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울대, 서울의 미국대


서울대는 세계 몇 등일까.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나 선정기관이라는 게 그다지 신뢰할만한 건 아니지만, 일년에 몇 차례씩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서울대의 등수는 항상 뉴스거리다. 최근 중국의 어느 대학이 매긴 성적표를 보면 서울대의 종합 성적은 150위권 밖이다. 동네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자식의 부모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등수다. 과목별로는 조금 나은 것도 있다. 2001년 도서구입비의 경우 105위, 2002년 ‘과학논문인용색인(SCI)’의 경우에는 34위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지난 주 서울대가 세계 대학 중 ‘넘버 투’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의 출신 학부를 따져보았는데, 서울대가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버클리대를 제외하고 미국 내 어떤 대학보다도 미국박사를 많이 배출했다. 그 수가 무려 1655명에 이른다. 한해 평균 300명을 웃도는 셈이다. 서울대가 배출한 국내박사가 대략 400명 남짓이고 그 일부는 타 대학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학부로서 서울대가 배출한 미국박사 수는 자체 배출한 국내박사 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학위에 대한 열망이라든지, 미국박사와 국내박사의 차별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새삼스레 그 문제를 여기서 다시 들추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이 낡았거나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이른바 ‘서울대 넘버 투 사태’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지금의 위기가 학위가 아닌 학문의 위기임을, 그리고 문제가 더 이상 대학의 등수가 아닌 대학의 지향에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 한국의 대학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수나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도 늘었고 연구논문에 대한 압박도 강해졌다. 대학만이 아니라 학위자의 경쟁력도 늘었다. 국내박사의 실력이 미국박사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미국박사인 어느 교수는 내게 실력 있는 국내박사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 걸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고 했다.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겠지만 정작 나를 화나게 하는 쪽은 따로 있다. 학문과 대학 자체가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상황에서 나는 솔직히 미국박사보다 더 경쟁력을 갖춘 국내박사를 대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국내에서 미국박사보다 더 미국적 경쟁력을 갖추었다면 대견한 일이지만, 그런 거라면 나는 진심으로 미국 유학을 권하고 싶다. 한국노동운동사도 좋고 중국문학도 좋으니 미국학자들의 시각이 궁금하다면 직접 가보는 것도 나쁠 게 없다. 미국에서 배웠다거나 미국을 배웠다는 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 문제일 턱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박사들 중 상당수가 미국적 시각을 하나의 시각이 아닌 유일한 시각으로 믿는 데 있을 뿐이다.

불행히도 이제 그 믿음이 실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미국 학문의 시각과는 다른 시각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의 커리큘럼이나 연구방법은 이미 미국의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대학들은 지금 자국 출신 미국학자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을 넘어 스스로 그런 학자들을 양성하려 하고 있다. 미국학자들의 귀환보다 훨씬 심각한 건 바로 이쪽이다. 학문의 지향에 대한 자기 성찰을 병행하지 않는 변화의 노력은 대학과 학문을 큰 위험에 빠뜨린다.

‘서울대 넘버 투 사태’는 그동안 서울대가 사실상 미국대학원의 학부 노릇을 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서울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 만약 대학원중심대학에 대한 서울대의 표방이 미국의 학부 노릇을 하다 대학원 노릇을 하려는 거라면 희망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석규가 보여주지 않았던가. 자기 세계를 갖지 못한 자들은 제 아무리 ‘넘버 투’라고 해도 결국에는 ‘넘버 쓰리’일 뿐이라는 걸.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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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1-2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댓글들이 재미있죠??
 

 

확대해석의 경연장

담덕29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유심히 보니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일수록 확대해석의 경연장이다.

이 칼럼이 그렇게 편협하고 교육개혁에 대해 무지와 오류에 찬 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맹목적인 사회엘리트 계층에 대한 반감차원에서 쓰여진 글도 아니다. 이 칼럼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식선에서 쓰여진 글이다.

이 칼럼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무식해서 어려운 질문은 하지 못하니 대답을 한번 해보길 바란다.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세계2위의 대학이 서울대이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인가 덜떨어진 일인가?

내가 아는 상식에서는 학문에 대한 자존심이 있고 자기대학원과 교수 역량에 대해 믿음이 있는 대학이라면 어떻게든 외국에서 자기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만들려고 애를 쓰지 자기대학사람들이 가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기대학으로 외국사람들이 학문을 배우러 많이 온다는 자체가 '명문'이라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들은 그런 순위를 발표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대학을 나와 자기대학원에서 승부를 못보고 뭔가를 밖에서 배워와야 경쟁이 된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있는 대학의 교수역량과 교육체계가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유학을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외국의 학문과 내용을 잘알 필요도 있고 선진학문을 통해 나와 국가의 발전을 꾀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배알도 없는 사람들아 생각해보라. 서울대는 적어도 이 땅덩어리안에서는 엘리트라고 자칭타칭 부르는 대학이 아니었던가?

서울대가 아니라 다른 국내 대학이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받은 세계2위라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국내1위라는 서울대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미국대학으로 학위를 따러 갔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자랑스러운 뉴스인가?

서울대가 진짜 명문이라면, 서울대에 있는 교수들과 젊은 학생들이 진짜 실력이 있고 연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만든 이론과 연구성과물로 미국대학을 누르고 오히려 그들이 서울대로 유학을 오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서울대로 유학오는 미국학생들 아니 미국대학들이 있는가?

이래서 서울대교수들과 지방대교수들을 전부 자리이동 시켜도 서울대는 여전히 서울대이고 지방대는 지방대일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도대체 서울대는 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서울대는 이 나라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서울대가 진짜 명문이라면, 이런 뉴스가 나왔을때 서울대 교수들은 전부 머리를 처박고 통곡을 해야한다. 애시당초 자존심도 없는지 조용한 것을 보면 과연 이 나라의 최고엘리트들답다.

한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들을 싹슬이해서는 단체로 외국대학으로 유학을 보내는 중간경유지 역할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서울대..

아직도 대학이 무엇이고,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감을 못잡아 정원축소하고 되지도 않는 논술이나 면접으로 학생들 '골라잡기'에만 혈안이 된 이 그럴싸한 대학의 총장이란 사람의 철학을 듣노라면 나는 암담해질 뿐이다.

그렇게 머리가 좋은 학생들을 뽑아 놨으면 하버드학생들이 유학을 오는 서울대로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하버드 학생들이 서울대로 와서 학문을 배우고 있는가? 아니라면 왜 그들은 서울대에 와서 학문을 하지 않는가?

왜 한국의 서울대는 끊임없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가? 서울대에서 딴 석사나 박사학위는 쓰레기인가? 서울대에서 딴 석사나 박사학위로는 인정을 못받는가? 아니면 박사학위 여러개를 받아야 출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인가?

하여간에 웃긴 것은 이 나라는 조금만 위에다 대고 비판을 하면 전부 열등감의 소산이거나 빨갱이들의 공격이라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뉴스를 보면서도 분노가 생기기는 커녕 칼럼자체를 수준이 낮다고 비판을 해대니 서울대의 웃기지도 않는 그들만의 무소불위 기득권이 사라질턱이 없다. 수능대박이면 인생역전이니 수능에서 단체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이렇게 배울 것 없는 대학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평생 놀고먹어도 나는 서울대출신이니까.

조만간 미국대학 유학순위 1위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그쯤되면 하버드 서울캠퍼스라고 불러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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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들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이 가네요. 가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산다는게 깝깝합니다.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연기
너무 많은 종교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침묵

 

- 아래는 알렌 긴스버그의 다양한 흔적(약간의 작품들과 인터뷰 등등)들을 볼 수 있는 싸이트.

AllenGinsberg.org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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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우 / wandong

전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서울대를 학부/석사를 졸업하고, 지금 유학와 있다.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 올 수 밖에 없었던 현실도 있다.
미국 박사 아니면 한국 시장에서 자리 잡기 힘들므로..
장학금 미국 만큼 잘 주는 곳 없으므로. 유학 정보가 풍부하는 곳은 미국이므로.
특정 분야가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의 질이 세계 최고 이므로.
미국식 교육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메뉴얼 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명한 아이디어를 혹은 지식 가공품을 제도적으로 잘 보장해주는
교육 시스템이다. (자료의 풍부함은 여기서 비롯된다)
석사 이상을 미국이나 한국에서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안다.
학위논문 혹은 학위저널에 비실용적이면서 쓰레기 같은 논문 졸라 많다는 것을.
미국에서 생산되는 지식이 항상 옳고 좋은 것은 아닐진데,
많은 한국인들은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인의 풀이 다양해야 한다. 학문적 배경이 다양해야 한다.
우리 나라 언론인들을 봐라.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조선/동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 부작용도 많이 생기지 않는가?
곱씹어 봐야 할 문제다.

 

한모 / khahn339

미친놈,, 니 학회지에 논문 몇개 냈는지 한번 얘기해 봐라... 다 지 사고의 폭으로 생각하는 놈... 니,, 세계 권위있는 학회지에 미국교수들이 싣는 논문수가 몇개인줄 아니?? 또 그러겠지,, 그건 미국 위주의 학회지라고,,, 미친놈,,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학회지들이 더 좋은게 많으면 우째 미국 학회지들이 주도하겠니, 그럼? 니는 사회학 하니까 지댕이만 까면 되니까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공계에서도 그게 통할거 같니, 이 멍충아? 니는 사회학 했지만, 이공계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세다,,,그럼,, 이것도 미국화냐? 미국유학가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공대야, 공대, 이 멍충아..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 봤어야 알지,, 지가 다른 나라에서 학위했나보지.. 지 밥그릇을 이런식으로 챙기나...

 

ultramankorea / ultramankorea

한모 님께,

이 계시판은 우리의 자녀들도 보고 있습니다. 충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도 반박이 가능한 것을 욕을 써가면서 한다는 것 좀 부끄러운 일 같군요.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는 모르겠스나 그런식의 표현은 일반인으로서도 도를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드는 군요. 최소한의 넷티켓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한모 / khahn339

속어 사용은 사과합니다..그러나,,,

이런 편협하고 무식한 "사회과학"한다고 떠드는 "사기과학"자들은 좀 쌍욕 먹어도 됩니다. 현실도 모르고 뭔 양식있는 지식인인척 사기만 치고 자빠져 있는 셰이들은 쌍욕먹어 마땅합니다...

 

너만큼바보 / kskkk

엘리트사유의 미국화라는 글을 개탄한다

사설을 쓴 분은 사회학과 교수라고 하는데 참으로 걱정스럽다.
사회학을 한다는 사람의 생각이 단편적이고 선동적인 수준에서 사회문제를 해석하다니. 미국화라구? 대부분의 한국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유학을 간다. 즉 자아와 세계관이 어느정도 형성된 이후에 간다는 소리다. 유학을 가는 사람이 아메바가 아닌 이상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체계간을 끊임없이 비교하지 자신도 모르게 미국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좁은 한쪽 세계에 빠져서 자신의 문제가 정작 무언지를 모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매우 다른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찾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신문의 상업성을 악용하여 학문을 하는 사람이 진지한 고민없이 그냥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글을 쓴다는 것이다.

하도 글을 쓴사람이 궁금해서 경력을 찾아보니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인데 그 대학 교수진을 보니 거의 대부분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 석사 박사 출신이었다. 그런 상황이 엘리트 사유의 미국화보다 훨씬 심각하지 않을까?

Joony / dan8922

글쓴이의 의도가 더욱 걱정스럽다.

정말 미국유학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쓴 글 같군요.
당신의 그 글이 진정 한국사회를 걱정하고 쓴 글입니까?
미국화라구요?
미국에서 공부만 하면 미국화가 된답니까?
아마도 당신은 일본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거나 아님 국내에서 박사한것에 따른 열등의식을 가진듯 하군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절반이상은 돈문제입니다. 미국만큼 박사과정을 하는 외국인에게 장학금이나 일거리(조교)를 많이 주는 나라도 없습니다. 물론 몇몇 유럽나라는 등록금이 없다곤 하지만 한국교육에서 배운 도둑질이라곤 영어밖에 없으니깐 유럽중 영국밖엔 없군요. 또한 수업방식과 수업내용이 미국만큼 잘 되있는 나라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조교도 미국나오기 전까지 3년을 했지만 석사를 하면서 배운건 아래아 한글과 엑셀밖에 없습니다. 석사가 그러한데 한국박사를 하면 5년이상을 진정 제대로된 공부란걸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국서 박사하신분은 반박하시겠지만 속으론 동감하실 겁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 미국화가 된다구요? 정 반대 입니다. 오히려 더욱더 애국자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더욱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부시가 된 이훈 더욱 그렇구요. 미국에서 배우는건 단지 학업과 관련된 것 뿐입니다.

제발 이상한 논리로 자기 밥그릇 찾고자 하는 행위좀 하지 마시지요. 교수님. 그보다 먼저 한국대학을 개혁하려 노력하시지요. 지금도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길 갈망할 것입니다.

 

 짐우 / wandong

논지의 연결이 옮겨 갔군요.

지식과 지식의 미국식으로의 편중화를 위 기사의 필자는 지적하는데,
준님은 애국자 vs. 미국화로 말씀하시는 군요.

현실적으로 미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미국화 되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자기가 아무리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서 취사 선택하고 비판해도
자기가 배운 지식을 썰 풀때는 미국대학에서 배운 것을
써 먹어야 하지 않나요?

미국이 훌륭한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박사들이 한국 가서 교수하는데, 왜 한국 교수들은
미국의 시스템 중에서 나쁜 것만 배우려 할까요?
예를 들어, 기여 입학제, 자유 사장 경제 도입....

미국은 돈 있는 자만이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인데 말이죠.
돈없으면 빚내서 공부해야 하고요. 그리고 평생 값아야 하고..
대학 졸업자중 20%정도는 10만불 이상의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

커꿈 / qedsshin

좋은 지적이십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자를 배출하기 시작한지 이제 갓 25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 수많은 학생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유학의 길을 떠나야만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고민없이 현상만보고 '미국화'라고 딱지를 붙여 버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학문을 시작하는 나라라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씩은 거쳐가야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투리 / ioanness

이게 곱씹기만 해서 될 일인가.

학문역시 일종의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여러종류의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확대해서 하나의 국가역시 여러종류의 가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란 측면은 역사적으로 학문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으로 다루어져 왔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자의 대부분은 한국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편입되고, 가치 재 생산의 패러다임이 미국식으로 변해가는 것이 인지되지도 못 할 정도로 한국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교수로 임용되는 자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 자이고, 80년대 이전에 간간히 국어로 번역되었던 대학교재는 이제 대부분이 원서라는 이름의 영어교재로 되어있고 이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진다. 프랑스에서 어렵게 공부를 해서 학위를 받은 친구는 어디서 학위를 받았냐는 질문이 이제는 부담스럽다고 한다.
누구도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새로운 용어를 국어화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판국이니 영어는 더이상 특수한 용도의 도구가 아닌 학문의 도구가 되어 버렸고 이를 조기에 습득하려고 어린나이에 언어연수또는 조기유학이 당연시되고 있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내내 영어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학창시절을 마치고서도 이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을 모순처럼 느끼지도 못한다. 한국에서 세계화아닌 미국화가 많이 진행 되어 있고 그것이 바뀌어지기엔 너무도 많이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학교가 세계에서 수백위라는 것에는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미국내 2위라는 것에는 수치가 아닌 자랑감이 된다. 논리적을 따지자면 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세계에서 미국화에 가장 성공한 대학인 것이다. 그러한 모순구조에 있는 학교임에도 서로 그 대학에 갈려고 발버둥을 친다. 미국식으로 변해 버린 언론은 미국에서 박사학위 배출대학의 2위가 서울대학이라는 사실이 한민족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논평할 능력조차 없다.
크로니클은 “미국 박사학위자의 출신 학부 중 가장 비중이 큰 대학은 버클리대이지만 두 번째로 박사를 많이 배출한 대학은 한국의 서울대”라며 “이번 조사 결과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
이라는 논평이 얼마나 조소로 들리는 지 우리들중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앨리스 / doroclistz

편협한 견해의 소산일뿐.

신문기사를 손으로 베끼는 작업을 하고 있다보면, 비문이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번 기사도 예외는 아니다. 곳곳에 비문이 등장하는데,
예컨데 몇가지 예를 들면

..그런데 우리 사회의 명문대학 출신들이 미국에서 그렇게 많이 박사를 받는다는 것은 .. (박사를 받는게 아니라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며)

..따라서 보편성의 소재지는 미국 대학과 우리 대학 간의 대화와 토론에서, 그리고 예컨대 인도의 대학과 우리 대학 사이의 교류와 논쟁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소재지가 교류와 논쟁 속에 존재한다는 표현이 어법에 맞기나 한지)

..우리와 실정이 달라도 한참 다른 사회가 우리의 준거점이 되는 지적 편식을 거듭하는 일이 된다...(글의 논조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엘리트 집단이 중심이 되어 지적 편식을 거듭한다는 얘기일 텐데.)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부분을 떠나, 미국식 학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화 추세에 대한 칼럼인의 생각은 정말 협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칼럼인은 일반 학문의 범주를 경제학의 범주와 혼동하고 있는데, 글의 뒤 부분에 이러한 논조는 더욱 명확해져서, 일괄적으로 엘리트 집단으로 칭해지던 표현이 한국의 경제 엘리트로 어느순간 바뀌어버리고 있으며,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 비율을 실례로 들며 논조를 강화해 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칼럼인이 애초에 학문이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경제학이라는 하위 범위로 주장을 상세, 심화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칼럼인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제학 학문과 현대 경제학 속에 내재한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 말로 미국식 학문을 통째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획득하는 학문이 경제학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공계학문의 비율이 만만치 않다고 본다.

또한 칼럼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러한 주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실상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재편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신자유주의 체제의 수용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몫이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폭넓게 숙고해 나아가야할 과제이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의 도입은 세계 경제의 일괄적인 흐름에서 이루어진 구조적 모순에 의한 작업의 일환이었지 우리나라 일개 앨리트 집단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수용하니 안 하니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이야 말로 편협한 견해의 소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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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1-1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김종엽 교수의 글에 대한 댓글들을 퍼왔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상태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징표로 읽어볼 만한 듯합니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대학서열체제 혁파 보고서’


‘학벌=대학서열체제’ 개념화
90여개 여론조사·통계표
‘서열’ 위력 낱낱이 드러내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대안

학벌주의 또는 학벌구조의 가공할 위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 사회에 발딛고 있는 한, 그로부터 피해 또는 이익을 취한 경험이 없을 리 없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원장 정진상)이 이를 파헤쳤다. 우선 학벌이라는 말을 ‘대학서열체제’라는 개념어로 정리했다. 각종 사회조사 자료를 총동원해 그 구조를 실증적으로 살폈다.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라는 대안까지 제기했다. 〈대학서열체제 연구-진단과 대안〉(한울 아카데미)은 이런 내용을 한 권에 담은 연구보고서다.

학벌문제에 대한 비판적 진단은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대학서열체제 연구…〉처럼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초지일관한 연구는 드물었다. 2003년 봄부터 10여명의 교수들이 ‘대학개혁 연구팀’을 만들어 매달 토론과 연구를 거듭해 왔다.

380여쪽에 담긴 90여개의 각종 여론조사·통계표는 이들의 연구가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웅변한다. 비판여론에 기대 학벌주의를 준엄하게 꾸짖는 차원을 넘어, 대학서열체제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구조를 통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이때의 대학서열체제는 “대학입시를 매개로 한국교육의 총체적 모순을 낳고 있는 주범”이다. 문제는 이 서열이 정상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한번도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서열은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보다는 외부 요인들에 의해 매겨졌고, 이에 대해 대학 구성원들은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자연적 경쟁’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문세계의 경쟁에 따르는 원리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서열체제는 “계급고착화의 구조를 은폐하는 외피”에 불과하다. 그것은 “다른 학문의 존재기반까지 무너뜨리”는 가공할 것이다. 이 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서울대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이다.

그래서 “대학서열체제 혁파는 우리 사회의 지배구조의 중요한 원리에 대한 도전”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층은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에 대해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성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대책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국립대를 통합 네트워크에 포함시키고, 학생들은 서울대가 아니라 국립대 네트워크 체제 아래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대학서열 체제에 기댄 대다수 지식인

90년대 중반부터 ‘내부자고발’ 본격화

학벌체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은 일종의 ‘내부자 고발’이다. 대다수 지식인들이 기존의 대학서열체제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및 교수사회, 학벌체제 등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적 연구와 발언이 드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련 논의는 1990년대 중반 본격화됐다. ‘서울대 폐지’를 주창한 강준만 교수(전북대)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1996)가 이 논의를 대중화시켰다. 이후 학벌주의에 대한 지식인 사회 내부의 반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경근 교수(전북대)의 <대학서열 깨기>(개마고원·1999), 김동훈 교수(국민대)의 <한국의 학벌, 또하나의 카스트인가>(책세상·2001),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장의 <학벌사회>(한길사·2004) 등이 대표적이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대표적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 www.antihakbul.org )와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 www.goodbyehakbul.org )는 각각 홍훈 교수(연세대)와 정영섭 교수(건국대)가 대표를 맡아, 학벌주의에 맞서는 지식인들의 우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정회익 한성학원 이사장(전 서울대 교수)·유팔무 교수(한림대)·김동춘 교수(성공회대) 등도 학벌주의 비판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정진상 교수(경상대)의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상은 10여년에 걸친 이들의 비판적 연구를 아우르는 하나의 결실이다. 이 구상에 대한 비판이 없진 않지만, 다분히 선동적이었던 서울대 폐지론이 교육 체제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 대안’의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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