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둘러싼 논점들- 홍양희의 문제 제기에 답함
전시동원체제와 파시즘 구분해야

2005년 10월 02일   권명아 연세대 이메일 보내기

▲권명아 / 연세대, 국문학 ©
필자의 '역사적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에 대한 홍양희의 서평은 일제 말기 연구에 있어서 고민해야 하는 핵심적 논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홍양희가 제기한 논점들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필자의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홍양희가 제시한 세 가지 논점을 필자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시 동원 체제의 역사적 특성을 이전 시기와 관련하여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홍양희의 문제제기는 주로 이전 시기의 특성과의 연속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는 좀 더 구체적인 논점을 토대로 논의 구도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이는 먼저 일본의 동화 정책과 황민화 정책을 어떤 관련 속에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담고 있다. 이 논점은 대만과 조선의 식민 경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논점이다. 필자의 경우는 황민화를 동화의 연장선으로 보는 관점과 입장을 달리하면서(물론 황민화가 동화와 전혀 이질적이라는 차원이 아니다), 황민화 고유의 특성과 역사적 성격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다. 즉 필자의 논의는 황민화와 동화의 차별성, 특히 황민화가 사회적, 정치적인 적대적 갈등을 정체성 투쟁으로 전환시켜서 황민화를 존재론적 투쟁으로 만드는 특성에 주목하고 있다.


또 전시 동원 체제와 이전, 이후 시기와의 관계는 전시 동원 체제의 주체화의 역학(황민화와 관련된)이 근대 체제의 일반적 속성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또는 파시즘 체제의 특수성에 의해서 더욱 지배적으로 규정되는 것인가 라는 논점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 일례로, 가족이 사회의 기초 단위로 설정되는 것은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 체제 일반의 공통적 성격이다.

그러나 가족을 국민 구성의 기초 단위로 정치화하는 가족 국가주의는 일본의 근대 구성과 식민 통치의 종별적 성격이기도 하다. 필자의 가족 국가주의에 대한 논점 역시 이 문제를 규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 이는 파시즘 체제가 근대성의 일반적 특성에 의해 규정되는가, 혹은 파시즘 체제 고유의 성격이 보다 지배적인가 하는 논점을 내포하는 것이다.

필자는 파시즘 체제(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근대성의 예외적 국면으로 보는 관점과는 기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한다. 즉 파시즘 체제는 근대성의 역사적 전개 과정의 산물이라는 관점에 필자는 서 있다. 그러나 필자는 동시에 파시즘 체제의 역사적 특성이 모두 근대성 일반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점 또한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파시즘을 근대성의 경향적 특성으로 탈역사화하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역사적 파시즘 체제라는 규정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기 구분의 문제는 전시 동원 체제의 특성을 전시 체제 일반의 공통적 특성, 식민지 조선의 고유한 특성과 관련하여서 어떻게 구별적으로 논의할 것인가 하는 논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논점과 관련하여 홍양희가 사례로 제시한 전시 체제하 여성 동원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남성들이 전선에 나간 후방의 노동력 부족을 위해서 여성을 동원하는 것은 이차 대전기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양상이다.

그런 점에서 홍양희가 제기하는 후방의 여성 동원 문제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이라기보다 세계 대전기의 전시 체제의 공통적 속성이다. 오히려 가정의 정치화와 여성 동원은 이러한 세계 대전기 전시 체제의 공통적 속성과 함께, 일본의 전시 동원 체제의 특성으로서 가족 국가주의와 일본 여성과 달리 정치적 무능력자로 규정된 식민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사이의 불일치와 같은 문제들이 더욱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필자는 주로 이 점을 중요하게 논의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이 전시 체제의 동원 논리 속에서 일종의 정치 세력화와 권력을 얻게 되는 과정이 일본 여성들과 동질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일본 지식인 여성-조선 지식인 여성-조선의 이른바 여성 대중들 사이의 위계화와 서열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지 후방의 여성 동원을 강조함으로써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인다.


두 번째 논점은 필자의 문제틀이 자칫 친일 협력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규명하고자 한 문제는 바로 이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 추구 행위와 적대적 그룹에 대한 비난과 배제와 말살을 “어찌할 수 없음”으로 자기 합리화화는 정당화 기제에 대한 것이다.

이는 바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살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자기 정당화 기제라는 것이지, 이 자체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실상 필자가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은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연구를 비판하는 것이 마치 이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폭력에 동참한 것으로 환원하는 논리이다.

또한 이 연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파시즘에 동참하게 되는 요인들과 엘리트 집단의 동기, 욕망 구조들을 반사상이나 대칭상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가 제기하는 중요한 논점이다. 이들이 결과적으로 시대에 편승했다는 동일한 현상을 보이지만, 실제 그 내부의 욕망, 배제 기제, 동기, 정체성 불안의 요인들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상 젠더사가 차이화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인 갈등과 배제의 폭력적 투쟁의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또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 모든 차이화 과정을 대칭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 필자가 제기하는 중요한 논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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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5-10-0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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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0-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요~~ ㅋㅋ
 

 

 

논쟁서평: 『역사적 파시즘-제국의 판타지와 젠더정치』(권명아 지음| 책세상 刊 | 2005| 511쪽)
단절론적 시각 문제..."무엇이 최소한의 생존이었는가"

2005년 10월 02일   홍양희 한양대 이메일 보내기

이 책은 오늘날의 한국의 현실을 파시즘의 유산이 살아 숨쉬는 사회로 보면서 그러한 폭력의 시대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자기 성찰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그 기원을 일제말기 전시동원체제의 경험에서 찾으면서, 그것의 역사적 특성을 파시즘과 젠더정치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수탈과 저항, 혹은 억압과 동의의 구조로 일제 말의 파시즘 체제를 분석하는 역사 연구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분법적 연구는 파시즘 체제의 폭력성을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실제 모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파시즘의 속성, 즉 파시즘이 젠더, 지역, 인종 등을 기제로 식민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전환시키는 체제라는 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다. 총후부인, 청년, 남방담론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따라서 전시동원체제 하의 파시즘 체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 식민지라는 집단들 내부에 존재하는 정체성 투쟁의 양상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파시즘 체제를 유지시키고 대중을 그것에 합류하게 하는 근본 요인이 그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는 욕망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시선을 끄는 대목은 총후부인이나 스파이 담론을 통해 여성의, 모던보이나 애국청년 담론을 통해 남성의, 좋은 일본인 되기를 각각 분석한 2부와 3부의 젠더 관련 부분이다. 젠더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정체성 집단간의 갈등과 투쟁의 모습을 포착한 점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젠더사 연구에서 한 걸음 나아간, 이 책이 지닌 차별성 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황민화 정책과 그에 대한 저항이나 협력이라는 접근 방식과 달리, 식민지인들의 내부 투쟁을 통한 자발적 일본인 되기란 시각은 역사 연구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 연구자, 특히 한국사 연구자로서 이 책이 준 유용한 자극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전시 동원 체제기와 그 이전 시대를 너무 단절시켜 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총후부인 담론이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여성 정체성을 혐오하는 담론이었다는 점과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가정은 새로운 정치적 단위가 되었다는 주장이 그러하다. 물론 총후부인은 전시체제기에 나오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가정 주부와 여성해방적인 신여성 사이의 정체성 투쟁이 과연 이 시기에 한정된 담론이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식민지 초기부터 1920년대의 교과서와 잡지에도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정을 둘러싼 젠더정치는 일제 말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젠더로 이분화된 국가 분업주의는 근대국가의 중요한 시스템이었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가정은 국가로부터 개개인을 국민으로 자기 복제해 내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가정은 사적인 공간으로 은폐되어 있지만, 사실상 공적인 세계에 처음부터 열려있었다. 최근의 젠더사 연구가 사적 생활조차 정치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총후부인이 그 이전의 여성 담론과 구별되는 것은 남자들의 빈공간을 메우기 위해 사회적인 진출을 일정하게 용인하였다는데 있다. 요컨대 저자는 여성들 사이의 정체성 투쟁과 가정의 정치적 성격이 제국주의의 폭력성에서도 기인한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둘째, “파시즘 체제의 욕망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제한된 상황에서 그 폐쇄된 상황에서 적어도 자신을 파시즘적 폭력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도덕은 없는가”라는 논리 모순적 화두에 담긴 문제점이다. 이 질문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파시즘 체제는 국민의 일상 전체를 잠재된 적에 대한 공포를 통해 규율함으로써 일상적으로 끝없이 좋은 일본인 되기의 실천을 수행하게 하는 주체화의 역학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은 그 체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고, 부지불식간에 일본 파시즘에 공범이 되고 만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 서면 친일 협력의 책임 부분에서 전시동원체제 이전과 이후의 친일 행위를 분리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이후의 친일은 책임을 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위 자체가 정당화된다. 저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여 조심스럽게나마 “파시즘의 유산과 최소한이나마 거리를 두게 해주는 최소한의 도덕은 어쩌면 자기 안의 무한 증식하는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그것인지도 모른다”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 경우 이번에는 무엇이 최소한의 생존이었는지 그 기준을 세워야 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일상적이고도 구조적인 폭력 체제 안에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결론에 공감하면서도 저자의 화두에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째서 일까.

홍양희/한양대·한국근대사

필자는 한양대에서 ‘조선총독부의 가족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기 호적제도와 가족제도의 변용’, ‘식민지시기 남성교육과 젠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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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5-10-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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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0-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오랜만이죠, 따우님.
ㅎㅎㅎ 그런데 일단 퍼가시려면 추천도 하나 해주셔야죠~~
 

 

 

1세기 넘게 지속된 낡아빠진 우상을 땅에 묻을 시간인가?
해외논쟁_ 프랑스, 정신분석학이냐 행동-인지주의 정신치료냐

2005년 10월 02일   양창렬 프랑스통신원 이메일 보내기

프랑스의 정신의학자는 대략 1만3천7백50명 정도(70%가 정신분석학적 경향)이고, 그밖에 심리학자나 정신요법의사는 8천2백50명에서 1만4천명에 이른다. 전자만 따질 경우, 프랑스에는 주민 7천5백명당 1명의 정신분석의가 있으며, 후자를 포함할 경우, 4천1백명당 1명의 정신분석의가 있게 된다. 4만5천명당 1명의 정신분석의를 가진 미국과 비교한다면, 프랑스에서의 정신분석학의 위치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종주국이라 할 만한 프랑스에는 그것을 비판하는 담론들도 끊이지 않았다. 사르트르,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등은 대표적인 예다.

지난 9월 1일, "프로이트 없이 살고, 사유하고, 건강해지자"라는 부제를 단 ‘정신분석학 흑서’가 프랑스내 정신분석학 경향에 대한 대대적 비판을 감행하며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8백30쪽에 이르는 이 두꺼운 책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인식론적, 철학적, 정신요법적 비판들 뿐 아니라, 정신분석치료 과정에서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 환자나 주변인들의 증언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책의 중심에는 미국에서 발전된 행동주의적 -일정한 환경에서의 자극과 그에 대한 관찰 가능한 반응에 주목- 이고 인지적인- 인간의 마음을 정보 처리하는 인지체계로 간주, 인지과정에 대한 단계적 분석- 정신치료 경향의 정신의학자들이 있다.


‘르 푸앙’(Le Point)지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정신분석학자 자크-알랭 밀레르는 본 논쟁의 쟁점이 '정신적인 것을 매매'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논박했다. 지난 2003년에는 정신치료사 자격증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을 위한 아쿠와예법이 통과됐으나, 아직 시행안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이며, 2004년 6월 프랑스 국립 보건 의학 연구소(INSERM)의 보고서는 행동-인지 치료가 '관계주의적인 심리치료'(곧, 정신분석학)보다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에 국한되기 보다는, 의료보험체계의 위기에 봉착한 프랑스 정부의 대책 마련과 맞물려 있다. 즉, 어떤 치료 방식이 '효율적'이고, '저렴한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쟁점은 정신분석학과 행동-인지주의 정신치료 경향 사이의 학술적 쟁점 및 토론을 저해하는 형국이다. "정신치료가 전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되어버렸으며, 순전히 '의학적'으로 되돌아가며 행동주의에 복속되고 있는 중"이라는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의 지적과 "행동-인지주의 정신치료는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중시하는 학습과 조절의 기술이지 정신 치료가 아니다"라는 자크-알랭 밀레르의 지적은, ‘정신분석학 흑서’의 저자들이 보기엔 행동-인지주의 경향에 대한 선험적인 비판일 뿐, 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빠져있다.


다시 한번 불가능한 대화로 치닫고 있는 현 논쟁은 사실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숨'에 비유됐던, 정신(psuche)의 위치를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였다.

사람들마다 그것을 가슴이나 심장에, 때로는 머리에, 때로는 온 몸을 휘젓고 다니는 것으로 간주하고자 했으나, 정신 자체는 언제나 비록 인간 '안에' 존속하기는 하나, '비가시적이고', '지정 불가능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원리'이자, 신체를 통해 '징후'로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분석대상 자체, 즉 '정신'을 지정할 수 없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과학을 비단 칼 포퍼처럼 반증가능성을 통해 정의하지 않고, 그 단어의 원래적인 의미에서 주관적인 견해나 생각을 배제한 인식이라고 정의하더라도, 정신분석학을 '과학'의 범위에 넣을 수는 없게 되는 셈이다.

또한 정신을 '분석'한다고 할 때, 분할은 언제나 무한히 가능하며, 징후 역시 잠재적으로 무한하다는 측면에서 그 분석은 '종결될 수 없는' 것이자 그 치료는 '끝날 수 없다'는 아포리가 존재한다. 정신분석의는 인간의 마음을 치료함에 있어서 시시포스가 되기를 자처하지만, 극도의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각종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그 증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여기에 치료 과정이라는 시간을 감내하기 위한 심적 고통 및 치료비 부담이라는 경제적 고통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반면, 정신치료는 정신에 대한 iatros적(의사 혹은 의학적) 접근을 주장한다. 정신분석이 과정의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정신치료는 무엇보다 치료 및 결과가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정신치료는 해석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 조건을 부여해 유리한 결과를 유도해내는 한에서, 근대적인 의미에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도 '정신'의 아포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인지심리학에서 하는 것처럼 두뇌(가정된 정신의 위치)에 대한 생물, 생리학적 연구 혹은 정보처리 메커니즘 추적을 통해 모든 것이 밝혀질 수는 없다.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한계에 위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학 흑서’ 혹은 미국에서 주류적인 행동주의-인지주의 정신치료가 은밀히 제기하는 '빠른' 치료와 '저렴함'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정신분석학이라는 다른 접근 방식의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해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의 민주주의를 깨트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아버지의 이름'에 기대온 정신분석학은 미셸 또르가 지적하듯 아버지의 지위의 쇠락 및 새로운 父性 관계의 조직화에 대해 답해야 하며, 디디에 에리봉이 지적하듯 동성애를 비롯한 사랑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정신분석이냐 정신치료냐라는 이접적인 질문은 정신분석과 치료라는 연접적인 실천으로 바뀌어야 한다.

양창렬 / 프랑스 통신원·파리 8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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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5-10-0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이네요!

balmas 2005-10-0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죠?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석이 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통해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문제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정신분석의 본산이라 할 만한 프랑스에서 앞으로 정신분석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내심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답니다. ^0^

가을산 2005-10-0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내일 제대로 읽어볼래요....... 쫌만 기다려주세요.........
 

 

10월 반딧불 : 무지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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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10년을 넘긴 동성애 인권운동의 결실로,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동성애라는 말은 조금씩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모'와 '변태'는 동성애를 지칭하는 익숙한 표현이고, 동성애를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다수의 이성애자들 역시 직접 대면하는 동성애자에게 슬쩍 낙인의 딱지를 붙이는 경우가 다반수이다. 심지어 가부장적 시각이 노골화된 포르노물에서, 대상으로 재현되는 일조차 비일비재한 레즈비언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더욱 크다. 최근에는 이에 대항하여 레즈비언들이 직접 공동체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영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침묵을 깨고>의 스틸사진 [출처] 인권영화제


이성과의 결혼, 혈연관계로 맺어진 이른바 정상 가족을 삶의 근간으로 여기는 이스라엘. <침묵을 깨고>는 유대교 사회의 휘장 아래 감춰진 레즈비언들의 고통스러운 혹은 환희에 찬 고백을 담았다. 영화는 이성애 질서에 편입하기 위하여 정체성을 부정해야 했던 기혼 여성의 경험을 통해,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머나먼 자아 찾기의 여정을 떠나야 했던 기혼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시에 부모님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결혼을 앞둔 한 레즈비언의 토로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얻기 위해 잃어야 하는' 레즈비언의 현주소를 은밀하게 시사한다.

작품이 비추는 현실은 유대교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천주교, 개신교 등의 일각에서 종교의 교리를 내세우며 동성애를 탄압하는 것은 그다지 생소하지 않다. 이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억압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종교의 자유마저 허용치 않는다.

이번 10월 반딧불은 침묵을 강요하는 견고한 사회의 틀을 깨는 무지개빛 외침이 계속되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 때와 곳 : 10월 8일(토) 늦은 7시, 미디액트 대강의실
△ 상영작 : <침묵을 깨고>
△ 부대행사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김김찬영(나루)과 함께하는 동성애 바로알기
인권하루소식 제 2906 호 [입력] 2005년10월01일 5: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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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서 달려왔습니다. 잘 지내시죠?^^

balmas 2005-10-0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너무 반가워요. ^-^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아직 논문이 다 안 끝나서 조금 더 바빠야 할 것 같아요.
주하랑, 책장수님이랑 모두 다 안녕하시죠? :-)
 

 

 

 

해외학술동향 : 다시 불붙은 하이데거와 나치즘 논쟁
"불가피하게도, 하이데거는 두명이다"

2005년 09월 13일   양창렬 해외통신원 이메일 보내기

지난 3월말 엠마누엘 파이의 ‘하이데거, 철학에 나치즘의 도입(Heidegger, Introduction du nazism dans la philosophie)’이 출간되면서, 프랑스 지성계는 다시 한번 ‘하이데거 사건’에 휩싸였다.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에 서평과 인터뷰들이 앞다퉈 실렸고, 국영 라디오 France Culture에서는 닷새에 걸쳐 엠마누엘 파이와 하이데거 전문가들과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하이데거가 2006년 아그레가시옹 논술주제로 처음 선정된 것과 맞물려, 파이의 책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해 스테판 자그단스키를 위시한 프랑스 하이데거 연구가들은 전 세계 대학에 ‘프랑스 철학자들의 반격’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파이의 책 및 하이데거 비판에 조직적으로 맞서기 위해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http://parolesdesjours.free.fr/scandale.htm)

뒤이어, 지난 6월 22일 자크 브랑슈빅, 장-볼락, 장-피에르 베르낭을 포함한 각 분야의 인문학자들은 “나치즘과 관계한 하이데거 저작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지속 심화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파이의 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이는 그의 책에서 불어로 번역되지 않은 1933년과 1934년 겨울의 두 세미나를 검토함으로써, 하이데거가 SS와 SA 제복을 입은, 제 3제국의 ‘新귀족’을 이룰 당원들에게 ‘정치교육’을 했고, 그의 주요 개념인 존재와 존재자를 각기 총통(국가)과 민족에 비교했으며, 민족을 ‘피와 인종의 단위’로 정의했다고 폭로한다. 특히, ‘진리의 본질’이라는 세미나에서 하이데거는 “‘적’은 민족 구성원의 실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며, 적을 찾아내고, 때로는 적에 맞서 (민족이) 일어서기 위해 적을 만들어내기도 해야한다. 그리고 이것은 적의 총체적 무화를 겨냥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위 인용부분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53,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왕이다”에 대한 하이데거의 주석이기는 하지만, 그 암묵적 논지는 로제-폴 드루와가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사상 범죄’라는 제목의 ‘르몽드’지 서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과 총통의 의지는 하나’, ‘정치적인 것의 특정한 구분은 동지와 적의 식별’이라고 말했던 칼 슈미트의 사유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파이는 하이데거가 나치즘의 토대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심지어 히틀러의 일부 담화를 직접 작성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하며, 1933~34년경의 저술들의 경우, 도서관의 철학 코너가 아닌 히틀러 역사 박물관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사실, 파이의 주된 논지와 그가 밝혀낸 하이데거의 나치 행적은 대부분 이미 알려져 있는 것들이며, 이번 논쟁에서도 우리는 하이데거 고발자와 변호자들 사이의 ‘불가능한 대화’가 반복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하이데거의 1933~34년 시기의 저작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의 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프랑수와 페디에의 올바른 지적에도 불구하고, 막상 하이데거 전문가 스스로가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스스로를 이격시켜 사태를 조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인 것의 허구’, 자크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 국내 연구로는 박찬국의 ‘하이데거와 나치즘’ 등이 그러한 시도를 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논쟁이 주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사유한 것과 하이데거라는 인간이 행한 것을 분리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 ‘두’ 하이데거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애초부터 구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불가능한 혹은 끝나지 않을 대화와 거리를 취하면서, 현재 불붙은 논쟁을 보다 건설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을까.


‘하이데거와 나치즘’은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관념과 나치즘이 내포한 관념 사이의 마주침이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관념이 나치즘의 관념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니힐리즘에 대한 국가 사회주의의 혁명적 비판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나치 참여가 “어리석음(Dummheit)”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하이데거의 회고는 자신이 그 가능성을 잘못 보았던 어리석음을 후회한 것이지, 자신의 이념 자체, 나아가 국가-사회주의의 ‘진리’ 자체―나치즘의 현실과는 구분되는―를 폐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에 본래적으로 현실의 나치즘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념 사이의 일정한 유사성에 있다. 즉, 하이데거는 곧 나치다라는 식의 폭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사유와 나치 ‘이데올로기(논리적 관념)’ 사이의 공통 지평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독일의 정황에서 그 지평을 발견하는 필립-라쿠 라바르트는 다음의 것들을 예로 든다.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유의 신화적, 비극적 구조, 고대 그리스 전통과 독일 정신의 동일시, 유럽 운명의 중심에 선 독일인의 비극적 결단, 그것과 맞물린 ‘새로운 시간, 장래’에 대한 약속.


하이데거의 사상은 존재의 진리가 현시되는 장소로서의 ‘거기’가 바로 ‘여기’, ‘눈앞에’ 있다고 말할 때, ‘도래’할 것이 ‘지금’ 있다고 선언할 때, 모든 존재자들에 공통된 존재가 특정 민족이나 국가, 총통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간주될 때, 대문자 타자가 피와 땅과 결합된 특정한 존재자인 적과 동일시될 때의 위험을 보여준다. 약속의 ‘철학’이 배태한 ‘현실’적 위험에 대한 지적 및 그에 대한 해체적 독해는 나치즘을 사유하기 위해, 그리고 사유 자체를 위해 하이데거를 읽기를 그칠 수 없다는 데리다의 주문이기도 하다.

양창렬 / 프랑스통신원, 파리8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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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5-09-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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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9-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좀 바깥나들이를 하시려나

balmas 2005-09-2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금씩 ...

yoonta 2005-09-2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데거의 나치연루가 그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데.. 왜 또다시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네요.-_-a 제 생각엔 하이데거의 존재철학이 가지는 반기술주의적 성격과 독일민족의 특수성으로부터 이러한 도구적 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기획에서 그의 나치연루는 비롯되는거 같은데요. 1933년의 나치와 하이데거가 총장직을 사퇴한 이후의 나치를 동일한 것으로 보아선 안될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34년이후의 나치는 독일민족의 우수성 즉 아리안민족의 우수성을 배타적으로 우상화하였고 그로부터 극단적인 반유태주의, 인종주의적 정책을 전개해나간 반면 33년까지의 나치는 1차대전이후 30년대초까지의 피폐한 독일의 상황에 대한 대안이 될수있는 하나의 새로운 정치형태로 하이데거에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지식인들도 이와같은 가능성을 보고 나치를 지지했던 것이고요..

하이데거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민주주의와 국가권력에 대한 소박한 이해였다고 봅니다. 당시의 바이마르공화국이 가졌던 친자본주의적/친미적 성격에 대한 반발로 하이데거는 민주주의라는 정치형태을 하나의 혼돈으로만 보았던 것 같고...그것의 대안으로 초기의 나치즘이 표방했던 독일민족 특유의 독자성을 옹호하는 정치구호에 매료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balmas 2005-09-27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아마도 하이데거가 그만큼 20세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였기 때문이고, 또 하이데거 핵심 사상과 나치즘에 대한 그의 관여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겠죠.

yoonta 2005-09-27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접한 관련이 있죠..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이 극단적 인종주의로 변질되기 전의 나치즘과 연관되고 그 연관을 통해 독일 민족을 변혁시킬수 있을것으로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하이데거사상을 나치즘 그자체와 동일시하거나 혼돈하는 것은 잘못이란 거죠.. 만약 빅터파리아스나 엠마누엘 파이가 주장하는 것처럼(파이의 책은 아직 못봐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파리아스와 별반 다르지 않을것 같네요) 34년이후의 나치즘과도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면 34년에 총장직을 그만두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이데거는 38년까지도 히틀러에 대해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 같지는 않은데요..그런점이 파리아스나 파이같은 하이데거고발자의 눈에는 중요하게 보이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자체는 비록 하이데거 스스로 초기의 나치즘에 연관되는 것으로 평가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독일민족공동체라는 시대적 과업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서였던 것같고요..36년부터 행한 니체의 강의를 통해서 나치즘 역시 서구문명의 극단에서 나타난 니힐리즘의 하나라고 보고 극복해야만 될 근대적 기술주의의 정점으로서 나치즘을 비판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때문에 초기에 나치에 부역하였던 그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하이데거사상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짓이라고나 할까요..그런 오류를 반복하는 것 같다는 거지요.

balmas 2005-09-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yoonta님 말씀대로라면 하이데거의 나치즘 연루는 초기의 우연적
실수겠지만, 비판가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것 같군요.
사실 하이데거 같은 대가가 우연히 실수로 그랬다고 보는 건 어떻게 보면
하이데거의 사상적 역량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걸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저는 비판가들이 하이데거를 매도하기 위해 나치즘과의 연루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오히려 진지한 비판가들은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연루에서 서양 철학 또는 서양 형이상학에 내재한 근본적인 난점의
한 가지 징후를 보는 것 같더군요. 하이데거처럼 서양의 형이상학의 핵심의
한 측면을 정확히 꿰뚫어본 철학자가 나치즘을 선택했다는 건 우연적인 사실도
아니고, 단지 하이데거 한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스캔들도 아니라는 거죠.
사실 제가 보기에 yoonta님의 판단에는 이미, 하이데거가 나치즘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우연적인 스캔들, 조금 신중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시적인 실수로
축소하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yoonta님이 하이데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하이데거주의자들의 그런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자기 방어의 표현일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해소하는 게 과연 철학적,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또는 생산적인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yoonta 2005-09-2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의 이야기는 알겠는데..그렇다면 그 서양철학의 난점(하이데거철학의 난점)이 뭐냐는 거죠..그리고 또 기술문명을 비판(나치즘에 대한 비판)한 하이데거의 철학과 나치부역은 또 어떻게 설명하느냐하는 문제도 남는거구요. 자기방어일뿐이라고 말씀하시는데..님의 답변에는 그것이 왜 자기방어일뿐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군요..

balmas 2005-09-2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저는 여기서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연루에 관해 님과 논란을 주고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비판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시면, 국내에도 관련 문헌들이 제법 번역되어 있으니까 그걸 참조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가령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의 하이데거에 관한 장을 보시거나
얼마전에 번역된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 같은 글을 읽어보시면 되겠죠.

yoonta 2005-09-2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버마스의 그 책에서의 비판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는 물음표를 달아야 될것 같던데요..소위 <주체철학>으로 하이데거를 분류하는 하버마스의 합리성 혹은 계몽적 이성의 기준으로는 나치와의 차별성보다는 친화성이 더 크게 보일테니까요..그런데 그 책에서조차 하이데거가 존재사론적 개념을 전개한 후기에 가서는 나치와 거리를 두었다고 판단했던 걸로 압니다. 어쨋든 하이데거의 이번 논란과 관련에 간단하게나마 balmas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에 몇자 적어봤는데요..괜한 헛수고만 한거 같네요..(무슨 책을 읽어보라는 정도의 덧글을 기대했던 건 아닌데..-_-)

balmas 2005-09-29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제가 보기에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계라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빅토르 파리아스나 다른 몇몇 저자들에서 볼 수 있듯이 하이데거가 얼마나 나치즘에 관여했고, 또 그의 사상의 실제 전개과정에서 나치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라는 주제가 있겠죠. 그러니까 좀더 역사적/전기적이고 고발적인 성향을 띠는 측면이겠죠. 그래서 실제로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하이데거가 평생 나치 당원증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고발하기도 하죠.

반대로 하버마스나 데리다, 레비나스 또는 부르디외 같은 사람들 및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는, 이런 역사적/전기적인 측면보다는, 좀더 일반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의 경우는 하이데거 개인이나 역사적인 정치적 운동으로서 나치즘(말하자면 1930년대 초에서 시작해서 1945년에 종말을 고한)보다는,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표현되는 서양 형이상학의 어떤 특성이나 적어도 서양 근대 사상 내지는 독일 사상의 어떤 측면과 파시즘 일반의 사상적 연관성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라면 실제로 하이데거가 1934년 내지 1935년 이후에 더 이상 나치즘 운동에 관여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죠.

제가 yoonta님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건 바로 이 두 번째 측면을 중시하는 비판가들이 있더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하버마스나 데리다의 저작을 지적했던 거구요. yoonta님이 그들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yoonta님의 자유입니다. 저는 yoonta님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서 yoonta님과 논란을 주고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하이데거의 사상의 전개과정 여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뭐 이 문제에 관해서 하버마스나 데리다, 레비나스와 다른 독창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도 않구요. 그러니 제 생각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실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yoonta님이 "헛수고만 했다"고 하시니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yoonta님이 좀 오바한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쓴 것도 아니고, 하이데거를 고발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yoonta 2005-09-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이 이야기하신 두 번째의 하이데거비판이 님이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였다는건 위의 님의 덧글에서 이미 알고있었던 내용이고요..어쨋든 바로 위 덧글에서 님의 의견은 충분히 개진된 것 같네요. 바쁘신데.. 괜히 관심없는 내용으로 귀찮게 해드린 것 같네요. (뭐 오바랄거까진..걍 간단하게나마 님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 뿐인데..그럴려고 이런 블로그 있는거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