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잘난 영어, 샘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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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사막의 섬으로 딱 한 작품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선택하 겠습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소설, 우리의 시, 우리의 드라마, 이 모든 것이 이 한권의 책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매혹적인 저작입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통독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을 틈틈이 꺼내 찾아보는 것을 결코 방해하 지 못할 것입니다.”
1928년 6월 ‘그런 종류로는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는 옥스퍼 드 영어사전(OED)의 완성 축하연. 당시 영국의 총리 스탠리 볼드윈은 이같은 연설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무려 71년이 걸려 10권으로 포장된 ‘대작’이다. 41만개의 표제어 규모도 엄청나지만 182만개의 예문이 더 빛났다는 사전이다. 수천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보낸 500만개의 문장에서 추려낸 덕분이다.
몇년 전 ‘교수와 광인’이라는 책을 통해 바로 이 사전의 편집자 제임스 머리와 살인범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채 사전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던 W. C. 마이너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저자는 본격적으로 OED 탄생의 역사를 추적한다. 셰익스피어 시절만해도 중구난방으로 쓰이던 영어를 ‘진정한 의미의 언어’로 재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사전이다. 최근 오류투성이 영한사전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전은 국력의 바탕이며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 했던 영문학자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주장이 새삼 실감난다. OED는 현대 영어가 지닌 세계적 위상의 토대를 마련하고 맹렬한 속도로 진화해온 영어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저자는 “당시 영국의 기성체제는 계급차별적,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적이었다”면서도 “그러나 오늘날 지식인에 비해 훨씬 박식하고, 교양있고, 호기심 많았던 덕분에 엄청난 정신적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 사전 프로젝트의 배경을 설명한다. 미국의 노아 웹스터가 1828년 7만개 어휘, 1600쪽 분량의 웹스터 사전을 내놓기 위해 15년 동안 혼자 작업한 것에 비하면, OED에 기울인 영국의 노력은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제작기간은 물론 당초 예상보다 비용도 30배 이상 늘어났지만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걸린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이 사전에 걸려있다 . 저자는 이들의 삶을 통해 당시 사회상과 사전의 역사를 재구성 한다.
주요 편집자인 제임스 머리는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나 14세때 학업을 중단한 인물. 하지만 15세때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 독일어, 그리스어에 정통했던 ‘타고난 언어학자’였다. 그는 지지부진했던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풍부한 예문을 뽑아내줄 자원봉사자 시스템을 구축한 주인공이다. 학문적으로 매장된 뒤 20년간 은둔한 피체드워드 홀 교수는 분노와 쓰라림 , 강박적 의무감을 하루 4시간씩 사전 작업에 쏟아부었다. ‘교수와 광인’의 주인공이자 정신병원에서 표제어와 예문 정리에 매진한 마이너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했다. 영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도 보조 편집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warm(따뜻한), water(물)를 비롯해 wa mpum(조가비 구슬), walrus(바다코끼리) 등 많은 ‘w’단어를 재해석했다.
1989년 20권으로 재단장된 OED는 61만여 어휘를 담아 243만개의 예문을 제시한다. 언어에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은 계속된다. 비록 ‘남의 나라, 남의 언어’ 이야기지만 71년간의 꿈을 쫓는 과 정을 보니, 영어의 오만함에 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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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하게 읽고 있는 책 '둠즈데이 북'에서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난 미래의 영국 처자는...중세 영어를 배우느라 애먹는다. 그리고, 가져간 통역기가 고장나면서, 중세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속을 태운다. 언어의 진화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폭이 넓다고나 할까.
저자는 시시콜콜하게 영어의 탄생부터 따지는데...암튼,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등 온갖 언어가 영어의 어휘를 늘렸으며, 지금도 계속 늘어난다. 영국에서도 외래어 쓰지 말기 운동도 있었지만, 그렇게 유연하게 받아들인 외래어가 다 '영어'로 자리잡았다. 영어가 잘난 탓 보다는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 때문이 컸을테고, 이후 '강대국'의 논리, 못사는 나라 지식인들이 몽땅 미국가서 공부하는 풍토 등이 '영어'의 힘을 보탰을거다.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탄생을 지켜보면......아, 한 나라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게 이런 의미가 있구나 싶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인들의 이야기. 저자도 애초에 '보수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 어쩌구 하면서....미리 한수 접고 들어갔지만...거슬리는 이야기가 적지않다. OED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제임스 머리는 'African'이란 단어는 표제어에 넣지 않았다. 스스로 뒤통수 따가웠는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만...뭐, 편견과 차별 문제다. 머리 본인도 "형용사 American은 뒤에 들어가는 바람에 African 빠진게 이상하다"고 했고, 후일 결국 아프리칸도 들어갔다만.....세상을 정의하는 언어를 다듬을 때도...세계관은 반영된다.
그래, 대영제국, 잘났다. 잘났어...정말 유유자적 한가한 귀족들, 학자들....고매한 정신적 고민하다보니....사전의 중요성도 얘기하구...결국 영어문명을, 영어를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71년 걸린 작업. 어떻게 폄하할 수 있겠는가. 수천명이 모여 500만개의 예문을 모아...거르고 걸러 만든 사전인데....비록,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거슬리고, 시대 상황이 거슬려도...'대작'은 '대작'이다. 일본 사전 베껴 만드느라...오류투성이인 사전이 수두룩한 나라의 국민은 정말 속이 쓰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