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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성(性)을, 말한다 희한한가


손이 없다고 밥 먹을 권리마저 없는가

책 제목은 <섹스 자원봉사>(아롬미디어·8500원)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부제를 보면 주제가 드러난다. ‘억눌린 장애인의 성’. 일본인이 쓴 이 책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결을 돕는 자원봉사(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주장의 요지를 이해하는 것과 이를 수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장애인에게 섹스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겐 ‘상상 밖’의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그 물음을 비웃는 듯, 책의 첫 장부터 충격적이다. 한 남성 자원봉사자가 신체장애 1급의 노인을 만나 인터뷰한다. 69살의 노인은 뇌성마비를 앓아 태어날때부터 장애를 짊어졌다. 그가 자신의 성에 대해 ‘생생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이어 자원봉사자가 노인을 ‘돕는다’. 노인이 말한다. “비록 손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성은 삶의 근원, 그만둘 수 없어요.”

담론밖 ‘낯선’ 주제에 대해
어느 일본인 자원봉사 제안
흥미롭거나 불편하게 들리지만
장애인 그들에게 성욕은 있다

곧이어 ‘성’을 말하는 장애인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를 접하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거나 지극히 불편하다. 대립적인 이 두 정서, 흥미와 불편함은 오직 한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이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거나 공개적인 여론의 주제가 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장애인온라인신문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조항주씨의 말이다.


이 책은 ‘낯선’ 주제로 한국 사회의 ‘경계’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일본에는 장애인들이 사랑의 짝을 찾는 공개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여기에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사람과 여기에 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희안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 분야를 전문화한 성매매 업소가 있다. 지은이가 인터뷰에 한 바에 따르면, 업소 종사자들은 남다른 의미와 보람까지 느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독자들은 윤리적·사회적 물음에 부딪힌다. 장애인의 성욕해소를 돕는 일과 성매매로 인한 여성의 소외문제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인 장애인을 위해 성매매를 허용하는 일은 여성의 성 상품화로 이어진다.

글쓴이는 정교한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이에 대한 세상의 은밀하고도 선정적인 관심을 이성적 판단으로 바꾸기 위해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갈 뿐이다.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해답은 ‘자원봉사’다. 장애인의 소외를 마음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는 것, 그럴 준비가 돼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와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그 뼈대다.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제안을 수용할 채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장애인 섹스자원봉사’는 여러 면에서 윤리적·철학적·사회적 논란을 부추긴다. 서구 유럽에선 대단히 정책적인 문제지만, 한국은 윤리적·학술적 토론부터 거쳐야할 상황이다. ‘성적 소수자’ 문제가 진보담론의 지평을 넓혀가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은 아직 담론 밖의 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국은 아직 ‘상상 밖’…소수에 의한 목소리만

지난해 12월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감독 서동일)가 발표됐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첫번째 한국 영화였다. 지난해 10월 서울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장애인 성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가 열렸다. 장애인들이 성을 ‘마음껏 누리고 향유하도록 돕는’ 강좌였다. 이보다 한달 앞선 9월에는 지체장애인인 사진작가 박지주씨가 전신마비 여성장애인 이선희씨를 모델로 한 예술누드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말하려 했던 내용은 간단하다. ‘무성(無性)적 존재’로 치부됐던 장애인에게도 사랑과 연애, 성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선정적’ 눈길을 주었다가 ‘냉소적’으로 돌아섰다.

정신지체인의 성 문제를 연구해온 전용호 대구미래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성욕을 모른 척 했고, 장애인 스스로도 이를 억누르고 포기했다”며 “장애인의 성 문제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 분야의 몇 안되는 연구자인 윤가현 전남대 교수(심리학과)는 “손이 없다고 밥먹을 권리가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인간 누구나 갖는 욕구와 권리의 문제로 장애인의 성욕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 문제에 착목한 학술모임이 아직 없다. 재활의학의 한 분야, 또는 특수교육학회 차원의 생활지도 문제로 장애인의 성을 다루는 정도다. 지난 1999년 보건당국 등이 시설에 수용된 지체장애인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던 일은 한국 사회의 ‘낮은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먼저 고민을 시작한 소수에게 떠맡겨져 있다. 장애인 성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매체 <폭시애이블>(foxiable.net)을 준비중인 조항주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조씨는 “장애인의 성을 성매매와 연관시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결국은 봉사의 기본정신을 확대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장애인 당사자의 당당한 요구와 정부의 적극적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수찬 기자


장애인 ‘성의 천국’ 네덜란드

1970년대부터 자원 봉사
자치단체 시설 운영도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첨단’은 네덜란드에 있다.

1970년대부터 성혁명을 주창한 시민운동가들이 장애인을 위한 ‘섹스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은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AR)’이라는 일종의 비정부기구 설립으로 이어졌다. 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남녀 장애인의 성생활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돌이 아니다. 어떤 중증 장애인도 성적 욕구가 있다’가 SAR의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는 ‘섹스 서비스 제공 매니저’가 따로 있다. 시설 내에는 장애인의 성생활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 시설 직원들은 장애인들끼리의 성행위를 돕기도 한다. 옷을 대신 벗겨주고 침대에 눕혀주는 등의 도움이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들에게 성생활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성매매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 특유의 법 제도와 문화가 있다. <섹스 자원봉사>의 지은이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사회보장이 (사회적) 자애를 낳고, 이것이 성에 대한 관대함과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이어졌다”고 짚는다.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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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패 <다게>

다게례(茶偈禮) : 불교에서는 아침마다 부처님께 차를 달여 올린다. 의식에서 차를 올리며 아뢰는 게송을 다게라 하는데 각 전(殿)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출처 - 범패와 작법무(인천수륙재 보존회) http://www.bumpa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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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프랑스판 한승조, 골니쉬 교수의 종말

프랑스판 한승조, 골니쉬 교수의 종말

 

[해외리포트] 전후 프랑스의 꼴라보 숙청과 한국의 과거 청산

 

과거사를 부정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위험한 것은 과거사 부정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 속의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실상 피해자에 속하는 이들 중에도 이런 부류들이 있어 우리를 당혹케 한다.

파리에 살고 있는 해외민주인사이자 심리학자인 이유진씨는 이들을 가리켜 '유치형 인격(幼稚型人格)의 소유자'라고 했다.

"자기의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잘난 부모를 동경하여, 자아소속감을 잃고 사고나 행위가 남의 영향을 받거나 조종되기도 한다. 아무튼 제 부모, 제 나라, 제 민족을 믿지 못하고 남의 부모, 남의 나라에 무조건 의존하는 가련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극우세력이 왼손으로 일장기를, 오른손으로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바로 이 유치형 인격 때문이다."

고려대 한승조 명예교수의 '식민 지배 찬양' 발언과 유사한 경우가 프랑스에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도 교수였다. '교수였다'고 과거형으로 쓴 것은 문제의 교수가 지난 주 교수직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한창 한승조 교수 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하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사 부정 발언 파문, 골니쉬 교수직 박탈

▲ 브루노 골니쉬 교수 홈페이지.
"(2차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에 사용된) 가스실의 존재여부는 역사학자들이 밝힐 일"
"정확한 희생자 수도 역사학자들의 자유토론에 맡겨야할 것이다."


장 물랭 리용 3대학에서 일본문명과 국제법을 강의하는 교수이자 프랑스 극우당 '국민전선(FN)'의 제2인자, '국민전선' 당수 장 마리 르펜의 오른팔이며 공식 후계자이기도 한 브뤼노 골니쉬의 발언이다.

지난해 10월 11일, 프랑스 리용에서 열린 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받은 나치 집단수용소에 대한 질문에 골니쉬는 위와 같이 답했다. 이 발언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체 유럽 국가를 분노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도미니크 페르벤 프랑스 법무장관은 즉시 리용 법원에 조정을 의뢰했고 지난달 3일, 프랑수아 피용 교육장관은 앞으로 1년간 골니쉬의 대학 직무 정지를 결정했다.

리용 법원은 지난 1일 골니쉬가 제출한 무죄 청원을 기각하고 1500유로(한화 2백만 원 상당)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뿐만 아니라 골니쉬는 앞으로 2개월 후 '반인도범죄' 죄목으로 다시 한번 리용 법원에 출정해야 할 것이라고 자비에 리쇼 검사는 9일 AFP 통신을 통해 밝혔다.

이 일 이후 골니쉬의 강의가 열릴 때마다 '프랑스 전국 학생연맹(UNEF)'을 비롯한 각종 학생 단체의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리용 3대학 기 라보렐 학장은 안전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3일 골니쉬의 학교 접근을 금지했으나 1월 14일 최고행정재판소는 이를 취하했다. 그리고 지난달 2일 골니쉬는 경호원을 대동한 채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지만 다음날 피용 교육장관이 골니쉬의 직무를 1년간 정지시킴으로써 재차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 3월 4일자 라디오 RTL 뉴스 홈페이지. 골니쉬 교수는 교수복 차림으로 징계위원회에 출두했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분노를 유발한 골니쉬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월 3일 우리 대학 징계위원회는 장 물랭 리용 3대학의 브뤼노 골니쉬 교수를 5년간 추방할 것을 결정했다.'

지난 4일 라보렐 학장의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혀진 이 결정은 골니쉬의 망언에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현재 55세인 골니쉬가 5년간 교수직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앞으로 강단에 설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60세는 정년퇴직할 나이이기 때문.

이어서 7일 특별 기자회견을 가진 라보렐 학장은 "책임을 통감한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네가시오니스트를 처벌한 유일한 대학"이라고 밝히고 "이번 사건을 거울 삼아 다른 대학에서도 네가시오니스트들을 엄중처벌 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해 앞으로 발생하게 될 유사한 사건을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프랑스 전국 학생연맹은 이번 골니쉬의 대학 추방 사건을 가리켜 '네가시오니스트와 반유태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1990년 7월 베르나르 노탱 교수가 한 일간지에 게재한 '가스실 존재여부'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문제 삼아 징계처분을 내린 이래 최근 20년 동안 리용 3대학이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탱은 문제의 기사와 관련해 형사 처벌은 물론 1년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 이 처분은 이듬해 고등교육위원회(Cneser)에 의해 취소됐다.

네가시오니스트란?

부정, 부인을 뜻하는 불어 네가시옹(negation)에서 나온 것으로, 네가시오니스트(negationniste)는 유태인 말살의 진실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부정한다. 네가시오니스트라는말도 이전에 통용되던 레비지오니스트(revisionniste, 수정주의자)라는 용어의 애매모호함을 지적하며 1987년 역사학자 앙리 루소에 의해 만들어졌다.

네가시오니스트들은 나치의 유태인 말살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동시에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네가시오니스트들은 ‘거짓을 무너뜨리고 신화의 거품을 빼고 진실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치와 네가시오니스트 전문가 베르나르 콩트의 ‘나치학살과 네가시오니스트’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표적인 네가시오니스트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1. 학살은 없었다. 살인가스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2. 단지 유태인들을 동유럽으로 추방하는 것이 나치 독일의 목표였다.
3. 네가시오니스트 학자 라시네르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 수는 1백만이었으며 그것도 폭격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네가시오니스트 학자 포리송에 따르면 1939년 국제적 시오니즘이 히틀러에 전쟁을 선언했고 유태인 희생자는 5십만 수준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유태인 포로 5만명이 사망했으나 원인은 발진티푸스가 창궐했기 때문이다. 가스실은 해충 박멸을 위한 것이었다.
4. 유태인 말살은 연합군, 특히 유태인과 시오니스트들이 선전용으로 만들어낸 억지다. 전후 이스라엘이 전쟁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쟁 유언비어’에 불과한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다른 집단수용 시설에 설치된 가스실은 수용자들의 의복을 소독하는 일에 사용됐다.

이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 대하여 일간지 <르몽드>는 1978년 12월 19일자와 30일자를 통해 포리송의 '가스실의 문제 혹은 아우슈비츠의 루머'라는 논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처럼 위험한 주장은 종종 국제법에 의해 처벌됐고 때문에 네가시오니스트들은 이들을 처벌하는 게소법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다며 대표적으로 프랑스를 UN 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위원회는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골니쉬 지지자들 "프랑스, 표현의 자유 억압 말라"

골니쉬 추방에 따른 파장도 컸다. 골니쉬는 "단지 '2차대전 문제는 자유토론의 대상'"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법적, 직업적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 같은 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지난 1일, 리용 3대학 앞에서는 골니쉬 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우리 교수를 건드리지 마라' '프랑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라' '골니쉬를 돌려달라' 등의 주장이 적힌 플래카드가 전면에 배치됐다. 시위에는 '국민전선' 사무국장 칼 랑과 당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같은 날 저녁 6시에는 '反 골니쉬'를 표방하는 또 다른 시위도 전개됐다.

평소에도 갖가지 무책임한 발언으로 잡음을 일으켜온 '국민전선' 당수 장 마리 르펜이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르펜은 "이것은 진정한 마녀사냥"이라며 리용 3대학의 결정을 "불법적이고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
ⓒ2005 연합=AP
르펜도 이미 금년 초, 골니쉬와 같은 네가시오니스트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프랑스에서) 독일 점령이 특별히 비인간적이지 않았다"는 것. 지난 1월 7일자 극우 주간지 <리바롤>과의 인터뷰에서 르펜은 2차 대전 당시 점령 독일군의 만행을 가리켜 "피할 수 없는 실수"라고 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실수는 있었다 해도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독일 점령이 특별히 비인간적이지 않았다."

르펜은 더 나아가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비밀경찰)는 프랑스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944년 6월 10일 나치 친위대 SS에 의해 자행된 리무쟁의 오라두르 쉬르 글란 마을 주민 642명(여성 245명, 어린이 207명 포함)의 학살 사건이 철저히 왜곡됐다는 것.

르펜의 이 발언은 과거사를 부정해온 주간지 <리바롤> 독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한 논문에서 비롯된 것인데, 문제의 논문은 나치 친위대가 마을 주민 642명을 한 교회에 몰아넣고 불을 지르기 전 이미 레지스탕스들이 교회에 폭발물을 숨겨뒀고 그것이 직접적인 참사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르펜의 계속되는 망언... 그러나 반인도범죄·과거사 왜곡 처벌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러나 어디 점령 독일군의 만행이 이뿐이었을까.

1941년 10월 22일에는 샤또브리앙의 수용소에 억류됐던 27명의 정치범이 총살됐다. 낭트에서 발생한 레지스탕스의 독일군 살해 사건에 대한 복수였다. 튈르에서는 코레즈의 항독 조직에 의해 마을이 해방되기 하루 전인 1944년 6월 9일, 주민 99명이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점령 독일군의 양민학살은 다양하게 존재했다. 그런 독일군을 일러 "보호자 역"이라든가, 이같은 야만을 일러 "피할 수 없는 실수"라거나 이 역사적 비극을 두고 "진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르펜은 태연하게 말해왔다.

이와 관련해 페르벤 법무장관은 "희생자와 그 가족, 옛 군인들, 집단수용소 포로들에 대한 르펜의 공격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하며 즉시 파리법원에 문제를 상정, '르펜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것'을 주문했다.

르펜의 주장은 또 다른 네가시오니스트 벵쌍 레누야르가 자신의 주장을 담은 비디오 '오라두르 쉬르 글란의 비극; 공식적인 거짓말의 50년' 내용과도 일치한다. 레누야르는 이 문제로 여러 차례 법정에 섰으며 마침내 지난해 6월 4일 '전범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2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르펜은 이처럼 나치를 향수하는 망언에 익숙하다. 1987년 9월, 나치의 '가스실'을 두고 2차 대전 역사의 '미세한 반점'이라고 말해 1991년 1월 11일 1만5244 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진 바 있으나 1995년 12월 5일 뮌헨에서 이 주장을 되풀이하는 파렴치함을 보이기도 했다.

르펜은 "정말 여기저기서 독일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면 집단수용소는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는 류의 끊임없는 망언 행진을 벌였다. 르펜의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이 같은 망언으로 르펜이 지불한 벌금을 합하면 경치 좋은 시골의 전원주택 하나를 사고도 남을 것이라는 농담이 생겼을 정도다.

골니쉬 사건과 관련해 르펜은 "역사의 거짓말을 밝혀야할 것"이라며 인종차별주의와 반유태주의를 엄격히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플레벤 법, 게소 법, 를루쉬 법, 페르벤2법을 일제히 폐지할 것도 주장했다.

르펜이 언급한 법들은 일찌기 2차대전의 비극을 한가운데서 겪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과거사를 왜곡하거나 반유태적, 인종차별주의적 발언 혹은 행동을 엄격히 처벌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게소 법의 경우 1945년 나치 전범을 심판한 뉘른베르그 국제재판소에서 처음 적용됐고 때문에 뉘른베르그는 반인도범죄를 처벌한 첫 법정으로 기록됐다. 뉘른베르그 국제재판소의 판결은 암살, 학살, 노예 문제, 집단수용소를 비롯한 전쟁 전후의 모든 비인간적 처사를 행한 개인과 집단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 첫 사례였다.

전후 프랑스의 꼴라보 숙청과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올해 2005년은 1월 27일 아우슈비츠 해방과 함께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다.

1942년 6월부터 프랑스에서는 괴뢰정부 비시 정권과 결탁한 게슈타포들에 의해 75000명의 유태인이 집단수용소로 강제 이주튼?그 중 2500명만이 살아서 다시 프랑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전후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프랑스는 가해자, 아니 민족 배신자 숙청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꼴라보(대독협력자, 프랑스판 친일파) 발본색원 및 숙청이었다.

꼴라보 숙청은 비시 정권의 국가수반 페탱 원수(元帥)를 비롯한 라발 부수상, 장관, 고급공무원, 판검사, 장성, 경찰, 언론인, 문인, 예술인 등과, 친독 의용대, 악질 간수, 게슈타포의 앞잡이, 밀고자, 드골 장군의 망명정부와 국내의 항독 레지스탕스를 비방한 자 등등 모든 민족반역자들을 그 대상으로 했다. 꼴라보 숙청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피의 목욕(le bain du sang)'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을 정도라 한다.

대표적 예로, 브라지야크를 들 수 있다. 이씨에 따르면, 브라지야크는 재능 있는 작가였으나 여느 작가들과 달리 내재된 신념으로 나치 독일의 앞잡이 노릇을 착실히 했다가 해방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아까워한 모리악(항독 레지스탕스에 참가한 원로문인), 사르트르, 까뮈를 비롯한 문인들이 드골 대통령에게 죽음만큼은 모면시켜 달라고 청원서를 제출하였는데, 드골 대통령은 "조국 프랑스의 민족정기를 위하여 살려줄 수 없다"며 결국 사형을 집행했다.

또 반인도범죄와 관련된 프랑스의 대표적인 예로는 모리스 빠뽕(92)을 꼽을 수 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지롱드 도청 사무국장을 지낸 빠뽕은 2차 대전 당시 어린이를 포함한 1만1000명의 유태인을 집단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키는 등 대독 협력 사실이 발각돼 반인도범죄 명목으로 보르도 중죄재판소에 회부됐다.

1997년 10월 8일 시작된 이 소송은 1999년 10월, 빠뽕이 10년 형을 선고받으며 마무리됐지만 이것은 당시 87세의 빠뽕에게는 종신형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국가 고위관료를 심판했다는 사실과 함께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후에 법의 심판을 받은 사례로 기록돼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도범죄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프랑스처럼 타국의 지배를 받은 닮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 작업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해방 후 1948년 설립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이하 반민특위)의 활동으로 총 취급건수 682건 중 기소 221건, 재판부의 판결건수 40건으로, 체형은 고작 14명에 그쳤다.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으며,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났다." - <디지털 말> 2004년 5월3일자 홍갑표씨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은 원안의 복원에 그치면 안된다' 중

전후 프랑스는 어떻게 꼴라보를 숙청했는가

▲ 파리에 살고 있는 해외 민주인사이자 심리학자인 이유진 씨
ⓒ박영신
이유진씨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후 프랑스가 숙청 대상으로 지목한 인물들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했다.

해방 직전 레지스탕스에 의해 무더기 약식 처형, 해방 후 합법적 재판에 따른 공민권 제한으로부터 종신형, 사형 등의 유죄 판결,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는 반인도범죄 기소와 재판 등 프랑스의 민족 배신자 숙청 방법과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분류된다.

그러나 “숙청된 꼴라보들의 숫자는 아직도 논의가 분분하다”고 밝힌 이씨는 “숙청하기에 분주해서(특히 해방 직전의 무더기 약식 처형의 경우) 그때그때마다 공식적으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의 방방곡곡, 각계각층에서 합법과 비합법의 숙청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니, 정확한 기록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 이씨가 제시한 자료 중 해방 전후 무더기 약식 처형(총살)된 꼴라보들의 수에는 먼저 10만5천명 설(티에), 6만명 설(레미), 3만~4만명 설(아롱), 1만명 설(노빅, 해방 직전인 1944년 5200~6700명과 해방 직후 4100명~4400명 선) 등 대충 4가지 주장이 있다.

훼이장의 주장을 보면 12만5243건을 취급한 가운데 4만787명이 공민권을 제한받았고, 4783명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을 포함해 3만7169명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한다.

뿐만 아니라 1948년 12월 31일자의 재판소 통계기록에 의하면, 4397명(궐석)과 264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이 중 791명의 사형집행이 있었고 2777명이 종신징역 강제노동형, 1만434명이 유기징역 강제노동형, 2173명이 독방감금형(너무 늙었거나 중병 때문에 강제노동에 종사할 수 없는 경우), 2만4116명이 징역, 4만8486명이 공민권 제한 판결, 8929명이 공민권 제한판결의 집행유예(공민권 제한의 판결을 받았으나 항독 레지스탕스에 적극 참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경우)의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행정기구에서 추방된 자들이 1만1343명에 이르고, 육군에서 쫓겨난 장교들이 5천명이다. 각 정당의 자발적 자가숙청도 뒤따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각 노조, 사회단체, 교회, 아카데미 프랑세즈(4명의 학사원이 쫓겨났다) 등에서도 축출이 행해졌다.

 

2005.03.10/박영신 기자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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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3-1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디나 있는 것 같아요.

데메트리오스 2005-03-1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과거사 문제를 빨리 처리해야 할텐데 말이에요 ㅡ.ㅡ;;

balmas 2005-03-1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사 처리 문제도 급한 문제는 급한 문제인데,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발호는 별도의 쟁점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흐음 ...

데메트리오스 2005-03-1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추천하고 퍼갈께요^^

balmas 2005-03-1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감사합니다. 추천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앗, 그런데 이 글은 자명한 산책님께 추천해주셔야 하는데, 이런 ...
 

 

 

 

독일인 할아버지가 흘린 눈물의 저편

독일, 그 7년의 기억들 <1>"어머니~!"

 

조미경 <>
          
이웃이 잔디에 물 주는 시원한 광경을 바라보며, 망울 터트린 꽃들의 속삭임을 바람에게서 살짝 엿들을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마지막 햇살을 잡겠다며 노을 속으로 달려가던 해질녘.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를 때면, 미뤄둔 일거리 때문에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도 마침내 나서곤 했던 짧은 자전거 여행….

독일에서 보낸 7년의 기억은 늘 이런 유쾌한 영상들과 함께 떠오른다.



▲ 우리나라 70~80년 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은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 보며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국을 추억하고 계시리라.  ⓒ 조미경

한국과 인연이 깊었던 독일인 노부부의 집에 여름 방학 때마다 찾아가 정원 일과 집안일을 도와 드리면서 시작했던 독일 생활이 어느덧 십여 년 세월 속으로 멀어져 간다.

그 동안 그 곳에서 만났던 독일인들의 인생살이를 들으며 울고 웃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복지가 잘 된 부자 나라에서 태어난 그들이기에 한없이 편하고 행복하고 화려하기만 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내가 그 생각을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녀를 키우며 가장 역점을 두는 자립심 교육은 그러나, 외롭고 쓸쓸한 노후를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 또한 낳았다. 일찌감치 둥지를 떠난 자식들은 명절 때나 찾아오는 선물세트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부모 자식간의 냉담한 관계가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식 가족문화에 익숙한 나는 그런 그들의 외로움을 삐딱하게 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자식들 혼수비용 대느라 집 기둥뿌리 뽑아주고, 이미 시집 장가간 자식들까지 바리바리 챙기고, 속옷까지 벗어줄 양 물심양면 자신을 희생하며, 기꺼이 자식들을 위한 '소모품'이 될 각오로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들의 지나친 자식사랑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인들, 그들은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그네들의 문화에 빈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내가 생면부지인 이 독일인 노부부에게 환영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빈 틈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만났던 독일인 노부부는 정이 넘치는 한국인들의 그 촌스러운 투박함과 수줍은 온정을 그리워하셨다. 30 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1970년대 초, 동방의 작고 가난한 나라 코리아에서 만났던 한 가족을 평생 잊지 못한다는 얘길 독일인 할아버지께서 해 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계실 때 함께 일하던 직장의 동료가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다 한다. 좌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께서는 미리부터 걱정을 하긴 했지만, 평소 인정 많고 성실한데다 유달리 할아버지께 친절했던 그 한국인 젊은이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다.

정장을 차려 입고 동네 어귀에 들어설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할아버지의 코에, 뺨에, 가슴에, 다리에, 엉덩이에 꽂혔다. 몇몇 '용감한' 개구쟁이들은 노랑머리 외국인의 옷을 냅다 손으로 훑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숨은 채 계속 지켜 보기도 했단다. 그 낯선 이방인이 신기하게 보이면서도 무서웠는지, 어른들 틈새로 빼꼼히 내다보는 코흘리개 아이들…. 정말이지 마을은 마치 저 옛날 사당패라도 왔던 때처럼 '구경거리'가 난 것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오십 평생을 묻어두었던 그 애잔함 감정을…

예상치 못한 '환영식'을 치르고 동료의 집에 들어선 할아버지는, 또 한 번 그 집 아이들에게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셔야 했다. 막내둥이는 이 요상하게 생긴 독일인을 보고 울어대기 시작했고, 아이 둘은 벌써 어미 치마폭으로 숨어 벌벌 떨고 있었던 거다.

그래도 나머지 두 아이는 신기한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할아버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준비한 사탕봉지와 빵을 내어놓았을 때야 이 어수선한 상태가 진정되었다. 담벼락과 대문에는 조막만한 동네아이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이 '선택 받은' 아이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쿠션도 없이 얄팍한 방석이 깔린 딱딱한 구들장에 앉아 다리를 어떻게 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청년의 다섯 아이들이 노는 냥을 보고 있었다.

식탁 앞에서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도 어른들의 예절을 강조하는 독일문화권에서 그런 야단법석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손님이 와 있는 식사 자리라면 예쁘게 차려 입고 얌전하고 반듯하게 앉아 부모들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독일 아이들이다.

그 규칙을 어겼을 때는 여지없이 부모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들은 손님이 보는 앞에서도 자식이 잘못하면 엄하게 꾸중을 한다. 그것이 식사 시간을 불쾌하게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식을 잘못 키워 아이의 버릇을 나쁘게 했다는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건 독일인에게는 끔찍한 수치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할아버지가 한국인 동료의 아이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가뜩이나 '책상다리'가 불편해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는데다, 장난을 걸어오는 녀석들에게 즉각즉각 응수하느라 할아버지는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할아버지는 보았다 한다. 아니 느낌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오십 평생을 묻어두었던 그 애잔함 감정을….

할아버지는 젊은이의 아내가 그 아수라장인 좁은 방에 앉아 젖먹이 막내에게는 젖을 먹이면서, 응석받이 넷째가 서툰 숟가락질로 음식을 흘리면 닦아내 주고, 머리채를 휙 잡고 달아난 둘째 녀석에게는 꽥 소리를 지르고, 그런 와중에도 손님 반찬의 빈 접시를 채워놓고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혼돈 속의 평화…. 북새통 속에서 무엇인지 모르게 잔잔히 스며드는 따스함….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도, 금새 더 없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

할아버지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셨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그 무엇이 할아버지의 가슴 속을 후벼 파고 있었다. '어머니…!'

의아해 하는 젊은 부부내외와 장난치고 보채는 아이들 앞이었지만, 민망하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날 이후 한국마니아가 되셨다. 유엔에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수십 년 돌아다녔지만, 한국에서만큼 그런 진한 인간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시단다. 우리나라 70~80년 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은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 보며 할아버지는 지금도 한국을 추억하고 계시리라.

그 분은 우리나라가 70~80년대 한참 새마을 운동이다 뭐다 하면서 개발 일변도로 내닫던 어수선한 시기에 한국에 오셨고, 우리나라 역사에 오래 기억될 큰 일을 하고 독일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그 분과의 만남은 내게는 지나간 내 나라의 역사와의 대면이기도 한 것이다.
2005/03/08
조미경 님은 계명대학교 외국어문학대학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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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3-0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퍼오면 안된다는데 자꾸 퍼오네 ...

2005-03-09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빗길 선 한국 노동운동


△ (왼쪽부터)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센터 소장,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

  관련기사

  • 기고-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노동운동은 위기에 빠졌나? 악재가 엎친 데 덮쳤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채용비리에 노조 간부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선 시너병이 나뒹굴었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팽팽한 갈등은 여전하고 이달 중순쯤 치러질 대의원대회에서 비슷한 사태가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문제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나?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센터 소장이 지난달 1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토론을 벌였다.

    이석행 “노-정·노-사 새틀 짜자는 것”

    전순옥 “현장 요구담아 교섭 틀 가야”

    조승수 “비정규직 법안 모든 수단 저지”

    어렵사리 시간을 낸 세 사람에게 우선 기아차 채용비리나 대의원대회 상황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었다.

    전순옥=기아차 노조 간부가 채용 비리에 연루된 사건엔 역사적인 맥락과 구조적인 문제가 겹쳐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80년대까지 임금인상 등 경제투쟁밖에 할 수 없었어요. 90년대로 넘어와서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죠. 또 노사관계에서 자본은 노동자들을 회유, 압박하며 그물을 쳐두는데 알게 모르게 노동운동이 이를 넘어서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원인은 역사적인 맥락이나 노사관계에 있지만 남 탓하기 전에 자신의 문제를 바라봐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조승수=기아차 비리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긴 거고 누가 보더라도 잘못한 거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 문화에 노조까지 오염된 거고요. 그런데 최근 언론 등이 경제 사정의 악화를 이유로 노조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고 있어요.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사실 그전부터 일정 부분 관행화됐던 걸 시기에 맞춰 부각시킨 성격도 강하죠.

    =기아자동차 채용 비리는 이미 알려져 있었던 걸 자본이 노조를 탄압하는 데 사용했다고 하시는데 그럼 민주노총만 모르는 게 말이 되나요?

    =추천권 문제는 조금씩 있었지만 고액의 돈과 결부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안 됐을지 모르죠.

    =지도부가 미연에 방지했어야죠. 알면서도 흐지부지 넘겨 노동운동이 큰 타격을 입도록 놔둔 건 상부조직인 민주노총의 책임입니다.

    이석행=조합원과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해 9월 광주지역에서 그런 설이 있어서 연말에 기아자동차 집행부한테 조사하라고 했고 우리 집행부가 내려가서 확인도 했지만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했어요. 혹시 몰라 회사 쪽에 노조에서 추천한 사람들은 입사시키지 말라는 공문까지 보냈습니다. 민주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주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순간 구실을 잃어버리는 거죠. 사회 환경도 탓할 수 있겠지만 운동이 질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큽니다. 언제부터인가 조합원의 권력을 집행부가 남용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죠. 권력은 조합원에게 있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계속 이런 문제가 불거질 겁니다.

    =산별로의 질적 전환을 꾀하지 못하고 노동운동이 정체되면서 생겨나는 권력화 문제는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대기업 노조에서 현장 조직별로 대의원을 준비해서 선거에 임합니다. 조합원들에겐 자신의 의사가 얼마나 대변되느냐가 중요한데 대의기구인 대의원대회가 현장 조직별 세력 분포로 구성돼 버리죠.

    전/ ‘채용비리’ 결국 민주노총 책임
    조/ 일부 언론 불경기이유 노조 공세
    이/ 한국 노동운동 질적발전 못한 탓

    =그런데 이수호 위원장 체제가 출범할 당시 기대와는 달리 이 집행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나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민주주의 훈련이 덜 됐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2월 당선된 뒤 3월3일 중앙위원회를 처음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 지도부를 믿지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어요. 사업도 하기 전에 인정을 하지 않는 겁니다. 지난해 보건의료 산별 총파업까지 하는 등 소신껏 했어요. 4·15총선 때는 공동선대본부도 만들어 성과도 냈고요. 그런데도 회의를 하면 언제나 불신한다는 겁니다. 일단 지도부가 출범하면 반대했든 찬성했든 권력과 자본에 맞서 혼연일체가 돼 대응하고 싸우는 게 노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이 크게 터져 나왔지만 중앙위원회에서 거의 비슷한 사태가 여러 번 있었어요.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항거하는 소수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데 노조 내부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토론을 많이 안 했다고 하는데 이번 안건은 3년동안 반복해서 논의해 온 거예요.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 사태는 민주노조 운동의 정치적인 진로가 틀어막혀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봅니다. 1987년 뒤 노동운동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으니 지금쯤이면 많은 의제들을 산별에서 교섭으로 해결해야 되는데도 총연맹이 사회적 의제부터 단위 사업장 문제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또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노조에서조차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가지 못한 건 민주주의 훈련의 천박성을 드러낸 겁니다.

    =1987년 민주노조 운동이 일어나면서 서너 달만에 노조가 3천여개 만들어졌어요. 말은 민주인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소양은 체계적으로 쌓지 못한 부분이 다소 있었죠. 노조활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서 옆 공장에서 만드니까 따라 만들어 위원장이 되고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절차보다 먼저 권력을 맛보게 된 겁니다. 위원장이 되면 전임제로 임금을 받고 일 안하니까 현장과 괴리감이 생기고요. 이 상황에서 계속 권력을 쟁취하려다보니 계파들이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해도 강하게 주장해야 민주고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봐요.

    =이야기가 너무 자학적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실 우리사회에서 노조만큼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데도 드물어요. 대의원회의에 가면 국회에 못지않게 회의 진행법 등은 굉장히 원숙하죠. 이번 대의원대회 사태는 도덕적 우월주의가 한몫 한 것 같습니다. 독재정권의 탄압을 견디고 싸우면서 노동운동 쪽은 항상 도덕적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었어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산별 노조 등 여러가지 과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모순이 응축된 가운데 특정 부류는 도덕적 우월주의를 앞세웠다고 봅니다. ‘이 대회를 무산시켜 사회적 교섭을 막는 것이 운동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 거죠.

    =만약 전체 노동자를 생각했다면 그런 행동은 절대 나올 수 없어요. 노동운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습니까? 이제까지 정부에서나 자본가들은 노동운동이 폭력적이라고 매도해왔는데 이걸 스스로 증명해준 꼴밖에 안됐죠.

    =민주노총은 노사정에 복귀하려는 게 아니라 노·정, 노·사 등 중층적 구조로 새로운 교섭의 틀을 짜자는 겁니다. 지도부가 충분하게 설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선 책임감을 느껴요. 그런데 중층적 교섭기구는 이전 지도부도 시도했던 거고 원래는 지난해 하반기에 최종결정하기로 중앙위에서 결의하기도 했어요. 중앙위원들이 토론을 더하자고 요구해서 6개월의 시간을 더 줬죠. 하지만 현장에서 조합원들은 모릅니다. 토론을 방기한 거예요.

    이/ 민주주의 훈련덜돼 대의원대회 사태
    전/ 전체 노동자 생각했다면 그랬을까
    조/ 노조운동 정치적 진로 봉쇄때문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영국 상황을 예로 들고 싶은데요. 1979년부터 대처가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 1300만명에 이르렀던 조직이 740만명 규모로 줄었어요. 그리고 18년 동안 노동당이 집권하길 기다렸는데 사실상 그동안 운동을 방기했죠. 하지만 노동당이 집권한 뒤에도 파트너 관계는 형성되지 않고 있어요. 1975~79년 노동당이 계속 대화구조를 만들자고 했는데도 노조가 힘으로만 밀어붙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노사정은 투쟁의 힘으로 얻어낸 거라고 봐야 해요. ‘정부가 노사정이란 틀로 노동운동을 끌어들여 조정하려 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기보다 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 조합 전체의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계속 이런 상태가 진행되면 민주노총은 틀에는 안 들어가고 만날 거리투쟁만 하는 조직으로 비쳐져 대중의 지지를 잃게 돼요. 일선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게 무엇인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조합원의 지시와 요구를 가지고 틀 안에 들어가면 충분히 싸워낼 수 있어요.

    =사회적 교섭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노조의 권리와 이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대자본 교섭력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 있죠. 하지만 한편으론 법령과 제도에 묶여 결국은 우위에 있는 권력과 자본에 포섭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중층적 사회적 교섭안에 대해 결국 노사정위에 복귀하려는 수순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건 이번 일이 터지면서 국민들 기억엔 민주노총 내부에서 왜 싸웠는지는 온데간데 없고 민주노총이 싸운 이미지만 남았다는 거예요. 지도부가 다양한 형태의 중층적 사회적 교섭의 틀을 짜겠다는 신중한 접근을 표방했으면 여기에 힘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 등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교섭력을 높여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해요.

    조승수 ‘민주노총 쌈질만’ 이미지 안타까워

    이석행 총파업만으론 노동악법 막지 못해

    전순옥 조합원 저지 집행부 회유될 수 없어

    =중층적 사회적 교섭 틀 만들자고 해서 교섭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1월20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는 앞으로 2년간 투쟁계획을 이미 결정했어요. 투쟁 없는 교섭은 그야말로 자본과 권력에 예속되는 길이죠. 지금은 바뀌었지만 원래 정부 방침은 2월 임시국회 때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킨다는 것이었어요. 집행부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비정규 악법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봤죠. 사회적 교섭 틀을 만들어 악법을 이 틀로 가져오려는 수순을 밟는 거라고 홍보했지만 반대 세력은 노사정위로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왜곡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중앙에서 뭘 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교섭 틀이 만들어지면 중요한 의제나 결론은 조합원에게 충분히 알리고 총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또 비정규직 문제는 민주노총 혼자 힘 가지고는 극복하지 못해요.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민중운동진영이 함께 해야죠. 정부가 비정규직법은 보호법이라고 하면 끄덕끄덕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낱낱이 파헤쳐서 진짜 뭐가 문제이고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대안을 내놔야죠. 이제까지 총파업 여러번 했지만 경제특구, 주5일제 아무 것도 저지 못했어요. 대중에게 전망을 줘야 파업도 가능한 거예요.

    =1970년대 여성사업장에서는 전체 조합원 3천~4천명이 노조 지도부가 어떤 문제로 교섭에 언제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노조에서 뭘 따주겠다고 제시한 게 아니라 소그룹, 중간그룹, 전체 토론을 통해 조합원들이 진짜 필요한 게 뭔지 걸러져 집행부로 올라왔거든요.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는 집행부는 절대 회유될 수 없어요. 노조의 지도부와 조합원 사이의 철저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안건이 나오고 교섭이 이뤄진 거죠. 신뢰할 수 있는 지도부가 되는 게 중요한데 이는 평소 조합 활동을 통해 쌓아가야 합니다. 그 힘으로 투쟁하는 거죠.

    =사회적 교섭이 아직 때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도 있고 정부의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도 치고 들어올 건데 총파업으로 계속 저지만 할 수 있을까요?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적 교섭 틀을 전술적으로 활용해서 내년 노동절에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비정규 해결을 위한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어요. 민주노동당, 민중연대 농민회도 같이 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이제까지는 장관 면담 요청해서 만나면 교섭이 아니니까 장관이 ‘예,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하고 끝이었어요. 이렇게 대책이 없어선 안되요. 제도적으로 교섭을 강제해야죠.

    =이 문제에 대해선 민주노총 안에서도 해석이나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엔 주요한 의견을 달리하는 그룹들이 민주노총 정책실을 공동으로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현재 갈등을 제도적으로 풀 대책이 있나요?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분도 정책실 구성원에 포함돼 있습니다. 거기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집행부가 일률적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무처 안에도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있어요. 각 실별로도 토론회를 권장하는데 잘 안됩니다. ‘아닌 것에 대해 왜 토론하느냐’는 자세가 배어있는 것이죠.

    이 사무총장은 비정규직법을 중층적 사회적 교섭 틀로 끌어내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엔 무관심하다는 지적에 대한 의견도 구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불법파견이 1만명 이상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하청으로 돌려서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누적된 데는 노조가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대신 그 부분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회사와 합의해준 것에도 책임이 있죠. 지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엄청나게 힘들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들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현대자동차 노조 전직위원장들이 다 사과했죠. 대기업 노동자 스스로 머리로는 노동자는 하나라고 하면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 노동운동의 존폐가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이 느는 건 정규직 자리가 서서히 없어지는 건데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문제가 곧 자신에게 닥칠 거라는 걸 인식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노동시장은 여성, 남성, 자국, 이주,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많이 갈라져 있는데 이럴수록 자본이 조정하기가 더 쉬워져요. 정규직이 투쟁해도 비정규직이 많으니까 공장은 돌릴 수 있게 됩니다. 비정규직을 조직해내야죠. 민주노총도 그런 조직력을 가지고 사회적 교섭을 같이 해가지 못하면 위기에 봉착할 겁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당이고 민주노총은 대기업 노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니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악의적이고 왜곡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정치적으로 수렴하고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실천해 왔느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해야죠. 비정규직법안이 상정되면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은 초긴장 상태입니다. 이 문제만큼은 어떤 욕을 먹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어요.

    =지난해 10월10일 ‘비정규 노동법 개악법안 저지 결의대회’ 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발로 뛰어 정규직만 1만명을 조직했습니다. 11월26일 총파업 때도 15만7천명이 파업에 참여했죠. 또 올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 50억원을 마련하기로 대의원들이 결의했습니다.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죠. 비정규 동지들은 정규직이 무기한 총파업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우리 실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교섭 틀로 비정규직법을 가지고 나와 투쟁준비를 해서 제대로 붙으려고 했던 거죠. 비정규직을 노조가 껴안는 방법은 산별이 되는 겁니다. 하나의 규약이 모든 노동자에 적용되는 하나의 조직으로 가면 해결됩니다. 또 기업별 노조라도 규약을 바꿔 노조에 비정규직이 직접 가입하도록 하면 상황은 확 달라지죠. 정규직이 원하지 않을 거란 우려가 있는데 훈련하고 충분히 이해시키면 가능하죠. 올해 민주노총 사업계획에도 있고요. 비정규직 관련 총파업할 때 모인 15만7천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3천명밖에 안됐어요. 나머진 정규직이었죠.

    =힘을 산별로 분산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원활한 교섭을 이끌어내는 게 필요한데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산별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건지요? 제 생각엔 산업구조가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노조, 일반노조 등 다양한 조직 형태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산별의 폭을 넓히고 각 분과를 제대로 운영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민주노총 70만명은 대단히 많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다른 나라나 전체 한국 노동자 수에 비해선 그렇지 않죠. 여러 개로 나누기보다 굵직굵직하게 산별화해도 크게 무리가 없죠. 말씀하신대로 일반노조, 지역노조 다양하게 구성해서 지역노조가 영세 중소기업의 노동자까지 포괄하게 하는 데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간부들과 조합원이 결심해야 해요. 1~2년 안에 크게 진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조직혁신위 가동…노조자정능력 믿어
    조/ 노동자성 회복 민주원칙 재무장해야
    전/ 지도부 도덕성찾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2003년 5월에 독일 공공사회서비스노조(베르디)가 세계 최대 노조가 됐습니다. 몇가지 소규모 산별을 통합했죠. 스웨덴도 마찬가지로 통합하고 있고요. 노동운동이 발전해 가면서 산별을 거점으로 대규모화하는 추세입니다. 우리의 일반노조, 지역노조는 산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어요, 그런 과정이 필요하겠죠. 덧붙여 이 사무총장님이 일반 노조에 비정규직이 직접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현대자동차 노조도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폭력사태나 비리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많이 끼쳤지만 노조엔 자정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노총에서도 조직혁신위를 가동해 조합원의 민주적 의견이 결정력을 갖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합니다. 또 전체 단위노조를 포함해서 자정신고센터를 둬 부도덕성을 고발하도록 할 거예요.

    =자정신고센터도 중요하지만 노동운동이 원래 노동자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재무장하도록 내부 교육이 필요하겠죠.

    =노조 지도부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도덕성을 회복해야죠. 노조를 권력으로 생각하지 말고 조합원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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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mas 2005-03-08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앞으로는 신문기사도 퍼오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링크만 해야 한다고 하던데, 버릇이 돼서 ...

    balmas 2005-03-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링크가 돼있는 김세균 교수의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누구를 위한 것인가]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릴케 현상 2005-03-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촌 동생이 현대자동차 졍규직노동자^^인데 설때 만났더니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랑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바람에 명절 때 연장근무를 했다고 투덜거리더군요(우리집안에서 젤 출세한 애예요^^)

    balmas 2005-03-0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직들 분위기가 어떤지 알겠군요 ... 씁쓸 ...

    2005-03-10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3-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게 아직요 ...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