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3시에 일민미술관 5층에서 있었던 2월 반딧불 인권영화제 [피노체트 재판]을 보고 왔다.
원래는 영화가 끝난 뒤 과거사 청산에 관한 강연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까 여러 생각들로
심란하고 착잡해져서 영화가 끝난 뒤 바로 빠져나왔다.
영화는 먼저 피노체트 정권 당시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서 가족들 몇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찰과, 인류학자, 발굴조사단이 피해자의 유골을 조심스럽게 발굴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몇개의 뼛조각 이외에는 거의 흔적을 찾지 못해 낙담한 가족들의 한탄이 터져나온다.
노랫구절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한 아버지의 눈물젖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의 심장으로부터 봄이 온다네.
너의 시신으로부터 꽃과 풀이 자라나
너는 그 속에 있으리라." (대충 기억에 의존한 것이어서 부정확하다 ...)
그리고 나서 영화는 스페인으로 옮겨간다. 그 이유는 피노체트를 기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스페인의
카스트레사나라는 젊은 검사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헌법 체계를 검토하여 피노체트를 스페인 법정에 기소
할 수 있음을 알아낸다. 카스트레사나는 아옌데의 변호사였던 ****(이름을 까먹었음 ... -_-a)와 함께 피노
체트 당시 고문 피해자 및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면서 피노체트의 범죄사실에 대한 기록들을 확보한다.
그리고 가르손이라는 판사의 호응을 얻어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8년 신병치료차 피노체트가 영국을 방문한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손 판사는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 협정과 유럽 테러 협약에 의거해 피노체트를 18명의 스페인
시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영국 검찰에 요청한다. 가르손의 생각은 적중
하여 피노체트는 영국경찰에 체포된다. 곧바로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이자
칠레의 전직 국가수반으로서 면책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체포는 불법이라고 항소하고
영국 고등법원은 이를 수용하여 피노체트 체포가 불법이라고 판결한다. 하지만 다시 영국 검찰이
항소하여 사건은 영국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영국 대법원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다름아닌 피노체트의 생일날 3 : 2로 피노체트의 스페인 인도를 결정한다. 그 이후 대법관의 구
성에 이의를 제기한 피노체트 변호인단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새로 투표가 이루어지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피노체트 인도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법원 바깥에서는 피노체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칠레인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피노체트는 곧 스페인으로 인도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가 질병 때문에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측에
피노체트를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한다.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영국 정부의 결정으로 결국
피노체트는 칠레 공군기 편으로 칠레로 되돌아온다. 피노체트의 기소를 확신하던 시위대들의 낙담
한 표정과, 칠레 공항에 피노체트를 마중나온 군인들과 귀부인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대비된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피노체트 재판과 유럽 각국의 피노체트 기소 이후 칠레의 여론도 변화하여 칠
레 법원은 피노체트의 면책 특권을 박탈하여 피노체트가 집권 시기에 자행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기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승리에 관한 기록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한 고통
과 시련, 인내와 저항 끝에 얻어진, 아주 작은 승리의 기록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피노체트 통치
아래 실종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의 인터뷰, 그리고 저항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
어 가혹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여성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그러고 보니 인터뷰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자들인 것 같다(한 사람만 빼고?). 그만큼 많은 남자들이 죽었다는 뜻이리라 ... ).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나즈막히 분노를 담아, 또 때로는 행복하게(젊어서 남편을 빼앗긴 한 여인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가혹한 시련 이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로서는(그리고 그 여인 자신도) 믿기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자신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그 행복은,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이야기를 마침내
털어놓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다는 데서 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에
깊은 슬픔을 바탕에 깔고서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을 몇 가지 말들이 생각난다.
고문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가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고문은 특정한 자백을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문당하는 나의 인간성을 파괴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사물이나 다름없는 존재
였다."
동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가장 가슴아픈 일은 동료가,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옆방에서 고문을 하면서 그들은
크게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고문받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당한다
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용서에 관한 이야기:
"내가 고문을 당한 것보다 더 가슴아프고 괴로운 건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나더러 그들을 용서
하라고 충고하는 말이다.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지 않았나, 그들을 이제 그만 용서해라. 잊는 게 낫지 않은
가 ...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고문을 당하는 것을 겪어봐야 한다. 용서는, 용서받을 사
람이 용서를 구할 때에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칠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피노체트가 잘
못한 건 빨갱이들을 모조리 없애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더 슬퍼진다."
희망에 관한 이야기: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믿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는 다를 것이라고. 그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왜 죽임을 당하
고 실종되었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마음이 착잡하고 심란했던 건, 결국 이들의 희생과
고통, 싸움이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서 계속, 어쩌면 더욱 더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또 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할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되기를 조장받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