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개체성貫個體性transindividualité


2부 세 번째 논문 제목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해석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transindividualité”, 곧 관개체성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Glibert Simondon(1924-1989)이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개념이다. 시몽동은 프랑스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자이지만, 구조주의 운동에 중요한 이론적 동력을 제공해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생전에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일부인 󰡔개체와 그 물리ㆍ생물학적 발생L'individu et sa genèse physico-biologique󰡕(PUF, 1965), 그리고 부논문인 󰡔기술대상들의 실존양식에 관하여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Aubier-Montaigne, 1969) 두 권만을 출간했고, 그의 사후에도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나머지 부분인 󰡔심리ㆍ집합적 개체화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Aubier, 1989)만 출간되었을 정도로 과작寡作의 철학자이지만, 그가 사망한 이후 이 세 권의 저작은 프랑스 철학계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몽동 철학의 핵심 과제는 개체를 원초적인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그 발생 과정 속에서, 곧 개체화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시몽동은 개체 및 개체화individuation를 사고하는 서양 철학의 두 전통, 곧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질료형상론과 원자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전통은 이미 형성된, 또는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원초적인 단위로서 개체에서 출발하여 한 개체가 시공간 상에서 변화를 겪는 양상들이나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개체화다)를 사고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철학 전통에 맞서 그는 개체는 원초적 실체, 기원이 아니라 개체에 구조적으로 앞서 개체를 생산하는 과정, 곧 개체화 과정에 의해 생산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개체화 과정에 의해 개체들로 산출되는 , 그것은 무엇인가, 곧 개체화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시몽동은 이처럼 개체에 앞서는 이것을 “선先개체적 존재être préindividuel”라고 부른다. 시몽동에 따르면 이러한 선개체적 존재는 “하나 이상”, 곧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Simondon, 1989a, p. 30)인 것이다. 왜냐하면 개체들에 대해서만 하나나 통일성 또는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므로, 개체화 이전에 존재하는 이 선개체적 존재는 정의상 하나, 통일성, 정체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개체적 존재는 이처럼 부정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개체적 존재를 단순히 “하나 아님non-un”이 아니라 “하나 이상” 또는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이는 선개체적 존재가 고정된 동일성을 갖는 개체들 이상의 어떤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시몽동이 말하는 선개체적 존재는 이행/변화의 역량, 포텐셜 자체로서, 이는 개체화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개체화 과정을 통해 산출된 개체가 자기 차례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신을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또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재생산하거나 일정한 임계점을 통과하면 스스로 변화되도록 하는 힘이다. (따라서 데리다 식으로 말한다면, 시몽동의 “하나 이상plus qu‘un”이라는 개념은 또한 동시에 “더 이상 하나 아님ne plus qu’un”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몽동은 열역학에서 빌려온 준안정성métastabilit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개체적 존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열역학 또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준안정적인 상태란 체계의 변수들 중 하나(가령 압력, 온도 따위)가 최소한으로 변동되기만 해도 평형 상태가 깨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쉬운 사례를 하나 든다면, 이른바 “과냉각액체supercooling liquid”로 남아 있는 물, 곧 0°C 이하에서도 얼지 않고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 있는 물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물은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바로 얼어버린다. 시몽동에 따르면 선개체적 존재는 바로 이처럼 준안정적인 상태에 있는 체계 일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서로 긴장상태에 있는 이질적인 포텐셜들(예컨대 액체와 고체)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포텐셜들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 곧 “위상변화déphasage”를 통해 포텐셜들이 서로 다른 수준, 서로 다른 위상의 체계로 해소되는 것이 바로 개체들의 생성이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단순히 개체에 시간적으로 앞서는 상태가 아니라, 개체 안에서 개체의 존속 및 변화를 이끌어가는 포텐셜 또는 역량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그리고 이 때문에 “préindividuel”은 前개체적이라고 해서는 안되며, 구조적으로 우선한다는 의미에서 先개체적이라고 번역하는 게 적합하다).   

  관개체성 개념은 󰡔심리ㆍ집합적 개체화󰡕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원래는 심리적 개체화와 집합적 개체화라는 두 가지 개체화 사이의 관계, 또는 오히려 인간의 개체화의 두 측면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곧 이 개념은 정신 또는 심리활동은 인간의 내면을 이루고(심리주의), 사회 또는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는 인간의 외면을 이룬다고 보는(사회학주의) 대개의 이원론적 관점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2부 두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에서 시몽동의 이 개념을 빌려와서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이 개념을 시몽동이 원래 사용하던 맥락보다 좀 더 넓은 ‘존재론’ 일반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관개체성 개념은 시몽동이 말하는 일차적 개체화/이차적 개체화(또는 발리바르의 용어법대로 하면 개체화/개성화)를 포괄하는 개체화 과정 전체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관개체성”의 원어는 “transindividualité”인데,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윤소영 교수는 이 개념을 “초개인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에서 부적합하다. 첫째, “individualité”는 “인간 개인”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존재론적’(또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비非존재론적mé-ontologique”) 함축을 지닌 개념이기 때문에, “개인성”보다는 “개체성”으로 번역하는 게 옳을 것이다. 둘째, 이 개념의 접두어인 “trans-”는 “초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오히려 “traverser”라는 단어처럼 “가로지다”, “관통하다”는 의미, 또는 “transformer”라는 단어처럼 “전환하다”, “형태가 변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trans-”는 선개체적인 준안정상태의 퍼텐셜이 나중에 성립된 개체들을 관통하여 존립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 퍼텐셜이 개체의 형태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더 나아가 이 접두어는 부분과 전체, 개체와 우주, 개인과 국가/사회 등과 같이 미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적 항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추상적 관계 개념을 해체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trans~”의 집합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초-”라는 번역은 다소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trans-”라는 접두어가 지닌 다의적 의미를 살리고, 무엇보다도 이 개념이 기계론 및 유기체론(또는 사회학주의와 심리학주의)에 맞서 관계의 우월성 내지는 원초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이를 “관貫”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trans-”가 갖고 있는 복합적 의미를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개체를 관통하는 퍼텐셜 또는 역량의 흐름을 표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초”나 “횡단” 등보다는 좀 더 적절한 역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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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5-05-1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개체성은 어떠세요(이러다가 트랜스개체성을 지나 통닭성이라는 말까지 나오겠구만 -.-;).

balmas 2005-05-1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 "통닭성" ...
저는 사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를 두고 꽤 생각을 많이 한 편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게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처음에는 남들 하는 대로 그냥 "초개인성"이라고 따라 불렀는데,
암만 해도 이 번역어는 transindividuality라는
개념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번역해주기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범개체성"이나 "통개체성" 같은 말도 생각해보고, "구를 전"자를 써서
"전개체성"이라고 써보기도 했는데, 다 좀 문제가 있더라구요.
"관개체성"이라는 번역어는 그래서 몇 개의 대안들 이후에 생각해본 말인데,
지금으로서는 그래도 제일 나은 번역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놀람/경탄admiratio; admiration


“admiration”은 일상 어법에서는 보통 “경탄”이나 “찬양”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들의 정념 이론(따라서 인간학 및 정치학)에서는 고유한 개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데카르트는 정념passion을 여섯 가지 기초 정념들passions primitives로 분류하는데, 이 중 첫 번째 기초정념이 바로 admiration이다. 그러나 이 때의 admiration은 경탄이나 찬양 등을 의미하지 않으며, “놀람”을 뜻한다. 곧 알려지지 않은 외부 실재와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 마음이 느끼는 놀라움의 감정이 바로 admiration이다. 따라서 이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나는 정념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반대항을 갖지 않는 정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순성을 정념분류의 기준으로 삼는 데카르트에게 admiration은 제일 첫 번째 정념이 된다.

  반대로 정확히 같은 이유, 곧 아직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고, 따라서 우리의 역량의 증대나 감소와 무관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admiration은 스피노자에게는 정념으로 분류되지 않고 상상의 한 종류로 간주된다. 스피노자에게 정서는 바로 역량의 증대나 감소를 낳는 것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데카르트와는 달리 스피노자에게 admiration은 알려지지 않는 외부 실재와의 마주침을 함축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부적합할수록 사람들의 수동성은 더욱 강화되는데, admiration은 새로운 어떤 것과의 마주침을 뜻하기 때문에 다른 관념들과 연결되기 어려우며, 이러한 연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실재에 대한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인식, 곧 부적합한 인식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admiration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신학정치론󰡕에 나타나는 이 개념의 용법을 고려하면 그렇다. 󰡔신학정치론󰡕에는 admiration에 관한 적어도 두 가지 상이한 용법이 나타난다. 곧 󰡔신학정치론󰡕에서 admiration은 한편으로는 놀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찬양이나 경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예컨대 󰡔신학정치론󰡕 「서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용법은 admiration이 “놀람”의 의미로, 게다가 우중vulgus과 관련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만약 그들이 커다란 놀라움과 함께cum admiratone 신기한 어떤 것을 본다면, 그들은 이것을 신이나 지고한 신성의 분노를 드러내는 기이한 징조라고 믿게 된다.(모로판, 56-58쪽)


[종교가 타락한 이후] 신전 자체는 연극무대로 타락해서, 사람들은 더는 여기에서 교회 교사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연설가들의 말만 듣게 되는데, 이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기보다는 경탄으로써 그들을 매혹시키고 자신들의 견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비방하고,  우중이 가장 찬양해마지 않는maxime admiraretur 새롭고 신기한 것들만을 가르칠 뿐이다.(모로판, 64쪽)  


이러한 용례에서 admiration은 일차적으로 무지와 관련된 놀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무지로 인해 생겨나는 놀람은 곧잘 경탄이나 찬양으로 연결되어 예속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다음과 같은 용례는 admiration이 반드시 예속의 도구로만 사용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신은 유일하다.

신이 헌신devotio, 곧 사랑과 경탄의 지고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교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존재들에 대한 한 존재의 우월성이야말로 그에 대한 헌신, 곧 경탄과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모로판, 475쪽)


스피노자는 여기서 보편 신앙을 위한 교의, 곧 참된 종교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공통 통념들을 열거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로 “신은 유일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명제 또는 공통 통념이야말로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탄 또는 적어도 사랑과 결부된 경탄(곧 헌신)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정서적 동력이 될 수 있다. (발리바르가 본문 152쪽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경탄이나 찬양은 상상적인 놀람을 전제한 가운데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윤리학󰡕에서 정의한 admiration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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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9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5-10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스피노자와 정치]에 수록될 용어해설을 한 가지 더 올립니다.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술들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면 얼마간 유용한 구분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가imperium/Respublica/Civitas


스피노자 정치학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국가”(영어로는 state, 불어로는 état)라고 부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키비타스civitas와 레스푸블리카respublica, 임페리움imperium이라는 세 가지 상이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스피노자는 󰡔정치론󰡕 3장 1절에서 이 용어들에 대해 간단한 정의를 내리면서 이 세 가지 용어를 구분하고 있다.


어떤 유형의 것이든 간에 임페리움imperii이 있는 상태는 사회 상태[또는 본문에서 발리바르가 번역한 대로 하면 시민 사회]status civilis를 가리킨다. 임페리움의 몸체 전체는 키비타스라 불린다. 임페리움을 보유하고 있는 이의 지도에 의존하는 임페리움의 공통의 업무는 레스푸블리카라 불린다.


이 정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국가의 내포를 규정하는 것은 임페리움이고, 이러한 내포에 상응하는 국가의 외연은 키비타스라는 점이다. 곧 이 정의에 따를 경우 정치적 질서(“사회 상태”)로서 국가를 규정하는 것은 임페리움이며, 이러한 임페리움이 적용되는 “몸체 전체integrum corpus”는 바로 키비타스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임페리움은 내용상 “주권summa potestas”이나 “통치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실 스피노자는 󰡔정치론󰡕에서 주권이라는 사태를 가리키기 위해 임페리움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위의 정의에 따를 경우 레스푸블리카는 임페리움, 곧 주권의 보유자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국가의 활동을 총칭해서 부르는 개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구분을 잘 염두에 둔다면 본문에 나오는 발리바르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 개념은 지배장치imperium와 함께 공화적 성격respublica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신민의 조건은 시민성, 곧 민주주의 국가가 충분하게 발전시키는 능동성(과, 평등성이 능동성과 비례적인 한에서, 평등성)을 전제한다.”(이 책, 58쪽)


  더 나아가 이런 구분법은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에서 볼 수 있는 스피노자의 다소 상반된 주장의 진의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20장에서 “그러므로 사실 레스푸블리카의 목적은 자유다”(모로판, 636쪽)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정치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사회 상태의 목적은 평화 및 생활의 안전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qui[fine status civilis] nullus alius est quam pax vitaeque securitas”(󰡔정치론󰡕 5장 2절). 만약 우리가 “respublica”와 “status civilis”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국가”로 이해한다면, 전자는 “국가의 목적은 자유”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후자는 “국가의 목적은 평화 및 생활의 안전”이라고 주장하는 게 된다. 그리고 몇몇 주석가들은 이러한 차이를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이 보여주는 입장의 변화의 한 증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피노자가 정의한 대로 두 용어를 구분해서 이해한다면, 이는 그리 명확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스피노자가 이미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 5장 2절의 주장과 거의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전체 사회 및 전체 국가의 목적은 [...]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nam finis universae societas & imperii est [...] secure & commode vivere.”(󰡔신학정치론󰡕 3장 6절, 모로판, 158쪽)  

  발리바르는 이 책에서 “imperium”이라는 용어를 “통치권”이나 “국가권력” 또는 “국가” 등과 같이 비교적 다양한 용어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고, “civitas”와 “respublica”는 대부분 “국가”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 “respublica”는 “공화국”으로 이해할 때 좀 더 의미가 정확해진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imperium과 관련하여 하나 더 주목해둘 만한 표현법이 있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3부 「서문」 및 󰡔신학정치론󰡕 몇 군데에서 “국가 속의 국가”로 번역될 수 있는 “imperium in imperio”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자연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그 자신만의 독립적인 본성과 세계를 지니고 있는 듯이 생각하는 가상을 가리킨다. 곧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자연이라는 국가 안에 그와 별개의 또 다른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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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아트시네마 소식 : 자크 드미 특별전

Jacques Demy Retrospective
자크 드미 특별전

2005. 5. 11. Wed. - 5. 19. Thu.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오는 5월 11일부터 19일까지 9일 동안, 프랑스 누벨바그 작가 중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영화들을 만들어낸 자크 드미 감독의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트뤼포, 고다르 등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던 자크 드미는, 누벨바그 감독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매혹을 고스란히 자신의 영화 속에 옮겨놓은 감독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사랑의 환희와 고통을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그려낸 초기작 <롤라>와 <천사들의 해안>부터 자크 드미만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세계적으로 알린 <쉘부르의 우산>, <로슈포르의 숙녀들>, <당나귀 공주> 등의 매혹적인 뮤지컬, 그리고 드미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달 착륙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 뮤지컬 제작과정을 통해 영화에 대한 애정과 매혹을 또다시 고백한 유작 <추억의 마르세이유> 등 자크 드미의 대표작 7편을 상영합니다. 또한 <낭트의 자코>, <자크 드미의 세계> 등, 자크 드미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가 자크 드미의 삶과 영화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담아 만든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상영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영화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특별강연
일시: 5월 13일(금) 오후 7시 30분
강사: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5월 13일에는 아녜스 바르다의 다큐멘터리 <자크 드미의 세계> 상영(5시 50분)이 끝난 후, 7시 30분부터 영화평론가 김성욱씨가 자크 드미의 삶과 영화에 대하여 소개하는 특별강연이 진행됩니다. 강연에는 선착순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 어린이를 위한 시네마테크
일시: 5월 14일(토) 4시 30분 / 5월 19일(목) 2시 20분
상영작: 당나귀 공주
입장료: 어린이(초등학생) 4,000원 | 어린이를 동반한 어른 무료
가정의 달 5월에 개최되는 자크 드미 특별전 프로그램 중, 샤를 페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환상적인 뮤지컬 <당나귀 공주> 상영시 어린이를 위해 특별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가족과 함께 화려하고 낭만적인 뮤지컬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 1회 관람료 일반 | 6,000원 , 회원 | 4,000원
인터넷 예매는 맥스무비(www.maxmovie.com)와 무비OK(www.movieok.co.kr) 등 에서 가능합니다.
현장 예매는 행사 시작일인 5월 11일 1시 30분부터 시작합니다.

▣ 회원 예매
5월 10일부터 회원 전화예매 가능합니다.
전화예매 02-720-9782 / 이메일 예매 theque@dreamwiz.com
회원 예매는 관람 영화 상영 하루 전까지 가능하며(당일 예매는 안 됩니다),
영화시작 30분전까지 매표소에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 문의:
문화학교 서울 02-743-6003
서울아트시네마 02-720-9782, 02-745-3316 www.cinematheque.seoul.kr

▣ 상영작 소개 및 상영시간 (총 10편)

▶ 롤라 Lola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61 90min b&w
출연: 아누크 에메, 마르크 미셸, 자크 아르당, 앨런 스코트, 엘리나 라부르데트, 안니 뒤페루
5.11(수)2:20 5.13(금)8:50 5.15(일)6:40 5.19(목)4:30
낭트의 항구, 카바레 댄서인 롤라는 7년전에 떠난 연인 미셸을 기다리며 아들 이본을 키우고 있다. 그녀는 어린시절 친구 롤랑과 미국인 해병 프랭키의 구애를 받지만 미셸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거부한다. 누벨바그 최고의 로맨티스트라는 평가에 걸맞게 사랑을 찾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적인 삶의 시정을 아름답게 그려낸 자크 드미의 장편데뷔작. 라울 쿠타르의 탁월한 흑백촬영과 애달프면서도 경쾌한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인상적이다.


▶ 천사들의 해안 La Baie des anges | Bay of the Angels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63 79min b&w
출연: 잔느 모로, 클로드 만, 폴 게르스, 앙리 나시에, 앙드레 세르트, 니콜 숄레
5.11(수)4:30 5.15(일)12:40 5.17(화)9:00 5.19(목)6:40
은행 직원인 장은 니스의 카지노에서 아름다운 도박광 자키를 만나게 된다.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자키에게 장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 주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동반관계가 시작된다. 니스의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의 유희. 니스의 해변과 골목들을 더없이 아름답게 담아낸 화면은 장 비고의 <니스에 대하여>를 떠올리게 하며, 우연에 운명을 거는 위험스러운 열정과 확신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사랑의 이야기가 눈부시게 그려진다.


▶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 | The Umbrellas of Cherbourg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64 87min color
출연: 카트린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안느 베르농, 마르크 미셸, 엘렌 파르네, 미레이유 페레
5.11(수)8:50 5.13(금)1:30 5.15(일)4:50 5.18(수)2:20
쉘부르 우산가게의 딸 쥬느비에브는 이웃의 자동차 정비공 기이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어머니는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던 중 기이가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어 떠나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긴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아름다움의 기원에 슬픔과 고통을 숨기고 있는 매혹적인 뮤지컬. 영화의 대사 전체가 샹송으로 처리되어 있는 독특한 영화로, 미셸 르그랑의 아름다운 음악과 파스텔톤의 화려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 | The Young Girls of Rochefort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67 125min color
출연: 카트린 드뇌브, 프랑수아즈 도를레악, 진 켈리, 자크 페랭, 미셸 피콜리, 다니엘 다리외
5.12(목)2:20 5.14(토)6:40 5.16(월)4:30 5.18(수)8:50
로슈포르의 쌍둥이 자매 델핀과 솔랑쥬는 무용과 피아노를 가르치며 언젠가 다른 곳에서 멋진 사랑을 하게 되리라 꿈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작곡가 앤디가 친구 시몽을 찾아 로슈포르에 오는데... 실제 자매인 카트린 드뇌브와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이 쌍둥이 자매로 출연하여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춤과 노래의 향연 또한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당나귀 공주 Peau d'ane | Donkey Skin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70 100min color
출연: 카트린 드뇌브, 장 마레, 자크 페랭, 델핀 세리그, 미셸린 프레즐, 페르낭 르두
5.11(수)6:40 5.14(토)4:30 5.17(화)7:00 5.19(목)2:20
먼 옛날 어느 왕국. 상냥하고 아름다운 왕비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국왕은 아내와 꼭 닮은 공주와 결혼하려 한다. 아버지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온갖 어려운 요구들을 하던 공주는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쓰고 궁궐에서 도망치는데... 샤를 페로의 동화를 각색한 환상적인 뮤지컬 영화.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에 경의를 표한 영화로 장 마레가 국왕 역을 맡았으며, 아름다운 음악과 현란한 의상, 화려한 세트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 달 착륙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 L'Evenement le plus important depuis que l'homme a marche sur la lune | A Slightly Pregnant Man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73 87min color
출연: 카트린 드뇌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미셸린 프레즐, 마리사 파방, 클로드 멜키
5.12(목)8:50 5.16(월)2:20 5.18(수)6:40
파리의 자동차교습소 소장 마르코는 어느 날 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정밀검사 후 그가 임신 4개월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의사들과 언론은 이것이 인류에게 달 착륙보다 훨씬 중요한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며 흥분하지만 마르코와 그의 연인 이렌느는 도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남자의 임신 소동을 통해 현대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린 독특한 코미디물.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주니어>의 원전 격인 영화다.


▶ 추억의 마르세이유 Trois places pour le 26 | Three Places for the 26th 자크 드미 Jacques Demy 1988 106min color
출연: 이브 몽탕, 마틸다 메이, 프랑수아즈 파비앙, 파트릭 피에리, 카트리오나 맥콜
5.12(목)6:40 5.14(토)2:20 5.16(월)8:50 5.18(수)4:30
마르세이유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이브 몽탕은 자신의 지난날을 그린 뮤지컬 공연을 위해 마르세이유를 방문한다. 공연 연습 도중 그는 아름다운 가수지망생 마리온의 방문을 받게 되는데...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이브 몽탕을 직접 등장시켜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자크 드미의 유작. 이브 몽탕이 탭댄스를 추며 <사랑은 비를 타고>, <탑햇>,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명장면.


▶ 낭트의 자코 Jacquot de Nantes | Jacquot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1991 118min b&w/color
출연: 필립 마롱, 에두아르 주보, 로랑 모니에, 브리지트 드 빌푸아, 다니엘 뒤블레
5.13(금)3:30 5.15(일)2:20 5.17(화)4:30 5.19(목)8:50
낭트의 어린 소년 자코는 정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미용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세상은 전쟁으로 어수선해지지만, 자코에게는 여전히 인형극와 영화를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다. 자크 드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과 그가 나중에 만든 영화 장면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드미의 영화가 지닌 매혹을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 자크 드미는 이 영화의 제작 도중 세상을 떠났다.


▶ 로슈포르, 25년 후 Les Demoiselles ont eu 25 ans | The Young Girls Turn 25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1993 64min color documentary
출연: 조르쥬 차키스, 카트린 드뇌브, 자크 드미, 미셸 르그랑,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5.12(목)4:50 5.14(토)9:10 5.16(월)7:00
<쉘부르의 우산>과 함께 자크 드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두 번째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 개봉 25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당시 영화의 배우들과 스탭들, 그리고 엑스트라로 참여했던 로슈포르 주민들이 등장하여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이 영화가 자신들의 삶과 로슈포르라는 작은 항구마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 자크 드미의 세계 L'Univers de Jacques Demy | The World of Jacques Demy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1995 90min b&w/color documentary
출연: 아누크 에메, 잔느 모로, 카트린 드뇌브, 마티유 드미, 로잘리 드미, 아녜스 바르다
5.13(금)5:50 5.15(일)8:50 5.17(화)2:20
아녜스 바르다가 남편 자크 드미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담아 만든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자크 드미의 모든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들과 함께 배우와 스탭, 가족들이 들려주는 각 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며, 자크 드미의 ‘세계’가 자신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고백하는 세 소녀의 이야기 또한 감동적이다. 촬영장을 방문한 짐 모리슨의 모습을 담은 홈무비와 드미의 영화에 출연할 뻔했던 해리슨 포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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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5-05-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 근데요 시간대가 다 오전에 몰려있네요. 잠깐... 오후 겠죠? 새벽에 영화보러 오라 하진 않을거 같고.

balmas 2005-05-0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마도 새벽에 보러오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
 

따우님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숨은아이님이 답변을 달아주셔서 다시 한번 더 댓글을 달아봤습니다.

 

숨은아이님의 답변

저는 발음 때문인 게 맞다고 보는데요. "율"이나 "률"이나 받침 뒤에선 [뉼]로 발음되는데, 모음 뒤에선

"율"은 [율]로, "률"은 [률]로 발음됩니다.

"율"로 쓰는 걸로 통일하면 "이직률"을 "이직율"로 써야 하는데, 그럼 읽을 때 [이징뉼]이 아니라

[이지귤]이 됩니다. 발음상 아예 다른 말이 됩니다.

"률"로 통일한다고 하면 "이혼율"을 "이혼률"이라고 써야 하는데,

이혼율은 [이혼뉼]이라고 자연스레 발음이 되지만, 이혼률이라고 쓰면 아무래도 률 발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겠어요? 이혼율, 이혼률, 읽어보세요. 증가율을 증가률이라고 쓰면 더욱 그렇고.

 

저의 댓글

하하하, 숨은아이님 말씀이 제일 근거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한 번 더 토를 달자면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율"이냐 "률"이냐를 따질 때 기준이 되는 건 받침이  없는 경우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비율"이나 "배율" 또는 "효율" 같이 앞에 받침이 없는 말이 올 때는 모두 "율"을 쓰잖아요.

그런데 앞에 받침이 있는 음절이 오는 경우에 어떤 경우는 "율"로 쓰고

어떤 경우는 "률"로 쓰니까 도대체 왜 이런 구분이 할까, 그 근거는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숨은아이님  말씀은, “율”로 통일하게 되면, 가령 “이직율” 같은 경우는

[이지귤]이라고 발음하게 되니까 부적절하다, 또 “률”로 통일하게 되면,


“증가률” 같은 경우가 생기니까 역시 부적절하다, 따라서 따우님이 제시한 것처럼


받침이 어떤 게 오느냐에 따라 “율”과 “률”을 구분해서 써주는 게 옳다는 거죠. 


그런데 우선 왜 받침 다음에 나오는 “율”이나 “률”은 꼭 [뉼]이라고 발음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꼭 그걸 [뉼]이라고


발음해야 하는 근거는 없는 거죠. 다만 우리가 말할 때 보통 그걸 [뉼]이라고 발음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이직율을 [이지귤]이라고 발음한다고 해서


그게 틀렸다고 말할 만한 법칙적인 근거는 없다는 거죠. 다만 사람들이 말할 때 그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곧 그게 관습이다라는 거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뉼]이라고 발음하는 게 하나의 관습이라면,


이 관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그렇게 복잡한 근거를 만들어서


어떤 받침이 오는 경우에는 “율”을 쓰고 어떤 받침이 오는 경우에는 “률”을 쓰고 하는


법칙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받침이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율”이라는 단어를 표준으로 삼아서


앞의  음절에 받침이 있는 경우에도 모두 “율”이라고 쓰고, 간혹(혹시 있다면)


“이직율”을 [이지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이징뉼]이라고 가르쳐주면


그걸로 족할 것 같은데요. 또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 “그건 [이징뉼]로 읽는다”라고 가르치면


족하겠죠.  


정리하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존에 사람들이 말하는 발음이 표준이 된다면,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굳이 그렇게 복잡한 기준을 만들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 필요가 뭐가 있을까라는 거죠.


거기에는 혹시 국어학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욕망이


담겨 있지 않은가,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표현이 좀 지나쳤나?)


혹시 국어학 전공자 분들이 계신다면, 넓게 이해해주세요. 국어학자들의 노력을 비웃자는


건 아니고, 솔직히 좀 궁금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물론 그 구분법을 따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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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5-07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국어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좀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게 아닌가, 그런 염려가 생기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 문제에 정통한
분이 혹시 계시다면 좀 조언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릴케 현상 2005-05-0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생각으로는^^ 근대국가를 만들려는 열정에 차 있을 때, 우리는 하나의 말을 쓰는 한민족이라는 걸 내세우기 위해 표준어와 맞춤법 등을 공들여서 정리하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민족 중에서 '덜 배운' 사람이 아닌 이상 표준어와 맞춤법을 똑바로 쓴다고 생각하게 만들고요...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규칙이 필요했고, 그 규칙을 법칙화한 거겠죠. 그 법칙을 만드는 과정에 외국이론도 많이 갖다 썼을 테고^^ 그러면서 교수 되고 정통파 교리 같은 게 됐겠죠... 언젠가 고종석씨는 방언과 외국어의 구분은 언어학적 기준보다 정치적 기준에 많이 의지한다(제주도말이 외국어가 아닌 것은 그런 이유다^^고) 또 어디선가 보니 어떤 표기가 맞다 틀렸다고 법칙화할 수는 없다면서 많은 사람이 쓰는 순으로 사전에 등재하고 사람들이 참조하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한민족 한 언어 법칙적인 표기 등의 관념에서 이제 벗어나도 될 것 같아요...

사량 2005-05-0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말과 글말을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던 노력, 즉 '언문일치' 운동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던 움직임이었습니다. 해당 국가의 구성원을 국민으로 호명하고 이들에 동질감을 불어넣기 위한 근대국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지요. 표준어의 형성은 여기에 말씀대로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일제를 향한 '저항적' 민족주의가 덧붙여져 있었다는 점이 조금 다릅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이라는 것이 처음 나왔던 때가 1933년이고 그 주체가 조선어학회였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언문일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근대 동아시아문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최근 흥미로운 연구를 많이 발표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가라타니 고진도 데리다의 음성중심주의와 비교하여 재미있는 글을 쓴 적이 있구요. 표준어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아시다시피 부르디외를 비롯하여 들뢰즈&가타리도 일갈한 적이 있습니다. 말이란 게 늘 변하니까 사전도 개정판이 생기고 맞춤법통일안도 수정을 거듭하는 것이겠지요. 표기법이 헷갈리실 때는 국립국어연구원 홈피(korean.go.kr)에 가면 대부분 답변을 얻으실 수 있긴 합니다만, 그건 결국 잠정적인 정답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합니다.

릴케 현상 2005-05-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정통한 분이 나타나셨네요...근데 국립국어연구원도 그다지 못미더울 때가 많아서 좀 고민이지요(^^느낌에... 대학원생정도가 아르바이트식으로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해서)어쨌든 단답식 정답을 제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긴 하니까...

balmas 2005-05-0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미있는 댓글들을 달아주셨네요.
두 분 말씀하신 대로 민족국가/국민국가의 구성과 국어의 표준화 과정에 대한
좀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숨은아이 2005-05-0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 전 사실 국어에 대한 정규 교육은 고등학교로 끝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잘 모르구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국어는 표음문자이니까 발음에 따라 적는 게 원칙인데,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적으면 그게 같은 말인지 보는 사람이 헷갈리잖아요. 그래서 표준 표기법을 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자어 같은 경우엔 발음대로만 쓰면(이를테면 이직률을 이징뉼로 쓰면 ^^) 글자만으로 본래 의미를 알기 어려우니까 글자 하나하나에 음가를 매기게 되었고요.
또 말이 앞서가고 문법이나 어법은 따라가게 되잖아요. 그러니깐 표기법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발음을 가르치긴 어렵지 않나 합니다.

2005-05-0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5-0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숨은아이님,
몇 마디 더 할 말이 있는데, 바빠서 그냥 잘 읽었다는 표시만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