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쓴 논문 두 편을 올립니다.

날마다 찾아왔다 그냥 가는 분들께 좀 미안해서, 없는 것보다는 나을 듯해서요.^^

두 글은 연작 논문인데, 제목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입니다. 이 중 1편은 [철학사상]이라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축약된 형태로) 발표되었고, 2편은 내년 상반기 중에 [트랜스토리아]라는 역사학 학술지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제 학위 논문의 일부로 수록될 예정입니다. 두 글이 상이한 지면에 발표되기 때문에 내용상 약간 중첩되는 곳이 있기는 한데, 여기서는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1편이야 이미 발표된 글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2편은 손볼 곳들이 있어서 그대로 올리기가 좀 창피하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 한번 읽어보시고 댓글을 좀 달아주시든가 하면 고칠 때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1편을 인용하실 때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인용하시기 바라고(19집이 올라왔는지는 모르겠군요), 2편은 아직 확정된 판본이 아니기 때문에 인용은 불허합니다.

한 가지 광고를 하자면 내년 상반기 [트랜스토리아]는 스피노자 특집호로, 제 글과 김은주 씨가 쓴 [스피노자라는 장소에서 두 현대 철학자의 마주침: 알튀세르와 들뢰즈]라는 글이 실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스피노자 연구가들인 앙드레 토젤(Andre Tosel)의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마르크스주의]와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cois Moreau)의 [운과 역사이론]이라는 글이 번역되어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제 글은 보다시피 좀 허접하지만(^^;;;),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이 수용, 변용, 해체되는 과정을 검토한 글이고, 김은주 씨의 글은 알튀세르와 들뢰즈의 철학 체계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고,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검토하고 있는 보기드문 글입니다. 토젤의 글은 마르크스에서 알튀세르에 이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지를 검토하고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글이고, 모로의 글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역사이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매우 독창적인 시도입니다. 이번 [트랜스토리아] 특집호는 국내의 스피노자 수용과 관련하여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신학정치론]에서 홉스 사회계약론의 수용과 변용: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 I





서론: 정치철학자로서 스피노자


  국내에서 스피노자는 대개 형이상학로, 곧 [윤리학]이라는 대표작으로 집약되는 방대한 형이상학적인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로 간주된다. [윤리학]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이 저서가 이후 철학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한 배타적 관심 때문에 그의 철학의 다른 부분들이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이는 특히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대해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그가 남긴 매우 적은 수의 저작들 중에서 정치학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남겼지만, 사람들은 대개 그가 정치학에 관한 저작들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에 관한 그의 저작들이 그의 체계에서 부차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거나 그의 다른 저작, 특히 [윤리학]에 대해 매우 종속적이고 파생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면 이러한 무관심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그의 정치학 저술은 본질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스피노자 정치학에 관한 연구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어떤 의미에서든 정당한 태도로 평가하기 어렵다. 

  사실 지난 1960년대 이후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스피노자 연구1)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에 관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이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외재적이거나 부수적인 논의가 아니라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스피노자에서 개인과 공동체](Matheron 1969) 이후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나 프랑스의 에티엔 발리바르, 앙드레 토젤André Tosel,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çois Moreau, 로랑 보베Laurent Bové, 샤를르 라몽Charles Ramond 또는 미국의 리 라이스Lee C. Rice 같은 연구자들은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통해 스피노자 정치철학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켜주었다. 뿐만 아니라 루이 알튀세르나 질 들뢰즈, 또는 발리바르나 네그리 같은 철학자들은 독창적인 작업을 바탕으로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이 비단 철학사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새롭게 사고하는 데도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작들, 곧 [신학정치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1670)과 [정치론Tractatus Politicus](1676-77)에 대한 연구는 국내 철학계가 하루빨리 메워야 할 중요한 공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우리가 이 글에서 특별히 다뤄보려고 하는 것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이 수용되고 변용되고 해체되는 양상들에 대한 검토이다.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술들에 관해 제기되는 주요한 질문들 중 하나는 두 저작이 보여주는 명시적인 차이에 관한 것이다2). 그 동안 여러 주석가들이 이 점을 지적해왔는데, 예컨대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까지 한다. “스피노자의 죽음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은 [정치론]과 [신학정치론] 사이에는 몇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가 변화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Balibar 1997a, p. 63) 실제로 두 저작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신학정치론]은 당대의 네덜란드 정세에서 오란여Willem d'Orange 공(公)을 중심으로 한 군주정의 지지자들과 칼뱅주의 신학자들의 공모에 맞서 드 비트de Witt 형제를 중심으로 한 공화파의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고 이를 내재적으로 교정하기 위한 목적에 따라 저술되었다. 따라서 [신학정치론]은 엄밀한 의미의 연역적 질서에 따르기보다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 사례들(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사, 특히 히브리 국가의 역사)이나 실천적 효용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반면 [정치론]은 [윤리학]처럼 엄격한 연역적 질서에 따라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인간 본성 및 자연권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국가의 본성에 대한 논의, 군주정과 귀족정, 민주정 같은 정체들의 유형에 관한 상세한 논의들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하지만 두 저작의 중요한 이론적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계약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신학정치론], 특히 16장 이하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정치학에 관한 논의들은 명시적으로 사회계약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차용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 [정치론]에서는 사회계약론의 문제설정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정치론]에서 계약contractus이라는 용어가 단 한 차례만 사용되고 있고(TP 4장 6절)3) 22번 사용되고 있는 “양도하다transfero”라는 단어(TP 3장 3절; 4장 6절; 6장 8절, 14절; 7장 2절, 5절, 9절, 14절, 17절, 23절, 26절; 8장 3절, 17절) 역시 사회계약론과는 달리 국가의 창설이나 설립이라는 의미로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다.4)   

  사회계약론의 부재와 현존 여부가 두 저작의 이론적 차이점을 측정하기 위한 주요 기준이 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회계약론은 주지하다시피 그로티우스와 홉스에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현대에 이르러 존 롤즈 등에 의해 복권되기까지 근대 정치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모체 중 하나로 기능해왔다5). 따라서 사회계약론이 [신학정치론]에는 현존하는 반면, [정치론]에는 부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근대 정치철학, 특히 자유주의 전통의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스피노자가 어떤 위치에 있고 또 스피노자가 이러한 사상 노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었는지 평가해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피노자가 홉스의 정치철학을 수용, 변용하고 해체하는 양상에 관한 문제다. 스피노자 당대의 네덜란드 지식인들, 특히 반(反)칼뱅주의와 반(反)군주정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드 비트 형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홉스의 정치철학은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저작들은 네덜란드로 신속히 소개되고 널리 논의되었다6). 스피노자 역시 홉스의 정치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정치철학의 상당 부분은 홉스의 정치철학을 수용하고 이를 내재적으로 교정하려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Lazzeri 1998을 참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홉스가 이론적으로 발명해낸 사회계약론을,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에서는 (비록 비판적으로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명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가, 몇년 뒤 [정치론]에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이론적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사회계약론의 존재 유무에 관한 문제는 자유주의 정치철학 전통에 대한, 또는 홉스의 정치철학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정치철학, 더 나아가 그의 철학 전체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한 가지 기준을 제공해준다. 사실 마트롱 같은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진화/발전évolu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Matheron 1990), 네그리 역시 [정치론]에서 스피노자의 정치학 및 그의 철학 체계 전체의 이론적 기획(그가 ‘구성constitution’의 기획이라고 부르는)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평가한다(Negri 1990; 1994 참조). 그리고 그밖의 많은 연구자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으로 나아가는 시간적 과정에서 스피노자의 정치학과 철학이 좀더 정련되고 성숙해졌다는 데 대해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이 몇년의 기간 동안 중요한 이론적 변화 및 발전을 이룩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치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7)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수용되고 변용되는 양상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1) 홉스 사회계약론의 요소들을 살펴볼 생각인데, 특히 그의 자연상태 개념과 계약의 절차, 그리고 권위부여하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권적 권력의 구성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그의 계약론은 인공주의 또는 ‘법률주의juridisme’(Terrel 1994; 2001을 참조)에 기초하고 있고, 이러한 인공주의의 이론적 목표(중 하나)는 대중들multitudo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데 있다는 점이 해명될 것이다. (2) 그 다음 우리는 󰡔신학정치론󰡕에서 제시되고 있는 계약론의 형식이 홉스의 계약론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이 논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텐데, 우선 [신학정치론] 16장에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사회계약론이 홉스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생각이다. 이 논의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3) 하지만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왜 스피노자가 홉스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학정치론]에서 사회계약론의 틀을 채택하고 있는지 제대로 해명이 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17-18장에 나타나는 히브리 신정국가에 대한 스피노자의 분석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스피노자에게 계약은 정치적 계약과 종교적 계약의 이중적 형식을 띠고 있고, 그의 계약론은 국가의 원초적 토대에 관한 허구적 계약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계약에 관한 것임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이처럼 홉스의 계약론을 변형함으로써 보여주려는 것은 법적 제도화의 조건으로서 대중들을 규율하는 문제임이 해명될 것이다.

 

1)

 1960년대 이후 인간학과 정치철학을 비롯한 스피노자 연구 동향에 관해서는 진태원 2001, 2004를 각각 참조.

2)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에 나타난 스피노자 정치학에 관한 전반적인 고찰로는 Balibar(2004)(스피노자 정치학 전반 및 물티투도 개념에 관한 문헌학적․분석적 연구) 및 Den Uyl(1984)(스피노자 정치학 전반에 관한 개론서); Lazzeri(1998)(홉스 정치철학과 치밀하게 비교하면서 스피노자 정치철학을 소개); Tosel(2000)(스피노자 정치철학을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의 흐름과 비교, 검토)을 참조. 그리고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의 이론적 차이점에 관한 논의로는 Matheron(1969), pp. 307-330; Matheron(1990); Negri(1990); Moreau(2003); Balibar(2004) 1부 2-3장 등을 참조하라.

3)

 지금부터 스피노자의 저작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약어들을 사용하겠다.

󰡔신학정치론󰡕 → TTP 예) 󰡔신학정치론󰡕 16장 2절 → TTP 16장 2절

󰡔정치론󰡕 → TP 예) 󰡔정치론󰡕 4장 6절 → TP 4장 6절

󰡔윤리학󰡕 → E. 정의(D) 공리(A) 정리(P) 증명(d) 따름정리(c) 주석(s) 보조정리(l)

예) 󰡔윤리학󰡕 4부 정리 37의 주석 1 → E IV P37s2

아울러 스피노자의 고증본 전집(Spinoza 1925)은 G라는 약어 아래, 권수는 로마자로, 쪽수는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하겠다. 󰡔신학정치론󰡕의 경우는 1999년 출간된 새로운 고증본 전집(Spinoza 1999)을 사용할 것이며, 인용의 경우는 “모로판”이라는 약어 다음에 쪽수를 표시하겠다.

홉스의 저작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어들을 사용하겠다.

󰡔법의 요소들󰡕 → EL 예) 󰡔법의 요소들󰡕 → 15장 8-9절 → EL 15장 8-9절

󰡔시민론󰡕 → DC 예) 󰡔시민론󰡕 5장 11절 → DC 5장 11절

󰡔리바이어던󰡕 → L 예) 󰡔리바이어던󰡕 17장 4절 → L 17장 4절

필요한 경우, 각 저서의 쪽수를 표시해두었는데, 우리가 사용한 홉스 저서에 관해서는 논문 끝에 붙여둔 참고문헌을 보라. 

4)

 스피노자 철학의 어휘들의 빈도와 용법에 관한 표준적인 참고문헌으로는 Giancotti 1970을 참조하고, 특히 사회계약론의 문제와 관련하여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의 어법상의 차이에 관해서는 Matheron 1990을 참조.

5)

 사회계약론의 역사에 대한 좋은 논의로는 특히 Terrel(2001)을 참조. 그 외에 Gough 1936; Boucher & Kelly 1994 등도 참조할 만하다.

6)

 이에 관해서는 특히 Petry 1984; Secretan 1987을 참조. 이들에게 홉스의 이론은 주권의 분할 불가능성과 절대성에 관한(따라서 종교를 감독할 권리를 국가에게 부여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이었다.

7)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Balibar 1985, 1997a, 1997b/발리바르 2004; Curley 1995; Den Uyl 1984; Lazzeri 1998; Matheon 1969, 1990; Moreau 1994, 2003; Ueno 1991 등을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영미권 연구자들 중 일부는 󰡔신학정치론󰡕과 󰡔정치론󰡕 사이의 이론적 차이점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리 라이스와 스티븐 바본의 개별 연구 및 공동 연구에서 잘 나타난다(Rice 1990; Rice & Barbone 2000). 이들에 따르면 두 저작 사이에는 어떠한 이론적 단절도 존재하지 않으며, 두 저작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서술이나 언어의 변화”(Rice & Barbone 2000, p. 20)에 불과하다. 이들은 Matheron(1969; 1990)이나 Balibar(1988; 1997), Negri(1994), Feuer(1958), 또는 Tosel(2000)과 같은 많은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주장과 달리 계약론의 현존과 부재 여부 역시 두 저작 사이의 차이점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학정치론󰡕 17장에 보고되어 있는 모세와 히브리인들 사이의 추정상의 계약, 합의는 계약이 아니라 공포에 기초하고 있는 대중의 반응일 뿐”이며, 따라서 “두 저작 사이의 변화는 앞의 저작이 실제로 일종의 사회계약을 다루고 있다는 데 있지 않고, 단지 계약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같은 글, pp. 22-23)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처럼 두 저작 사이의 차이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첫째, 이들은 󰡔신학정치론󰡕에서 모세의 사회계약에 관한 논의가 수행하는 이론적 기능에 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신학정치론󰡕 이후 스피노자의 정서론의 발전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두 저작 사이의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서 대중들 및 대중들의 역량이라는 개념의 현존과 부재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주목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이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 및 특히 스피노자 정치학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에서 비롯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컬리나 덴 우얼 같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공유하는 다른 해석가들에 대해 제시하는 비판은, 실제로는 매우 사소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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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4-12-22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긴 글이, 그것도 여럿으로 나뉘어서 주르륵 올라온 걸 보니 압박이 느껴지는군요; 당장은 좀 졸립고 할 일도 있고 해서 그 가운데 서문만 읽고 말았지만, 그 서문이 상당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조만간 끝까지 읽어볼 참입니다. =) 철학에 대해서라면 99% 문외한인지라(나머지 1%는 물론 허영이지요)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흐흐.



내용에 관해서는 물론 제가 왈가왈부할 입장이 못 되고(다 읽지도 않았으니..), 굳이 지적하자면 다소 어색한 문장들이 눈에 띄네요. 가령 "이는 특히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대해 사실이다" 같은 문장은 비문은 아니지만 번역체 같고, "스피노자는 그가 남긴 매우 적은 수의 저작들 중에서 정치학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남겼지만" 같은 말도 어색하네요. 이런 부분들을 좀 살펴보시면 좋을 듯.. 그저 지나가다가 하는 소리니 너무 괘념치는 마시고요. -.- (왠지 민망)



건강하세요

urblue 2004-12-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안 보이셔서 바쁘신가 했습니다.

논문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읽어보렵니다. ^^;;

가을산 2004-12-2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퍼갑니다.

balmas 2004-12-2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모모님, 너무 콕 집어서 말씀하시는 거 아녜요?^^

그렇잖아도 문장들이 좀 찜찜했는데 바로 지적해주셔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이게 다 80년대 사회과학 번역본들을 탐독한 탓이라니까요.^^;;;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지적하신 부분은 발표한 논문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라는 점이군요(ㅋ).

블루님, 가을산님, 전문적이지만 별로 볼품없는 글에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MANN 2004-12-2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선생님 논문이네요 +_+ 일단 서문만 읽었는데... 퍼 갈게요 ^^;

비로그인 2004-12-2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퍼갑니다. [안톤 라이저] 읽다가 보니, 칼 필립 모리츠가 레싱을 읽고 스피노자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는 주석이 나오더라구요. ㅎㅎ

balmas 2004-12-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싱은 독일 관념론의 스피노자 수용에 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죠.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인리히 야코비와 모제스 멘델스존의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는데,

[안톤 라이저]에도 그 반향이 미쳤나 보군요.^^

비로그인 2005-02-1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철학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글 두편을 퍼갑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05-02-1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인 듯한데, 반갑습니다.^^
공부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다행입니다. 사실은 두 글 모두 손을 좀더 봐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신들의 고향

神들의 故鄕

의 기획연재입니다.
이 연재는 제주의 유력 일간지인 제민일보에 1994년 6월 2일부터 1996년 1월 3일까지 매주 수요일 총 75회에 걸쳐 동일 제목으로 호평리에 연재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전문지식도 없는 이 취급하기에는 벅찬감이 있었지만 이를 직접 기고한 제민일보의 高大卿기자께서 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高大卿기자께서는 이미 제민일보 연재가 끝났음에도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수년에 걸친 조사ㆍ연구의 결정을 에 아낌없이 제공하여 주신 선처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민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연재하도록 하겠으며 '미니해설'도 물론 高大卿기자가 쓰신 원문의 내용 그대로이며 매회마다 본문과 함께 게재된 김재경 서양화가의 그림도 함께 올립니다.
다만, 주제의 성격상 한자를 완전 배제하기가 어려워 본문에서 사용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고 괄호안에 원문의 한자를 표기하였으나 Mac o/s Hangul 7.1에 초과되는 한자는 부득히 괄호안에 한글로 남겨두었습니다.


【제민일보 高大卿기자】


「神들의 고향」출간!


【제민일보 편집자주】
제주도의 민속은 이 작은 섬이 갖고 있는 보배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민간신앙은 아직도 많은 도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있는 산 신앙이며 이에 따른 신화도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여느 다른 나라나 지역의 민속 못지않게 풍요로운 제주도신화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神들은 살아있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점화차 강림한 설문대할망]
"제주의 神들은 神話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도 제주도민과 함께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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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우맘 > 국보법 폐지-연우도 맞짱!



20년 후의 연우야, 미안. 네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가 생각하는 좋은 일에 네 얼굴을 팔았다.
엄마가 정치경제쪽엔 좀 약해서, 제대로 된 논거를 들어가며 왜 폐지해야 하는지를 설명 못하겠지만....엄마 생각엔 그래. 국보법은, 나라를 지키는 데 보다는 권력을 지키는 데 너무 많이 악용된 것 같아. 애꿎은 빨갱이로 몰려서 다치고 아픈 사람이 그리 많다면, 그 취지가 아무리 그럴듯하다 해도, 이건 뭔가 잘못된 일 아니겠니? 나중에 울 예진이 연우가 자라서 살아갈 세상엔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그런 법은 없었으면 좋겠다.

연우, 너도, 나중에 동의해 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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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조선인님 힘내세요!



저는 정치 얘기 가급적이면 안하려는 주의지만요.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 사람을 억압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면 그 법의 폐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보안법뿐 아니라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다른 사안들도요.

이것은 오늘도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조선인님 옆지기분과 조선인님, 마로를 위해 제가 쓴 글입니다.

힘 내세요!!! 반드시 태양은 떠오르는 법이니까요. 우리도 진짜 좋은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자구요.

그리고 정치인들, 당신들 세비 주는 거 진짜 아깝다. 일 좀 해라. 반말한다고? 그럼 내가 존댓말하게 생겼냐...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모든 악법들의 철폐를 위해 이렇게 애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탭니다. 마음만 보태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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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국보법폐지 맞짱>수구세력의 비상금 역할을 해온 국보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자는 동안 여의도 들머리 천막농성장 모형감옥 안에서 43일째 국보법 폐지를 위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친구 조선인님의 옆지기, 마로의 아빠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뭡니까? 반국가활동을 규제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제정했다는 법입니다. 그런데 지난 56년간 국보법은 우리 민족의 숨통을 쥐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더 오래도록 지키기 위해 혈안된 수구세력의 비상금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통일이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걸핏하면 들고 나와 선량한 국민들을 협박하고 호도해 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국가보안법은 '정권안보법'에 다름 아니었지요.

오늘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안 재상정을 강행하기로 했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다가 그나마 의지를 천명해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는 18일 토요일엔 국가보안법 철폐를 간절히 원하는 범국민촛불대행진이 광화문에서 열릴 예정이고요.

우리나라의 통일을 저지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합니다. 마로의 아빠가 하루빨리 조선인님과 마로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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