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파멸로 향하는 달콤한 판타지의 시작

[황우석사태진단](6) - 황우석 사태와 의료산업화

 

홍춘택(민주노동당)

네티즌 90% 이상의 지지를 입으며 과학자 스타로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황우석 교수. 그러나 논문 조작을 시인하면서 그의 처지는 사실상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빠른 시간 안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고, 서울대 의과대교수들과 민교협 교수들도 각각 엄정한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직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수의대 전체 교수회의는 원로들이 말려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고, 한나라당의 손학규, 박근혜, 이명박 같은 정치인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 박기영 보좌관, 김병준 정책실장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 덮어두고 가자'던 그들의 소망은 산산조각 났다. 이미 사태 수습이 어려운 국면으로 건너갔다. 추측컨대 그들은 ‘원천기술 소유’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원천기술을 소유하고 있다는 개연성만 보여도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상을 참작하자’는 발언을 쏟아낼 것이다. 두고 보자. 황우석 교수가 다 망가진다 하더라도 의료산업 선진화 기조를 건들거나 조정하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홍춘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이 ‘황우석 사태와 의료산업화’를 진단하는 글을 보내왔다. 홍춘택 연구원은 황우석 교수가 논문 조작을 시인한 만큼 교수나 박사라는 직함이 부적절하다며 ‘황우석’으로 지칭하며 글을 썼다.

참여정부가 의료서비스의 산업화를 내세운 것은 집권 첫 해 하반기인 2003년 여름, 7월 1일부터 경제자유구역특별법 시행령이 떨어졌고, 이에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동북아 중심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의 구상이 나오면서부터이다. 홍춘택 연구원은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10대 성장 동력’으로 선정되는 시점부터 정부가 황우석 교수에게 공을 들였던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2004년 상반기부터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복제 연구, 바이오산업 육성, 그리고 의료서비스 산업화가 긴밀한 삼각관계를 형성해왔다. 홍춘택 연구원은 “그러나 배아복제 연구와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인 성과를 냈던 것과는 달리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그것이 가져 올 파멸적인 결과를 우려하는 비판에 막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고 되짚었다. 배아복제 연구와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으나 의료 개방에 대해서는 공공성 파괴를 우려하는 저항이 꾸준히 전개되어왔기 때문이다.

홍춘택 연구원은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 대해 “의료산업을 ‘BT, IT, NT 등 신기술이 융합된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규정하는 등 “수 없이 많은 단어와 개념, 전망들이 문건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하면 ‘돈이 될 수 있으면 무엇이든 시장에 팔고, 돈이 되는 것에만 투자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홍춘택 연구원은 줄기세포 연구가 과장된 것처럼 의료서비스 산업화 전망도 거짓과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산업화 정책이 “전략우위 기술 집중 지원, 성과중심 R&D 투자 등 안 그래도 열악한 의료관련 산업을 왜곡하고 양극화하는 방향”인 데다 외화 유치도 현실성이 없고, 고용 창출 효과도 거짓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홍춘택 연구원은 황우석 교수는 몰락의 길을 가더라도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지난 11월 정부는 제주도에 영리법인병원(이하 주식회사병원)을 허용하는 특별법을 입법 예고했다. 작년에 인천송도자유구역에 외국인 주식회사 병원에게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이후 두 번째 시장개방 조치이자 주식회사 병원을 허용하는 것이다”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홍춘택 연구원은 이들 거짓말쟁이들, 사기꾼들에게 준엄하게 한마디 꾸짖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당신들의 결정으로 고통 받을 서민들의 피 눈물이, 그들의 역사가 당신들을 잊지 않을 거라고” - [편집자]


파멸의 시작은 언제나 달콤하다던가? 참여정부에서 한때 ‘대한민국 최고과학자 1호’이자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홍보대사’,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이며,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희망’으로 ‘바이오산업을 이끌 핵심 연구자’로 군림하던 황우석(황우석은 한 때 서울대학교의 석좌교수이고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이었지만, 논문 조작을 시인한 현 시점에서 교수나 박사라는 직함은 부적절하므로 이를 생략함)의 몰락은 그 화려했던 명성만큼이나 비참하다.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황우석의 파멸적 몰락은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바이오산업 육성과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미래에 어두운 전망을 드리우고 있다. 참여정부에게 있어서 황우석은 개인이 아니라 바이오산업과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상징이자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공공의료기관 확충(전체 의료기관의 30%)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료비의 80%)’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높은 기대를 받았었다. 중산층도 웬만한 큰 병이면 가계 파산의 위협으로 빠져들고 저소득층은 제대로 치료받을 엄두조차 못내는 한국 보건의료의 비극적인 현실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말이다.

이러한 기대는 당시 “돈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최고에 달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대는 악몽으로 바뀌었다. 공공의료 확충은 말만 무성할 뿐이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적다. 반면에 ‘의료서비스 선진화’라는 깃발을 내건 ‘돈벌이 의료’정책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을까? 참여정부가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2003년 8월 14일 보건복지부 김화중장관이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동북아 중심병원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면서이다. 같은 달 29일 황우석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되었고, 그 한 달 전에는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10대 성장 동력’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바이오산업은 초기 형성 단계로 매우 취약한 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과학기술 문헌인용색인(SCI)의 2000년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논문 발표량은 미국의 1/20, 영국이나 일본의 1/6 수준이었으며, 다음으로 2000~2001년 사이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1.5배 이상 늘었으나 자금 사정이 좋다는 기업은 14%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2001년 바이오벤처기업 실태 조사) 있었다. 또한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임상시험 과정을 지원할 병원과의 연계 체계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황우석의 연구는 바이오산업의 성공을 약속하는 상징이 필요했던 참여정부에게 입에 맞는 떡인 셈이었다. 2003년 12월 황우석 노무현 대통령은 황우석의 광우병 내성소 개발 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했다는 극찬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계기로 황우석과 그의 연구는 초기 산업화 단계에 머물고 있는 바이오산업을 부양할 희망으로 또한 시중에 넘쳐나는 여유 자본을 바이오벤처를 비롯한 바이오산업으로 유인하는 상징으로 부각한다. ‘황금박쥐’라는 황우석 사조직은 이러한 참여정부와 황우석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이 모임은 최근까지 황우석,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정책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IT와 BT의 융합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 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 중 일부는 실제 정책 사업으로 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산업을 띄우기 위해 정부가 황우석에게 쏟은 정성과 노력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기에 참여정부의 동북아 중심병원 구상은 한 번의 좌절을 경험하는데,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조항이 삭제된 채 법률안이 제정된 것이다. 의료서비스 산업화가 난항을 겪자 노무현 대통령은 황우석의 체세포배아복제 성공에 기대어 5, 6월에 걸쳐 의료산업 육성전략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주요 내용은 ‘배아복제기술 활용 관련 방향을 잡을 것(5.24)‘, ’산업 정책적 측면에서 신약개발의 전략적 투자 필요성에 대한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보고할 것(6.14)‘, ’신약산업과 의료산업 육성전략을 제시하고,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조기 추진할 것(6.22)‘이었다. 황우석의 배아복제 연구와 바이오산업 육성 그리고 의료서비스 산업화가 긴밀한 삼각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배아복제 연구와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인 성과를 냈던 것과는 달리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그것이 가져 올 파멸적인 결과(‘두 개의 의료’와 ‘두 개의 국민’으로 상징되는 의료의 양극화에 대한 경고)를 우려하는 보건의료 시민사회 단체의 비판에 막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하버드 병원이 들어온다.’, ‘중국의 부자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 ‘해외 유출 의료비가 1조 2천억이다.’라는 거짓말과 과장된 장미 빛 전망을 내세우고도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4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합의를 하고 나서야 겨우 인천에 유치하는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결국 참여정부는 2005년 5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성공’으로 국민 영웅으로 떠 오른 황우석을 의료서비스 산업화 추진에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데, 줄기세포 연구와 바이오산업 그리고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통으로 엮어 대통령 직속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만든 것이다.

지난 9월 첫 회의를 가진 의료산업 선진화위원회는 ‘산업적 관점에서 의료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며, 의료산업을 ‘BT, IT, NT 등 신기술이 융합된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규정하고, 의과대학에 집중된 우수인력을 의료산업발전의 핵심요소로 활용하겠다는 방침 아래, 최근 생명공학분야의 연구 성과 등을 산업화하여 의료산업의 국제적 위상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수 없이 많은 단어와 개념 그리고 전망들이 문건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하면 ‘돈이 될 수 있으면 무엇이든 시장에 팔고, 돈이 되는 것에만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와 그 시장가치가 과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하겠다며 정부가 내세운 전망도 거짓과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2%에 불과하며, 특히 의약품과 의료정밀기기 산업은 대부분 영세업체로 R&D 투자가 미미하여 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대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ME-TOO(모방) 제품이 중심이다. 또한 수입의존도가 높아 국내 산업 연관효과가 매우 낮고, 의료관련 산업의 구조 자체가 유사 제품의 저가 경쟁을 주로 하는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산업화 정책은 전략우위 기술 집중 지원, 성과중심 R&D 투자 등 안 그래도 열악한 의료관련 산업을 왜곡하고 양극화하는 방향이다. 이는 신기술 하나가 전체 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치열한 기술개발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에서 실현하기는 어렵다. 실제 선폴라(국내 개발 최초 신약, 퀴놀론계 항생제)를 비롯한 각 종 국산 신약들이 각 분야에서 국내 시장조차 주도하거나 선도하는 위치에 있지 못한 상황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체세포 배아 복제라는 기술적 성공이 세포 치료 분야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FREE PASS처럼 인식되어서는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다.

의료서비스 산업 분야의 거짓과 과장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는 2004년 인천에 외국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며, 해외로 나가는 원정 환자가 지출하는 의료비가 연간 1조 2천억 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한 민간병원장의 근거 없는 인터뷰 발언에서 비롯된 뜬소문(민주노동당 재경위 국정감사 요구자료. 2004)으로, 실제 ‘국내환자의 해외 원정진료로 인한 외환유출’(산자부 수출입과, 한국은행 보도자료. 2005. 9) 총 200억 원 정도(2005.6~2006.5)에 불과하다. 그 중 23%에 해당하는 4백8십만 달러는 중국으로 지급되는 것으로서 장기매매이식과 관련되며 국내흡수가 불가능한 비교적 고정적인 지출이며, 마찬가지로 국내 흡수가 불가능한 국적 취득 목적의 원정출산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해 중국 부자 환자를 유치해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구상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미국의 유수 병원(하버드대병원, MD앤더슨암센터, 필라델피아병원, 독일 하노버대학병원 등)이 중국 고소득층 진료를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였거나 진출할 예정이며, 싱가폴 민간병원도 중국 환자를 싱가폴로 유치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중국 현지에 병원을 세우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의료서비스 산업화의 문제점 토론회. 이진석. 2005)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하여 고용을 창출하겠다지만, 의료산업화를 상징하는 미국보다 의료서비스 산업화와는 거리가 먼 영국이 병상당 고용자 수가 더 높다.(OECD Health Data 2003)

한국은 병상당 0.9명(영국의 1/6)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의료서비스가 산업화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용유발효과가 큰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과 요양병원 설치 및 간병서비스 등 공공적인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제 거짓말이 드러난 황우석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아직도 파멸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정부는 제주도에 영리법인병원(이하 주식회사병원)을 허용하는 특별법을 입법 예고했다.

작년에 인천송도자유구역에 외국인 주식회사 병원에게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이후 두 번째 시장개방 조치이자 주식회사 병원을 허용하는 것이다. 때맞추어 인천 송도에 들어서는 외국병원으로 뉴욕 프레스비테리안(NYP;New York Presbyterian)이 선정되어 내년 초에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재경부 발표가 있었다. 미국식의 주식회사 병원이 한국 보건의료를 좌지우지하는 미래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박기영 보좌관은 제약기업 CEO 조찬강연회에서 “지난 정권을 통틀어 의료를 산업으로 지칭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밖에 없다.”는 발언을 했다. 그에게는 대통령의 판단이 자랑이었겠지만, 서민들에게는 파멸을 부르는 사이렌(오딧세이, "뱃사람을 노래로 유혹하는 두 명의 마녀")의 노래이다. 정부는 그간 시장 만능이라는 달콤한 환타지에 빠져 그 환타지를 현실에 적용시키려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여정부는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타지의 주인공이 아니고,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마녀가 아니다.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경고가 호시우행(虎視牛行 : “내가 생각하는 개혁의 방법은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 것이다". 노무현, 인터넷 공개서한)을 흉내 내는 참여정부의 우공(牛公)들에게 제대로 들릴 리 없으리란 걸 안다.(수많은 경고와 미연에 방지 가능한 징조들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해서 결국 황우석 사태를 초래하고 아직도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참여정부의 당국자들을 보라.)

거짓말을 근거라고 제시하면서 정책을 추진하고, 그 거짓말을 대통령의 입으로 반복하다 결국 거짓이라고 드러났음에도 다시 새로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또 다른 잘못을 반복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결과에 책임지라는 말조차도 아깝다. 뻔히 예상되는 파멸조차 무시하는 그들에게 무슨 책임질 능력이 있을 것인가! 그래도 이 말 한마디는 해야겠다. ‘당신들의 결정으로 고통 받을 서민들의 피 눈물이, 그들의 역사가 당신들을 잊지 않을 거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91호 2005년 12월 22일(목)


이른바 '북한 인권' 논의의 맹목과 함정
-미국 인권외교의 반동성


 

12월 '북한인권'을 둘러싼 소동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규명할 것인가, 그리고 미국의 대북 불가침 보장 및 경제제재 해제 여부를 둘러싸고 6자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소위 '북한인권'이라는 쟁점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12월 8일 서울에서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주최로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려 이곳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따라 임명되었다)는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발언하였다. 또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12월 7일 위조달러를 만들어낸다며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인권'에 대한 언급과 동시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의 봉쇄수단이 강구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 '범죄정권'이라는 발언은 최근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에 대해서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다. 한편 일본 역시 일본인 납북문제를 제기하며 미국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보도(12월 15일)에 따르면 일본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수단을 규정하는 「경제제재실시촉진법안」과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법안」을 내년 1월 의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속적으로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 -선(善)과 악(惡)의 대결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 외교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문제를 외교정책에 포함하게 된 것은 197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공산주의를 저지하는 미국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을 의문시하게 했으며, 이때 미국은 인권문제를 매개로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미국 내 점증하는 시민권 운동들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외교정책에서 인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제하는 계기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카터 행정부의 이른바 '인권 외교'였으며, 그 핵심은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미 1973년 민주당의 주도로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되었으며,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이 조직되었고,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국무부는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는 동맹국인 반공독재 국가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았으며,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카터의 인권외교는 당시 대표적인 군사독재정권이었던 남한, 아르헨티나 등에 대한 상징적 조처를 취했을 뿐 원조 자체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국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세계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평가하게 된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제테러 조직 알 카에다를 발본색원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켜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을 전복했으나 이후 알 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을 생포하는 데 실패하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자 독재정권을 몰아낸 '자유'와 '해방'으로 침략과 점령을 윤색하는 데에서 미국의 위선은 절정에 이른다.

미국의 네오콘은 이미 1996년 네오콘의 정치세력화에 계기가 되었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하면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를 명백하게 밝혔을 뿐 아니라,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하고 기독교적 사명감에 기반한 도덕적 우월주의에 입각하여 악을 징벌하는 주체이자 구원자로서 미국의 역할을 설정하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그런데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의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는 이들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이처럼 '인권 외교'를 표방하는 것은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이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는데 따라서 해당 지역의 대규모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적인 간섭/개입이 1990년대 주요 국제현안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지배적인 인식으로 귀결된다. 이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에 대해 모든 국가가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 사전예방이 필수적임을 언급하였다.

사실상 강압적 수단에 대한 인정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에 대한 봉쇄와 제재,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특히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데, 무력수단과 예방을 포함하는 인도주의적 간섭/개입의 주체로 상정되는 '국제사회'는 세계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군사 동맹국들(NATO, 일본, 남한 등) 없이는 사실상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심부 국가의 '인권 외교'가 이처럼 세계적인 폭력과 무질서를 그 등장배경으로 하며 '인도주의적 가치'들은 군사·안보적 목표들은 중심부 국가의 전략에 종속된다. 따라서 '인권 외교'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은 미국과 남한을 포함하여 중심부 국가들의 세계 전략이 지니는 근본적인 모순과 한계에 대한 통찰을 우회할 수 없다. '북한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전제 -군사·안보적 주도권의 추구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지난 해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할뿐더러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미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서 제기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지연시키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미국의 태도에서 연유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며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는 이른바 '정권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북한은 이른바 "악의 축"으로 규정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체제의 교체'였다.

'체제 교체'를 추진하는 경로는 다양하며 반드시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와 봉쇄수단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개입을 상정해볼 수 있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으며, 9·11 테러 이후에는 각종 관련 기관들이 본토안보국이라는 거대한 안보기관으로 통합되었다. 특히 '인권-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을 뿐 아니라 이번 북한인권국제대회 역시 200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무부 예산을 지원받았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이러한 단체들에게 상당 부분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보르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에 '북한인권' 관련 정책입안의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렸다. 이처럼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정정(政情)을 동요하게 하거나, '방코 델타 아시아'의 경우와 같이 위폐제조·유통 및 마약 거래 등의 혐의로 사실상 북한의 대외무역 거래를 제한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정권 전복'을 의도한 미국의 대북 압박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실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전제는 바로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결국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태도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한 상태이며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비준수 등의 국제적 금기사항은 이제 미국 스스로에 의해 침해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불의(不義)를 당분한 지구상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중심부 국가들의 인권-외교정책에서 제기되는 '인권', '민주주의', '해방'의 대상은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없는 절대악의 '희생자'들이며, 이들은 사실상 무기력한 '구원'의 대상일 뿐,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과 이른바 '주권 이양과정'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이라크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부시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강압적인 억압기구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인민주권을 파괴하고,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할 수 없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이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고 나머지는 용인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겉보기와는 달리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질적으로 단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정권에서부터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 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공히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따라서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통해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상태를 변경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선결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의 과제,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 및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라주미힌 >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 : PD수첩

 

거대한 성역 이면 들춘 ‘진실의 수첩’

    
12월15일 오후 <시사저널> 편집국은 돌연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기자들이 2005년 ‘올해의 인물’ 선정을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하는 와중에 황우석 교수 관련 긴급 뉴스가 편집국을 강타한 것이다.애초에 <시사저널>은 <PD수첩>을 올해의 인물 유력 후보로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하지만 <PD수첩>에 선뜻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황우석’이라는 성역에 도전장을 던진 것은 높이 평가했지만, 논문의 진위 여부가 최종적으로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문제의 뉴스’가 터져나온 것이다.황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벌이는 ‘진실 게임’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한 달여 국내외 과학계와 한국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논란이 종착지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PD수첩>이 제기한 논문의 오류들이 상당수 사실로 드러났고, 황교수는 논문 을 자진 철회했다.

이제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비록 ‘취재 윤리’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지만, <PD수첩>의 보도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좇으며 진실을 파헤친다는 언론 본령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할 만했다.그동안 성역 앞에서 묻히곤 했던 과학계 내부의 의문과 문제 제기는 이들의 위험천만한 도전이 있었기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이것이 <시사저널>이 <PD수첩>을 ‘2005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판단 근거였다.

다사다난을 넘어 너무나 역동적인 한국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작업은 늘 순탄하지 않았지만, 올해처럼 격론이 벌어진 적도 드물다.<시사저널>은 개인 혹은 집단의 선도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이나 뛰어난 성취가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동력이 되었다는 믿음으로 창간 첫해인 1989년부터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왔다 .

12월16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수의대 3층 스코필드홀의 마이크는 유난히 말을 듣지 않았다.몇 번이나 마이크를 교체하고 두드리고 나서야 황우석 교수(서울대·수의학과)는 말문을 열었다.
“심각한 오염사고가 동시 발생해 더이상 줄기세포 실험을 할 수 없었으며 수립된 6개 줄기세포가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논문을) 자진 철회하겠다.”
“맞춤 줄기세포가 미즈메디 병원 줄기세포로 바뀌었다"
황교수는 논문과 줄기세포를 망친 주범으로 미즈메디병원 팀을 지목했다. 이에 질세라 오후 3시에는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에서 노성일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했다.“황교수는 복제된 배아 줄기세포가 없는데도 미즈메디병원의 줄기세포로 둔갑되고 김연구원이 나쁜 행위를 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황우석과 노성일. 둘 가운데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반전드라마를 보았다.그러나 이처럼 혼란스런 와중에도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진실 게임과는 별도로 <PD수첩>팀의  애초 문제 제기가 대부분 옳았다는 점이다.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은 저자들이 철회를 요청할 정도로 문제투성이 졸작이었다.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 모두 지난 한 달 동안 줄기세포 보존 상태와 숫자에 대해 거짓말을 해 왔다.설사 줄기세포의 존재가 확인된다 하더라도, ‘논문에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PD수첩> 주장의 정당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 것은 황교수와 노이사장 뿐만이 아니었다.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세력이 연합해 <PD수첩>의 입을 막았다.작게는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서, 서울대학교 수의대·한양대학교 의대, 눈치만 보던 원로 과학계, 황우석 연구를 후원해 온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과 정치권, 그리고 진실 탐구보다 ‘MBC 죽이기’가 더 급했던 <조선><중앙><동아><YTN> 등 언론사...... 이 모두가 <PD수첩>의 반대편에 섰다.외로운 싸움이었다.<시사저널>이 <PD수첩>을 2005년 ‘올해의 인물’로 뽑은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의 맹목적 영웅만들기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실종되었던 진실의 가치를 되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에 비견할 만한 ‘황우석 스캔들’의 출발은 6개월 전 한 인터넷 제보에서 출발했다.MBC 홈페이지(www.imbc.com) <PD수첩> 제보 난에는 하루 평균 20여 건의 비리 고발 제보가 쏟아진다.와중에는 악의적이거나 근거 없는 제보도 많다.하지만 6월1일 <PD수첩> 최승호 책임프로듀서(CP)가 발견한 ‘황우석 교수 관련입니다’라는 제목의 제보는 달랐다.제보문은  ’Science지에 대한 사실에 양심이 허락지 않아. 이렇게 편지 보냅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신념 하나로 이렇게 편지를 띄우니 부디 저버리지 마시고 연락 부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4개월간 집중 취재 후 확신 굳혀

최CP는 “학수야 이리 와봐”라며 앞자리에 앉아있던 안경을 낀 젊은 후배를 불렀다. 한학수 PD(36)였다.그는 '이 달의 좋은 프로듀서상''올해의 기획보도상''반부패 수범 유공상' 등을 받았으며, 그 전까지 <한국의 진보> 3부작 시리즈를 제작해 주목받던 민완 PD였다.최CP가 팀내 PD 8명 가운데 특히 한 PD를 부른 것은 마침 그가 줄기세포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한학수 PD는 지난 5월말 <PD수첩>팀에 합류했는데, 그 즈음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논문이 허위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한PD는 ‘황우석 vs 부시’라는 가제로 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쟁을 재조명해볼 요량이었다.제보자를 만나면서 한학수 PD의 탐구 주제는 180도 바뀌었다.

<PD수첩>의 ‘딥스로트’(워터게이트 사건내부고발자의 별칭)는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핵심 연구자였다.한학수 PD는 제보자의 근무지에서 그를 만났다.딥스로트의 폭로는 충격이었다.2005년 논문이 날조된 것이며, 황교수 연구에 쓰인 난자들이 돈을 주고 매매된 것이거나 연구원에게 얻은 난자들이었다는 내용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난자 제공 윤리 문제와 관련한 제보 내용은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다른 제보 역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최승호 CP의 회고다.

취재의 기본은 제보자의 동기를 확인하는 것이다.악의는 없는지, 이해관계는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그런데 이 ‘딥스로트’는 황교수 연구실로부터 불이익을 받은 일이 없었다.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가졌고 제보를 통해 얻을 이익이 없었다.딥스로트는 ‘체세포 복제를 난치병 치료에 응용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조직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업적이 포장되고 있다.가짜를 기반으로 생명공학이 세워지면 안된다’라고 제보 동기를 밝혔다.그렇다면 그 많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가운데 왜 <PD수첩>을 골랐을까. 최CP에 따르면 딥스로트는 <PD수첩> 15주년 특집 방송(5월31일 방영)을 보고 다음날 제보를 결심했다고 한다.  

    
  ⓒ시사저널 안희태
의 최승호 책임프로듀서(왼쪽)와 한학수 프로듀서(오른쪽)는 6월1일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제보를 받은 이후 5개월 보름 동안 취재한 끝에 결국 논문에 감춰진 문제점들을 밝혀냈다.  

최초 제보를 받은 이후, 제작진이 제보 내용에 확신을 가지기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제작진은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 25인 대부분과 접촉했다.논문의 진위 여부는 원래의 체세포와 복제된 줄기세포를 놓고 DNA 검증을 함으로써 가려진다.황우석 교수에게 직접 접근할 수 없었던 제작진은 먼저 주변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하나둘 단서를 모았다.<PD수첩>의 딥스로트는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가 복제 줄기세포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힌트를 주었다.제작진은 우여곡절 끝에 미즈메디병원 수정란 줄기세포 라인을 입수했고, <사이언스> 논문에 등장하는 환자(체세포 제공자)들을 직접 만나 머리카락을 얻었다.퍼즐 맞추기 게임 같았다.

한학수 PD는 8월부터는 아예 다른 취재를 모두 접고 오로지 황우석 논문 문제에만 매달렸다.4개월 가까이 딥스로트로부터 줄기세포 ‘과외’를 받으며 내공을 쌓았다.11월이 되었을 때는 국내 과학 기자 가운데 한학수PD만큼 복제 줄기세포에 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드물었다.<PD수첩>이 얼마나 철저히 취재를 했는가는 11월16일 노성일 이사장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난다.그는 자신이 <PD수첩> 방송의 피해자라고 밝히면서도 “< PD수첩> 은 너무나도 과학적으로 완벽했다.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라며 혀를 내둘렀다.

10월21일 한학수 PD는 미국 출장을 떠났다.취재의 핵심이자 오욕이기도 했던 출장이었다.<PD수첩>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연락해 피츠버그 대학에 소속된 황우석 사단 연구원들을 섭외했다.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기 전날 한PD는 한국으로부터 국제 전화를 받았다.DNA검사를 해 본 결과 논문에 나온 줄기세포 2번 라인이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 4번 라인과 일치한다는 전화였다.한PD는 논문이 가짜라는 확신을 굳혔다.

다음날 한PD는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황우석 박사만 주저앉히면 됩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젊은 분들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실제 어조는 여리기 때문에 듣기에 따라 강압 여부는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협박 취재라고 비판했다.

<시사저널>은 <PD수첩>의 취재 윤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보지 않는다.이 <PD수첩>의 결함은 올해의 인물 수상과 별도로 남을 것이다. 이 때문에 최승호CP와 한학수 PD는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MBC는 12월4일 <뉴스 데스크>에서 사과 방송을 하고 12월15일 특집 방송에서는 취재 윤리 위반에 대해 세 번 사과했다.

피츠버그 취재를 마칠 때까지  <PD수첩>은 취재 내용을 MBC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10월 말부터 취재 내용이 황우석 교수측에 알려지자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황교수측이 MBC 임원을 만나청와대를 언급하며 압박했다.<오마이 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1월 초 <PD수첩>을 협박죄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보고서를 받았다.

취재 윤리 문제로 거센 역풍 맞아

11월 중순부터 <PD수첩> 방송 내용이 공공연히 언론가에 떠돌았다.고등학교 1학년인 최CP의 딸이 방송 이후 벌어질 결과가 무섭다며 아빠에게 방송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부탁했다.11월22일 <PD수첩>은 난자 윤리 문제를 방송했다.방송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로다.MBC 광고주 불매 운동으로 11월29일 <PD수첩>에는 광고가 사라졌다.본사 10층 교양제작국은 항의 전화 벨 소리로 시끄러웠다.공공연한 협박이 이어졌고 한학수PD 가족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11월26일 MBC 앞에서 성난 네티즌들이 촛불 시위를 했다.최CP는 회사에 있다가 퇴근하면서 촛불 시위 행렬을 보았다.“시위 군중 가운데 난치병 환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죄송하다”
두 가지 진실이 팽팽히 맞설 때는 대개 어느 쪽의 논리가 맞느냐는 것보다 어느 쪽에서 도덕적 결함이 먼저 발견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PD수첩>이 그랬다.안규리,윤현수 교수와 함께 미국 피츠버그에 동행한 YTN 취재진은 12월4일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해 ‘<PD수첩>의 강압 취재 사실’을 고발했다.
게임은 끝난 듯 했다.대국민사과 방송을 한 MBC는 <PD수첩> 방영을 중단시켰다.MBC 보도국의 한 기자는 “MBC 로고만 보이면 삿대질을 하는 시민들 때문에 정상적인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여성부는 4월12일 방송된  <PD수첩>의 <강간죄를 개혁하라> 프로그램에 상을 주려고 했으나 돌연 취소하는 촌극을 벌였다.  
번민의 시간이었다.최CP의 몸무게는  7Kg 빠지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우리 잘못은 인정하지만 방송은 내보내고 싶었다.정 방송을 못 내보내면 취재한 사실 가지고 나와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MBC를 죽인 것도 인터넷이지만 살린 것도 인터넷이었다. 12월5일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황우석 논문에 대한 온라인 재검증이 이루어졌다.소장 생물학자라고 보도된 이들은 거의 매일 <사이언스> 논문의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해 알렸다.줄기세포 사진이 최소 11쌍 중복되었고, DNA 핑거프린팅에도 조작한 흔적이 있었다.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12월8일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대학에 재검증을 요청했다.12월9일 미국 피츠버그 대학 섀튼 교수가 <사이언스>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뺄 것과 논문 철회를 주장했다. 그리고 12월15일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없다’고 폭로했다.첫 제보로부터 5개월 보름이 지난 후였다.

소장 과학자들 문제 제기 후 상황 반전

12월15일 저녁 10시 MBC 시사교양국에서 <PD수첩>팀 가족이 모여 특집 방송(녹화)을 보고 있었다.이 자리에는 최CP와 한DP도 있었다.대기 발령되어 있던 두 사람을 대신해 최진용 국장이 방송 진행을 맡았다.방송은 왜 2005년 <사이언스>에 제출된 황우석 논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나열했다.도입 부분을 빼면 배경 음악이 깔리지 않았다.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고 적막이 흘렀다.방송은 한 문장의 자막과 함께 끝났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생명과학 전공 및 학생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PD수첩> 침몰 이후에도 황우석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한 BRIC, Scieng(과학기술인연합), 소장파 생명과학 교수 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시사저널>은 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PD수첩>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 시사저널 & sisapres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12-2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번주에 된통 당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모임에 서울대 경영대 2학년이고 소니 일본 본사 구조본에 있고 얼마전에는 부산 APEC까지 일본대사관 소속으로 참가했다는 형이 있었는데요. 저하고 아주 친했죠. 붙임성도 아주 좋았구요.(모임을 휘어잡는게 거의 노홍철 씨 급...ㅡㅡ;;) 서울대 동아리에도 열성적으로 참가하던 형이었는 데..


알고보니 가짜 서울대생이었더군요..
모임의 모든 분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짜 서울대 생도 1명 있었는데. 그 사람도
감쪽같이 속였더군요. 그 형은 2년동안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데.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balmas 2005-12-2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랬군요.
가끔 그런 일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부모님까지 속인 건 너무 했네 ...
 

 

사학법 거부권 행사 안하면 사립대 "내년 신입생 모집안해"

[매일경제   2005-12-17 09:29:00]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맞선 사학들의 신입생 거부 파문이 확대될 조짐이다.

지난 15일 서울과 대구ㆍ울산 지역 사립 중ㆍ고등학교가 내년 2월 신입생 배정을거부한 데 이어 일부 사립대학은 연말 2006학년도 정시모집 신입생 모집을 중단할예정이기 때문이다.

송영식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미 협의회 회장단 회의에서 최악의 경우2006년 신입생 정시모집 중단에 의견을 같이한 상태"라며 "최악의 경우란 24일까지노무현 대통령이 개정 사학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http://news.empas.com/issue/show.tsp/cp_mk/2235/20051217n01215/

 

중단해라 재미있겠다 중단해라 재미있겠다 중단해라 재미있겠다 ...

아예 박살나는 꼴 한번 보자.

 

[이런 걸 크게 기사화해준 매경의 속뜻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urblue 2005-12-1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끝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almas 2005-12-1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렇게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

깍두기 2005-12-1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저 빨간 댓글 진짜 웃겨요.

balmas 2005-12-1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깍두기님,
저는 억울한 사학재단을 응원하는 순수한 뜻에서 그냥 ...

라주미힌 2005-12-18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립대 의견을 존중해서 내년 굶으라고 하는게... ㅎㅎㅎ

krinein 2005-12-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학재단은 한치도 흔들리지말고 끝까지 결연하게 투쟁해주십시오, 라고 응원메일이라도 보낼까요? ^^;

menwchen 2005-12-1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라당..이러니 맨날 노무현 한테 당하지..쯧쯧즛
어찌되었든 사학법이 개정되어 잘 되었습니다.

balmas 2005-12-2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ㅎㅎㅎ 너무 과격하신 것 아니세요?
크리네인님/ 글쎄요, 격려의 댓글도 좀 달고 그래야겠습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 같아요. ㅋ
멘님/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쨌든 개정된 건 잘된 일이죠.
 
 전출처 : 라주미힌 > [펌] 황박사의 언론플레이 그 끝은 어디일까?

이름  
   생물학도  (2005-12-16 18:48:40, Hit : 107, 추천 : 13)
제목  
   황박사의 언론플레이 그 끝은 어디일까?
우려했던 대로 황박사는 "논문조작의혹"에 "원천기술이 있는데 재연해 보이면 되지 않느냐? 시간과 기회를 달라"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군요. 더불어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검찰의 수사까지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황박사가 또한번 수준급 언론플레이를 선보이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있군요....

1.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논문조작의혹"이다.

이번 사건은 누가 뭐래도 황박사팀이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서 복제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2005년 사이언스논문이 조작된 데이타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냐 아니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황박사는 '인위적 실수'라는 말로 데이타조작을 간접 시인을 하면서도, "음해세력이 있다"는 둥 "원천기술이 있다"는 둥 하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황박사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황박사가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당당할 수는 없습니다. 데이타 조작은 비전공자의 눈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로 보일지 몰라도 과학자에게는 근본자질을 의심켜하는 사안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만 보더라도 황박사의 다른 논문도 검증해야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 사실을 황박사가 몰라서 저렇게 당당한 것이라면 그런 분이 국가 핵심 BT 연구과제의 책임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고, 알고도 저렇게 당당한 것이라면 정말 뻔뻔스럽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중간고사 때 부정행위 하다가 걸린 놈 왈 “그 정도 점수 받을 실력은 충분히 있다. 기말고사때 내 실력을 보여줄게...” 이러는 것 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2. 원천기술만 있으면 됐지 논문조작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황박사팀이 체세포복제를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론 "줄기세포를 몇 개(8개? 12개?) 만드는 것 까지 성공했는데, 관리를 잘못해서 잃어버리고 지금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는데 실제로 논문까지 발표해 놓고 중요한 자료를 실수로 잃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박사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논문조작의 심각성으로 봐서 황박사는 이미 학자로서의 자질을 잃었고 따라서 앞으로 황박사는 다시 논문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학계를 지탱해온 중요한 룰 중의 하나가 데이타를 속이지 않는 다는 것인데, 데이타 조작이 밝혀질 경우는 (기술이 있고 없고 여부를 떠나서) 국제적으로 거의 퇴출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만약 정부가 계속 연구비를 지원하고 황박사를 감싼다면 한국 생물학계 전반이 국제적으로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황박사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져 체세포복제된 줄기세포주를 다시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 "원천기술"이라는 것이 황박사만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논문으로 발표된 기술, 재료 등은 발표하는 순간 비영리 목적의 연구를 위해 요구가 있을 때는 제공해 주는 것이 원칙이자 의무입니다. 따라서 만약 황박사팀이 정말 실현가능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논문에 기술한 방법이 거짓이 아니라면, 논문으로 발표된 이상 비영리목적의 연구를 위해서는 누구나 그 기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설사 황박사팀이 그 기술을 직접 제공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연구팀에 의해 쉽게 재연이 될 것입니다. 물론 황박사팀이 그 동안 쌓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라도 믿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앞선 건 사실이겠지만 그 차이가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특히나 만약 황박사팀이 앞으로 재연한다면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할 텐데 (노하우가 있더라도 다 밝혀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 보고도 못 따라하면 바보들이죠...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황박사팀이 핵치환 기술 말고 사실 줄기세포에 대해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업적(가장 중요한 것이 줄기세포를 변형되지 않게 배양하는 기술과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 또는 기관으로 분화시키는 기술)이 전혀 없다는 사실인데, 그 말은 결국 줄기세포 연구에서 황박사팀이 별로 경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투자해오고 믿어왔던 것이 아까워 황박사에게 미련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만약 황박사가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고” 정말 대단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언론플레이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후에 바이오벤쳐를 열어서 특허도 제대로 걸고 국익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명예회복의 유일한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사실 전 개인적으로 “줄기세포가 있었다”라는 주장도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논문을 투고하기 전에 줄기세포를 잃어버렸어야 되는데 (논문투고전에 줄기세포가 있었다면 그렇게 중복된 사진을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때 까지 논문 투고를 미루던지, 백보를 양보해서 논문 투고가 급했다고 한다면 일단 투고해 놓고 그동안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려고 무지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줄기세포가 없다면 그것은 만들려고 해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나중에 만든 6개는 3개월 만에 만들어 졌다고 했는데, 그 실력으로 그동안 뭐 했을까요 하나도 못 만들고..).
둘째, 지금 냉동보관중인 줄기세포주를 다시 풀어서 키우고 있다고 말하는데,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가 냉동보관중인 세포주가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냉동보관중인 줄기세포주가 있다면 PD 수첩이 DNA 검증을 요구했을 때 그것들을 풀어서 줬어야 정상적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엉뚱한 것 줬다가, 막판에 몰리자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냉동 세포주를 다시 풀어서 키운다는 것인지....

어쨌든 우리는 지금 참담한 기분으로 국민영웅인 한 스타 과학자의 비굴한 최후를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결코 황박사 한 명의 사기극으로 마무리 될 성질이 아니며, 과학정책이라는 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불리는 근본 방향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정치적으로는 정책의 실패에서 오는 탈출구로서의 “황우석 우상화”라는 우민화 공작에 대해 반듯이 권력핵심에게 책임을 물어야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