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텔레스트리트의 기원 및 의의에 관한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길.

아래 주소에서 퍼왔습니다.

http://www.mediact.org/web/research/apply.php?mode=emailzine&flag=emailzine&subno=758&subTitle=공동체라디오%20/%20TV&keyno=769

 

 

길거리에 TV 방송국을 세우다:

이탈리아 공동체TV 운동


김 희 정( ACT! 편집위원 )



#.

2002년,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피아트(FIAT)의 한 사업장. 대량해고로 파업이 계속되던 이 현장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일 파업의 폭력성과 해고의 불가피성을 들먹이는 주류 미디어의 작태에 분노한 활동가 대여섯 명이 <텔레파브리카(Telefabrica)>라는 이른바 해적 텔레비전 방송국을 만든 것이다. 방송국 장비라 해봐야 송신기와 안테나, 텔레비전이 전부였지만, 이곳에서 이들은 파업현장 소식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최소한의 편집만으로 인근 텔레비전 채널에 방송했다.


 

낯설지 않은, 새로운 경향: 텔레스트리트

 

2002년부터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 해적 TV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텔레파브리카의 사례는 텔레비전 채널을 저항 미디어로 새롭게 활용한 흥미로운 시도였다. 비록 3일간의 방송을 끝으로 당국에 의해 폐쇄당했지만 이곳에서의 실험은 전국의 수많은 해적 방송국이 벤치마킹하면서 게릴라전을 시도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의 한 양상인 텔레스트리트(Telestreet) 운동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소출력 공동체 방송국을 통칭하는 말이다. 스트리트 텔레비전(street television), 다시 말해 길거리에 세워진 텔레비전 방송국을 의미의 이 용어는 자본의 집결체인 ‘방송국’이라는 물적 토대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권력과 법의 테두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저항의 의미를 담보하는 ‘거리’의 미디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소규모 독립 공동체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 해적 방송국으로서의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텔레스트리트, 현재 그 수가 전국적으로 수백 곳에 이른다고 하니 어림잡아 동네마다 이른바 방송국이 한두 개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 해적 방송의 역사


사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사에서 해적 방송국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70년대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던 아우또노미아 운동의 한 영역이었던 독립 미디어 운동 속에서 이미 미미하나마 해적 채널은 시도되었다. 최초의 스트리트 TV는 1972년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Biella)라는 마을에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송이 채 정착되기 전인 73년에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 사건을 기화로 가속화된 표현의 자유 논쟁은 74년 법원으로부터 당시까지 미디어 영역을 장악하고 있던 공영방송 RAI의 독점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은 이후 해적 채널의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90년 대까지 <La TV del Pratello>(볼로냐), <OffLineTv>(로마 등), <BoicoopTV> 등 다양한 소출력 방송국이 지역에서 공동체 방송 운동을 시도했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본격적인 네트워크 운동으로 확대된 것은 2002년 볼로냐에서 <오르페오(Orfeo) TV>가 개국하면서 부터이다. 70년대부터 해적 라디오 방송으로 유명했던 <라디오 앨리스(Radio Alice)> 채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오르페오 TV>는 작은 송신기 하나와 안테나, 텔레비전 한 대로 지역방송국을 실현할 수 있음을 좀더 현실적으로 증명해보였다. <오르페오 TV>의 사례는 이후 여러 공동체의 모방 견본이 되어, 파업 현장에 방송국을 연 <텔레파브리카>를 비롯, 장애인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 디스코 볼란테(Disco Volante)>, <텔레오트(TeleAut)>와 같은 수많은 방송국이 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 2005년 현재까지 이탈리아에는 200여 곳의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존재하며, 이들은 전국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www. telestreet.it)를 이루고 정기적인 전국 모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소출력 방송국은 실제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르페오 TV>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대강 이렇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 만들기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3가지다. 일단 저렴할 것, 설치가 쉬울 것, 다른 송신 장비나 사용자를 가능한 한 방해하지 않을 것.

 

a. 장비와 비용, 채널

우선 필요한 장비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안테나와 케이블, 송신기가 전부이다. 송신 범위를 좀더 확대하고자 할 때는 여기에 (전파) 증폭기 정도가 더 필요하다. 주로 인근 전파상에서 구할 수 있는 이런 장비는 이탈리아 물가로 약 500유로(65만 원)에서 1000유로면 마련할 수 있다. 보통 건물 옥상에 설치하는 안테나로 송신할 수 있는 범위는 150m 이내에 불과하지만, 좀더 비싼 송신기와 증폭기를 부착할 경우, 지역에 따라 약 1킬로미터 이내에서 여건이 좋을 경우 3킬로미터까지 송신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주파수는 주류 방송국의 송신시설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활용했다. 이를테면 건물이나 언덕, 산과 같은 자연지리적인 장벽 때문에 생기는 이른바 ‘음영 지역(shadow zone)'에 소규모 송출기를 세워 주류 방송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 빈 채널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식이다.


b. 제작 주체와 컨텐츠

텔레스트리트 채널을 생산하는 주체나 컨텐츠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는 미디어 활동가 학생이 주축이 되었지만, 현재는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그룹, 노동조합 등과 같은 특정 목적을 띤 운동세력뿐만 아니라 동네 반상회 같은 일상을 소개하는 주민들의 채널 또한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기독교 집단까지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소출력 해적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으니 해적 방송의 대중화를 짐작할 만하다.

방송 시간이나 편성 또한 천차만별이다. 극소수의 방송국만이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하루 몇 시간, 혹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방송을 한다. 물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게릴라 채널을 지향하며 비정기적으로 게릴라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곳도 다수다.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


한편,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현 시점에서 더욱 난립(?)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이탈리아의 기형적인 미디어 시장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 1974년 법원의 판결, 즉 공영방송의 미디어 독점이 위헌이라는 결정은 독립 미디어 방송의 활성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상대적으로 자본이 풍부한 사영방송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 이탈리아 총리이자 정,재계 실권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유망한 사업가였던 베를루스코니가 미디어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80년대 중반, 이때부터 그는 주요 사영 채널 4곳 중 3곳인 <카날레 5>와 <이탈리아 우노>, <레테 파트로> 등을 사들였고, 이를 ‘미디어세트(Mediaset)'라고 칭하면서 사영방송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재력과 미디어 권력을 바탕으로 94년 총선에 승리하면서 베를루스코니는 최초의 재벌 총리가 되었고, 권력을 바탕으로 이후 국영방송인 RAI(1,2,3)까지 장악하면서 전국 시청자층의 90% 이상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잦은 실정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2001년 5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조종할 수 있는 그의 미디어 장악력 때문이다.1)

 

지상파 방송을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하고 있다면 이탈리아 유료 위성채널은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을 독식하면서 이미 소유한 미디어 채널만으로도 전 지구인의 1/4이 그의 미디어를 소비해야 하는 머독의 미디어제국은 이탈리아에도 이미 그 세력을 뻗쳤다. 국내 가장 큰 유료 텔레비전 채널 두 곳, 즉 가장 규모가 큰 Stream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유료 채널인 Telepiu도 최근 인수했다. 여기에 베를루스코니와 머독의 암묵적인 공조체제가 더욱 공공해지고 있으니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을 황폐화는 시간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텔레스트리트 운동은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서 잉태된 필연적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미디어가 더욱 상업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볼거리를 잃어갔고, 권력과 결탁한 정치적 공세에 물리기 시작했다. 질적으로 하락한 방송과 눈과 귀를 막는 정보 편중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점차 스스로의 미디어 생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능성, 실험은 계속된다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더욱 성장하고, 이와 맞물려 미디어와 권력, 자본과의 결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때문에 정보의 정치가 중요해지면 질수록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구축과 대안적인 정보 배포를 통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최근 텔레스트리트 네트워크는 단순히 실험적인 방송국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방송 컨텐츠를 더욱 안정적이고 유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미디어 액티비즘이 단순히 대안적인 정보를 생산해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이슈를 만들고 대립 지점을 부각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때 각 지역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이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하는 주체의 정체성이나 컨텐츠의 내용, 방송에 대한 시각의 측면에서 볼 때 현 시점에서 텔레스트리트 운동을 급진적인 미디어 운동 영역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의 유혹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탈리아 미디어 구조 속에서 영상세대 시청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 입장에 머물기 거부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류 미디어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 생산과 배포를 거부하고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한 대안적인 내러티브 생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다음은 이러한 텔레스트리트 운동의 한 경향을 대변한다.

 

#.

로마 외곽의 산 로렌조(San Lorenzo) 지역, 빈민가로도 유명하며 전통적으로 급진적인 사상이나 예술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이 지역 일대에서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의 뒤통수를 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이탈리아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던 날 밤, 유로 채널인 <스카이 이탈리아>(머독 소유)에서만 독점으로 중계되어야 할 결승 경기가 이 일대 빈 채널이었던 UHF 21번에서 무료로 전송되었다. 주범은 바로 TeleAut를 비롯한 이 일대 텔레스트리트 그룹, 이들은 경기가 열리기 얼마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위성방송의 신호를 해독, 재송신하는 방식으로 지역 전체에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버렸다. 더욱 재밌는 것은 중간중간 광고 타임에 머독의 미디어 독점체제를 비판하는 광고와 지역투쟁 소식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동시에 머독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 사건은 다음 날 온 나라의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십 경기는 온 국민의 눈을 사로잡는 이벤트다. 관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파 중계에 목을 매I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디어재벌 머독이 소유한 <스카이 이탈리아>가 축구 중계권을 손에 넣으면서 TV로 축구를 보기 위해 최소 47유로를 내고 유로채널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한자들은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 산 로렌조에서의 텔레스트리트 방송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현실에 대한 파괴를 꿈꾸는 유쾌한 실험이었다. 어찌되었건 텔레스트리트는 더욱 대중화되었고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을 뿐이다.

 

 

------------------------

1) 그의 미디어 장악은 비단 방송국 채널만이 아니다.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잡지 <파노라마>, 최대 출판업체인 <몬다도리>, 인터넷 미디어 그룹 <뉴미디어>, 최대 상영관 매체인 <시네마 5>, 비디오 대여 체인인 <블록버스터>, 그리고 명문 축구단인 <AC 밀란> 등을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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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6-2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죠??

해적오리 2005-06-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에는 없나 봐요.

MANN 2005-06-2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balmas 2005-06-2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핫! 정말,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MANN, 오랜만이네, 이제 좀 한가하겠구만.

릴케 현상 2005-06-2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케이비에스1,2랑 엠비시,이비에스 이 네 프로만 있던 시절 이후에는 거의 티뷔라는 걸 가진 적이 없어서(사실 그전에도 내가 가진 건 아니겠지만) 케이블이나 유선방송 자체에 대해 감이 안와요(오늘 물어보니 케이블과 유선은 같은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려면 유료방송이 전제되겠죠? 유료방송이 감이 안오는 산책임다-_-

balmas 2005-06-2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블과 유선은 유료잖아요.
가령 박찬호 야구경기 중계를 보려면 케이블이나 유선방송을 신청하고
다달이 얼마씩 돈을 지불해야 하니까,
이것도 유선인 셈이죠. :-)

릴케 현상 2005-06-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게 유료라고 하더군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감이 안 온다는 얘기죠? ㅋㅋ 가격이 얼마 정도 하나요?

balmas 2005-06-2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은 저도 잘 모릅니다. ^^;;;
저희집은 유선방송을 보내는데, 한 달에 한 3천원 정도 하나 ...
 

* 아주 재미 있는 기사가 있어서 [미디어 참세상]에서 하나 퍼왔습니다.

 

텔레스트리트 : 이탈리아 해적 TV 운동
    
제작: 앤드류 로웬탈

이탈리아는 수상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상업 채널 4개 중 3개와 공영 채널을 소유하고 있다.
이 숨막히는 미디어 독재 상황 하에 이탈리아에서 유난히 발달한 저항 미디어 운동이 있으니,
이것이 텔레스트리트다.

"로마 외곽의 산 로렌조(San Lorenzo) 지역, 빈민가로도 유명하며 전통적으로 급진적인 사상이나 예술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이 지역 일대에서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의 뒤통수를 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이탈리아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던 날 밤, 유로 채널인 <스카이 이탈리아>(머독 소유)에서만 독점으로 중계되어야 할 결승 경기가 이 일대 빈 채널이었던 UHF 21번에서 무료로 전송되었다. 주범은 바로 TeleAut를 비롯한 이 일대 텔레스트리트 그룹, 이들은 경기가 열리기 얼마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위성방송의 신호를 해독, 재송신하는 방식으로 지역 전체에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버렸다. 더욱 재밌는 것은 중간중간 광고 타임에 머독의 미디어 독점체제를 비판하는 광고와 지역투쟁 소식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동시에 머독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 사건은 다음 날 온 나라의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십 경기는 온 국민의 눈을 사로잡는 이벤트다. 관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파 중계에 목을 매I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디어재벌 머독이 소유한 <스카이 이탈리아>가 축구 중계권을 손에 넣으면서 TV로 축구를 보기 위해 최소 47유로를 내고 유로채널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한자들은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 산 로렌조에서의 텔레스트리트 방송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현실에 대한 파괴를 꿈꾸는 유쾌한 실험이었다. 어찌되었건 텔레스트리트는 더욱 대중화되었고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을 뿐이다." - 액트 19호 중에서 (아래 자료 참고)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international_media&id=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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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6-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balmas 2005-06-2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죠? 해설 기사도 한번 읽어보세요. ^_____^

해적오리 2005-06-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마냐 2005-06-2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퍼감다. ^^
 
 전출처 : balmas님의 "책 안내-트랜스토리아 2005년 상반기호"

그렇죠.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esse"라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 용어가 당대의 철학 어휘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지, 스피노자

자신이  이 용어를 중시하거나 이 용어에 대해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esse는 원래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existentia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까(그리고 그와 함께 perfectio라는 의미도 수반되죠) 이걸 본질로

이해할 수는 없겠죠. 반면 스피노자는 esse라는 단어보다는 realitas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esse를 realitas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피노자가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라고

했죠. 제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심지어 그 이전의 철학자들

로부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칸트 및 독일 관념론을 거쳐

마르크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이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스피노자는 "존재"의 문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존재"에 해당된다고 하는 건 순전히 견강부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제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형이상학/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간주한 철학적 계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계보는 서양 철학사의 <한 가지 계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의 철학 계보에는 오캄 같은 유명론자나 홉스, 로크, 흄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은 들어설 자리가 없죠. 이러한 철학 계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스피노자는

소위 대륙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거의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철학자이죠. 이는 하이데거 자신도

스피노자 철학이 자신의 철학사 계보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한 가지 증거로 볼 수도 있겠죠. 또 사실이 그렇구요.

 

그러니 아무 철학자에 대해서나 "esse"나 "존재"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고, 또 그게

철학사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나 1930년대 신토마스주의(자크 마리탱, 에티엔 질송)의 영향이 그만큼 후대의

서양 철학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철학계는 일제시대부터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컸으니까, 대륙 철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제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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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료로 펴내는 월간지인데, 인권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의와 정보와 미담, 가슴 아픈 이야기 등이 실려 있는 좋은 잡지입니다.

아래 옮겨놓은 말은 5월호 [인권] 첫머리 "생각들"에 실린 내용입니다.  "사람은 한 번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울려서 마이페이퍼로 올려봅니다.

[인권]은 신청하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보내줍니다.

전화(02-2125-9773)나 이메일(public@humanrights.go.kr)로 신청하셔서 한 번 받아보세요. :-)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역사에 진 빚을 조금은 갚을지

모르지만, 어떤 국가 조처도 가족들의 삶에 파고든 고통을 어루만질 수는

없습니다.

2005. 4.8. [한겨레]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서도원 씨의 아들 서동훈 대구 미래대 교수의 말.

 

총리가 나오셨는가 ... 시각장애인에게는 왔다 아니다를 말해 주는 것이

세계적인 예의다 ... 앞에 왔다가도 모른 척 지나칠 경우, 시각장애인들은

슬퍼하게 된다.

2005. 4. 15. [서울신문] 시긱장애인인 정화원 국회의원이 대정부 질문에 나서서 총리 출석 여부를 확인하며.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이들은 머물고 싶어도 머물지 못하고,

쫒김을 당하는 유랑자다.

2005. 4. 4. [문화일보] 소설가 공선옥 씨가 최근 펴낸 소설집 [유랑가족]에 대한 인터뷰에서 한 말.

 

사람은 한 번은 행복해야 한다.

2005. 4. 9. [한국일보] 양순자 심리상담소장이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정신지체장애인 가정의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다 사라고 했던 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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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6-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네요. 저도 받아봐야 겠네요.

balmas 2005-06-1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
하루님, 한번 받아보세요. ^-^

클리오 2005-06-1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네요... 휴...

krinein 2005-06-1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지가 있었군요. 저도 신청해봐야겠습니다.

balmas 2005-06-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클리오님?
크리네인님, 오랜만이시네요.^^ 신청해서 보세요.

2005-06-19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5-06-19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지는 글들이군요,,,,

마냐 2005-06-1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은 행복해야 한다는 말에 슬퍼지는 것.....세라비

해적오리 2005-06-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신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05-06-20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마냐님,
좀 서글픈 말들이긴 한데, 그래서 오래 새겨 둘 만한 것 같아요.
날나리님, 잘 하셨어요. :-)

릴케 현상 2005-06-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으로 보게 하면 좋을 텐데...

로드무비 2005-06-2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말고 두 번 행복하면 안될까요?^^

balmas 2005-06-2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그러고 보니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인권]이 실려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무비님, ㅋㅋ 명언이십니다.
 

* 발리바르가 지난 5월 29일에 프랑스의 유럽헌법 국민투표를 앞두고 [뤼마니테L'humanite]와

대담한 텍스트의 번역본을 올립니다. 이 대담은 5월 23일 월요일에 [뤼마니테]에 실렸습니다.

이 대담은 원래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 한 분이 번역한 것인데, 제가 약간 교열을 했습니다.

최근의 유럽의 정세를 인식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원래의 제목은 "우리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로 나아가고 있다Nous allons vers  un étatisme sans État"

인데, 뜻을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국가 없는 국가주의의 위험"으로 바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텍스트도 하나 정도 더 번역해서 올리겠습니다.

* 올리고 나서 읽어보니 몇 군데 수정해야 할 데가 있어서 조금 고쳤습니다.

고친 부분은 빨간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퍼가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

 

국가 없는 국가주의의 위험


유럽연합의 구성을 우려하는 한 철학자가 유럽헌법안이 어떻게 "낡아빠진 유럽적 동일성의 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설명한다. 


질문 : 선생님은 최근 저서에서 "나는 정치적 유럽은, 좀더 민주적인 제도에 따라 실질적으로 구성된다는 필수적인 조건 아래에서만 의미를 가지게 되며 유럽의 시민들에게 진정으로 구체적인 “공적 영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쓰셨습니다. 5월 29일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유럽헌법안 선생님이 보시기에 이런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까?


발리바르 : 제도적인 구성물이 지니고 있는 다소간의 민주주의적인 성격은 단지 헌법의 자구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뤼마니테 독자들에게 굳이 이런 기본적인 유물론적 원리들을 가르치려 들 필요는 없겠지요. 그것이 지니는 민주주의적인 성격은 변증법적 관계 속에 있는 상황, 투쟁, 세력관계에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의 구성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결핍"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시민운동의 분열에 있는데, 세계화가 자본주의 대표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엄청나게 증대시키고 있는 이 순간에 이러한 분열은 민중의 대항권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유럽헌법안은 의회의 통제를 확대하고 기본권 헌장을 제시하는 등 진보적인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러한 측면들은 너무 소심하거나timides 애매한 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또는 퇴행적 측면들이라는 이면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입헌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면, 즉 진정으로 새로운 정치체를 생성시키고 싶었다면, 민족국가의 틀 안에서 달성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최대치보다 더 나아가는 것을 헌법안의 규칙으로 삼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열거된 "기본권"은 규범적인 효력이 미약하고 강제력이 거의 없을 뿐더러, 사회권의 측면에서는 퇴보하고 있으며, 자유권 문제의 기본 측면들-특히 교통/통신 영역의 기본권-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통화주의의 도그마에 중앙은행을 예속시키는 (그것도 다른 금융거대권력은 바로 이러한 도그마를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에 ...) 조항들을 추가하여 중앙은행의 절대적 독립을 헌법에서 보장하는 것은 인민주권을 심대하게 제한할 것입니다. 끝으로, 유럽 공동체 차원과 민족 차원 사이에서 권력의 분할은―결정을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들을 산출하게 되리라는 점은 차치한다 해도―이 둘 사이의 연결을 담당하고 있는 테크노크라트 계급이 대표권을 거의 독점하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민주적인" 체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이는 결국 앞으로 도래할 시기에 이런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다수의 세력을 확보한다는 조건이 있어야겠지요.  

  

질문 : 유럽 통합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 선생님이 옹호해왔던 테제들 중 하나는〔미국과 (중동 및 극동) 아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3극 권력의 하나로서〕"강대국 유럽"의 기획을 포기하고 대신 "평화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평화의 정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한다면 ...


발리바르: 분명 세계의 여러 문제에 관해 유럽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이런 의미에서 유럽이  더 "강력"하게 되어야 할, 즉 더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더 능동적으로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긴밀하게 연관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강대국 유럽"이라는 표현을 반대합니다. 이 표현은 유럽을, 점점 더 첨예해지고 있는 다른 두 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는 신제국주의로 만들기 위해, 또는 간단히 말하자면 탈식민지에 대한 "책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몫을 관리하기 위해(오늘날 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그런 것처럼) 암묵적으로 경제-군사적인 요인에 특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강대국 유럽"이라는 표현은 국경과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도 중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강대국 유럽"이라는 표현은 호혜성, 문화적 교류(traductions), 다문화공존의 시대로 대담하고 야심만만하게 진입해야 할 이 시점에, 배타적인 유산에 중심을 두고 있는 낡아빠진 유럽적 동일성의 관념에 묶여 있습니다.

요컨대, 오웰이 언급한 3극의 세상의 도래를 추구하기보다는 남쪽의 나라들과 맺고 있는 경제적ㆍ문화적 관계의 균형을 회복해야 하고, 세계의 세력관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국제기구(UN, WTO)의 권력의 재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유럽은 중요한 역할, 아마도 다른 그 무엇도 하지 못할 유일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질문 : 토니 네그리는 유럽헌법안 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권유했습니다. 이 헌법안이 그가 "자본주의적 엘리트의 조직형태"로 지칭한 민족국가를 끝장낼 수 있다는 거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리바르 : 국제주의의 오랜 전통 위에 서 있고, 사회운동에게 확실히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대단히 자극적인 성찰의 방법을 제공해 준 토니 네그리는 "찬성"표를 호소할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좌파 또는 "좌파의 좌파"쪽에서 찬성표를 던지도록 호소한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니크 쉬밀리에-장드로Monique Chemillier-Gendreau도 마찬가지인데, 민주주의적인 새로운 국제질서를 옹호하는 그녀의 행동은 모범적입니다. 이러한 입장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에 주목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는데, 여기서 제가 특별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유럽헌법안에 대한 "반대", 특히 프랑스의 "반대"는 유럽통합에 대한 민족주의적이고 주권론적인 반동의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와 상반된 입장에서 반대표를 던진다 해도 말이지요.  

   이런 점을 일단 지적해둔다면, 제 생각에 현재의 (유럽통합의) 구성이 민족국가보다 "자본주의적 엘리트의 조직형태"를 덜 표상한다고 믿는 것 또는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항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정치적 조직도 민족적인 동시에 초민족적입니다. 제가 제 책에서 "약한 초국가"로 특징지은 현재의 유럽의 고유한 점은,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특히 "시민공동체" 없는 국가주의)의 형태들을 예고하는 데 있는 게 아닌지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본질적인 것은 세력관계에 달려 있으며, 제도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대담자 : 제롬 알렉상드르 니엘스베르그

 

 

 

 

원문을 함께 읽어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원문을 같이 수록합니다.

 

 

Nous allons vers un étatisme

 

sans État

 

 

Entretien réalisé par Jérôme-Alexandre Nielsberg

par  Etienne Balibar

Mise en ligne le mardi 24 mai 2005

Entretien paru dans l’Humanité, lundi 23 mai 2005


 

  Dans votre dernier livre [1], vous écrivez : « Je suis convaincu que l’Europe politique a un sens et deviendra un véritable "espace public" concret pour ses citoyens à la condition sine qua non d’être en pratique une construction institutionnelle plus démocratique. » Le traité soumis le 29 mai à référendum vous paraît-il aller dans ce sens ?

 

  Étienne Balibar. Le caractère plus ou moins démocratique d’une construction institutionnelle ne dépend pas uniquement de la lettre des textes, ce n’est pas aux lecteurs de l’Humanité que je vais apprendre cette règle matérialiste élémentaire. Il dépend aussi de circonstances, de luttes, de rapports de forces, dans une relation dialectique. Une des raisons pour lesquelles on observe dans la construction européenne actuelle ce qu’il est convenu d’appeler un « déficit démocratique » tient justement à la division des mouvements de citoyens en Europe, qui affaiblit les contre-pouvoirs populaires dans le moment où la mondialisation accroît formidablement l’influence politique des représentants du capitalisme. Nous sommes donc à un tournant. Le projet de constitution comporte des avancées, du côté de l’extension du contrôle parlementaire et du côté de la charte des droits fondamentaux, mais elles sont ou bien trop timides, ou bien ambiguës, ou payées par des régressions. La règle aurait dû être de progresser par rapport au maximum démocratique atteint dans le cadre national, si l’on voulait faire oeuvre constitutionnelle pour l’avenir, c’est-à-dire faire émerger véritablement un nouvel ensemble politique. Or les « droits fondamentaux » énumérés ici ont une portée normative faible, peu contraignante, ils marquent une régression sur le plan social, ils ignorent des aspects fondamentaux du problème des libertés - en particulier dans le champ de la communication. De même, la constitutionnalisation de l’indépendance absolue de la Banque centrale, dotée de statuts qui l’asservissent au dogme monétariste (au moment où les autres grandes puissances financières vont l’abandonner...) constitue une sévère limitation de la souveraineté populaire. Enfin, la division des pouvoirs entre l’échelon communautaire et l’échelon national - outre ses effets paralysants sur la décision - continue d’assurer un quasi-monopole représentatif à la classe technocratique qui assure la navette entre les deux. Nous sommes donc très loin d’un édifice « plus démocratique ». Ce qui veut dire qu’il y a beaucoup à faire dans la période à venir pour y remédier, à condition de trouver pour cela en Europe une force majoritaire.

 

  L’une des thèses que vous défendez depuis quelques années dans le cadre du devenir européen est la nécessité de renoncer au projet d’une «  Europe-puissance » au profit d’une « politique de paix », que l’on pourrait qualifier de positive...

 

  Étienne Balibar. Il est évidemment nécessaire que l’influence de l’Europe dans les affaires du monde se renforce et qu’en ce sens, elle devienne plus «  puissante », c’est-à-dire plus indépendante en même temps que plus active. J’objecte à l’expression d’« Europe-puissance » deux raisons étroitement liées entre elles : elle privilégie implicitement le facteur économico-militaire visant à faire de l’Europe un néo-impérialisme capable de « rivaliser » avec les deux autres puissances dont la concurrence est en train de s’aiguiser, ou simplement à gérer sa part des « responsabilités » post-coloniales (comme le fait aujourd’hui la France en Afrique) ; elle a des conséquences lourdes en matière de frontières et d’idéologie. Elle est liée à une conception archaïque de l’identité européenne, centrée sur des héritages exclusifs, au moment où il faudrait entrer avec hardiesse et ambition dans l’ère des réciprocités, des traductions, du multiculturalisme. Bref, plutôt qu’à l’avènement du monde tri-polaire d’Orwell, il faudrait travailler au rééquilibrage des relations économiques et culturelles avec le Sud, et à la redistribution des pouvoirs dans les institutions internationales (l’ONU, l’OMC, etc.), dont sortirait une modification des rapports de puissance dans le monde. L’Europe a ici un rôle fondamental à jouer, peut-être unique.

 

  Toni Negri invite à voter « oui » au traité constitutionnel parce que celui-ci permettrait de faire la peau à l’État-nation, qu’il désigne comme « la forme d’organisation des élites capitalistes ». Qu’en pensez-vous ?

 

  Étienne Balibar. Toni Negri, qui a derrière lui une longue tradition d’internationalisme et qui a procuré aux nouveaux mouvements sociaux des instruments de réflexion certes discutables, mais extrêmement stimulants, a le droit d’appeler à voter « oui ». Il n’est pas le seul à le faire à gauche ou à la « gauche de la gauche ». C’est aussi le cas de Monique Chemillier-Gendreau, dont l’action en faveur d’un nouvel ordre international démocratique est exemplaire. De telles positions ont le mérite de nous signaler un problème, auquel je suis particulièrement sensible : le risque qu’un « non », surtout français, apparaisse comme l’expression d’une réaction nationaliste et souverainiste à l’unification européenne, même lorsqu’on proteste du contraire. Ceci dit, je pense qu’il se trompe en croyant ou laissant croire que la construction actuelle représente moins que l’État-nation « la forme d’organisation des élites capitalistes ». L’organisation politique du capital est à la fois nationale et transnationale, de même que l’est l’organisation des résistances. On peut même se demander si le propre de l’Europe actuelle, que j’ai caractérisée dans mon livre comme un « super état faible », n’est pas de préfigurer les formes d’un « étatisme sans État » (en particulier sans « communauté de citoyens ») auxquelles tend le capitalisme mondialisé. Encore une fois, l’essentiel dépend d’un rapport de forces, mais les institutions ne sont pas neut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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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6-16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담한 텍스트'라고 읽었어요^^ 얼마나?

청년도반 2005-06-1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마냐 2005-06-16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마, 알라딘마을에서 제가 가장 고마울지도 모르겠슴다. 물론 퍼감다. ^^

balmas 2005-06-1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산책님, "아주" 대담하죠. ^^;;
웅기, 카슬레이님,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마냐님, 암만 해도 하나 더 번역해달라는 말씀이신 듯 ... ^^;;;

숨은아이 2005-06-1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발리바르 아자씨는 유럽헌법안에 반대하고 더 나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balmas 2005-06-18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예,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사실 조금 더 복잡한 입장이기는 하지만요. 조만간 좀더 구체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글을 하나 더 올립죠. ^_____^

2005-06-18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rinein 2005-06-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번역하신 분과 발마스님께 다 감사를 전하여 퍼가겠습니다^^

balmas 2005-06-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뭐, 약간 손을 좀 봤을 뿐이죠 ... ^^;;

aporia 2005-06-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시다시피 지금 양창렬님께서 여러 자료를 열심히 번역하고 계시는데, 6월 24일날 다중포럼 토론회에서 쓰실 거라고 하네요. 게시판에서 보시다시피 일단 눈에 띠는 입장들은 어느 정도 번역이 됐는데, 발리바르의 경우 혹시 지금 번역하시는 분이 계시는지 계시다면 24일까지 볼 수 있는지를 몰라서 번역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신 모양이에요. 저희 쪽은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진재연씨가 터키에 가는 관계로 손을 못댈 것 같구요. 선생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지금 한창 바쁘실 때라 힘드실 거라 짐작하고 있긴 합니다만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Oui mais... non car'랑 [La Passant Ordinaire]에 실린 글이라네요. 감사합니다.

balmas 2005-06-2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그런 기획이 있었군요.
저도 [Passant Ordinaire]에 실린 글은 한번 번역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24일까지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양창렬씨가 번역하실
의사가 있다면, 저야 뭐 고마울 따름이죠. ^^;;

aporia 2005-06-2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양창렬님께서 'Oui Mais ... Non Car'를 번역하셔서 저희 게시판에 퍼 두었습니다. 하지만 [Passant Ordinaire]에 쓴 글은 발리바르의 논지를 잘 아시는 분이 번역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셔서 이번에는 번역하지 않으셨다는군요. 나중에 시간되실 때 선생님이 번역하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balmas 2005-06-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그럼 시간될 때 한번 번역해보죠.^^

onookoh 2006-02-1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좋은 글이 있었네요...프린트합니다...불어공부에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