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이데올로기와 한판승부!





‘피할 수 없는, 조직의 명운을 건’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비정규직 법안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정규직의 ‘배부른 파업’은 없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비정규직 싸움에 나선다. 총파업을 지휘하는 이수호 위원장의 인터뷰도 준비했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이번 총파업은 노동운동의 조직적 힘과 건강성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11월14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사진 / 김진수 기자)





“내 손에 최소한 50만표를 쥐어달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11월26일로 예정된 비정규직 법안 관련 총파업을 앞두고 전국 사업장을 돌며 파업 찬반투표를 독려할 때 줄곧 이렇게 외쳤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켰던 총파업을 전체 조합원(59만5천명)이 직접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 결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찬반투표 결과 30만5천명이 참가해 20만7천명(67.9%)이 총파업에 동참하겠다고 찬성표를 던졌다.

비록 50만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68%에 달한 총파업 찬성률은 ‘뜻밖의’ 높은 수치라는 게 노동계의 반응이다. 올 상반기 투쟁에 따른 조직적 피로감이 누적된데다 외환위기 이후 해마다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동원돼온 만큼 ‘파업 피로감’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안할 때 찬성 20만표는 현장의 총파업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민주노총 단위노조 가운데 자체 사업장 문제로 파업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노조가 수두룩하다”며 “이를 고려할 때 이번 투표 참가율과 찬성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법안(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에 이미 제출돼 조만간 상임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로 넘겨질 예정이다. 노동계는 정부가 △기간제 근로자를 3년 이내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파견 대상 업무를 전면 자유화해 비정규직 확산을 조장하는 최악의 개악안을 강행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정부 법안 폐기 및 대화를 통한 새로운 법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는 “법안은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남용을 규제하되 노동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는 데에 기본 방향을 두고 마련됐다”면서 노동계가 총파업으로 맞서더라도 연내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되는 순간, 정부가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찬성’20만표가 말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찬반 여부를 묻고, 또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건 이번 총파업이 ‘비정규직 법안 싸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주노총은, 해마다 총파업 선언을 되풀이했지만 별다른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판판이 깨지고 말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금껏 총파업 이슈는 임단협 투쟁이거나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은 성격이 다르다. 정규직 대공장 노조의 이른바 ‘배부른 파업’이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 스스로 비정규직 싸움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가 이번 개악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민주노조 운동의 정통성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민주노총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이번 싸움을 맞고 있다.

사실 민주노총으로서는 비정규직 법안 총파업을 대의원(870여명)한테 묻지 않고 60만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는 것이 모험이기도 했다. 이수호 위원장의 말마따나 총파업이 부결된다면 민주노조 운동은 정통성에서 일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는 현 노동운동에 대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운동”이라고 늘 비판해왔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최근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력에 비해 과도한 과실을 따먹고 있다”고 또다시 노동계를 자극하기도 했다. 결국 총파업이 부결되거나,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동원부족으로 패배한다면 ‘정규직의 배부른 운동’이라는 정부 논리를 노동계가 입증해주는 셈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싸움은 ‘대기업 정규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면승부 성격도 띠고 있다.



정부 “여기서 노동계에 밀리면 끝장”



특히 이번 총파업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흐름 속에서 수세에 몰려 있는 노동운동의 조직적 힘이 과연 얼마나 살아 있는지, 또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건강성’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 대공장 이기주의에 젖어 있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위한 총파업을 한다고? 그래 어디 한번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단지 ‘구호’로만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민주노총은 “그렇다면 우리의 실력을 이번에 제대로 한번 보여주겠다. 정부의 생각이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주환 국장은 “정규직 노동자 20만명이 비정규직을 위해 총파업을 선언했다는 건, 그동안 말로만 비정규직 투쟁을 외쳐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정규직 노동조합이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 이번 총파업은 노-정 대립의 분수령이 돌 것으로 보인다. 올초 김대환 노동부 장관(왼쪽)과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사진 / 박승화 기자)





물론 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돼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에 예상외로 높은 총파업 찬성률이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비정규직 법안을 막아내지 못하면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의 씨가 마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운동 조직이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이수호 집행부가 ‘비정규직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집행부’라는 역사적 평가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싸움은 1998년 2월 노사정 대타협 당시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했던 상황과 비슷한 수준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파업이 노-정 대립의 분수령이 될 공산도 크다. 물리적 힘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노-정 관계가 파국에 이른다면 현 정부가 줄곧 표방해온 ‘사회적 대화’는 이제 노무현 정부 임기 내내 말도 꺼내기 어렵게 된다. 김유선 소장은 “비정규직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정부가 대화 의지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법안 처리 강행은 노사정위원회 대화 틀조차 공식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지금 상황은 1996년 말∼97년 초 노동법 날치기 처리 때의 총파업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총파업 국면이 향후 노사 관계를 판가름짓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당정은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뿐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을 포함해 갈등을 겪고 있는 법안들을 연내에 한꺼번에 털어버리겠다는 구상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동부쪽은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비정규직 법안은 그동안 충분히 논의된 사안이다. 재논의를 한다 해도 합의가 이뤄질 문제가 아니고, 손질해봤자 별로 달라질 건 없다. 내년부터는 노동법·제도 선진화 방안 등 다른 과제를 풀어야 한다”며 “총파업을 피해간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관계자는 “이번에 끝내지 못하면 비정규직 법안이 노-정 관계를 악화시킬 최대 이슈로 계속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피할 수 없는 싸움으로 보는 것 같다”며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여기서 노동계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 대대적 가세, 판이 커진다



한편, 열린우리당에서는 노동계의 저항이 의외로 강한 만큼 연말 총파업 소나기 국면을 일단 피해가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환경노동위원회)은 “열린우리당 환노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 이번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을 꼭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법안 내용도 더 토론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법안 처리가 연기되더라도 앞으로 국회가 열릴 때마다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긴장은 지속되겠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럴 경우 노동계도 지쳐 파업 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11월22일 총파업을 앞두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정부에 노-정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김진수 기자)





이번 총파업 국면이 정부와 이수호 집행부의 첫 대규모 정면대결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제도’를 둘러싼 최초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등을 놓고 산발적인 싸움이 계속됐지만 법과 제도라는 측면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법안을 “이미 노동시장에서 불법·탈법적으로 횡행해온 비정규직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합법화해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이번 싸움에 가세해 판이 커지고 있는 양상은 주목할 만하다. 양대노총·한국비정규노동센터·참여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103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노동법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안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또 학계·법조계·예술단체·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그동안 기존 노동운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참여연대까지 비정규직 법안 투쟁을 사업의 전면에 배치하면서 연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참여연대쪽은 “비정규노동법 개악은 단순히 노동 문제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소득 불평등과 경제 양극화 등 사회 불평등의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총파업은 노동운동만의 고립된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주변부로 밀려난 절대 다수 노동인구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기 위한 ‘사회세력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올 초 취임 당시 “내가 대화와 교섭을 중시하는 건 맞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서 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신자유주의 시장 흐름에 맞서는 제대로 된 한판 싸움을 벌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총파업은 비정규직 법안이란 긴박한 변수로 인해 그 싸움이 생각보다 일찍 닥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에서는 “피할 수 없고, 조직의 명운을 건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과연 총파업에서 노동자들의 함성이 얼마나 크게 터져나올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이번 총파업이 노동법 날치기로 촉발됐던 96년 말∼97년 초의 총파업처럼 커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물론 당시에는 새벽 날치기라는 극적 사태가 있었고 정리해고 도입이라는 ‘충격적 이슈’가 있었지만 비정규직 급증은 이미 시장의 대세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당시 법외단체였던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거쳐 노동운동 세력으로서 실체와 지위를 인정받고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만약 민주노총이 이번 비정규직 법안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조직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이번 싸움은 민주노총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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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2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판이 크군요

balmas 2004-11-2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이 커질지는, 글쎄요 ...
 
 전출처 : nrim > [퍼온글] 브레송 사진집 구입하실 분,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석달 전 사망소식을 알렸던 사진가 브레송을 기억하시는지요? 브레송을 아시는 분이라면 아마도 한번쯤 그의 사진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를 소장하고 싶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정가 80,000 원, 알라딘 할인가 68,000 원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하시지는 않았을텐데요, 만약 꼭 이 사진집을 갖고 싶으시다면 서두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출판사에서 가지고 있는 재고가 채 100 부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렇게 책이 떨어지면 곧 다시 찍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는데요, 이 책의 경우는 전량 해외주문제작방식인데다, 거기에 필요한 비용이 워낙에나 크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곧바로 다시 찍어낼 수가 없다네요.

제 입장에서는 "아니 아니 그래도 책이 떨어지면 곧바로 다시 찍으셔야죠!"라고 말하고 싶긴 합니다만, 사실 이렇게 비싼 책의 경우는 출판사에서도 적지 않이 부담이 되리라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재고가 떨어지면 한동안은 구하기 어려울 거라는 소식, 미리 알려드립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다는데 이런 소식을 날리다니, 제가 곱지만은 않으실 거라 생각하지만 ^^:; 그래도 떨어지고 나면 서운하실 것 같아서요. 자, 그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봐 주세요! ^^  -- 알라딘 이예린(yerin@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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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다고 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군 ... ^^;;;

그런데, 정진국 씨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정진국 씨 번역을 믿기가 어려워서(중요한 책들을 골라서 번역해주는 건 고마운데, 번역은 그다지 성의가 없고 오역들도 여럿 보인다) 책을 안사고 있는데, 책 읽어본 분들 중에서 누가 번역이 어떤지 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군요.

瑚璉 2004-11-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서 보기는 했는데 번역의 질에 대해서 평할 만한 재간이 없는 관계로 결국 별 도움이 못되어 드리는군요 (-.-;).

balmas 2004-11-2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련님, 잘 읽히면 번역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별 막힘없이 잘 읽히던가요?

바람구두 2004-11-2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저도 사서 읽었는데, 워낙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책을 읽는다는 일만으로도 흥분한 나머지 그런 부분엔 거의 주목하지 못했거든요. 사진 보는 재미에서만이라도 구입하심이 가한 줄 아뢰오.

balmas 2004-11-2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까요 ...

비싸기는 하지만.^^
 

* 지난 수요일에 오랜만에 아는 후배를 만났는데, 존 버거 책을 한 권 번역했다고 줘서 틈틈이 읽고 있다. 교육방송 PD로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바쁜 와중에도 책을 번역한 게 용하다. 존 버거를 좋아하는 나로서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선물인데,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라고(장 모르의 사진들도 좋다^^) 권하는 의미에서 몇 구절을 적어보겠다.

 

행운아 -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존 버거 (지은이), 김현우 (옮긴이), 장 모르 (사진) | 눈빛


정   가 : 9,000원
판매가 : 8,100원(10%off, 900원 할인)
마일리지 : 243원(3%)
2004-11-11 | ISBN 8974092085
반양장본 | 184쪽 | 188*128mm (B6)
알라딘 Sales Point : 360
예술/대중문화 주간베스트 56위

  



부커상 수상작가로 폭넓은 저작활동을 해오고 있는 존 버거가 쓴 글과 장 모르가 찍은 사진을 함께 담았다. 점점 더 궁핍해지는 후미진 시골, 의사 존 사샬은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보살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한 현대사회에서 '행운아'인 한 의사의 삶을 통해 인간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존 버거 (John Berger) - 1926년 런던 태생으로 미술비평가, 소설가,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 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술평론으로 활동을 시작해 사유의 영역을 확대해 왔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과 감각도 탁월하다. 1962년 영국을 떠나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 은거해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소설로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 상(Booker Prize)을 수상한 <G>, 농민을 노래한 3부작 <그들의 노동에 함께하였느니라 Into Their Labours>가 있고, 평론으로는 <랑데부 Keeping a Rendezvous>, <시각 The Sense of Sight>, <보는 방법 Ways of Seeing> 등이 있다.

김현우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옮긴 책으로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두첸의 세계명화비밀탐사> 등이 있다.

장 모르 (Jean Mohr) - 지난 20년 동안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사의 사진가로 일해 왔다. 2004년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다.

한겨레신문 : 세계 문화예술계 최고의 팔방미인을 꼽자면 빠질 수 없는 이가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극작가, 비평가인 존 버거다. 화가이기도 한 존 버거는 미술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이미지-시각과 미디어>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다큐멘터리 작가와 방송인으로도 활동해왔고, 사회비평가로서도 좌파 진영의 손꼽히는 논객으로 자리매김했다. <결혼을 위하여> 등을 쓴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져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인간소외와 현대인의 고독감을 잘 포착해내는 수필가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중년 이후 존 버거는 프랑스 알프스산맥 기슭 농촌에 들어가 글 쓰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역시 시각 이미지 쪽이다. 사진작가 장 모르가 사진을 찍고 그가 글을 쓴 일련의 연작 가운데 하나인 <행운아>가 최근 출간됐다. 존 버거는 환자들과 진실한 인간적 교감을 시도하며 마을주민들의 보살피려는 영국의 한 시골마을 의사 존 사샬의 일상을 통해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묻는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총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 의사가 바로 '행운아'이며 역설적으로 현대인 대다수는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역시 존 버거와 장 모르의 공동작업물인 <제7의 인간>과 <말하기의 다른 방법>도 각각 같은 출판사에서 1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제7의 인간>(차미례 옮김)은 <행운아>처럼 강렬한 이미지의 사진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으로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삶을 그린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희재 옮김)은 산악지방 농촌마을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사진의 미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독특한 에세이풍의 사진이론서다. 7년에 걸쳐 찍은 농부들의 사진 자체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풍성하며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사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존 버거 나름의 답변을 구하는 작업이다. - 구본준 기자 ( 2004-11-13 )

 

69-70쪽

사람들은 사샬이 솔직하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기에 편하며, 가까이 있고, 다정하고 이해력이 있으며, 남의 말을 경청하고, 언제라도 필요할 때는 달려와서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분위기 있고, 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가끔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의사로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는지는 위에서 말한 것들처럼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의사-환자 관계에 고유한 특질과 깊이를 생각해야 한다.

성직자나 무당 혹은 판관을 겸하기도 했던 원시시대의 의사들은 종족을 위해 식량을 생산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어다. 이러한 특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특권에 의해 그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사가 해결해 주는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몸이 아픈 것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지불해야 하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불하고 있는 대가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고통이나 불편함을 배가시킨다. 그런데 그러한 인식의 결과로 생겨나는 자의식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자의식에서 치료의 가능성, 약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원시시대 부족민들이 의사의 치료에 대해서 취했던 주관적인 태도를 지금 상상으로 재구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에서 우리 자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기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신뢰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리는 의사들이 우리의 몸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접근은 연인에게만 허락되는 것인데-심지어 연인에게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의사는 완전히 낯선 사람 아닌가?

(장 모르의 사진들 몇 장이 중간에 나온다)

74쪽-75쪽

의사들의 윤리지침은 의사로서의 역할과 연인으로서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의 친밀감의 한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구분은 의사들이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원하는 곳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환자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라는 염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상상력이 결여된 철없는 상상일 뿐인데, 의사들이 환자들을 접하게 되는 상황은 성욕을 감퇴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사항을 의사의 윤리지침에 넣은 것은 의사들을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일종의 약속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는 그런 약속 말이다. 그것은 성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육체적인 친밀감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친밀감이 의미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 속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은 스스로 어린이의 상태로 돌아가서, 그 의사를 가족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에 의사는 가족과 동등해지는 것이다.

환자의 심리가 부모에게만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 의사는 그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관계에서 성적인 생각들은 진료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사람들은 의사를 큰형이나 언니 정도로 가정한다.

비슷한 일이 죽음에서도 일어난다. 의사는 죽음과 친숙한 사람이다. 의사를 부를 때, 우리는 그가 우리를 치료해 주고,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할 때는 그가 우리의 죽음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켜보는 행위의 가치는 그가 다른 죽음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 가치는 한때 성직자들이 기도나 의식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가졌던 진정한 가치였다)이다. 의사는 우리와 갖가지 죽음 사이의 살아 있는 중재자인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 속하기도 하지만, 그 죽음들에 속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이 의사의 중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그 힘들지만 실제적인 위안 역시 형제애에서 오는 위안이다. ... 

 

*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논의가 뒤에 시작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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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의 이미지를 재밌게 읽었어요. 유익하고, 재밌고~ ! 일단 보관함에 넣어놓을게요 ^^

balmas 2004-11-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지] 재미있죠??^^

저는 존 버거 책 중에서는 예전에 열화당에서 나온(맞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처음으로 읽었답니다. 그 다음부터 존 버거의 팬이 됐는데,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말 훌륭한 작가죠.^^

로드무비 2004-11-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참, 그리고 열화당이 아니고 아트북스예요.^^

balmas 2004-11-2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로드무비님, 제가 말한 건 84년에 나온 책인데요.

그런데 확인해보니까 열화당이 아니라 미진사더군요. 아트북스에서는 작년인가 다시 냈었죠?
 


 

 

 
 
권력 유지에 동원된 사회과학의 역사
화제의 책_ ‘대학과 제국’(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한영옥 옮김, 당대 刊, 2004, 345쪽)

2004년 11월 19일   최철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철의 장막으로 둘러쳐진 냉전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자들의 연구에 어떠한 모습으로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을까. 좀 더 간단하게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과연, 지식은 진리를 향해 행군하는가.

미국 New Press 사의 냉전과 대학 시리즈 제2권에 해당하는 ‘대학과 제국’은 냉전시기 미국의 군사기관과 정보기관이 대학에 끼친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최소한 당대의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직접적으로 탐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오해와 편견’을 깨고 있다.

각종 재단 기금을 통한 권력의 대학으로의 유입이 학문의 패러다임 전부를 창출하거나 지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질문이 허용될 수 있고 누구의 결과를 합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할 것이냐”라는 쟁투를 통해 권력과 돈은 일정 주제에 대한 ‘권위 있는’ 전문가를 결정하고, 비판적 학자들을 배제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책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권력과 돈이 먼저 학자들의 연구주제를 발견하였고, 그에 따라 연구의 장을 규정해 놓았다”라고 표현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50~51년의 MIT의 트로이 프로젝트나 국제연구센터에서 구체화된 사회과학의 모델, 카멜롯 프로젝트, 맥스 밀리칸과 월트 로스토의 ‘대외경제정책 보고서’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1954년 초에 CIA에 제출할 보고서로 작성됐던 ‘대외경제정책보고서’는 그간 미발간 된 원고로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개발’과 ‘근대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여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을 이룬 이 보고서는 미국이 관심 지역의 엘리트층을 근대화하고 “직·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사회로 전개되어 나가지 않는 환경”을 창출한다는 목적아래 경제적 동기부여정책과 국내 안보조치를 적절히 구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밀리칸과 로스토는 50년대 중반, 국제연구센터에서 아이젠하워 정권 기간 내내 국무부와 CIA에 영향력 있는 국제문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책의 마지막 글에서 로렌스 솔리는 냉전기 국가안보를 위한 국가-대학관계의 시대가 기업지원의 ‘장학금’과 ‘지식’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대체되고 있는 미국대학의 ‘재건설’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업가들은 대학을 근거지로 하여 기업의 수요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요구하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스포츠 후원 계약을 체결하거나, 각종 연구소들에 용역을 맡겨 능동적으로 지식정보를 생성·매매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학의 학문적 권위를 이용하여 예측 가능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맞춤형 홍보 프로젝트’라는 것이 분석의 핵심이다.

사실 새로이 제시된 몇몇 정보 이외에 책의 내용들은 상당부분 이미 다 밝혀졌고 뜨거운 논쟁이 됐던 사안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들이 단순히 일회적 흥밋거리로 머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그 내재적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학문으로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바로 지금 학문을 짊어지고 서 있는 그 자리를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예술의 이름으로 혁명을 말하다
예술계 신간_『티나 모도티』마거릿 훅스 지음| 윤길순 옮김| 해냄 刊| 416쪽

2004년 11월 20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장미’, ‘릴리’를 찍은 20세기 최고의 여성사진가이자, ‘망치와 낫’, ‘깃발을 든 여인’을 찍으며 20세기 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활동가 티나 모도티의 평전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티나는 원래 연극배우이자 할리우드배우 출신으로, 그녀의 연인이자 저명한 사진작가였던 에드워드 웨스턴의 모델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타고난 예술가의 영혼을 지녔던 티나는 예술의 객체에만 머물 수 없었다. 1922년 멕시코로 이주하면서 예술의 ‘주체’가 돼야겠다는 그녀의 욕망은 현실화 됐다. 당시 멕시코는 디에고 리베라를 중심으로 벽화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었는데, 티나는 이들 예술가와 혁명가들에게 융화되면서 사회적 변혁의 요구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1927년의 작품들은 멕시코 혁명이 열망한 것과 성취한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옥수수와 낫, 탄띠를 배열해 찍은 작품은 “위대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완벽한 종합”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유사한 일련의 작품 속에는 멕시코 헌법조항과 같은 혁명의 상징들이 통합돼 있었다. 이듬해엔 슬럼가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기록하는 ‘거리사진’에 열중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돼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나 지저분한 곳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녀의 기록들은 빈곤과 퇴폐로 얼룩진 거리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한때 사회적인 메시지를 사진을 통해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으나, 그녀의 이런 믿음은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삶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주제였던 ‘예술’과 ‘정치’는 하나로 통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1928년 이후 그녀는 10년을 베를린, 소비에트 연방, 스페인을 옮겨 다니며 적색후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했고, 스페인 내전 때는 반파시스트 연대활동을 펼쳤다.


한편, 티나는 20세기 초 자유주의 연애사상의 흐름에 서있었다. 그녀는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가이자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이자, 하비에르 게레로의 연인이었으며, 쿠바 혁명가 안토니오 멜라와도 사랑을 나눴는데, 이들 모두 혁명적 동지자들이었다. 또한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에게도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돈독한 우정을 나눴던 사이기도 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2004 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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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2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당분간 볼 시간이 없다 ...

stella.K 2004-11-2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가져갈께요. 꾸벅.^^

balmas 2004-11-2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반갑습니다. 그러세요.^^

딸기 2005-01-0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봐야겠군요.
 

 

 

이주노동자의 ‘못다 부른 悲歌’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찾는 마지막 피난처, 명동성당. 올 한해도 한달 남짓 남겨둔 명동성당은 1년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초췌한 모습과 이 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경찰의 모습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거동이 힘든 어머니가 얼마 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돈 벌러 나왔지만 이젠 고향으로 갈 차비마저 없다”고 말하는 방글라데시인 A씨의 눈은 벌겋게 충혈됐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다. 임금체불과 잦은 폭행에 견디다 못해 일터를 뛰쳐나온 그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세다.

임금체불에다 이유없는 인권차별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 150여명이 강제출국을 피해 철야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현재 허름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30명도 채 안된다. 대부분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거나 전망이 불투명한 농성투쟁에 지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10개국 이상에서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는 줄잡아 40여만명. 지금 그들은 단순한 인종차별의 차원을 떠나 노동자로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주면 1년간의 농성을 마치고 해산식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의 농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여러 사회단체들이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명동성당 농성을 마친다고 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접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아노와르씨(34. 방글라데시). 한국에서의 생활을 8년째 맞고있는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농성이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앞으로 전국에 흩어진 이주노동자들의 결의를 다져나갈 것이다”며 향후의 계획을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관련, 윤혁(민주노총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정책위원은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따를 수 밖에 없으며 그 곳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불법체류자의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조정회의에서 합동단속반을 구성한 뒤 연말까지 집중단속을 통해 불법 체류자를 전체 외국인노동자의 10% 수준인 4만-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윤위원은 “불법체류자를 증가시키고 광범위하게 양산시킨 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정책에 기인한다.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편법을 통해 노동비자도 발급하지 않고 월 평균 40-50만원대의 임금을 준다. 게다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없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한 것은 정부의 폭압적이고 수탈적인 이주노동자 공급 시스템에 있다”며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호소했다. 10년동안 숨어다니며 한국의 제조업을 먹여 살린 그들에게 강제추방은 잔혹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여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재선 성공 후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의 지위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하는 이민법 개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외국인노동자들이 미국인이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미국이민법을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민 급증에 대한 보수층과 공화당 내의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나 부시 정권도 불법체류자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불법체류자의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다. 각종 외국인 범죄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는 경제적 효용은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불법체류자 중에는 이른바 ‘재팬 드림’을 꿈꾸고 건너간 한국인들이 많다. 출입국관리국의 단속에 적발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된다. 불법체류자들이 외국인 범죄의 주범으로 매도되면서 단속도 강화되는 현실이지만 그들의 처지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과는 상반된다.

얼마전 일본에서 5년간의 불법체류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박모씨(43)는 “오히려 한국인 고용주의 횡포가 더 심했다”며 “일본인 고용주는 일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없는 한 다른 일본인들과 똑같은 임금을 줬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떠나 노동력만 가지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 거의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사업장 이동이 자유로우며 노동의 대가는 충분히 받았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외치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왔던지 일을 했으며 노동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오히려 무거운 족쇄로 변형돼 악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악덕 고용주의 횡포에 의한 노동자의 설움이 비단 이주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명동성당으로 향한 계단은 더욱 가파르게 보인다.

〈미디어칸 고영득기자 ydko@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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