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운아]를 조금씩 읽다 보니까 <지적 차이>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이 있어, 두고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몇 쪽의 내용을 옮겨 적습니다.


 



106쪽


영국인이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많은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청교도주의나 소극적인 국민성 등으로 이를 설명하곤 한다. 그런 설명은 더 심각한 사태를 가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노동계급이나 중산계급에 속[107쪽]한 사람들 중에는 전반적인 문화적 황폐하의 결과로 말주변이 없게 되어 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들의 사고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했다.




그들은 경험을 보다 분명히 밝혀 줄 말을 찾을 때 참고할 수 있는 그런 예들을 갖고 있지 않다. 속담의 형태로 구전되던 전통들은 오래 전에 파괴되어버렸고, 또한 엄격히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문맹이 아니라고 해도, 글로 남겨진 문화적 유산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일반적 문화라 함은 거기에 비춰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적어도 자신의 모습 중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훨씬 적게 가지는 셈이다. 그들의 경험 중 많은 부분―특히 감정적이거나 내재적인 경험들―은 그들 자신에게 ‘이름지을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결국 그들의 주된 자기표현 방식은 행위를 통한 것이다. 이것이 영국 사람들이 ‘직접 해보기(DIY)’ 취미에 그렇게 많이 매달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때 정원이나 작업대는 만족스러운 자기반성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무엇이 된다.




가장 쉬운―그리고 가끔은 유일하게 가능한―대화의 형식은 행위와 관련된 혹은 행위를 묘사하는 대화이다. 말하자면 행위가 하나의 기술이나 과정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때 이야기되는 것은 말하는 이의 경험이 아니라 완전히 외적인 메커니즘 혹은 사태―자동차의 엔전이라든지, 축구 경기, 배수로 혹은 위원회의 운영 등―다. 이런 주제들, 개인적인 부분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는 이런 주제들이 오늘날 영국에서 스물다섯 살 이상 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화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더 어린 사람들의 경우[108쪽]에는 그들 자신의 욕망이 가지는 힘 덕택에 이러한 탈인격화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는 따뜻함이 있고, 거기서 우정이 생겨나 계속 유지될 수도 있다. 대화의 주제 자체가 가지는 복잡함 덕택에 대화자들이 가까워질 수 있다. 마치 대화자들이 주제 자체의 아주 작은 세부에까지 철저히 살피기 위해 서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 과정에서 손을 마주잡는 것만 같다. 그들이 교환하는 전문가적인 의견이 곧 공통의 경험을 상징하게 된다. 이미 죽어 버렸거나 지금 함께 하지 않는 친구를 생각할 때, 남은 친구들은 항상 전륜구동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던 그 친구의 설명을 생각한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그 설명은 이제 그들 사이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사샬이 활동하는 지역은 영국 내에서도 문화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황폐화한 지역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가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에 어울릴 수 있게 된 것도 순전히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만의 기술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사샬과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나머지 공통경험에 대한 메타포가 될 수 있을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게 되었다.




사샬은 그 메타포가 그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 공통의 언어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그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나 숲 사람들 사이에서 사샬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부끄러워하거나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마을 전체가 이해하지 않으려 하거나 이해 못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이해를 해줄 것이다.(임신한 미혼모들은 대부분 아무런 스스럼없이 사샬에게 와서 직접 그 사실을 말한다.) 그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있다면, 의사에 대한 전통적인 두려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몇몇 노인들뿐이다. ...




109쪽


일반적으로 사샬의 환자들은 그가 자신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외부로부터의 관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지역에서 외부로부터의 관심은 은연중의 착취를 암시한다. 그는 신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동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렇게 대접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사샬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누구도 그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특권까지가 지금 모습 그대로의 의사로서 그의 일부분이다. 그 특권이 사샬의 수입이나 타고 다니는 차, 혹은 살고 있는 집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제공되는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편의를 통해 사샬이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특권으로 여겨질 문제는 아니다. 그에게 그만큼의 안락함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가 특권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방식 때문이다! ...




110쪽


마을 사람들이 사샬을 특권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그의 생각이 대단히 인상적이어서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자신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 자신들의 상식에 의존하는 데 반해, 그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상식은 실용적인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만 실용적이다. 상식은 자신에게 먹이를 내미는 손을 깨물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더 좋은 먹이를 먹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까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식은 수동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가능한 것’에 대한 구태의연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상식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무지한 상태로 내버려졌던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일부다. 이 이데올로기는 여기저기서 취합한 것들로 구성된다. 아직 살아남은 종교적인 요소가 있는가 하면, 경험적 지식에서 나온 것, 방어적인 염세주의에서 나온 것, 그리고 현재 제공되고 있는 피상적인 교육을 쉽게 하기 위해 취사선택된 것들이 있다. 요점은 무엇인가 하면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결핍되어 있던 기본적인 교육이 회복되는 바로 그 순간, 모든 상식적 생각들은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상식의 기능 전체가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상식은 탐구하려는 정신, 즉 철학과 구별되는 한에서만 하나의 범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




116쪽


마을 사람들이 사샬의 생각하는 방식을 특권으로 느끼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이유라고 하기에는 좀 합리적이지가 못하다. 한때는 마법적인 권위로 여겨졌던 그런 권위, 그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모든 충동들이 자연스럽다고, 혹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 준다. 또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를 기억한다.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 조금도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꿈과 악몽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흥분을 참지 못할 때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를 ― 핑계가 아니라 ― 이[117쪽]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사샬의 능력 때문에, 그는 상식 안에서는 무시되거나 거부되어야만 했던 경험들과 연결된다. 이러한 ‘면허’가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안에 들어 있는 갇힌 자아에게 도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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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6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12-1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고마워요, 숨어계신 님.^^
 



 

해외의 출판 진흥 정책 사례_ 도서구입비 지원에 각종 면세는 기본


2004년 12월 03일   최철규 기자 이메일 보내기







학술출판이 활성화된 주요 국가들은 도서관 장서 구입 지원과 출판에 대한 재정 지원, 세제 감면 제도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화원을 중심으로 도서와 저작권의 해외 수출 촉진에 주력하고 있는 영국도 국내적으로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도서구입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함과 동시에 도서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있다.


도서관 도서 보상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호주는 이와는 별도로 호주교육기관이 선정한 도서목록에 있는 도서를 학생에게 8%할인하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소매서점은 할인된 금액을 정부에 지원금 형태로 청구하는데, 이 교재에 대한 정부의 4년간 지원금은 총 1억1천7백만 달러에 달한다.


캐나다 역시, 도서출판업계 발전 프로그램에 2천만 캐나다 달러, 출판유통 지원 프로그램에 2천만 캐나다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또한 퀘백주는 자체적으로 공공도서관 지원 프로그램에 2천3백만 캐나다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는 문화부 산하 ‘도서 및 독서국’을 주무부서로 하여, ‘국립도서기금’과 ‘국립도서센터’를 통해 도서 및 독서국 사업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번역에서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도서 수출에 관여된 모든 부분을 획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내도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도서에 대해 출판전문위원회의 추천과 문화관광부의 승인절차를 거쳐 30~70%의 번역료를 지원하며,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프랑스 도서를 판매하는 업자에게 국적을 불문하고 해당 서점을 재정지원하고 경영인 및 직원을 위한 전문교육프로그램도 문화부가 담당하고 있다. 또한 매년 출판조합에 수출보험을 체결해주고 도서수출 업자에게 150일간 유통자본의 50%까지 지원한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콜롬비아도 교육부를 통해 출판된 모든 도서에 대하여 일정 부수를 일괄 구매하고 있다. 또한 출판사의 소득세를 전액 면제하고 저작권료와 번역료에 면세 혜택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서와 잡지 출판에 소요되는 제지의 수입, 도서잡지의 수출입에 관세 및 수수료가 전액 면제된다.


이 밖에 독일은 일반 상품(15%)의 절반 규모로 도서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정하고 있으며, 아일랜드는 도서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아예 없다. 일반상품과 신문잡지에 각각 21%와 12.5%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것과 대조적인데, 출판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배려를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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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출판지원 균형 맞춰야…도서관에 과감한 국가투자 시급

기획진단_학술출판의 발전을 모색한다: ③ 학술출판지원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2004년 12월 04일   최철규 기자 이메일 보내기







학술출판의 중요성에 대한 국가적 인식은 보편적이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학술출판 진흥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형태는 인식의 정도와 활용가능한 정책 자원의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대학도서관을 비롯한 도서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현황과 요구되는 과제를 살펴보았다.<편집자 주>


촘스키, 홉스봄, 뮈르달 등 세계적 학자를 키운 출판기획자 앙드레 쉬프랭은 얼마전 방한해 학술출판에 대한 정부지원의 중요성을 적극 거론했다. 학술출판 유지는 국가개입 없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학술서가 지식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체이며, 이에 기반해서 한 사회의 전체 문화가 형성, 보존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학술출판이 시장의 경쟁과 도태 원칙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지 않도록 다양한 진흥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연간 6천1백만 파운드를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로 지원하고 있으며, 호주도 도서관에 비치되는 교육 목적의 도서 저작자 또는 출판사에게 4년간 3천8백만 달러를 투입하는 ‘도서대여권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모든 신간학술 도서를 구입하게 하는 제도는 책값의 절반을 받고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각각 2권씩 납본하는 ‘납본 보상금 제도’가 유일하다. 이것은 양 도서관의 유지를 위한 출판계의 자발적 협조이지, 지원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한국은 국가가 직접적으로 도서를 선정하여 출판을 지원하는 독특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수도서지원, 학술진흥예산의 2.5%에 불과


현재 문화관광부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추천/우수 도서제나 국내외 번역 활동 지원을 통해 학술출판에 연간 1백억원 정도의 금액이 지원된다. 이 밖에도 언론, 사회복지, 다산학 등의 특수 분야 저술/번역 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민간 재단들이 연구비와 출판 지원 형태로 학술 저술과 번역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2003년 한 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과 한국과학재단(이하 과학재단)이 대학 중심의 연구 활동 진작을 위해 투입한 총 예산은 6천1백46억5천9백만원임에 반해, 문광부와 대한민국학술원이 우수도서 출판지원에 투입한 금액은 75억원으로, 학진과 과학재단 통합 예산의 1.2%에 불과하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2003년 한 해에 정부가 연구개발 부분에 들인 예산(5조2천6백78억원)비교하면 정부의 학술출판 진흥책은 그야말로 ‘껌값’이다.







물론 연구지원이 학술서로 연결되는 시스템이란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결과물들을 관리하는 체계가 빈약하다. 외부 접근도가 지극히 낮을뿐더러, 책으로 출판돼 나와도 금방 절판되기 일쑤며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안정적인 연구와 학술출판에 대한 비판적 수용메카니즘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개발 중심의 지원책은 문제가 많다.


중요한 것은 예산증액이 아니다. 이제 학계와 출판계 및 관련 전문가들은 예산의 적절한 배정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은 “도서관이나 연구소 등의 공공 인프라를 더 구축한다면 학술출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용준 대진대 교수(출판학)도 “출판시장의 위기로 나타난 사회의 지적 자원의 고갈 문제들은 도서관 구입 확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극복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기관 수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서관 현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도서관 운영 예산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으나, 도서구입비는 요지부동이거나 하락세다. 책을 싸게 구입하려 하거나, 책구입비를 시스템 전산화 및 전자저널에 투입하고 있다. 일부 도서관들은 ‘책은 공짜’라는 인식에 젖어 있기도 하다.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대표이사는 “영세 도서관의 경우, 도서를 기증해 달라는 공문을 심심찮게 보낸다”라고 말한다. 유명 저자들에게는 직접 도서 기증을 요청하기도 한다. 국가가 도서관 관리에 신경쓰지 않으니, 도서관이 마치 시민운동단체 같은 ‘공공성’을 내세운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 학술출판의 가장 큰 소비자라 할 수 있는 대학도서관의 현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국립대학 예산이 평균 12.4% 인상된 반면, 대학도서관 예산 및 도서구입비는 평균 7.7%의 증액에 그치고 있다. 한국 대학 중 가장 많은 도서관 운영비를 책정하는 서울대(65억 9천만원)도 일본 게이오대(3백3억원)의 1/5에 불과하다.


학술에 무감각한 도서관 장서체제


게다가 전자도서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도서구입예산에서 학술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허남진 서울대 도서관장은 “현재 전체 도서구입비에서 국내외 단행본이 25%를 차지하고 해외 전자저널 구입이 나머지를 차지한다”라고 말하는데, 대부분의 대학도서관들이 해외 전자저널 구입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갈 계획이다.


해외 전자저널을 통해 최신의 학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전자 저널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해외 전자저널의 편의성과 필요성 만큼,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기초환경 조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학자들이 잊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도서구입예산의 증액보다는 예산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학술서 구입에 대한 대학도서관 측의 전략도 문제다. 전문 사서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도서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출판사나 저자의 인지도, 제본 상태 등의 외형적 요소만으로 도서를 선정하거나 신문 광고나 베스트셀러 목록 위주로 도서를 식별한다. 이런 조건은 도서관이 학술서에 대한 적정 포션을 유지할 수 없게 하고, 그럼으로써 학생과 교수를 위한 ‘건강한 식단’은 물건너 가게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방 A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들이 도서관 장서에 아예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단편적 사실만 끌어모아 논문을 작성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열심히 책을 보면서 연구하겠는가”라고 꼬집는다.


학술도서 구입 전략의 부재는 도서 납품 시스템과도 긴밀히 맞물려 있다. 현재 많은 도서관들이 자체 제시하는 할인율을 기준으로 유통대행 업체나 대형 서점을 통해 도서를 납품받고 있다. 이건 오랜 관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점들이 출판사에게 도서관 납품용이라며 50%에 책을 넘기라고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경북대 서종문 도서관장은 “일부 서점들이 마진이 약한 학술서를 목록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아 심사체계의 확충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부 대학도서관에는 연말에 남은 예산을 저가의 통속 소설 구입으로 소진하는 관행적 악습이 남아있다.


도서관 납품을 둘러싼 이러한 악습들은 기본적으로 대학도서관이 현재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의 예외조항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고경대 출판인회의 사무국장은 “출판의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대학도서관에게 법적으로 할인을 허용한 정부의 출판문화인식이 한심하다. 도서관 납품 과정에서 유통업체간의 할인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규모 학술 출판사의 몫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규모만의 문제일까. 대형출판사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장서의 질로 대학 평가해야


도서관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신간 학술 도서 일체를 구입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도서관 도서 보상금제’는 학술출판 활성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우선적으로 4백62개의 공공도서관만을 대상으로 해도 저자와 출판사로서는 최소 4백62부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김정숙 백제예술대 교수(출판학)는 “한국의 공공도서관 수가 미국의 1/45, 유럽의 1/10에 불과하니, 다른 나라의 도서관 도서 보상금제 예산보다 아주 적은 예산으로도 운영 가능하고, 학술진흥에 배정된 예산 쓰임새의 효율적 조정만으로도 가능하다”라고 지적한다.


한 해 연구개발예산의 10%인 5천2백67억원이 학술출판 진흥 기금으로 활용되는 과감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이러한 도서 보상금제는 어렵지 않게 추진될 수 있다. 또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논문을 양산하는 것에 그치는 현재의 학술지원 체제의 귀퉁이를 약간 허물어 저술 중심의 사후평가지원 체제에 투입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연구 결과물의 출판을 의무화하고 국가가 이를 구매해주는 체제가 되면, 학계에 만연한 단편적 연구 업적 쌓기 관행도 수그러들 수 있는데, 결국 이 모든 게 연결돼 성찰될 문제다.


대학 도서관의 경우, 학술서 구입을 의무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국가가 대학지원금 중 대학도서관 장서 비용을 구체적으로 정해 지원하고 이를 대학평가 항목으로 적극 반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교육 여건과 관련해 학생당 도서 자료 구입비가 대학 평가 항목으로 주로 인용되고 있을 뿐, 장서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나 방법이 부재하다.


물론 학술출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대학, 학계, 출판계, 도서관계가 의견을 모아 제출해야 한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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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2-05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사는 추천 팍팍해야지^^
근데 앙드레 쉬프랭은 어떻게 세계적 학자들을 팍팍 키웠대나요?

balmas 2004-12-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ㅋ

앙드레 쉬프랭이 어떻게 "팍팍" 키웠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남자 보모인가???(^^)

모모 2004-12-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쉬프랭이 쓴 <열정의 편집>이라는 책이 나왔으니 참고하면 좋을 거 같아요. 저도 아직 못 읽어보았지만, 기사를 보니까 재밌어 보이더군요.

릴케 현상 2004-12-0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서평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balmas 2004-12-06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런 책이 있었군요.^^;

무식하기는 ... ㅋ
 


 


“저항적 민족주의 위기에 처했다”



















△ 일제 때부터 존재한 간도에대한 우리민족의 고토회복의식을 일제는 만주지배에 역이용했고, 상당수의 조선인이 협력했다. 되살아난 간도영유권논란은 최근 민족주의논쟁의 복잡한 양상을 상징한다. 사진은 간도에 설치한 일제백초구분관경찰서의 조선인 경찰관들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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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주의는 요즘 동네북이다. 어느새 구시대적 패러다임으로 낙인찍혔다. 대신 탈민족주의·초민족주의가 기세등등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논리가 ‘실증적 엄밀함’을 무기삼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위기에 처한 것은 민족주의 전체가 아니라 저항적 민족주의다. ‘기억의 정치’와 ‘민족주의 과잉’을 비판하는 목소리의 뒤에는 ‘그들의 기억’에 의한 역사 재구성의 정치기획이 숨어있다. 희극이자 비극인 것은 그 와중에 탈민족주의가 슬그머니 팽창적 민족주의와 손을 잡는다는 점이다. 민족주의 논쟁의 현주소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 전우용 서울시립대 연구위원 ‘역사비평’서 비판

    역사는 기억과 기록의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 주체’의 문제가 핵심적이다. 누구의 기억인가, 누가 그 기억을 오늘에 불러냈는가, 누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가 등의 갈래를 잡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첫 장이다.

    최근 민족주의 논쟁이 이 문제를 교묘히 은폐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 소장 역사학자가 있다. 전우용(사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역사비평> 겨울호 시론에서 탈민족주의와 팽창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보수 지식인과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보수언론을 동시에 비판했다. 의제설정을 언론이 도맡아 하는 한국에서 민족주의 논쟁의 ‘언론­지식­정치 메커니즘’을 꿰뚫어본 글이다.


    ‘보수언론의 팽창적 민족주의가
    탈민족주의를 원하고,
    탈민족주의자들은
    팽창적 민족주의를 눈감아줘‥


    그는 먼저 ‘기억의 경계’에 대해 설명한다. “일제에 대한 집단적 체험의 기억은 민족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가상의 기억이 결코 아니”며, 이는 “민족을 경계삼아 이뤄진 학대·차별·수탈에서 형성된 집단적 기억”이다. “민족의 ‘경계 밖’에 있었던 자들은 결코 공유할 수 없었던 기억”이기도 하다.







    친일세력, 나아가 군사독재세력 및 수혜자들은 피해자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할 수 없다. 심지어 그런 기억은 기록과 수치를 통해서도 증명되지 않는다. 독재시절 고문 사건은 가해자의 주장과 피해자의 진술 외에 문서상의 증거가 없다. 이를 유일한 자료로 받아들일 경우, 이는 ‘가공됐거나 기껏해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에 불과하다. “고문은 했지만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는 식의 가해자의 고백조차도 “책임의 한계를 고문경찰 내부에 국한”시킬 뿐이다. 이런 식의 역사접근은 모든 판단을 유보시키고 오직 ‘어쩔 수 없이 나약했던 개인’만 남긴다.

    이는 ‘계량의 함정’으로 이어진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조선인과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언제나 특수한 소수다.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은 일제 시대에도 신문물에 열광했고, 군사독재시절에도 청바지와 통기타에 열중했다. 이를 새로운 역사적 사실인양 강조하는 학자들은 “민족주의라는 색안경때문에 민족문제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인식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 위원은 푸코의 ‘인위적 경계짓기’라는 개념을 통해 평균적 다수의 신화를 뒤엎는다. 감옥은 다수를 가둬서 감옥 밖 사회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금기의 영역 밖에 서있는 한, 개인은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과거사 규명과 보안법 폐지는 금기의 영역 외부에 ‘정상성’을 설정한 “보통 사람들의 인식지평과 공간을 늘리는 일”이다. 동시에 이는 진정한 탈민족 기획의 토대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에게 ‘세계의 보편적 표준’에 맞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 위원은 “설득력 없는 자료를 긁어모아 민족정체성 회복을 위한 간도의 원상회복을 주장하면서, 반세기 전의 일은 시대착오적 민족주의의 소산이니 그냥 덮어두자고 하는” 보수언론의 논리를 꼬집으며, “민족주의가 편협하다고 목청 높이던 지식인들이 정작 자신들에게 기꺼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수구언론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기묘한 현실”을 비판했다.

    보수언론의 팽창적 민족주의가 탈민족주의를 동원하고, 탈민족주의자들은 팽창적 민족주의를 눈감아주는 가운데, “민족을 경계로 한 열강의 간섭과 차별, 억압을 반대하는 우리 민족주의의 본령인 저항적 민족주의는 위기에 처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민족주의 극복의 길은 따로 있다. “민족주의는 세계사적 시야에서 볼 때 분명 시대착오적이지만, 시대착오적인 것은 지역주의, 가부장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재생산되는 구조를 청산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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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케 현상 2004-12-03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은 제게 '신문읽어주는 사람^^이신데 넘 오랫만이에요

    balmas 2004-12-0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

    그럼 구독료, 아니 구청료도 내셔야죠.^^


    주니다 2004-12-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 동네에서 민족의 문제는 지난 시절의 진보적 미술운동이었던 '민중미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거든요. (진보적 미술운동의 현재와 앞으로의 진로 모색도) 그래서 저도 요즘들어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임지현, 탁석산 등이 탈민족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 것 같던데 그들의 논리들이 제 입장에서는 가슴에 탁 와닿지는 않았었습니다. 마침 이런 의견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끝부분의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재생산되는 구조를 청산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balmas 2004-12-0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니다님, 저도 궁금해서 한번 사봐야겠어요.^^
     



     


     

     

    김민수 교수 외부심사 조작?

    최순영 의원, 재임용 심사 불공정 의혹 제기

    2004년 11월 29일   허영수 기자 이메일 보내기







    김민수 서울대 교수의 재임용 심사에 참여한 학외 심사위원이 사실상 학내 인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서울대는 도덕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어, 법정 공방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위 소속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은 지난 23일 "김 교수의 재임용 3차 심사시, 학외 인사로 참여했던 교수의 필적을 감정한 결과, 서울대에 임용이 내정돼 있었던 모 교수와 '유사·동일필적'인 것으로 판명됐다"라며 재임용 부당 심사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3차 심사보고서와 모교수의 필적을 감정한 결과, 국내 2곳에서는 '유사하다'고 밝혔으며, 일본 필적감정운은'동일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최 의원에 따르면, 모 교수의 공무원인사기록카드, 전직 대학의 인사기록 카드 및 이력서, 자필 서명 등을 3차 심사보고서와 함께 국내 2개, 국외 1개의 필적감정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국내 2개의 감정원은 "相似한 필적으로 사료됨"라고 제시했고, 일본의 감정원은 "동일인의 필적으로 사료됨"라는 검토결과를 보냈다.


    또 최 의원은 "문제가 된 심사보고서는 작성일이 25일에서 26일로 고쳐졌는데, 이는 재심을 요청하는 공문시행일이 25일이기 때문에 학외인사가 아닌 것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심사자의 성명과 직위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조직적 부정 행위 의혹도 제기했다.


    최 의원은 "서울대의 사회적 책무로 볼 때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부인해왔다면 도덕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감사, 부패방지위원회 신도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예정이며, 서울대는 의혹과 관련해 조속한 해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는 이같은 최의원측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모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지의 여부를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측은 "심사위원 명단이 공개될 경우 심사위원의 권익보호가 어려울 뿐 아니라 향후 객관적 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교수의 자유로운 학문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면서 "판결을 위해 제한적으로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의혹을 받고 있는 모 교수는 "1∼3차 심사 모두에서 심사한 적이 전혀 없다"라면서 "최 의원측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김민수 교수 심사 조작 의혹 해명하라"

    서울대 철문 닫아걸고 교수·학생 목소리 외면

    2004년 12월 02일   허영수 기자 이메일 보내기













    ▲지난달 26일 교수·학생들은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방문했지만 서울대측은 본관 총장실로 가는 철문을 닫는 등 대화를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민수 교수의 문제를 지난 6여년 동안 끌고 온 서울대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 교수신문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의 재임용 심사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대 교수·학생대책위원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은 지난 26일 교수·학생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민수 교수 재임용탈락에 대한 조직적 불법행위 규탄결의대회'를 열어 "비합리적인 재임용심사과정을 은폐하려하지 말고 떳떳이 밝혀야 할 것"라면서 재임용 심사서 공개를 촉구했다.

    규탄결의대회에 참석한 김수행 교수대책위원회 위원장(경제학)은 "3차 심사시 외부인이라는 심사위원이 내부인 ㄱ교수라는 의혹이 지난 98년부터 줄곧 제기돼 왔다"라면서 "심사결과 공개 등 서울대가 스스로 김민수 교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미술대학의 편파적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김민수 교수가 겪는 고통은 개인적 불행에 그치지 않고 서울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측은 재임용 심사위원에 대해서는 대외 비공개 원칙을 고수할 방침이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변창구 서울대 교무처장과 ㄱ교수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3차 외부심사위원은 ㄱ교수가 아니며 서울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은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재임용 심사 조작 의혹 논란은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이 지난달 23일 "필적감정 결과 재임용 3차 심사에서 서울대가 학외인사라고 밝힌 교수의 필적이 서울대 신임교수였던 ㄱ와 유사·동일 필적인 것으로 판명됐다"라고 밝힘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최순영 의원측은 "학외인사로 여겨지는 심사위원의 평가점수가 재임용 탈락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라면서 서울대가 해명하지 않을 경우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거나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할 뜻을 밝혔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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