 투쟁을 대신하게 된다. 국회 앞 투쟁은 자신의 요구도 중요하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현 단계 정치 투쟁의 방향, 민중운동의 과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기 조직 확장을 위한 기본목표(의식화, 조직화)마저 사라지고, 소속된 조합원들로부터 책임을 면하기 위한 요구안의 달성여부가 투쟁의 기본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는 고사하고 조합원의 확보조차도 쉽지 않게 된다. 지배세력들과의 타협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쟁목표는 현실화라는 미명아래 낮게 조정되고, 이렇게 낮게 조정된 투쟁목표는 지배세력들의 목표지점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기존 조합원의 요구를 방어하는 것도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반발하는 운동이 이제는 국회 앞에서 관리 받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2006년 민중운동진영의 연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것

오늘날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의 발본적인 인식과 노선의 변화 없이는 이런 상황의 타개가 매우 어렵다. 경제위기상황에서 코퍼러티즘적인 운동노선이 불가능해진데도 기존 노선을 고집하려 들고, NGO 운동에 의해 관리 받고 끝내는 배신당하는 상황(2005년 12월 1일 7개 시민단체의 노동법 개악안 지지 사태)에서도 민중운동의 정치적 단결보다도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둔다면, 민중운동은 자신의 존립기반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려야 한다. 정세인식을 위한 토론을 강화하고, 운동 내에서 어떤 요소들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민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적·경제적인 변혁을 추구하며, 사회운동과 공동체 사이의 교통과 연대를 확장하려는 운동’ 우리는 이를 대안세계화운동이라고 부른다. 공동투쟁이 무조건 만능이 아니다. 이 같은 요소들을 강화하기 위한 연대운동을 조직하면서 그 내에 다양한 물질적 장치(조직 이념, 조직 운영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연대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운동은 지배세력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이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민중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의 이념으로서 대중의 공통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직 혁신으로 되지 않는다. 급진적이며 변혁적인 대중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주체가 형성되고 이것이 대중조직의 운동과 교통할 때 혁신의 기운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배세력들과의 정치적 단절(반신자유주의)을 강조하는 것은 이 같은 운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 국가(및 사회체제)가 대중에게 가하는 폭력(착취, 배제)의 현주소에 대한 면밀한 인식과 이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정치폭로가 필요하다. 자유주의들과 NGO운동이 심어놓은 ‘민주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경계를 확장하고, 현존하는 사회관계의 변혁을 위한 머나먼 길에 나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운동과 더 많은 운동이다. 대중을 분열시키려는 지배세력들의 책략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를 격려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 여러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에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하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기에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이렇게 등장한 다양한 운동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토론이 확산되어야 한다. 공동투쟁에 참여하는 여러 운동 주체들이 자신의 경험, 자신의 이념, 자신의 전망을 놓고 평등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운동들 사이의 교통을 통해서 대중들이 직접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장하면서 운동 전망에 대한 공동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이 연대운동체/공동투쟁체의 조직운영원리(의사결정기구의 민주화)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지금 만일 우리가 민중운동의 연대운동에 대해 새롭게 토론하고자 한다면, 바로 오늘 대중운동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연대운동과 공동투쟁은 공동의 인식을 전제로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이지만, 동시에 대중운동의 혁신을 위한 운동이며 변혁적인 운동 주체의 형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연대운동에서 노력과 고민을 집중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발행처 사회진보연대
(140-801) 서울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 전화 : 02-778-4001/4002 / 팩스 : 02-778-4006
홈페이지 : www.pssp.org / e-mail : pssp@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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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 오랜만에 [인물과 사상]이나 한번 사봐야겠네.

역시 강준만 교수 기동력은 대단해 ...

DC 과학갤러리에서 보니까 최승호 PD와의 인터뷰가 재미있다고 하던데.

 

[펌]

 

한학수하고 최승호 인터뷰하고
강준만이 지나간기사들디벼주고
미디어오늘에서 언론보도행태 파헤치더라

재밌는 것들 몇개 소개하면

최승호가 한겨레 실린 김어준의 "황우석사태 이제 그만 닥치자"보고 기가막혀웃었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더래

취재를한 지강유철씨는 최승호에게 서프라이즈와 일부진보지식인이
황구라사태에서 보여준 작태 어떻게생각하느냐고 묻고

한학수피디는 참여연대가  이번 사태에서 성명서 한장 나온거 없었다며
시민단체에 섭섭함을 드러냈어
결국 그들도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롭지못했다고

안규리교수의 실험실장부에 줄기가 14개 나오는데
한한수 피디가 거기에서 황구라팀이 처음14개 줄기 만들라다
11개로 줄였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논문조작의 부분적 증거를 찾았데

바꿔치기가 될려면 전문가가 최소 30분이 걸린데
그리고 바꿔쳤다면 매일같이 셀을 관찰하는 전문가들이 모를리 없데
또 시시티브이가 설치되어서 쉽지 않다네
그래서 애초부터 미즈메디 수정란을 갖다놓았다는게 가장 설득력잇다네

우리가 들떳던 2004년 논문은 외국에선 그냥 과학적 발명정도로 받아들인데

2004년 논문으론 특허가 불가능하데
논문에 이미 단성생식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는 말이 있어
이런 딜레마를 가진 논문이 특허를 얻을 순 없데
당선생식은 과학적재현이 불가능한 데
그걸 어떻게 특허를 줄수있냐는 거지

다른 나라에서의 재연이 불가능한 이유는
난자는 30대도 40대도 안된데
20대 여성의 싱싱한 당일난자만이 가능하데
그런 난자를 수백개씩 공급받을 수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데
그래서 황구라의 논문은 검증이 불가능하데

황구라는 유럽과 미국 등 대부분 나라에서 배아보제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문이 검증에서 걸릴게 없다고봤데
최소 수년의 시간을 벌 수있다고 본거지
그래서 황구라는 최대 10년을 보고
철통보안속에 줄기를 만들려고했던거 같데
이런 대담한 계획을 황구라가할 수있었던 것은
첫째 그렇게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둘째 한국이 그의 연구조건을 충족시켰고
셋째 그의 연구팀에 어느 정도의 축척된기술이 잇었다는 거지
한학수가 황구라의 그 담력하나는 인정해줄만하데

한학수가 겪어본 황구라는
얼굴하나 안변하고
바로 내일 들통날거짓말도 아주 태연히 하는 사람이래
말도 정말 잘하고 설득도 잘한데

케이비에스 일요스페셜에서 황우석 2번 줄기세포가
슬로언 캐터링 연구센터에 있는걸 한피디가 우연히 알고나서
갈등 졸라 햇데
당장 그 연구소에 전화해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2번 줄기세포 핑커프린팅 요구할까
정말 고민많이 했데
근데 그렇게 하면
그 자료가 피디수첩에 안오고
뉴욕타임즈에 갈게 뻔했대
팀내에서도 뉴욕타임즈보다 하루 늦게
쓰면 어때라는 말도 있었데

* 내말 : 그랬으면 정말 세계적 개쪽이었을거야 한피디 잘햇어

한피디 왈
이번 사태는 87년 이후 이룬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 기반이
얼마나 두께가 얇았던지를 적나라하게드러내준 사건이래
일부평론가와 정치가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확인했었데

재밌지
재밌으면 인물과 사상 사보던가
아니면 댓글이라도 달어줘

IP Address : 222.232.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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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6-01-2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말이 삐긋하면 황빠 아니면 황까로 나누는 세상이 된것 같아 말하기가 조심스럽군요.
황교수 2005년 논문에 대한 평을 하나 올립니다. 링크하려는데 잘 안되 퍼오는데 황교수 논문이 발표되었을때 논문을 평한 글입니다. 읽어보신분들이 있을수도 있는데 안 읽어보신분들은 읽어보시고,
논문조작이 밝혀지기 이전에도 판단할 분들은 그 연구와 이후 줄기허브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 칼날과 논평을 하고 있었다는것을 알아주시길.
출처는 goodking.new21.net 과학과 철학에서 나온것이고 이외 황교수에 대한 분석이 예전부터 읽고 조작은 아니지만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글이 있으니 참조해보시길 바랍니다.

축제기간이기에, 간만에 실험실에 들어온 어린 아이의 눈에서 미친 눈빛을 보는 것이 꽤나 즐거웠기에 술 한잔을 걸치러 외출한 동안 일은 터져버렸다. 새벽부터 뉴스에서는 황우석 교수의 엄청난 발견을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나는 그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할 수 있는 인내심이 생겼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젠 그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떠벌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속도일 뿐이지 않은가.

도대체 이번엔 어떤 연구를 했는지에 관해 뉴스나 기타 선정적인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환자들로부터 핵치환을 통해 (치료용)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었다.

2. 지난 번 연구보다 더 향상된 복제 효율(15배)을 얻을 수 있었다.

3. 이는 난치병 치료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사건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논문을 설명하도록 한다. 1과 2는 부분적으로만 참이고 3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할 것이 분명하다.

1은 치료용이라는 말에 괄호를 치면 정확히 맞는 보도다.

2는 15배가 아니라 정확히는 10배정도(3.3% 에서 35.4%)로 고치면 정확하고, 단순한 복제효율이 아니라 발달과정에서 살아남은 비율까지 합하면 효율은 더욱 줄어든다. 3.3%에서 ~24%로.

3은 연구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논문이 밝히고 있는 것은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매우 획기적인 과학적 도약은 아니다. 이미 인간의 체세포로부터 복제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시점에서, 어쩌면 이 보고는 첫째, 이러한 복제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능하다는 것과 둘째, 기술향상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 밝혀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복제기술 향상은 중요한 진전이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사실 실용화는 요원한 일이다. 이 점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진이 '자신들의' 논문에 '자신들의 입'으로 쓴 것이다.

논문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부분에는 연구의 목적과 사전연구, 연구계의 동향, 연구결과의 간단한 요약등이 실려 있다.

쥐에서는 이미 이 논문에서와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작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올해는 기껏해야 여성의 핵이 아닌 남성의 핵을 이용해 복제를 성공하지 않겠느냐는 관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연구진들도 남녀의 차이에서 복제효율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를 조사하기 위해 (어차피 실용화를 위해서는 당연한 수순이지만)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한 복제된 줄기세포를 쥐의 Feeder Cell(줄기세포에 양분을 공급하는 양분공급세포)에서 키우기 때문에 치료에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외에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배양액에 들어간 Calf Serum(소의 혈장액)등과 남아있는 인간에게서 유래되지 않은 오염원들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줄기세포라인으로는 반드시 치료용 목적뿐만이 아니라 해당 질병 연구가 가능하다. 선천적 질병일 경우 그 유전적 결함을 가진 줄기세포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줄기세포로 약개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선천적 결함을 가진 세포는 꼭 복제를 통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으므로 이 말은 과학저널에 등장하는 약간 억지스런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문제는 이것이다. 세포핵을 제공한 환자의 질병이 선천적이 경우, 이렇게 복제된 세포는 어찌보면 무용지물일 수 있다. 복제된 줄기세포는 공여자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복제했기 때문에 유전적 결함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질병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가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사고로 인한 질병일 경우 오염원의 제거와 분화과정을 조절하는 방식에 대한 세심한 연구가 있어야 치료용으로 사용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복제된 11개의 세포주에 대한 분석은 별다른 오염 없이 실험이 잘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들 세포를 분화시켜서 피부세포 등등으로 분화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개개의 환자들에게서 핵을 공여받아 복제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장기이식이나 줄기세포 주입시 일어날 수 있는 '면역거부반응'이라는 것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급성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면역거부반응에 관여하는 MHC분자들이 Somatic mutation을 통해 다양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다양성은 DNA의 배열을 바꾸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일종의 진화적 압력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도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연구진은 MHC HLA로 면역거부반응을 확인했다. MHC-HLA는 면역학계에서는 실제로 가장 중요한 면역거부반응 인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실제 치료에서도 이 물질에 대한 분석으로 장기이식등을 결정하는 수가 많다. (물론 장기이식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련 분자들이 테스트된다). 그러나 연구진들도 밝히고 있지만 이들이 Science에 발표한 면역거부반응에 관한 데이터의 진실은 in vivo(생체 내)가 아니라 in vitro(시험관 내)실험이라는 것이다. in vitro에서, 즉 MHC HLA 분자의 동일성 여부를 관찰한다는 것이 면역거부반응에 대한 차후실험 없이 바로 치료용 복제를 실용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가 면역반응에 관여한다는 보고가 있으며 환자의 미토콘드리아까지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복제된 모든 미토콘드리아의 정보는 난자제공자의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실제로 이식실험을 해보지 않고는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을 대상으로 in vivo실험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므로, 일단 MHC-HLA type matching정도로(물론 사실 이건 당연히 예측되는 결과다. 만약 MHC 정보가 달라진다면 귀신이 씌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만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복제의 효율성은 통계적으로 아직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거 중요하다. 편차가 엄청나게 크다. 자세한 것은 논문 찾아보시길. 어떤 경우는 상당히 효율성이 낮았고 연구진은 난자공여 산모의 나이와 이를 연관시키기도 한다). 즉, 효율성은 평균적으로 10배정도 높은것이지만(35.4% vs 3.3%) 발달과정을 고려하면 더 낮아진다( ~24%뿐).

어쨌든 효율성이 증가했다 치고, 이들은 효율성의 증가를 가져온 5가지 실험과정의 발달을 나열한다.

1. 휴먼 피더셀을 사용
2. 핵 채취과정의 발달
3. 난자채취과정에서 cumulus 세포 제거과정의 향상
4. immunosurgery 과정을 거치지 않고 ES 세포 구축
5. 손기술의 비약적 향상 (실제로 기술된 원문은 이렇다 Scientist-specific micromanipulation improvements during the most exacting steps of the oocyte’s enucleation, and NT-injection and fusion): 이건 잘 아시듯이 젓가락질 운운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결과는 이게 전부다. 이 후 연구진들은 다음과 같은 전망을 제시한다.

우리가 이 복제기술을 실용화하려면 기술전과정에 걸쳐 모조리 사람에게서 나온 물질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치료에 드는 돈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또한 후생적 epigenetic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유전적 각인 현상의 제거, 미토콘드리아 정보, 정자에 의한 스핀들 폴 극체 형성, 소마틱 센트로솜의 유입, X-inactivation과정이 방해 받을 수 있음 (쥐에서 보고되었음), 유전체의 안정성, 분화과정의 정교화, 텔로머레이즈의 문제등등등.

복제인간연구는 절대 안한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논문은 마무리 된다.

이제 이 논문의 실체를 보셨으니, 이 연구결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연 이 연구결과가 황교수가 런던(도대체 거긴 왜 갔을까. 논문은 미국에 발표하고 발표는 영국에서 하고..저러다 왕따 당할라..)에서 발표할 만큼 대단한 것인지의 문제와, 정말 난치병 환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도 될지의 문제등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내 말은 이 연구가 난치병 치료를 위한 기술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뜻이 아니다. 이 연구가 정말 이렇게 대서특필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난치병 치료가 문턱에 다가온 것처럼 보도될 가치가 있는지에 관해 묻고 싶을 뿐이다. 어찌보면 과학적으로는 예측되었던 일들을 검증한 것에 불과한 논문이, 단순히 기술개발의 비약적 향상이라는 이유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처럼 예측된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상의 실험설계로는 절대 Science지에 논문을 실을 수 없다. 논문이 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소 정치적이고 복잡한 사안이 걸린 치료용 복제기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비에 관한 황교수의 언급, 언론의 종교적 보도태도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모두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biosculp 2006-01-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글 링크입니다.

http://goodking.new21.net/bbs/rgboard/view.php?&bbs_id=0002&page=&doc_num=400

수퍼겜보이 2006-01-2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재밌네요. 요즘은 정치가와 평론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효~

balmas 2006-0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osculp님/ 오랜만이시네요. 퍼온 글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 말씀 드리자면, 저는 황빠 대 황까라는 대립 구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황빠 대 비황빠 또는 일반인들이 있을 뿐이죠. 비황빠 또는 일반인들 중 몇몇은
과격한 비판을 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황우석(팀)과 그 골수 지지자들이 해온 가증스럽고 역겨운 행태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퍼겜보이님/ 그렇죠. 대중들의 지적, 정치적 수준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