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서울역 노숙자 대 회현역 노숙자

지금은 회사가 목동으로 이사왔지만, 그 전 4년간은 서울역과 회현역 딱 가운데 있었던 터라 노숙자 곁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그런데 노숙자의 수는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추석이 지나면 추위를 피해 지하철역에 급증하기 시작하고, 식목일을 전후로 하여 한산해지곤 한다. 한여름에야 열대야를 피해 일부러라도 공원에서 잠을 청한다지만,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노숙도 아닌 야숙을 자청할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속 때문이다. 아무리 노숙자라도 동사자를 만들 수 없어 겨울에는 내버려두지만, 꽃피는 춘삼월만 되면 단속과 물청소를 강화해 내쫓는 것이다.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여름에도 한뎃잠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데, 노숙자들은 어디서 봄가을을 보낼까 마음이 쓰이곤 했다.

어쨌든 서울역이고 회현역이고 일년 열두달 노숙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나를 비롯한 대개의 여직원들은 서울역보다는 회현역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했다.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지하도의 악취는 락스청소를 하고 노숙자 몸에 대고 소독약을 뿌려대도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반면 회현역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노숙자들의 외양도 멀끔한 편이다.

또 서울역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깡소주나 환각제에 취한 노숙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들은 만만하다 싶은 행인이 지나면 불쑥 길을 가로막거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구걸을 하곤 해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기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일쑤이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거나 토악질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고성방가와 술주정이라니.

하루종일 거지꼴로 지하도를 뒹구는 서울역 노숙자들과 달리 회현역에는 대개 저녁 8시 정도부터 노숙자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단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은 뒤, 짊어지고 온 배낭과 종이상자를 풀어 잠잘 채비를 한다. 수건 겸 걸레로 구석구석 상자의 흙과 먼지를 닦아내는 모습이 꽤나 정성스럽다. 그나마 말짱하고 깨끗한 면을 골라 이리저리 상자를 끼워 맞춰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관 모양을 만드는 재주도 가히 경이롭다. 사람크기만한 배낭에선 침낭이 나오고 여벌 옷이 나오고 베개까지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른 노숙자와 거의 말도 안 하며 잠자리 준비만 끝나면 바로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한다. 가끔 추위를 다스리려고 소주와 꼬마김치를 나눠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다 술주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워있던 사람들에게서 고함이 터져나온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잠 좀 자자."

철야를 하고 새벽에 퇴근할 때면 회현역 노숙자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언 몸을 녹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서울 곳곳의 새벽 인력시장으로 흩어진 것이다. 하루 일당으로 벌집에 들어가 잘 수도 있지만,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친척집에, 혹은 고아원에 맡긴 아이를 찾을 수 있기에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노숙자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에게 왜 이분들이 노숙자 쉼터에 안 들어가냐고 여쭤봤더니 햇살보금자리처럼 새벽출근이 가능한 곳은 얼마 없고, 다른 기관은 일과(훈련)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거나 아예 지방에 있어 일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또 대부분의 기관이 종교단체에서 운영되는 것이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언젠가 회현역에서 노숙자가 지하철 역무원의 부인을 철로에 떨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난 적 있었는데, 이로 인해 회현역 노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서울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바람에 다음날 일거리까지 놓쳤다며 회현역 역무실에 하소연을 하는 걸 보았다. 사고를 낸 노숙자는 회현역 노숙자가 아니라 뜨내기였다며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그들은 일거리가 끊어져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광경은? 하루 3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노숙을 자청하며 돈을 아끼면서도 매일같이 500원짜리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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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대되는 한반도 위기,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 북 핵보유 성명과 미일 안보 공동선언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2월10일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서는 핵무기의 보유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동안 무성했던 북핵에 관한 추측과 주장은 이로써 ‘공식화’되었고 한반도는 92년 미국의 전술핵 무기 철수 선언 이후 15년 만에 한반도는 다시 핵 지대가 되었다. 3월로 예정되어있던 제4차 6자 회담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며 위기의 한반도 호는 다시 한 번 폭풍과 마주하게 되었다.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의 언론들과 싱크탱크들은 성명서의 진의와 한-미-중 정부의 이후 대응을 중심으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각 국 외교가의 반응을 초점으로 한 향후 행보를 묘사하거나 추측하는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석은 사태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나 의미 있는 전망을 추출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 위기가 어디서 연유하고 있으며 왜 반복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북의 강경책이 문제의 원인인가?

주류 언론과 각 국의 싱크탱크들은 북의 핵무기 보유가 일본과 미국의 군비확충 정책을 가속화할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북한 정부의 ‘실기(失機)’로 파악하는 견해를 피력한다. 더 나아가 여전히 현재의 사태를 한-미-일의 강경파와 북한 정권의 적대적 의존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부류마저 존재한다. 물론 북한의 강경책이 한반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태 인식은 기본적인 인과관계를 외면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다. 소위 미국의 온건파 정부의 정책인 페리프로세스가 한반도 정책의 중심일 때에도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은 그 핵심 축이었다. 즉 북한의 군사주의적 행보라는 선택을 결코 문제의 원인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현재 동북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워싱턴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다는 점, 그러므로 군비감축의 신호와 성의 있는 협상 태도를 보여야할 선차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도외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입장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알리바이를 등에 업고 미국 정권을 ‘상수’(常數)로 파악하는 종속적인 인식 틀을 밑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파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북한 외무성 성명은 92년도 비핵화 선언과 94년도 제네바 합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90년대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봉쇄-고립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아버지)부시 정부와 달리 핵, 미사일로 상징되는 대량 살상 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협상과 군사력 증강’을 양면으로 한 페리프로세스였다. 페리프로세스는 협상을 첫 번째 경로로 상정하고 있지만 군사력 증강을 협상의 후순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Two-Path Strategy)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를 승인한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여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클린턴 정권이 군사주의적 압박을 주요한 카드로 사고한 것은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게 상, 하원 모두를 패배한 이후 레이건적 전통을 일부 수렴하면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선거 이후 클린턴은 북한과의 협상 의제에 미사일 문제를 추가적으로 제기했다.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무력하게 평가한 네오콘은 집권 초기 북에 대한 압박 정책에 보다 힘을 실음으로써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군비를 체계적으로 확장-강화하는 데에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의 일관성은 충실히 확보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10년을 보낸 미국의 대북정책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켰는지는 모두들 아는 바와 같다.

현재 미국은 소위 리비아식 해법(a Libyan solution)과 같이 북한에게도 핵무기에 대하여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그와 연계된 다른 제안(보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주문은 리비아의 사례가 역설적으로 증명하듯이 북한이 선택지로 사고하기에는 불가능한 해법이다. 2003년 말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이후,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풀기는 했지만, 별다른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테러지원국의 명단에 포함시켜 일부 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리비아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 진출이라는 명목으로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리비아와 같이 무기를 선 포기하는 결단의 또 다른 어려움은 이라크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사찰단은 주권을 침탈하는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여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 전쟁을 일으켜 후세인을 제거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주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부시와 공화당은 최근 의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집권 2기를 맞이한 취임 연설에서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을 지목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을 거론했지 대북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2.19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편 이번 북한의 성명이 일본에 관한 언급을 적시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명에는 납북자 유골을 가짜라고 조작하면서 평양선언을 백지화한 일본에 대한 강한 이의제기가 짧지만 분명한 어조로 담겨 있다. 6자 회담의 한 주체로 나서고 있는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북아의 미완된 교차승인의 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체제에서 중요한 변수다. 현재 양국 간의 외교관계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는 납북자 유골문제로 악화일로에 놓인 상황이다. 사태를 더욱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난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간의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일 동맹의 수준을 강화하는 공동전략 목표에 합의한 선언이다. 양국 간의 합의는 일본의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지위 추구, 양자간 방위협력 수준을 극동지역을 넘어선 수준으로 추구하고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도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포함하여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일 안보 공동선언이 북한의 성명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수준에서 위기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며, 북의 외무성 성명과 견주어 볼 때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무능

노무현 정부 역시 현 사태의 주범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했다는 논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대한 대미 종속성을 가장 비극적으로 천명한 사례였다. 어디 그 뿐인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의 재연,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논란, 평택 기지문제 등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무엇을 했는가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조차 비난받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특사로서 DJ가 나설 수도 있다고 표명한 것은 노무현의 무능을 드러낸 가장 역설적인 희극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자주’적인 외교력을 가지고 대중(對中), 대북(對北) 협상력을 높이고 미국의 유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가지는 한계 역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 하에서 철저히 미국에 종속되어있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독자적인 국방, 외교 정책의 수행이란 이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야 하는, 따라서 불가능한 문제다. 기껏 해야 노무현 정권에게 부여된 카드의 효능은 사태를 봉합하고 지연하여 그럭저럭 버티기 이상이 될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외교적 술수에 의한 지연과 봉합이 아니라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에서의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6자 회담이 의미가 있는가?

북의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은 한결같이 6자 회담으로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북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자 회담이 어떠한 성과물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근거들이 존재하는가? 2003년 북한의 NPT 탈퇴이후 열렸던 세 차례에 걸친 다자 회담은 여러 국제 정황으로 인하여 구성된 공간이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기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문제에서 핵심적 축은 북핵과 주한미군의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고 논의할 수 있는 틀에는 실질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남한 3국이면 족하다. 중, 러, 일 역시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 문제에서 모두 핵심적인 갈등의 당사자였던 것은 사실이나 현재의 구도에서 핵심 의제라고 할 수 있는 대북 문제를 풀 능력이나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물론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에서 벌어진 네 차례의 비극(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떠올려 보면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틀이 가질 의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동북아 제국가들의 국가 팽창주의적 요소가 여전한 지금의 현실에서 6자 회담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지적해야 할 다자 회담의 한계는 미국이 이 틀을 고수한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곳이라고 판단하는 지역에서는 강력한 개입주의적 대외정책을 표방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방관하거나 국제기구의 이름을 빌려 부분적으로 개입했을 뿐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북의 성명에 대해 백악관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응에 그치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순위에 북핵 문제가 위치해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양자간의 대화는 부인한 채 막연하게 6자 회담 수준의 느슨한 틀을 유지만 할 뿐이었으며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카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6자 회담 틀을 통해서 여타의 국가들에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행여나 회담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북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분담할 수 있는 안배를 획책했을 뿐이다. 미국이 6자 회담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대화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대외적 명분 그 자체일 뿐이다. 이것이 2년에 걸쳐 세 번이 열린 6자 회담에서 별다른 가시적 결과물을 산출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므로 단순히 북한에게 현재의 수준에서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것은 우스운 주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의 선군정치(군사 우선 정책)가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

한편 핵무기 보유 자체를 둘러싼 문제는 민중운동 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외무성 성명을 보면, 이북은 자신들의 핵이 자위적 핵으로만 남을 것이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92년 비핵화선언에도 불구하고 지난 12년 동안 무책임한 협상 태도와 일관된 군사력 증강을 한반도에서 도모했던 미국의 행보는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주의적 해결방식을 (병행하는)선택하도록 강제했다. 사실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선언의 당사자가 남/북한에게만 국한되어 있기에 한반도 내에서의 미국(혹은 여타의 국가)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일체의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반의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한반도 주변의 위험을 증대시켰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는데 있다. 비록 북한의 선군정치가 제국주의 질서에 의해 강제된 선택이라 ‘항변’하더라도 그 형태가 ‘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부 운동진영의 주장처럼 북의 핵 보유 선언을 선군정치의 승리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북의 핵 보유가 즉자적으로 동북아의 전쟁 억지력을 가져다온다고 보기에도 어려우며, 핵무기가 가지는 절멸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북 역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핵이 가지는 파괴력은 ‘절멸’의 위험일진데 핵에게 자위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방어적 이유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핵이 태생적으로 상호절멸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북의 군사주의적 대응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지렛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핵무기 보유는 사태를 확실히 비가역적인 국면으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사태는 더욱 비극적이다. 주 유엔 북한 대표부 대사인 한성렬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CVID도 가능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확실히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며 이 경우도 그 성격상 오랜 기간(10년 이상)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한반도 위기에 맞선 단호한 태도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북한의 외무성 성명과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제2차대전이 종전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여전히 민중의 평화가 도래하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 현재 한반도 위기는 북한의 군사주의적 선택을 초래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태도와 이에 안보 공동선언으로 호응하는 일본과 한미공조를 튼튼히 하는데 소홀함이 없는 남한 정권에게 그 책임이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굳건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회담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태를 해결하는 경로로써 한-미-일 삼각동맹에 맞선 핵을 동반한 군사주의적 대응을 수긍하기도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정권의 자주적 외교를 촉구하거나 북의 핵 보유를 선군정치의 개가라고 평가하는 태도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입장들은 모두 대중의 운동을 사태의 해결에서 철저히 배제하거나 폄하시킨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평화에 대한 결정권을 국가기구의 외교적 기술, 군사적 능력에 위임하는 것이 가져올 결과는 기껏해야 한반도 위기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에 그칠 뿐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기 위한 전제조건은 대중운동을 하찮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진정한 문제의 해결자의 위치에 놓는데 있다. 반전반미평화를 외치는 대중운동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한반도 위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세계적인 차원의 반전평화운동이 베트남을 비롯한 곳곳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패퇴시켰던 대중운동의 역능을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 절멸의 위기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에서 기원한 새로운 제국주의에 있다고 한다면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의 반전운동과 대안세계화운동이 활성화되고 결합되는데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05년02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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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부인들은 주식투자 선수들

[조선일보   2005-02-25 18:09:49]  

가족들이 투자해 2억 벌기도… 외국선 엄격한 규제

[조선일보 한윤재 기자]

재산을 불린 고위공직자의 경우 주식은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재테크 수단 중의 하나로 나타났다. 홍석조 인천지검장처럼 ‘타고난 주식부자’도 있지만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수시로 주식을 사고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 공직자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주식 재테크를 활발하게 한 공직자 중에는 경제관료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외국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주식거래 및 보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물론 과장급 이상의 공무원과 연방의회의원, 사법부공무원 등의 주식보유 및 거래 행위를 일종의 ‘내부자 거래’로 간주해 규제하고 있다.

◆본인보다는 배우자가 더 적극적

정부 산하기관의 한 이사장의 경우 부인이 작년 한해 SKC·대우증권 등 11개사의 주식을 팔고 SBS·동성제약·두산 등 11개사의 주식을 샀다. 장남과 장녀도 모두 주식투자에 나서, 가족 전체의 주식보유 증가액이 2억여원에 달했다.

또 경제부처의 차관급 인사는 조흥은행 주식 7500주, 삼성SDI주식을 팔아 아시아나항공 5만주와 현대오토넷 1만주를 사는 등 대부분 재산을 예금보다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주식이 한주도 없었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크게 불린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우도 주식투자는 하지 않았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 청와대 소속 공직자들도 지난해 보유주식이 많이 늘어났다. 대통령 비서실의 장관급 인사는 부인이 삼보컴퓨터 500주와 우리금융 200주를 팔고 한신공영 600주와 삼성전자 40주를 샀다고 신고했다.

보유주가 변동액 1위인 홍석조 인천지검장의 경우는 휘닉스피디이(옛 휘닉스디스플레이전자) 주식 28만5000주(11%)를 갖고 있는데 지난해 6월말 이 회사가 3만200원(액면가 5000원)의 공모가로 코스닥에 상장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휘닉스피디이는 홍 검사장 일가가 오너로 있는 보광그룹의 계열사이다.

◆공직자 주식거래 규제 필요

공직자의 주식보유 및 거래는 업무상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하더라도 ‘정보접근’이 일반 투자자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는 점에서 ‘공직자 윤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회에 계류중인 주식백지신탁제 법률안도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정부가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초 작년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이 법은 올 2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직자의 보유 주식이 담당 업무와 이해충돌 소지가 있을 경우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사임하거나 전직·전보를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94년 샌디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석유기업 아모코 주식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95년에 이를 매각 2만30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윤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yoonjae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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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2-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어디 주식 투자뿐일까? 부동산 투자에도 귀재들이겠지.
어제 술자리에서 분당에 아파트 사서 몇 억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한 교수의 얘기를 들었다. 같이 있던 몇몇 사람들(강사, 박사과정생들인데 ...)은 나도 좀 해보자고 열을 올리더군 ...
도대체 주식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뭘까? 부동산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뭘까?
그런데 왜 노무현은 어떻게든 부동산 투기는 잡겠다고 열을 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인 신도시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걸까?
투기는 잡되 투자는 보장하겠다는 걸까? 부동산 로또를 좀더 공평하게 배분하겠다고??
 
 전출처 : 릴케 현상 > 샤를 보들레르 전집

샤를 보들레르 전집

전7권 / 심재상 역

 

  나다르 <샤를 보들레르> 

  파리, 1855년.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 서적을 선보여 온 열화당에서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자 현대성의 창시자, 그리고 당대에 뛰어난 미술비평가로 알려진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의 전집(全集)을 선보인다.

그간 국내에서 보들레르 저서의 완역은 『악의 꽃』 『파리의 우울』 『내면일기』 정도였고, 그 밖에 『인공낙원』이나 문학평론·미술평론 등은 거의 소개되지 못하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전의 보들레르는 시인으로보다는 당대의 뛰어난 미술평론가로서, 문학평론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삶을 주도해 온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현대성, 즉 모데르니테(Modernité)의 창시자로서 더욱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샤를 보들레르 전집’은 보들레르를 불멸의 시인으로 만들어 준 시집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은 물론, 아포리즘·에세이·단편소설·문학평론·음악평론·미술평론·서간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방대한 작업으로, 시인·미학자·문학비평가·미술비평가로서 보들레르의 전모를 온전히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심재상 교수.

고급한 장정과 완미(完美)한 편집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될 이번 전집의 번역은, 꾸준하게 보들레르 연구에 매진해 온 시인이자 불문학자인 심재상 교수(관동대)가 맡았으며, 제1권 『악의 꽃』 출간을 시작으로, 차례로 전7권의 전집이 계속해서 출간될 예정이다. 역자 심재상은 1955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 불어과와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석사·박사학위논문 모두를 보들레르 시 연구에 바쳤다. 한국불어불문학회 이사를 역임하고, 현재 관동대학교 문과대학 프랑스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프랑스학회 이사, 한국불어불문학회 시 부분 논문심사위원, 한국프랑스학회 시 부분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1992년 등단하여 첫 시집 『누군가 그의 잠을 빌려』(1995)를 출간했고, 저서로 보들레르 연구서인 『노장적 시각에서 본 보들레르의 시세계』(1995), 역서로 『20세기를 벗어나기 위하여』(1996)를 낸 바 있다.

 

'샤를 보들레르 전집’의 구성

 

제1권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초판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동시대적 문제의식, 동시대적 감수성으로 육박해 오는 ‘현대적 자아’의 존재론적 고뇌와 외로움, 절망과 희망을 파헤친 불멸의 시집. 『악의 꽃』은 이 세계와 언어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진정한 현대성, 진정한 새로움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근대인(近代人) 혹은 근대적 자아의 단일성을 거부하고 ‘현대적 자아’라고 불려 마땅할 새로운 인간개념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시집을 여는 순간 우리는 15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동시대적 자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한 강렬한 정신과 마주치게 된다. 존재론적으로 둘로 찢어진 ‘현대적 자아’의 경련 섞인 고뇌를 단말마적인 리듬으로 표현하고 이다.

 

제2권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

유일한 운문시집인 『악의 꽃』과 짝을 이루는 산문시집. 몽상하는 영혼의 물처럼 흘러가는 의식, 그 유연하고 유장한 리듬을 50편의 산문시의 형태로 구현해내었다.

 

제3권 내면일기(Jourarx intime)

보들레르의 미학적·형이상학적 사유를 잘 보여주는 120여편의 아포리즘들. ‘내면일기’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예술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밀도 높은 짧은 글들이다. 잘 알려진 「나심(裸心)」 「봉화(烽火)」 「위생(衛生)」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권 인공낙원(Paradis artificiel)

보들레르가 ‘능력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상상력, 진정한 시적 창조의 원동력인 상상력의 본질을 밝혀내려는 집요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인위적인 방식으로 실현된 창조적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인공낙원’은 시인 보들레르가 평생 추구한 ‘시적 건강상태’를 가장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보들레르의 유일한 단편소설인 「라 팡파를로」, 미완성작인 「젊은 유혹자」, 짧은 이야기인 「사랑에 관한 위안적 잠언들」과 「장난감의 모럴」을 함께 묶었다.

 

제5권 문학평론

문학 전반에 걸친 성찰을 담고 있는 글들의 모음으로, 「피에르 뒤퐁」과 같은 작가론과 「보바리 부인」과 같은 작품론들, 그리고 보들레르가 자신의 ‘운명적인 정신적 형제’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그의 작품들을 번역 소개한 에드가 앨런 포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을 아우르는 문학평론집이다. 더불어 바그너에 대한 보들레르의 유일한 음악평론을 함께 실었다.

 

목차

1. 젊은 문학도들을 위한 충고    

2. 교양적인 극작품과 소설들

3. 이교도파     

4. 보바리 부인

5. 이중의 삶    

6. 위고의 『레미제라블』

7. 피에르 뒤퐁  

8. 테오필 고티에

9. 몇몇 동시대인에 대한 고찰    

10. 셰익스피어의 생일

11. 에드가 앨런 포 연구들       

12. 리하르트 바그너와 파리에 온 「탄호이저」

 

제6권 미술평론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 인정받게 해준 도전적인 평론들의 모음집으로, 보들레르는 일련의 미술비평을 통해 자신의 예술비평 이론과 상상력 이론을 거침없이 개진하고 있다. 세 차례의 살롱 평과 1855년 만국박람회 평, 현대예술의 본질과 운명에 대한 보들레르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현대적 삶의 화가」, 현대성을 가장 잘 구현하는 당대 화가라고 보들레르가 극찬하고 있는 들라크르와에게 바쳐진 「외젠 들라크르와의 작품과 생애」, 풍자화와 조형예술의 희극성에 대한 고찰 등을 담고 있다.

 

목차

1. 1845년 살롱  

2. 1846년 살롱

3. 1855년 만국박람회: 회화      

4. 1859년 살롱

5. 현대적 삶의 화가     

6. 외젠 들라크르와의 작품과 생애

7. 웃음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조형예술에서의 희극성에 대하여

8. 프랑스의 몇몇 풍자화가들     

9. 외국의 몇몇 풍자화가들

10. 철학적 예술 

11. 들라크르와로부터 셍-쉴피스까지의 벽화들     

12. 바자르 본-누벨의 고전박물관 

13. 「마르티네」전

14. 에칭이 유행 중이다  

15. 화가들과 부식조각사들

 

제7권 보들레르 서간집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과 선택, 무력감과 한몸뚱이가 되어 있는 드높은 자부심, 시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암중모색을 증언해 주는 보들레르의 주요한 편지들을 묶은 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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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선언

 

 


핵문제 해결 3원칙 제시




한반도 평화실현과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선언

선언배경

북한은 지난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최초로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미국의 적대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양보를 하지 않겠다면서 본격적인 대북 제재와 봉쇄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은 기약없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한반도 정세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앞으로의 정세를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6자회담이 재개될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3월부터 한반도의 정세를 가파르게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외화수입원을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제재와 봉쇄 수단을 강구하고 있고, 북한 인권대사를 임명해 북한인권법의 시행도 예정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로 북한과 대치 중인 일본은 추가적인 경제제재에 나서는 한편, 미국에 이어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3월 하순부터는 한층 강화된 형태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될 예정이고, 남북한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군사적 대치를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미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반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한반도의 급변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엄중한 현실에 주목해 핵문제의 평화적이고 조속한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실현을 촉구하고자 다음과 같은 원칙과 요구 사항을 발표한다.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3원칙

우리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이고 조속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달성 ▲한반도 주민 의사의 우선적인 존중을 3원칙으로 제시한다.

첫째, 관련국들은 핵문제를 반드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또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무력 사용이나 추가적인 제재와 봉쇄 등 압박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될 뿐더러 한반도의 위기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북미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가 심각하게 위협받아왔다는 점에서 조속한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둘째, 관련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해온 인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개발․배치․생산․사용 및 사용 위협에 반대한다. 따라서 미국은 핵 선제공격 전략을 비롯한 핵 패권주의를 버리고, 북한 또한 스스로도 밝힌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접근 과정에서 한반도 주민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는 핵문제가 단일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안일뿐더러, 그 해결 방식 역시 다양한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는 현실적․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악화될 경우, 한반도 주민들의 생존권을 총체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국제사회가 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 접근할 때, 한반도 주민들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할 현실적․당위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3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핵문제는 관련국들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각 국의 우려와 요구를 동시적으로 고려해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의 철회가 상호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아울러 북미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앞세우면서 검증과 보장을 강제하기보다는 가능한 수준에서부터 합의와 이행을 달성할 수 있는 정책적 유연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와 합의 도출을 위해 관련국들이 성실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6자회담이 현시기의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의 실질적인 협상을 거부하고 국제적인 대북 압박 구도로 활용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공존 의지와 실질적인 정책 변화 의사를 밝혀야 하고, 북한은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철회도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계기로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비료 지원을 비롯한 인도적인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의 차질 없는 진행을 촉구한다. 우리는 1993-4년 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 전쟁 위기를 초래한 과오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넷째, 우리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정상회담 실현이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불안 요인을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북한 정부는 중단된 당국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 특사파견도 적극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우리는 여야가 당리당략 차원에서 핵문제를 접근하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국난을 해결하기 위한 초당적인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우리가 선언에서 밝힌 원칙과 입장에 조응하는 국회 차원의 초당적인 결의안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국회 결의안 채택은 남북한 정부와 국제사회 모두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를 추구하는데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올해가 광복과 분단 60돌, 6.15 공동선언 5돌이 되는 해임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날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2005년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해'로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린다.

2005. 2. 25
91개 시민사회단체 일동


21세기COREA연구소/6.15공동선언실현과한반도평화를위한통일연대/corea평화연대//KYC/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기독시민사회연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노동인권회관/노동자의힘/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녹색연합/다함께/문학예술청년공동체/문화연대/민가협양심수후원회/민족문제연구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연대회의/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족화합운동연합/민족정기수호협의회/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민주개혁을위한인천시민연대/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통일위원회/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반미여성회/백범정신/보건복지민중연대/불교평화연대/불교환경연대/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사월혁명회/사회진보연대/서울통일연대/스크린쿼터문화연대/실천승가회/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우리문화동질성연구회/인드라망생명공동체/인천통일연대/자주여성회/전국공무원노조/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중연대/전국빈민연합/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학생연대회의/전북통일연대/전태일기념사업회/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참여연대/청년통일광장/통일광장/통일후원회/평화네트워크/평화를만드는여성회/평화시민연대/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의전화연합/한국YMCA전국연맹/한민족생활문제연구회/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 (이상 91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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